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가든.소채은은 자신이 소씨 가문 족보에서 쫓겨났고, 심지어 소씨 저택에 반걸음도 더 들일 수 없다는 사실에 가슴이 미어졌다.하지만 그녀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소씨 가문은 이익을 위해서라면 소채은을 도구로 삼는 것을 불사했다.그런데 하다못해 이제는 그녀를 소씨 가문 족보에서 쫓아낸다니?여기까지 생각되니, 소채은은 마음이 아프기도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그러나 어찌 됐든 삶은 계속될 것이다.이미 그녀가 소씨 가문 족보에서 쫓겨난 사실을 알고 있던 윤구주는 아래층에 서서 창밖을 내다보며 혼자 중얼거렸다.“주세호 씨 쪽도 거의 됐겠지?”아니나 다를까 약 20분 후, 차 한 대가 스카이가든 아래에 도착했다.차 문이 열리자, 안에서는 소청하와 천희수가 걸어 나왔다. “여보, 채은이가 우리를 용서해 줄까요?”천희수는 말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그러자 소청하가 깊게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걱정 마, 아무리 그래도 우리가 친부모인데.”“이게 다 당신 탓이에요. 그러게 왜 굳이 애 카드는 정지시켜 가지고, 심지어 아주버님은 족보에서 쫓아내지를 않나... 우리 아이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이런 고생을 해보기나 했어요?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해 보기나 했냐고요.”천희수가 마구 불평을 늘어놓자 소청하도 자신이 이번에 한 일이 지나치다는 것을 알고 한숨을 내쉬었다.“됐어, 그만해! 어쨌든, 나도 우리 가문을 위해 한 일이었어!”“가문, 가문. 가문을 위해서라면 딸의 행복도 아랑곳하지 않아요? 심지어는 팔아버리고?”천희수가 화를 내며 소청하를 욕했다.“그만하고 이제 들어가지. 일단 계집애부터 데려온 다음에 말하자고.”말을 끝마치고 두 사람은 스카이가든으로 들어갔다.딩동!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그 소리를 들은 윤구주는 서둘러 문을 열어주었고, 문을 열자 소청하 부부가 보였다. 윤구주를 발견하고 그들의 안색도 조금 변했지만, 결국 소청하가 차갑게 입을 열었다.“내 딸은 어디 있습니까?”윤구주는 그들을 보고도 크게 놀라는 모습을
“SK그룹을 위해 딸의 행복도 아랑곳하지 않으실 거예요? 난 아빠, 엄마의 친딸이에요! 그 조성훈이 어떤 사람인지 아빠, 엄마가 정말 나보다 모르실까요? 나더러 그 자식이랑 결혼하라는 것은 완전히 불구덩이 속에 집어넣겠다는 의미나 다름없어요!”소채은은 화가 난 나머지 눈시울이 붉어졌다.소청하는 그 말을 듣고 긴 탄식을 금치 못했다.“그래 네 말이 맞다. 이 일은 모두 내 탓이야! 채은아, 미안해, 이 아빠가 잘못했어. 나 좀 용서해 주면 안 되겠니?”그가 잘못을 인정하는 것을 보고, 소채은은 멍하니 제자리에 서 있었다.‘아빠가 잘못을 인정한다니? 나 꾸짖으러 온 거 아니셨어?’그러자 옆에 있던 천희수도 말을 거들었다.“채은아, 네 아빠는 한 번도 너한테 고개 숙인 적 없으시잖니. 이렇게 자진해서 잘못을 인정하시는데 그만 용서하거라, 응?”소채은에게는 그들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바보가 아니었다.한 시간 전에 소채은은 소씨 가문에서 쫓겨나고, 심지어 족보에서 이름까지 지워졌다. 그런데 지금 갑자기 소청하와 찾아와 잘못을 인정하는 건 뭔가 수상쩍은 점이 있을 것이다.그렇게 곰곰이 생각하다가 그녀가 물었다.“아빠, 뭐 하나만 물어볼게요. 왜 갑자기 여기에 찾아와서 잘못을 인정하시는 거예요? 설마 또 조성훈이 시켰어요?”소청하는 조성훈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얼른 손사래를 쳤다.“아니, 아니. 그것 때문이 아니야!”“그럼 왜요?”소채은은 더욱 의아해졌다. 소청하는 몇 초 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끝내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래, 굳이 알고 싶어 하니 내가 솔직히 말할게! 오늘 어떤 사람이 우리 SK제약을 인수하기 위해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시했어!”"솔직히 말해서, 오늘 어떤 사람이 우리 SK제약을 인수하기 위해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시했어!" ‘SK제약 인수?’그 말에 소채은은 어리둥절해지고 말았다.“누가 우리 SK제약을 인수하려 한다 해고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이에요?”“네 말처럼 너랑 확실히 상관없는 일이지! 하
“채은아, 네 아빠 말씀 들어! 아무리 그래도 너는 소씨 가문 딸이야!”천희수도 한쪽에서 맞장구를 쳤다.하지만 소채은은 침묵을 지키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렇게 한참이 지나서야,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아빠, 혹시 큰아버지께서 두 분더러 저 데려오라 말씀하신 거예요?”두 사람은 이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소채은도 워낙 총명했는지라 그들의 반응을 보고 단번에 알아채고는 피식 냉소했다.“그럴 줄 알았어요, 큰아버지가 그러셨을 줄 알았다고요! 돌아가서 사인해 드리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먼저 저에게 두 가지 일을 약속해 주세요!”그녀는 간단하면서도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그래, 무슨 일이든지 말만 하렴. 우리 SK의 인수만 이뤄낸다면 한 가지, 아니 열 가지 일이라도 내가 승낙하마!”소청하가 자신의 가슴을 치며 외쳤다.“좋아요! 우선 첫째, 조성훈과의 혼인을 무르겠습니다.”“문제없다! 네가 돌아가서 사인만 한다면, 그까짓 일은 나한테 맡기렴!”“그리고 두 번째, 이제부터는 제가 누구를 좋아하든, 누구와 함께 있든, 엄마 아빠는 더 이상 저를 상관할 수 없어요!”그 말에 두 사람은 조금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SK의 인수를 완성하기 위해 소청하는 결국 그 제안도 받아들였다.“좋아! 그렇게 하마!”이렇게 부모님이 모두 승낙하는 것을 듣고, 소채은은 매우 기뻐졌다!그녀는 SK가 누구에게 인수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상관하지 않았고, 오직 자신과 조성훈이 파혼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만 관심이 있었다.소채은이 집으로 가 사인하기로 약속하자, 천희수도 덩달아 기뻐했다.“채은아, 너도 아빠 제안 받아들였으니 이제 짐 정리하고 얼른 집으로 가자꾸나!”“네, 알겠어요!”소채은은 즐거워졌다.“구주야, 우리 짐 챙기고 집에 돌아가자!”그녀는 윤구주를 끌고 방으로 돌아가 짐을 쌀 준비를 했다.“잠시만!”이때, 소청하가 갑자기 입을 열자 소채은도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왜 그러세요, 아빠?”곧이어 소청하
방 안에서 소천홍은 이리저리 서성이며 소청하 부부를 초조하게 기다렸다.“아버지, 걱정하지 마세요. 그 계집애는 반드시 돌아올 거예요.”소진이 한쪽에서 말하자 소천홍은 흥 콧방귀를 뀌고는, 옆에 있던 담배를 집어 힘껏 두 모금 빨았다.“정말 이상하단 말이야! DH그룹에서 우리 SK를 인수하려 하는데 왜 꼭 그 계집애가 사인해야 하지? 난 정말 이해할 수가 없어!”“솔직히 저도 답답하고 의아하긴 합니다. 도리대로라면 그 계집애는 주세호 같은 대갑부는 물론 남자친구라던 주 회장 수양아들도 만날 수 없을 텐데 말이죠.”“그러게 말이다. 근데 왜 무려 두 번이나 그년 때문에 DH그룹에서 찾아온 거지?”그러자 소진이 턱을 어루만지며 말했다.“아버지, 혹시 그 주세호가 채은이한테 눈독을 들인 건 아닐까요?”“뭐? 주 회장이?”소천홍은 순간 얼어버리고 말았다.“그래요! 제가 듣기로 돈 많은 거물들이 가장 좋아하는 게 아름답고 청순한 어린 아가씨를 사냥하는 거래요. 특히 그 계집애처럼 멍청하고 귀여운 스타일 말이에요, 심지어 걔는 어리잖아요!”소진이 이렇게 말하자, 소천홍의 눈빛이 번뜩 밝아졌다.“네 말도 일리가 있는 것 같구나!”“아마 그럴 겁니다! 비록 그 계집애 성격은 별로지만, 몸매랑 외모로 봤을 때 확실히 견줄 사람이 없거든요. 그래서 제 추측은 주 회장님이 채은이한테 눈독을 들였다는 겁니다.”“주세호가 그 계집애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든 없든 상관없다. 이번에 우리 SK를 순조롭게 인수할 수만 있다면 나는 그걸로 만족해!”“맞는 말이에요.”...한 시간 후. 소청하는 소채은을 데리고 저택에 돌아왔다.그녀는 자신의 미니 승용차를 몰고 소씨 저택 주차장에 주차하고 나서는 곁에 있는 윤구주를 향해 말했다.“구주야, 이번에는 무서워할 필요가 없어! 내가 있으면 아무도 감히 너를 건드리지 못할 테니까.”그러자 윤구주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알겠어, 이제 내리자.”곧이어 두 사람은 마스티프 까망이를 끌고 차에서 내렸다.소채은이 윤구주를
소천홍이 연락하자 아니나 다를까 DH그룹 사람들은 그날 오후에 다시 소씨 저택으로 왔다.온 사람들은 여전히 표태훈과 재무 총책임자, 그리고 8명의 경호원이었다.멀리서 그들을 본 소천홍은 서둘러 모든 가족들을 데리고 마중 나갔다.소채은도 그 뒤를 따랐다.표태훈은 그녀를 보자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채은 양, 우리 또 만났네요!”소채은도 인상 좋은 그에게 웃으며 답했다.“어르신, 안녕하세요!”이윽고 옆에 있던 소천홍이 서둘러 말을 이었다.“표 집사님, 채은이가 돌아왔으니 이제 그전에 얘기했던 인수 협의에 사인할 수 있을까요?”표태훈도리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요!”말을 마치고 나서, 그는 뒤에 있는 DH 그룹의 재무 총책임자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그러자 그는 준비된 인수 서류를 들고 소채은의 앞으로 다가왔다.그러고는 펜 한 자루를 쥐여주며 이렇게 말했다.“채은 양, 채은 양이 여기에 사인하기만 하면 우리의 인수 협의는 즉시 효력이 발생합니다!”소채은은 펜을 받아 인수 협의서를 보기 시작했다.“채은아, 어서 사인해!”소천홍은 한쪽에서 재촉했고, 소진의 눈빛도 이글이글 불타올랐다.뒤에 있는 소청하 부부 모두 눈이 빠지도록 소채은을 바라보고 있었다.SK제약이 200억의 높은 가격에 인수될 거라고는 그들도 정말 생각지 못했다!게다가 현재 소채은이 살짝 손가락을 움직이기만 하면, 파산 직전의 SK제약을 서둘러 팔아치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큰돈을 벌 수도 있다!그래서 모두들 그녀의 사인을 손꼽아 기다렸다.하지만 소채은은 펜을 들고 먼저 사인하지 않았고, 도리어 아름다운 얼굴을 들어 표태훈을 바라보았다.“어르신, 사인하기 전에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그러자 표태훈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물론이죠,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저는 어르신네 DH그룹 회장님을 알지 못하는데, 왜 그분은 저한테 이렇게 잘해주시는 거죠?”소채은은 마음속에 존재하던 의문을 가볍게 물었다.그러자 표태훈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도무지 떠
“네? 또 있다고요?”소채은은 발걸음을 멈칫했다.곁에 있던 가족들도 모두 긴장하기 시작했다.DH그룹이 이 인수 건을 번복할까 봐서 말이다.곧이어 안경을 쓴 재무 총책임자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꺼냈다.“이 계약은 채은 양이 SK제약을 인수한다는 계약입니다!”이 말이 나오자 온 장내가 어리둥절해졌다.소천홍 부자도, 소청하 부부도 모두 DH그룹 재무 총책임자의 말을 듣고 멍하니 서 있었다.심지어 소채은 본인조차 이해가 되지 않아 물었다.“네?... 방금 뭐라고 말씀하셨어요?”“채은 양이 SK제약을 인수하시라고요!”“제... 제가요?”놀란 소채은이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그러나 DH그룹의 재무 총책임자는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네! 회장님께서 말씀하시길 SK제약을 매수한 이유는 전적으로 채은 양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당연히 SK제약은 채은 양이 관리해야죠!”이 말이 나오자, 소천홍 부자는 물론 소청하 부부도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이게 무슨 상황이야? DH그룹이 기껏 인수한 SK제약을 소채은한테 양도한다고?’소채은이 아무리 어리석다 해도, 이렇게까지 말한 이상 그녀 역시 DH그룹의 뜻을 알아차렸을 것이다.그녀는 눈을 부릅뜨고 다시 물었다.“에이, 농담하지 마세요! DH그룹이 SK제약을 인수하고는 지금 저한테 주신다고요?”“맞아요, 채은 양 말 그대로입니다!”재무 총책임자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쿵! 소채은은 머리가 곧 터질 것만 같았고, 눈을 휘둥그레 뜨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채은 양, 이것은 지분 법인 인증서입니다. 채은 양이 이 위에 사인만 하면, 지금부터 SK제약은 채은 양의 것이 됩니다!”재무 총책임자는 다시 한 장의 계약서를 꺼내어 그녀에게 건넸다!하지만 그 계약서를 바라보며 소채은은 얼른 손사래를 쳤다.“아뇨, 아뇨! 이 계약서에 저는 사인할 수 없습니다!”“왜죠?”“왜냐하면, 저는 그쪽 주 회장님에 대해 모르니까요...”이때, 표태훈이 입을 열었다.“지금 몰라도 괜찮습니다,
“채은아, 뭐 해? 얼른 사인하지 않고. 빨리 DH그룹에게 고맙다고 해야지!”소청하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애써 달래며 소채은에게 말했다.천희수도 소채은을 재촉하였다.“채은아! 사인해 얼른. 사인!”소천홍 부자는 질투심에 배가 아플 지경이었다.DH그룹이 이런 생각지도 못한 행동을 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하지만 소채은은 사인하지 않고 멍하니 손에 들고 펜을 들고 주식 법인 양도서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이 모든 게 다 진짜일까!’‘왜 꿈을 꾸는 것 같지!’어리둥절해진 소채은은 어떻게 이 일을 처리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었다.소채은이 펜을 들고 사인을 하지 않자 소청하와 천희수는 조급한 마음을 숨길 방법이 없었다.소채은이 얼른 사인을 마치고 SK제약을 다시 소씨 가문 손에 넣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그리고 앞으로 DH그룹의 전폭적인 지지도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누구라도 얼른 사인을 하고 싶은 유혹적인 제안들이었다.모든 사람들이 소채은이 사인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와중에 소채은은 저도 모르게 윤구주를 바라보며 도움의 눈길을 청했다.“구주야...”소채은도 왜 이 순간 윤구주가 생각나는지 모른다.이름을 불린 윤구주는 소채은 쪽으로 걸어왔다.“구주야. 이 사인을 어떻게 해야 돼?”소채은이 묻자 소청하와 천희수는 덜컥 화를 냈다.“바보야, 네가 사인하는 건데 왜 쟤한테 물어봐? 쟤는 그냥 외부인인데.”소청하가 이렇게 말하자 천희수도 한마디 덧 붙였다.“그래 채은아. 쟤가 뭔데? 물어볼게 뭐 있다고?”하지만 소채은은 부모님의 충고를 귓등으로 듣고 여전히 맑은 눈으로 윤구주를 바라봤다.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소채은은 윤구주의 말을 더 믿고 싶었다.윤구주가 부드러운 시선으로 소채은을 바라보면서 말했다.“사인해!”윤구주의 말을 듣자 소채은은 끝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알았어. 네 말대로 사인할게!”그리고 소채은은 펜을 들어 빠른 속도로 자기 이름을 사인했다!사인을 마친 후 표태훈이 말했다.“자, 그러면 지금부터
이번 일로 인해 SK제약은 많은 돈을 벌었지만 앞으로 1000억이라는 투자액을 받을 생각과 DH그룹 와의 장기간 협업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소꿉놀이 같았다.하지만 그들이 질투한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SK제약은 지금 소채은의 이름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둘째, 축하해!”“네 딸이 DH그룹 대표랑 이런 사이인 줄도 몰랐어!”소천홍은 겉으로 축하하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이를 갈고 있었다.소청하도 자기 형님의 성격을 알고 있었기에 너무 기뻐하는 티를 내지 않고 덤덤하게 말했다.“축하는 무슨. 그저 앞으로 우리 소씨 가문이 다시 일어서기를 기대하는 바입니다!”그리고 소청하는 소천홍을 더 대꾸하지 않고 천희수에게 물었다.“여보, 우리 채은이는?”“채은이랑 걔는 아직도 방에 있어요!”천희수가 귀띔했다.“참! 눈치도 없네. 멍청하게 아직도 쟤랑 같이 놀고 있으면 어떡해? 제정신이야!”“여보, 우리 채은이 찾으러 가자!” ...세련된 인테리어의 거실.소씨 가문 사람들이 모두 경축하고 있을 때 소채은은 혼자 시무룩해 있었다.소채은은 지금 방 안에서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아름다운 턱을 괴고 맑은 눈으로 앞을 바라면서 멍을 때리고 있다.그녀의 옆에는 윤구주와 까망이도 있었다.그렇게 한참을 멍 때리다가 소채은은 “아이고”하면서 한숨을 쉬였다.윤구주는 그런 소채은을 보면서 물었다.“기분이 안 좋아?”“DH그룹 주세호가 갑자기 나한테 이렇게 잘해주고 심지어 SK제약까지 내 이름으로 넘겨주면서 나를 부자로 만들어줬는데, 내가 기쁠 수 있겠어?”소채은이 이렇게 말하자 윤구주는 이해가 안 된다는 식으로 물었다.“그러니깐 이건 좋은 일이잖아.”“좋은 일 맞긴 하지만 나한테는 아니야!”“왜?”윤주구가 물었다.“한번 생각해 봐. 세상에 공짜는 없어. 강성 제일 갑부가 아무 이유도 없이 나한테 이렇게 큰 선물을 주는 게 수상해도 너무 수상하지 않아?”윤구주는 지나치게 의심을 하는 소채은을 달래면서 말했다.“네가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 건 아니
“저하,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그를 죽여야 합니까? 저자의 기운이 이토록 흉악한데 성수의 혈기로 진압할 순 없습니까?” 백호는 이미 싸우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안 된다. 너희 네 명이 함께라면 잠시나마 억누를 수는 있겠지만, 너희는 그저 성수의 정혈을 가졌을 뿐이니 마인을 완전히 없애려면 성수가 직접 나타나야 한다. 지금 이 세상에 성수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스럽다.”윤구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말을 마친 윤구주는 곧장 진요탑 쪽으로 향했다.백호와 임정설, 청해가 함께 가서 돕고자 했으나 장인 대진인이 그들을 가로막았다.“이 마인은 오직 구주만이 상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국주님, 곧 전투가 시작될 터인데 서요산의 진법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 호법의 중임을 몇 분께 맡기겠습니다.”장인 대진인이 임정설에게 경건하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좋다. 오늘 이 자리에서 목숨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저 마인을 죽이고야 말겠다.” 임정설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황자의 위엄을 한껏 드높였다.화진의 존망이 걸린 일이라면 임정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하지만 마기가 몰려와 서요산 전체를 뒤덮고 세상이 오직 흑백 두 가지 색깔만으로 변해버리며 그 끔찍한 살기가 강림했을 때 임정설마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떨렸다.“이 마인의 기운이 이렇게까지 무서울 줄이야.” 임정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마기로 가득 찼고 윤구주마저 그 기세에 눌리고 있었다.진요탑에서 흘러나온 마기는 실체가 되어 넘쳐흘렀다. 마기가 나타나자 서요산을 지키는 모든 검종 제자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어떤 제자는 순간적으로 십여 년을 늙어버렸다.수련이 부족하면 수명으로라도 채워야 하는 참혹한 상황이었다.웅웅.하늘에는 먹구름이 밀집했고 그 안에서 요괴의 번개가 끊임없이 터졌다.“이젠 영기조차 요기로 변하고 있다. 풍수 비술로 보건대 머지않아 이곳에서 요마가 출현하겠구나.” 임정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요산 외부에서 짙은 요기
도가는 인연이라는 두 글자를 대단히 중히 여긴다.그의 한 번의 인연, 한 번의 생각은 곧 만백성의 생사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윤구주가 정상에 오르자 앞서 온 다른 이들과는 달리 서요산 검종의 모든 이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여 깊은 존경을 표했다. 그들이 경배한 대상은 단순한 한 인간이 아니라 구주의 저하, 화진의 인황, 오방 천지의 주재자였다.“모두 일어나십시오. 제가 오늘 서요산에 온 이유는 오직 진요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진요탑 안의 마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문 씨 세가의 역심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마인을 죽여야만 문 씨 세가의 야심도 함께 근절할 수 있습니다.”윤구주는 서요산 검종의 모든 제자를 향해 엄숙하게 말했다.이번 서요산 행차의 목적은 바로 문 씨 세가의 역심을 뿌리째 뽑는 것이었다.검종 제자들이 앞장서 일행을 이끌었고 모두가 금정을 지나 뒷산으로 향했다.뒷산에 막 들어서자마자 음산한 기운이 얼굴을 스쳤다.후산 중앙에는 높이 오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산이 서 있었는데 그 산은 무려 구백구십구 개의 쇠사슬로 단단히 봉인되어 있었다.이 쇠사슬은 그저 평범한 사슬이 아니었다. 절반은 땅속의 지맥과 연결되어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하늘 높이 떠올라 천지의 영기를 끌어모으고 있었다.이런 수준의 봉인이라면 설령 윤구주 자신이 여기에 갇혀 있다고 해도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이처럼 견고한 고진마저 지금은 마인의 사기로 조금씩 부식되어 가고 있었다. 본래는 영기가 흘러넘치는 명산이었으나 지금은 온 서요산이 마인의 기운에 물들어 음침하고 괴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이 강렬한 악기운을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모두 얼굴을 찌푸렸다.솟구치는 사기를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찌푸렸다.최근 몇 대에 걸쳐 입종한 서요산의 제자들은 이런 마인의 사기와 요마의 위협 속에서 수련해야 했다.천지의 영기조차 마인의 기운에 오염되어 수련에 큰 지장을 주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남은 현
이 말을 듣자 모든 이들은 천 년 전 마지막으로 나타난 그 성인이 바로 서요산 검종에서 나왔음을 깨달았다.“짐은 서요산 검종의 선대 종주께서 우화등선하셨다고만 들었는데 그저 떠도는 신화 속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더니 은 성인의 경지에 이르신 것이었군.” 임정설이 깊은 감탄과 함께 말했다.구백 계단 윤구주는 이미 전설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하지만 그 전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구백삼십 계단 사십 계단을 오르면서 윤구주의 발걸음은 오히려 더욱 가벼워졌고 그가 세우는 기록은 사람들의 상식을 계속해서 뒤흔들었다.구백팔십 계단을 지나 정상까지 겨우 십여 계단만 남은 그 순간 윤구주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구백구십구 계단에 이르러 결국 완전히 멈추었다.드디어 한계에 도달한 것인가?모두가 숨을 죽이고 윤구주를 지켜봤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분명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시험일 터였다.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십여 분을 견뎌냈다. 사람들은 그가 언제 다시 계단을 오를지 초조하게 기다렸다.마침내 윤구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됐습니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시험을 포기하지요.”말을 마치고 계단에서 내려서는 순간 청석 계단 아래에서 강력한 영기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쳤고 곧바로 서요산을 감싸던 어둠의 기운을 깨끗이 몰아냈다.오랫동안 음울했던 서요산 상공은 순식간에 환해졌고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맑은 하늘이 펼쳐졌다.서요산의 모든 이들은 충격에 빠져 넋을 잃었다.그제야 그들은 윤구주가 왜 그토록 여유롭게 올라올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서요산의 청석 계단이 가진 진법의 힘을 계속해서 억누르고 있었다.“참으로 대단하신 신위군요! 우리 서요산의 청석 진법마저 제압하셨다니! 마지막 한 걸음을 분명 넘으실 수 있었을 텐데 혹시 강제로 넘었다가 진법이 견디지 못해 영기가 새 나가고 진법이 무너져 진요탑까지 영향을 미칠지 걱정하신 건 아닌가요?” 장인 대진인이
도법의 깊이는 워낙 심오해서 임정설조차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다.“쉽게 말씀드리자면 구주는 천지의 운기를 완전히 장악한 데다가 하늘이 직접 영광을 내리신 거죠.” 장인 대진인이 말했다.임정설은 이 말을 듣고 비로소 이해한 듯 말했다.“대진인의 말은 윤구주가 바로 하늘이 점지한 사람이라는 뜻인가?”“맞습니다. 우리 화진 사람들은 운명의 갈림길에 서면 본심에 따라 도법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깁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사는 다하고 하늘의 뜻을 따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윤구주는 분명 큰 복을 타고났지만 그 엄청난 복을 감당할 힘도 필요합니다.”대진인이 설명했다.말이 끝날 무렵 윤구주는 이미 육백삼십 계단을 거뜬히 올라와 있었다.한 걸음도 멈추지 않고 더욱 확고한 걸음으로 계속 전진했다.그의 발걸음마다 천지의 기운이 응축되었다.어느 순간 서요산의 계단조차 윤구주의 기세를 가두지 못했다. 그는 마치 천지를 밟으며 오르는 듯했다.곧이어 그는 칠백 계단마저 돌파했다.칠백 계단이란 천 년 전 서요산의 전성기에도 극소수만이 도달할 수 있었던 경지였다. 지금 만약 윤구주가 구주왕이 아니라 일반 수련자였다면 이 기록만으로 서요산 전체가 들썩였을 것이다. 만일 윤구주가 서요산에 입문을 원했다면 서요산은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 그를 키웠을 것이며 서요산 검종의 다음 종주 자리는 당연히 그에게 돌아갔을 것이다.그러나 이미 칠백 계단에 이르렀음에도 윤구주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칠백오십 계단 팔백 계단 팔백오십 계단!그는 끊임없이 정상의 기록을 깨며 전설을 써 내려갔다.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윤구주 앞에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을 것 같았다. 이쯤 되자 장인 대진인조차 감히 그를 함부로 평가할 수 없었다.왜냐하면 자신도 과거에 겨우 칠백 계단에 그쳤으니 팔백 계단을 오른 사람을 감히 평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윤구주는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마치 천지를 흔들어 이 강산을 뒤엎어버리겠다는 기세였다.그리고 마침내 구백 계단에 이르렀다.“구백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
진인들은 말했다. 임정설이 만약 집념을 내려놓는다면 육백 계단까지도 오를 수 있을 거라고.장인 대진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집념을 놓는다면 더 이상 화진의 국주가 아니지. 바로 이런 끈질긴 의지가 있기에 그분이 화진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다른 진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운명이란 그런 법이다. 아마도 집념을 놓았다면 임정설은 오백 계단조차 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이때 임정설은 아직 남아 있는 절반의 계단을 바라보며 씁쓸히 미소 지었다. “어쩌면 여기서 멈춰야겠구나.”임정설은 다시 뒤를 돌아 윤구주를 바라보았다. 그가 자기 자식이자 동료처럼 여기는 윤구주가 과연 몇 계단을 오를지 궁금했다.깊은 생각에 잠긴 임정설이 곧바로 말을 꺼냈다.“구주야 이제 네가 올라서 봐! 화진의 구주왕다운 실력을 보여줘! 적어도 나보다는 못하면 안 되지 않겠냐?”아래에 서 있던 윤구주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원래 그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국주의 바람이라면 흔쾌히 도전할 마음이었다.“명 받들겠습니다!” 윤구주는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계단을 밟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기 시작했다.구주왕이 등천로에 도전했다는 소식에 서요산 검종 전체가 술렁였다.검객은 물론이고 잡일을 돕는 제자들까지 모두 금정에 모여들어 그의 모습을 보고자 했다.심지어 하늘 위 어둑한 구름 사이에서도 한 쌍의 법안이 열렸다. 바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 환영이었다.임정설이 먼저 정상에 올랐고 장인 대진인을 포함한 일곱 진인과 서요산의 모든 제자들은 화진의 황자를 향해 몸을 숙여 예를 갖추었다.“모두 일어나시오. 그대들이 없었다면 화진은 이미 혼란 속에 빠졌을 것이오. 진정 국가와 화진을 위해 헌신한 것은 바로 그대들입니다.” 임정설은 화진의 모든 백성을 대표할 순 없지만 왕실을 대표하여 임 씨 일족의 지도자로서 서요산 검종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국주께서 과찬입니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묵묵히 힘썼을 뿐입니다. 화진의 백
일곱 진인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들은 국주가 이미 등황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사백 계단은 쉽게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과연 그들의 예상대로 임정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오르며 오백 계단을 가볍게 밟아 올랐다. “오백 계단을 밟으면 등황의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 일곱 진인 중에서도 오직 장인 대진인께서만 과거에 오백 계단에 오르셨고, 현재 서요산에 살아계신 유일한 오백 계단 수련자이십니다. ” 한 진인이 감탄하며 말했다.이 말을 듣자 옆에 있던 백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선임 도사님 그러면 그 도사님도 황자란 말씀입니까? ”“하하! 우리 서요산에서는 외부의 그런 칭호를 쓰지 않아요. 우리 사이에서는 그를 반신이라고 부릅니다.” 진인들이 웃으며 말했다.청해가 옆에서 덧붙였다. “서요산 검종에서 말하는 반선이 황자를 뜻하는 거야. 근데 그 서요산 반선 진짜 어마어마하게 강한 인물이거든. 예전에 곤륜 구역에서 귀한 영약 찾으러 들어왔다가 우리 빙신전 전주랑 빙황 두 명이 같이 상대했는데도 둘 다 거의 죽을 뻔했어. 결국 아사 신전한테까지 도움 요청해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지.”“뭐라고?”백호는 놀라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진짜 그렇게 강한지 의문이 들었다.일곱 진인 중 가장 나이 많은 그 진인은 백호의 단순한 반응에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그가 바로 그 반선이었다. 다만 백호가 워낙 세상 물정에 둔감하여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놀라기만 하고 있었다.그사이 임정설은 이미 오백오십 계단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이 단계에 이르자 임정설도 거의 극한에 도달했다.“역시 직접 올라와 봐야 이 압력을 제대로 실감하는구나! 오백사십 계단까진 무리 없었는데 오백오십 계단에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구나.”지금 임정설을 압박하는 것은 단순한 술도의 압력만이 아니었다.과거의 온갖 기억들이 마장이 되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일곱 진인은 모두 임정설의 기운이 혼란스러워진 것을 느꼈다.“장인 사형, 국주님께서 심마에 걸리셨군
청해의 눈길이 자주색 도포를 입은 진인에게로 향했다.서요산검종에서 종주를 제외한 나머지 일곱 명의 진인이 가장 높은 수련을 가지고 있으며 평소 종문 내의 모든 일은 이들 일곱 명이 책임지고 있다.기세는 마치 대강의 파도가 넘실대듯 깊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산과 숲처럼 무한히 이어져 있었다. 그의 수련은 깊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서요산 7대 진인의 수련이 극 신급 절정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그 말이 너무 가볍게 들리네요. 귀하의 수련은 적어도 극 신급 절정 후반에 다다랐군요.”청해는 세 명의 진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몸을 굽혔다.“서요산의 전통은 천 년을 자랑하며 그 깊이는 변함없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반면 곤륜 구역은 스스로 신을 자처한 이후로 계속해서 내분을 일으켰습니다. 수련을 통해 세상을 떠난 후 도를 깨닫는다는 말처럼 곤륜 구역은 천하의 영기와 천물을 흡수했지만 제 생각에는 도를 얻지 못한 곳입니다. 지금 당신이 화진에게 올바른 수를 두는 것은 맞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극 신급 절정 후반도 절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한 진인이 답례하며 말했다.그때 몇몇 사람들은 서요산 검객들의 함성에 이끌려 사방을 살폈다. 백호가 사백 계단을 올라갔다는 소식이었다.“대단한데요. 서요산이 전성기였을 때도 사백 계단을 오른 이는 드물었어요. 우리 몇몇 진인들도 입문 시에 사백 계단을 넘은 적은 없었죠.”몇몇 진인들이 칭찬했다.이는 백호가 미래에 매우 큰 가능성을 지녔음을 의미했고 적어도 극 진경 후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극 진경 후반은 곤륜 구역에서 신전의 전주가 될 수 있는 실력이다.지금 사백 계단에 오른 백호는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완전히 의지로 버티며 강력한 정신력으로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다.그러나 아무리 강한 운명을 지녔다 해도 천지의 이치를 막을 수는 없다.사백오십 계단에 도달했을 때 백호는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의식을 잃은 것은 시험이 끝났다는 신호였고 백호는 곧 깨어났다.“겨우 사백오십 계단이라니
서요산 검객들이 모두 그 무인의 정체를 궁금해하자 진인도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고 말했다.“저분은 구주왕 휘하의 화진 군신이자 국방부 대장 백호 장군이시다.”검객들은 모두 입이 벌어진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군신의 명성은 당연히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는 영웅이었으니까.“정말 구주왕 휘하의 군신이라니!”“역시 저런 굳센 의지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 수많은 전장을 누빈 명장다운 모습이다!” 서요산 검객들은 백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현재 백호는 이미 삼백이십 계단을 돌파한 상태였다. 백호가 혼자 주목을 독차지하는 걸 본 청해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처음 백 계단은 청해도 육신의 힘으로 버텼다. 하지만 백 계단을 넘자 육체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워졌다. 그는 술법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평소 쓰던 빙신전의 신술이 계단 위 술법에는 통하지 않았다.“역시 화진의 서요산 검종은 보통이 아니구나. 이 등천로에선 일반 술법이 먹히지 않으니 천지 영기에 대한 깨달음으로 맞설 수밖에 없겠어.” 청해는 몸을 감싸고 있던 현빙을 거두고 오로지 자신의 속성 영기로만 버티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막상 올라 보니 이 등천로가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실감했다. 이백 계단쯤 오르자 벌써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계단마다 한계를 시험하는 느낌이었다. 올려다보니 백호는 여전히 계단 위로 나아가고 있었다. 청해도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서요산 검객들도 청해의 수준을 알아보고 속삭였다. “저 이역인은 정말 대단한 내력의 소유자다! 기운이 이미 진인 급에 가까워! 극 신급 절정의 수련자임이 분명해!”이에 대해 진인은 신비롭게 꾸미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저자는 곤륜 구역 빙신전의 부 전주 청해다. 경지가 매우 높지. 지금 빙신전은 우리 화진에 귀속되었고 청해 역시 구주왕 휘하의 부하가 되었다. 얼마 전 서울 방어전에서 청현과 목숨까지 걸고 사투를 벌인 끝에 죽을 고비를 넘겼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