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련금안.봉왕팔기 중 제3기.이것은 정우를 불태울 때 잠깐 보여준 적 있었다.그리고 윤구주는 지금 이 신통을 진정으로 시전하려 했다.금빛 연꽃이 점점 더 눈부셔지면서 주변 온도도 점점 높아졌다.그것은 불이 타오르는 것보다 더욱 무시무시한 화끈거림이었다.공기마저 불타는 것 같았다.화련금안이 뒤덮인 범위 내에서 모든 것이 뜨거운 화염으로 타올랐다.땅과, 화초와, 나무가 전부 자연적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딱딱한 돌멩이조차 서서히 녹기 시작했다.“세상에... 이게 무슨 신통인 거지?”가장 처음 말한 사람은 여씨 일가 족장이었다.그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불타는 땅과 녹는 자갈을 보았다. 그 순간 그는 완전히 겁에 질려서 뒤로 물러나며 허공에 떠 있는 검은 방울을 통제했다.“불이다!”“정우를 태워버린... 연꽃 화염이네!”“얼른 피해요!”뱀할매는 윤구주의 불꽃을 알아본 뒤 곧바로 뒤로 물러났다.짐승 가죽을 뒤집어쓴 전씨 일가 족장은 사납게 외쳤다.“시괴, 덤벼!”거인은 칼과 총에도 상처를 입지 않고 물과 불에 닿아도 멀쩡하다고 했다.전씨 일가 족장이 명령을 내리자 거인은 곧바로 윤구주를 향해 다시 돌진했다.그러나 윤구주는 이번에 시괴를 봐주지 않았다. 그는 차갑게 코웃음 쳤다.“이미 죽은 것이 감히 내 앞에서 건방을 떨어? 꺼져!”윤구주가 팔을 휘두르자 커다란 손바닥이 하늘에서 내려와 거인을 덮쳤다.쿵 소리와 함께 2미터 넘는 거인의 몸은 윤구주의 일격에 땅속으로 곤두박질쳐 더 이상 기어 나올 수 없게 되었다.“이젠 당신들 차례야!”윤구주는 천천히 얼굴을 들었다. 그의 두 눈에서 금빛 물결이 일렁였다.그의 동공에 연꽃 두 송이가 활짝 핀 것이 보였다.“연꽃이 피면 만물이 죽지. 내 화련금안 아래 살아남을 수 있는 건 없어.”윤구주는 차갑게 말했고, 두 눈동자에서 연꽃이 피었다.그 순간 그곳은 완전히 불바다로 변했다.그 불은 술법으로 인한 불이 아니라 진짜 도화였다.이 불은 물로도, 자갈로도 끌 수 없는 것이었다.
“당신 혼자 남았네.”윤구주는 신처럼 허공을 날아와 뱀할매 앞에 섰다.그의 두 눈동자에서는 아직도 찬란한 금빛 연꽃이 반짝이고 있었다.불쌍한 뱀할매는 고개를 들어 윤구주를 볼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그녀는 덜덜 떨면서 무릎을 꿇고 말했다.“살려주세요...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이제 와서 용서를 빌다니, 너무 늦었다는 생각 안 들어?”윤구주의 목소리는 차가웠다.“잘... 잘못했습니다... 절 한 번만 용서해 주신다면 뭐든 알려드리겠습니다...”뱀할매는 완전히 정복당해 윤구주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빌었다.윤구주는 그녀를 냉담하게 바라보며 말했다.“말해. 군형 삼마 중 살아 있는 놈은 어디 있어?”“그... 그는 이미 우리 4대 가족을 떠났습니다. 지금쯤 류씨 일가로 가고 있을 겁니다.”뱀할매가 떨면서 말했다.“군형 5대 가족 중 류씨 일가 말이지?”윤구주가 물었다.“맞습니다!”뱀할매가 떨면서 대답했다.윤구주는 그 말을 듣더니 눈동자에 서늘한 살기가 번뜩였다.“제가 해야 할 말은 다 했으니 제발... 제발 비천한 목숨을 살려주세요...”뱀할매는 바닥에 엎드려서 용서를 빌었다.윤구주는 그녀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말했다.“군형 5대 가족은 서남의 가장 큰 재앙이야. 그동안 5대 가족은 무고한 사람을 마구 죽이고 사람들을 감옥에 가두며 제멋대로 날뛰었지. 하지만 당신들은 모를 거야. 5대 가족은 일찌감치 화진의 제거 상대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는 걸. 그러니까 5대 가족을, 당신들을 죽이는 건 화진을 위해 재앙을 제거하는 셈이지.”윤구주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마쳤다. 그의 두 눈이 번쩍이는 순간 뱀할매의 몸에 연꽃 낙인이 찍혔다.낙인이 남자 뱀할매는 갑자기 몸이 통제할 수 없이 떨리기 시작했고, 곧 금빛 화염이 그녀의 입에서, 몸 안에서부터 타오르기 시작했다.“당신...”뱀할매는 그 말만 남긴 뒤 몸이 자연적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다.처절한 비명과 함께 그녀의 몸은 결국 여씨 일가, 전씨 일가 족장들과 마찬가지로
이제 5대 가족 중 류씨 일족만 남았다.게다가 군형 삼마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방지형은 아마도 류씨 일족과 함께 있을 것이다.연규비의 말을 들은 윤구주는 고개를 끄덕인 뒤 류씨 일족이 있는 곳으로 향하려 했다.두 사람이 떠나려는데 갑자기 왼쪽 땅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고개를 돌려 보니 전씨 일족 족장이 만든 거인이 내는 소리였다.그 거인은 윤구주에게 공격당해서 바닥에 파묻혔다.그런데 어떻게 올라온 건지 머리를 밖으로 내밀고 붉고 사악한 눈을 번뜩이며 윤구주를 향해 웅얼거리고 있었다.시괴는 전신이 구리로 뒤덮여서 칼이나 총으로는 몸에 상처가 남지 않았고 물과 불을 써도 소용이 없었다.윤구주의 화련금안으로도 그 시괴를 태워버릴 수 없었다.시괴는 여전히 윤구주를 죽이려는 듯이 그를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흥! 전씨 일족 족장이 남긴 괴물이었네. 구주야, 내가 이걸 없애버릴게!”연규비는 그렇게 말하면서 시괴를 없애버리려 했다.그런데 윤구주가 갑자기 말했다.“잠깐!”“왜?”연규비는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저 시괴 꽤 재미있네.”윤구주는 그렇게 말하면서 거인의 앞에 나타났다.거인은 온몸이 땅에 박혀서 머리만 내놓고 있었다. 붉고 사악한 두 눈동자에서는 잔인한 살의가 날뛰고 있었다. 시괴는 윤구주를 노려보면서 짐승처럼 울부짖는 소리를 냈다.“몸 하나는 정말 끝내주게 단단하네!”윤구주는 시괴를 바라보면서 말했다.윤구주가 시괴를 칭찬하자 연규비는 당황했다.“구주야, 설마 그 시괴를 거두려는 건 아니지?”“맞아, 그럴 생각이야. 이렇게 연시비술로 만들어진 구리 시괴는 무도 대가에 필적해.”윤구주가 말했다.“하지만 군형의 연시비술이라 이걸 만든 사람만이 조종할 수 있어. 이것 봐, 이 괴물 아직도 널 향해 으르렁거리고 있잖아. 너한테 항복하지 않아서 그래.”연규비가 말했다.윤구주는 웃었다.“틀렸어. 군형의 연시비술은 기괴하긴 하지만 진정한 꼭두각시 술법은 아니야. 그러니까 난 이 시괴의 영지를 깨워서
연규비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좋아!”윤구주는 책상다리를 하고 앉은 뒤 시괴의 영지를 깨우기 시작했다.영지를 깨우는 것은 최고의 술법 중 하나였다.영지를 깨우는 것은 자연의 규칙을 거스르는 힘을 죽은 것에 주입해 영지를 갖게 하는 것이었다.이런 영지는 산 사람의 지능보다는 낮았지만 어느 정도 분별력을 갖게 할 뿐만 아니라 평생 한 주인만 섬기게 된다.윤구주는 지금 이 시괴 거인의 영지를 깨울 생각이었다.윤구주는 두 손으로 수인을 맺었다. 그가 수인을 맺자 그가 앉은 곳에 큼직한 음양 도안이 생겼다.“음양 역행, 건곤 역행!”윤구주가 주문을 외우자 엄청난 기운이 삽시에 사방으로 퍼졌다.“영지여, 깨어나라!”윤구주가 손가락으로 시괴의 미간을 눌렀다.그 순간 발밑의 음양 도안에서 엄청난 힘이 시괴 거인의 미간으로 흘러들었다.조금 전까지 울부짖던 시괴 거인은 윤구주의 음양 역행의 힘이 미간으로 전해지자 눈동자의 살기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고 끝내는 빨갛던 두 눈이 정상으로 돌아왔다.심지어 울부짖지도 않았다.피부가 구리 피부인 걸 제외하면 정상인과 다를 바 없었다.한편 연규비는 윤구주가 음양 역행술을 시전하자 시괴 거인이 조용해지는 걸 보고 눈이 반짝거렸다.윤구주가 시괴 거인의 영지를 깨우고 있을 때, 멀리 벌거벗은 나무줄기 위에 온몸이 새까만 이상한 까마귀 한 마리가 가지 끝에 서서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그 까마귀는 일반 까마귀보다 더욱 컸고 동공은 적갈색이었다.까마귀는 눈앞의 광경을 지켜보다가 두 날개를 펴고 먼 야산을 향해 푸드덕거리며 날아갔다.윤구주에게서 십여 킬로미터 떨어진, 황폐한 산꼭대기 위에는 화려한 옷을 입은 절세 미녀가 꼼짝도 하지 않고 그곳에 서 있었다.그녀는 마치 타고난 황후처럼 그곳에 서 있었는데 기세가 아주 엄청났다.만약 국방부의 사람이 그곳에 있었다면 그녀가 바로 화진의 새로운 왕 문아름이라는 걸 알아봤을 것이다.이때 문아름의 뒤에는 두 사람이 서 있었다.한
“흥, 죽이든 죽이지 않든 이제는 쓸모없는 놈일 뿐이에요.”문아름의 입가에 지독한 미소가 걸렸다.노인은 덤덤히 웃었다.“네 말이 맞아. 지금 화진 사람들은 구주왕이 죽었다고 알고 있어. 지금 살아있다고 해도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지는 못할 거야. 하지만 워낙 실력이 뛰어난 놈이니 항상 조심해야 해.”노인이 다시 말했다.“할아버지, 그렇게 두려워할 필요가 있어요? 윤구주가 뭐가 그렇게 대단한데요? 당시 우리 문씨 일가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윤구주가 그렇게 쉽게 구주왕이 될 수 있었겠어요? 그리고 왜 이렇게 멀리 있어야 해요? 할아버지가 있는데 윤구주가 우리 기운을 눈치챌 수 있겠어요?”문아름이 내키지 않는 얼굴로 말했다.이 산은 여씨 일족 영지에서 십여 킬로미터 떨어져 있었다.문씨 일가의 노인이 그곳에 있는 이유는 윤구주에게 발각당하지 않기 위해서였다.문아름이 내키지 않는 얼굴로 말하자 노인이 덤덤히 말했다.“아름아, 네가 구주를 원망한다는 건 나도 알고 있어. 이것만 명심해. 윤구주는 한때 화진의 왕이었어. 심지어 봉왕팔기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구양진용결도 알고 있지! 만약 윤구주가 정말로 화가 난다면 나도 물러나야 할 정도야.”문아름은 그 말을 듣자 차갑게 코웃음 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됐어, 그만 짜증 내. 윤구주가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돼서 네가 윤구주에게 큰 불만을 품고 있다는 건 알아. 하지만 이 점을 명심해야 해. 너에게는 문씨 일가의 피가 흐르고 있어. 그러니까 넌 평생 윤구주와 잘 될 수 없어!”노인이 다시 한번 말했다.말을 마친 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여씨 일족 방향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중얼거렸다.“혈아야, 돌아와!”그의 말이 떨어지자 먼 하늘에서 검은색 까마귀가 깍깍대면서 멀리서 날아왔다.까마귀가 가까워지자 노인은 팔을 뻗었고 그 까마귀는 그의 팔뚝 위에 내려앉았다.까마귀가 팔뚝 위에 앉자 노인은 오른손으로 까마귀의 눈동자를 콕 찔렀다. 곧 까마귀의 빨간색 눈동자에서 화면이 튀어나왔다.화면 속에는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직접 윤구주를 죽일 생각은 없는 거예요?”문아름이 갑자기 노인에게 물었다.“내가? 당연히 없지.”“왜요?”문아름은 이해할 수 없었다.“내가 손을 쓴다면 곤륜의 그 괴물들이 분명 눈치를 챌 거야. 그리고 내가 손을 쓴다고 해도 윤구주를 죽일 수 있다는 보장은 없어. 그런데 내가 왜 그러겠어? 그리고 윤구주에게 그 영패만 없었어도 난 윤구주를 우리 문씨 일가의 사위로 삼았을 거야! 윤구주는 화진의 왕이었잖아!”노인이 중얼거렸다.할아버지의 말을 들은 문아름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여씨 일족 영지.음양 역행 기운이 사방에서 몰려들어 시괴 거인의 미간으로 들어갔다.얼마나 지났을까, 윤구주가 갑자기 손가락을 튕겼다.“영지, 깨어나!”의식이 끝나자 시괴 거인이 꼿꼿이 일어나 윤구주의 곁에 섰다.“구주야, 끝났어?”연규비는 그 광경을 보고 빠르게 달려왔다.“끝났어.”윤구주는 팔을 휘둘렀고 주변의 음양 역행 기운이 전부 체내로 돌아왔다.연규비는 아름다운 눈으로 의아한 듯 시괴 거인을 바라보았다.예전에는 짙은 시체 냄새를 풍기던 시괴 거인이 지금은 마치 산 사람처럼 윤구주의 곁에 꼿꼿이 서 있었다. 시체 냄새가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몸 전체가 예전과 달라졌다.눈에 띄는 구리 피부와 큰 키를 제외하고는 시체라는 걸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너무 빨리 변한 것 같은데.”연규비는 놀라워하며 말했다.윤구주는 웃으며 말했다.“내가 영지를 깨워줬으니 이제부터는 내 명령에 완전히 복종할 거야. 믿기지 않는다면 이걸 봐!”말을 마친 뒤 윤구주는 고개를 돌려 시괴를 향해 외쳤다.“이리 와!”그 말을 들은 시괴는 윤구주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 마치 충실한 종처럼 말이다.“오늘부터 내가 네 주인이야. 내가 살라고 하면 살고 내가 죽으라고 하면 죽어. 알겠어?”윤구주의 목소리가 시괴의 귓속에 천천히 울려 퍼졌다.영지가 생긴 시괴는 듣기 싫은 목소리를 냈다.“알겠습니다, 주인님!”시괴가 윤구주로 인해 영지가
시괴의 영지를 깨운 뒤 윤구주와 연규비는 그곳을 떠날 준비를 했다.두 사람이 동산을 데리고 여씨 일족 영지를 떠나자마자 윤구주는 안색이 어두워지며 번뜩이는 두 눈으로 먼 곳에 있는 벌거벗은 나뭇가지를 바라보았다.“왜 그래? 구주야?”연규비는 윤구주가 갑자기 멈춰서자 참지 못하고 물었다.윤구주는 대답하지 않고 차가운 얼굴로 그 나무를 바라보다가 한참 뒤에 갑자기 말했다.“뭔가가 우리를 감시하고 있었어.”“누구?”연규비는 화들짝 놀라며 경계심 가득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윤구주는 신념술을 발동했다. 엄청난 정신력이 마치 그물망처럼 주위를 뒤덮었다.신념술은 정신력을 감지하는 신통한 기술이다.윤구주는 곧바로 신념 사이에서 사악한 기운 하나가 그 벌거벗은 나뭇가지 위에 머물러 있었다는 걸 발견했다.그 사악한 기운을 찾은 윤구주는 안색이 차갑게 변하더니 날카로운 눈빛으로 먼 곳을 바라보았다.“찾았다! 규비야, 날 따라와!”말이 끝나기 무섭게 윤구주는 두 발로 땅을 살짝 구르더니 순식간에 십여 미터 떨어진 곳에 나타났다.연규비는 윤구주가 그곳으로 가자 서둘러 그를 따라갔다.동산은 아래에서 바쁘게 그들을 뒤쫓고 있었다.몇 분 뒤, 윤구주는 사악한 기운을 따라서 한 황폐한 산에 도착했다.그 산 주변에는 인적이 드물었고 그 산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었다.윤구주는 그곳에 도착한 뒤 순식간에 조금 전 문아름과 노인, 독고명이 있던 곳에 나타났다.연규비도 이때 날아왔다.“구주야, 찾았어?”연규비는 윤구주의 곁으로 온 뒤 서둘러 물었다.윤구주는 어두운 표정으로 잠깐 침묵하다가 말했다.“찾았어. 기운은 여기서 끊겼어.”“하지만 이 주위에는 사람이 없는 것 같은데?”연규비는 의아한 얼굴로 조용한 주위를 둘러보았다.윤구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갑자기 말했다.“엄청난 기운이야!”“뭐?”옆에 있던 연규비는 당황한 듯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윤구주의 표정이 점점 더 차가워졌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역시
“그들은 신경 쓰지 마! 그들이 정말로 나타난다고 해도 내가 이기면 되니까.”윤구주가 카리스마 넘치게 말하자 연규비는 고개를 끄덕였다.윤구주가 두려워할 강자가 이 세상에 있을까?신급 절정이라고 해도 윤구주는 그를 죽일 수 있었다.그는 과거 12대 신급 절정 중 최강자였기 때문이다....군형 5대 가족 중 마지막으로 류씨 일족만 남았다.류씨 일족은 구류족이라고도 불린다.소문에 따르면 구류족은 먼 옛날 치우 부족이었다고 한다.구류족은 5대 가족 중 가장 강했다.그들은 무신을 신봉하고 요술을 수련한다.그리고 구류족 중에는 신급 강자에 다다른 선조가 있었다.음산 산맥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원시 부족이 바로 구류족이었다.멀리 구류족 안에 구름처럼 높이 솟은 제단들이 보였는데 그 제단은 수십 미터에 달했다.게다가 위에는 구류족이 신봉하는 무신이 조각되어 있었다.윤구주가 황폐한 산에 나타났을 때 구류족에는 낯선 손님이 찾아왔다.두 팔로 검을 안고 있는, 아무런 감정도 없어 보이는 회색 옷을 입은 남자가 말이다.그의 얼굴은 초췌했고 몸은 단단했다.그의 몸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기운 때문에 생기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고 오직 어두운 살육의 기운만 느껴졌다.그가 바로 문아름 곁의 호위 독고명이었다.그는 독고 일가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이었다독고명은 구류족의 범위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었다.구류족 밖에 있던 십여 명의 경비원들은 멀리서 검을 든 낯선 남자가 갑자기 다가오자 빠르게 그에게로 달려갔다.“누구냐? 누가 감히 흉기를 들고 우리 구류족으로 들어오려는 거야?”몸집이 큰 구류족 경비원이 독고명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바위 같은 독고명은 천천히 무감정한 눈빛을 들어 또박또박 말했다.“난 방지형을 찾으러 왔다. 나와서 날 만나라고 해.”“방지형? 방지형이 누군데?”경비원은 당황했다.“군형 삼영이라 불리는 방씨 선배님이 아닐까요?”한 경비원이 입을 열었다.덩치가 큰 남자는 그 말을 듣고 움찔했다.“방 선배님?”방지형의
“저하,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그를 죽여야 합니까? 저자의 기운이 이토록 흉악한데 성수의 혈기로 진압할 순 없습니까?” 백호는 이미 싸우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안 된다. 너희 네 명이 함께라면 잠시나마 억누를 수는 있겠지만, 너희는 그저 성수의 정혈을 가졌을 뿐이니 마인을 완전히 없애려면 성수가 직접 나타나야 한다. 지금 이 세상에 성수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스럽다.”윤구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말을 마친 윤구주는 곧장 진요탑 쪽으로 향했다.백호와 임정설, 청해가 함께 가서 돕고자 했으나 장인 대진인이 그들을 가로막았다.“이 마인은 오직 구주만이 상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국주님, 곧 전투가 시작될 터인데 서요산의 진법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 호법의 중임을 몇 분께 맡기겠습니다.”장인 대진인이 임정설에게 경건하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좋다. 오늘 이 자리에서 목숨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저 마인을 죽이고야 말겠다.” 임정설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황자의 위엄을 한껏 드높였다.화진의 존망이 걸린 일이라면 임정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하지만 마기가 몰려와 서요산 전체를 뒤덮고 세상이 오직 흑백 두 가지 색깔만으로 변해버리며 그 끔찍한 살기가 강림했을 때 임정설마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떨렸다.“이 마인의 기운이 이렇게까지 무서울 줄이야.” 임정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마기로 가득 찼고 윤구주마저 그 기세에 눌리고 있었다.진요탑에서 흘러나온 마기는 실체가 되어 넘쳐흘렀다. 마기가 나타나자 서요산을 지키는 모든 검종 제자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어떤 제자는 순간적으로 십여 년을 늙어버렸다.수련이 부족하면 수명으로라도 채워야 하는 참혹한 상황이었다.웅웅.하늘에는 먹구름이 밀집했고 그 안에서 요괴의 번개가 끊임없이 터졌다.“이젠 영기조차 요기로 변하고 있다. 풍수 비술로 보건대 머지않아 이곳에서 요마가 출현하겠구나.” 임정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요산 외부에서 짙은 요기
도가는 인연이라는 두 글자를 대단히 중히 여긴다.그의 한 번의 인연, 한 번의 생각은 곧 만백성의 생사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윤구주가 정상에 오르자 앞서 온 다른 이들과는 달리 서요산 검종의 모든 이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여 깊은 존경을 표했다. 그들이 경배한 대상은 단순한 한 인간이 아니라 구주의 저하, 화진의 인황, 오방 천지의 주재자였다.“모두 일어나십시오. 제가 오늘 서요산에 온 이유는 오직 진요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진요탑 안의 마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문 씨 세가의 역심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마인을 죽여야만 문 씨 세가의 야심도 함께 근절할 수 있습니다.”윤구주는 서요산 검종의 모든 제자를 향해 엄숙하게 말했다.이번 서요산 행차의 목적은 바로 문 씨 세가의 역심을 뿌리째 뽑는 것이었다.검종 제자들이 앞장서 일행을 이끌었고 모두가 금정을 지나 뒷산으로 향했다.뒷산에 막 들어서자마자 음산한 기운이 얼굴을 스쳤다.후산 중앙에는 높이 오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산이 서 있었는데 그 산은 무려 구백구십구 개의 쇠사슬로 단단히 봉인되어 있었다.이 쇠사슬은 그저 평범한 사슬이 아니었다. 절반은 땅속의 지맥과 연결되어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하늘 높이 떠올라 천지의 영기를 끌어모으고 있었다.이런 수준의 봉인이라면 설령 윤구주 자신이 여기에 갇혀 있다고 해도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이처럼 견고한 고진마저 지금은 마인의 사기로 조금씩 부식되어 가고 있었다. 본래는 영기가 흘러넘치는 명산이었으나 지금은 온 서요산이 마인의 기운에 물들어 음침하고 괴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이 강렬한 악기운을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모두 얼굴을 찌푸렸다.솟구치는 사기를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찌푸렸다.최근 몇 대에 걸쳐 입종한 서요산의 제자들은 이런 마인의 사기와 요마의 위협 속에서 수련해야 했다.천지의 영기조차 마인의 기운에 오염되어 수련에 큰 지장을 주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남은 현
이 말을 듣자 모든 이들은 천 년 전 마지막으로 나타난 그 성인이 바로 서요산 검종에서 나왔음을 깨달았다.“짐은 서요산 검종의 선대 종주께서 우화등선하셨다고만 들었는데 그저 떠도는 신화 속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더니 은 성인의 경지에 이르신 것이었군.” 임정설이 깊은 감탄과 함께 말했다.구백 계단 윤구주는 이미 전설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하지만 그 전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구백삼십 계단 사십 계단을 오르면서 윤구주의 발걸음은 오히려 더욱 가벼워졌고 그가 세우는 기록은 사람들의 상식을 계속해서 뒤흔들었다.구백팔십 계단을 지나 정상까지 겨우 십여 계단만 남은 그 순간 윤구주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구백구십구 계단에 이르러 결국 완전히 멈추었다.드디어 한계에 도달한 것인가?모두가 숨을 죽이고 윤구주를 지켜봤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분명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시험일 터였다.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십여 분을 견뎌냈다. 사람들은 그가 언제 다시 계단을 오를지 초조하게 기다렸다.마침내 윤구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됐습니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시험을 포기하지요.”말을 마치고 계단에서 내려서는 순간 청석 계단 아래에서 강력한 영기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쳤고 곧바로 서요산을 감싸던 어둠의 기운을 깨끗이 몰아냈다.오랫동안 음울했던 서요산 상공은 순식간에 환해졌고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맑은 하늘이 펼쳐졌다.서요산의 모든 이들은 충격에 빠져 넋을 잃었다.그제야 그들은 윤구주가 왜 그토록 여유롭게 올라올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서요산의 청석 계단이 가진 진법의 힘을 계속해서 억누르고 있었다.“참으로 대단하신 신위군요! 우리 서요산의 청석 진법마저 제압하셨다니! 마지막 한 걸음을 분명 넘으실 수 있었을 텐데 혹시 강제로 넘었다가 진법이 견디지 못해 영기가 새 나가고 진법이 무너져 진요탑까지 영향을 미칠지 걱정하신 건 아닌가요?” 장인 대진인이
도법의 깊이는 워낙 심오해서 임정설조차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다.“쉽게 말씀드리자면 구주는 천지의 운기를 완전히 장악한 데다가 하늘이 직접 영광을 내리신 거죠.” 장인 대진인이 말했다.임정설은 이 말을 듣고 비로소 이해한 듯 말했다.“대진인의 말은 윤구주가 바로 하늘이 점지한 사람이라는 뜻인가?”“맞습니다. 우리 화진 사람들은 운명의 갈림길에 서면 본심에 따라 도법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깁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사는 다하고 하늘의 뜻을 따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윤구주는 분명 큰 복을 타고났지만 그 엄청난 복을 감당할 힘도 필요합니다.”대진인이 설명했다.말이 끝날 무렵 윤구주는 이미 육백삼십 계단을 거뜬히 올라와 있었다.한 걸음도 멈추지 않고 더욱 확고한 걸음으로 계속 전진했다.그의 발걸음마다 천지의 기운이 응축되었다.어느 순간 서요산의 계단조차 윤구주의 기세를 가두지 못했다. 그는 마치 천지를 밟으며 오르는 듯했다.곧이어 그는 칠백 계단마저 돌파했다.칠백 계단이란 천 년 전 서요산의 전성기에도 극소수만이 도달할 수 있었던 경지였다. 지금 만약 윤구주가 구주왕이 아니라 일반 수련자였다면 이 기록만으로 서요산 전체가 들썩였을 것이다. 만일 윤구주가 서요산에 입문을 원했다면 서요산은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 그를 키웠을 것이며 서요산 검종의 다음 종주 자리는 당연히 그에게 돌아갔을 것이다.그러나 이미 칠백 계단에 이르렀음에도 윤구주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칠백오십 계단 팔백 계단 팔백오십 계단!그는 끊임없이 정상의 기록을 깨며 전설을 써 내려갔다.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윤구주 앞에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을 것 같았다. 이쯤 되자 장인 대진인조차 감히 그를 함부로 평가할 수 없었다.왜냐하면 자신도 과거에 겨우 칠백 계단에 그쳤으니 팔백 계단을 오른 사람을 감히 평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윤구주는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마치 천지를 흔들어 이 강산을 뒤엎어버리겠다는 기세였다.그리고 마침내 구백 계단에 이르렀다.“구백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
진인들은 말했다. 임정설이 만약 집념을 내려놓는다면 육백 계단까지도 오를 수 있을 거라고.장인 대진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집념을 놓는다면 더 이상 화진의 국주가 아니지. 바로 이런 끈질긴 의지가 있기에 그분이 화진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다른 진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운명이란 그런 법이다. 아마도 집념을 놓았다면 임정설은 오백 계단조차 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이때 임정설은 아직 남아 있는 절반의 계단을 바라보며 씁쓸히 미소 지었다. “어쩌면 여기서 멈춰야겠구나.”임정설은 다시 뒤를 돌아 윤구주를 바라보았다. 그가 자기 자식이자 동료처럼 여기는 윤구주가 과연 몇 계단을 오를지 궁금했다.깊은 생각에 잠긴 임정설이 곧바로 말을 꺼냈다.“구주야 이제 네가 올라서 봐! 화진의 구주왕다운 실력을 보여줘! 적어도 나보다는 못하면 안 되지 않겠냐?”아래에 서 있던 윤구주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원래 그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국주의 바람이라면 흔쾌히 도전할 마음이었다.“명 받들겠습니다!” 윤구주는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계단을 밟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기 시작했다.구주왕이 등천로에 도전했다는 소식에 서요산 검종 전체가 술렁였다.검객은 물론이고 잡일을 돕는 제자들까지 모두 금정에 모여들어 그의 모습을 보고자 했다.심지어 하늘 위 어둑한 구름 사이에서도 한 쌍의 법안이 열렸다. 바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 환영이었다.임정설이 먼저 정상에 올랐고 장인 대진인을 포함한 일곱 진인과 서요산의 모든 제자들은 화진의 황자를 향해 몸을 숙여 예를 갖추었다.“모두 일어나시오. 그대들이 없었다면 화진은 이미 혼란 속에 빠졌을 것이오. 진정 국가와 화진을 위해 헌신한 것은 바로 그대들입니다.” 임정설은 화진의 모든 백성을 대표할 순 없지만 왕실을 대표하여 임 씨 일족의 지도자로서 서요산 검종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국주께서 과찬입니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묵묵히 힘썼을 뿐입니다. 화진의 백
일곱 진인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들은 국주가 이미 등황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사백 계단은 쉽게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과연 그들의 예상대로 임정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오르며 오백 계단을 가볍게 밟아 올랐다. “오백 계단을 밟으면 등황의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 일곱 진인 중에서도 오직 장인 대진인께서만 과거에 오백 계단에 오르셨고, 현재 서요산에 살아계신 유일한 오백 계단 수련자이십니다. ” 한 진인이 감탄하며 말했다.이 말을 듣자 옆에 있던 백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선임 도사님 그러면 그 도사님도 황자란 말씀입니까? ”“하하! 우리 서요산에서는 외부의 그런 칭호를 쓰지 않아요. 우리 사이에서는 그를 반신이라고 부릅니다.” 진인들이 웃으며 말했다.청해가 옆에서 덧붙였다. “서요산 검종에서 말하는 반선이 황자를 뜻하는 거야. 근데 그 서요산 반선 진짜 어마어마하게 강한 인물이거든. 예전에 곤륜 구역에서 귀한 영약 찾으러 들어왔다가 우리 빙신전 전주랑 빙황 두 명이 같이 상대했는데도 둘 다 거의 죽을 뻔했어. 결국 아사 신전한테까지 도움 요청해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지.”“뭐라고?”백호는 놀라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진짜 그렇게 강한지 의문이 들었다.일곱 진인 중 가장 나이 많은 그 진인은 백호의 단순한 반응에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그가 바로 그 반선이었다. 다만 백호가 워낙 세상 물정에 둔감하여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놀라기만 하고 있었다.그사이 임정설은 이미 오백오십 계단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이 단계에 이르자 임정설도 거의 극한에 도달했다.“역시 직접 올라와 봐야 이 압력을 제대로 실감하는구나! 오백사십 계단까진 무리 없었는데 오백오십 계단에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구나.”지금 임정설을 압박하는 것은 단순한 술도의 압력만이 아니었다.과거의 온갖 기억들이 마장이 되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일곱 진인은 모두 임정설의 기운이 혼란스러워진 것을 느꼈다.“장인 사형, 국주님께서 심마에 걸리셨군
청해의 눈길이 자주색 도포를 입은 진인에게로 향했다.서요산검종에서 종주를 제외한 나머지 일곱 명의 진인이 가장 높은 수련을 가지고 있으며 평소 종문 내의 모든 일은 이들 일곱 명이 책임지고 있다.기세는 마치 대강의 파도가 넘실대듯 깊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산과 숲처럼 무한히 이어져 있었다. 그의 수련은 깊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서요산 7대 진인의 수련이 극 신급 절정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그 말이 너무 가볍게 들리네요. 귀하의 수련은 적어도 극 신급 절정 후반에 다다랐군요.”청해는 세 명의 진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몸을 굽혔다.“서요산의 전통은 천 년을 자랑하며 그 깊이는 변함없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반면 곤륜 구역은 스스로 신을 자처한 이후로 계속해서 내분을 일으켰습니다. 수련을 통해 세상을 떠난 후 도를 깨닫는다는 말처럼 곤륜 구역은 천하의 영기와 천물을 흡수했지만 제 생각에는 도를 얻지 못한 곳입니다. 지금 당신이 화진에게 올바른 수를 두는 것은 맞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극 신급 절정 후반도 절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한 진인이 답례하며 말했다.그때 몇몇 사람들은 서요산 검객들의 함성에 이끌려 사방을 살폈다. 백호가 사백 계단을 올라갔다는 소식이었다.“대단한데요. 서요산이 전성기였을 때도 사백 계단을 오른 이는 드물었어요. 우리 몇몇 진인들도 입문 시에 사백 계단을 넘은 적은 없었죠.”몇몇 진인들이 칭찬했다.이는 백호가 미래에 매우 큰 가능성을 지녔음을 의미했고 적어도 극 진경 후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극 진경 후반은 곤륜 구역에서 신전의 전주가 될 수 있는 실력이다.지금 사백 계단에 오른 백호는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완전히 의지로 버티며 강력한 정신력으로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다.그러나 아무리 강한 운명을 지녔다 해도 천지의 이치를 막을 수는 없다.사백오십 계단에 도달했을 때 백호는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의식을 잃은 것은 시험이 끝났다는 신호였고 백호는 곧 깨어났다.“겨우 사백오십 계단이라니
서요산 검객들이 모두 그 무인의 정체를 궁금해하자 진인도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고 말했다.“저분은 구주왕 휘하의 화진 군신이자 국방부 대장 백호 장군이시다.”검객들은 모두 입이 벌어진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군신의 명성은 당연히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는 영웅이었으니까.“정말 구주왕 휘하의 군신이라니!”“역시 저런 굳센 의지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 수많은 전장을 누빈 명장다운 모습이다!” 서요산 검객들은 백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현재 백호는 이미 삼백이십 계단을 돌파한 상태였다. 백호가 혼자 주목을 독차지하는 걸 본 청해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처음 백 계단은 청해도 육신의 힘으로 버텼다. 하지만 백 계단을 넘자 육체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워졌다. 그는 술법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평소 쓰던 빙신전의 신술이 계단 위 술법에는 통하지 않았다.“역시 화진의 서요산 검종은 보통이 아니구나. 이 등천로에선 일반 술법이 먹히지 않으니 천지 영기에 대한 깨달음으로 맞설 수밖에 없겠어.” 청해는 몸을 감싸고 있던 현빙을 거두고 오로지 자신의 속성 영기로만 버티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막상 올라 보니 이 등천로가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실감했다. 이백 계단쯤 오르자 벌써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계단마다 한계를 시험하는 느낌이었다. 올려다보니 백호는 여전히 계단 위로 나아가고 있었다. 청해도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서요산 검객들도 청해의 수준을 알아보고 속삭였다. “저 이역인은 정말 대단한 내력의 소유자다! 기운이 이미 진인 급에 가까워! 극 신급 절정의 수련자임이 분명해!”이에 대해 진인은 신비롭게 꾸미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저자는 곤륜 구역 빙신전의 부 전주 청해다. 경지가 매우 높지. 지금 빙신전은 우리 화진에 귀속되었고 청해 역시 구주왕 휘하의 부하가 되었다. 얼마 전 서울 방어전에서 청현과 목숨까지 걸고 사투를 벌인 끝에 죽을 고비를 넘겼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