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형님, 바보예요? 구주는 멀쩡히 살아있는데 복수를 왜 해요? 그리고 우리 조카는 화진 제일의 왕이라고요. 이 세상에 누가 감히 구주를 건드려요?”윤창현은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면서 웃으며 말했다.“그러네. 깜빡할 뻔했어. 나 윤창현의 큰 조카는 천하무적의 구주왕이잖아!”“사사 삼천 명은 원래 우리 구주를 위해 준비한 거야. 구주가 살아있으니 그냥 구주에게 넘기려고.”말을 마친 뒤 윤신우는 작은 명령패를 윤창현에게 건넸다.그 위에는 ‘윤’이라고 적혀 있었다.그것은 윤씨 일가의 명령패라는 뜻이었다.“둘째야, 이 명령패를 가지고 가서 재이와 두식에게 전해. 지금부터는 우리 아들에게 충성하라고.”윤창현은 명령패를 건네받고 말했다.“형님, 재이와 두식은 성격이 포악하고 고집스러워서 조카 명령에 따르지 않으려고 하면 어떡해요?”“걔들이 감히 그럴 수 있겠어? 내 명령을 전해. 내 아들에게 복종하지 않는 놈들은 내가 직접 죽일 거라고.”죽인다는 말에 엄청난 기운이 담겨 있었다.“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그 자식들에게 전할게요!”윤창현은 웃으며 말했다.“콜록콜록.”이때 윤신우는 갑자기 기침하며 피를 토했다.어쩔 수 없었다.중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엄청난 내공으로 버티고 있지 않았더라면 윤신우는 이미 쓰러졌을 것이다.게다가 연이어 말을 굉장히 많이 했으니 상처가 심각하다는 게 다시 드러났다.“됐어. 다들 나가 봐... 난 좀 쉬어야겠어.”윤신우는 입가의 피를 닦았다.윤창현과 윤정석은 더는 그를 방해하지 못하고 묵묵히 나갔다.그들이 나가자마자 윤신우는 입에서 검은색 피를 왈칵 토했다.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원망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그는 오히려 웃으며 말했다.“이 자식, 내공이 정말로 날 초월했어. 좋아! 아주 좋아!”...서울 외곽.그곳은 서울 도심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외진 곳이었다.그곳에는 대부분 일꾼들이 살고 있었다.이때 밤하늘 아래, 잘생긴 얼굴이 보였다. 그는 윤구주였다.눈앞의 허름한 집은 과거 그와 어머니가
“정태웅, 천현수, 너희는 일단 나가 있어. 나 혼자 있고 싶어.”윤구주는 천천히 앉은 뒤 입을 열었다.정태웅 등 사람들은 윤구주가 어렸을 때 겪었던 불행을 알고 있었기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뒤 떠났다.고요한 방 안.윤구주는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다.밖에서는 정태웅, 천현수, 남궁 서준이 문밖에 서 있었다.“휴, 저하는 또 어머님이 그리우신 걸 거야.”정태웅은 한숨을 쉬면서 마음 아픈 얼굴로 방 쪽을 바라보았다.“그러게. 저하는 5살 때 윤씨 일가에서 쫓겨난 뒤 어머니와 서로 의지하며 살다가...”천현수는 말하다가 침묵했다.“빌어먹을 윤씨 일가, 정말 매정하네! 나였다면 그들을 죽여서 복수를 했을 거야!”정태웅은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조용히 해! 저하의 집안일이니 우리는 가만히 있는 게 가장 좋아. 집안마다 사정이 있는 법이니까.”천현수가 귀띔했다.정태웅은 코웃음을 쳤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옆에 있던 꼬맹이 남궁서준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 말 없이 그곳에 서 있었다.시간은 1분 1초 흘렀다.윤구주가 방 안으로 들어간 뒤 주변 온도는 점점 더 낮아졌다.9월인데도 불구하고 엄동설한 같았다.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끼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윤구주가 싸늘한 몸으로 방 안에서 걸어 나왔다.윤구주를 본 정태웅, 천현수, 남궁서준 세 사람은 곧바로 꼿꼿이 서서 정중하게 윤구주를 맞이했다.“오늘 밤 난 사람을 죽이고 싶어!”윤구주의 입에서 싸늘한 말이 튀어나왔다.서울로 돌아온 뒤 윤구주는 8명의 신급 강자에게 가로막혔었고 윤씨 일가로 돌아가서는 자기가 가장 증오하는 아버지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작은 집으로 돌아온 뒤에는 병으로 세상을 뜬 가련한 어머니가 떠 올랐다. 그래서 오늘 밤 윤구주는 살기가 아주 짙었다.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말에 정태웅 등 사람들은 몸을 흠칫 떨었다.“저하, 누굴 죽이고 싶으신 겁니까?”정태웅은 서둘러 물었다.“서울의 여씨, 황씨, 당씨 세 문벌.”윤구주는 차가운
건장한 보초는 꼬맹이의 칼에 찔려 가슴이 꿰뚫렸다. 남은 십여 명의 여씨 일가 보초들은 전부 넋이 나갔다.“당신들은 누구야? 감히 우리 여씨 일가 사람을 죽여?”한 보초가 전전긍긍해서 물었다.그가 말하자마자 서늘한 검기가 그를 바닥에 꽂았다.또 심장이 꿰뚫렸다.동료들이 잇달아 죽자 여씨 일가 보초들은 완전히 겁에 질렸다. 그들은 사람들을 부르면서 공격하기 시작했다.그러나 그들이 화진 제일 소년후의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촥 소리와 함께 공포스러운 검명이 울려 퍼졌다.눈을 깜빡이자 십여 명의 보초가 전부 소년의 검에 죽었다.여씨 일족 내부.문 앞에서 비명이 잇달아 들려오자 수백 명의 사람들이 그곳에 우르르 몰려들었다.그리고 그중에는 대가급 고수와 3명의 신급 강자가 있었다.“젠장, 문 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여씨 일가의 신급 강자이자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이 호된 목소리로 물었다.“둘째 장로님, 누군가 저희 여씨 일가 사람들을 죽이고 있습니다!”한 부하가 서둘러 대답했다.‘뭐라고?’그 말에 여씨 일가 둘째 장로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어떤 간이 부은 놈이 감히 그런 짓을 한단 말이야? 당장 나랑 같이 나가서 보자고!”여씨 일가의 둘째 장로는 말을 마친 뒤 십여 구의 피투성이가 된 시체를 보았다.문 앞에 윤구주는 신처럼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그의 앞에는 꼬맹이 남궁서준, 정태웅, 천현수가 있었다.오늘 밤, 윤구주는 그가 말했던 것처럼 사람을 죽일 생각이었다.서울 3대 문벌 중 하나인 여씨 일가를 멸족할 생각이었다.그들은 감히 윤구주의 형제들을 죽이려고 했을 뿐만 아니라 공공연히 윤구주가 서울에 가는 걸 막았다.“당신들은 누구야? 감히 우리 여씨 일족을 공격해?”여씨 일가의 둘째 장로는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눈을 부릅뜨고 화가 난 얼굴로 윤구주와 정태웅 등을 바라보았다.특히 윤구주를 보았을 때 그는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눈앞의 윤구주는 인간이 아니라 인간 세상에 내려온 신 같았다.“여씨
화진에서 가장 젊은 소년후인 남궁서준은 아주 살벌했다.윤구주에서 배웠기 때문이다.당시 10개국 간의 전쟁에서 남궁서준은 윤구주가 적을 완벽히 제압하여 그들을 항복하게 하고 시체가 산처럼 쌓이게 한 광경을 직접 목격했었다.그 일로 어린 남궁서준의 마음에 씨앗이 하나 뿌려졌다.그것은 바로 앞으로 윤구주 같은 죽음의 신이 되는 것이었다.남궁서준은 사람을 죽이겠다고 말하면서 앞으로 한 걸음 나섰는데 온몸에서 엄청난 살기를 내뿜었다. 그로 인해 그의 앞에 있던 두 명의 여씨 일가 사람들은 장기가 파괴되고 몸의 모든 구멍에서 피를 흘리며 죽었다.“엄청난 살기야! 저 자식은 누구지?”여씨 일가의 한 신급 강자는 남궁서준의 무시무시한 살기를 느낀 순간 서늘한 시선으로 남궁서준을 바라보았다.남궁서준이 아주 어린 걸 본 노인은 같잖다는 표정을 지었다.“머리에 피도 안 마른 꼬맹이였네! 너희 다섯 명, 저 자식을 죽여!”그는 큰 손을 휘둘렀고 옆에 있던 다섯 명의 대가급 고수가 곧바로 날아갔다.다섯 명의 여씨 일가의 대가들은 남궁서준이 어려서 상대하기가 아주 쉬울 거로 생각했다. 그래서 곧바로 치명적인 공격을 펼쳤다.다섯 명의 대가가 연합하면서 넘실대는 강기가 다섯 명의 치명적인 공격과 함께 남궁서준에게 날아들었다.그런데 남궁서준은 그들에게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손가락을 붙여서 검결을 만들어 다섯 사람을 향해 그었다.촤악!순간 엄청난 기검이 나타났다.검의 길이는 5미터 정도 될 듯했다.“이기어검! 기검화형!”“젠장, 저 꼬맹이 검도로 신급 강자였어? 얼른 물러나...”여씨 일가의 신급 강자가 말을 꺼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남궁서준은 5미터짜리 기검으로 여씨 일가 대가 5명의 몸을 꿰뚫었다.조금 전 손을 쓴 여씨 일가 대가 5명은 남궁서준의 손에 전부 유명을 달리했다.그 광경에 조금 전 입을 뗐던 여씨 일가의 신급 강자는 몸을 흠칫 떨었다. 심지어 여씨 일가의 둘째 장로도 안색이 어두워졌다.여씨 일가는 신급 강자가 두렵지 않았다.서울
그는 아주 유명한 태허 신급 경지 술사였다.그가 가슴팍을 치자 검은색 안개가 치솟아 올라서 방패를 만들었다. 그는 그것으로 남궁서준의 검을 막으려고 했다.하지만 막을 수 있을까?당연히 막을 수 없었다.쿠궁!남궁서준의 5미터짜리 기검은 전광석화처럼 여씨 일가의 신급 강자가 만든 방패막이를 공격했다. 쿵쿵 소리가 들리면서 방패가 그대로 부서졌다.여씨 일가의 노인은 충격으로 인해 마치 폭탄에 공격당한 듯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땅이 갈라졌고, 여씨 일가 노인은 입에서 피를 흘리며 구덩이에 쓰러졌다.“젠장... 이렇게 강하다고? 저... 저... 인간 맞아?”여씨 일가의 신급 강자 노인은 안색이 잿빛이 되었다. 그는 놀란 목소리로 말하면서 입에서 피를 흘렸다.어쩔 수 없었다.엄청난 검기를 지닌 남궁서준은 아주 살기등등했다.게다가 그는 단번에 그의 술법을 파괴하였고 그에게 중상을 입혔다. 그런데 어떻게 그와 싸운단 말인가?“죽어!”남궁서준은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았다.그가 죽이겠다고 하면 죽이는 것이었다.5미터짜리 기검이 여씨 일가의 신급 강자를 공격했다.“여섯째야, 얼른 피해!”그곳에 있던 여씨 일가의 둘째 장로는 그 광경을 보고 곧바로 손을 쓰려고 했다.다급했던 그는 아주 빠르게 두 손바닥을 뻗었고, 두 개의 손바닥이 화염의 힘을 지닌 채 남궁서준의 기검을 막으려고 했다.“흥! 감히 내 검을 막으려고? 안 될걸!”남궁서준은 하늘을 향해 오른손을 뻗었고 그 순간 5미터짜리 기검이 10미터로 변했다.거대한 기검은 무시무시한 파멸의 힘을 띤 채로 하늘에서 추락했다.그것은 여씨 일가 둘째 장로의 공격을 부쉈을 뿐만 아니라 여씨 일가 신급 강자를 갈기갈기 찢었다.여씨 일가의 신급 강자 한 명은 남궁서준의 공격을 막지 못하고 그대로 죽었다.그뿐만 아니라 조금 전 나섰던 여씨 일가의 둘째 장로는 얼굴이 창백해져서 입에서 피를 흘렸다.그 광경에 그 자리에 있던 여씨 일가 사람들 모두 넋이 나갔다.너무 놀라웠다.조금 전 죽은 사람은
여동운을 죽이겠으니 그를 불러 내오라는 말에 여씨 일가 사람들은 전부 넋이 나갔다.그들은 윤구주가 감히 여씨 일가 어르신의 존함을 막 부르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모든 여씨 일가의 사람들이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나이 든 목소리가 여씨 일가 내부에서 들려왔다.“휴, 결국엔 왔군요.”탄식이 섞인 말이었다.여씨 일가 내부에서 백발이 성성하고 체구가 건장한 노인이 걸어 나와 사람들의 앞에 나타났다.그가 바로 여씨 일가의 여동운이었다.그는 백 년 넘게 산 괴물이었다.그리고 그의 뒤에는 여섯 명의 여씨 일가 신급 강자들이 있었다.여섯 명 중 남자가 다섯 명이고 여자가 한 명이었는데 그들 모두 백 년 넘게 살았고 다들 아주 강한 신급 강자의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여씨 일가의 사람들 수백 명은 여동운이 나타나는 순간, 곧바로 그를 향해 무릎을 꿇으며 그를 어르신이라고 불렀다.여동운은 그들에게 눈빛 한 번 주지 않고 떨리는 두 눈으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윤구주를 바라보았다.한때 천하무적이었던 윤구주를 말이다.“여동운, 저하를 뵙습니다.”여동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여씨 일가 사람들 앞에서 윤구주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어르신, 이게 무슨...”그 광경에 여씨 일가 사람들은 전부 넋이 나갔다.여씨 일가의 조상인 그가 윤구주의 앞에 무릎을 꿇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세상에, 저 사람은 대체 누구지? 서울 3대 문벌 중 하나인 여씨 일가의 조상이 사람들 앞에서 무릎 꿇게 만든다니.’다들 경악하고 있을 때 여동운이 다시 입을 열었다.“저하께서 오셨는데 제가 직접 마중 나오지 못해 죄송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한때 저희가 저하에게 충성했던 점을 고려해서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백발이 성성한 여동운은 그렇게 말하더니 윤구주를 향해 힘껏 머리를 조아렸다.그러나 윤구주는 그에게 시선 한 번 주지 않았다.“얘기해 봐. 우리 암부 형제들을 죽이는 일에 여씨 일가가 가담했나?”윤구주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저하! 저
“그런데 너희들은 감히 내가 사라진 틈을 타서 나의 형제들을 죽이려고 했어.”윤구주의 살기는 이미 극에 달했다.그로 인해 사람들은 숨을 쉬는 것마저 힘들었다.그건 여씨 일가의 어르신 여동운도 마찬가지였다.그리고 여씨 일가의 신급 강자, 대가를 포함한 모든 이들이 그랬다.윤구주는 말을 이어갔다.“내가 얘기했을 텐데. 나 윤구주의 형제를 죽인다면 그자의 가족까지 전부 죽이겠다고 말이야. 오늘은 너희 차례야!”윤구주가 말을 마치자마자 여동운은 눈이 벌게져서 말했다.“저하! 저희 여씨 일가를 멸족하겠단 말입니까? 그러면 화진의 문벌이 폭동을 일으킬 겁니다! 심사숙고해 주세요!”여동운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서울에서 여씨, 황씨, 당씨 일가는 화진의 문벌 중 최고였다.만약 윤구주가 여씨 일가를 도륙한다면 다른 문벌들은 어떻게 할까?‘이 세상의 문벌을 전부 죽일 생각은 아니겠지.’“흥! 감히 다른 문벌로 날 압박하려고 해? 일개 여씨 일가 따위가 말이야. 6년 전, 나 윤구주는 무력으로 천하를 압도했어. 세가도, 종문도, 문벌도 마찬가지였다. 오늘 나 윤구주는 다시 한번 너희를 도륙할 것이다!”충격적인 말에 여씨 일가의 여동운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그는 두 눈이 벌게진 채로 살기 가득한 윤구주를 바라보면서 쓴웃음을 지었다.“그래요, 그래요. 저희 여씨 일가를 반드시 죽일 생각이라면 저희도 가만있을 수는 없죠. 그렇지 않습니까?”여동운은 말을 마친 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그 순간 그의 몸에서 기운이 천천히 퍼져나갔다.여동운은 여씨 일가의 조상으로 신급 강자 중고급이었다.140세가 넘는 고령의 그는 내공이 화진 경지였다.그의 몸에서 기운이 퍼져나가자 그릇만큼 굵은 불빛이 여동운의 주위에 나타났다.그것은 여씨 가문의 유명한 열화공이었다.“형님, 제가 죽이겠습니다!”화진 제일의 소년후가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면서 기운을 내뿜는 여동운을 죽이려고 했다.그러나 윤구주는 웃으면서 손을 저었다.“괜찮다. 오늘은 내가 죽일 거야.”말
혼자서 여씨 일가를 멸문시킨다니, 말도 안 되었다.게다가 여동운이라는 늙은 괴물이 있는데 말이다.그리고 7명의 신급 강자와 무도 대가 수십 명이 있었다.윤구주는 검은 옷을 입고 저승사자처럼 어둠 속에 서 있었다.그의 기운을 아무도 느끼지 못했다.오로지 그의 엄청난 살기가 여씨 일가 장원을 뒤덮었다는 것만 느껴졌다.“천하제일의 저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오늘 목숨 걸고 한번 시도해 보겠습니다! 전부 싸울 준비 해!”여동운이 제일 먼저 고함을 질렀다.“네!”그 순간 수백 명의 여씨 일가 사람들이 일제히 고함을 질렀다.비록 여동운은 윤구주가 실력이 뛰어나고 천하무적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오늘 윤구주 혼자서 여씨 일가를 멸문시킬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그는 이 세상에 그렇게 강한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여동운은 목숨 걸고 싸울 생각이었다.싸운다면 살아남을 수도 있었다.가장 먼저 손을 쓴 것은 여동운이었다.여씨 일가의 조상인 그는 백 년 넘게 산 늙은 괴물이었고 그의 열화공은 이미 최고 경지에 이르렀다. 그는 두 손바닥을 마주댔고 순간 그의 주위로 불바다가 펼쳐졌다.활활 타오르는 불기둥이 그의 주변에서 솟아 나왔다.그것은 여씨 일가의 열화공에서 가장 강한 팔비열화장이었다.불타는 손바닥이 나타나자마자 불기둥들은 한곳에 모였고 허공에서 엄청나게 큰, 불타는 손바닥이 생겼다.그 손바닥이 나타나자 주변 공기마저 전부 불에 타서 사라질 것 같았다.“팔비열화장!”여동운이 고함을 질렀다. 백 년 넘는 신급 내공이 이 순간 극치까지 끌어올려졌다.그가 두 손바닥에 힘을 주자 하늘 높이 치솟은 손바닥이 엄청난 기세로 윤구주를 공격했다.같은 시각, 뒤에 있던 여씨 일가의 신급 강자 7명이 전부 각자 공격을 시전했다.그뿐만 아니라 뒤에 있던 여씨 일가 사람 수백 명과 수십 명의 무도 대가들도 공격을 펼쳤다.그들의 공격 앞에서 윤구주는 검은 옷을 입은 채 도도히 서 있었다.모든 이들이 연합하여 일격을 퍼붓는 순간, 윤
단 한 걸음,그 한 걸음만 넘기면, 그는 곧 성급 바로 직전 경지에 이른다.그리고 그 마지막 문턱을 박살내는 순간 반쯤 성인이 된 경지, 반성급이다!지금 이 자리, 그 반성급 경지에 선 자는 바로 인마라고 불리는 무명이었다.“과연... 화진의 인황, 구주왕이라 불릴 자격은 있군. 하지만 너도 알겠지. 지금 네 수준으론 몸을 직접 이 판에 던지지 않는 이상 나랑 맞붙을 자격조차 없어. 네가 그 잘난 원신출체를 어떻게 하겠다는지 구경이나 해보자고. ”무명이 입꼬리를 비틀며 코웃음쳤다.팔기귀일에 도달한 윤구주의 전투력은 이미 황의 지경을 뛰어넘었다.하지만 무명과의 경지 차이는 여전히 너무 컸다.실력은 분명 엄청났지만 격이 다르였다.지금 상태로도 보통의 황자의 경지까지 초월한 상태지만 무명을 상대하긴 아직 한참 부족했다.심지어 무명이랑 싸울 실력은커녕 참마검조차 손에 제대로 못 잡는 게 현실이었다.“팔기로 부족하다면... 제구기는 어때? 구기:적선!”부우우우웅!윤구주의 온몸을 하얀 선기가 감싸는 순간 방금 전까지만 해도 비웃고 있던 무명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뭐라고? 이건 네 따위가 쓸 수 있는 기술이 아니잖아! ”그 순간, 무명조차 숨을 삼켰다.이건 상식의 틀을 깨부수는 광경이었다.근대에 들어서면서 도에 대한 수련는 사실상 약해졌다.그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세상에 흐르는 천지영기가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봉신전쟁 당시, 상상을 초월하는 영기가 소모됐고 그 전쟁이 끝난 후 곤륜구역은 세상의 영기 90%를 신계에 봉인해버렸다.거기서 마음껏 영기를 탕진한 것도 모자라 바깥의 산수들까지 무분별하게 빨아들인 탓에세상의 영기는 걷잡을 수 없이 줄어들고 말았다.결국 세상은 고위 수련자가 태어나기 어려운 구조가 되었다.그래서 화진에선 500년에 한 번 황자가 나올까 말까 할 정도이고 황자의 경지에 도달하는 건 지독하게 어려운 일이었다.임정설이 황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처음부터 그가 강해서가 아니라 윤구주를 돕기 위해 왕
마기가 검종 제자들의 혼백에 침투하자 그 순간 제자들의 몸에서 시커먼 마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이를 목격한 장인 대진인은 망설임 없이 즉시 결단을 내렸다. 오염된 제자들을 그 자리에서 곧바로 정화해 버린 것이다.“모든 제자들아, 입문 첫날 내가 분명히 말했을 것이다. 서요산은 찬란한 성지 화진 정통의 계승지다. 정은 사악함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정은 사악함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말은 바로 서요산 제자들이 평생 가슴에 새기며 살아가는 도의였다.입문과 동시에 깨달음을 얻은 그들은 언젠가 반드시 도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저 화진 정통의 수호자가 되기 위해서였다.그 순간 진요탑 외곽에서는 7대 진인을 중심으로 전 종문 제자들이 목숨을 걸고 진요탑을 사수하고 있었다.하늘을 뒤덮을 듯한 마기의 기세는 점점 거세져 어느새 검종의 경내 전역을 삼켜버렸다.검종 제자들은 마기를 막아내면서도 동시에 진요탑의 결계를 유지해야 하는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정도를 지키는 일은 그만큼 고통스럽고 힘든 투쟁이었다.산 아래 상황도 마찬가지로 치열했다.온갖 요괴와 귀신들이 들이닥치는 가운데 임정설은 황운을 등에 업고 이씨 가문의 국운을 모두 모아 홀로 수백만 마기를 막아서고 있었다.백호는 마인으로 완전히 변신해 광란의 충격 속으로 몸을 던졌고, 스스로 마를 품은 채 적진을 난도질했다.청해는 천뢰신술을 펼쳐 수만 개의 천뢰를 무기로 변환시켜 온갖 사도와 악귀를 쓸어내기 시작했다.그 무렵 진요탑 내부에서 풍무극의 기세는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구주야, 내 한계에 도달했다. 이제 내 500년 수련의 혼을 너에게 바치겠다."”풍무극의 준비는 이미 완료되었다.그는 미리 준비해 둔 제천 법기를 꺼냈고 전법이 발동되는 순간 그의 육신은 산산조각 부서졌다.그의 정기와 천지 정기를 모두 품은 찬란한 진신 영혼은 한 자루의 참마검으로 변해 윤구주 앞에 떠올랐다.“풍 종주...” 윤구주는 입술을 깨물었다.슬프고 아쉬
윤구주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새로운 국운의 기운이 그의 발밑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그가 진요탑의 문에 도달했을 무렵 모든 국운이 윤구주에게 집중되었다.윤구주의 주변으로는 천인신광이 펼쳐져 있었다.이 순간만큼은 그가 천지의 주재자 화진의 영겁을 관통한 유일한 존재였다.윤구주는 홀로 진요탑 안으로 들어섰다.겉보기에 거대한 산 같았던 진요탑의 내부는 참혹한 말세의 풍경이었다. 땅은 끝없이 펼쳐진 용암으로 뒤덮여 있었고 하늘에서는 강줄기가 거꾸로 흘러내리고 있었다.불과 물이 충돌할 때마다 하늘과 땅을 뒤흔드는 격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거꾸로 흐르는 강물 위에 한 노인이 앉아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백발이 성성한 그 인물은 다름 아닌 서요산 검종의 종주였다.밖에서 보이던 강건한 중년의 모습은 단지 화신에 불과했으며, 본체는 수백 년 전부터 이 진요탑에서 마인을 봉인해 왔다.서요산 검종 종주는 극도로 지쳐 있었고 이제는 마지막 호흡으로 버티고 있었다.“드디어 왔구나.” 서요산 검종 종주는 허약한 전음으로 말을 건넸다.“오백 년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종주님.” 윤구주는 고개를 숙였다.풍무극은 현 서요산의 종주이자 당대 최고의 영웅, 화진 제일 검으로 불리던 남자였다.원래는 풍속을 다루는 수련자로 젊은 시절엔 검 하나로 화진을 호령한 사내로 알려졌다.그의 검은 아무도 궤적을 볼 수 없었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500년 전 마인이 봉인되고 서요산의 조사가 승천한 후, 풍무극은 서요산의 거자로서 종주의 자리를 이어받았다.그날 이후 진요탑에 몸을 묻고 마인과의 싸움을 500년간 지속해 왔다.풍을 다루던 그였지만 지속적인 봉인을 위해 익숙하지 않은 수속까지 수련하며 지금까지 버텨왔다.그가 마도에 빠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이미 기적이었다.“그래도 괜찮다. 다행히 이 시대에 또다시 인황이 나왔으니. 화진은 연달아 두 명의 인황을 배출했다. 임정설이 인황에 등극한 지금 쇠락하던 이씨 가문의 국운이 다시 살아났다. 그가 천지의
마인이 출현하면 곤륜 구역조차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서요산 검종의 진요탑은 이미 오백 년 동안 그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다.이는 곧 그 마인이 오백 년 동안 진요탑 안에 봉인되어 있었음을 의미했다.“우리가 가진 유일한 이점은 저 마인이 지난 오백 년간 수련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그 오백 년 동안 분명 무언가를 '깨달았을' 가능성도 있겠지요. 정도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사도가 존재하는 법입니다. 만약 그가 이곳을 벗어나 다시 한번 돌파에 성공하여 진정한 성인의 경지에 오른다면… 그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예전 우리 종문의 선대 종주께서 이 마인을 직접 봉인하셨습니다. 하지만 선대 종주께서는 진요탑만으로는 그를 완전히 봉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찍이 아셨지요. 그래서 마침내 구천으로 비상하셔서 바깥 세계에 존재한다는 신기를 찾기 위해 떠나신 것입니다.”장인 대진인이 비밀을 털어놓자 임정설은 왜 그 옛날 서요산 검종을 창립한 선조가 갑자기 사라졌는지 이해했다.“구천을 비상했다고? 전설 속 그 이야기 설마 전부 사실이었단 말인가? 이 세상 위에 더 위대한 세계가 있다는 건가?” 임정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을 이었다.“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들은 바로는 성인이란 육지에서 신선이 된 자를 이르는 말이고 준성은 그보다 한 단계 아래 반쯤 신선이 된 존재라 하더군요. 우리보다 더 풍부한 영기의 세계가 과연 존재하는지는 이 몸 역시 감히 짐작할 수 없습니다.” 장인 대진인은 고개를 저었다.그때였다.진요탑이 거칠게 흔들렸고 모든 호법 제자의 얼굴이 딱딱해졌다.수련이 부족한 제자 몇몇은 그 자리에서 마기의 침식으로 피를 토했다.“모든 제자에게 고한다. 나와 함께 현문을 수호하라.” 장인 대진인이 친히 자리에 앉아 온 종문의 기운을 모아 마인을 억제하기 시작했다.마인은 일시적으로 제압되었지만 산 밖의 요괴들과 악귀들은 마기의 부름을 받아 사방팔방에서 서요산으로 몰려들고 있었다.임정설은 이제 자신이 이곳에 온 진짜 이
“저하,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그를 죽여야 합니까? 저자의 기운이 이토록 흉악한데 성수의 혈기로 진압할 순 없습니까?” 백호는 이미 싸우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안 된다. 너희 네 명이 함께라면 잠시나마 억누를 수는 있겠지만, 너희는 그저 성수의 정혈을 가졌을 뿐이니 마인을 완전히 없애려면 성수가 직접 나타나야 한다. 지금 이 세상에 성수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스럽다.”윤구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말을 마친 윤구주는 곧장 진요탑 쪽으로 향했다.백호와 임정설, 청해가 함께 가서 돕고자 했으나 장인 대진인이 그들을 가로막았다.“이 마인은 오직 구주만이 상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국주님, 곧 전투가 시작될 터인데 서요산의 진법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 호법의 중임을 몇 분께 맡기겠습니다.”장인 대진인이 임정설에게 경건하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좋다. 오늘 이 자리에서 목숨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저 마인을 죽이고야 말겠다.” 임정설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황자의 위엄을 한껏 드높였다.화진의 존망이 걸린 일이라면 임정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하지만 마기가 몰려와 서요산 전체를 뒤덮고 세상이 오직 흑백 두 가지 색깔만으로 변해버리며 그 끔찍한 살기가 강림했을 때 임정설마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떨렸다.“이 마인의 기운이 이렇게까지 무서울 줄이야.” 임정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마기로 가득 찼고 윤구주마저 그 기세에 눌리고 있었다.진요탑에서 흘러나온 마기는 실체가 되어 넘쳐흘렀다. 마기가 나타나자 서요산을 지키는 모든 검종 제자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어떤 제자는 순간적으로 십여 년을 늙어버렸다.수련이 부족하면 수명으로라도 채워야 하는 참혹한 상황이었다.웅웅.하늘에는 먹구름이 밀집했고 그 안에서 요괴의 번개가 끊임없이 터졌다.“이젠 영기조차 요기로 변하고 있다. 풍수 비술로 보건대 머지않아 이곳에서 요마가 출현하겠구나.” 임정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요산 외부에서 짙은 요기
도가는 인연이라는 두 글자를 대단히 중히 여긴다.그의 한 번의 인연, 한 번의 생각은 곧 만백성의 생사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윤구주가 정상에 오르자 앞서 온 다른 이들과는 달리 서요산 검종의 모든 이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여 깊은 존경을 표했다. 그들이 경배한 대상은 단순한 한 인간이 아니라 구주의 저하, 화진의 인황, 오방 천지의 주재자였다.“모두 일어나십시오. 제가 오늘 서요산에 온 이유는 오직 진요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진요탑 안의 마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문 씨 세가의 역심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마인을 죽여야만 문 씨 세가의 야심도 함께 근절할 수 있습니다.”윤구주는 서요산 검종의 모든 제자를 향해 엄숙하게 말했다.이번 서요산 행차의 목적은 바로 문 씨 세가의 역심을 뿌리째 뽑는 것이었다.검종 제자들이 앞장서 일행을 이끌었고 모두가 금정을 지나 뒷산으로 향했다.뒷산에 막 들어서자마자 음산한 기운이 얼굴을 스쳤다.후산 중앙에는 높이 오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산이 서 있었는데 그 산은 무려 구백구십구 개의 쇠사슬로 단단히 봉인되어 있었다.이 쇠사슬은 그저 평범한 사슬이 아니었다. 절반은 땅속의 지맥과 연결되어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하늘 높이 떠올라 천지의 영기를 끌어모으고 있었다.이런 수준의 봉인이라면 설령 윤구주 자신이 여기에 갇혀 있다고 해도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이처럼 견고한 고진마저 지금은 마인의 사기로 조금씩 부식되어 가고 있었다. 본래는 영기가 흘러넘치는 명산이었으나 지금은 온 서요산이 마인의 기운에 물들어 음침하고 괴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이 강렬한 악기운을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모두 얼굴을 찌푸렸다.솟구치는 사기를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찌푸렸다.최근 몇 대에 걸쳐 입종한 서요산의 제자들은 이런 마인의 사기와 요마의 위협 속에서 수련해야 했다.천지의 영기조차 마인의 기운에 오염되어 수련에 큰 지장을 주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남은 현
이 말을 듣자 모든 이들은 천 년 전 마지막으로 나타난 그 성인이 바로 서요산 검종에서 나왔음을 깨달았다.“짐은 서요산 검종의 선대 종주께서 우화등선하셨다고만 들었는데 그저 떠도는 신화 속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더니 은 성인의 경지에 이르신 것이었군.” 임정설이 깊은 감탄과 함께 말했다.구백 계단 윤구주는 이미 전설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하지만 그 전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구백삼십 계단 사십 계단을 오르면서 윤구주의 발걸음은 오히려 더욱 가벼워졌고 그가 세우는 기록은 사람들의 상식을 계속해서 뒤흔들었다.구백팔십 계단을 지나 정상까지 겨우 십여 계단만 남은 그 순간 윤구주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구백구십구 계단에 이르러 결국 완전히 멈추었다.드디어 한계에 도달한 것인가?모두가 숨을 죽이고 윤구주를 지켜봤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분명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시험일 터였다.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십여 분을 견뎌냈다. 사람들은 그가 언제 다시 계단을 오를지 초조하게 기다렸다.마침내 윤구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됐습니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시험을 포기하지요.”말을 마치고 계단에서 내려서는 순간 청석 계단 아래에서 강력한 영기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쳤고 곧바로 서요산을 감싸던 어둠의 기운을 깨끗이 몰아냈다.오랫동안 음울했던 서요산 상공은 순식간에 환해졌고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맑은 하늘이 펼쳐졌다.서요산의 모든 이들은 충격에 빠져 넋을 잃었다.그제야 그들은 윤구주가 왜 그토록 여유롭게 올라올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서요산의 청석 계단이 가진 진법의 힘을 계속해서 억누르고 있었다.“참으로 대단하신 신위군요! 우리 서요산의 청석 진법마저 제압하셨다니! 마지막 한 걸음을 분명 넘으실 수 있었을 텐데 혹시 강제로 넘었다가 진법이 견디지 못해 영기가 새 나가고 진법이 무너져 진요탑까지 영향을 미칠지 걱정하신 건 아닌가요?” 장인 대진인이
도법의 깊이는 워낙 심오해서 임정설조차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다.“쉽게 말씀드리자면 구주는 천지의 운기를 완전히 장악한 데다가 하늘이 직접 영광을 내리신 거죠.” 장인 대진인이 말했다.임정설은 이 말을 듣고 비로소 이해한 듯 말했다.“대진인의 말은 윤구주가 바로 하늘이 점지한 사람이라는 뜻인가?”“맞습니다. 우리 화진 사람들은 운명의 갈림길에 서면 본심에 따라 도법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깁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사는 다하고 하늘의 뜻을 따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윤구주는 분명 큰 복을 타고났지만 그 엄청난 복을 감당할 힘도 필요합니다.”대진인이 설명했다.말이 끝날 무렵 윤구주는 이미 육백삼십 계단을 거뜬히 올라와 있었다.한 걸음도 멈추지 않고 더욱 확고한 걸음으로 계속 전진했다.그의 발걸음마다 천지의 기운이 응축되었다.어느 순간 서요산의 계단조차 윤구주의 기세를 가두지 못했다. 그는 마치 천지를 밟으며 오르는 듯했다.곧이어 그는 칠백 계단마저 돌파했다.칠백 계단이란 천 년 전 서요산의 전성기에도 극소수만이 도달할 수 있었던 경지였다. 지금 만약 윤구주가 구주왕이 아니라 일반 수련자였다면 이 기록만으로 서요산 전체가 들썩였을 것이다. 만일 윤구주가 서요산에 입문을 원했다면 서요산은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 그를 키웠을 것이며 서요산 검종의 다음 종주 자리는 당연히 그에게 돌아갔을 것이다.그러나 이미 칠백 계단에 이르렀음에도 윤구주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칠백오십 계단 팔백 계단 팔백오십 계단!그는 끊임없이 정상의 기록을 깨며 전설을 써 내려갔다.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윤구주 앞에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을 것 같았다. 이쯤 되자 장인 대진인조차 감히 그를 함부로 평가할 수 없었다.왜냐하면 자신도 과거에 겨우 칠백 계단에 그쳤으니 팔백 계단을 오른 사람을 감히 평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윤구주는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마치 천지를 흔들어 이 강산을 뒤엎어버리겠다는 기세였다.그리고 마침내 구백 계단에 이르렀다.“구백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