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손에 있던 칼날이 날아갔고, 주변에 있던 청성관 제자 수십 명의 칼날도 모두 칼집을 내면서 모두 윤구주의 머리 위로 날아갔다.그들뿐만이 아니었다.심지어 단도문, 형의문, 신씨 일가 형제들, 그리고 모든 사람들까지... 손에 들고 있던 병기와 무기도 모두 빠져나와 윤구주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이 검과 이 칼들은 그의 손에 이끌려 가는 것 같았다."어머, 그럴 리가...""저놈, 우리 검을 빨아들인다는 말인가?"설마, 이것이 전설의 만검일명인가?"검날과 다른 무기들이 윤구주 머리 위에 나타난 후, 그의 손가락 검술은 다시 바뀌었다.그리고는 검, 칼, 모든 화살을 고진용에게 겨누었다.이때 고진용의 얼굴이 일그러졌다."빌어먹을, 이게 도대체 무슨 기술인가?"그는 비명을 지르며 두 손을 합쳤다.쾅!어두운 검은 무홍의 기운이 몸을 뒤틀면서 그의 몸에 이상한 변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판부 표면에 물고기 비늘처럼 청동색 판층이 생겨났다.이것은 고씨 가문 최강의 불사명왕공이었다.고진용은 육신 무적이라고 불린다.그 집안에 전해지는 불사명왕공은 당대 제일의 호체공법이었다.이 방법은, 세 층으로 나뉜다. 첫 번째 층은 철이고, 두 번째 층은 동이며 세 번째는 금이었다.예전에 고준형과의 일전에서 윤구주는 명왕공의 철 버전을 본 적이 있는데 철판은 윤구주에게 있어서 완전히 종이 조각 같았다.지금, 고진용은 이 명왕공을 전시하고 바로 두 번째 층인 동판 단계로 넘어갔다.이 동판가 나타나자 그의 온몸은 강철 같았고, 검은 무홍의 기운과 함께 하늘로 치솟았고, 그는 기어이 윤구주를 막으려고 했다.윤구주의 손가락을 누르자 그의 머리 위로 날아온 수백 개의 칼날과 병기가 유성처럼 쏟아졌다.그가 울부짖자 온몸의 동판으로 이를 막으려 했다.땡땡땡!일련의 금고철 소리가 들려오면서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육신 무적의 이 늙은 부처가 윤구주의 일격에 몸을 움츠렸다.그 입가는 더욱 선혈이 낭자하게 번져나갔다.그러나 그의 육신은 이제 청동이 아니라 황
그는 용처럼 주먹을 썼다.윤구주의 주먹은 구양진용기의 힘을 담고 있어 주먹 한 방으로 천지가 변할 수 있었다.그의 주먹은 하늘을 찔러 고진용의 불사 금판에 박혔다.말로 형용할 수 없는 힘이었다. 내리치는 순간 온 강이 요동쳤고, 공포의 에너지 파동은 강가의 돌 정자 몇 채를 쿵쾅거리며 무너지게 했다.고진용을 보면, 불사 금판으로 윤구주를 억지로 짊어졌을 때, 그의 몸은 심하게 움푹 패였고 온몸의 금판 층도 윤구주의 주먹에 맞아 균열이 생겼다.하지만 정말 윤구주의 주먹을 막아내다니."야비한 녀석아, 정말 내 불사 금판을 터트릴 수 있을 것 같으냐? 하하하, 꿈꾸지 마!""불사 금판은 탱크가 폭격해도 안 터져. 너 노선 잘 잡아.”고진용의 목소리가 떨어지자마자 갑자기 그의 눈동자가 움츠러들었다.왜냐하면 윤구주의 주먹이 다시 날아드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그리고 이번에는 윤구주의 몸 뒤에 두 마리의 황금 용 그림자가 나타났다.고진용을 자랑할 틈도 없이 서둘러 다시 방어해야 했다.퍽!윤구주의 쌍용 주먹이 다시 고진용의 불사 금판을 내리쳤다.이 주먹은 지난번에 쳤던 주먹보다 무려 두 배나 힘이 더 났다.작은 산이 윤구주 앞에 있어도 부서질 것 같았다.공포의 쌍용주먹은 고진용의 불사 금판을 세게 내리쳤다. 고진용의 몸통만 마치 물고기 비늘과 같은 불사 금판이 겹겹이 벗겨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육안으로 그의 금판이 모두 부서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윽!고진용의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자 몸이 휘청거리며 버티면서 비명을 질렀다."말도 안 돼!""말도 안 돼!""내 불사 금판은 무술의 힘이다...도대체 무슨 신통력을 쓰는 거야?"고진용이 경악하는 사이에 윤구주 안에서 용이 울부짖는 소리가 세번 들렸다.곧이어 세 마리의 용 그림자가 윤구주의 뒤에 나타났다.삼용!윤구주가 다시 삼용의 힘을 모아 쳐부수는 것을 보았을 때, 고진용은 단번에 사색이 되었다.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권력이 다시 고진용의 몸에 떨어졌다.이 주먹이 떨어지자
고씨 가문.고진용이 완전히 죽은 후 고씨 가문 전체가 와해되었다.무술 연맹 아지트에서 각 문파의 사람들은 모두 이미 조용히 떠났다.이전에 고씨 가문을 떠받들었던 단도문, 형의문, 청성관 등 서남연맹 여러 문파가 모두 떠났다.‘이제 고씨 가문의 부처님도 죽었는데 생각해 봐, 누가 고씨 가문에 있겠는가? 누가 감히 윤구주를 건드리겠는가?'예전에 떠들썩했던 무술 연맹 아지트가 지금은 썰렁했다.고씨 가문의 제자 수십 명을 제외하면 용호산 천암사 사람들뿐이었다.이렇게 큰 아지트에서 시체 한 구가 한가운데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이 시체는 산 채로 맞아 죽은 고진용이었다.그의 시신은 흰 천으로 싸여 아지트 한가운데 놓여 있었고 주변에는 고준형, 고시연, 그리고 나머지 고씨 가문 제자들이 차례로 그의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얼마나 지났을까, 용호산의 진성 대가 기성윤이 밖에서 들어왔다.그는 고진용의 시체를 말없이 바라보다가 그가 입을 열었다.고씨 가문 가주님,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고준형은 눈이 빨갛게 달아올랐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씨 가문 가주님, 이제 부처님도 전사하셨습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기성윤은 생각해 보고 물었다.기성세대의 문파인 용호산은 단도문, 청성관, 그놈들처럼 가자고만 할 리 없다.그러자 고준형은 절망적인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제 고 씨 가문은 망했어요...""하...""고씨 가주님도 기죽지 마십시오. 우리 용호산과 당신네 고 씨 가문는 아무래도 대천군입니다. 이번에 고 부처님께서 조난을 당한 건 제가 반드시 우리 대천군께 아뢰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대천군이 산 밖으로 나갈 수 있다면, 반드시 고 부처님을 대신하여 정의를 구할 수 있을 겁니다.""게다가, 너희 고 씨 가문은 이미 화진 4대 가문의 남궁 가문과 혼인을 성사하지 않았습니까?""어찌 이번 고씨 가문의 조난에 남궁 가문이 한 명도 지원하러 오지 않았단 말인가.”기성윤이 물었다.갑자기 화진의 4대 세가 중 하나인 남궁 세가가 거론되자
정태웅과 남궁서준은 입을 열자마자 사람을 죽이느니 마느니 심상치 않은 말을 했다.이에 고준형뿐만 아니라 고씨 가문 모두가 발끈했다.고씨 가문은 채부처의 죽음에 가슴 아파 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느닷없이 불쑥 나타난 낯선 사람이 뻔뻔스럽게 큰소리를 치는 걸 보니 고준형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주제 파악도 못 하는 것들이 감히 고씨 가문에서 소란을 피워? 이봐라, 당장 와서 저 두 사람을 붙잡아라.”고준형의 명령에 따라 십여 명의 수제자들이 나타나 정태웅과 남궁서준을 향해 돌진했다.사람들이 막 움직이려던 찰나, 흰옷을 입은 사람의 그림자가 눈앞에 번뜩였다.두 손가락을 모아 몸 앞에서 살짝 움직이자, 검의 그림자가 나타났고 그것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경이로워 마치 검신이 재림한 것 같았다.사람들은 남궁서준의 손끝에서 번쩍이는 하얀 빛을 보았다.빛 한줄기에 이곳저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십여 명의 수제자들은 미처 그 빛을 피하지 못했고, 예상대로 눈 깜짝할 사이에 빛은 그들의 몸을 관통하여 그 자리에서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했다.심지어 정태웅은 아직 손을 쓰지도 않았다.“X발, 뭐야? 나한테도 어느 정도는 남겨줘야지.”정태웅은 십여 명의 수제자들이 순식간에 몰살당하는 모습을 보고선 화가 나서 욕설을 퍼부었다.그 시각 고준형을 비롯한 그의 수제자들은 이 광경을 보고 모두 아연실색했다.열네다섯 살로 보이는 소년이 이렇게 공포스러울 줄 누가 감히 예상이라도 했겠는가?심지어 십여 명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고씨 가문은 도대체 무슨 죄를 기었길래 저런 사람의 심기를 건드린 걸까?하나같이 비참하게 죽은 수제자들을 바라보던 고준형은 놀라서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당신들... 도대체 누구야? 우리가 뭘 잘못했길래 이렇게까지 하는 거냐고!”정태웅은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들며 말했다.“진짜 뻔뻔스럽네. 방금 전까지 큰소리치던 사람이 그쪽 아니던가? 우리 군왕님을 상대할 거라며?”“왕이라니?”고준형은 그가 말하는
누가 봐도 손에 들린 그 머리는 고씨 가문 어느 한 노장의 것이다.심지어 머리가 잘려 나가는 순간에도 노장의 눈동자는 움직이고 있었고 그 모습은 끔찍하기 그지없었다.넋을 잃은 사람들은 정태웅이 머리를 땅에 던지고서야 정신을 번쩍 차렸다.죽음의 신이 나타났다. 그것도 두 명이나!둘은 비할 바 없이 모두 잔인하고 사악하다.고준형은 멋모르고 행동했던 과거의 자신을 원망했다.얼굴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후회했으나 더 이상 소용이 없다.아무 생각 없이 허세 부리려고 내뱉었던 말이 이런 어마무시한 두 괴물을 도발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더 중요한 건, 그들 모두 윤구주의 부하라는 것이다.더군다나 정태웅은 두 노장을 죽인 후에도 여전히 싱글벙글 웃고 있으며 남궁서준과 이야기를 나누었다.“꼬맹이, 봤냐? 형 실력 죽이지?”흰옷을 입은 소년은 대꾸하기 귀찮은 듯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지금 우릴 무시하는 거니?”정태웅이 사람을 죽인 뒤 남궁서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용호산의 기성윤이 참지 못하고 나섰다.용호산과 고씨 가문은 대대로 친분이 있었다.게다가 정태웅과 남궁서준이 이렇게 사람을 죽이는 것을 보니 용호산의 진성 대가로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실력이 대단한 건 알겠는데, 대낮에 이렇게 사람을 죽이는 건 무도인의 의협심에 너무 어긋나는 일이 아닌가?”용호산의 진성 대가가 입을 열자, 정태웅은 흥미로운 듯 고개를 돌려 기성윤을 바라봤다.“신경 안 써서 몰랐는데 용호산에 아직도 도사가 남아있었군.”기성윤은 조롱을 당했는데도 화를 내지 않았다.“꼭 주제 파악 못 하는 것들이 이렇게 나댄다니까.”“X발, 뭐라고 했냐? 체면 살려주니까 뭐라도 된 줄 아나 봐? 똑똑히 들어, 오늘 용호산의 대천군이 나타나도 넌 죽을 거야.”정태웅은 곧바로 욕설을 퍼부었다.“잠깐...”기성윤은 그의 말을 듣는 순간 분노가 밀려와 눈이 빨갛게 충혈됐다.뭐가 됐든 그 역시 용호산의 진성 대가였으니까.“잠깐 같은 소리하네. 왜? 불만 있어? 천하
“왜? 겁먹었냐?”기성윤이 가로막자 정태웅은 비꼬듯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솔직히 어찌 겁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방금 그 검을 제때 막지 않았다면 이미 황천길을 걸었을 것이다.게다가 검의 위력은 완전히 기성윤의 상상을 뛰어넘는 지경에 이르렀다.그는 동공이 잔뜩 확장된 채로 남궁서진을 바라보며 말했다.“내가 잘못했어.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용호산 천암사의 천년 유산을 생각해서라도 이만 용서해 줘. 이렇게 부탁할게.”용호산의 진성 대가가 용서를 빌었지만, 그의 사악함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고 그저 말없이 정태웅을 바라봤다.그는 정태웅이 답을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정태웅은 턱을 만지작거리다가 입을 열었다.“됐다, 꼬맹아. 대천군의 체면을 봐서라도 이번에는 이만 물러서자. 어쨌든 군왕님도 대천군과 친분이 있잖아.”남궁서준은 그 말을 듣고서야 검을 거두었고, 뿜어내던 살기도 이따금 줄어들었다.살기가 사라지자 기성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눈앞에서 알짱거리지 말고 당장 꺼져. 오늘의 타깃은 고씨 가문이니까 이만 가봐.”기성윤은 그 말을 듣자마자 정태웅과 남궁서준을 향해 절을 하고는 쏜살같이 자리를 떴다. 아무래도 더 이상 그 자리에 머물 용기가 없었던 모양이다.그렇게 용호산의 사람들은 전부 다 떠났다.이제 대전에 남은 건 고준형, 고시연, 그리고 살아남은 수십 명의 수제자들뿐이었다.“자, 이제는 너희 차례야.”정태웅은 눈을 가늘게 뜨며 미소를 짓더니, 이내 살벌한 눈빛으로 고씨 가문을 바라봤다.사람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잿빛이 되었고 겁에 질린 듯 몸을 벌벌 떨었다. 고준형도 마찬가지다.“그러니까... 원하는 게 뭐야?”두려움이 엄습한 고준형을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원하는 거? 너희처럼 보잘것없는 인간들을 죽이는 거야.”앉을 자리를 찾은 정태웅은 말하며 다리를 꼬았다.“설마 고씨 가문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냐? 고씨 가문에 랭킹 7위에 달하는 괴물이 나와서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모양
황폐해진 고씨 가문의 저택 문 앞에는 거대한 그림자 하나가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그는 돌처럼 묵묵하고 굳건하게 자리를 지켰다.시괴 거인 동산이다.얼마 후 갑자기 고씨 가문의 대전에 두 사람의 그림자가 나타났다.자세히 보니 이 두 사람은 다시 돌아온 정태웅과 남궁서준이였다.“뭐지? 저 자식은 어디서 나타난 거야?”정태웅은 장엄한 동산을 보고선 참지 못하고 물었다.그동안 고씨 가문에서 동산을 본 적이 없었기에 호기심이 극에 달했다.그의 곁을 따라다닌 남궁서준은 싸늘한 눈빛으로 동산을 바라볼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이봐, 그쪽은 누구지? 어디서 나타난 거야?”정태웅은 다가와 물었다.비록 동산은 눈을 뜨고 있었지만 눈동자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파리 한 마리가 눈에 떨어졌는데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이 모습을 본 정태웅은 답답함이 밀려왔다.“야, 내가 지금 물어보잖아! 벙어리냐?”동산은 여전히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X발, 이렇게 나온다는 거지? 그럼 이제는 내가 손을 쓸 수밖에 없겠네.”정태웅은 주먹을 들어 동산을 위협하려고 했다.“바보, 아무리 겁을 줘도 상대해 주지 않을 거예요.”이때 남궁서준이 한마디를 내뱉었다.“왜?”정태웅은 궁금해서 물었다.“왜냐하면 사람이 아니잖아요.”남궁서준의 답에 정태웅은 의아한 듯 다시 물었다.“뭐라고?”“살아있는 사람의 숨결이 느껴지지 않잖아요. 설마 그것도 몰랐어요?”그 말에 충격받은 정태웅은 얼른 고개를 돌려 다시 한번 동산을 자세히 살펴보았다.그제야 확실히 살아 있는 사람의 기운이 없다는 걸 깨닫고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어머, 진짜 사람이 아니었네. 잠깐만, 사람이 아닌데 여긴 왜 있는 거지? 봐봐, 심지어 눈을 뜨고 있잖아.”남궁서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역시도 동산이 어떻게 된 일인지 몰랐다.“됐다, 신경 끄고 얼른 군왕님 만나러 가자.”말을 마친 그는 곧장 남궁서준을 데리고 대전으로 들어가려고 했다.그런데 이때, 굉음과 함께 동산이 움직였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윤구주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리더니 미소를 지으며 남궁서준을 바라봤다.“꼬맹이, 오랜만이야. 나 안 보고 싶었어?”“당연히 보고 싶었죠.”남궁서준은 단숨에 윤구주 앞으로 달려가 그를 꼭 껴안았고 동시에 눈물을 펑펑 쏟았다.화진의 제일 소년후가 윤구주의 가장 좋은 동생일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윤구주는 동생을 껴안은 채 웃으며 말했다.“1년 동안 못 봤는데 그 새에 키 많이 컸네.”남궁서준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이제 그만 울어. 화진 제일 소년후가 이런 연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되지. 다른 사람이 보면 어쩌려고.”윤구주는 좀처럼 눈물을 그치지 못하는 남궁서준을 보고선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했다.비록 눈물은 멈췄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울먹였다.그는 눈앞의 윤구주를 바라보며 물었다.“형, 정말 살아있었군요. 그런데 사람들은 왜 다 죽었다고 하는 거죠?”“그건 나중에 알려줄게. 날 죽일 수 있는 사람은 아직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만 알아둬.”“꼬맹아, 내 말 맞지? 군왕님이 살아있을 거라고 했잖아. 기운 넘치는 것 좀 봐, 심지어 전보다 더 잘생긴 것 같은데?”정태웅이 입을 열었다.남궁서준은 더 이상 그를 경멸하지 않았고 그의 말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드디어 형제가 한자리에 모였다.남궁 가면의 도련님이자 화진 제일 소년후인 남궁서준이 윤구주의 동생이라는 건 아마 이 세상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심지어 남궁서준의 검법마저도 윤구주가 직접 전수해 준 것이다.윤구주와 남궁서준이 서로 인사를 나눈 후, 정태웅이 일어서서 입을 열었다.“군왕님, 찾으시던 물건 제가 가져왔습니다.”정태웅은 말하면서 봉안보리구슬을 꺼냈다.윤구주는 그 구슬을 보자마자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꼬맹이랑 고씨 가문에 다녀온 거야?”“네,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하나같이 좀 모자랐어요. 군왕님, 명령을 내려주신다면 지금 바로 꼬맹이랑 같이 고씨 가문을 초토화시키겠습니다.”정태웅이 살의를
“저하,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그를 죽여야 합니까? 저자의 기운이 이토록 흉악한데 성수의 혈기로 진압할 순 없습니까?” 백호는 이미 싸우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안 된다. 너희 네 명이 함께라면 잠시나마 억누를 수는 있겠지만, 너희는 그저 성수의 정혈을 가졌을 뿐이니 마인을 완전히 없애려면 성수가 직접 나타나야 한다. 지금 이 세상에 성수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스럽다.”윤구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말을 마친 윤구주는 곧장 진요탑 쪽으로 향했다.백호와 임정설, 청해가 함께 가서 돕고자 했으나 장인 대진인이 그들을 가로막았다.“이 마인은 오직 구주만이 상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국주님, 곧 전투가 시작될 터인데 서요산의 진법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 호법의 중임을 몇 분께 맡기겠습니다.”장인 대진인이 임정설에게 경건하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좋다. 오늘 이 자리에서 목숨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저 마인을 죽이고야 말겠다.” 임정설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황자의 위엄을 한껏 드높였다.화진의 존망이 걸린 일이라면 임정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하지만 마기가 몰려와 서요산 전체를 뒤덮고 세상이 오직 흑백 두 가지 색깔만으로 변해버리며 그 끔찍한 살기가 강림했을 때 임정설마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떨렸다.“이 마인의 기운이 이렇게까지 무서울 줄이야.” 임정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마기로 가득 찼고 윤구주마저 그 기세에 눌리고 있었다.진요탑에서 흘러나온 마기는 실체가 되어 넘쳐흘렀다. 마기가 나타나자 서요산을 지키는 모든 검종 제자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어떤 제자는 순간적으로 십여 년을 늙어버렸다.수련이 부족하면 수명으로라도 채워야 하는 참혹한 상황이었다.웅웅.하늘에는 먹구름이 밀집했고 그 안에서 요괴의 번개가 끊임없이 터졌다.“이젠 영기조차 요기로 변하고 있다. 풍수 비술로 보건대 머지않아 이곳에서 요마가 출현하겠구나.” 임정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요산 외부에서 짙은 요기
도가는 인연이라는 두 글자를 대단히 중히 여긴다.그의 한 번의 인연, 한 번의 생각은 곧 만백성의 생사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윤구주가 정상에 오르자 앞서 온 다른 이들과는 달리 서요산 검종의 모든 이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여 깊은 존경을 표했다. 그들이 경배한 대상은 단순한 한 인간이 아니라 구주의 저하, 화진의 인황, 오방 천지의 주재자였다.“모두 일어나십시오. 제가 오늘 서요산에 온 이유는 오직 진요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진요탑 안의 마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문 씨 세가의 역심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마인을 죽여야만 문 씨 세가의 야심도 함께 근절할 수 있습니다.”윤구주는 서요산 검종의 모든 제자를 향해 엄숙하게 말했다.이번 서요산 행차의 목적은 바로 문 씨 세가의 역심을 뿌리째 뽑는 것이었다.검종 제자들이 앞장서 일행을 이끌었고 모두가 금정을 지나 뒷산으로 향했다.뒷산에 막 들어서자마자 음산한 기운이 얼굴을 스쳤다.후산 중앙에는 높이 오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산이 서 있었는데 그 산은 무려 구백구십구 개의 쇠사슬로 단단히 봉인되어 있었다.이 쇠사슬은 그저 평범한 사슬이 아니었다. 절반은 땅속의 지맥과 연결되어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하늘 높이 떠올라 천지의 영기를 끌어모으고 있었다.이런 수준의 봉인이라면 설령 윤구주 자신이 여기에 갇혀 있다고 해도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이처럼 견고한 고진마저 지금은 마인의 사기로 조금씩 부식되어 가고 있었다. 본래는 영기가 흘러넘치는 명산이었으나 지금은 온 서요산이 마인의 기운에 물들어 음침하고 괴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이 강렬한 악기운을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모두 얼굴을 찌푸렸다.솟구치는 사기를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찌푸렸다.최근 몇 대에 걸쳐 입종한 서요산의 제자들은 이런 마인의 사기와 요마의 위협 속에서 수련해야 했다.천지의 영기조차 마인의 기운에 오염되어 수련에 큰 지장을 주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남은 현
이 말을 듣자 모든 이들은 천 년 전 마지막으로 나타난 그 성인이 바로 서요산 검종에서 나왔음을 깨달았다.“짐은 서요산 검종의 선대 종주께서 우화등선하셨다고만 들었는데 그저 떠도는 신화 속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더니 은 성인의 경지에 이르신 것이었군.” 임정설이 깊은 감탄과 함께 말했다.구백 계단 윤구주는 이미 전설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하지만 그 전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구백삼십 계단 사십 계단을 오르면서 윤구주의 발걸음은 오히려 더욱 가벼워졌고 그가 세우는 기록은 사람들의 상식을 계속해서 뒤흔들었다.구백팔십 계단을 지나 정상까지 겨우 십여 계단만 남은 그 순간 윤구주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구백구십구 계단에 이르러 결국 완전히 멈추었다.드디어 한계에 도달한 것인가?모두가 숨을 죽이고 윤구주를 지켜봤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분명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시험일 터였다.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십여 분을 견뎌냈다. 사람들은 그가 언제 다시 계단을 오를지 초조하게 기다렸다.마침내 윤구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됐습니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시험을 포기하지요.”말을 마치고 계단에서 내려서는 순간 청석 계단 아래에서 강력한 영기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쳤고 곧바로 서요산을 감싸던 어둠의 기운을 깨끗이 몰아냈다.오랫동안 음울했던 서요산 상공은 순식간에 환해졌고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맑은 하늘이 펼쳐졌다.서요산의 모든 이들은 충격에 빠져 넋을 잃었다.그제야 그들은 윤구주가 왜 그토록 여유롭게 올라올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서요산의 청석 계단이 가진 진법의 힘을 계속해서 억누르고 있었다.“참으로 대단하신 신위군요! 우리 서요산의 청석 진법마저 제압하셨다니! 마지막 한 걸음을 분명 넘으실 수 있었을 텐데 혹시 강제로 넘었다가 진법이 견디지 못해 영기가 새 나가고 진법이 무너져 진요탑까지 영향을 미칠지 걱정하신 건 아닌가요?” 장인 대진인이
도법의 깊이는 워낙 심오해서 임정설조차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다.“쉽게 말씀드리자면 구주는 천지의 운기를 완전히 장악한 데다가 하늘이 직접 영광을 내리신 거죠.” 장인 대진인이 말했다.임정설은 이 말을 듣고 비로소 이해한 듯 말했다.“대진인의 말은 윤구주가 바로 하늘이 점지한 사람이라는 뜻인가?”“맞습니다. 우리 화진 사람들은 운명의 갈림길에 서면 본심에 따라 도법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깁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사는 다하고 하늘의 뜻을 따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윤구주는 분명 큰 복을 타고났지만 그 엄청난 복을 감당할 힘도 필요합니다.”대진인이 설명했다.말이 끝날 무렵 윤구주는 이미 육백삼십 계단을 거뜬히 올라와 있었다.한 걸음도 멈추지 않고 더욱 확고한 걸음으로 계속 전진했다.그의 발걸음마다 천지의 기운이 응축되었다.어느 순간 서요산의 계단조차 윤구주의 기세를 가두지 못했다. 그는 마치 천지를 밟으며 오르는 듯했다.곧이어 그는 칠백 계단마저 돌파했다.칠백 계단이란 천 년 전 서요산의 전성기에도 극소수만이 도달할 수 있었던 경지였다. 지금 만약 윤구주가 구주왕이 아니라 일반 수련자였다면 이 기록만으로 서요산 전체가 들썩였을 것이다. 만일 윤구주가 서요산에 입문을 원했다면 서요산은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 그를 키웠을 것이며 서요산 검종의 다음 종주 자리는 당연히 그에게 돌아갔을 것이다.그러나 이미 칠백 계단에 이르렀음에도 윤구주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칠백오십 계단 팔백 계단 팔백오십 계단!그는 끊임없이 정상의 기록을 깨며 전설을 써 내려갔다.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윤구주 앞에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을 것 같았다. 이쯤 되자 장인 대진인조차 감히 그를 함부로 평가할 수 없었다.왜냐하면 자신도 과거에 겨우 칠백 계단에 그쳤으니 팔백 계단을 오른 사람을 감히 평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윤구주는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마치 천지를 흔들어 이 강산을 뒤엎어버리겠다는 기세였다.그리고 마침내 구백 계단에 이르렀다.“구백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
진인들은 말했다. 임정설이 만약 집념을 내려놓는다면 육백 계단까지도 오를 수 있을 거라고.장인 대진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집념을 놓는다면 더 이상 화진의 국주가 아니지. 바로 이런 끈질긴 의지가 있기에 그분이 화진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다른 진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운명이란 그런 법이다. 아마도 집념을 놓았다면 임정설은 오백 계단조차 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이때 임정설은 아직 남아 있는 절반의 계단을 바라보며 씁쓸히 미소 지었다. “어쩌면 여기서 멈춰야겠구나.”임정설은 다시 뒤를 돌아 윤구주를 바라보았다. 그가 자기 자식이자 동료처럼 여기는 윤구주가 과연 몇 계단을 오를지 궁금했다.깊은 생각에 잠긴 임정설이 곧바로 말을 꺼냈다.“구주야 이제 네가 올라서 봐! 화진의 구주왕다운 실력을 보여줘! 적어도 나보다는 못하면 안 되지 않겠냐?”아래에 서 있던 윤구주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원래 그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국주의 바람이라면 흔쾌히 도전할 마음이었다.“명 받들겠습니다!” 윤구주는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계단을 밟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기 시작했다.구주왕이 등천로에 도전했다는 소식에 서요산 검종 전체가 술렁였다.검객은 물론이고 잡일을 돕는 제자들까지 모두 금정에 모여들어 그의 모습을 보고자 했다.심지어 하늘 위 어둑한 구름 사이에서도 한 쌍의 법안이 열렸다. 바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 환영이었다.임정설이 먼저 정상에 올랐고 장인 대진인을 포함한 일곱 진인과 서요산의 모든 제자들은 화진의 황자를 향해 몸을 숙여 예를 갖추었다.“모두 일어나시오. 그대들이 없었다면 화진은 이미 혼란 속에 빠졌을 것이오. 진정 국가와 화진을 위해 헌신한 것은 바로 그대들입니다.” 임정설은 화진의 모든 백성을 대표할 순 없지만 왕실을 대표하여 임 씨 일족의 지도자로서 서요산 검종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국주께서 과찬입니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묵묵히 힘썼을 뿐입니다. 화진의 백
일곱 진인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들은 국주가 이미 등황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사백 계단은 쉽게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과연 그들의 예상대로 임정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오르며 오백 계단을 가볍게 밟아 올랐다. “오백 계단을 밟으면 등황의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 일곱 진인 중에서도 오직 장인 대진인께서만 과거에 오백 계단에 오르셨고, 현재 서요산에 살아계신 유일한 오백 계단 수련자이십니다. ” 한 진인이 감탄하며 말했다.이 말을 듣자 옆에 있던 백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선임 도사님 그러면 그 도사님도 황자란 말씀입니까? ”“하하! 우리 서요산에서는 외부의 그런 칭호를 쓰지 않아요. 우리 사이에서는 그를 반신이라고 부릅니다.” 진인들이 웃으며 말했다.청해가 옆에서 덧붙였다. “서요산 검종에서 말하는 반선이 황자를 뜻하는 거야. 근데 그 서요산 반선 진짜 어마어마하게 강한 인물이거든. 예전에 곤륜 구역에서 귀한 영약 찾으러 들어왔다가 우리 빙신전 전주랑 빙황 두 명이 같이 상대했는데도 둘 다 거의 죽을 뻔했어. 결국 아사 신전한테까지 도움 요청해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지.”“뭐라고?”백호는 놀라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진짜 그렇게 강한지 의문이 들었다.일곱 진인 중 가장 나이 많은 그 진인은 백호의 단순한 반응에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그가 바로 그 반선이었다. 다만 백호가 워낙 세상 물정에 둔감하여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놀라기만 하고 있었다.그사이 임정설은 이미 오백오십 계단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이 단계에 이르자 임정설도 거의 극한에 도달했다.“역시 직접 올라와 봐야 이 압력을 제대로 실감하는구나! 오백사십 계단까진 무리 없었는데 오백오십 계단에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구나.”지금 임정설을 압박하는 것은 단순한 술도의 압력만이 아니었다.과거의 온갖 기억들이 마장이 되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일곱 진인은 모두 임정설의 기운이 혼란스러워진 것을 느꼈다.“장인 사형, 국주님께서 심마에 걸리셨군
청해의 눈길이 자주색 도포를 입은 진인에게로 향했다.서요산검종에서 종주를 제외한 나머지 일곱 명의 진인이 가장 높은 수련을 가지고 있으며 평소 종문 내의 모든 일은 이들 일곱 명이 책임지고 있다.기세는 마치 대강의 파도가 넘실대듯 깊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산과 숲처럼 무한히 이어져 있었다. 그의 수련은 깊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서요산 7대 진인의 수련이 극 신급 절정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그 말이 너무 가볍게 들리네요. 귀하의 수련은 적어도 극 신급 절정 후반에 다다랐군요.”청해는 세 명의 진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몸을 굽혔다.“서요산의 전통은 천 년을 자랑하며 그 깊이는 변함없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반면 곤륜 구역은 스스로 신을 자처한 이후로 계속해서 내분을 일으켰습니다. 수련을 통해 세상을 떠난 후 도를 깨닫는다는 말처럼 곤륜 구역은 천하의 영기와 천물을 흡수했지만 제 생각에는 도를 얻지 못한 곳입니다. 지금 당신이 화진에게 올바른 수를 두는 것은 맞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극 신급 절정 후반도 절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한 진인이 답례하며 말했다.그때 몇몇 사람들은 서요산 검객들의 함성에 이끌려 사방을 살폈다. 백호가 사백 계단을 올라갔다는 소식이었다.“대단한데요. 서요산이 전성기였을 때도 사백 계단을 오른 이는 드물었어요. 우리 몇몇 진인들도 입문 시에 사백 계단을 넘은 적은 없었죠.”몇몇 진인들이 칭찬했다.이는 백호가 미래에 매우 큰 가능성을 지녔음을 의미했고 적어도 극 진경 후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극 진경 후반은 곤륜 구역에서 신전의 전주가 될 수 있는 실력이다.지금 사백 계단에 오른 백호는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완전히 의지로 버티며 강력한 정신력으로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다.그러나 아무리 강한 운명을 지녔다 해도 천지의 이치를 막을 수는 없다.사백오십 계단에 도달했을 때 백호는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의식을 잃은 것은 시험이 끝났다는 신호였고 백호는 곧 깨어났다.“겨우 사백오십 계단이라니
서요산 검객들이 모두 그 무인의 정체를 궁금해하자 진인도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고 말했다.“저분은 구주왕 휘하의 화진 군신이자 국방부 대장 백호 장군이시다.”검객들은 모두 입이 벌어진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군신의 명성은 당연히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는 영웅이었으니까.“정말 구주왕 휘하의 군신이라니!”“역시 저런 굳센 의지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 수많은 전장을 누빈 명장다운 모습이다!” 서요산 검객들은 백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현재 백호는 이미 삼백이십 계단을 돌파한 상태였다. 백호가 혼자 주목을 독차지하는 걸 본 청해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처음 백 계단은 청해도 육신의 힘으로 버텼다. 하지만 백 계단을 넘자 육체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워졌다. 그는 술법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평소 쓰던 빙신전의 신술이 계단 위 술법에는 통하지 않았다.“역시 화진의 서요산 검종은 보통이 아니구나. 이 등천로에선 일반 술법이 먹히지 않으니 천지 영기에 대한 깨달음으로 맞설 수밖에 없겠어.” 청해는 몸을 감싸고 있던 현빙을 거두고 오로지 자신의 속성 영기로만 버티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막상 올라 보니 이 등천로가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실감했다. 이백 계단쯤 오르자 벌써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계단마다 한계를 시험하는 느낌이었다. 올려다보니 백호는 여전히 계단 위로 나아가고 있었다. 청해도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서요산 검객들도 청해의 수준을 알아보고 속삭였다. “저 이역인은 정말 대단한 내력의 소유자다! 기운이 이미 진인 급에 가까워! 극 신급 절정의 수련자임이 분명해!”이에 대해 진인은 신비롭게 꾸미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저자는 곤륜 구역 빙신전의 부 전주 청해다. 경지가 매우 높지. 지금 빙신전은 우리 화진에 귀속되었고 청해 역시 구주왕 휘하의 부하가 되었다. 얼마 전 서울 방어전에서 청현과 목숨까지 걸고 사투를 벌인 끝에 죽을 고비를 넘겼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