소 씨 가문에서 소천홍은 줄곧 소청하를 압박 하고 있었다.가까스로 이번에 딸을 중해 그룹 아들에게 시집 보낼 수 있게 되어, 소청하는 가문에서 조금이나마 고개를 들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소채은이 뜻밖에도 이렇게 가문에 치욕적인 일을 저지르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형님, 죄송합니다! 조성훈과의 일은 반드시 제가 형님과 가문을 위해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그러자 소천홍은 피식 냉소했다.“해결? 어떻게 해결할 건데? 지금 중해 그룹은 이미 완전히 우리와의 협력을 중단했고, 게다가 우리 SK그룹의 일도 곧 없어질 텐데. 대체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나한테 말해줄래?”소청하가 탄식하며 말했다.“형님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지금 도련님에게 사과하러 갈게요!”“사과해도 소용없어!”“너 알아? 도련님이 네 그 착한 딸이 만나는 불륜남과 마주친 건 물론, 그 남자한테 구타당했다는 거? 지금 듣자 하니 아직도 병원에 있다던데!”소천홍은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자 옆에 있던 소진욱도 피식 콧방귀를 끼며 말했다.“둘째아버지, 정말 생각지도 못했어요. 채은이가 밖에서 이렇게 호방하게 놀 줄 말이에요.”그 두 부자에게 수모를 당한 소청하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둘째야, 잘 들어!”“이번에 만약 우리 소씨 가문이 중해 그룹과 혼인을 할 수 없다면, 내가 형님인 것을 탓하지 마라!”“너도 알겠지. 여러 해 동안 우리 소씨 가문이 줄곧 나에 의해 유지됐다는 걸. 만약 내가 없었다면 우리 소씨 가문은 벌써 무너졌을 거다!”“그래서, 만약 네 딸이 남자와 놀아나서 이번 협력을 망친다면, 그때 너는 순순히 SK그룹에 남은 모든 주식을 넘겨줘야 할 거다!”그 말을 들은 소청하는 가슴이 흠칫 떨렸다.오랜 세월 동안, 소청하보다 자기 형님에 대해 많이 아는 사람은 없었다.소천홍은 줄곧 그의 수중에 있는 마지막 SK그룹 지분을 차지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만약 이번에, 소채은이 정말 중해 그룹과의 혼인을 성공시키지 못한다면,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소천홍은 서둘러 한 마리의 발바리처럼 웃는 얼굴과 함께 다가갔다.“소씨 가문의 소천홍이라고 합니다! 실례지만 그쪽은?”“제 이름은 표태훈이올시다. DH 그룹 주 회장님의 곁에 있는 작은 집사일 뿐이지요!" 표태훈은 담담하게 말했다.상대가 진짜 강성 제일의 DH 그룹이라는 말에 소천홍은 다시 한번 충격에 빠졌다.“표 집사님이시군요. 이거 정말 반갑습니다!”“표 집사님께서 처음 방문하셨는데 멀리 마중 나가지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우리 소씨 가문의 지주로서의 우의를 다하도록 부디 이 누추한 집으로 들어와 주십쇼!”소천홍은 서둘러 다시 빌붙으며 말했다.그러나 표태훈은 오히려 살짝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들어가지 않아도 됩니다! 오늘 소씨 가문에 온 것은 주로 우리 주 회장님께서 찾을 분이 계셔서입니다!”“찾을 분이요?”그 말에 소천홍과 소청하는 귀가 쫑긋해졌다.SK그룹은 강성에서는 그저 삼류 가문에 불과했다.그러기에 DH 그룹과 비교하면, 개미와 코끼리의 차이와 다름 없었다.지금 갑자기 이 대단한 그룹에서 소씨 가문의 사람을 찾으러 왔다는 말을 들으니, 소천홍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표 집사는 대체 누구를 찾으시려 하는 것인지요?”“소채은입니다!”이 세 글자에 현장에 있던 모든 소씨 가문의 가족들은 어리둥절해졌다.소청하를 비롯해서 말이다.“표 집사께서 왜 제 조카를 찾으시나요? 설마 그 어린 조카를 아십니까?”소천홍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그러자 표태훈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는 사이는 아닙니다. 저희는 그저 소씨 가문 아가씨가 곧 결혼할 것 같지만 현재 가문에 의해 감금되었다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맞습니까?”‘어?그 말이 나오자 소천홍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그리고 몇 초 동안 침묵하더니 그는 재빨리 말했다.“아니요, 표 집사님께서 오해하신 겁니다! 저희가 어떻게 그 계집애를 감금할 수 있겠습니까?”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서둘러 소청하를 바라보았다.“둘째야, 너도 아비
그러자 표태훈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채은 양, 안녕하세요! 저는 주 회장님의 명령을 받고 특별히 아가씨를 만나러 왔습니다!”“주 회장님이요? 그분이 누구신데요?”소채은은 조금 의아해하며 물었다.“주 회장님의 성함은 바로 주세호입니다!”이 세 글자가 나오자 소천홍, 소청하는 하마터면 땅에 무릎을 꿇을 뻔했다.맙소사!전설의 강성 제일 갑부!그러나 소채은은 이름을 듣고도 입으로 중얼거렸다.“주세호... 죄송합니다, 저는 정말 모르는 분이세요!”이 말에 소천홍, 소청하는 다시 한번 무릎을 꿇을 뻔했다.“채은 양이 우리 주 회장님을 모르는 것은 정상입니다! 하지만, 회장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오늘부터 아가씨는 우리 주 회장님의 귀빈이라고요. 그러니 만약 무슨 문제가 생기면, 꼭 저희에게 알려주세요!”“또 주 회장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앞으로 강성에서는 아가씨 말 한마디면 무슨 일이든 우리 DH 그룹이 해결해 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이를테면... 채은 양 가족들이 채은 양을 감금하고, 채은 양의 자유를 통제하려 한다는 것 등등 말이에요!”표태훈이 이 말을 하자, 모든 소씨 가문 가족들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변했다.그들은 강성 제1의 부자가 소채은과 인연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더욱 충격적인 것은 주세호가 뜻밖에도 소채은을 위해 나서려 한다는 것이다.‘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이 망할 계집애!’비록 그녀는 정말로 DH 그룹도, 더군다나 주세호도 알지 못했지만, 표태훈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예쁜 눈동자를 또륵또륵 굴렸다.“어떤 분들이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고맙습니다, 표 집사님!”그러자 표태훈은 빙긋 미소를 지었다.“알겠습니다. 할 말은 다 전했으니. 이제 저도 가봐야겠어요.”“채은 양, 이건 우리 회장님의 개인 전화번호예요. 잘 간직하고 있어요!”표태훈은 금실로 수놓은 진귀한 명함을 들어 소채은에게 건넸다.소채은도 당연히 마다하지 않고 서둘러 받았다. “이 늙은이는 이미 전달을 끝냈으니, 그다음 모
소채은이 막 가자마자, 소천홍이 서재 안에서 분노하며 욕설을 퍼붓는 것이 들려왔다.“때려죽일 계집애, 천한 계집애, 자기가 정말 주세호를 알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뭐야?”“화가 나 죽겠네!”쨍그랑!방 안에서 물건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와, 소천홍이 이번에 상당히 화가 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아빠, 화 푸세요! 그 계집애는 어차피 오래 날뛰지 못할 거예요. 일단 그년이 조 도련님한테 시집만 간다면, 우리는 소씨 가문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을 거예요!”소진욱이 입을 열었고, 그제야 소천홍은 점차 분노를 억눌렀다.그러고는 한참이 지나서야 말했다.“네 말이 맞아! 하지만, 나는 어딘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대체 그 계집애가 어떻게 주세호 같은 큰 사람을 알게 됐을까?”“아빠, 제 추측으로는 아마 도련님 때문인 것 같아요!”“조성훈?”“맞아요!”“아빠, 생각해 보세요. 중해 그룹이 DH 그룹 같은 거물과 접촉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는 것 외에, 누가 그런 자격을 가질 수 있겠어요?”소천홍도 그의 말이 맞는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하지만 아무리 도련님의 뜻이라 하더라도, 주 회장님은 왜 우리에게 그 천한 계집애를 감금하지 못하게 했을까?”그러자 소진욱은 턱을 문지르며 천천히 대답했다.“제 추측으로는 도련님께서 채은이를 정말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가 걔를 벌할까 봐 두려운 거고요.”소천홍이 다시 생각해 보니, 그 말도 뭔가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그래! 그래! 도련님이 그런 사랑꾼인 줄은 몰랐네!" ...윤구주는 주 씨 저택에서 돌아온 후, 스카이 가든에서 조용히 지냈다.옆에는 검은색 마스티프가 있었는데, 그것은 꼼짝도 하지 못하고 윤구주의 곁에 얌전히 엎드려 있었다.“소채은"에 관해 윤구주는 주세호가 나서면 그녀는 틀림없이 자유를 되찾아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기에 완전히 마음을 놓고 있었다.숨을 크게 들이마시자, 윤구주의 온몸이 움직였다. 그 순
그녀는 기억을 잃은 그가 이런 낯선 곳에 있으면, 틀림없이 머리 없는 파리처럼 마구 뛰어다니리라 생각했다.하지만 뜻밖에도 윤구주는 그녀가 빌린 별장에 가만히 있었다.윤구주도 소채은을 보고 웃었다.“저 안 갔어요! 여기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어요!”“하하, 잘했어요! 참 똑똑하네요. 저를 기다릴 줄도 아시고! 만약 도망갔었다면, 저는 책임지지 않았을 거예요.”소채은은 가방을 살짝 내려놓으면서 말했다.“우리 까망이, 나 보고 싶었지?”가방을 내려놓고, 소채은은 서둘러 마스티프 쪽으로 달려가 큰 머리를 문질렀다.그러자 마스티프가 윤구주의 곁을 향해 자리를 옮겼다.“구주 씨, 전에는 고마웠어요.”소채은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윤구주에게 말했다.“뭐라고요?”윤구주는 어리둥절했다.“이제 구주 씨라고 부를게요. 이름이 윤구주라고 하지 않았나요?”“...”‘화진의 군신이자 9주의 왕인 내가, 이 어린 계집애에게 구주 씨라고 불린단 말인가? ? ?’“구주 씨, 전에 저를 풀어주신 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저 대신 그 조씨 성을 가진 멍청한 놈을 호되게 혼내준 것도 말이에요!”소채은은 다시 한번 짧게 말했다.그러자 윤구주도 더 소채은이 자신을 어떻게 부르는지 개의치 않고 살짝 웃으며 말했다.“별일도 아닌데요, 뭐!”“하지만, 그 멍청한 조 씨 놈은 흠은 당하고는 못 사는 성격이라 반드시 나쁜 짓을 하려고 들 거예요. 저는 그 사람이 틀림없이 구주 씨한테 복수할까 봐 걱정돼요!"소채은은 갑자기 또 걱정스럽게 중얼거렸다.“구주 씨, 아니면 제가 돈을 좀 줄 테니 도망가는 건 어때요?”‘뭐?’“도망을 가요?”윤구주는 처음으로 누군가 자신에게 이 두 단어를 말하는 것을 들었다.“네! 그 조씨 성을 가진 악당은 강성의 부잣집 2세예요! 구주 씨가 비록 그 사람을 때리기는 했지만, 그 사람은 결코 쉽게 구주 씨를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구주 씨가 빨리 도망쳐서 괴롭히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물론 소채은은
그러나 소채은은 윤구주의 입가의 띤 웃음기를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 말했다.“우리 강성에서 으뜸가는 갑부, DH 그룹 알죠? 게다가 그 주세호는 재산 20조 원의 부자잖아요!!!”“사실대로 말하자면, 나는 꿈에도 내가 DH 그룹의 회장님을 알게 될 줄은 몰랐어요.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사람들은 주 회장님께서 나를 알 뿐만 아니라, 또 내가 나중에 무슨 문제가 생기면 얼마든지 찾아오라고 하더라고요!”“구주 씨, 정말 이상하지 않습니까?”그러자 윤구주는 피식 웃었다.“그리 이상할 건 없는 것 같은데요!”“헐, 이상하지 않다고요? 기억상실증이라 강성 최고 갑부가 뭔지 모르는 거예요? 20조 원 재산의 부자가 뭔지도요?”말을 끝내고 소채은은 자신의 별장을 가리키며 말했다.“이 이층집 보이죠? 만약 주세호의 재산을 현금으로 환전한다 치면, 그건 이 이층집을 다 채우고도 남을 정도예요. 이제 이해하겠어요?”윤구주는 여전히 미소를 지으면서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됐어요, 됐어.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한테 내가 뭘 말해. 어차피 알아듣지도 못하는데!”소채은은 윤구주에게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그녀가 보기에 기억상실증에 걸린 이 '자동차 정비공'은, 어떻게 해도 조 단위 돈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아무튼, 난 오늘 정말 행복해요. 강성의 제일 갑부를 알게 되어서 말이에요! 만약 이 회장님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 자유롭게 구주 씨를 만나러 올 수 없었을 거예요!”그러더니 그녀는 갑자기 소파에 앉아 양손에 아름다운 턱을 짚고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구주 씨, 말해봐요, 이 DH 그룹의 주세호 회장님이 왜 나를 알고 싶어 하는 걸까요?”“혹시 내 용모가 너무 아름다워서?”한쪽에 서 있던 윤구주는 이 말을 듣고, 입 안에 머금고 있던 물을 뿜었다.그의 이런 모습을 보고 소채은은 예쁜 눈을 부릅뜨며 물었다.“왜 뿜어요? 왜, 설마 내가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몸매가 부족한가? 아니면 주세호 회장님께 어울리지 않
소채은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그때, 윤구주가 물었다.“그런데 문제는, DH그룹에서 누가 채은 씨를 좋아한다고 말하지는 않았잖아요?”그러자 소채은은 얼굴에 교활한 웃음을 띠었다.“아직 이해 못 했어요? 누가 나를 좋아하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지금 내가 DH그룹 눈에 들었다는 겁니다. 비록 그들이 왜 갑자기 나를 찾아왔는지 모르겠지만 말이죠. 하지만 그 이유는 우리 집 가족들도 마찬가지로 모르는 거예요!”“그 말은?”“헤헤.”소채은은 다시 못된 웃음을 지었다.“내 말은 아주 간단해요. 아무나 가짜 상대를 찾아서 그가 DH그룹 회장님의 아들이나 친척이라고 말하면 되지 않겠어요?”“뭐요? 가짜를 찾는다고요?”윤구주는 순식간에 어이가 없어졌다.“그래요!”“생각해봐요, 어차피 우리 소씨 가문 식구들도 지금 모두 어리둥절해 있어요. 아무도 DH그룹이 왜 나를 찾아왔는지 모른다고요, 제 그 음험하고 악랄한 큰아버지를 포함해서 말이죠. 만약 DH그룹의 아들이 나를 좋아한다고 말한다면, 그 사람들도 감히 믿지 않을 수 없을 거예요!”소채은을 총명한 수를 생각해냈다.그리고 그 말을 들은 윤구주는 쓴웃음을 지었다.‘이 여자가 정말, 중해그룹 조성훈한테서 벗어나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군. 뜻밖에도 가짜를 만들어낼 생각까지 하다니. 하지만 그 생각 확실히 좋아 보이긴 하네. 중해그룹은 주세호 씨의 DH그룹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같은 레벨이 아니니까!’“하지만, 문제가 있어요.”윤구주가 갑자기 물었다.“무슨 문제요?”“문제는 주 회장에게 아들이 없는 것 같아요!”이것만큼은 윤구주가 사실대로 말했다.“어? 그걸 어떻게 알아요?”소채은은 조금 의아해하며 윤구주를 바라보았다.그러자 윤구주는 턱을 문지르며 대답했다.“그냥 아무렇게 추측해본 거예요.”소채은은 더 깊이 추궁하지 않고, 달 모양의 눈썹을 찌푸렸다.잠시 후 그녀는 갑자기 눈동자를 또륵또륵 굴렸다.“아들이 없으면 아들을 만들 수 있잖아요!”“네? 아들을 만든다
‘뭐? 나더러 주세호 씨의 수양아들 행세를 하라고?’그 말에 윤구주는 하마터면 화가 폭발할 뻔했다.“그건 좀 아니지 않을까요...”“왜 아니에요? 이렇게 잘생기고, 키도 크고, 기품이 넘치니, 주 회장님 수양아들 역할에 구주 씨만큼 잘 어울리는 사람이 없는 것 같은데.”그러더니 소채은은 윤구주를 살짝 잡아당겼다.“구주 씨, 내가 이렇게 부탁할게요, 네? 내가 구주 씨를 바다에서 구해냈으니, 구주 씨도 나한테 보답해야 하지 않겠어요? 제발요!”그녀가 애걸복걸하는 것을 바라보며 윤구주는 속으로 어이가 없었다.‘이 9주의 왕더러 주세호 씨의 수양아들 행세를 하라고? 젠장! 설사 내가 그런 척하더라도 주세호 씨는 감히 아는 척 못 할 테지만...’그의 옆에서 소채은은 여전히 최선을 다해 윤구주에게 애원하고 있었다.“구주 씨, 제발 한 번만 도와주세요!”그녀의 이런 모습을 바라보며 윤구주는 쓴웃음을 지었다.“그래요! 한번 연기해 줄게요. 나를 살려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예요!”“정말이요?”“네! 이번 한 번만!”소채은은 윤구주가 승낙하는 것을 듣고, 감격에 겨워 곧 벌떡 일어났다.“정말 고마워요, 구주 씨! 구주 씨는 내 구원자예요!”말을 끝내고 그녀는 직접 윤구주를 와락 안았다.소채은의 몸매는 아주 볼륨감이 있었는데, 윤구주는 안기자마자 바로 그녀의 가슴에 이는 파문을 감지했다!‘크잖아!’그러나 소채은은 개의치 않았다.그녀는 즐거운 표정으로 윤구주를 안아본 뒤 손을 풀고 위아래로 윤구주를 훑어보았다.“쯧쯧, 역시 구주 씨 멋지네요! 그런데 이 옷뿐이에요? 얼른 근사한 새 옷 몇 벌로 갈아입어요!”“구주 씨, 기다려요, 내가 가방 가져올 테니까 조금 이따 우리 쇼핑센터로 가요, 이 누나가 구주 씨한테 맞는 멋진 옷을 골라줄 거니까요!”이렇게 말하며 소채은은 이내 가방을 들어 윤구주를 데리고 쇼핑하러 갈 준비를 했다. ...강성에서 가장 화려한 쇼핑센터 건물.두 명의 연예인 같은 미남, 미녀가 건물 안에서 걸어나왔다.아르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
진인들은 말했다. 임정설이 만약 집념을 내려놓는다면 육백 계단까지도 오를 수 있을 거라고.장인 대진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집념을 놓는다면 더 이상 화진의 국주가 아니지. 바로 이런 끈질긴 의지가 있기에 그분이 화진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다른 진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운명이란 그런 법이다. 아마도 집념을 놓았다면 임정설은 오백 계단조차 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이때 임정설은 아직 남아 있는 절반의 계단을 바라보며 씁쓸히 미소 지었다. “어쩌면 여기서 멈춰야겠구나.”임정설은 다시 뒤를 돌아 윤구주를 바라보았다. 그가 자기 자식이자 동료처럼 여기는 윤구주가 과연 몇 계단을 오를지 궁금했다.깊은 생각에 잠긴 임정설이 곧바로 말을 꺼냈다.“구주야 이제 네가 올라서 봐! 화진의 구주왕다운 실력을 보여줘! 적어도 나보다는 못하면 안 되지 않겠냐?”아래에 서 있던 윤구주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원래 그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국주의 바람이라면 흔쾌히 도전할 마음이었다.“명 받들겠습니다!” 윤구주는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계단을 밟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기 시작했다.구주왕이 등천로에 도전했다는 소식에 서요산 검종 전체가 술렁였다.검객은 물론이고 잡일을 돕는 제자들까지 모두 금정에 모여들어 그의 모습을 보고자 했다.심지어 하늘 위 어둑한 구름 사이에서도 한 쌍의 법안이 열렸다. 바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 환영이었다.임정설이 먼저 정상에 올랐고 장인 대진인을 포함한 일곱 진인과 서요산의 모든 제자들은 화진의 황자를 향해 몸을 숙여 예를 갖추었다.“모두 일어나시오. 그대들이 없었다면 화진은 이미 혼란 속에 빠졌을 것이오. 진정 국가와 화진을 위해 헌신한 것은 바로 그대들입니다.” 임정설은 화진의 모든 백성을 대표할 순 없지만 왕실을 대표하여 임 씨 일족의 지도자로서 서요산 검종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국주께서 과찬입니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묵묵히 힘썼을 뿐입니다. 화진의 백
일곱 진인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들은 국주가 이미 등황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사백 계단은 쉽게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과연 그들의 예상대로 임정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오르며 오백 계단을 가볍게 밟아 올랐다. “오백 계단을 밟으면 등황의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 일곱 진인 중에서도 오직 장인 대진인께서만 과거에 오백 계단에 오르셨고, 현재 서요산에 살아계신 유일한 오백 계단 수련자이십니다. ” 한 진인이 감탄하며 말했다.이 말을 듣자 옆에 있던 백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선임 도사님 그러면 그 도사님도 황자란 말씀입니까? ”“하하! 우리 서요산에서는 외부의 그런 칭호를 쓰지 않아요. 우리 사이에서는 그를 반신이라고 부릅니다.” 진인들이 웃으며 말했다.청해가 옆에서 덧붙였다. “서요산 검종에서 말하는 반선이 황자를 뜻하는 거야. 근데 그 서요산 반선 진짜 어마어마하게 강한 인물이거든. 예전에 곤륜 구역에서 귀한 영약 찾으러 들어왔다가 우리 빙신전 전주랑 빙황 두 명이 같이 상대했는데도 둘 다 거의 죽을 뻔했어. 결국 아사 신전한테까지 도움 요청해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지.”“뭐라고?”백호는 놀라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진짜 그렇게 강한지 의문이 들었다.일곱 진인 중 가장 나이 많은 그 진인은 백호의 단순한 반응에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그가 바로 그 반선이었다. 다만 백호가 워낙 세상 물정에 둔감하여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놀라기만 하고 있었다.그사이 임정설은 이미 오백오십 계단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이 단계에 이르자 임정설도 거의 극한에 도달했다.“역시 직접 올라와 봐야 이 압력을 제대로 실감하는구나! 오백사십 계단까진 무리 없었는데 오백오십 계단에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구나.”지금 임정설을 압박하는 것은 단순한 술도의 압력만이 아니었다.과거의 온갖 기억들이 마장이 되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일곱 진인은 모두 임정설의 기운이 혼란스러워진 것을 느꼈다.“장인 사형, 국주님께서 심마에 걸리셨군
청해의 눈길이 자주색 도포를 입은 진인에게로 향했다.서요산검종에서 종주를 제외한 나머지 일곱 명의 진인이 가장 높은 수련을 가지고 있으며 평소 종문 내의 모든 일은 이들 일곱 명이 책임지고 있다.기세는 마치 대강의 파도가 넘실대듯 깊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산과 숲처럼 무한히 이어져 있었다. 그의 수련은 깊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서요산 7대 진인의 수련이 극 신급 절정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그 말이 너무 가볍게 들리네요. 귀하의 수련은 적어도 극 신급 절정 후반에 다다랐군요.”청해는 세 명의 진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몸을 굽혔다.“서요산의 전통은 천 년을 자랑하며 그 깊이는 변함없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반면 곤륜 구역은 스스로 신을 자처한 이후로 계속해서 내분을 일으켰습니다. 수련을 통해 세상을 떠난 후 도를 깨닫는다는 말처럼 곤륜 구역은 천하의 영기와 천물을 흡수했지만 제 생각에는 도를 얻지 못한 곳입니다. 지금 당신이 화진에게 올바른 수를 두는 것은 맞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극 신급 절정 후반도 절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한 진인이 답례하며 말했다.그때 몇몇 사람들은 서요산 검객들의 함성에 이끌려 사방을 살폈다. 백호가 사백 계단을 올라갔다는 소식이었다.“대단한데요. 서요산이 전성기였을 때도 사백 계단을 오른 이는 드물었어요. 우리 몇몇 진인들도 입문 시에 사백 계단을 넘은 적은 없었죠.”몇몇 진인들이 칭찬했다.이는 백호가 미래에 매우 큰 가능성을 지녔음을 의미했고 적어도 극 진경 후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극 진경 후반은 곤륜 구역에서 신전의 전주가 될 수 있는 실력이다.지금 사백 계단에 오른 백호는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완전히 의지로 버티며 강력한 정신력으로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다.그러나 아무리 강한 운명을 지녔다 해도 천지의 이치를 막을 수는 없다.사백오십 계단에 도달했을 때 백호는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의식을 잃은 것은 시험이 끝났다는 신호였고 백호는 곧 깨어났다.“겨우 사백오십 계단이라니
서요산 검객들이 모두 그 무인의 정체를 궁금해하자 진인도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고 말했다.“저분은 구주왕 휘하의 화진 군신이자 국방부 대장 백호 장군이시다.”검객들은 모두 입이 벌어진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군신의 명성은 당연히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는 영웅이었으니까.“정말 구주왕 휘하의 군신이라니!”“역시 저런 굳센 의지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 수많은 전장을 누빈 명장다운 모습이다!” 서요산 검객들은 백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현재 백호는 이미 삼백이십 계단을 돌파한 상태였다. 백호가 혼자 주목을 독차지하는 걸 본 청해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처음 백 계단은 청해도 육신의 힘으로 버텼다. 하지만 백 계단을 넘자 육체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워졌다. 그는 술법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평소 쓰던 빙신전의 신술이 계단 위 술법에는 통하지 않았다.“역시 화진의 서요산 검종은 보통이 아니구나. 이 등천로에선 일반 술법이 먹히지 않으니 천지 영기에 대한 깨달음으로 맞설 수밖에 없겠어.” 청해는 몸을 감싸고 있던 현빙을 거두고 오로지 자신의 속성 영기로만 버티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막상 올라 보니 이 등천로가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실감했다. 이백 계단쯤 오르자 벌써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계단마다 한계를 시험하는 느낌이었다. 올려다보니 백호는 여전히 계단 위로 나아가고 있었다. 청해도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서요산 검객들도 청해의 수준을 알아보고 속삭였다. “저 이역인은 정말 대단한 내력의 소유자다! 기운이 이미 진인 급에 가까워! 극 신급 절정의 수련자임이 분명해!”이에 대해 진인은 신비롭게 꾸미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저자는 곤륜 구역 빙신전의 부 전주 청해다. 경지가 매우 높지. 지금 빙신전은 우리 화진에 귀속되었고 청해 역시 구주왕 휘하의 부하가 되었다. 얼마 전 서울 방어전에서 청현과 목숨까지 걸고 사투를 벌인 끝에 죽을 고비를 넘겼으
백호는 아직도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어느덧 이백오십 계단까지 올라왔다. 이 단계부터는 실체화된 술법이 몸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계단 하나를 오를 때마다 바람, 불 번개와 같은 속성의 영기가 점점 강해졌다. 여기서부터는 육신 횡련의 수련자는 강력한 체질로 버티고 술도 재능이 뛰어난 수련자는 천지 영기를 다루는 능력으로 버텨야 했다. 한마디로 각자의 능력에 따라 갈리는 구간이었다. 어느 한 분야라도 특출나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백호는 술도에는 재능이 없었기 때문에 오로지 강인한 육체 하나로 견디고 있었다.웅!성수의 피가 진동하며 백호의 몸을 지탱했다. 각종 속성의 영기가 몰아쳤지만 백호는 성수혈의 힘을 빌려 억지로 앞으로 나아갔다.수련자에게 있어서 성수의 혈맥이나 법보 등은 모두 신체 외적인 재능으로 간주하지만 그렇다고 이것들이 꼼수나 편법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천 가지 변화와 만 가지 신통력이 있어도 결국 만법은 한 가지로 귀결된다. 법기든 혈맥이든 이를 감당하는 것은 결국 본인의 몫이다. 천지 영기를 이용한 술법도 결국은 그 힘을 감당할 수 있어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며 감당하지 못하면 반드시 반작용을 맞게 된다. 따라서 수련의 길에는 애초에 편법이란 존재하지 않았다.성수 혈맥 같은 천지의 보물은 보통 사람이 함부로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윤구주의 도움을 받았다 하더라도 결국 이를 감당하는 건 백호 자신이었다. 성수 혈맥의 힘을 온전히 감당하며 백호는 결국 삼백 계단까지 올라섰다.계단의 꼭대기 근처에는 이미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이 여럿 서 있었다. 서요산 검종은 근대에 들어 삼백 계단을 넘는 인재가 드물었다. 최근 백 년 동안 삼백 계단을 넘은 사람이 고작 열 명 남짓이었고 그중 대부분이 삼백여 계단에서 멈췄다. 그런데 지금 백호는 삼백이십 계단까지 올라선 것이다. 이 정도면 서요산 검종 전체가 떠들썩해질 만한 성과였다.이런 제자가 나타난다면 종문 전체가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래서 서요산의 진인들까
“한 사람의 품성을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마구잡이로 그렇게 많은 수련자를 키워낸다면 결국 천하의 마인을 직접 만들어 내는 꼴이 아니겠어?”청현이 바로 그 실패한 예다. 서요산 검종 종주가 청현의 천재성을 아까워한 나머지 그의 인성을 무시하고 양성한 끝에 결국 역도를 만들어 낸 것이다.“그럼 저하 서요산에 입문한 무술 무인들은 평균적으로 몇 계단까지 오르는지 아십니까?” 백호가 호기심에 물었다. 윤구주는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무술 무인의 정확한 데이터는 모르지만 검종 종주와 잡담할 때 들어보니 검종 제자들의 수준이 갈수록 떨어져서 천 년 전만 해도 평균 삼백 계단 정도였는데 요즘엔 백 계단도 못 오른다고 하더구나. 가끔 삼백 계단을 오르는 자라도 나오면 검종 전체가 몇 년은 떠들썩할 정도라고 했어.”“구백구십구 계단까지 있는 시험인데 천 년 전 전성기에도 겨우 삼백 계단이요?” 백호는 입술을 삐죽이며 서요산 검종의 수준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때 한 번 도전해 볼 생각이야?” 윤구주는 흥미롭게 백호를 바라보았다. 백호는 당장이라도 도전하고 싶은 마음에 윤구주의 허락을 구한 뒤 바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 계단 두 계단... 오십 계단까지는 아무 어려움도 없었다. 백호는 오십 계단에 서서 사람들을 향해 서요산 검종이 별것 아니라며 놀려댔다. 하지만 육십 계단쯤 올랐을 때 처음으로 압력을 느꼈다. 마치 몸 위에 작은 차 한 대가 올라탄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백호에게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백 계단에 도달하자 압력이 갑자기 커졌다. 등에 작은 승용차 대신 소형 트럭이 올라탄 듯한 느낌이었지만 아직 백호의 한계에도 가지 못했다.“근래 사람들의 평균이 백 계단도 못 넘는 이유가 이제야 이해가 되네요. 예전의 무인 횡련은 황제도 오를 수 있었지만 요즘 무인 횡련은 죽어라 노력해도 소형 트럭 하나 못 버티는 수준이니 말입니다.”백호는 농담을 던지며 계속해서 계단을 올라
전에 임정설은 구오 지존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나라를 위해 힘쓰며 수모를 견뎌내고 살아남으려 했다.하지만 이제 황제가 된 그는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다.그 탓에 이번 관문 앞에서 그는 망설였다.살아 있는 자만이 통과할 수 있는 관문이었다.죽음을 마음에 품은 자는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관문이었다.그 자리에 있던 사람 중 청해만이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생각했다.‘황제가 되면 곤륜 구역에서 최고 경지에 도달하는 건데. 기뻐해도 모자랄 판에 왜 죽음을 택하려는 거지?’“저하, 국주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듯합니다. 저하도 사랑하던 이에게 배신당했어도 결국 극복해 나갔잖습니까.”백호도 이해하지 못했다.그는 여전히 국주보다는 왕이 더 낫다고 여겼다.“네가 뭘 안다고 그런 말을 함부로 내뱉느냐.” 윤구주가 단호하게 말했다.백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그는 어리숙하고 말솜씨도 없기에 생각나는 대로 말했을 뿐이다.“내가 문아름에게 배신당한 건 억울한 일이지만 나는 그녀에게 잘못한 게 없다. 오히려 그녀가 날 배신한 거다. 하지만 국주는 그 반대였지. 그가 그녀를 저버린 거야. 정이 깊으면 오래가지 못하고 지혜가 지나치면 오히려 상처를 입는다. 이 세상에서 가장 쓰라린 후회는 가진 뒤 잃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생사를 달리하게 되는 것이다.” 윤구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만약 소채은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자신도 제정신이 아닐 거라고 느꼈다.“그럼 복수하면 되지 않나요?” 백호가 어리둥절하게 물었다.이때 청해가 눈치를 채고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상대가 너무 강해서 못 이기는 거지. 황제에 오르기 전까진 제대로 맞붙을 힘도 안 돼. 오르고 나서도 이길 수 있을지 장담 못 하고.”윤구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딱 그 말이 맞았다.“그럼 우리가 국주님 대신 복수해 드리면 되잖아요? 국주님은 제 왕이기도 하지만 제 윗사람이기도 하잖아요.”백호가 고개를 갸웃했다.“하하! 만약 세상 사람들이 다 너처럼 솔직하다면 이런
인간이 나쁜 짓을 거듭해 양심을 잃으면 부끄러움도 사라진다. 예전 같으면 아무렇지 않았을 테지만, 지금은 윤구주를 따라 명예심이 생기면서 죄책감도 느끼게 된 청해에게 이 원한의 전법은 고통스럽기만 했다. 물론 곤륜역 한 신전의 부전주로서 정신이 붕괴할 정도는 아니었다.네 사람은 이 원한의 전법도 가볍게 넘어섰다.이때 전법에 관심을 가졌던 임정설이 무언가를 눈치챘다.“구주야, 서요산의 전법은 우연히 들어온 자를 쫓아내는 동시에 수련자의 의지를 시험하는 것이었어. 서요산은 의지력이 확고한 자들만 끌어들인다는 것을 미리 들어 알고 있다. 이게 바로 서요산이 제자를 선발하는 방식인가 보구나.”“그렇습니다. 매년 화진 무도계 사람들이 서요산에 찾아오지만 성공한 자는 극히 드뭅니다. 실패자들 중 십중팔구는 산기슭에서 죽음을 맞이하죠. 어떤 문턱은 넘지 않는 것이 복이 될 때가 있습니다. 모르는 것이 약이죠. 현실을 알고도 바꾸지 못하는 것이 가장 괴로운 법이니까요. 이 관문을 넘는다고 해도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면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입니다.”윤구주의 말이 끝나자 세 번째 전법이 나타났다.첫 번째와 두 번째 전법은 이곳에 들어온 이들을 돌려보내려고 만든 것이지만 세 번째 전법은 달랐다. 이 전법은 살기로 가득 찬 죽음의 전법이었다.평범한 사람들은 여기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이곳까지 온 자들도 앞길의 위험을 보고 함부로 들어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눈 앞에 펼쳐진 죽음의 길을 보고도 들어가는 자는 스스로 죽음을 원하는 자라서 그런 자들에게 죽음을 내리는 것은 오히려 덕을 쌓는 일이었다.하지만 무도로 도를 깨우치려는 수련자라면 이 관문을 넘기 위해 반드시 목숨을 걸어야 한다. 버텨내야만 수도의 길에 들 수 있고 실패하면 그 후과를 받아들여야 한다.전법 안은 살기로 가득했다. 생기와 영기가 세상을 이롭게 하지 못할지라도 살기와 죽음의 기운은 목숨을 앗아갈 것이 분명했다.진법 내부에는 수많은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무도계에 이름을 날렸던 강자들의 유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