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A급?”“네! 그 소식을 받고 부랴부랴 떠났는데 이 개자식들이 이렇게 빨리 저하한테 손을 쓸 줄은 몰랐습니다!”민규현은 주먹을 불끈 쥐었고 눈에는 살기가 맴돌았다.“허허, A급이든 B급이든 우리 화진을 건드리는 새끼들은 모조리 죽여버리지 뭐!”윤구주가 말하자 민규현은 고개를 끄덕이었다.“그럼요!”두 사람은 잠시 이야기를 나눈 후, 민규현은 부하들을 데리고 윤구주를 용인 빌리지로 모셨다. 그는 판인국 A급 강자를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당분간 윤구주의 곁에 있을 수 없었다. 윤구주가 용인 빌리지에 내리고 나서 민규현은 부하들을 데리고 서둘러 떠났다. 윤구주는 홀로 용인 빌리지에 들어섰다.마당 안.백경재와 두나희는 장난을 치면서 놀고 있었다. 두 사람은 윤구주가 돌아온 것을 보고 재빨리 달려와 인사를 나눴다. 하지만 윤구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갔다.오늘 암살 사건에 대해 윤구주는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았지만 앞으로 반드시 경계해야 할 일이 생겼다. 그건 바로 소채은의 안전이다!비록 윤구주는 갑작스러운 암살이나 위협 같은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지만 소채은은 평범한 여자이기에 그와 전혀 다른 상황이다. 게다가 그는 항상 소채은의 곁에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더 불안했다. 그래서 윤구주는 자기 여자인 소채은을 보호하고 지키는 일이 지금 일 순위가 되었다.하지만 어떻게 그녀를 보호할 수 있을까?“그래! 채은이를 위해 호신용 부적이나 법기 같은 것을 만들어야겠어!”“그것만 있다면 아무리 큰 위험이 닥쳐도 채은이는 무사할 거야!”불현듯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 윤구주는 그녀를 위해 보물을 만들어 주려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러려면 재료가 필요했다. 하지만 십 국 전쟁 이후 윤구주에게는 이것을 만들 수 있는 물건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지금 법기를 만드는 재료를 구하는 일이 무척 시급했다!윤구주가 백경재를 부르자 그는 히죽히죽 웃으면서 재빨리 달려왔다.“저하, 무슨 일이죠?”백경재가 물었다.“백 선생, 뭐 하나 물어볼게.
그리고 윤구주는 여유롭게 이것저것 둘러보며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가게에는 각양각색의 물건들이 다 있었다. 진품도 있고 가짜도 있고 품질도 달랐다.앞서 봤던 부록주사 중에 십중팔구는 모두 가짜였다. 그리고 도목검 역시 원자재로 쓰이는 나무 품종이 서로 달랐고 심지어 개안도 되지 않은 상태였다.한 바퀴를 돌았지만 윤구주는 마땅한 재료를 찾지 못하자 한숨을 내쉬었다.그런 윤구주의 답답함을 눈치챈 백경재는 곰곰이 머리를 굴리더니 입을 열었다.“저하, 북쪽에 오래된 법기 재료 가게가 있는데 안에 진품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아니면 우리 그쪽으로 가볼까요?”“그러지 뭐!”“그럼 저를 따라오세요.”백경재는 윤구주를 데리고 북쪽으로 걸어가면서 말했다.“이 가게는 오래된 역사가 있는 가게여서 강성에서 명성이 자자합니다. 가게 이름은 모란가예요. 강산도 수법자들 외에도 전국 팔도 지역에서 물건을 보러 온다고 합니다.”윤구주는 백경재의 말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는 오직 오늘 적합한 재료만을 찾기를 원한다. 한참 걷더니 오래된 한옥 한 채가 보였다.이 한옥은 지은 지 오래되어 보였지만 여전히 고풍스러웠다. 대문에 대전 서체로 쓰인 세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모란가!입구 앞에는 동으로 만들어진 오래된 나침판이 걸려있었다. 비록 녹이 슬었지만 윤구주는 한눈에 이 나침반이 풍수집재진임을 발견했다. 그는 한옥을 둘러본 뒤 물었다.“여기야?”“네.”“들어가 보자.”윤구주가 먼저 한옥에 들어서자 백경재가 그의 뒤를 재빨리 따랐다. 마당에 들어서자 두 사람은 생각지 못한 풍경에 흠칫 놀랐다. 고풍스러운 겉모습과 달리 내부의 인테리어는 매우 력셔리할 뿐만 아니라 디자인도 엄청 독특했다.“안녕하세요. 두 분은 법기 재료를 사러 오셨나요?”소복을 입은 스무 살쯤 되어 보이는 젊은 남자가 다가와 물었다.“네! 법기 용품을 사러 왔는데 한번 구경시켜 주세요.”백경재가 대답했다.“정말 죄송합니다만 오늘 귀빈을 접대해야 하므로 재료를 소개해 주기 힘들 것 같네요. 헛걸
“북방에서는 고위층분들이 귀빈으로 떠받들고 있는 분이죠!”그 말에 백경재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물었다.“이 법기 상점 사장님은 왜 풍수 대가를 부른 거죠?”“이런! 당신들 외지 사람이죠? 그것도 모르세요?”백경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그래요,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니 제가 알려드리죠. 이 꽃밭을 보셨어요?”그는 말하면서 옆에 있는 꽃밭을 가리켰다.정원 가득한 꽃밭에는 모란이 심겨 있었다. 다만 이상한 것은 그 모란들이 모두 시들었다는 것이다.시들어버린 모란을 보면서 백경재는 이상하게 생각했다.“이건 시들어버린 모란밭이 아닙니까?”“맞아요! 하지만 이 모란밭은 무려 100년 동안이나 시들지 않았어요.”“네?”“100년 동안 시들지 않았다고요? 지금 저 놀리세요?”백경재는 의아하기 그지없었다.“제가 왜 당신을 속이겠어요? 이 오래된 가게를 왜 모란가라고 하는지 아세요? 바로 이 100년 동안 시들지 않은 모란밭이 국내외에서 유명하기 때문이에요!”“하지만, 휴, 보름 전에 이 모란밭이 갑자기 모두 말라 버렸어요! 그래서 사장님이 속이 타서 풍수 대가 님을 모셔 와 상황을 살피도록 한 거예요.”여기까지 듣고서야 백경재는 마침내 모든 것을 깨달았다.‘어쩐지 이 가게를 모란가라고 부르더라니! 그래서 가게 사장이 풍수 대가를 모셔 온 거고! 일이 그렇게 됐단 말이지!’옆에 있던 윤구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이 모란밭이 100년 동안 시들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도 호기심이 생겨 모란밭을 힐끗 쳐다보았다.정원 가득한 모란이 모두 시들었다!윤구주가 모란밭 밑에 시선을 돌리자 바닥에서 이상한 에너지 변동이 전해오는 것을 느꼈다.“음?”에너지 파동을 감지한 그는 눈을 반짝이며 다시 한번 정신을 가다듬고 바라보았다.신념의 기운이 땅 밑으로 퍼지자 그는 마음속으로 매우 이상하고 화염보다 더 강렬한 열에너지의 기운을 느꼈다.모란밭 바닥의 열기를 느끼며 윤구주는 모란밭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고, 그는 순간 깨달았다.“바로 이거였어!”
“황 선생님 도와주세요!”“선생님께서 이 모란밭을 구해 주신다면, 저 안이준은 20억 원을 드릴 수 있고 우리 법기 상점의 모든 물건으로 교환할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안 사장은 감격해서 말했다.“별로 어려운 일 아닙니다! 이따가 제가 풍수지리를 배치하여 지하 음기를 유도하고 음양을 조화시키면 이 모란밭은 다시 만개할 수 있을 겁니다. 사계절이 봄날처럼 아주 활짝 필 수 있을 거예요!”황 대가는 자기 팔자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뭔 말같지도 않은 헛소리야!”안 사장과 다른 사람들이 모두 기뻐하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날카로운 눈매에 왕의 기운을 내뿜고 있는 범상치 않은 분위기의 윤구주가 서 있었다.낯선 사람이 나타나자 순간 모든 이의 주의를 끌었다.“네 놈, 넌 누구야? 왜 여기 와서 소란을 피워?”모란가의 사장은 성난 목소리로 윤구주를 향해 말했다.이번에 ‘황 대가’를 모시려고 안 사장은 아주 많은 인력과 재력을 들여 겨우 이곳으로 초대할 수 있게 되었다.그런데 지금 갑자기 누군가가 소란을 피우니, 어찌 그가 화를 내지 않을 수 있겠는가?“사장님, 이놈은 방금 우리 법기 상점에 물건을 사러 온 사람이에요!”한 머슴이 윤구주를 알아보고 외쳤다.“이런! 오늘은 관계자 외에 일체 출입할 수 없게 단속하라고 내가 진작 말했잖아? 당장 끌어내!”안 사장이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잠깐!”이때 도포를 입은 황 대가가 갑자기 안 사장을 제지했다.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윤구주를 보더니 물었다.“방금 이 젊은이가 나를 보고 헛소리를 한다고 했는데, 어떤 견해를 가졌는지 듣고 싶네요. 혹시 당신도 나랑 같은 업계를 종사하시오? 풍수비학을 배웠소?”그의 물음에 윤구주는 고개를 저었다.“풍수비학도 모르고 같은 업계를 종사하지도 않으면서 왜 근거도 없이 내 말이 헛소리라고 한 것이오?”황 대가가 계속 따져 물었다.“왜냐하면 그쪽 말은 원래 헛소리니까요!”
“네가 구룡점혈이 뭔지, 봉수점금이 뭔지 알아?”황성해는 말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화가 머리끝까지 난 맹호처럼 기세가 등등했다.하지만 윤구주는 움직이지 않고 덤덤하게 말했다.“당신이 말한 건 한 권도 읽지 않았지만 난 알고 있어. 당신이 틀렸다는 걸!”윤구주는 말을 마치고 모란밭을 가리켰다.“이곳은 당신이 말한 쇄양지도 아니고, 음양의 조화로 모란꽃을 피울 수 있는 곳도 아니야!”“만약 당신이 정말 그렇게 한다면 이 모란들은 더 빨리 죽게 될 거야!”“못 믿겠으면 어디 한 번 해보든가!”그의 말에 황성해는 철저히 분노했다.“이 녀석이! 네가 감히 나를 의심해? 내가 풍수를 보기 시작했을 때, 넌 이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어! 오늘 진정한 풍수비술이 무엇인지 내가 똑똑히 보여 주마!”황성해는 재빨리 오른손으로 시든 모란 한 송이를 따더니, 허공에 들고 입으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황 대가님께서 법술을 부리고 계셔. 저기 좀 봐봐!”주위 사람들은 화난 황성해가 마침내 법술을 부리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황성해가 무려 5분 동안이나 주문을 외우고 크게 한번 소리치더니 허공에 들고 있던 모란꽃을 가리켰다. 아니나 다를까, 보이지 않는 현기가 황성해의 지현으로부터 모란꽃으로 들어갔다.“모란꽃이 살아난 것 같아요!”한 머슴이 흥분해서 황성해 손에 있는 시든 모란을 바라보면서 소리쳤다.아니나 다를까 황성해의 법술에 따라 시든 모란이 서서히 살아나기 시작했다.까무잡잡하던 꽃잎이 서서히 새하얗게 변하고 있었다.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거의 죽어가던 모란꽃이 진짜 살아났다!“살았어!”“정말 살아났어!”“어머, 역시 황 대가님이셔!”이 장면에 현장의 사람들은 모두 흥분해서 소리를 질렀다.특히 모란가의 사장 안이준은 백여 년 동안 조상 대대로 이어온 모란밭을 결코 자기 손에서 망치고 싶지 않았다.모란꽃이 다시 만개한 것을 보고 그는 갑자기 흥분했다.“너 이 녀석, 아직도 할 말이 남았어?”안이준은 화가 나서 윤구주를
“이게 뭐야?”“모란꽃이 또 시들었어?”이 장면을 바라본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은 눈이 휘둥그레졌다.하지만 제일 화가 난 것은 모란가의 사장 안이준이었다.그는 눈이 벌겋게 달아올라 마치 철천지원수를 보는 듯 윤구주를 향해 으르렁거렸다.“이 나쁜 놈! 대체 뭔 짓을 한 거야? 내 모란꽃이 왜 다시 시들어버린 거야?”옆에서도 윤구주를 향한 비난과 욕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그들은 방금 윤구주가 모란꽃을 시들게 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무식한 놈들!”윤구주는 코웃음을 치며 더 이상 그들을 상대하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황성해를 쳐다보았다.“당신도 이들과 같은 생각이야?”황성해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방금 자신이 모란꽃을 피운 것이 확실히 속임수였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죽은 꽃을 회생시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나쁜 놈, 우리 조상님의 모란을 망가뜨린 것도 모자라 감히 황 선생님을 협박해? 여봐라, 이 나쁜 놈을 당장 쫓아내!”모란가의 사장이 고함을 지르자 주변에 몇 명의 머슴들이 와서 윤구주를 쫓아내려고 했다.이 무식한 인간들이 자신을 무시하는 것을 보고 윤구주는 한숨을 내쉬었다.“됐어! 나도 눈뜬장님 같은 당신들을 도와줄 마음이 없어! 다만 떠나기 전에, 나의 능력을 똑똑히 보여 주지!”말이 떨어지자 윤구주는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갔다.쾅!형언할 수 없는 하늘을 가르는 현기가 사방으로 밀물처럼 밀려들었고, 특히 이미 시들어 떨어진 모란꽃밭으로 가득 몰려들었다.이어서 윤구주가 크게 소리쳤다.“개화!”마치 사신이 명령을 내린 것과 흡사했다.순간, 시들었던 모란꽃밭 전체가 활짝 피었다. 수많은 귀한 모란꽃들이 저마다 아름다움을 다투며 이곳을 다시 꽃바다로 만들었다.“이건... 어떻게...”모란가의 사장을 필두로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이 놀라서 멍해졌다.하지만 가장 놀란 사람은 바로 황성해였다.그는 두 눈을 힘껏 비비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안돼... 이건... 불
윤구주가 말했다.“걱정하지 마. 그 모란꽃들은 오래 살지 못할 거야!”“그게 무슨 뜻이죠?”“그 모란꽃들은 잠시 살아 있을 수 있지만 얼마 못 가 곧 다시 시들어버릴 거야!”“왜요? 모란꽃들이 모두 살아나는 것을 제 눈으로 분명히 봤는데요?”백경재는 이해되지 않는 표정이었다.“그건 말이야! 모란꽃밭이 시들었던 원인은 땅속에 있기 때문이지!”“땅속에요?”“맞아!”윤구주의 눈빛은 빛나고 있었다.시든 꽃밭을 처음 보았을 때 윤구주는 땅 아래에서 뭔가 뜨거운 에너지를 발산하는 것을 느꼈다!바로 그 뜨거운 에너지 때문에 이 100년 불패의 모란꽃밭이 시들어 버린 것이다.하지만 구체적으로 그 물건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윤구주는 아직 판단할 수 없었다.윤구주가 백경재에게 설명하고 있을 때 뒤에서 함성이 들려왔다.“신님, 가지 마세요!”“신님, 가지 마십시오!”윤구주와 백경재가 고개를 돌리자, 모란가의 사장이 몇 명의 머슴들을 데리고 이쪽으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갑자기 들이닥친 그들을 보며 백경재는 눈살을 찌푸렸다.“또 이 사람들이야?”달려온 모란가의 사장은 숨을 헐떡이면서 윤구주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하며 서둘러 입을 열었다.“신님, 죄송합니다. 전에는 제가 눈이 멀어 오해했습니다. 진심으로 사과 말씀드리겠습니다.”모란가의 사장은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윤구주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안이준이 갑자기 무릎을 꿇고 사과하는 모습에 윤구주가 말했다.“왜, 이제야 자기 잘못을 안 거야?”“네네,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무식하여 잘못을 범했으니 부디 노여움을 풀어주세요!”모란가의 사장은 애원하듯 말했다.“신님, 제발 우리 가문의 조상 대대로 내려온 꽃밭을 구해 주십시오!”“도와달라고? 꿈 깨!”백경재가 다급히 나섰다.“방금 당신들이 멋대로 떠들어대면서 나랑 저하를 내쫓으려고 하지 않았어? 그러고도 이제 와서 뻔뻔스럽게 부탁하는 거야?”백경재의 말에 모란가의 사장은 면목이 없었다.“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전에는 제가 눈이
윤구주의 말을 듣자 모란가의 사장은 큰 충격을 받았다.가문 대대로 내려온 꽃밭에 관해서는 엄격히 비밀이었다. 윤구주의 말대로 안씨 가문에는 확실히 진법사가 한 명 있었다.그 꽃밭 땅속에도 확실히 ‘풍수집재진(재물을 모으는 진법)’이 있었다.풍수 대가 황성해도 눈치채지 못한 비밀이 윤구주의 눈에 띌 줄은 몰랐다.모란가의 사장은 다시 윤구주를 바라보며 완전히 승복한 표정이었다.“왜, 싫어?”윤구주는 모란가의 사장이 망설이는 걸 보고 물었다.“저는... 좋습니다!”모란가의 사장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신께서 우리 가문의 꽃밭을 계속 시들지 않는 불패 신화로 만들어 주신다면 땅속을 파헤쳐 그 물건을 꺼내 드릴 수 있습니다!”“좋아, 그럼 그렇게 하지.”윤구주는 활짝 웃었다.그 꽃밭에 어떤 보물이 숨겨져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그 보물이 절대적인 가치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그럼 저와 함께 돌아가시지요!”모란가의 사장이 예의 바르게 말했다.그리하여 윤구주는 백경재와 함께 다시 모란가로 돌아왔다.그들이 안뜰에 도착하자, 풍수 대가 황성해는 겁에 질린 얼굴로 윤구주를 향해 공손히 절을 올렸다.“소인이 선배님께 인사 올립니다! 전에는 소인이 눈이 어두워 선배님을 알아뵙지 못했으니 부디 마음에 담지 말아 주세요!”황성해는 진심으로 황송한 표정을 지었다.윤구주도 그를 난처하게 하지 않고 손사래를 쳤다.“괜찮네! 다음번에는 그런 속임수를 써서 망신당하지 말게나!”그 한마디에 황성해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하지만 윤구주와 같은 하늘을 거스르는 신 앞에서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서둘러 대답했다.“네, 선배님이 주신 교훈은 제가 똑똑히 기억하고 있겠습니다!”윤구주는 더 이상 황성해를 상대하지 않고 모란꽃 정원으로 걸어갔다.이 꽃밭은 윤구주의 일념으로 이미 모두 되살아났지만 부활은 잠시 적일 뿐이었다. 모란가 사장에게 상황을 설명하자 그는 화들짝 놀랐다.“그럼 이제 어떡해야 합니까?”윤구주는 그 꽃밭
“저하,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그를 죽여야 합니까? 저자의 기운이 이토록 흉악한데 성수의 혈기로 진압할 순 없습니까?” 백호는 이미 싸우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안 된다. 너희 네 명이 함께라면 잠시나마 억누를 수는 있겠지만, 너희는 그저 성수의 정혈을 가졌을 뿐이니 마인을 완전히 없애려면 성수가 직접 나타나야 한다. 지금 이 세상에 성수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스럽다.”윤구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말을 마친 윤구주는 곧장 진요탑 쪽으로 향했다.백호와 임정설, 청해가 함께 가서 돕고자 했으나 장인 대진인이 그들을 가로막았다.“이 마인은 오직 구주만이 상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국주님, 곧 전투가 시작될 터인데 서요산의 진법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 호법의 중임을 몇 분께 맡기겠습니다.”장인 대진인이 임정설에게 경건하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좋다. 오늘 이 자리에서 목숨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저 마인을 죽이고야 말겠다.” 임정설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황자의 위엄을 한껏 드높였다.화진의 존망이 걸린 일이라면 임정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하지만 마기가 몰려와 서요산 전체를 뒤덮고 세상이 오직 흑백 두 가지 색깔만으로 변해버리며 그 끔찍한 살기가 강림했을 때 임정설마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떨렸다.“이 마인의 기운이 이렇게까지 무서울 줄이야.” 임정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마기로 가득 찼고 윤구주마저 그 기세에 눌리고 있었다.진요탑에서 흘러나온 마기는 실체가 되어 넘쳐흘렀다. 마기가 나타나자 서요산을 지키는 모든 검종 제자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어떤 제자는 순간적으로 십여 년을 늙어버렸다.수련이 부족하면 수명으로라도 채워야 하는 참혹한 상황이었다.웅웅.하늘에는 먹구름이 밀집했고 그 안에서 요괴의 번개가 끊임없이 터졌다.“이젠 영기조차 요기로 변하고 있다. 풍수 비술로 보건대 머지않아 이곳에서 요마가 출현하겠구나.” 임정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요산 외부에서 짙은 요기
도가는 인연이라는 두 글자를 대단히 중히 여긴다.그의 한 번의 인연, 한 번의 생각은 곧 만백성의 생사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윤구주가 정상에 오르자 앞서 온 다른 이들과는 달리 서요산 검종의 모든 이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여 깊은 존경을 표했다. 그들이 경배한 대상은 단순한 한 인간이 아니라 구주의 저하, 화진의 인황, 오방 천지의 주재자였다.“모두 일어나십시오. 제가 오늘 서요산에 온 이유는 오직 진요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진요탑 안의 마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문 씨 세가의 역심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마인을 죽여야만 문 씨 세가의 야심도 함께 근절할 수 있습니다.”윤구주는 서요산 검종의 모든 제자를 향해 엄숙하게 말했다.이번 서요산 행차의 목적은 바로 문 씨 세가의 역심을 뿌리째 뽑는 것이었다.검종 제자들이 앞장서 일행을 이끌었고 모두가 금정을 지나 뒷산으로 향했다.뒷산에 막 들어서자마자 음산한 기운이 얼굴을 스쳤다.후산 중앙에는 높이 오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산이 서 있었는데 그 산은 무려 구백구십구 개의 쇠사슬로 단단히 봉인되어 있었다.이 쇠사슬은 그저 평범한 사슬이 아니었다. 절반은 땅속의 지맥과 연결되어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하늘 높이 떠올라 천지의 영기를 끌어모으고 있었다.이런 수준의 봉인이라면 설령 윤구주 자신이 여기에 갇혀 있다고 해도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이처럼 견고한 고진마저 지금은 마인의 사기로 조금씩 부식되어 가고 있었다. 본래는 영기가 흘러넘치는 명산이었으나 지금은 온 서요산이 마인의 기운에 물들어 음침하고 괴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이 강렬한 악기운을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모두 얼굴을 찌푸렸다.솟구치는 사기를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찌푸렸다.최근 몇 대에 걸쳐 입종한 서요산의 제자들은 이런 마인의 사기와 요마의 위협 속에서 수련해야 했다.천지의 영기조차 마인의 기운에 오염되어 수련에 큰 지장을 주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남은 현
이 말을 듣자 모든 이들은 천 년 전 마지막으로 나타난 그 성인이 바로 서요산 검종에서 나왔음을 깨달았다.“짐은 서요산 검종의 선대 종주께서 우화등선하셨다고만 들었는데 그저 떠도는 신화 속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더니 은 성인의 경지에 이르신 것이었군.” 임정설이 깊은 감탄과 함께 말했다.구백 계단 윤구주는 이미 전설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하지만 그 전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구백삼십 계단 사십 계단을 오르면서 윤구주의 발걸음은 오히려 더욱 가벼워졌고 그가 세우는 기록은 사람들의 상식을 계속해서 뒤흔들었다.구백팔십 계단을 지나 정상까지 겨우 십여 계단만 남은 그 순간 윤구주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구백구십구 계단에 이르러 결국 완전히 멈추었다.드디어 한계에 도달한 것인가?모두가 숨을 죽이고 윤구주를 지켜봤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분명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시험일 터였다.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십여 분을 견뎌냈다. 사람들은 그가 언제 다시 계단을 오를지 초조하게 기다렸다.마침내 윤구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됐습니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시험을 포기하지요.”말을 마치고 계단에서 내려서는 순간 청석 계단 아래에서 강력한 영기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쳤고 곧바로 서요산을 감싸던 어둠의 기운을 깨끗이 몰아냈다.오랫동안 음울했던 서요산 상공은 순식간에 환해졌고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맑은 하늘이 펼쳐졌다.서요산의 모든 이들은 충격에 빠져 넋을 잃었다.그제야 그들은 윤구주가 왜 그토록 여유롭게 올라올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서요산의 청석 계단이 가진 진법의 힘을 계속해서 억누르고 있었다.“참으로 대단하신 신위군요! 우리 서요산의 청석 진법마저 제압하셨다니! 마지막 한 걸음을 분명 넘으실 수 있었을 텐데 혹시 강제로 넘었다가 진법이 견디지 못해 영기가 새 나가고 진법이 무너져 진요탑까지 영향을 미칠지 걱정하신 건 아닌가요?” 장인 대진인이
도법의 깊이는 워낙 심오해서 임정설조차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다.“쉽게 말씀드리자면 구주는 천지의 운기를 완전히 장악한 데다가 하늘이 직접 영광을 내리신 거죠.” 장인 대진인이 말했다.임정설은 이 말을 듣고 비로소 이해한 듯 말했다.“대진인의 말은 윤구주가 바로 하늘이 점지한 사람이라는 뜻인가?”“맞습니다. 우리 화진 사람들은 운명의 갈림길에 서면 본심에 따라 도법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깁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사는 다하고 하늘의 뜻을 따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윤구주는 분명 큰 복을 타고났지만 그 엄청난 복을 감당할 힘도 필요합니다.”대진인이 설명했다.말이 끝날 무렵 윤구주는 이미 육백삼십 계단을 거뜬히 올라와 있었다.한 걸음도 멈추지 않고 더욱 확고한 걸음으로 계속 전진했다.그의 발걸음마다 천지의 기운이 응축되었다.어느 순간 서요산의 계단조차 윤구주의 기세를 가두지 못했다. 그는 마치 천지를 밟으며 오르는 듯했다.곧이어 그는 칠백 계단마저 돌파했다.칠백 계단이란 천 년 전 서요산의 전성기에도 극소수만이 도달할 수 있었던 경지였다. 지금 만약 윤구주가 구주왕이 아니라 일반 수련자였다면 이 기록만으로 서요산 전체가 들썩였을 것이다. 만일 윤구주가 서요산에 입문을 원했다면 서요산은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 그를 키웠을 것이며 서요산 검종의 다음 종주 자리는 당연히 그에게 돌아갔을 것이다.그러나 이미 칠백 계단에 이르렀음에도 윤구주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칠백오십 계단 팔백 계단 팔백오십 계단!그는 끊임없이 정상의 기록을 깨며 전설을 써 내려갔다.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윤구주 앞에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을 것 같았다. 이쯤 되자 장인 대진인조차 감히 그를 함부로 평가할 수 없었다.왜냐하면 자신도 과거에 겨우 칠백 계단에 그쳤으니 팔백 계단을 오른 사람을 감히 평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윤구주는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마치 천지를 흔들어 이 강산을 뒤엎어버리겠다는 기세였다.그리고 마침내 구백 계단에 이르렀다.“구백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
진인들은 말했다. 임정설이 만약 집념을 내려놓는다면 육백 계단까지도 오를 수 있을 거라고.장인 대진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집념을 놓는다면 더 이상 화진의 국주가 아니지. 바로 이런 끈질긴 의지가 있기에 그분이 화진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다른 진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운명이란 그런 법이다. 아마도 집념을 놓았다면 임정설은 오백 계단조차 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이때 임정설은 아직 남아 있는 절반의 계단을 바라보며 씁쓸히 미소 지었다. “어쩌면 여기서 멈춰야겠구나.”임정설은 다시 뒤를 돌아 윤구주를 바라보았다. 그가 자기 자식이자 동료처럼 여기는 윤구주가 과연 몇 계단을 오를지 궁금했다.깊은 생각에 잠긴 임정설이 곧바로 말을 꺼냈다.“구주야 이제 네가 올라서 봐! 화진의 구주왕다운 실력을 보여줘! 적어도 나보다는 못하면 안 되지 않겠냐?”아래에 서 있던 윤구주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원래 그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국주의 바람이라면 흔쾌히 도전할 마음이었다.“명 받들겠습니다!” 윤구주는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계단을 밟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기 시작했다.구주왕이 등천로에 도전했다는 소식에 서요산 검종 전체가 술렁였다.검객은 물론이고 잡일을 돕는 제자들까지 모두 금정에 모여들어 그의 모습을 보고자 했다.심지어 하늘 위 어둑한 구름 사이에서도 한 쌍의 법안이 열렸다. 바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 환영이었다.임정설이 먼저 정상에 올랐고 장인 대진인을 포함한 일곱 진인과 서요산의 모든 제자들은 화진의 황자를 향해 몸을 숙여 예를 갖추었다.“모두 일어나시오. 그대들이 없었다면 화진은 이미 혼란 속에 빠졌을 것이오. 진정 국가와 화진을 위해 헌신한 것은 바로 그대들입니다.” 임정설은 화진의 모든 백성을 대표할 순 없지만 왕실을 대표하여 임 씨 일족의 지도자로서 서요산 검종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국주께서 과찬입니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묵묵히 힘썼을 뿐입니다. 화진의 백
일곱 진인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들은 국주가 이미 등황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사백 계단은 쉽게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과연 그들의 예상대로 임정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오르며 오백 계단을 가볍게 밟아 올랐다. “오백 계단을 밟으면 등황의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 일곱 진인 중에서도 오직 장인 대진인께서만 과거에 오백 계단에 오르셨고, 현재 서요산에 살아계신 유일한 오백 계단 수련자이십니다. ” 한 진인이 감탄하며 말했다.이 말을 듣자 옆에 있던 백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선임 도사님 그러면 그 도사님도 황자란 말씀입니까? ”“하하! 우리 서요산에서는 외부의 그런 칭호를 쓰지 않아요. 우리 사이에서는 그를 반신이라고 부릅니다.” 진인들이 웃으며 말했다.청해가 옆에서 덧붙였다. “서요산 검종에서 말하는 반선이 황자를 뜻하는 거야. 근데 그 서요산 반선 진짜 어마어마하게 강한 인물이거든. 예전에 곤륜 구역에서 귀한 영약 찾으러 들어왔다가 우리 빙신전 전주랑 빙황 두 명이 같이 상대했는데도 둘 다 거의 죽을 뻔했어. 결국 아사 신전한테까지 도움 요청해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지.”“뭐라고?”백호는 놀라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진짜 그렇게 강한지 의문이 들었다.일곱 진인 중 가장 나이 많은 그 진인은 백호의 단순한 반응에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그가 바로 그 반선이었다. 다만 백호가 워낙 세상 물정에 둔감하여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놀라기만 하고 있었다.그사이 임정설은 이미 오백오십 계단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이 단계에 이르자 임정설도 거의 극한에 도달했다.“역시 직접 올라와 봐야 이 압력을 제대로 실감하는구나! 오백사십 계단까진 무리 없었는데 오백오십 계단에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구나.”지금 임정설을 압박하는 것은 단순한 술도의 압력만이 아니었다.과거의 온갖 기억들이 마장이 되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일곱 진인은 모두 임정설의 기운이 혼란스러워진 것을 느꼈다.“장인 사형, 국주님께서 심마에 걸리셨군
청해의 눈길이 자주색 도포를 입은 진인에게로 향했다.서요산검종에서 종주를 제외한 나머지 일곱 명의 진인이 가장 높은 수련을 가지고 있으며 평소 종문 내의 모든 일은 이들 일곱 명이 책임지고 있다.기세는 마치 대강의 파도가 넘실대듯 깊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산과 숲처럼 무한히 이어져 있었다. 그의 수련은 깊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서요산 7대 진인의 수련이 극 신급 절정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그 말이 너무 가볍게 들리네요. 귀하의 수련은 적어도 극 신급 절정 후반에 다다랐군요.”청해는 세 명의 진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몸을 굽혔다.“서요산의 전통은 천 년을 자랑하며 그 깊이는 변함없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반면 곤륜 구역은 스스로 신을 자처한 이후로 계속해서 내분을 일으켰습니다. 수련을 통해 세상을 떠난 후 도를 깨닫는다는 말처럼 곤륜 구역은 천하의 영기와 천물을 흡수했지만 제 생각에는 도를 얻지 못한 곳입니다. 지금 당신이 화진에게 올바른 수를 두는 것은 맞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극 신급 절정 후반도 절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한 진인이 답례하며 말했다.그때 몇몇 사람들은 서요산 검객들의 함성에 이끌려 사방을 살폈다. 백호가 사백 계단을 올라갔다는 소식이었다.“대단한데요. 서요산이 전성기였을 때도 사백 계단을 오른 이는 드물었어요. 우리 몇몇 진인들도 입문 시에 사백 계단을 넘은 적은 없었죠.”몇몇 진인들이 칭찬했다.이는 백호가 미래에 매우 큰 가능성을 지녔음을 의미했고 적어도 극 진경 후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극 진경 후반은 곤륜 구역에서 신전의 전주가 될 수 있는 실력이다.지금 사백 계단에 오른 백호는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완전히 의지로 버티며 강력한 정신력으로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다.그러나 아무리 강한 운명을 지녔다 해도 천지의 이치를 막을 수는 없다.사백오십 계단에 도달했을 때 백호는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의식을 잃은 것은 시험이 끝났다는 신호였고 백호는 곧 깨어났다.“겨우 사백오십 계단이라니
서요산 검객들이 모두 그 무인의 정체를 궁금해하자 진인도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고 말했다.“저분은 구주왕 휘하의 화진 군신이자 국방부 대장 백호 장군이시다.”검객들은 모두 입이 벌어진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군신의 명성은 당연히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는 영웅이었으니까.“정말 구주왕 휘하의 군신이라니!”“역시 저런 굳센 의지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 수많은 전장을 누빈 명장다운 모습이다!” 서요산 검객들은 백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현재 백호는 이미 삼백이십 계단을 돌파한 상태였다. 백호가 혼자 주목을 독차지하는 걸 본 청해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처음 백 계단은 청해도 육신의 힘으로 버텼다. 하지만 백 계단을 넘자 육체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워졌다. 그는 술법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평소 쓰던 빙신전의 신술이 계단 위 술법에는 통하지 않았다.“역시 화진의 서요산 검종은 보통이 아니구나. 이 등천로에선 일반 술법이 먹히지 않으니 천지 영기에 대한 깨달음으로 맞설 수밖에 없겠어.” 청해는 몸을 감싸고 있던 현빙을 거두고 오로지 자신의 속성 영기로만 버티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막상 올라 보니 이 등천로가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실감했다. 이백 계단쯤 오르자 벌써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계단마다 한계를 시험하는 느낌이었다. 올려다보니 백호는 여전히 계단 위로 나아가고 있었다. 청해도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서요산 검객들도 청해의 수준을 알아보고 속삭였다. “저 이역인은 정말 대단한 내력의 소유자다! 기운이 이미 진인 급에 가까워! 극 신급 절정의 수련자임이 분명해!”이에 대해 진인은 신비롭게 꾸미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저자는 곤륜 구역 빙신전의 부 전주 청해다. 경지가 매우 높지. 지금 빙신전은 우리 화진에 귀속되었고 청해 역시 구주왕 휘하의 부하가 되었다. 얼마 전 서울 방어전에서 청현과 목숨까지 걸고 사투를 벌인 끝에 죽을 고비를 넘겼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