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규비는 수십 킬로미터 밖에서 들려오는 발소리를 듣고 당황했다.“구주야, 이렇게 멀리 있는데도 들리는 거야?”그녀는 깜짝 놀란 눈으로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윤구주는 그곳에 우뚝 서 있었다. 출중한 그에게로 바람이 불어왔다. 그는 마치 신처럼 허공에 서 있었다.“술법의 끝은 절정의 근원이지. 내 신념술은 발동되면 자연의 소리가 들릴 뿐만 아니라 길흉도 점칠 수 있어. 겨우 이 정도 위험은 충분히 감지할 수 있어.”카리스마 넘치게 말한 뒤 윤구주는 허공에서 내려왔고, 연규비는 다급히 그를 따라서 내려왔다.“구류족에서 먼저 죽으려고 찾아왔으니 그들을 찾아가는 수고를 덜었네.”윤구주는 천천히 말한 뒤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다.윤구주가 책상다리를 하자 연규비도 묵묵히 그의 곁에 앉았다....윤구주와 수십 리 떨어진 음산 산맥의 깊은 곳에는 많은 사람이 윤구주가 있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그들은 구류족이었다.과거에는 노기등등했던 구류족이 지금은 서리 맞은 가지처럼 다들 풀이 잔뜩 죽어서 사기가 떨어진 상태였다.심지어 가장 앞에 있던 구류족 족장도 안색이 좋지 않았다.“방지형 씨, 당신이 건드린 그 녀석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강해요? 혼자서 4대 가족을 없앨 정도로?”얼마 뒤, 구류족의 한 장로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는 두 눈을 부릅뜬 채 화가 난 얼굴로 군형 삼마 방지형을 노려보았다.방지형의 입가에 쓴웃음이 걸렸다.머릿속에 윤구주가 그날 시전했던 천둥이 떠오르자 그는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네...”그 말에 구류족의 다른 장로가 곧바로 말했다.“그럴 리가요. 혼자 군형 4대 가족을 없앴다고요? 설마 마귀인가요?”“마귀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실력이 신급 경지 이상이에요.”방지형이 약한 목소리로 말했다.방지형의 말을 듣자 구류족 장로들은 안색이 하나같이 좋지 않았다.“다들 걱정할 필요 없어요. 오늘은 내가 있으니까. 그 자식이 뭐 얼마나 대단하길래 감히 우리 군형 5대 가족을 상대해?”그 말을 한 사람은 구류족 족장이었다.
족장의 말에 장로는 흠칫하면서 먼 곳의 숲으로 시선을 옮겼다.무성한 숲속에는 옅은 안개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심지어 숲속의 새들의 지저귐과 벌레들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그저 쥐 죽은 듯 고요함과 억눌린 듯한 분위기뿐이었다.“족장님, 왜 앞의 숲속에서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걸까요?”옆에 있던 장로는 숲속에서 느껴지는 수상쩍음을 발견하지 못하고 물었다.“예전에 고서에서 한 사람의 살기가 극에 달하면 사절의 땅이 생긴다는 글을 본 적이 있어. 이 광경을 내가 실제로 보게 될 줄이야!”구류족 족장은 눈앞의 숲을 물끄러미 바라봤다.족장 옆의 장로는 다시금 고개를 들어 눈앞의 숲을 바라보며 말했다.“사절의 땅이란 아무런 생명체가 없는, 지옥과도 같은 땅을 가리켜. 그 사람이 있는 곳 주위의 모든 생명체가 두려움에 떨다가 사라진다고 해. 그것이 바로 사절의 땅이야.”그 말에 장로는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그는 눈이 휘둥그레진 채 멀리 있는 숲을 바라봤다.“이번에는 진짜 고수를 만난 듯해.”구류족 족장은 음산하게 말한 뒤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다들 전투 준비를 해!”그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구류족 사람들은 일제히 허리춤에서 검을 빼 들었고, 다들 큰 적을 마주한 사람처럼 앞을 바라봤다.구류족 족장은 전투를 준비하라고 명령을 내린 뒤 한기 어린 눈빛으로 숲속 깊은 곳을 바라보았다. 그는 갑자기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다들 날 바짝 따라!”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그의 앞에서 갑자기 사악한 기운이 넘실댔다. 그 사악한 기운은 방패처럼 그들의 몸 주위를 둘러쌌다.그렇게 그는 수백 명의 사람들을 데리고 사절의 땅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모두가 사절의 땅에 들어섰을 때, 숲 전체에서 암울한 기운이 퍼졌다.마치 숲이 아니라 지옥인 것처럼 말이다.칼로 베는 듯한 섬뜩한 살기를 제외하면 절망의 기운뿐이었다.“족장님... 어서 보세요. 앞에... 사람이 있어요!”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족장 뒤를 따
군형 삼마 방지형이 드디어 윤구주를 알아봤다. 구류족 사람들과 신급 강자인 구류족 족장은 윤구주에게로 시선을 옮겼다.윤구주는 책상다리를 하고 산처럼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다들 경악하고 있을 때 윤구주의 차가운 목소리가 사람들의 귓속을 파고들었다.“이 자식, 드디어 나타났네!”윤구주가 갑자기 두 눈을 번쩍 떴다.공간이 격렬히 흔들렸다.엄청난 살기가 그의 눈동자에서 발사되어 공간 전체를, 그리고 방지형을 감쌌다.군형 삼마인 방지형은 저도 모르게 몸이 떨렸다.“정말... 정말 너였어!”방지형은 턱이 덜덜 떨렸다. 그의 눈동자에서 엄청난 두려움이 보였다.윤구주가 차갑게 말했다.“강성에서 너희 세 명이 채은이를 해쳤어. 오늘 난 그 빚을 갚으러 온 거야!”윤구주의 말을 들은 방지형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이 자식, 내가 널 두려워할 것 같아? 오늘 이곳은 서남 군형이야. 너 혼자서 우리 일족을 상대할 수 있겠어?”“족장님, 저 자식이 4대 가족을 몰살한 놈입니다. 오늘 저희가 함께 힘을 합친다면 자식을 죽일 수 있을 겁니다.”방지형은 갑자기 고개를 돌려 구류족 족장에게 말했다.백발이 성성하고 눈이 희끄무레하며 지팡이를 짚은 구류족 족장은 처음부터 윤구주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그는 정신력으로 윤구주의 실력을 파악할 생각이었다.그러나 왠지 모르게 정신력으로 윤구주를 살폈을 때 윤구주의 몸은 텅 비어 있었다. 그의 기운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이러한 상황에 구류족 족장인 그는 긴장되기 시작했다.그는 침묵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넌 대체 누구야? 왜 우리 군형 사람들을 죽이려는 거야? 그것도 이렇게 많은 사람을 말이야!”구류족 족장은 윤구주에게서 뭔가를 알아내고 싶었다.그러나 윤구주는 차갑게 말했다.“쓸데없는 말은 하지 마. 죽고 싶으면 그냥 빨리 죽어!”그 말에 족장의 안색이 달라졌다.그는 비록 윤구주의 실력이 두려웠지만 그래도 한 일족의 족장이었다.그래서 윤구주의 말을 듣자 그는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거만한 자식
“저건 뭐죠?”한 구류족 장로는 자신의 요술이 동산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자 저도 모르게 소리를 냈다.“젠장! 전씨 일족에서 만든 시괴인 것 같아요!”눈치가 빠른 다른 장로가 갑자기 말했다.“뭐라고요? 전씨 일족이요?”“전씨 일족의 비술을 저 자식이 어떻게 손에 넣은 거죠?”구류족 족장 네 명은 완전히 넋이 나갔다.아무도 전씨 일족의 시괴가 어쩌다가 윤구주에게 충성을 바치게 됐는지 알지 못했다.모두들 경악하고 있을 때 동산의 목에서 갑자기 야수 같은 울부짖음이 들렸고, 곧이어 동산은 마치 표범처럼 눈앞의 구류족 장로 네 명에게 달려들었다.“조심해요!”네 사람은 동산이 야수처럼 달려들자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면서 빠르게 물러났다.그중 두 명은 검은색 부적 여러 장을 꺼내 들었다.그리고 다른 한 명은 수인을 맺었고, 귀신들이 맹렬하게 동산을 공격하며 동산을 막으려 했다.그러나 동산은 시괴이자 이미 죽은 몸이라 이런 요술을 두려워할 리가 없었다.부적들이 동산의 몸에 붙어서 폭발했지만 온몸이 구리로 뒤덮인 동산은 멀쩡했다.부적이 아무리 폭발해도, 귀신들이 아무리 공격해도 동산은 야수처럼 네 장로에게 달려들었다.네 사람은 완전히 충격을 받아 다시 물러났다.그러나 그들은 동산의 전투력을 얕봤다.비술로 만들어진 시괴의 내공은 무도 대가 경지였다.게다가 윤구주가 시괴의 영지를 깨운 뒤로 동산의 내공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동산은 펜치 같은 다섯 손가락으로 미처 후퇴하지 못한 키 작은 장로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 장로는 새된 소리를 지르면서 반박하려고 했으나 동산이 두 손으로 잡고서 그 장로를 반으로 찢어버렸다.피가 흩날렸다.산 사람이 동산에 의해 몸이 찢겼다.그 광경에 현장에 있던 구류족 사람들은 전부 몸을 흠칫 떨었다.너무나 잔악무도하고 무자비했다.동산은 장로 한 명을 죽인 뒤 그 시체를 버리고 두 번째 장로를 향해 달려들었다.두 번째 장로는 완전히 겁에 질렸다. 그가 두 손으로 수인을 맺자 짙은 안개가 그의 주위에 나타나기
“족장님이 드디어 나섰어요!”“빌어먹을 외부인 같으니라고, 넌 죽게 될 거야. 우리 족장님은 무려 신급 강자라고!”뒤에 있던 구류족 사람들은 족장이 시괴 동산을 힘으로 내리누르자 다들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말했다.심지어 군형 삼마 방지형의 눈동자에도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동산은 바닥에 쓰러졌지만 죽지는 않았다.분노에 찬 동산은 울부짖으며 다시 일어나서 싸우려 했다.“동산, 물러나!”이때 윤구주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동산은 윤구주의 명령을 듣자 낮게 으르렁거리더니 정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말했다.“네, 주인님!”곧 시괴 거인은 정말로 윤구주의 뒤로 물러났다.“어머, 다들 봤어요? 전씨 일족의 시괴가... 말을 했어요!”“게다가 저 자식을 주인님이라고 불렀어요!”“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주변에 있던 구류족 사람들은 다들 눈이 휘둥그레진 채로 믿을 수 없다는 듯 윤구주의 뒤로 물러난 시괴 동산을 보았다.시체가 어떻게 말을 하는 걸까?게다가 윤구주를 주인님이라고 부르다니.“이 자식, 대체 무슨 사악한 술법을 썼길래 전씨 일족의 연시 시괴가 말을 하고, 널 주인이라고 부르는 거야?”구류족 족장조차도 눈이 휘둥그레져서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윤구주를 바라보았다.“당신은 알 자격이 없어! 당신은 이것만 알면 돼. 이런 대단한 술법은 당신 같은 개미가 알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말이야!”신급 강자인 구류족 족장은 윤구주에게 무시당하자 단단히 화가 났다.“이 자식, 언제까지 그렇게 건방을 떠는지 지켜보겠어. 요술, 검우!”구류족 족장은 호통을 치더니 매섭게 말했다.검은 마기가 먹구름처럼 그의 몸 주위로 몰려들었다. 이 마기들은 어둡고 사악했다. 그것들은 나타나자마자 류산처럼 모든 걸 부식했다.구류족 족장은 들고 있던 지팡이로 허공에 기괴한 주술을 적었다. 그 주술이 나타나자 그는 검은 기운을 가리켰다.순간 검은 기운이 검은색의 검날로 변했다.검은색 검날이 빽빽이 나타나자 구류족 족장이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가!
엄청난 위력의 검은 하늘과 땅을 가를 듯이 공간을 찢고 공기를 찢었다. 그 검은 마치 모든 걸 파괴할 것처럼 윤구주를 향해 날아들었다.그 검이 날아드는 순간, 윤구주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허공에서 빠르게 떨어지는 암흑의 검을 바라보면서 냉소를 지었다.“겨우 이거야?”윤구주는 그렇게 말하면서 큰 손을 움직여 방패를 치웠다.그러고는 마치 별똥별처럼 빠르게 하늘을 날아올라 자기 육체로 검에 맞섰고, 사람들은 그런 그를 눈이 휘둥그레진 채로 바라봤다.그 순간, 구류족 사람들은 전부 의아했다. 공격을 퍼부은 구류족 족장 또한 멍해졌다.그의 암흑의 검은 신과 악마를 베는 힘을 가졌다.그런데 눈앞의 윤구주는 방패를 치웠을 뿐만 아니라 맨몸으로 검에 맞섰다.죽으려고 그러는 걸까?“그래, 그렇게 죽고 싶다면 내가 이뤄주지.”구류족 족장이 다시금 지팡이를 휘둘렀다.허공에서 검게 불타오르던 검은 쿵 소리와 함께 다시 한번 기세가 폭발하면서 윤구주를 향해 날아들었다.다들 윤구주가 암흑의 검에 베여 죽을 거로 생각했다.군형 삼마 방지형도 같은 생각이었다.그러나 뜻밖에도 암흑의 검이 곧 닿으려는 순간, 윤구주가 큰 손을 뻗었고 곧 쿵 소리와 함께 거대한 손바닥이 떨어지려는 암흑의 검을 붙잡았다.‘뭐지?’그 광경에 구류족 사람들은 경악했다.특히 구류족 족장은 큰 충격을 받았다.윤구주는 거대한 손바닥으로 암흑의 검을 쥐더니 손바닥을 움직였고, 곧 철컥 소리와 함께 암흑의 검이 허공에서 부러졌다. 구류족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그 광경을 바라보았고 윤구주는 갑자기 손을 휘둘렀다.부러진 암흑의 검이 놀라운 속도로 구류족 족장과 그의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 날아들었다.그 순간 구류족 족장은 새된 소리를 지르면서 빠르게 몸을 피했다.그는 피했지만 그의 뒤에 있던 수백 명의 구류족 사람들은 그렇게 운이 좋지 못했다.부러진 암흑의 검이 추락하면서 백여 명의 구류족 사람들이 검의 기운에 크게 다쳐서 죽었다.다른 수십 명은 다치지는 않았지만 몸에 검은색 요기가
윤구주의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암부의 세 사람, 민규현, 정태웅, 천현수 모두 대가 수준으로 구류족 족장을 죽일 수 있었다.구류족 족장은 사악한 요술을 이용해 지름길을 갔기 때문이다.그러니 윤구주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10개국 간의 전쟁에서 12명의 신급 절정 경지의 사람들이 윤구주를 포위하고 공격했을 때 윤구주는 무려 6명을 연달아 죽였다.게다가 윤구주는 당시 기린화독에 당한 상태였다.기린화독에 당하지만 않았어도 10개국에서 출동한 12명의 신급 절정 강자 모두 윤구주에게 죽임당했을 것이다.그러나 눈앞의 구류족 족장은 이러한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그리고 그는 눈앞의 사람이 어떤 신분인지도 몰랐다.구류족 족장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윤구주를 바라보며 말했다.“설... 설마 너도 신급 강자야?”윤구주는 웃었다.“신급? 겨우 신급이 다 뭐라고.”그 말에 구류족 족장은 큰 충격을 받았다.“불가능해! 말도 안 된다고! 화진은 현재 4대 고대 무술 가문과 속세를 벗어난 가문들을 제외하면 그런 수준에 도달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넌 대체 누구야?”구류족 족장이 화를 내면서 소리를 질렀다.윤구주가 대답했다.“내가 말했듯이 군형 5대 가족은 내게 아무것도 아니야. 내 이름을 당신은 평생 알 자격이 없어!”윤구주의 말에 눈앞의 구류족 족장은 단단히 화가 났다.“이 자식, 건방지긴! 오늘 내가 정혈을 태우는 한이 있더라도 꼭 널 죽일 거다!”구류족 족장은 그렇게 고함을 지르면서 가슴팍을 쳤다. 순간 자색의 정혈이 그의 입에서 토해졌다.그 정혈은 곧바로 사악한 기운을 내뿜기 시작했다.그것은 술법을 배운 사람이 평생 모아둔 정혈이었다.그 피를 다 쓰게 된다면 신이라고 해도 살릴 수 없었다.지금 구류족 족장은 윤구주를 죽이기 위해서 정혈까지 불태웠다.“내 피로 제를 지내오니 무신이시여, 모습을 드러내 주십시오!”구류족 족장은 귀에 거슬리는 목소리로 주술을 읊었고 곧 그의 주변으로 음산한 바람이 휘몰아치면서 팔뚝만 한 검은색의 마기가
그들은 두 눈에 흥분이 가득 차서 숭배하는 눈빛으로 암흑의 마신을 바라보았다.구류족 사람들이 암흑의 마신을 미친 듯이 환영하고 있을 때 오직 윤구주만이 같잖다는 표정으로 옆에 서 있었다.“이 자식, 오늘 난 내 피로 무신님을 소환했어. 이래도 내가 널 못 죽일 것 같아?”구류족 족장이 갑자기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곧 그는 몸을 돌려 뒤에 있는 거대한 무신을 향해 예를 갖추며 말했다.“존경하는 무신님! 절 대신해 이 빌어먹을 외부인을 죽여서 저희 군형 사람들의 복수를 해주십시오!”무신은 그 말을 듣더니 불타오르는 눈동자를 들었다.그의 눈동자는 지옥의 눈이었다.무신의 시선이 닿는다면 곧바로 정기를 전부 빼앗아버리게 된다.그러나 암흑의 무신이 윤구주를 바라볼 때, 윤구주도 갑자기 시선을 들었다. 금빛의 동공이 그의 지옥의 눈과 마주쳤다.쿵!두 개의 어마어마한 정신력이 부딪혔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지만 이 공간에서 폭풍이 몰아치듯, 천둥이 내리치는 듯했다.“겨우 인간 따위가 감히 이 신과 눈을 마주치려 해? 죽고 싶어?”오래되고 사악한 목소리가 갑자기 무신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는 윤구주 같은 일개 인간이 감히 신의 눈을 마주 보려 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듯했다윤구주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사악한 악령에 불과한 것이 감히 자기 자신을 신이라고 칭하다니, 우습군!”“이 자식!”암흑의 무신은 윤구주의 조롱에 화를 내면서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순간 엄청난 굉음이 들려왔다.그에게 밟힌 대지는 흔들리기 시작했고, 무수한 검은색 마기가 마치 밀물처럼, 기괴하고 날카로운 촉수의 형태를 띠면서 윤구주를 덮쳐들었다.윤구주는 온몸이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가 오른손을 휘두르자 금빛 현기가 순간 무형의 긴 검이 되었다.긴 검이 휘둘러지는 순간, 암흑의 무신이 보내던 검은색의 날카로운 촉수가 잘려서 먼지처럼 사라졌다.윤구주를 일격에 죽이지 못하게 되자 거대한 암흑의 무신은 갑자기 호된 목소리로 말했다.“인간아, 정말 네가 날 이길
임정설이 일으킨 이씨 가문의 기세조차 마물들에게 잠식당해 사라지고 있었다.청해는 말 그대로 처참한 상태였다. 이젠 자기 몸 하나 제대로 지킬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나마 임정설이 죽을 각오로 지켜주지 않았다면 진작에 목숨이 끊겼을 터였다. 결국, 화진의 국주가 자신의 목숨을 지켜준 것이다. 이 순간만큼은 죽는다고 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다음 생이 있다면... 화진 사람으로 태어나게 해줘. 그게 아니라면. 그냥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게 해줘... ”청해는 하늘을 향해 처절하게 외쳤다. 임정설은 고개를 번쩍 들고 한 번 더 울부짖었다. 그 울음은 황자의 기운을 불러왔고 서요산 일대의 천기와 섞여 거대한 진룡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황도기운과 진룡을 하나로 모든 요마를 베어낸다! ”그 역시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대로 더는 버틸 수 없다면 풍무기처럼 자신의 마지막 의지를 국운에 녹여야 할 것이다. 진요탑 안. 이 일대 세계 전체가 마기에 잠식되어 만물은 스스로 죽음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런 데 무명은 더 이상 흥분할 수 없었다. “하하! 인황이 뭐라고? 도를 얻은 건 나다. 나는 이미 진정한 길의 끝을 보았다. 내 의지는 구천 현천을 관통한다. 하늘도 날 감당할 수 없어. ”그 순간 하늘과 땅이 동시에 울컥하며 뒤틀렸다. 무언가 말도 안 되는 존재가 깨어나는 기운이었다. 이 작은 진요탑 속 공간조차 그걸 담아낼 수 없어 흔들리기 시작했다. “뭐야? ”무명이 눈을 치켜떴다. “또 뭘 하려는 거야? 설마... 윤구주 너 나를 봉인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네 실력으론 날 봉인 못 해. 아니, 가능하다 쳐도 목숨을 걸어야만 가능하지. 하지만 지금 넌 그 목숨을 걸어도 겨우 나를 세 손가락만큼 다치게 할 수 있을 뿐이야. 그 정도 피해라면 기꺼이 감수하지. 와봐, 날 얼마나 벨 수 있나 보자고. 병이 오면 장수로 막고, 물이 오면 흙으로 막는 법이지. 그러니 한번 보자고 구주왕이라는 놈의 마지막 발악이 어떤지. ”무
“인간마가 세상에 나왔는데, 대체 누가 막을 수 있겠냐. 왜 그 무게를 전부 화진이 짊어져야 하는데? 이건 너무 불공평해.”청해는 처음으로 곤륜영역에 혐오감을 느꼈다.그리고 그제야 윤구주가 말했던 위선의 신이라는 말이 단순한 수련의 이야기가 아님을 이해했다.그들은 입만 열면 도덕과 정의를 떠들지만, 정작 하는 짓은 불의 그 자체였다. 위선적이기 짝이 없었다.“아아아!청해무극! 지은살결!!”청해는 모든 정원을 끌어 올렸고, 심지어 음혼까지 태워버렸다.음혼이 하늘의 뇌격을 불러오자, 그의 기운 속에는 놀랍게도 정의로운 황기가 피어올랐다.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는 도에 들어선 것이다.그 수련은 폭발하듯 치솟아 극점 신경 후기에 이르렀고, 잠시나마 이성설과 맞먹는 기세를 뿜어냈다.“카! 이제야 좀 신 같은 포스가 나오네!”백호는 멀리서 엄지를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하지만 청해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백호는 원래 미친놈이었으니까.누구든 이 상황이면 절망했을 전황.하지만 백호는 처음부터 끝까지 전율로 들떠 있었다.그는 전투를 위해 태어났고, 결국 전장에서 죽을 운명이었다.그게 백호가 택한 길 죽음을 향한 도였다.세 사람 모두 이미 죽을 각오로 싸우고 있었다.살아남을 생각 따윈 없었다.마물들과 함께 미쳐 날뛰며 생사의 끝자락을 오갔다.진요탑.풍무기는 전사했다.이제 남은 건 윤구주 단 한 사람.그가 인간마와 맞서야 할 유일한 존재가 되었다.“윤구주! 풍무기는 죽었다. 이젠 네 차례야! 혼을 꺼냈다고 해서 날 이길 수 있다는 뜻은 아니야. 내 육신이 남아있는 이상, 나는 이미 성인의 경지에 올랐다. 지금의 반성 상태만으로도 네 인황 따위가 감당할 수는 없어. 그래, 네 선술은 순수하겠지. 그래서 네 육신엔 손댈 수 없지만 혼을 지워버리면 넌 끝이야. 마도무영,도파무극! 혈음마도, 현세에 나타나라!”그의 손에 한 자루의 절세마도가 출현했다.그 칼끝에서 피의 바다가 솟구치고, 살기는 윤구주의 황기조차 압도했다.이런 마도를 길러내기 위
잠금요탑 밖, 무너졌던 마기가 흩어지자 서요산 검종 제자들 사이에서 울음이 터졌다. 500년 만에 다시 햇살을 본 그 순간 꾹꾹 눌러왔던 감정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다. 서요산은 그 오랜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도움 없이 혼자서 마를 억눌러왔다. 그 현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났다. “무명이 죽은 건가? ”장인대진인이 순간 멍해졌지만 곧 신념술로 본 광경에 얼굴이 굳어졌다. 귀물들이 미친 짐승처럼 날뛰며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산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아직 끝난 게 아니야. 이제부터가 진짜다. 무슨 일이 있었든 간에 윤구주가 무명의 목에 칼을 들이댄 건 확실해. 지금이 바로 마지막 승부의 시점이다.”말이 끝나자마자 흩어진 마기가 다시 거칠게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마기가 응집되더니 거대한 마영체가 형성됐다. 그 거대한 그림자는 순식간에 하늘을 뒤덮고 대지를 집어삼키려는 듯 광폭하게 움직였다. 그건 이제는 환상이 아니었다. 그 자체로 재앙이었다. 잠금요탑 위로 백장 크기의 마존이 강림했다. “윤구주! 네가 이 정도였다고? 실력만큼은 서요산 시조랑 비교해도 꿀리지 않겠군. 하지만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이미 흐름은 정해졌다. 대세는 되돌릴 수 없어. 그 시조가 도력이 하늘을 찌르고 능력이 천하를 뒤흔든다 해도 결국 날 죽이지 못했지. 결국엔 구천을 떠돌며 외도계에서 날 베어낼 무언가나 찾고 있겠지. 외도계엔 나를 죽일 보물이 있을지도 몰라도 이곳 인간계 구주의 오방 안에서는 절대 없어. 너도 마찬가지야, 넌 여기서 끝이다. 죽어라!! 윤구주. 마의 경계는 끝이 없고 마의 바다는 만 리를 삼킨다! ”하늘이 찢기고 무한한 마해가 대지를 뒤덮었다. 잠금요탑은 순식간에 요산으로 변했고 주변은 온통 사기와 혼란으로 뒤덮였다. 무명은 드디어 자신의 사혼체를 드러내며 윤구주와 마지막 일전을 준비했다. 윤구주의 손에 들린 참마검이 떨리기 시작했다. 풍무기의 상태가 이미 한계라는 증거였다. “구주야, 내 양혼신체는 거의 다
‘선술? 크하하하!’무명이 미친 듯 웃었다.“네가 황자면 뭐 어쩌라고? 결국에는 한순간 스쳐 지나가는 인간 세상의 유성일 뿐이지.”“나는 무명이다.하늘은 이미 내 발 아래 있다.세상의 법? 그런 건 내가 정하는것이다.”“윤구주! 과연 네놈이 날 어떻게 상대할지 두고 보겠다!”‘원신출체도 못 한 놈이 선술을 깨달았다고? 어이없네.’무명의 눈에는 윤구주란 놈은 선술의 겉껍데기나 훔쳐본 수준에 불과했다.입만 산 허세쟁이 꼬맹이였지 그딴 놈은 애초에 눈에 들어올 가치조차 없었다.게다가 진짜 선술을 논하려면 그 참마검조차 제대로 만져보지도 못하는 주제에.하지만 윤구주는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신의 경지에 머물던 시절,우연히 소요산에 들렀을 때 그때 이미 선술의 근본을 깨달았지.”윤구주의 눈이 빛났다.“지금, 네게 그걸 보여주마.”“구기신통 , 등선!”부우우우웅!!윤구주의 몸을 감싸고 있던 하얀 기운이 순식간에 실체의 불꽃으로 응결되었다.기운이 ‘기’에서 ‘힘’으로 승화된 것이다.무명의 눈동자가 순간 가늘어졌다.이게 뭔지 무명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이제 윤구주는 몸 자체에서 영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솔직히 말해서 마음만 먹으면, 주변 땅의 기운조차 자기 위주로 바꿔버릴 수 있는 수준이었다.윤구주는 이제 한 종파의 시조로 불릴 자격이 있는 존재였다.더 이상 강자를 넘어서 자신만의 도를 세우고, 전설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무명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저건, 설마 성력?!”그 힘은 그렇게 압도적이진 않았지만 문제는 진짜였다. 가짜가 아닌, 순도 100%의 성력이었다.“말도 안 돼...저놈이 어떻게...”무명의 내면이 갈기갈기 찢어졌다.수행자에겐 한 단계 한 단계가 천벽과도 같다.특히 성의 경지에 이르기 까지는 그야말로 하늘과 하늘 사이를 걷는 자들만이 갈 수 있는 길이 였던것이다그리고 지금 윤구주는 그 문턱을 스스로 넘고 있었다.“무명! 넌 반성자일뿐! 육신만 있었으면 성인이 됐을지도 몰라.하지만 지금 넌 가짜
단 한 걸음,그 한 걸음만 넘기면, 그는 곧 성급 바로 직전 경지에 이른다.그리고 그 마지막 문턱을 박살내는 순간 반쯤 성인이 된 경지, 반성급이다!지금 이 자리, 그 반성급 경지에 선 자는 바로 인마라고 불리는 무명이었다.“과연... 화진의 인황, 구주왕이라 불릴 자격은 있군. 하지만 너도 알겠지. 지금 네 수준으론 몸을 직접 이 판에 던지지 않는 이상 나랑 맞붙을 자격조차 없어. 네가 그 잘난 원신출체를 어떻게 하겠다는지 구경이나 해보자고. ”무명이 입꼬리를 비틀며 코웃음쳤다.팔기귀일에 도달한 윤구주의 전투력은 이미 황의 지경을 뛰어넘었다.하지만 무명과의 경지 차이는 여전히 너무 컸다.실력은 분명 엄청났지만 격이 다르였다.지금 상태로도 보통의 황자의 경지까지 초월한 상태지만 무명을 상대하긴 아직 한참 부족했다.심지어 무명이랑 싸울 실력은커녕 참마검조차 손에 제대로 못 잡는 게 현실이었다.“팔기로 부족하다면... 제구기는 어때? 구기:적선!”부우우우웅!윤구주의 온몸을 하얀 선기가 감싸는 순간 방금 전까지만 해도 비웃고 있던 무명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뭐라고? 이건 네 따위가 쓸 수 있는 기술이 아니잖아! ”그 순간, 무명조차 숨을 삼켰다.이건 상식의 틀을 깨부수는 광경이었다.근대에 들어서면서 도에 대한 수련는 사실상 약해졌다.그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세상에 흐르는 천지영기가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봉신전쟁 당시, 상상을 초월하는 영기가 소모됐고 그 전쟁이 끝난 후 곤륜구역은 세상의 영기 90%를 신계에 봉인해버렸다.거기서 마음껏 영기를 탕진한 것도 모자라 바깥의 산수들까지 무분별하게 빨아들인 탓에세상의 영기는 걷잡을 수 없이 줄어들고 말았다.결국 세상은 고위 수련자가 태어나기 어려운 구조가 되었다.그래서 화진에선 500년에 한 번 황자가 나올까 말까 할 정도이고 황자의 경지에 도달하는 건 지독하게 어려운 일이었다.임정설이 황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처음부터 그가 강해서가 아니라 윤구주를 돕기 위해 왕
마기가 검종 제자들의 혼백에 침투하자 그 순간 제자들의 몸에서 시커먼 마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이를 목격한 장인 대진인은 망설임 없이 즉시 결단을 내렸다. 오염된 제자들을 그 자리에서 곧바로 정화해 버린 것이다.“모든 제자들아, 입문 첫날 내가 분명히 말했을 것이다. 서요산은 찬란한 성지 화진 정통의 계승지다. 정은 사악함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정은 사악함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말은 바로 서요산 제자들이 평생 가슴에 새기며 살아가는 도의였다.입문과 동시에 깨달음을 얻은 그들은 언젠가 반드시 도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저 화진 정통의 수호자가 되기 위해서였다.그 순간 진요탑 외곽에서는 7대 진인을 중심으로 전 종문 제자들이 목숨을 걸고 진요탑을 사수하고 있었다.하늘을 뒤덮을 듯한 마기의 기세는 점점 거세져 어느새 검종의 경내 전역을 삼켜버렸다.검종 제자들은 마기를 막아내면서도 동시에 진요탑의 결계를 유지해야 하는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정도를 지키는 일은 그만큼 고통스럽고 힘든 투쟁이었다.산 아래 상황도 마찬가지로 치열했다.온갖 요괴와 귀신들이 들이닥치는 가운데 임정설은 황운을 등에 업고 이씨 가문의 국운을 모두 모아 홀로 수백만 마기를 막아서고 있었다.백호는 마인으로 완전히 변신해 광란의 충격 속으로 몸을 던졌고, 스스로 마를 품은 채 적진을 난도질했다.청해는 천뢰신술을 펼쳐 수만 개의 천뢰를 무기로 변환시켜 온갖 사도와 악귀를 쓸어내기 시작했다.그 무렵 진요탑 내부에서 풍무극의 기세는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구주야, 내 한계에 도달했다. 이제 내 500년 수련의 혼을 너에게 바치겠다."”풍무극의 준비는 이미 완료되었다.그는 미리 준비해 둔 제천 법기를 꺼냈고 전법이 발동되는 순간 그의 육신은 산산조각 부서졌다.그의 정기와 천지 정기를 모두 품은 찬란한 진신 영혼은 한 자루의 참마검으로 변해 윤구주 앞에 떠올랐다.“풍 종주...” 윤구주는 입술을 깨물었다.슬프고 아쉬
윤구주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새로운 국운의 기운이 그의 발밑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그가 진요탑의 문에 도달했을 무렵 모든 국운이 윤구주에게 집중되었다.윤구주의 주변으로는 천인신광이 펼쳐져 있었다.이 순간만큼은 그가 천지의 주재자 화진의 영겁을 관통한 유일한 존재였다.윤구주는 홀로 진요탑 안으로 들어섰다.겉보기에 거대한 산 같았던 진요탑의 내부는 참혹한 말세의 풍경이었다. 땅은 끝없이 펼쳐진 용암으로 뒤덮여 있었고 하늘에서는 강줄기가 거꾸로 흘러내리고 있었다.불과 물이 충돌할 때마다 하늘과 땅을 뒤흔드는 격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거꾸로 흐르는 강물 위에 한 노인이 앉아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백발이 성성한 그 인물은 다름 아닌 서요산 검종의 종주였다.밖에서 보이던 강건한 중년의 모습은 단지 화신에 불과했으며, 본체는 수백 년 전부터 이 진요탑에서 마인을 봉인해 왔다.서요산 검종 종주는 극도로 지쳐 있었고 이제는 마지막 호흡으로 버티고 있었다.“드디어 왔구나.” 서요산 검종 종주는 허약한 전음으로 말을 건넸다.“오백 년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종주님.” 윤구주는 고개를 숙였다.풍무극은 현 서요산의 종주이자 당대 최고의 영웅, 화진 제일 검으로 불리던 남자였다.원래는 풍속을 다루는 수련자로 젊은 시절엔 검 하나로 화진을 호령한 사내로 알려졌다.그의 검은 아무도 궤적을 볼 수 없었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500년 전 마인이 봉인되고 서요산의 조사가 승천한 후, 풍무극은 서요산의 거자로서 종주의 자리를 이어받았다.그날 이후 진요탑에 몸을 묻고 마인과의 싸움을 500년간 지속해 왔다.풍을 다루던 그였지만 지속적인 봉인을 위해 익숙하지 않은 수속까지 수련하며 지금까지 버텨왔다.그가 마도에 빠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이미 기적이었다.“그래도 괜찮다. 다행히 이 시대에 또다시 인황이 나왔으니. 화진은 연달아 두 명의 인황을 배출했다. 임정설이 인황에 등극한 지금 쇠락하던 이씨 가문의 국운이 다시 살아났다. 그가 천지의
마인이 출현하면 곤륜 구역조차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서요산 검종의 진요탑은 이미 오백 년 동안 그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다.이는 곧 그 마인이 오백 년 동안 진요탑 안에 봉인되어 있었음을 의미했다.“우리가 가진 유일한 이점은 저 마인이 지난 오백 년간 수련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그 오백 년 동안 분명 무언가를 '깨달았을' 가능성도 있겠지요. 정도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사도가 존재하는 법입니다. 만약 그가 이곳을 벗어나 다시 한번 돌파에 성공하여 진정한 성인의 경지에 오른다면… 그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예전 우리 종문의 선대 종주께서 이 마인을 직접 봉인하셨습니다. 하지만 선대 종주께서는 진요탑만으로는 그를 완전히 봉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찍이 아셨지요. 그래서 마침내 구천으로 비상하셔서 바깥 세계에 존재한다는 신기를 찾기 위해 떠나신 것입니다.”장인 대진인이 비밀을 털어놓자 임정설은 왜 그 옛날 서요산 검종을 창립한 선조가 갑자기 사라졌는지 이해했다.“구천을 비상했다고? 전설 속 그 이야기 설마 전부 사실이었단 말인가? 이 세상 위에 더 위대한 세계가 있다는 건가?” 임정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을 이었다.“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들은 바로는 성인이란 육지에서 신선이 된 자를 이르는 말이고 준성은 그보다 한 단계 아래 반쯤 신선이 된 존재라 하더군요. 우리보다 더 풍부한 영기의 세계가 과연 존재하는지는 이 몸 역시 감히 짐작할 수 없습니다.” 장인 대진인은 고개를 저었다.그때였다.진요탑이 거칠게 흔들렸고 모든 호법 제자의 얼굴이 딱딱해졌다.수련이 부족한 제자 몇몇은 그 자리에서 마기의 침식으로 피를 토했다.“모든 제자에게 고한다. 나와 함께 현문을 수호하라.” 장인 대진인이 친히 자리에 앉아 온 종문의 기운을 모아 마인을 억제하기 시작했다.마인은 일시적으로 제압되었지만 산 밖의 요괴들과 악귀들은 마기의 부름을 받아 사방팔방에서 서요산으로 몰려들고 있었다.임정설은 이제 자신이 이곳에 온 진짜 이
“저하,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그를 죽여야 합니까? 저자의 기운이 이토록 흉악한데 성수의 혈기로 진압할 순 없습니까?” 백호는 이미 싸우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안 된다. 너희 네 명이 함께라면 잠시나마 억누를 수는 있겠지만, 너희는 그저 성수의 정혈을 가졌을 뿐이니 마인을 완전히 없애려면 성수가 직접 나타나야 한다. 지금 이 세상에 성수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스럽다.”윤구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말을 마친 윤구주는 곧장 진요탑 쪽으로 향했다.백호와 임정설, 청해가 함께 가서 돕고자 했으나 장인 대진인이 그들을 가로막았다.“이 마인은 오직 구주만이 상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국주님, 곧 전투가 시작될 터인데 서요산의 진법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 호법의 중임을 몇 분께 맡기겠습니다.”장인 대진인이 임정설에게 경건하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좋다. 오늘 이 자리에서 목숨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저 마인을 죽이고야 말겠다.” 임정설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황자의 위엄을 한껏 드높였다.화진의 존망이 걸린 일이라면 임정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하지만 마기가 몰려와 서요산 전체를 뒤덮고 세상이 오직 흑백 두 가지 색깔만으로 변해버리며 그 끔찍한 살기가 강림했을 때 임정설마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떨렸다.“이 마인의 기운이 이렇게까지 무서울 줄이야.” 임정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마기로 가득 찼고 윤구주마저 그 기세에 눌리고 있었다.진요탑에서 흘러나온 마기는 실체가 되어 넘쳐흘렀다. 마기가 나타나자 서요산을 지키는 모든 검종 제자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어떤 제자는 순간적으로 십여 년을 늙어버렸다.수련이 부족하면 수명으로라도 채워야 하는 참혹한 상황이었다.웅웅.하늘에는 먹구름이 밀집했고 그 안에서 요괴의 번개가 끊임없이 터졌다.“이젠 영기조차 요기로 변하고 있다. 풍수 비술로 보건대 머지않아 이곳에서 요마가 출현하겠구나.” 임정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요산 외부에서 짙은 요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