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본홍봉의 눈이 빛났다. 그의 몸 주변으로 강한 바람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불이 담긴 염구준의 주벅과 송본홍봉의 소용돌이가 충돌했다. 어느 쪽도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잠시는 어느 쪽이 우위인지 분간이 안 가는 듯했다. 하지만 이때, 염구준의 입가에 차가운 조소가 맺혔다. 그가 가볍게 발을 구르는 순간, 온 몸에서 불길이 솟구쳤다. 염구준은 불 그 자체가 된 듯, 활활 타오르며 순식간에 바람을 집어 삼켰다. 바람은 그렇게 서서히 위력을 잃어가고 있던 순간이었다. 염구준의 주먹이 송본홍봉의 소용돌이 중앙에 내리 꽂혔다. “천생도체, 백맥통달? 이런 체질이 진짜 존재했단 말인가?”송본홍봉의 눈에 빛이 번뜩였다. 정말 부러운 재능, 부러운 체질이었다. 그는 소용돌이가 완전히 부숴지기 직전, 공중에 손가락으로 문 그림을 그리고 순식간에 그 안으로 사라졌다.순간이동 술법!송본홍봉의 모습이 서서히 문 속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같은 순간, 염구준 뒤쪽으로 약 일 미터 떨어진 곳에, 거센 기운의 파도가 일었다. 없어졌던 송본홍봉이 나타난 것이다. 그는 순식간에 염구준 뒷목을 향해 손을 뻗으며 냉소를 지었다.“네가 졌어!”아무리 염구준이라도, 이 상황에서 반격하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런데 송본홍봉의 손가락이 염구준 목에 닿기 직전, 갑자기 염구준이 몸을 돌리는 것이 보였다. “아니, 진 건 너다!”염구준이 송본홍봉의 눈을 똑바로 마주보며 말했다.“왼쪽 갈비뼈, 안 느껴져? 만약 대련이 아니었다면, 죽지 않더라도 중상이었어!”송본홍봉이 놀란 표정으로 자신의 왼쪽 허리를 내려다보았다. 무도복 위로 주먹만 한 불꽃이 서서히 수그러드는 것이 보였다. 그의 옷은 마치 뜨거운 불에 닿은 듯, 까맣게 녹아 있었다. “주먹이 꽤 매섭군!”송본홍봉이 무도복에 남은 불꽃을 털며 다시 목탁 옆에 앉은 채 말했다.“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건 인정하지. 하지만 그런 생각해 본 적 없나? 내가 아무런 대비도 없이 위험을 감수했을까? 나와 용하국 은둔 가문 사이를 알
온천 물에서 그들이 튀어나온 순간, 염구준은 이미 신념으로 그들을 감지한 상태였다. 그들의 공격은 소리소문 없었지만, 그는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염구준은 그들은 신념으로 그들의 위치를 이미 파악한 상태였기 때문에, 눈으로 쫓을 필요도 없었다. 염구준은 그동안 쌓아온 전투 경험을 바탕으로 망설임없이 주먹을 날렸다.용하국의 고무학, 진공장!여섯개의 주먹, 공기를 가르는 폭음! 하지만 그들은 마치 물속을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유유히 그의 주먹들을 흘려 보내며 충격을 피했다. 염구준의 공격 대부분이 허공을 가르고 사라졌다. 그들은 흘려버릴 때의 반동을 이용해 방향을 바꾸며 또 다시 허공에서 사라졌다. 그들은 마치 공기와 하나가 된 듯, 진정한 은신이 무엇인지 보여줬다. 염구준은 이제 신념을 이용해서도 그들의 위치를 찾을 수 없었다. “주군, 죄송합니다.”염구준 뒤에 있던 청용전이 죄책감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방금 전, 염구준이 그를 보호하는데 신경을 쓰지 않았더라면, 진작에 둘을 죽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놓치게 되었으니, 큰 손실이었다. 청용전존은 지금 염구준의 짐이 되었다. 그들이 또다시 청용전존을 향해 공격을 날린다면, 염구준도 위험에 빠질 수도 있었다. “괜찮아. 네 잘못 아니야.”염구준이 청용전존을 향해 고개를 저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지금부터 전력을 다할 테니, 너도 조심해!”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를 눈치챈 청용전존이 놀란 표정으로 말을 꺼내려던 순간이었다. 우웅! 염구준 손에서 진동이 일어나더니, 붉은 장벽이 조용히 떠올랐다. 그것은 불꽃이 되어 청용전존을 완전히 둘러싸 방어막을 형성해 주었다.“주군…청용전존이 감동에 눈물을 글썽이며 염구준을 불렀다. 염구준은 그를 위해 아낌없이 천인지력을 사용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두 암살자 제외하고도 송본홍봉 그리고 송본경복까지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네 명을 상대하면서 동시에 청용전존까지 보호해야 되니, 어려운 전투가 될 게 분명했다!“이런 상황에서도 천
“정신 충격….”멀리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송본홍봉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믿기지 않았다. 이 젊은 나이에 벌써 이토록 높은 무학을 구현해 내다니, 충격적일 정도로 놀라운 재능이었다.“송본홍봉!”염구준 손에 잡혀 있던 두 암살자가 그를 향해 외쳤다.“지금 당장 움직여. 우리가 죽으면, 너도 내 가문의 화를 받게 될 거다!”송본홍봉은 더 이상 숨지 않고 즉시 전력을 다해 염구준에게 공격을 날렸다.순간이동 술법!그의 몸에서 기운이 미친 듯이 소용돌이치며 두 암살자를 향해 빠르게 뻗어져 나갔다. 두 암살자는 그 기운에 감싸져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다시 나타났을 땐 이미 염구준으로부터 20미터 정도 떨어진, 정신 충격의 범위를 벗어난 상태였다.“송본, 우리와 함께 싸워라!”두 암살자가 간신히 두통을 억누른채 송본홍봉을 향해 외쳤다.“더 이상 구경만 하지 말고, 전력을 다해 염구준을 죽이란 말이다!”“하지만….”송본홍봉은 망설여졌지만, 그의 말 대로 지금은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하지만 속에는 아직 두려움이 남아 있었다. 이미 한번 염구준과 싸워본 경험으로 그의 강함이 어느 정도인지 눈치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면으로 붙은 것도 아니고, 몸을 숨기면서 싸운 두 암살자조차도 염구준에게 일말의 부상도 입히지 못했다.하지만 여기서 저들의 말을 거부하는 건 후환이 두려웠다.“뭘 망설여!”두 암살자가 다시 한번 송본홍봉을 향해 날카롭게 외쳤다.“너도 옥패의 무학을 배웠잖아! 우리의 약속을 잊지 마라!”“시간 낭비하지 말고, 빨리 필살기 사용해!”필살기… 송본홍봉은 결단을 내렸다. 그는 입안 볼 살을 깨물어 상처를 만들었다. 곧이어 입안에 피가 가득 고이자, 송본홍봉은 망설임없이 그것을 뱉어내 손에 들고 있던 붓을 적셨다. 그리고 빠르게 노란색 종이를 채워져 가는 그림, 피로 만들어진 종이 인형이 완성되었다.피의 그림자!이건 신무 옥패에서 유래된 기묘한 술법으로, 종이 인형은 만들어진 순간부터 전신 중기 강자와 맞먹는 실력을 가지게
궁본웅이 허리에 찬 칼 손잡이에 손을 가져다 대며 경상철석을 향해 고개를 숙여 보였다.“저희에게 이득이 되는 일인데, 그냥 지켜보는 건 군자로서 할 도리가 아닌 것 같습니다.”“지원, 양리!”그러자 어디선가 경상지원과 경상양리가 나타나 경상철석 앞에 동시에 몸을 숙였다.“아버지!”“경상 가문, 저희의 오랜 숙적! 염 선생님이 그들과 생사를 다투는 싸움을 하고 있는데, 저희가 안 도우면 누가 돕겠습니까!”경상철석이 서북쪽 저 멀리를 바라보며 전투의지를 불태웠다.“모든 일원에게 전투 준비를 하라고 전해라. 오늘 우리는 반드시 송본 가문 뿌리를 뽑는다!”그의 명령에 경상지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휴대폰을 꺼내 명령을 전달했다. 잠시 뒤, 통화를 마친 경상지원을 보고 경상철석이 눈을 번뜩이며 명령했다.“차 준비해. 가장 빠른 속도로 온천 누각으로 가 염 선생을 도와 송본홍봉을 처치한다!”몇 분 지나지 않아, 모든 사람들이 준비를 마쳤고 빠르게 송본 가문으로 향했다.한쳔, 송본 가문, 온천 누각.“강해도, 너무 강해….”송본홍봉은 몇 번이나 공격했지만, 모두 염구준에게 먹혀 들지 않았다.그는 궁본웅과도 싸워보고, 몇몇 반보천인들과도 전투를 치러봤으나, 이정도로 두려움을 느껴본 건 처음이었다.송본홍봉을 제외하고도 암영시를 익힌 두 암살자도 함께 공격을 넣었으나, 염구준은 밀리지 않고 각종 용하국 고무학을 구현해 모두 막았다. 심지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은신술조차 처음만큼 통하지 않았다. 얼마나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지, 이제는 종종 티를 내지 않아도 위치가 발각될 정도였다. 하지만 그래도 사대일, 승부는 팽팽했다. “염 선생!”이때, 어디서 낯설지 않는 목소리가 들려왔다.경상철석이였다!경상철석을 선두로, 궁본웅, 경상 남매가 줄줄이 나타났다. 그들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송본홍봉과 송본경목, 그리고 기세등등하게 허공을 향해 공격을 날리는 염구준을 바라보며 의문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지금… 누구와 싸우고 계신 겁니까?”그들
비록 구자검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천인의 힘을 담는다면 다른 검이라도 비슷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이런!”염구준이 검을 잡는 모습을 보자, 송본홍봉과 두 암살자는 큰 공포에 휩싸였다. 하지만 도망치기엔 이미 너무 늦은 뒤였다. 검이 진동하며 폭음이 울려퍼졌다. 동시에 사방으로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염구준은 그 검을 들고 공중으로 뛰어오르더니, 힘껏 아래로 내리쳤다!용하국의 고무학, 피공참!천인의 힘이 가득 담긴 일격이었다. 염구준은 송본홍봉을 비롯해 은신하고 있는 두 암살자들의 위치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웅장한 불꽃을 담은 검이 하늘을 가르며 닿는 곳마다 초토화시키며 붉게 물들었다. 동시에 네 명의 허리에 생긴 깊은 잔상, 염구준은 단 일격에 이 넷을 모두 베었다.어떤 반항도, 술법도 통하지 않는, 강한 신념이 그들을 얽매었다. 갈라진 그들의 허리는 새까맣게 탔고, 동시에 생명의 불꽃도 영원히 꺼졌다.“훌륭한 검술이군!”멀리서 이 모습을 지켜본 경상철석이 참지 못하고 감탄했다. 그러다 문득 뭔가 생각났는지, 얼굴색이 급속도로 변했다.“큰일이군!”정말 큰일이었다. 이제 송본홍봉이 죽었으니, 더 이상 신무 옥패 행방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어졌다. 만약 이걸 빌미로 염구준이 그들을 핍박하기라도 한다면, 큰일이었다!“아깝게 됐군.”염구준이 치켜들고 있던 칼을 거두며 땅에 착지했다. 궁본웅의 칼은 그의 힘에 못 이겨 이미 엉망으로 망가진 상태였다. 염구준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궁본웅에게 말했다.“미안합니다. 제가 너무 힘을 주는 바람에 칼이 망가졌습니다.”궁본웅은 그 모습을 보고 식은 땀을 흘렸다.그의 검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강하다는 금속 제련 기술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런데 단 일격만에 이렇게 망가지다니, 궁본웅은 다시 한번 염구준의 실력에 충격받았다.그도 반보천인이긴 했지만, 염구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송본홍봉이 죽은 이상 신무 옥패 모조품에 대한 단서도 물 건너 갔네.”잠시 생각하던 염구준이
얼마 전, 진무석이 손씨 그룹 해외지사 빌딩 앞에서 아들 진서호를 거의 죽일듯이 팼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 뒤로 염구준과 손가을을 만난 것 같은데, 문제는 이후였다. 둘은 마치 증발하듯, 사라졌다.도대체 이 둘은 어디로 갔을까?잠시 고민하던 안홍기가 입을 열었다.“납치사건 이후로 진무석은 곧바로 아들을 데리고 사과하러 갔었죠. 그 뒤러 봉황국을 떠났으니, 연관된 사건이 한둘이 아닌 것 같습니다.”“그러고 보니까, 손씨 그룹, 수상한 점이 한 두개가 아닙니다.”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하지만 사건의 중점이 정확히 파악되지 않아, 이들도 내릴 수 있는 결론이 없었다. “며칠만 더 기다려 봅시다. 앨리스 쪽에서도 뭔가 반응이 있을 겁니다.”같은 시각, 엘 가문, 봉황국 고성 별장.앨리스의 손엔 와인잔이 쥐어져 있었다. 빙글빙글 와인잔을 돌리며 생각에 잠겨 있던 그녀는 점점 표정이 안 좋아졌다.진씨 가문이 염구준에게 거슬리는 존재가 된 이상, 무사하지 못할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너무 급작스러웠다. 앨리스는 진씨 가문이 무너지는 틈을 타, 뒤통수 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진무석이 모든 자산을 팔고 봉황국에서 자취를 감춘 바람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진씨 가문이 무너진 것은 그녀에게 기쁨이었으나, 예상과 달리 실질적인 이득은 얻지 못한 것이다.“아가씨, 진씨 부자가 떠날 때 제가 멀찍이 공항에서 지켜봤는데, 좀 이상했습니다.”경호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몸을 숙이며 낮은 목소리로 앨리스에게 보고했다.“무슨 이유인지, 패잔병처럼 침울해 있어야 할 진무석이,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장군처럼 비장해 보였습니다.”“그래?”앨리스가 흥미가 돋았는지 다시 되물었다.“잘못 본 건 아니겠지?”“절대로 아닙니다!”경호원이 몸을 숙이며 확신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멀리 떨어져 있었는데도 진무석이 흥분한 모습이 아주 잘 보였습니다. 절대 연기가 아니었습니다!” 앨리스는 생각에 잠겼다
그녀와 염구준 사이는 결코 남이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앨리스가 아무리 매력적이고 대단한 여자라도, 달라질 건 없었다.“앨리스 씨가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구준 씨와 다시 얘기해 볼게요.”손가을은 목소리에 힘을 주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부드러웠다.“그리고 제가 와이프인데, 비즈니스 자리일수록 더 함께 해야죠. 그럼 결정되는 대로 연락드릴게요.”아내이니까 당연하다는 말투, 앨리스는 속이 답답해졌다. 하지만 맞는 말이기도 했기 때문에 차마 반박하지 못하고 간단한 인사와 함께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몇 분 지나지 않아, 저녁에 만나자는 문자가 왔다.그 즉시, 앨리스는 드레스룸으로 향했다. 오늘 반드시 손가을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리라!당일 오후 6시, 손씨 그룹 해외 지사 빌딩 앞.“송 대표님도 같이 온다고 한 거 아니었나요?”앨리스가 한정판 람보르기니 안에서 캐주얼 복장을 한 채 혼자 서 있는 염구준을 바라보며 물었다.“어떻게 된 거예요? 생각 바뀌었대요? 저희가 단둘이 만나는 거, 허락한 거예요?”염구준은 뻔히 보이는 앨리스의 의도에 속으로 코웃음 치며 무심히 차에 올라탔다.“출발하세요.”람보르기니는 천천히 봉황국 중심 상업가에 있는 서양식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목적지에 독착하자, 앨리스가 염구준에게 자랑스레 말했다.“여긴 봉황국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이에요.”차에서 내린 앨리스는 곧바로 염구준 곁으로 다가서며 손을 내밀었다. “구준 씨, 이 분위기엔 팔짱 정도는 당연히 끼게 해 줄거죠?”이름을 허락한적 없는데, 제멋대로 친근하게 부르다니, 염구준은 어이가 없었다. 그는 앨리스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고 무시한 채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갔다.“당신…!”앨리스는 그의 차가운 태도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모처럼 잡은 기회를 놓칠 수 없어서 얼른 그의 뒤를 따랐다. 전용 VIP 좌석!두 사람은 직원의 안내를 받아 차례로 자리에 착석했다. 앨리스는 자신의 모습에 전혀 흔들리지 않는 염구
앨리스는 조급해졌다. 그녀는 가식적인 모습을 집어 던진 채, 솔직하게 그에게 고백했다. “염 선생님,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 저희 가문이 스스로 지킬 수 있는 힘을 키우려면, 진씨 가문의 자원을 확보해야 했어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저희 노력은 헛되었고 아무것도 얻지 못했어요. 솔직하게 말씀드릴게요. 염 선생님께서 도와주시기만 한다면, 저희 가문의 자원,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게 해드릴게요. 또한 손씨 그룹이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전적으로 지원할 겁니다!”앨리스는 긍정적인 대답이 나오길 기대하며 희망찬 얼굴로 염구준을 바라봤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실망뿐이었다. 그는 마치 의사를 표현할 가치조차 없다는 듯,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이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면, 뭘 드려야 마음을 움직이시겠어요?”그래도 앨리스는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다시 염구준의 손을 붙잡으며 매달렸다.“무엇이든 말씀만 해주세요. 최선을 다해 반드시 충족해드릴게요.”그제야 반응이 돌아왔다. 염구준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차갑게 말했다. “이거 놔요!”“제가 손가을 대표였어도 이렇게 차갑게 대했을까요?”앨리스가 쓴 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손을 뗐다. 얼굴엔 실망스러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녀는 메뉴를 보지도 않고 와인만 가득 들이켜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병, 두 병, 세 병… 와인 병은 점점 늘어갔고, 앨리스는 취해 의식이 희미해졌다. 그녀는 결국 주변에 몰려든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테이블 위로 엎어졌다.“왜 손가을은 되고, 전 안 되요? 취기가 오르면, 저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질 거라 생각했어요…. 당신은 제 어디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들어요? 제 어디가….”앨리스는 어디에도 빠지는 여자가 아니었지만, 결코 손가을을 대신할 수 없었다. 염구준은 깊이 한숨을 내쉬며, 제대로 몸도 가누지 못하는 앨리스를 들어올려 레스토랑 밖으로 나갔다. 이젠 진짜로 손가을에게 돌아갈 때였다. 염구준은 앨리스를 데리고 봉황 호텔로 향했다. “아… 머리야….”
스스로 조소하던 로사는 카트 아래에서 가운을 꺼내 몸을 감쌌다.상대방이 이런 취향이 아닌데 계속 이러고 있으면 오히려 반감만 생긴다.솔직히 처음으로 당당하게 남자를 유혹하려 하는데 단번에 거절당해서 매우 부끄러웠다.한참이 지나도 말을 하지 않자 염구준이 소녀의 생각을 추측했다.“내가 대신 복수해줘? 탈출시켜줘, 아니면 무공을 알려줘?”“전부 다요!”로사는 그가 전부 맞힐 줄은 상상도 못했다.염구준은 별로 놀라는 기색이 없이 미리 쓴 원고를 던지며 말했다.“거기에 적힌 대로 하면 무공을 터득할 수 있어. 나머지는 너를 도와줄 의무가 없어.”그가 이렇게 호의를 베푸는 것은 소녀가 정말 무공을 배우기에 적합한 인재이기 때문이었다.로사는 실망을 감추지 못했지만 그래도 강요하지 않고 다른 방법을 시도했다.“그럼 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어요?”“말해.”마침 염구준도 시간이 있기에 로사의 말을 들어주고 나중에 복수하는 것을 포기시킬 생각이었다.그러면서 음식을 먹는 것을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로사는 일단 생각을 정리하고 조리 있게 말하기 시작했다.“난 고아예요. 아주 어릴 때 고아원에 들어갔었죠. 그곳은 낙원일 줄 알았는데 원장이 나를 신비한 조직에 팔아버렸어요. 나랑 함께 그곳에 간 아이들은 혹독하고 잔인한 훈련을 받으면서 피비린내 진동하는 살인 도구로 살았어요.”“그러다 반 년 전에 내가 조직의 두목을 죽이고 도망쳤어요. 그곳을 이가 갈리도록 원망해요. 선배님은 실력이 강한 무술인이란 걸 처음 봤을 때부터 알았어요. 나를 가엽게 여기고 옆에 하인으로 있게 해주면 안 돼요?”예상하지 못한 말에 염구준은 흠칫 놀라더니 젓가락을 내려놓았다.“만약 네 말이 사실이라면 사정이 딱하긴 해. 그렇다고 난 도와주지 않아.”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지만 로사는 용하인이 아니기에 더더욱 도와줄 이유가 없었다.그리고 곁에 하인을 두면 귀찮은 일만 생기기에 그럴 필요가 없었다.무공 수련법 한 장을 준 것도 의리를 다한 셈이었다.“그래도 나를 구
염구준은 육신이 극한에 도달한 이후로 공격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너… 악!”촤아악!바다의 유령은 말도 제대로 못하고 비수를 든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순식간에 뒷목에 서늘한 것이 스치는 것을 느끼다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버렸다.나머지 여섯 명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 채, 피바다에 고꾸라졌다.“내가 준 기회를 소중히 여기지 않은 자신을 탓해.”염구준은 검을 한바퀴 돌려 피를 털어버리고 검갑에 집어넣었다.그 동작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깔끔했다.“다… 당신 사람을 죽였어.”먼 발치에서 사람이 죽는 장면을 본 선장은 너무 놀라 주저앉았다.로사는 그나마 무덤덤하고 나머지 선원들도 많이 놀랐는지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솔직히 일곱 명의 무술인이 어떻게 죽었는지 제대로 보지 못했다.“은혜도 모르는 놈들 죽어 마땅하지 않아요?”염구준은 의아해하며 되물었다.이런 악당들이 죽으면 아무도 자신들을 해치지 않아서 기뻐해야 할 마당에 선장은 바닥에 쓰러진 시체를 보고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그… 그래도 사람이잖아요.”이제 보니 선장은 그동안 잔인하게 고래를 잡았으면서 사람에게 관대했다.만약 염구준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로사는 비참하게 당했을 거고, 선장 일행은 비참하게 죽었을 것이다.그때 독수리가 기회를 잡고 맞장구를 쳤다.“저 사람들은 당신을 노리고 왔어요. 그러니까 오히려 우리가 억울하게 당한 거라고요. 당장 우리 선박에서 내려요!”“…”독수리의 말에 선원들은 경악하며 쳐다보았다.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정말 멍청하다고 해야 할지 용감하다고 해야 할지 적당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았다.촤아악!염구준이 인상을 찌푸리며 날카로운 검기를 내리치자 다들 너무 무서워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안 돼요. 아직 아이란 말이에요.”분위기가 살벌해지자 로사가 반쯤 드러난 가슴을 감싸고 독수리의 앞을 막았다.구자검의 검기는 소녀의 옆을 스쳐 바다 표면에 물보라를 일으켰다.염구준은 공격하지 않고 협박투로 말했다.“또 나한테
드디어 구명보트를 탄 일행이 선장의 도움으로 선박으로 올라왔다.모두 여덟 명으로 그동안 먹지를 못했는지 몸은 수척해지고 탈수 증상이 있었다.“주방에서 음식들 갖고 와. 그리고 링겔을 놔줘.”선장은 일행은 관찰한 후 응급처치를 하기 시작했다.“그런데 음식은 그분한테 줘야 하는데요.”염구준을 무서워하는 선원 한 명이 작은 소리로 일깨워주었다.그러자 선장이 엄숙한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다.“일단 이 사람들 주고, 다시 만들어서 보내면 돼.”만약 염구준이 있었다면 일행을 전부 알아보았을 것이다.두 시간의 응급처치를 거쳐서 여덟 명은 드디어 혈색이 돌아왔다.아직 몸이 많이 허약하지만 그래도 목숨을 부지해서 참 다행이었다.“큰일은 없으니까 한동안 쉬면 괜찮아질 겁니다.”선장은 웃으면서 선원들에게 안으로 모셔서 쉬게 하라 일렀다.모두 마음이 어진 어부들이라 바다에서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보고도 구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지금이야!”바로 그때, 돌변상황이 발생했다.구조된 일행 중에서 누군가 소리치자 여덟 명이 동시에 기운을 끌어올려 선원들을 공격했다.평범한 선원들은 저항하지도 못하고 단번에 제압당하고 말았다.“악!”로사는 모두가 방심한 틈을 타 종사지경에도 도달하지 못한 무술인의 목을 베었다.그런데 방금 공격으로 이미 기진맥진했다.“대장, 여자가 있어.”“가만히 있어. 내가 상대할게.”그들은 동료가 죽은 것도 개의치 않고 모두 로사의 몸매만 쳐다보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쿵!대장이라는 무술인이 기운을 폭발시키더니 갑자기 덮쳐서 로사를 제압했다.“발버둥쳐. 반항해 봐. 그럴수록 더 흥분되니까. 하하하.”이렇게 혈기왕성한 모습이라니, 방금 전에 죽을 것처럼 시들시들하던 인간 같지 않았다.그 장면을 본 선장은 가슴이 칼로 에이는 것 같았다.지금까지 어부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이런 악당들을 만났다.“너희들 뭐하는 짓이야? 방금 우리가 너희를 살렸어.”선장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 놈들의 행위가 이해되지 않았다.“우리를 구했다고?
“맞아.”염구준은 소녀의 몸에서 악한 기운을 느꼈지만 덤덤하게 말했다.기운만 보아도 사람 몇 명을 살해한 것 같았다.“날 잡으러 왔어요?”로사는 비수를 꽉 쥐고 또 물었다.“아니야. 길이나 안내해.”염구준이 그 사이 소녀를 관찰한 결과, 무술을 배우기에 좋은 재목이었지만 아쉽게도 인도할 스승이 없었다.두 사람은 오늘 처음 만났으니 더는 소녀의 일에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휴, 무례하게 대해서 죄송해요.”그제야 로사는 비수를 넣으며 사과했다.소녀는 앞장서 가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방금 싸우려는 자세만 봐도 건장한 남자를 상대하는 것은 문제없어 보였다.선장 침실에 도착하자 로사는 이불을 바꾸고는 한마디만 하고 떠났다.“쉬세요. 음식이 되면 여기로 가져다 줄게요.”“그래. 볼일 봐.”쿵!염구준은 문을 닫고 침대에 쓰러져서 잠들었다.이런 포근함을 오랜만에 느끼는 것 같았다.그리고 머릿속에 그동안 발생했던 일들을 정리했다.황계웅에게서 옥패의 단서를 발견하고, 유동심연에 도착했을 때 나머지 세력이 따라온 덕에 비슷한 정보를 얻었다는 것을 알아냈다.이 정보는 어쩌면 같은 사람이 흘렸을 수도 있다.그리고 심해에서 봤던 가짜 옥패는 흑풍의 표식을 남긴 것을 보아 틀림없이 그놈의 짓이다.이 모든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상황은 이랬을 것이다.몇 년 전에 흑풍이 심해에서 진짜 옥패를 찾았는데 위험한 곳이란 걸 알고 적을 죽이려고 함정을 판 것이다.마침 강적을 만난 그는 시기가 되자 일부러 고대 옥패의 단서를 남겨 죽이려고 했는데, 계획과 다르게 적의 육신이 극한 경지에 도달하게 만들었다.…이런 생각을 하다가 염구준은 잠에 빠졌다.밖에 날씨가 화창하고 바람도 적게 불어 항행하기 딱 좋았다.이번은 선장이 직접 나서서 전속으로 달리고 있었다.지금 그는 빨리 부두에 도착하여 염구준의 돈을 받는 즉시 선박에서 내보낼 생각이었다.어쩐지 그는 사람이 아니라 핵폭탄 같았다.조종석에서 할 일이 없는 몇몇 선원은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잡
그의 재력이라면 대형 수영장을 만들어 향유고래를 키울 수도 있지만 바다가 고래의 고향이라 그러지 않았다.“선장, 고래가 엄청난데 잡지 않아요?”갑판에서 몸이 건장한 흑인 선원이 불만을 토로했다.눈앞에서 헤엄치며 돌아다니는 것이 전부 돈이니 그럴만했다.“독수리, 주둥이 닥쳐!”선장은 아직도 누군가 향유고래에 미련을 두자 버럭 화를 냈다.염구준이 어디 출신인지 모르겠지만 그가 발산하는 기운은 보는 사람이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독수리가 염구준을 힐끗 보고는 어쩔 수 없이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나머지 선원들도 감히 반박하지 못하고 선장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저기, 아직 볼일이 남았어요?”선장은 염구준이 조용히 앉아 있자 조심스럽게 물었다.“여기서 가까운 부두로 데려다줘요.”염구준은 끝없는 바다를 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이곳은 바닷가와 멀리 떨어져 있어 일단 상륙한 후에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울 생각이었다.“그게…”선장은 난처한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어려우면 말씀하세요. 그렇다고 폭행을 휘두르면서 강요하지 않으니까.”염구준은 선장의 태도가 이상한 걸 눈치채고 분명하게 말했다.선박은 어부들 것이니 강제로 빼앗지 않을 것이다.그의 말에 선장은 솔직하게 말했다.“우리는 고래를 잡아서 생계를 유지해요. 이제 나와서 한 마리도 잡지 못했는데, 이대로 돌아가면 손해가 엄청납니다.”그들은 염구준이 무섭지만 돈을 벌지 못해 가족들이 굶는 것이 더 무서웠다.“그런 거라면 어렵지 않아요. 얼마를 원하세요? 육지에 도착하면 내가 줄게요.”염구준에게 있어 돈으로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었다.“100만 달러.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선장은 믿지 않는지 거액의 가격을 부르면서 떠보았다.듣기에 높은 가격이지만 따져보면 수리비용, 연료, 인건비 등등 모두 제외하면 얼마 남지 않으니 합리적인 가격이었다.“이걸로 담보할게요. 어차피 당신네 선박에 있으니까 도망치지 않아요.”염구준은 상대방이 걱정하는 걸 알아차리고 딸에게 선물하려고 주은 주먹
이튿날, 미지의 바다에서 향유고래 한 마리가 헤엄치고, 등에 한 사람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그 사람은 바로 염구준이었다.사방에 온통 푸른 바다라 지금 어느 곳에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지금은 고래가 바닷가로 데려가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다.“고래야, 잘 부탁한다.”“우웅!”둘은 서로의 말을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수시로 교류했다.염구준이 눈을 감고 운기조식하다가 배고프면 심해의 눈물로 에너지를 보충했다.신기한 것은 한 방울만 먹어도 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뿌우우우웅!그때 멀리서 선박 소리가 들렸다. 염구준은 눈을 번쩍 뜨고 소리를 질렀다.“저기요! 여기 사람 있어요!”목소리에 기운을 담았더니 쩌렁쩌렁한 소리를 지를 때마다 수면이 음파에 진동하는 것 같았다.어디선가 나타난 선박에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슥!그런데 선박에 다가간 순간, 상대방이 고래를 잡는 쇠고랑을 발사하는 것이었다.염구준은 재빨리 검기로 밧줄을 잘라버렸다.선박은 그를 구하러 온 것이 아니라 향유고래를 잡으러 온 것이었다.생각하지 않아도 고래의 용연향을 얻기 위함일 것이다.스스슥!선박에 있는 사람들은 고장난 줄 알고 이번에 작살을 던졌지만 역시 염구준에게 잘려서 바다 밑으로 들어갔다.상대방과 가까워지자, 염구준은 그들의 선박에 번쩍 뛰어올라 엄숙하게 경고했다.“멈춰. 아니면 무력으로 대응할 거야.”선원들은 대부분 기운이 없는 평범한 어부였다.그들은 염구준이 먼 곳에서부터 뛰어올라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는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여기서는 고래를 잡는 걸 허락해요.”한참 뒤, 선장은 국제 감독기관에서 온 줄 알고 시큰둥하게 대답했다.“이 고래는 내 친구예요. 어떻게 할지 잘 알겠죠?”염구준은 선장을 노려보며 차갑게 되물었다.“알았어요. 이 사람 말을 못 들었어? 당장 작살을 내려놔!”선장은 상대방이 보통이 아니란 걸 눈치챘는지 바로 선원들에게 지시했다.그러자 당황한 선원들은 정신을 차리고 지시대로 작살을 내려놓았다.염구
감히 그의 전우나 다름없는 고래를 잡아먹으려고 하다니,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만약 향유고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지금쯤 심해 밑에서 죽었을 것이다.“염 선생님, 안 돼요!”당황한 노신기 일행이 다급히 나서서 말렸지만 염구준은 듣지 않았다.그는 요트를 타고 서해충에게 다가가 검을 휘둘러 공격했다.“당장 토해!”염구준은 두 손으로 검을 들고 번쩍 뛰더니 위에서 서해충을 자르려고 했다.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고래를 살려낼 것이다.“하악!”뿔난 서해충이 나지막하게 울부짖더니 커다란 입을 벌이고 염구준을 통째로 삼키고는 물속으로 들어갔다.그 장면을 본 사람들은 모두 경악하고 말았다.심지어 천기문의 고위층들도 진정할 수 없었다.“염 선생님!”“안 되겠어. 모든 음성탐지기를 던져!”노신기는 당황한 마음에 맞서 싸우려고 명을 내렸다.유동심연의 사방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이번에 오면서 대량의 음성탐지기를 챙겼었다.그러나 워낙 위력이 강한 무기라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염 선생님, 제발 잘 버텨줘요.’촤아악!이제 막 음성탐지기를 내려놓고 가동하려고 할 때 눈앞에서 거센 물보라가 솟구치는 것이었다.해저 지진으로 거센 파도가 밀려오면서 일으킨 쓰나미였다.“다들 선실로 들어가!”위급한 상황에서 노신기는 어쩔 수 없이 먼저 가문을 지켜야 했다.선박 세 척은 쓰나미에 밀려 먼 곳까지 흘러갔다.한편, 바다 밑은 난리도 아니었다.서해충 체내에 들어간 염구준은 선사 시대의 바다 생물과 전력을 다해 싸우고 있었다.그가 공격할 때마다 서해충은 심한 고통을 느꼈는지 커다란 몸집을 꿈틀거렸다.실은 서해충이 삼킨 것이 아니라 그것이 도망칠까 봐 염구준이 스스로 잡혀 먹힌 것이었다.한참 공격하면서 돌진했더니 드디어 향유고래가 있는 곳까지 다가갔다.“구자검법! 검일참공!”그는 기운을 폭증시켜 강력한 살술로 서해충의 몸에 길이가 10미터되는 상처를 냈다.잘린 부위에서 바닷물이 역류하여 들어올 때, 염구
동물의 감각은 때론 인간보다 훨씬 뛰어났다.특히 바다에서 자란 생물이라면, 웬만한 레이더보다도 훨씬 빨리 감지할 수 있었다.쿠쿵!혹시라도 싸울 수 있기 때문에 다들 몸에서 기운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아래쪽에서 뭔가 빠르게 올라오고 있어.”염구준은 날카로운 눈으로 바다밑을 바라보며 말했다. 작은 검은 점 하나가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었다.아직 수면까지 오지도 않았는데, 그 그림자는 이미 성체 향유고래와 맞먹는 크기였다.‘설마, 진짜 서해충이 있는 건가?’“목표가 공격 범위에 진입했습니다. 모든 작살 준비 완료했습니다.”대원들은 지시가 떨어지고 나서 3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내에 모든 준비를 마쳤다.“쏴!”노신기는 참을성 없이 바로 명령을 내렸다.‘망했다!’염구준은 말리려고 했지만 결국 말리지 못했다.물속의 거대한 생물체는 어선보다도 커서 자칫하다간 오히려 배가 끌려갈 수도 있었다.슥! 슥! 슥!고래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세 척의 어선에서 수십 발의 대형 작살이 물밑의 검은 그림자를 향해 발사되었다.타겟의 몸집이 컸기 때문에 대부분의 작살이 정확하게 꽂힐 수 있었다.“끌어 올려!”노신기는 고래 잡이를 할 때 쓰던 방식을 운용하며 숙련하게 명령을 내렸으나 기계를 최대치로 올려도 타겟을 끌어오리지 못했다.이에 조타실에서 다급하게 소식을 전했다.“큰일입니다. 어선이 저것에 의해 유동심연 쪽 소용돌이로 끌려가고 있어요!”배는 엄청난 속도로 끌려갔다. 배 자체가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속도였다.“밧줄을 끊어!”염구준은 노신기의 무전기를 낚아채고 지휘권을 넘겨받았다.“속도가 너무 빠른 탓에 꽉 감겨서 끊을 수가 없습니다.”조타실에서 절박한 답변이 돌아왔다.현대식 어선은 전부 인공지능 시스템이라 이 상황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우웅!염구준은 결국 검기를 날렸고, 날카로운 검광이 연달아 번쩍이며, 단숨에 밧줄들을 잘라냈다.이에 배가 거대한 관성에 휘청이며 흔들렸고, 균
오늘 만약 염구준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그들은 전부 물고기들의 먹이가 되었을 것이다.“빨리 항행하라고 하세요. 뭔가 이상합니다.”염구준의 갑작스러운 말에 사람들은 이해가 되지 않아 어리둥절해졌다. “네, 말하고 오겠습니다!”그러나 눈치가 생긴 사람들은 염구준의 뜻을 알지 못해도 그대로만 하면 된다는 걸 알고 있어 곧바로 달려갔다.그들은 염구준을 한치도 의심하지 않았다.염구준은 흡족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면을 바라보며 물었다.“스텔라성의 성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으십니까?”이번에 스텔라성의 성주는 두 개의 판을 짰는데, 하나는 겉면으로 보이는 부성주 베르였고, 다른 하나는 오랫동안 숨어있던 노대영이었다. 다른 걸 다 따지고 나서 판을 짠 것만 본다면 정말 훌륭한 계획이었다.그랬기에 염구준은 그를 중시했다.노신기와 아타는 미간을 찌푸리고 서로를 바라본 뒤, 늙은 아타가 입을 열었다. “성주의 이름은 노세입니다. 압도적인 실력의 소유자로, 진 적이 없습니다.”“하지만 지난 20년간, 외부에서는 그의 모습을 본 이가 없습니다. 폐관 중이라는 소문도 있고, 이미 사망했다는 이야기도 돌고 있지요.”“그의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라, 저희도 아는 게 많지 않습니다.”이야기를 들은 염구준은, 오히려 흥분한 듯한 웃음을 지었다.“흐음, 전부 사실이라면 꽤 괜찮은 상대가 되겠군요.”방금, 막 육체의 극한을 돌파한 염구준은 적당한 시험 상대가 필요했다.‘대단해.’주변 고위 간부들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염구준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다만 약간 이해가 되지 않을 뿐이었다.스텔라성 성주 같은 괴물은, 대부분 기겁하며 피하려 하는데, 정면 승부를 기대한다니까 말이다.“그나저나 염 선생님, 전에 올라오실 때, 인원이 적던데, 혹시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노신기는 다른 걸 얘기하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아, 이거 아십니까?”그의 손에는 투명한 비닐에 담긴 작은 물방울이 들려 있었는데, 외부에는 진기가 감돌았다.‘어라?’조금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