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런 사람은 우리 두씨 일가에 언젠가 쓸모가 있을 테니까 뭘 원하든 다 하게 내버려둬.”두현무의 말에 자서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듣기 거북한 소리가 계속해서 그들의 전용기 안에 울려 퍼졌고 약 10분 뒤 잠잠해졌다.“거기, 술 좀 가져와 봐.”객실 뒤편에서 갑자기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십이지 살수 자서와 해저는 남자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 표정이 싸늘하게 식었지만 순순히 술을 가지러 가려 했다.“내가 할게.”두현무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둘째 도련님, 일개 국방부 일원일 뿐인데 어떻게 둘째 도련님께서 저자를 위해 술을 가져오신단 말입니까?”자서는 내키지 않아 했다.“괜찮아. 그래도 우리 손님이잖아.”두현무는 그렇게 말하면서 옆에 있던 고급 양주를 들고 객실 뒤편으로 향했다.자서는 마뜩지 않은 표정이었다.객실 뒤편에는 침실이 하나 있었는데 지금 침실은 아주 엉망진창이었다. 바닥에는 여자의 속옷과 스타킹 등 그렇고 그런 것들이 널려 있었다.그리고 침대 위에는 나체의 못생긴 남자가 누워있었고 그의 품 안에는 두 명의 아름다운 스튜어디스가 안겨 있었다.“임 부장님, 임 부장님이 원하신 술 가져왔습니다.”이때 두씨 일가의 둘째 도련님 두현무가 술을 들고 왔다.“이야, 둘째 도련님 아닙니까? 둘째 도련님이 저에게 술을 가져다주다뇨?”임진형은 두현무가 직접 술을 들고 오자 서둘러 일어났다.“별말씀을요, 임 부장님. 임 부장님을 위해 술을 가져오는 건 제가 응당 해야 할 일이죠!”두현무가 웃어 보였다.“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둘째 도련님 같은 분이 저에게 술을 가져다주시다니, 황공한 일이죠.”임진형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한 손으로 술병을 건네받았고 두현무도 개의치 않아 하며 말했다.“임 부장님, 저희 두씨 집안의 두 여자가 시중을 잘 들었나요?”“좋아요, 좋습니다!”임진형이 음흉하게 웃었다.“임 부장님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이네요! 저희 두씨 집안에는 이런 여자들이 많습니다.”“하하! 감사합니다, 둘째
두현무는 그 말을 듣고 싱긋 웃었다.그는 화진 암부의 일에 관여할 권력이 없었다.암부는 과거 화진 국방부의 날카로운 칼이었고, 화진의 전 구주 군신의 친위군이었기 때문이다.그들은 윤구주의 인솔하에 10국을 물리쳤고 과거 10국 첩보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었다.당시 구주왕이 존재할 때 암부는 국방부 제일이라고 불리며 일단 실행한 뒤에 보고를 올릴 수 있는 엄청난 권력을 손에 쥐고 있었다.그러나 구주왕이 몰락하고 새로운 왕이 탄생하면서 지금의 암부는 사사건건 국방부와 맞섰다.심지어 저번에 국방부 회의에서 한 상장이 암부를 해산하자고 제기한 적도 있었지만 암부가 세운 공이 워낙 많기 때문에 당시에는 반대 의견이 많았다.그러나 국방부에서는 현재 암부가 지속적으로 압박받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둘째 도련님은요? 이번에 이 작은 강성에 온 것은 공무 때문인가요? 아니면 사적인 일 때문인가요?”임진형은 술을 마시면서 두현무에게 물었다.“사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죠. 제 여동생이 장난꾸러기인데 몰래 이 강성에 왔다고 해서 데리러 왔습니다.”두현무가 말했다.“아아, 그렇군요. 바쁘지 않으시다면 저랑 같이 강성에서 며칠 쉬겠습니까? 여기 풍경도 좋고 환경도 좋고 예쁜 여자도 많다고 들었거든요!”임진형이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다.“좋습니다. 그러면 임 부장님과 함께하죠!”“약속하신 겁니다!”그렇게 두현무와 국방부 후방지원부대 부부장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비행기는 강성시 상공에 도착했다.도시 외곽의 거대한 개인 비행장.이미 십여 대의 검은색 승용차가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그들은 전부 두씨 일가 사람들이었다.전용기가 착륙하고 두씨 일가 사람들은 마침내 강성에 도착했다.쿵!전용기 문이 열리고 두현무를 선두로 사람들이 비행기에서 내려왔다.“환영합니다, 둘째 도련님!”아래에는 20여 명의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두현무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비록 두씨 일가는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아주 드물었지만 화진 4대 고대 무술 가문 중 하나
두나희는 턱을 괴고 동그란 눈을 깜빡이면서 먼 곳을 바라보았다.그렇게 어느새 하루가 지났다.다음날, 용인 빌리지 산기슭에 차 두 대가 멈춰 섰다.차 안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나희가 여기에서 신호를 보낸 거야?”입을 연 사람은 암흑 가문, 두씨 일가의 둘째 두현무였다.“그렇습니다, 둘째 도련님!”십이지 살수 중 첫째 자서가 대답했다.두현무는 고개를 들고 용인 빌리지를 힐끗 보고는 쿵 소리와 함께 차 문이 열고 차에서 내렸다.자서와 뚱뚱한 해저, 그리고 두씨 일가의 호위들도 따라서 차에서 내렸다.“가서 나희를 데려와.”두현무가 덤덤히 말했다.“둘째 도련님, 저 술에 취한 사람은 어떡합니까?”자서는 뒤에 있는 차량을 가리켰다. 그 안에는 어제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술을 마신 국방부 후방지원부대 임진형이 있었다.“계속 자게 놔둬.”두현무가 말했다.“네!”곧이어 두현무는 옆에 있던 두 명의 고수를 데리고 두나희를 데리러 가기 위해 산을 올랐다.그들이 산길에 오르자마자 운산대진이 발동되었다.주변의 안개가 괴이하게 움직이며 변하는 순간, 초록색 빛이 감도는 눈동자를 한 자서의 안색이 살짝 달라졌다.“둘째 도련님, 조심하세요! 이곳에 진법이 있습니다!”두현무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눈을 살짝 가늘게 뜨며 눈앞의 끊임없이 변화하는 운산대진을 살펴보았다.“재밌네! 두나희는 대체 어떤 곳에 온 거야? 이곳에 이 정도 고수가 있다고? 자서, 이 진법을 파괴해!”“네!”십이지 살수 중 첫째인 자서는 두현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두 손으로 미간을 톡 쳤고 그 순간 혈기 한 줄기가 그의 미간에서 흘러나왔다.“건곤감리! 혈법참경!”자서가 두 손으로 인을 맺자 손가락 끝에서 나온 혈기가 순식간에 피로 범벅된 거대한 얼굴로 되었다.그 얼굴이 나타나자 자서는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고, 피범벅인 얼굴이 괴이한 안개를 향해 맹렬하게 돌격했다.소음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사방에서 몰려든 안개는 피범벅인 얼굴의 충격을 받아 귀청을 찢는
세 명의 고수가 동시에 손을 써서야 무시무시한 운산대진을 겨우 막을 수 있었다.이때 한 남자의 목소리가 하늘에서 들려왔다.“어떤 놈들이 감히 내 구역을 침범하려는 거지? 죽고 싶은 건가?”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큰 산과 같은 엄청난 위압감이 두현무와 십이지 살수인 자서와 해저를 압박했다.같은 시각, 쿵 하는 굉음과 함께 훤칠한 남자가 하늘에서 내려와 세 사람의 앞에 나타났다.윤구주였다.윤구주가 나타나자 왕의 기운이 소용돌이처럼 두현무와 다른 두 사람을 휩쓸었다.이러한 압박감에 세 사람은 머리털이 쭈뼛 솟았다.특히 두현무는 화진 4대 고대 무술 두씨 일가 세 명의 걸출한 인재 중 한 명이었다.그는 비록 셋 중에서 실력이 가장 뛰어난 것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 역시도 윤구주를 본 순간 저도 모르게 두려움이 생겼다.그리고 이런 두려움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그는 눈앞의 사람이 인간이 아니라 신처럼 느껴졌다.“당... 당신은 누구죠?”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두씨 일가 십이지 살수 중 첫째인 자서였다.5품 대가 경지에 다다른 자서도 윤구주의 출현에 문득 두려움이 들었다.그는 경계심을 바짝 세우면서 눈에서 초록빛을 번뜩이며 눈앞의 윤구주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그러나 윤구주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제멋대로 내 구역을 침범해 놓고서 지금 나에게 누구냐고 묻는 건가?”“형님, 저 자식과 쓸데없이 얘기 나누지 말고 일단 죽이자고요!”옆에 있던 뚱뚱한 해저가 포효하면서 윤구주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자서는 비록 그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지만 그의 눈동자에서 보이는 초록빛이 더욱더 강해졌다.윤구주는 뚱뚱한 남자가 주먹을 뻗자 차갑게 코웃음쳤다. 그의 발밑에서는 바람이 인 것처럼 들끓는 기세의 현기가 넘실댔고 주변의 모래와 자갈들이 저절로 날아올랐다.“돼지 같은 놈이 감히 내 앞에서 건방을 떨어?”윤구주가 손을 휘두르자 그의 주변에 있던 강인한 기운이 하나의 기파가 되어 십이지
그가 유명해진 이래 이렇게 건방진 사람은 처음이었다.두현무가 말했다.“그건 좀 지나치지 않습니까? 제 부하들이 이렇게 다쳤는데 말입니다!”“지나치다고? 오늘 내 실력이 이 정도가 아니었다면 당신 부하들이 날 살려줬을까?”윤구주가 차갑게 물었다.윤구주의 말이 맞았다. 조금 전 윤구주가 밀렸다면 그는 시체가 되었을 것이다.두씨 가문의 십이지 살수들은 사람을 죽일 때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자들이었으니 말이다.“큼큼...”이런 상황에 두현무도 퍽 난감했다.그는 강성에 도착하자마자 이렇게 막강한 실력자를 마주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말이 좀 심하신 것 같군요. 제 부하가 실례를 저지른 건 사실이니 다시 한번 정중히 사과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관용을 베풀어주신다면 제가 제 가문을 대표하여 오늘의 은혜를 잊지 않고 꼭 갚도록 하겠습니다. 어떻습니까?”두현무가 계속해 말했다.“가문? 설마 두씨 가문의 이름을 빌려 날 압박할 생각인 건가?”윤구주가 화를 내며 말했다.‘뭐지?’“제... 제가 두씨 가문 사람이란 건 어떻게 아신 겁니까?”그 말에 두현무의 표정이 달라졌다.조금 전에는 윤구주의 실력에 놀랐고, 지금은 단번에 자신의 정체를 알아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두현무는 문득 겁이 났다.두씨 가문은 외부로 나가는 일이 극히 드물었다.그리고 그가 이번에 강성에 온 걸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그런데 눈앞의 윤구주는 단번에 그가 누군지 눈치챘다.“흥! 화진에서 나생문의 어두운 기운을 쓰는 자들은 암흑의 일맥인 두씨 가문밖에 없지.”윤구주가 사납게 말했다.그의 말에 두현무는 다시금 몸을 부르르 떨었다.두현무는 윤구주의 운산대진을 상대할 때 어쩔 수 없이 두씨 일가에서 가장 강력하고 은밀한 공법인 나생문을 썼다.그런데 윤구주가 그걸 단번에 알아볼 줄이야!“다, 당신은 대체 누구죠? 어떻게 우리 두씨 가문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공법을 알고 있는 거죠?”두현무는 큰 충격에 빠졌다.윤구주가 말했다.“내가 누군지 알고 싶어? 안
“무릎 꿇고 사과까지 해야 용서해 줄 거다.”윤구주가 다시 한번 차갑게 말했다.두현무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기에 자서와 해저에게 무릎 꿇고 사죄하라고 했다.두 사람은 비록 내키지 않았으나 이건 생사가 달린 문제였다. 목숨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했기에 결국 그들은 무릎 꿇고 윤구주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했다.모든 걸 마친 뒤 윤구주가 말했다.“이젠 꺼져도 돼!”말을 마친 뒤 윤구주는 몸을 돌렸다.“잠시만요!”윤구주는 걸음을 멈췄다.“왜? 불만이라도 있는 건가?”“아뇨, 아뇨. 오해하지 마세요. 제가 오늘 무턱대고 찾아온 건 제 여동생을 집으로 데려가기 위해섭니다. 두씨 일가를 봐서라도 제 여동생을 데려가게 해주세요!”두현무가 말했다.윤구주는 두현무의 정체를 알았을 때, 그들이 두나희 때문에 왔다는 걸 알았다.두현무의 말에 윤구주는 대꾸하지 않고 손을 휘저었다.윈워터힐스.윤구주가 손을 내젓는 순간, 자욱하던 안개가 사라졌고 곧이어 작은 어린아이가 두현무와 자서, 해저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어린아이는 다름 아닌 두나희였다.윈워터힐스 입구에서 두 손으로 턱을 괴고 있던 두나희는 안개가 사라진 순간, 산길 위에 서 있는 두현무 등 사람들을 보았다.“어? 둘째 오빠!”두나희는 들뜬 목소리로 부르면서 그에게 달려갔다.두현무도 여동생을 알아보고는 감격해서 말했다.“나희야!”두나희는 그에게로 달려가 품에 폭 안기더니 다정하게 말했다.“둘째 오빠! 드디어 날 데리러 왔네? 너무 보고 싶었어!”두현무는 두나희가 멀쩡한 것을 보자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어라? 저 두 사람은 왜 팔이 부러진 거야?”두나희는 고통스러운 얼굴의 자서와 해저를 바라보았다.특히 해저의 피투성이가 된 두 손과 부러진 팔을 봤을 때는 의아했다.“저희는...”자서는 솔직히 얘기하지 못하고 난감한 얼굴로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세상에! 설마 우리 오빠를 건드린 거야?”똑똑한 두나희는 단번에 어떤 상황인지 깨달았다.“쌤통이네. 참 눈치도 없어. 감히 우리
두나희는 그렇게 말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돌아가.”윤구주는 덤덤히 말했다.“나 집으로 돌아가면 보고 싶어 할 거야?”두나희는 눈이 빨개져서 울먹이며 말했다.“그럼.”윤구주가 대답했다.“정말?”두나희가 흥분해서 물었다.“진짜.”“헤헤, 역시 오빠가 최고야! 휴, 그래도 아쉽다. 오빠가 그 여우 언니랑 결혼한다니. 그렇지 않았으면 나도 오빠를 떠나지는 않았을 텐데.”두나희는 눈물 한 방울을 떨구더니 소매로 닦았다.“하지만 나도 이젠 내려놨어. 난 아직 어리니까! 나 앞으로 커서 오빠한테 시집 가도 되지? 어른들이 그러던데, 결혼하고 이혼할 수 있다고! 나 크면 오빠는 그 언니랑 이혼하고 나랑 결혼하는 거야. 난 그 여우 언니보다 더 예쁘고 아름다울 거니까 오빠도 틀림없이 날 좋아하게 될 거야!”“...”“됐다. 나 갈게! 오빠, 나 그리워해야 해! 참, 어르신한테 나 갔다고 얘기해줘!”두나희는 그렇게 말하면서 윤구주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윤구주도 두나희를 붙잡지는 않았다.두나희는 두씨 일가 사람이니 말이다.두나희가 윤구주를 향해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하고 있을 때, 산기슭에 주차된 차 안에서 누군가 비몽사몽 눈을 떴다.그는 국방부 후방지원부대 부부장 임진형이었다.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신 탓에 그는 아직도 머리가 어지러웠다.온몸에서 술 냄새를 풍기는 임진형은 깨어난 뒤 앞에 있는 두씨 일가의 부하에게 물을 달라고 했다.생수 한 병을 건네받은 그는 단숨에 반병을 마시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둘째 도련님은?”임진형은 다 마시고 나서 병을 내려놓으며 물었다.“둘째 도련님은 넷째 아가씨를 데리러 산에 갔습니다.”부하가 대답했다.“산?”임진형은 고개를 들어 용인 빌리지를 바라보더니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그는 먼저 기지개를 켠 뒤 걸음을 옮겨 빌리지 쪽으로 걸어갔다. 고개를 든 그는 산 중턱에 두현무, 자서와 해저 등이 있는 걸 보았다.그는 아무 생각 없이 위를 올려다보았는데 갑자기 그의 앞에 낯익은 왕의 모습
“귀신이야... 귀신...”겁에 질린 임진형은 산 아래로 도망쳤다.산 아래서 기다리고 있던 두씨 일가의 부하들은 임진형이 겁에 질린 얼굴로 미친 듯이 도망쳐 내려오자 서둘러 그에게 달려가서 물었다.“임 부장님, 왜 그러세요?”“귀신! 내가... 귀신을 봤어!”임진형은 벌벌 떨면서 달렸다.심지어 그는 차도 타지 않으려 하고 미친 사람처럼 도망쳤다.정신이 나간 것처럼 도망치는 임진형을 본 두씨 일가의 부하들은 의아했다.잠시 뒤, 두현무가 두나희와 중상을 입은 자서, 해저와 함께 산길을 따라 내려왔다.두나희는 산에서 내려오면서 이따금 미련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돌려 용인 빌리지를 바라보았다.“흑흑, 나 아주 오랫동안 오빠를 보지 못하겠지?”그런 생각이 들자 두나희는 너무 슬픈 나머지 눈물을 흘렸다.옆에 있던 두현무는 여동생과 윤구주 사이를 알지 못했다.그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이렇게 작은 강성에 저렇게 무시무시한 인물이 있다니.게다가 그는 두씨 일가에 전해져 내려오는 비밀 공법을 한눈에 알아봤다.“설마 4대 고대 무술 일가 사람인가?”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다.“나희야, 너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두현무가 갑자기 고개를 숙이며 눈물을 닦고 있는 두나희에게 말했다.“뭘 묻고 싶은데?”두나희는 작은 얼굴을 쳐들었다.“그 사람과 어떻게 알게 됐는지 궁금해. 그 사람 대체 정체가 뭐야?”두현무가 물었다.두나희는 뺨에 맺힌 눈물방울을 닦으면서 말했다.“우리 오빠 말하는 거야? 사실 난 오빠와 우연히 알게 됐어...”곧이어 두나희는 김 노파가 강성에 왔던 일들을 곧이곧대로 얘기했고, 윤구주가 김 노파를 죽인 일까지 전부 말했다.‘뭐라고?’“그 사람이 김 노파를 죽였다고?”두현무는 놀랐다.그리고 뒤에 있던 자서와 해주도 눈이 휘둥그레져서 두나희를 바라보았다.두나희는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하지만 전부 오빠 탓은 아니야. 김 노파가 굳이 오빠 심기를 건드려서 죽은 거거든! 그런데 김 노파를 위해
단 한 걸음,그 한 걸음만 넘기면, 그는 곧 성급 바로 직전 경지에 이른다.그리고 그 마지막 문턱을 박살내는 순간 반쯤 성인이 된 경지, 반성급이다!지금 이 자리, 그 반성급 경지에 선 자는 바로 인마라고 불리는 무명이었다.“과연... 화진의 인황, 구주왕이라 불릴 자격은 있군. 하지만 너도 알겠지. 지금 네 수준으론 몸을 직접 이 판에 던지지 않는 이상 나랑 맞붙을 자격조차 없어. 네가 그 잘난 원신출체를 어떻게 하겠다는지 구경이나 해보자고. ”무명이 입꼬리를 비틀며 코웃음쳤다.팔기귀일에 도달한 윤구주의 전투력은 이미 황의 지경을 뛰어넘었다.하지만 무명과의 경지 차이는 여전히 너무 컸다.실력은 분명 엄청났지만 격이 다르였다.지금 상태로도 보통의 황자의 경지까지 초월한 상태지만 무명을 상대하긴 아직 한참 부족했다.심지어 무명이랑 싸울 실력은커녕 참마검조차 손에 제대로 못 잡는 게 현실이었다.“팔기로 부족하다면... 제구기는 어때? 구기:적선!”부우우우웅!윤구주의 온몸을 하얀 선기가 감싸는 순간 방금 전까지만 해도 비웃고 있던 무명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뭐라고? 이건 네 따위가 쓸 수 있는 기술이 아니잖아! ”그 순간, 무명조차 숨을 삼켰다.이건 상식의 틀을 깨부수는 광경이었다.근대에 들어서면서 도에 대한 수련는 사실상 약해졌다.그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세상에 흐르는 천지영기가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봉신전쟁 당시, 상상을 초월하는 영기가 소모됐고 그 전쟁이 끝난 후 곤륜구역은 세상의 영기 90%를 신계에 봉인해버렸다.거기서 마음껏 영기를 탕진한 것도 모자라 바깥의 산수들까지 무분별하게 빨아들인 탓에세상의 영기는 걷잡을 수 없이 줄어들고 말았다.결국 세상은 고위 수련자가 태어나기 어려운 구조가 되었다.그래서 화진에선 500년에 한 번 황자가 나올까 말까 할 정도이고 황자의 경지에 도달하는 건 지독하게 어려운 일이었다.임정설이 황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처음부터 그가 강해서가 아니라 윤구주를 돕기 위해 왕
마기가 검종 제자들의 혼백에 침투하자 그 순간 제자들의 몸에서 시커먼 마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이를 목격한 장인 대진인은 망설임 없이 즉시 결단을 내렸다. 오염된 제자들을 그 자리에서 곧바로 정화해 버린 것이다.“모든 제자들아, 입문 첫날 내가 분명히 말했을 것이다. 서요산은 찬란한 성지 화진 정통의 계승지다. 정은 사악함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정은 사악함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말은 바로 서요산 제자들이 평생 가슴에 새기며 살아가는 도의였다.입문과 동시에 깨달음을 얻은 그들은 언젠가 반드시 도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저 화진 정통의 수호자가 되기 위해서였다.그 순간 진요탑 외곽에서는 7대 진인을 중심으로 전 종문 제자들이 목숨을 걸고 진요탑을 사수하고 있었다.하늘을 뒤덮을 듯한 마기의 기세는 점점 거세져 어느새 검종의 경내 전역을 삼켜버렸다.검종 제자들은 마기를 막아내면서도 동시에 진요탑의 결계를 유지해야 하는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정도를 지키는 일은 그만큼 고통스럽고 힘든 투쟁이었다.산 아래 상황도 마찬가지로 치열했다.온갖 요괴와 귀신들이 들이닥치는 가운데 임정설은 황운을 등에 업고 이씨 가문의 국운을 모두 모아 홀로 수백만 마기를 막아서고 있었다.백호는 마인으로 완전히 변신해 광란의 충격 속으로 몸을 던졌고, 스스로 마를 품은 채 적진을 난도질했다.청해는 천뢰신술을 펼쳐 수만 개의 천뢰를 무기로 변환시켜 온갖 사도와 악귀를 쓸어내기 시작했다.그 무렵 진요탑 내부에서 풍무극의 기세는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구주야, 내 한계에 도달했다. 이제 내 500년 수련의 혼을 너에게 바치겠다."”풍무극의 준비는 이미 완료되었다.그는 미리 준비해 둔 제천 법기를 꺼냈고 전법이 발동되는 순간 그의 육신은 산산조각 부서졌다.그의 정기와 천지 정기를 모두 품은 찬란한 진신 영혼은 한 자루의 참마검으로 변해 윤구주 앞에 떠올랐다.“풍 종주...” 윤구주는 입술을 깨물었다.슬프고 아쉬
윤구주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새로운 국운의 기운이 그의 발밑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그가 진요탑의 문에 도달했을 무렵 모든 국운이 윤구주에게 집중되었다.윤구주의 주변으로는 천인신광이 펼쳐져 있었다.이 순간만큼은 그가 천지의 주재자 화진의 영겁을 관통한 유일한 존재였다.윤구주는 홀로 진요탑 안으로 들어섰다.겉보기에 거대한 산 같았던 진요탑의 내부는 참혹한 말세의 풍경이었다. 땅은 끝없이 펼쳐진 용암으로 뒤덮여 있었고 하늘에서는 강줄기가 거꾸로 흘러내리고 있었다.불과 물이 충돌할 때마다 하늘과 땅을 뒤흔드는 격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거꾸로 흐르는 강물 위에 한 노인이 앉아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백발이 성성한 그 인물은 다름 아닌 서요산 검종의 종주였다.밖에서 보이던 강건한 중년의 모습은 단지 화신에 불과했으며, 본체는 수백 년 전부터 이 진요탑에서 마인을 봉인해 왔다.서요산 검종 종주는 극도로 지쳐 있었고 이제는 마지막 호흡으로 버티고 있었다.“드디어 왔구나.” 서요산 검종 종주는 허약한 전음으로 말을 건넸다.“오백 년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종주님.” 윤구주는 고개를 숙였다.풍무극은 현 서요산의 종주이자 당대 최고의 영웅, 화진 제일 검으로 불리던 남자였다.원래는 풍속을 다루는 수련자로 젊은 시절엔 검 하나로 화진을 호령한 사내로 알려졌다.그의 검은 아무도 궤적을 볼 수 없었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500년 전 마인이 봉인되고 서요산의 조사가 승천한 후, 풍무극은 서요산의 거자로서 종주의 자리를 이어받았다.그날 이후 진요탑에 몸을 묻고 마인과의 싸움을 500년간 지속해 왔다.풍을 다루던 그였지만 지속적인 봉인을 위해 익숙하지 않은 수속까지 수련하며 지금까지 버텨왔다.그가 마도에 빠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이미 기적이었다.“그래도 괜찮다. 다행히 이 시대에 또다시 인황이 나왔으니. 화진은 연달아 두 명의 인황을 배출했다. 임정설이 인황에 등극한 지금 쇠락하던 이씨 가문의 국운이 다시 살아났다. 그가 천지의
마인이 출현하면 곤륜 구역조차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서요산 검종의 진요탑은 이미 오백 년 동안 그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다.이는 곧 그 마인이 오백 년 동안 진요탑 안에 봉인되어 있었음을 의미했다.“우리가 가진 유일한 이점은 저 마인이 지난 오백 년간 수련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그 오백 년 동안 분명 무언가를 '깨달았을' 가능성도 있겠지요. 정도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사도가 존재하는 법입니다. 만약 그가 이곳을 벗어나 다시 한번 돌파에 성공하여 진정한 성인의 경지에 오른다면… 그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예전 우리 종문의 선대 종주께서 이 마인을 직접 봉인하셨습니다. 하지만 선대 종주께서는 진요탑만으로는 그를 완전히 봉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찍이 아셨지요. 그래서 마침내 구천으로 비상하셔서 바깥 세계에 존재한다는 신기를 찾기 위해 떠나신 것입니다.”장인 대진인이 비밀을 털어놓자 임정설은 왜 그 옛날 서요산 검종을 창립한 선조가 갑자기 사라졌는지 이해했다.“구천을 비상했다고? 전설 속 그 이야기 설마 전부 사실이었단 말인가? 이 세상 위에 더 위대한 세계가 있다는 건가?” 임정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을 이었다.“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들은 바로는 성인이란 육지에서 신선이 된 자를 이르는 말이고 준성은 그보다 한 단계 아래 반쯤 신선이 된 존재라 하더군요. 우리보다 더 풍부한 영기의 세계가 과연 존재하는지는 이 몸 역시 감히 짐작할 수 없습니다.” 장인 대진인은 고개를 저었다.그때였다.진요탑이 거칠게 흔들렸고 모든 호법 제자의 얼굴이 딱딱해졌다.수련이 부족한 제자 몇몇은 그 자리에서 마기의 침식으로 피를 토했다.“모든 제자에게 고한다. 나와 함께 현문을 수호하라.” 장인 대진인이 친히 자리에 앉아 온 종문의 기운을 모아 마인을 억제하기 시작했다.마인은 일시적으로 제압되었지만 산 밖의 요괴들과 악귀들은 마기의 부름을 받아 사방팔방에서 서요산으로 몰려들고 있었다.임정설은 이제 자신이 이곳에 온 진짜 이
“저하,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그를 죽여야 합니까? 저자의 기운이 이토록 흉악한데 성수의 혈기로 진압할 순 없습니까?” 백호는 이미 싸우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안 된다. 너희 네 명이 함께라면 잠시나마 억누를 수는 있겠지만, 너희는 그저 성수의 정혈을 가졌을 뿐이니 마인을 완전히 없애려면 성수가 직접 나타나야 한다. 지금 이 세상에 성수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스럽다.”윤구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말을 마친 윤구주는 곧장 진요탑 쪽으로 향했다.백호와 임정설, 청해가 함께 가서 돕고자 했으나 장인 대진인이 그들을 가로막았다.“이 마인은 오직 구주만이 상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국주님, 곧 전투가 시작될 터인데 서요산의 진법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 호법의 중임을 몇 분께 맡기겠습니다.”장인 대진인이 임정설에게 경건하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좋다. 오늘 이 자리에서 목숨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저 마인을 죽이고야 말겠다.” 임정설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황자의 위엄을 한껏 드높였다.화진의 존망이 걸린 일이라면 임정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하지만 마기가 몰려와 서요산 전체를 뒤덮고 세상이 오직 흑백 두 가지 색깔만으로 변해버리며 그 끔찍한 살기가 강림했을 때 임정설마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떨렸다.“이 마인의 기운이 이렇게까지 무서울 줄이야.” 임정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마기로 가득 찼고 윤구주마저 그 기세에 눌리고 있었다.진요탑에서 흘러나온 마기는 실체가 되어 넘쳐흘렀다. 마기가 나타나자 서요산을 지키는 모든 검종 제자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어떤 제자는 순간적으로 십여 년을 늙어버렸다.수련이 부족하면 수명으로라도 채워야 하는 참혹한 상황이었다.웅웅.하늘에는 먹구름이 밀집했고 그 안에서 요괴의 번개가 끊임없이 터졌다.“이젠 영기조차 요기로 변하고 있다. 풍수 비술로 보건대 머지않아 이곳에서 요마가 출현하겠구나.” 임정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요산 외부에서 짙은 요기
도가는 인연이라는 두 글자를 대단히 중히 여긴다.그의 한 번의 인연, 한 번의 생각은 곧 만백성의 생사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윤구주가 정상에 오르자 앞서 온 다른 이들과는 달리 서요산 검종의 모든 이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여 깊은 존경을 표했다. 그들이 경배한 대상은 단순한 한 인간이 아니라 구주의 저하, 화진의 인황, 오방 천지의 주재자였다.“모두 일어나십시오. 제가 오늘 서요산에 온 이유는 오직 진요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진요탑 안의 마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문 씨 세가의 역심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마인을 죽여야만 문 씨 세가의 야심도 함께 근절할 수 있습니다.”윤구주는 서요산 검종의 모든 제자를 향해 엄숙하게 말했다.이번 서요산 행차의 목적은 바로 문 씨 세가의 역심을 뿌리째 뽑는 것이었다.검종 제자들이 앞장서 일행을 이끌었고 모두가 금정을 지나 뒷산으로 향했다.뒷산에 막 들어서자마자 음산한 기운이 얼굴을 스쳤다.후산 중앙에는 높이 오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산이 서 있었는데 그 산은 무려 구백구십구 개의 쇠사슬로 단단히 봉인되어 있었다.이 쇠사슬은 그저 평범한 사슬이 아니었다. 절반은 땅속의 지맥과 연결되어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하늘 높이 떠올라 천지의 영기를 끌어모으고 있었다.이런 수준의 봉인이라면 설령 윤구주 자신이 여기에 갇혀 있다고 해도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이처럼 견고한 고진마저 지금은 마인의 사기로 조금씩 부식되어 가고 있었다. 본래는 영기가 흘러넘치는 명산이었으나 지금은 온 서요산이 마인의 기운에 물들어 음침하고 괴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이 강렬한 악기운을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모두 얼굴을 찌푸렸다.솟구치는 사기를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찌푸렸다.최근 몇 대에 걸쳐 입종한 서요산의 제자들은 이런 마인의 사기와 요마의 위협 속에서 수련해야 했다.천지의 영기조차 마인의 기운에 오염되어 수련에 큰 지장을 주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남은 현
이 말을 듣자 모든 이들은 천 년 전 마지막으로 나타난 그 성인이 바로 서요산 검종에서 나왔음을 깨달았다.“짐은 서요산 검종의 선대 종주께서 우화등선하셨다고만 들었는데 그저 떠도는 신화 속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더니 은 성인의 경지에 이르신 것이었군.” 임정설이 깊은 감탄과 함께 말했다.구백 계단 윤구주는 이미 전설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하지만 그 전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구백삼십 계단 사십 계단을 오르면서 윤구주의 발걸음은 오히려 더욱 가벼워졌고 그가 세우는 기록은 사람들의 상식을 계속해서 뒤흔들었다.구백팔십 계단을 지나 정상까지 겨우 십여 계단만 남은 그 순간 윤구주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구백구십구 계단에 이르러 결국 완전히 멈추었다.드디어 한계에 도달한 것인가?모두가 숨을 죽이고 윤구주를 지켜봤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분명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시험일 터였다.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십여 분을 견뎌냈다. 사람들은 그가 언제 다시 계단을 오를지 초조하게 기다렸다.마침내 윤구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됐습니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시험을 포기하지요.”말을 마치고 계단에서 내려서는 순간 청석 계단 아래에서 강력한 영기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쳤고 곧바로 서요산을 감싸던 어둠의 기운을 깨끗이 몰아냈다.오랫동안 음울했던 서요산 상공은 순식간에 환해졌고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맑은 하늘이 펼쳐졌다.서요산의 모든 이들은 충격에 빠져 넋을 잃었다.그제야 그들은 윤구주가 왜 그토록 여유롭게 올라올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서요산의 청석 계단이 가진 진법의 힘을 계속해서 억누르고 있었다.“참으로 대단하신 신위군요! 우리 서요산의 청석 진법마저 제압하셨다니! 마지막 한 걸음을 분명 넘으실 수 있었을 텐데 혹시 강제로 넘었다가 진법이 견디지 못해 영기가 새 나가고 진법이 무너져 진요탑까지 영향을 미칠지 걱정하신 건 아닌가요?” 장인 대진인이
도법의 깊이는 워낙 심오해서 임정설조차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다.“쉽게 말씀드리자면 구주는 천지의 운기를 완전히 장악한 데다가 하늘이 직접 영광을 내리신 거죠.” 장인 대진인이 말했다.임정설은 이 말을 듣고 비로소 이해한 듯 말했다.“대진인의 말은 윤구주가 바로 하늘이 점지한 사람이라는 뜻인가?”“맞습니다. 우리 화진 사람들은 운명의 갈림길에 서면 본심에 따라 도법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깁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사는 다하고 하늘의 뜻을 따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윤구주는 분명 큰 복을 타고났지만 그 엄청난 복을 감당할 힘도 필요합니다.”대진인이 설명했다.말이 끝날 무렵 윤구주는 이미 육백삼십 계단을 거뜬히 올라와 있었다.한 걸음도 멈추지 않고 더욱 확고한 걸음으로 계속 전진했다.그의 발걸음마다 천지의 기운이 응축되었다.어느 순간 서요산의 계단조차 윤구주의 기세를 가두지 못했다. 그는 마치 천지를 밟으며 오르는 듯했다.곧이어 그는 칠백 계단마저 돌파했다.칠백 계단이란 천 년 전 서요산의 전성기에도 극소수만이 도달할 수 있었던 경지였다. 지금 만약 윤구주가 구주왕이 아니라 일반 수련자였다면 이 기록만으로 서요산 전체가 들썩였을 것이다. 만일 윤구주가 서요산에 입문을 원했다면 서요산은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 그를 키웠을 것이며 서요산 검종의 다음 종주 자리는 당연히 그에게 돌아갔을 것이다.그러나 이미 칠백 계단에 이르렀음에도 윤구주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칠백오십 계단 팔백 계단 팔백오십 계단!그는 끊임없이 정상의 기록을 깨며 전설을 써 내려갔다.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윤구주 앞에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을 것 같았다. 이쯤 되자 장인 대진인조차 감히 그를 함부로 평가할 수 없었다.왜냐하면 자신도 과거에 겨우 칠백 계단에 그쳤으니 팔백 계단을 오른 사람을 감히 평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윤구주는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마치 천지를 흔들어 이 강산을 뒤엎어버리겠다는 기세였다.그리고 마침내 구백 계단에 이르렀다.“구백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