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바쁘게 움직이면서 각종 검사를 진행했지만 결국 병을 일으킨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다.염구준이 예상했던 결과와 비슷하게 이 병은 일반적인 의술로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했다.강호에서 만들어진 환각제는 강호의 특제 약으로만 해독할 수 있었다.고통스러워하는 장인어른의 모습을 보니 더는 참지 못하고 병실에서 나갔다.그때 손가을의 휴대폰이 불이라도 난 듯 직원 가족들에게서 연락이 왔다.그들도 똑같이 두통과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구급차를 불러 병원에 이송 중이라고 했다.이 사람들도 배주현의 ‘추구자’임이 틀림없었다.탕!한 병실의 문이 누군가의 발에 차여 종이 짝처럼 부서졌다.부서진 문 뒤에 선 사람은 저승사자처럼 무시무시한 살기를 뿜었다.“염 선생님!”마침 보초를 서던 호찬이 그를 보고 공손하게 인사했다.그 옆에 미이라처럼 온몸에 붕대를 감은 배주현이 꽁꽁 묶여서 병상에 누워 있었다.저승사자의 정체를 알아본 그녀는 깜짝 놀라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본인이 무슨 짓을 했는지 찔리는 모양이었다.염구준은 폭발할 것 같은 분노를 반복하여 억눌렀다.“환각제를 흡수한 사람들이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프다는데 대체 무슨 상황이야?”지금 해독약도 받지 못했고 이제마도 청해에 도착하지 않아서 당장 죽일 수도 없었다.“금단현상이라 생명에 위험은 없어요. 우리 언니들이 갖고 온 해독약을 먹으면 바로 나아요.”배주현은 자신이 살아남을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빠르고 정확하게 설명했다.“당장 전화해서 오라고 해!”염구준은 이를 악물며 으르렁거렸다.‘해독약도 없으면서 뭐 하러 환각제를 사용해?’당장이라도 배주현을 죽일 기세였다.“구준 씨, 아빠 병실에 여자 두 명이 왔어. 벌레를 아빠한테 먹여서 치료하겠다는데 빨리 가서 봐.”그때 손가을이 허둥지둥 달려서 병실로 들어왔다.“치료? 가 보자.”그는 아내를 데리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배주현의 언니가 왔다는 것을 눈치채고 왠지 걱정이 되었다.지금 손태석의 병실에 키가 훤칠하고 면사포를 쓴 두 여자가 침
“환각제를 섭심백이라고도 불러요. 애벌레의 체액을 추출하여 만든 거라 본체가 바로 해독약이에요.”간단하게 설명을 끝낸 배아현은 서슴없이 벌레를 자기 입에 넣고 삼켜버렸다.이것으로 벌레를 먹어도 문제없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었다.상대방이 이 정도로 나오니 염구준은 고민하지 않고 동의했다.“좋아. 일단 믿어보지. 하지만 수작 부리지 않는 게 좋을 거야.”일단 그가 나서서 결정하면 가족들도 믿고 따를 것이다.“안심하세요.”배아현은 고개를 끄떡이며 앞으로 다가가더니 벌레를 손태석의 입에 넣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손태석은 거짓말처럼 안색이 좋아지고 호흡도 안정되었다.염구준이 손을 뻗어 그의 맥을 짚어보았다.별다른 이상이 없는 걸 확인하고서야 배씨네 자매를 쳐다보았다.“얼마면 깨어날 수 있어?”“길어서 한 시간 내로 깨어날 수 있어요. 이제 넷째를 만나러 가도 됩니까?”“배주현이라면 무사해. 먼저 다른 사람들도 해독해.”“그러죠.”쌍방은 아주 짧은 대화로 조건을 주고받았지만 속으로 여전히 서로를 경계했다.겉보기에 평온해도 암암리에 싸늘한 바람이 부는 것이 언제든 싸울 것 같았다.이어서 배씨네 두 자매는 다른 사람들도 해독해주고 염구준을 따라 배주현을 만나러 병실에 들어왔다.병실에 들어온 순간, 미이라처럼 붕대를 감은 여동생을 보고 배추현이 충격을 먹었다.갑자기 기운을 폭발시켜 일장을 펼치더니 염구준에게 돌진했다.“나쁜 새끼! 내 동생한테 무슨 짓을 했어?”보통 평범한 반보천인 수준에 이르러야 이렇게 강력한 기운을 발사할 수 있었다.쿵!하지만 미리 대비한 염구준은 똑같이 장법을 취하며 상대방의 일장을 가볍게 막아냈다.아직 상대방의 실력을 잘 알지 못해 전력을 사용했다.두 손바닥이 부딪치는 순간, 기운이 사나운 파도처럼 사방으로 퍼져 복도까지 흘러 나갔다.“윽!”순수한 염구준의 기운을 감당하지 못한 배추현이 입가에 피를 흘리며 뒤로 물러섰다.단 한 초식에 가벼운 내상을 입고 말았다.“염 선생님, 잠깐만요. 저희는 싸우러 온
염구준이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여동생을 데려가도 되지만 두 가지 조건이 있어.”갑자기 데려가도 된다는 말에 두 자매는 깜짝 놀라며 서로 눈을 마주쳤다.생각보다 일이 쉽게 해결해서 의아했던 모양이다.배아현이 기회를 놓칠 세라 다급히 물었다.“무엇을 원하는지 얼마든지 말씀하세요.”염구준이 시원시원하게 나오니 그녀도 인색하게 굴지 않았다.이번 일만큼은 피를 보지 않고 일을 해결하는 것을 바랐다.“첫째, 내게 기운을 숨기는 방법을 알려주고 둘째, 나 대신 소식을 퍼트려줘.”그는 간략하게 조건을 제시하고 상대방이 대답하길 기다렸다.만약 받아들이면 여기서 끝내고 아니면 바로 싸우면 그만이었다.염구준의 사전에 흥정하는 것은 절대 존재하지 않았다.“어림도 없는 소리, 기운을 숨기는 방법은 우리 가문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비법이에요.”배추현이 어림도 없다는 듯 눈을 희번득거리며 퉁명스럽게 말했다.하지만 그녀의 말에 누구도 대꾸하지 않았다.솔직히 염구준의 눈에 드는 물건들은 모두 범상치 않았다.일단 이 비법을 배우면 기운을 폭발시켜도 상대방이 실력을 알아차릴 수 없게 된다.“알았어요. 그렇게 하죠.”배아현은 오래 고민하지 않고 바로 대답하더니 두루마기를 꺼내 건넸다.“대신 부탁이 있습니다. 염 선생님과 대결하고 싶은데 받아줄 수 있나요?”“가벼운 대결이라면 가능해.”염구준은 말하면서 두루마기를 힐끗 쳐다보았다.‘익기법.’그는 꽤 마음에 들었는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소식을 퍼트리는 것은 그렇게 급하지 않으니 이 물건이 먼저 손에 들어온 것만으로도 안심할 수 있었다.배아현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계속 질문했다.“여기 오래 머물 수가 없어서 언제면 가능할까요?”그녀는 이번 행차의 목적인 배주현을 구했으니 하루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가문에서 반보천인 고수 2명이 갑자기 자리를 비우면 적들에게 약점이 되기 십상이었다.“소봉산에서 기다려. 먼저 볼일 처리하고 갈게.”어쨌든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을 테니 염구
대머리 남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염구준을 무시했다.그 이유는 옷차림이 평범하고 어느 정도 무술을 배운 무술인으로만 여겼기 때문이었다.그래서 전에 받았던 굴욕을 백 배로 갚을 작정이었다.“그래. 너희들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을 불렀는지 참 기대돼.”염구준은 네 사람을 둘러보며 콧방귀를 꼈다.멍청한 놈들에게 주먹을 휘두를 가치도 느끼지 못했다.말이 끝나기 바쁘게 차 대열이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저들도 양반은 못 되겠어.’놈들이 부른 거물이 온 것 같았다.“삼촌, 저놈이 내 여친을 희롱하고 나를 때렸어요.”대머리 남자는 자신의 뒷배가 나타나자 닭 똥 같은 눈물을 흘리면서 억울함을 호소했다.자신이 유익한 쪽으로 거짓말을 하는 것이 정말 역겨웠다.대머리 남자의 삼촌이라는 사람이 앞으로 다가와 염구준을 힐끗 보더니 나지막하게 물었다.“나를 불러서 어쩌라는 거야?”“저 자식을 내 앞에 무릎을 꿇기면 내가 뺨을 열 대, 아니 백 대를 때려서 갚을 거예요.”든든한 뒷배가 있으니 대머리 남자는 점점 흥분하면서 머릿속에 염구준의 뺨을 신나게 치는 모습까지 상상했었다.촤아악!그런데 믿었던 삼촌이 갑자기 손을 들어 그의 뺨을 치더니 염구준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이었다.“용준영, 형님을 뵙겠습니다.”워낙 잘 아는 사이라 염구준은 대충 손을 휘저었다.“용준아, 어쩌다 이런 놈을 알게 된 거야? 재수없게.”“파트너사인 우 대표가 아들이 청해에서 괴롭힘을 당했다면서 부탁하더라고요. 그런데 형님한테 무례하게 굴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용준영은 이 일로 염구준과 사이가 틀어질까 봐 속으로 불안했다.사적으로 사이가 좋은데 외부인 때문에 틀어진다면 너무 속상할 것이다.“괜찮아. 형제끼리 무슨.”염구준은 그의 속내를 알고 따지지 않았다.그제야 한 대 맞은 대머리는 구세주가 상대방과 아는 사이란 걸 알아챘다.순간 희망이 절망으로 변해버렸다.은발 남자는 상황이 심상치 않은 것을 눈치채고는 눈에 띄지 않으려고 재빨리 구석 쪽으로 처박혀 있었다.전혀 의리가
용준영의 말을 믿기지 않았는지 대머리는 휴대폰을 꺼내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했다.“아들, 걱정 마. 내가 이미 용준영을 보냈어.”“아빠, 그 용준영이 나를 때렸어. 흑흑…”대머리는 급기야 어린 아이처럼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탁!그때 용준영은 징징대는 꼴을 보기 싫어 바로 휴대폰을 낚아챘다.“우 대표님, 참 대단한 아들을 두셨네요. 염 선생을 건드리고 나한테 뒤처리를 부탁했어요?”“…”딸깍!휴대폰 너머로 대답대신 맑은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마도 깜짝 놀라 휴대폰을 떨어트린 것 같았다.우 대표는 용준영의 사업 파트너로서 당연히 염구준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그런데 못난 아들은 그 사실을 몰랐다.우 대표는 바로 휴대폰을 주워 들고 횡설수설하면서 사과했다.“죄… 죄송합니다. 저… 용준영 씨, 그게… 염 선생한테 사과할게요!”말투만 들어도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용준영은 고개를 돌려 염구준을 쳐다보면서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계약을 취소해.”염구준이 단호하게 대답했다.아들을 아주 훌륭하게 키웠으니 그에 대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사업적으로 탄압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 할 것이다.탁!용준영은 휴대폰을 대머리의 얼굴에 던져버리고는 돌아섰다.“아빠…”“이 멍청한 놈아! 너 아비를 죽일 셈이냐?!”대머리가 뭐라고 말하려고 할 때 휴대폰 너머로 포효하는 우 대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우리 회사가 망했어.’대머리는 아직도 얼떨떨했다.지금까지 우씨 그룹은 잘 나아갔고 고작 파트너사 하나를 잃었을 뿐인데 집안이 망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우 대표는 지금도 온갖 욕설과 설교를 늘어놓았다.염구준은 남의 자식이 교육받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 고개를 돌려버렸다.“용준아, 나 약속이 있어서 가야 해. 네가 마무리해.”“알겠습니다. 깔끔하게 처리하겠습니다.”용준영은 가슴을 탁탁 치며 장담했다.굳이 염구준이 말하지 않아도 뒤처리를 깨끗이 처리할 생각이었다.그는 무술에 재능이 없어서 강호의 일에 도움이
“오는 길에 일이 생겨서 늦었어.”염구준은 검갑을 바닥에 꽂으며 늦게 도착한 이유를 설명했다.대결이라면 당연히 전부 실력을 보여줄 준비를 해야 했다.최종적으로 얼마나 강한 전력을 쏟아부을지는 상대방의 실력에 달려 있지만 말이다.배아현은 전혀 개의치 않고 웃어넘겼다.“무슨 말씀이세요. 온 것만으로도 감사하죠.”쌍방은 짧게 대화를 나누고 각자 자리에 서서 일촉즉발의 자세를 취했다.팽팽한 신경전이 흐르는 가운데 배아현이 움직이지 시작했다.스윽!염구준은 무언가 앞에 아른거리는 것을 느끼고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배아현의 팔찌가 빛을 모아 염구준 쪽으로 반사하고 있었다.스스슥!바로 그때 두 자매가 동시에 양쪽으로 움직이며 염구준에게 돌진했다.그녀들의 이동속도는 예상보다 빨랐다.손에 든 무기는 고작 부드러운 분홍색 스카프였다.옆에서 관전하던 호찬과 초상비는 아주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제법인데. 외부 환경을 충분히 이용해서 염 선생을 함정에 빠트리려고 하네.”“쯧쯧. 먼저 와서 본 것도 외부에서 유리한 요소를 찾기 위해서였어.”“그냥 통쾌하게 싸우면 될 것을. 뭐 하러 저런 꼼수를 부릴까?”이것만 봐도 배씨네 자매는 실제 경험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두 자매가 손에 든 스카프에 기운을 담더니 순식간에 날카롭고 단단한 무기로 변했다.평범한 반보천인과 최강 반보천인이 협공하니 염구준은 한시도 방심할 수 없었다.스스슥!먼저 공격할 기회를 놓친 염구준은 어쩔 수 없이 검으로 막으며 뒤로 후퇴했다.가벼운 대결이라 굳이 목숨을 걸고 싸울 필요가 없기에 가장 적절한 전투 방식을 선택했다.그런데 두 자매가 무슨 진법을 펼쳤는지 실력이 전보다 대폭 상승했다.순식간에 1대2로 열세에 처하게 되었다.그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그래도 검초식은 전혀 흐트러지지 않고 아주 침착하게 대응하고 있었다.검 하나로 모든 공격을 전부 받아낸 것이었다.두 자매는 우세를 차지했지만 상대방에게 치명상을 입히지 못했다
“비켜요!”배씨 자매는 당황했는지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공격을 거두고 싶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염 선생님!”“염구준! 위험해!”관전하던 호찬과 초상비도 깜짝 놀라 염구준 대신 치명적인 공격을 막으려고 뛰어들었다.자매의 공격이 얼마나 강한지 그들도 알고 있었다.쿵!하지만 공격 속도가 워낙 빨라서 순식간에 염구준의 육신에 꽂히고 말았다.“젠장. 대결이라면서 사람을 죽일 셈이야?”언제 왔는지 용필이 짧은 막대기를 들고 자매를 노려보았다.호찬과 초상비도 기운을 끌어올려 언제든 공격할 자세를 취했다.방금 전 격렬한 싸움 때문에 염구준과 두 자매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전혀 듣지 못했다.“나서지 마세요. 당신들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에요.”배아현이 그들을 경계하며 해명했다.방금 염구준의 행동이 너무 갑작스러워서 그녀조차도 이해되지 않았다.더 상세하게 설명하고 싶었지만 자신도 믿지 못하는 것을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콜록콜록! 시끄러워. 나 괜찮아.”양측의 분위기가 팽팽할 때 염구준이 연신 기침을 하며 모습을 드러냈다.그는 위에 옷이 다 찢기고 몸에 찰과상을 입었다.무식하게 덤빈 탓에 약간의 부상을 입었다.염구준은 피가 흐르는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이제야 자신의 육신이 얼마나 단단하지 알게 되었다.아쉽게도 극한 반보천인에 비해 방어력이 턱없이 부족했다.멀리서 그의 상태를 본 배아현이 원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염 선생님, 오늘 무슨 일이 나게 되면 여기 피바다가 되었을 거예요.”염구준도 자신의 행동에 해명했다.“육신의 강도를 시험하기 위해서 나도 모험했어. 전력으로 임해줘서 다행이야.”어떤 것들은 실전에서 시험하기에 위험하니 대결하는 와중에 완성해야 했다.“저희가 졌어요.”배씨네 자매도 최선을 다해서 미련이 없는지 바로 패배를 인정했다.두 여자가 가장 강력한 초식을 사용했는데 염구준은 오로지 몸으로 막아냈다.이것만 보아도 쌍방 실력이 차이가 엄청나다는 것을 설명했다.이 상태로 계속 싸
염구준은 말하면서 편지 두 통을 건넸다.그에게 강호에도 친구들이 있었다.이번에 두 자매가 도와줬다는 이유로 무술인들에게 쫓기는 걸 바라지 않았다.“알겠어요.”배아현은 편지를 받고 바로 돌아섰다.그러다 먼 발치에서 멈추더니 뒤를 돌아보며 그에게 주의를 주었다.“염 선생님, 항상 조심하세요. 은세가문이 평화롭지 못해요.”그녀도 배씨 가문을 생각해야 하니 이 정도밖에 말하지 못했다.‘조심하라고?’염구준은 대답하지 않았다.어차피 그를 노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상대방이 누구라도 상관없었다.다만 만능 전당포에서 임무를 맡은 쥐 새끼들을 전부 유인해서 한 번에 해결해야 했다.지금 그와 가족들에게 위협이 되지 않지만 몰래 뒤에서 수작을 부리는 것이 눈에 거슬렸다.배주현을 가장 좋은 예로 뽑을 수 있었다.대결이 끝나자 염구준은 차에서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다.차에서 누군가 안절부절하는 소리가 들렸다.“와이프한테서 부재중 전화 엄청 왔네. 이 야심한 밤에 어디에 갔냐고 따지고 있어.”“나도 똑같아. 돌아가서 어떻게 해명해야 할지 모르겠어.”지금 용필과 초상비는 가정이 있는 사람이라 예전과 같지 않았다.평소 두 사람에게 솔로라고 놀림을 받던 호찬은 약을 올리는 건지 휘파람을 불며 여유를 부렸다.“그래서 오지 말라고 했는데 왜 따라왔어요?”염구준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싸우는 게 뭐가 재미있다고 우르르 따라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병원으로 돌아간 그는 아내에게 간단하게 상황을 보고하고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구준 씨, 어디 아파?”손가을은 아무리 검사 기록을 봐도 각 항목이 정상인데 왜 입원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아픈 데 없어. 그냥 요 며칠 정신없이 지냈더니 너무 피곤해서, 몸조리할 겸 푹 쉬려고.”염구준은 아내를 위로하면서 자신의 계획을 말하지 않았다.그의 입장에서 사소한 일이라 혼자 처리하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그래. 피곤하면 쉬어야지. 내가 남아서 돌봐줄게.”손가을은 방금 껍질을 깎은 사과를 건네며
스스로 조소하던 로사는 카트 아래에서 가운을 꺼내 몸을 감쌌다.상대방이 이런 취향이 아닌데 계속 이러고 있으면 오히려 반감만 생긴다.솔직히 처음으로 당당하게 남자를 유혹하려 하는데 단번에 거절당해서 매우 부끄러웠다.한참이 지나도 말을 하지 않자 염구준이 소녀의 생각을 추측했다.“내가 대신 복수해줘? 탈출시켜줘, 아니면 무공을 알려줘?”“전부 다요!”로사는 그가 전부 맞힐 줄은 상상도 못했다.염구준은 별로 놀라는 기색이 없이 미리 쓴 원고를 던지며 말했다.“거기에 적힌 대로 하면 무공을 터득할 수 있어. 나머지는 너를 도와줄 의무가 없어.”그가 이렇게 호의를 베푸는 것은 소녀가 정말 무공을 배우기에 적합한 인재이기 때문이었다.로사는 실망을 감추지 못했지만 그래도 강요하지 않고 다른 방법을 시도했다.“그럼 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어요?”“말해.”마침 염구준도 시간이 있기에 로사의 말을 들어주고 나중에 복수하는 것을 포기시킬 생각이었다.그러면서 음식을 먹는 것을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로사는 일단 생각을 정리하고 조리 있게 말하기 시작했다.“난 고아예요. 아주 어릴 때 고아원에 들어갔었죠. 그곳은 낙원일 줄 알았는데 원장이 나를 신비한 조직에 팔아버렸어요. 나랑 함께 그곳에 간 아이들은 혹독하고 잔인한 훈련을 받으면서 피비린내 진동하는 살인 도구로 살았어요.”“그러다 반 년 전에 내가 조직의 두목을 죽이고 도망쳤어요. 그곳을 이가 갈리도록 원망해요. 선배님은 실력이 강한 무술인이란 걸 처음 봤을 때부터 알았어요. 나를 가엽게 여기고 옆에 하인으로 있게 해주면 안 돼요?”예상하지 못한 말에 염구준은 흠칫 놀라더니 젓가락을 내려놓았다.“만약 네 말이 사실이라면 사정이 딱하긴 해. 그렇다고 난 도와주지 않아.”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지만 로사는 용하인이 아니기에 더더욱 도와줄 이유가 없었다.그리고 곁에 하인을 두면 귀찮은 일만 생기기에 그럴 필요가 없었다.무공 수련법 한 장을 준 것도 의리를 다한 셈이었다.“그래도 나를 구
염구준은 육신이 극한에 도달한 이후로 공격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너… 악!”촤아악!바다의 유령은 말도 제대로 못하고 비수를 든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순식간에 뒷목에 서늘한 것이 스치는 것을 느끼다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버렸다.나머지 여섯 명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 채, 피바다에 고꾸라졌다.“내가 준 기회를 소중히 여기지 않은 자신을 탓해.”염구준은 검을 한바퀴 돌려 피를 털어버리고 검갑에 집어넣었다.그 동작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깔끔했다.“다… 당신 사람을 죽였어.”먼 발치에서 사람이 죽는 장면을 본 선장은 너무 놀라 주저앉았다.로사는 그나마 무덤덤하고 나머지 선원들도 많이 놀랐는지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솔직히 일곱 명의 무술인이 어떻게 죽었는지 제대로 보지 못했다.“은혜도 모르는 놈들 죽어 마땅하지 않아요?”염구준은 의아해하며 되물었다.이런 악당들이 죽으면 아무도 자신들을 해치지 않아서 기뻐해야 할 마당에 선장은 바닥에 쓰러진 시체를 보고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그… 그래도 사람이잖아요.”이제 보니 선장은 그동안 잔인하게 고래를 잡았으면서 사람에게 관대했다.만약 염구준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로사는 비참하게 당했을 거고, 선장 일행은 비참하게 죽었을 것이다.그때 독수리가 기회를 잡고 맞장구를 쳤다.“저 사람들은 당신을 노리고 왔어요. 그러니까 오히려 우리가 억울하게 당한 거라고요. 당장 우리 선박에서 내려요!”“…”독수리의 말에 선원들은 경악하며 쳐다보았다.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정말 멍청하다고 해야 할지 용감하다고 해야 할지 적당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았다.촤아악!염구준이 인상을 찌푸리며 날카로운 검기를 내리치자 다들 너무 무서워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안 돼요. 아직 아이란 말이에요.”분위기가 살벌해지자 로사가 반쯤 드러난 가슴을 감싸고 독수리의 앞을 막았다.구자검의 검기는 소녀의 옆을 스쳐 바다 표면에 물보라를 일으켰다.염구준은 공격하지 않고 협박투로 말했다.“또 나한테
드디어 구명보트를 탄 일행이 선장의 도움으로 선박으로 올라왔다.모두 여덟 명으로 그동안 먹지를 못했는지 몸은 수척해지고 탈수 증상이 있었다.“주방에서 음식들 갖고 와. 그리고 링겔을 놔줘.”선장은 일행은 관찰한 후 응급처치를 하기 시작했다.“그런데 음식은 그분한테 줘야 하는데요.”염구준을 무서워하는 선원 한 명이 작은 소리로 일깨워주었다.그러자 선장이 엄숙한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다.“일단 이 사람들 주고, 다시 만들어서 보내면 돼.”만약 염구준이 있었다면 일행을 전부 알아보았을 것이다.두 시간의 응급처치를 거쳐서 여덟 명은 드디어 혈색이 돌아왔다.아직 몸이 많이 허약하지만 그래도 목숨을 부지해서 참 다행이었다.“큰일은 없으니까 한동안 쉬면 괜찮아질 겁니다.”선장은 웃으면서 선원들에게 안으로 모셔서 쉬게 하라 일렀다.모두 마음이 어진 어부들이라 바다에서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보고도 구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지금이야!”바로 그때, 돌변상황이 발생했다.구조된 일행 중에서 누군가 소리치자 여덟 명이 동시에 기운을 끌어올려 선원들을 공격했다.평범한 선원들은 저항하지도 못하고 단번에 제압당하고 말았다.“악!”로사는 모두가 방심한 틈을 타 종사지경에도 도달하지 못한 무술인의 목을 베었다.그런데 방금 공격으로 이미 기진맥진했다.“대장, 여자가 있어.”“가만히 있어. 내가 상대할게.”그들은 동료가 죽은 것도 개의치 않고 모두 로사의 몸매만 쳐다보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쿵!대장이라는 무술인이 기운을 폭발시키더니 갑자기 덮쳐서 로사를 제압했다.“발버둥쳐. 반항해 봐. 그럴수록 더 흥분되니까. 하하하.”이렇게 혈기왕성한 모습이라니, 방금 전에 죽을 것처럼 시들시들하던 인간 같지 않았다.그 장면을 본 선장은 가슴이 칼로 에이는 것 같았다.지금까지 어부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이런 악당들을 만났다.“너희들 뭐하는 짓이야? 방금 우리가 너희를 살렸어.”선장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 놈들의 행위가 이해되지 않았다.“우리를 구했다고?
“맞아.”염구준은 소녀의 몸에서 악한 기운을 느꼈지만 덤덤하게 말했다.기운만 보아도 사람 몇 명을 살해한 것 같았다.“날 잡으러 왔어요?”로사는 비수를 꽉 쥐고 또 물었다.“아니야. 길이나 안내해.”염구준이 그 사이 소녀를 관찰한 결과, 무술을 배우기에 좋은 재목이었지만 아쉽게도 인도할 스승이 없었다.두 사람은 오늘 처음 만났으니 더는 소녀의 일에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휴, 무례하게 대해서 죄송해요.”그제야 로사는 비수를 넣으며 사과했다.소녀는 앞장서 가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방금 싸우려는 자세만 봐도 건장한 남자를 상대하는 것은 문제없어 보였다.선장 침실에 도착하자 로사는 이불을 바꾸고는 한마디만 하고 떠났다.“쉬세요. 음식이 되면 여기로 가져다 줄게요.”“그래. 볼일 봐.”쿵!염구준은 문을 닫고 침대에 쓰러져서 잠들었다.이런 포근함을 오랜만에 느끼는 것 같았다.그리고 머릿속에 그동안 발생했던 일들을 정리했다.황계웅에게서 옥패의 단서를 발견하고, 유동심연에 도착했을 때 나머지 세력이 따라온 덕에 비슷한 정보를 얻었다는 것을 알아냈다.이 정보는 어쩌면 같은 사람이 흘렸을 수도 있다.그리고 심해에서 봤던 가짜 옥패는 흑풍의 표식을 남긴 것을 보아 틀림없이 그놈의 짓이다.이 모든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상황은 이랬을 것이다.몇 년 전에 흑풍이 심해에서 진짜 옥패를 찾았는데 위험한 곳이란 걸 알고 적을 죽이려고 함정을 판 것이다.마침 강적을 만난 그는 시기가 되자 일부러 고대 옥패의 단서를 남겨 죽이려고 했는데, 계획과 다르게 적의 육신이 극한 경지에 도달하게 만들었다.…이런 생각을 하다가 염구준은 잠에 빠졌다.밖에 날씨가 화창하고 바람도 적게 불어 항행하기 딱 좋았다.이번은 선장이 직접 나서서 전속으로 달리고 있었다.지금 그는 빨리 부두에 도착하여 염구준의 돈을 받는 즉시 선박에서 내보낼 생각이었다.어쩐지 그는 사람이 아니라 핵폭탄 같았다.조종석에서 할 일이 없는 몇몇 선원은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잡
그의 재력이라면 대형 수영장을 만들어 향유고래를 키울 수도 있지만 바다가 고래의 고향이라 그러지 않았다.“선장, 고래가 엄청난데 잡지 않아요?”갑판에서 몸이 건장한 흑인 선원이 불만을 토로했다.눈앞에서 헤엄치며 돌아다니는 것이 전부 돈이니 그럴만했다.“독수리, 주둥이 닥쳐!”선장은 아직도 누군가 향유고래에 미련을 두자 버럭 화를 냈다.염구준이 어디 출신인지 모르겠지만 그가 발산하는 기운은 보는 사람이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독수리가 염구준을 힐끗 보고는 어쩔 수 없이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나머지 선원들도 감히 반박하지 못하고 선장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저기, 아직 볼일이 남았어요?”선장은 염구준이 조용히 앉아 있자 조심스럽게 물었다.“여기서 가까운 부두로 데려다줘요.”염구준은 끝없는 바다를 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이곳은 바닷가와 멀리 떨어져 있어 일단 상륙한 후에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울 생각이었다.“그게…”선장은 난처한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어려우면 말씀하세요. 그렇다고 폭행을 휘두르면서 강요하지 않으니까.”염구준은 선장의 태도가 이상한 걸 눈치채고 분명하게 말했다.선박은 어부들 것이니 강제로 빼앗지 않을 것이다.그의 말에 선장은 솔직하게 말했다.“우리는 고래를 잡아서 생계를 유지해요. 이제 나와서 한 마리도 잡지 못했는데, 이대로 돌아가면 손해가 엄청납니다.”그들은 염구준이 무섭지만 돈을 벌지 못해 가족들이 굶는 것이 더 무서웠다.“그런 거라면 어렵지 않아요. 얼마를 원하세요? 육지에 도착하면 내가 줄게요.”염구준에게 있어 돈으로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었다.“100만 달러.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선장은 믿지 않는지 거액의 가격을 부르면서 떠보았다.듣기에 높은 가격이지만 따져보면 수리비용, 연료, 인건비 등등 모두 제외하면 얼마 남지 않으니 합리적인 가격이었다.“이걸로 담보할게요. 어차피 당신네 선박에 있으니까 도망치지 않아요.”염구준은 상대방이 걱정하는 걸 알아차리고 딸에게 선물하려고 주은 주먹
이튿날, 미지의 바다에서 향유고래 한 마리가 헤엄치고, 등에 한 사람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그 사람은 바로 염구준이었다.사방에 온통 푸른 바다라 지금 어느 곳에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지금은 고래가 바닷가로 데려가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다.“고래야, 잘 부탁한다.”“우웅!”둘은 서로의 말을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수시로 교류했다.염구준이 눈을 감고 운기조식하다가 배고프면 심해의 눈물로 에너지를 보충했다.신기한 것은 한 방울만 먹어도 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뿌우우우웅!그때 멀리서 선박 소리가 들렸다. 염구준은 눈을 번쩍 뜨고 소리를 질렀다.“저기요! 여기 사람 있어요!”목소리에 기운을 담았더니 쩌렁쩌렁한 소리를 지를 때마다 수면이 음파에 진동하는 것 같았다.어디선가 나타난 선박에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슥!그런데 선박에 다가간 순간, 상대방이 고래를 잡는 쇠고랑을 발사하는 것이었다.염구준은 재빨리 검기로 밧줄을 잘라버렸다.선박은 그를 구하러 온 것이 아니라 향유고래를 잡으러 온 것이었다.생각하지 않아도 고래의 용연향을 얻기 위함일 것이다.스스슥!선박에 있는 사람들은 고장난 줄 알고 이번에 작살을 던졌지만 역시 염구준에게 잘려서 바다 밑으로 들어갔다.상대방과 가까워지자, 염구준은 그들의 선박에 번쩍 뛰어올라 엄숙하게 경고했다.“멈춰. 아니면 무력으로 대응할 거야.”선원들은 대부분 기운이 없는 평범한 어부였다.그들은 염구준이 먼 곳에서부터 뛰어올라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는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여기서는 고래를 잡는 걸 허락해요.”한참 뒤, 선장은 국제 감독기관에서 온 줄 알고 시큰둥하게 대답했다.“이 고래는 내 친구예요. 어떻게 할지 잘 알겠죠?”염구준은 선장을 노려보며 차갑게 되물었다.“알았어요. 이 사람 말을 못 들었어? 당장 작살을 내려놔!”선장은 상대방이 보통이 아니란 걸 눈치챘는지 바로 선원들에게 지시했다.그러자 당황한 선원들은 정신을 차리고 지시대로 작살을 내려놓았다.염구
감히 그의 전우나 다름없는 고래를 잡아먹으려고 하다니,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만약 향유고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지금쯤 심해 밑에서 죽었을 것이다.“염 선생님, 안 돼요!”당황한 노신기 일행이 다급히 나서서 말렸지만 염구준은 듣지 않았다.그는 요트를 타고 서해충에게 다가가 검을 휘둘러 공격했다.“당장 토해!”염구준은 두 손으로 검을 들고 번쩍 뛰더니 위에서 서해충을 자르려고 했다.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고래를 살려낼 것이다.“하악!”뿔난 서해충이 나지막하게 울부짖더니 커다란 입을 벌이고 염구준을 통째로 삼키고는 물속으로 들어갔다.그 장면을 본 사람들은 모두 경악하고 말았다.심지어 천기문의 고위층들도 진정할 수 없었다.“염 선생님!”“안 되겠어. 모든 음성탐지기를 던져!”노신기는 당황한 마음에 맞서 싸우려고 명을 내렸다.유동심연의 사방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이번에 오면서 대량의 음성탐지기를 챙겼었다.그러나 워낙 위력이 강한 무기라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염 선생님, 제발 잘 버텨줘요.’촤아악!이제 막 음성탐지기를 내려놓고 가동하려고 할 때 눈앞에서 거센 물보라가 솟구치는 것이었다.해저 지진으로 거센 파도가 밀려오면서 일으킨 쓰나미였다.“다들 선실로 들어가!”위급한 상황에서 노신기는 어쩔 수 없이 먼저 가문을 지켜야 했다.선박 세 척은 쓰나미에 밀려 먼 곳까지 흘러갔다.한편, 바다 밑은 난리도 아니었다.서해충 체내에 들어간 염구준은 선사 시대의 바다 생물과 전력을 다해 싸우고 있었다.그가 공격할 때마다 서해충은 심한 고통을 느꼈는지 커다란 몸집을 꿈틀거렸다.실은 서해충이 삼킨 것이 아니라 그것이 도망칠까 봐 염구준이 스스로 잡혀 먹힌 것이었다.한참 공격하면서 돌진했더니 드디어 향유고래가 있는 곳까지 다가갔다.“구자검법! 검일참공!”그는 기운을 폭증시켜 강력한 살술로 서해충의 몸에 길이가 10미터되는 상처를 냈다.잘린 부위에서 바닷물이 역류하여 들어올 때, 염구
동물의 감각은 때론 인간보다 훨씬 뛰어났다.특히 바다에서 자란 생물이라면, 웬만한 레이더보다도 훨씬 빨리 감지할 수 있었다.쿠쿵!혹시라도 싸울 수 있기 때문에 다들 몸에서 기운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아래쪽에서 뭔가 빠르게 올라오고 있어.”염구준은 날카로운 눈으로 바다밑을 바라보며 말했다. 작은 검은 점 하나가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었다.아직 수면까지 오지도 않았는데, 그 그림자는 이미 성체 향유고래와 맞먹는 크기였다.‘설마, 진짜 서해충이 있는 건가?’“목표가 공격 범위에 진입했습니다. 모든 작살 준비 완료했습니다.”대원들은 지시가 떨어지고 나서 3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내에 모든 준비를 마쳤다.“쏴!”노신기는 참을성 없이 바로 명령을 내렸다.‘망했다!’염구준은 말리려고 했지만 결국 말리지 못했다.물속의 거대한 생물체는 어선보다도 커서 자칫하다간 오히려 배가 끌려갈 수도 있었다.슥! 슥! 슥!고래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세 척의 어선에서 수십 발의 대형 작살이 물밑의 검은 그림자를 향해 발사되었다.타겟의 몸집이 컸기 때문에 대부분의 작살이 정확하게 꽂힐 수 있었다.“끌어 올려!”노신기는 고래 잡이를 할 때 쓰던 방식을 운용하며 숙련하게 명령을 내렸으나 기계를 최대치로 올려도 타겟을 끌어오리지 못했다.이에 조타실에서 다급하게 소식을 전했다.“큰일입니다. 어선이 저것에 의해 유동심연 쪽 소용돌이로 끌려가고 있어요!”배는 엄청난 속도로 끌려갔다. 배 자체가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속도였다.“밧줄을 끊어!”염구준은 노신기의 무전기를 낚아채고 지휘권을 넘겨받았다.“속도가 너무 빠른 탓에 꽉 감겨서 끊을 수가 없습니다.”조타실에서 절박한 답변이 돌아왔다.현대식 어선은 전부 인공지능 시스템이라 이 상황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우웅!염구준은 결국 검기를 날렸고, 날카로운 검광이 연달아 번쩍이며, 단숨에 밧줄들을 잘라냈다.이에 배가 거대한 관성에 휘청이며 흔들렸고, 균
오늘 만약 염구준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그들은 전부 물고기들의 먹이가 되었을 것이다.“빨리 항행하라고 하세요. 뭔가 이상합니다.”염구준의 갑작스러운 말에 사람들은 이해가 되지 않아 어리둥절해졌다. “네, 말하고 오겠습니다!”그러나 눈치가 생긴 사람들은 염구준의 뜻을 알지 못해도 그대로만 하면 된다는 걸 알고 있어 곧바로 달려갔다.그들은 염구준을 한치도 의심하지 않았다.염구준은 흡족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면을 바라보며 물었다.“스텔라성의 성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으십니까?”이번에 스텔라성의 성주는 두 개의 판을 짰는데, 하나는 겉면으로 보이는 부성주 베르였고, 다른 하나는 오랫동안 숨어있던 노대영이었다. 다른 걸 다 따지고 나서 판을 짠 것만 본다면 정말 훌륭한 계획이었다.그랬기에 염구준은 그를 중시했다.노신기와 아타는 미간을 찌푸리고 서로를 바라본 뒤, 늙은 아타가 입을 열었다. “성주의 이름은 노세입니다. 압도적인 실력의 소유자로, 진 적이 없습니다.”“하지만 지난 20년간, 외부에서는 그의 모습을 본 이가 없습니다. 폐관 중이라는 소문도 있고, 이미 사망했다는 이야기도 돌고 있지요.”“그의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라, 저희도 아는 게 많지 않습니다.”이야기를 들은 염구준은, 오히려 흥분한 듯한 웃음을 지었다.“흐음, 전부 사실이라면 꽤 괜찮은 상대가 되겠군요.”방금, 막 육체의 극한을 돌파한 염구준은 적당한 시험 상대가 필요했다.‘대단해.’주변 고위 간부들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염구준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다만 약간 이해가 되지 않을 뿐이었다.스텔라성 성주 같은 괴물은, 대부분 기겁하며 피하려 하는데, 정면 승부를 기대한다니까 말이다.“그나저나 염 선생님, 전에 올라오실 때, 인원이 적던데, 혹시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노신기는 다른 걸 얘기하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아, 이거 아십니까?”그의 손에는 투명한 비닐에 담긴 작은 물방울이 들려 있었는데, 외부에는 진기가 감돌았다.‘어라?’조금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