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앨리스는 옆에서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이것으로 절 엘 가문과 완전히 묶어버리려는 거군요. 참으로 대단합니다.”이 말과 함께 염구준이 정색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은 마음으로 나온 자리인데, 이런 방식으로 절 엮으러 할 줄은 몰랐네요.”엘 가문의 지분은 그에게 큰 의미가 없었다. 그리고 염구준은 자신의 호의를 이용하려 드는 사람을 가장 혐오했다.“진정하세요. 이건 당신을 이용하려는 것이 아닌, 도움을 요청하는 것입니다.”염구준의 화난 모습에도 노인은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침착하게 말했다.“앞으로 제가 이 가문을 지킬 날이 얼마 남지 않았거든요. 가주님은 좋은 사람이지만, 아직 좋은 가주가 되기엔 부족해요. 마음이 너무 여려 도와줄 사람이 필요합니다.”노인이 웃으며 자신의 건강 검진 보고서를 테이블 위로 내밀었다. “이건 지난달 검사한 결과입니다. 의사가 저에게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확실하게 가주님을 지켜줄 분이 필요합니다.”보고서 위에 간암 말기라는 글자가 빨간 줄로 적혀 있었다.“어르신, 왜 이제야 말씀하시는 겁니까!”보고를 본 앨리스가 눈물을 흘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지금 가문에서 그녀에게 조언을 해줄 사람은 이 노인밖에 없었다. 노인은 방계 족장의 대표였고, 모두가 따르는 가문의 어른이었다. 그가 없어지면, 다른 족장들이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었다. “슬퍼할 거 없어요. 언젠가 올 날이었고, 다행히 미리 알아 이렇게 준비도 할 수 있지 않습니까?”노인이 웃으며 앨리스를 달랬다. 그런 다음 다시 염구준에게 시선을 주며 말했다. “전주님, 가주님은 원래부터 당신 사람이었잖아요. 앞으로도 당신 사람일 테니, 나쁜 거래는 아닐 겁니다. 부디 끝까지 책임져 주세요.”노인이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생명의 마지막 끝까지 오직 엘 가문만 생각하는 노인의 모습에 염구준의 마음도 움직였다. 그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전주님.”염구준이 동의하자
“도련님 곧 돌아올 거예요. 하지만 식사 안 하시면, 안 돌아오실 거랬어요.”집사가 밥을 나명관 앞에 가져다 놓으며 위협적인 말투로 말했다. 하지만 그 눈빛은 걱정으로 가득했다.“알겠어. 지금 먹을게.”나명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희망찬 눈빛으로 밥을 받아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잠시 스쳐지나간 그의 눈빛엔 증오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집사는 숟가락으로 음식을 뜨느라 보지 못했다. 밤이 깊어진 조용한 시간, 발코니에 검은 그림자가 깃들었다.“누구야!”그림자를 눈치챈 나명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낮의 흐리멍덩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역시 미친 척한 게 맞나보군. 그럼 어디 제대로 얘기 나눠볼까?”검은 그림자가 어둠 속에서 크게 웃으며 말했다. 사방에 그의 소리로 가득 차, 어느 방향에 있는지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었다.“누구냐! 나랑 얘기하고 싶은 거면 모습을 드러내라!”나명관이 사방을 돌아다니며 소리쳤다. 하지만 어디에도 이 존재의 행방은 보이지 않았다.“내가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지금 내가 너를 이 상황에서 구해낼 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거다.”나흐 가주가 경계하는 모습을 본 그림자가 웃던 것을 멈추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필요한 자원은 다 대줄 테니, 염구준을 상대해줘. 자세한 얘기는 내 주인이 알려 줄 거다.”그 말에 나명관은 깊은 생각에 빠졌는지 돌아다니던 것을 멈추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한때 그 영민했던 나흐 가문 가주는 어디에 갔는가? 설마 이대로 여기서 죽을 때까지 썩을 생각인가?”“아니, 절대로 그럴 수는 없어!”그림자에서 목소리가 들려오자 마자, 나명관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며 소리쳤다.“그렇다면 내 조건을 받아들여라.”어둠 속에 있던 존재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는 이미 승리를 예상한 것 같았다.“알겠다. 받아들이지.”잠시 고민한 뒤, 나명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상대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곳에서 나갈 수만 있다면 충분히 모험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
“그 사람이 미쳤을 리 없지. 처음엔 나도 긴가민가 했지만, 역시나 연기였네. 계속 그대로 있었으면 내버려두려고 했는데, 결국 이렇게 됐군.”그처럼 굳건한 의지를 갖은 사람이 겨우 이런 일로 미쳐버렸다는 것 자체가 사실은 말이 안 됐다. 집사도 나정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이상한 부분들이 있었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그럼 이제 어떻게 할까요?”모든 것이 파악되자, 집사는 도리어 마음이 평온해졌다. 나명관은 결국 자신의 의지로 이곳을 도망친 것이니, 다치진 않았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그냥 거기에 있어. 이 일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나정한이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그의 손엔 어느새 부러진 펜이 들려 있었다. 그렇게 통화가 마무리되고 집사는 쓴 웃음을 지었다. 분명 나명관은 그를 엄청 증오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대표님, 여기 서류에 서명이 필요합니다.”노크소리와 함께 비서가 서류를 든 채 사무실로 들어왔다. 나정한은 고개를 끄덕이다 미간을 찌푸렸다. 손에 들고 있던 펜은 부러져서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펜 하나 줘봐.”그가 힘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마음이 매우 복잡했다. 나정한의 상태를 눈치챈 비서가 걱정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대표님, 무슨 일 있으셨어요?”이 질문에 나정한의 얼굴이 잠시 굳었지만, 곧 다시 표정을 풀고 답했다.“어젯밤에 그 사람이 머물고 있는 별장에 누가 다녀갔는지 조사해줘. 누군가의 도움 없이 도망칠 수 없었을 텐데, 없어졌어.”나정한이 서류에 사인을 하며 비서에게 명령했다. 비서는 단번에 그 사람이 누굴 뜻하는지 알아차렸다.“뭐라고요? 그 분이 도망쳤다고요? 도대체 어떻게?”나명관이 도망쳤다니, 비서는 크게 놀랐다.“왜 두려워? 설마 널 잡아먹기라도 할까 봐?”그 모습에 나정한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심한 표정을 지었다. “전주님께 알려야 하지 않을까요?”하지만 비서는 전혀 개의치 않고 되물었다.“아니, 일단 조사해 보고 다시 얘기하자.”나정한이 고개를 저으며
한 발짝 앞으로 내딛자 나명관은 가슴이 두려움으로 뛰기 시작했다. 부서진 잔해들, 가득 쌓인 먼지, 그리고 은은한 피 냄새. 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반쯤 열려 있는 문을 조심스레 열고 들어갔다.“왔군.”텅 빈 공간에 울려 퍼지는 중년 남성의 목소리.“누구야?”속으로는 두려웠지만, 나명관은 애써 자신이 약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당당히 소리쳤다. “나? 네 주인이 될 사람. 앞으로 계속 걷다가 오른쪽 방으로 들어가라.”목소리에 가소롭다는 듯 낮은 웃음기가 묻어 있었다. 나명관은 불안했지만 남자의 말 대로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잠시 나타난 인물, 나명관은 그의 정체를 깨닫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어, 어떻게….”이 남자는 그도 익히 아는 인물이었다. 염구준을 조사할 때 나왔던, 그의 최대의 적, 흑풍 존주였다!“내가 누군지 말하지 않아도 아는 눈치군. 그렇다면 내가 너를 찾은 이유도 알겠네?” 나명관의 표정을 본 흑풍 존주가 만족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었구나! 내게 염구준을 상대하게 원했던 사람!”나명관이 담담히 말하며 속으로 결심을 내렸다. “너 보고 혼자서 염구준을 상대하라는 것이 아니라, 함께 상대할 것이다. 너도 알다시피 염구준이 무너지지 않으면, 넌 절대로 회사를 장악할 수 없을 테니.”흑풍 존주가 어깨를 으쓱하며 오만하게 나명관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명관은 왠지 모를 불안이 서렸다. “하지만 난 지금 권력도 힘도 없는데, 왜 굳이 나를 선택했지?”나명관은 탐색하듯 물었다. 역시 다년간의 경험이 길러낸 노련함은 어디에 가지 않았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자신을 찾아온 흑풍 존주가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없기는, 나흐 가문 유럽 쪽에도 큰 기반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는데, 분명 거기에 걸맞는 탄탄한 동맹 세력이 있지 않는가? 예를 들면… 혈용사, 크리스라던가?”흑풍 존주는 이 말과 함께 나명관의 안색을 힐끗 살폈다. 용병 왕 크리스는 과거에 나명관에게 목숨을 빚진
그렇게 염구준을 겨냥한 음모가 조용히 시작되었다. 나흐 그룹 빌딩.정장에 단정한 머리 스타일을 한 채, 나흐 가문 가주가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아주 자신만만한 모습이었다. “나정한, 나와라!”그 기세에 리셉션 직원들은 물론 경호원들도 감히 다가오지 못했다. 한때 세상을 주름잡던 인물, 그가 다시 돌아왔다. 이때, 어디선가 빠르지만 균일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나명관의 큰 아들, 나정한이 암위들을 이끌고 나타난 것이었다. “미친 척할 거면 끝까지 하지, 이제 와서 왜 이러십니까?”부자 사이라 나정한은 누구보다도 아버지 나명관의 성격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사실 언젠가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 예상했었다. 나명관은 대꾸하지 않고 곧바로 정색하며 본론을 꺼냈다. “마지막으로 말하겠다. 내게 회사를 넘겨라.”그렇지 않으면 큰 일이라도 날듯이, 나명관이 말했다. “거절할게요.”나정한이 허웃음을 지으며 단호히 대답했다.“죽여라! 반항하는 자, 모두 죽여!”나명관의 목소리는 평온했지만, 그 안에는 강한 살기가 들어가 있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미처 반응할 틈도 없이 강자들이 건물 안으로 들이닥쳤다. “암위, 모두 죽여라.”하지만 나정한도 얌전히 당해줄 마음이 없었다. 순식간에 두 세력의 싸움이 벌어졌고,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의 비명과 병기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일반 직원들은 두려움에 사방으로 흩어지며 구석에 몸을 숨겼다. 겨우 월급 받는 회사를 위해 목숨 걸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크리스가 데리고 온 용병들과 흑풍 조직이 합세하자 전투는 당연히 나명관 쪽이 우세했다. 나정한이 이끌고 있던 암위는 대다수 죽거나 다쳤다. 나정한도 밧줄에 묶인 채 나명관 앞으로 끌려 나왔다.“아들아, 난 진짜로 널 다치게 하고 싶은 마음 없었어. 이 모든 건 네가 스스로 자초한 거야. 참으로 안타깝구나.”“퉤, 웃기지 마. 진작에 당신을 죽였어야 했는데.”나정한이 살기어린 표정으로 아버지 나명관을 보며 말했다. 말이 안 통하는 상대
공격이 휘몰아쳤고, 엘 가문은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의 실력이 너무 앞도적이었다.“앨리스, 넌 나랑 좀 가야겠어.”크리스가 갑자기 앨리스 뒤에 나타나더니, 거친 손을 뻗었다. 적을 제압하려면 우선 그들의 우두머리부터 잡아야 한다. 과연 전투 경험이 풍부한 용병왕 다운 판단이었다.“조심해요!”하지만 이때 옆에 있던 청용이 크리스를 향해 주먹을 내지르며 저지했다. 크리스는 당황하는 기색이 없이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공격을 맞받아쳤다. 쾅하고 단단한 것끼리 부딪히는 굉음이 울려퍼지며 주변에 흙먼지를 일으켰다.청용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재빨리 앨리스를 한손으로 들어 고성 안으로 들어섰다.“욱!”한쪽으로 사람을 보호하랴, 한쪽으로 공격을 막으랴, 청용은 결국 데미지를 입고 말았다. 결국 그녀는 울컥하고 속에서부터 치밀어 오른 피를 밖으로 쏟아낼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부러진 팔, 청용은 남은 손으로 입가에 묻은 피를 닦으며 크리스를 노려보았다. 과연 용병왕답게 크리스의 실력은 대단했다. “빨리 문 닫거라!”앨리스가 불리해진 상황을 빠르게 눈치채곤 사람들에게 서둘러 명령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소용없었다. 문이 닫히는 것보다 크리스의 행동이 더 빨랐기 때문이다. 초강자가 한 명만 있더라도 전투의 판세가 얼마나 크게 바뀔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였다. 크리스가 닫히던 문을 쾅 하고 주먹으로 내리치며 다시 활짝 열리게 했다. 망했다! 거의 모두가 최악을 생각하며 절망하던 순간이었다.“멈추지 마! 계속 공격해!”앨리스가 포기하지 않고 외쳤다. 다양한 무기들이 크리스를 향해 쏘아졌지만, 결국 소용없었다. 사람들은 좀 전보다 더 깊은 절망에 빠졌다. 어디에도 도망칠 곳이 보이지 않았고 패배가 거의 확정된 듯했다. “죽어라!”크리스가 앨리스를 향해 분노 어린 목소리로 돌진했다. 정말 답 없는 상황이었다. 앨리스는 죽음을 각오한 채 천천히 눈을 감았다. 길지는 않았지만, 나름 괜찮았던 삶, 주마등이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두 사람을 멈출 줄 모르고 계속해서 서로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그 덕에 주변은 온통 쑥대밭이 되었으나, 그 누구도 감히 끼어들어 말릴 용기를 내지 못했다. 인간의 경지를 넘은 무공의 위력은 정말 상상을 초월했다. 이들에겐 칼과 총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사람들은 둘의 움직임을 눈으로 쫓을 수조차 없었다. 그저 불과 번개가 이리저리 부딪는 듯한 모습만 볼 수 있었다.그렇게 잠시 후, 한참 서로 공격을 퍼붓던 둘이 떨어졌다.“하하, 아주 통쾌하군!”염구준은 이 상황이 너무 즐거웠다. 눈은 온통 투지로 불타고 있었다.“훅, 훅!”반면 크리스는 거친 숨을 토해내며 자신의 상처를 살피고 있었다. 처음에 자신만만했던 모습 따위 완전히 없어졌다. 그는 당장이라도 이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예전에 패배했던 쓰라린 기억이 다시 트라우마처럼 되살아났다. “다시 간다!”염구준은 공격을 재기했다. 하지만 그 속도와 위력은 전보다 훨씬 더 강력해진 상태였다. 그의 주먹이 휘둘러질 때마다 강력한 돌풍과 함께 불길이 일어났다. 크리스는 이 이상 염구준을 상대하다가 정말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전투의지가 완전히 사라졌다. 당장 도망쳐야 했다. 하지만 이러한 나약한 생각 때문인지, 그는 결국 허점을 보였고 염구준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주먹이 번쩍하고 크리스의 등을 강타했다.“악!”그는 제대로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고수들의 대결은 정말 한순간이었다. 단 한 번의 방심이 죽음을 불러왔다. 그렇게 한시대를 누비던 용병왕이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바스라졌다. “흑풍 존주, 빨리 도와주지 않고 뭐해!”상황이 점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을 눈치챈 나명관이 외쳤다. 하지만 아무리 지나도 흑풍 존주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비로서 자신이 돌이킬 수 없는 계략에 빠져 놀아났음을 깨달았다.그는 완전히 버려진 것이다. 염구준이 나타난 이상 흑풍 존주가 모습을 드러낼 리 없었다. 오금이 저릴 정도로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리고 당장 20억을 보내지 않으면 용이를 죽이겠다고 협박했어.”마지막 말을 마치자, 그녀는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시골에서 농사나 짓던 그녀에게 20억은 도무지 구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염구준은 그녀의 아들이 정확히 동남아시아 어디로 갔는지 물었다. 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무리안이라는 지역명을 말했다. 그 순간 염구준은 낭패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리안, 동남아시아 북부에 있는 지역으로 각종 주술, 샤먼이 선행하는 아주 위험한 곳이었다. 심지어 동남아시아에서 유명한 패자 멘딘 제레조차 피하는 장소였다. 그런 통제 불가능한 곳에 돈 벌러 가다니, 목숨을 내놓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구준 씨, 상황이 많이 복잡해?”그의 진지한 표정을 본 손가을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아니야, 일단 동영상부터 보자.”상황이 복잡하긴 하지만, 해결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구출해야 하는 대상이 살아있을 때나 가능한 얘기였다. 그렇게 그들은 용필이가 봤다는 영상들과 협박 영상 신청하기 시작했다. 잘생긴 외모를 가진 남자가 자기 집을 소개하는 모습, 주변에 여자들이 남자에게 호감을 보이는 모습, 외제차를 몰며 명품에 도배되어 있는 남자의 모습, 그리고 마지막으로 협박용으로 보내졌다는 영상까지.저 혼란한 무리안을 이토록 아름답게 포장하다니, 참으로 가증스러웠다. 그러다 문득, 영상을 계속 돌려보던 염구준의 눈에 익숙한 것이 발견되었다. 바로 이들의 목에 걸려 있는 신무옥패와 유사한 옥패였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미끼를 던져 강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뭐 좀 보여?”하지만 손가을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듯 물었다.“응, 생각보다 상황이 그렇게 복잡하지는 않을 것 같아.”염구준이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모님, 연락 온 핸드폰 저한테 주세요. 제가 해결해드릴게요.”혼란스러운 무리안, 이제 정리할 때가 되었다. “고마워!”이모가 안도감이 서린 눈물을 흘리며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뭐가 이렇게 시끄러워?
파악!곧이어 물기둥이 하늘로 솟구치며 거대한 향유고래가 염구준과 멀지 않는 곳에 떨어진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마치 떠나기 아쉬워하는 듯했다.촤악!염구준은 몸을 날려 향유고래의 머리 위로 뛰어오른 뒤, 세 척의 어선 쪽으로 진기를 날려 물보라 일게 했다.이에 향유고래는 곧장 방향을 틀고, 어선을 향해 빠르게 헤엄치기 시작했다.말이 통하지 않아 이런 방식으로 밖에 교류할 수 없었지만 별로 큰 문제는 없었다.그 시각, 1호 어선은 다른 어선보다 조금 더 시끌벅적했다.노대영은 배의 지휘권을 장악한 뒤, 끝까지 저항한 소수만을 제거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 포로로 붙잡아두었다.물론 그가 자비로워서가 아니었다.그저 이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어떻게 복수하는지 지켜보게 하기 위해서였다.“대영 문주님, 준비 완료됐습니다. 언제든 시작 가능합니다.”노대영에게 붙은 아첨꾼 하나가 다가와 공손하게 말했다. 이번에 출정한 천기문 문도 중 절반 이상이 이미 노대영 편이었다.쿵!노대영은 부도 갑옷을 입은 채로 웃으면서 팔을 휘둘러 노신기를 바닥에 내던졌다.“악독한 놈. 네가 내 아버지를 죽였으니 난 오늘 아버지의 복수를 할 거다.”며칠 전에 대의를 위해서라면 혈연관계는 얼마든지 끊을 수 있다는 그의 말은 그저 노신기를 안심시키기 위함에 불과했다. 그의 가슴 속에 맺힌 복수심은 한순간도 식지 않았었다.“하아...”노신기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그의 창백한 얼굴엔 깊은 후회가 서려 있었다.‘그때 불쌍해 보인다고 해서 검은 머리 짐승을 거두는 게 아니었는데.’그는 생각했다. “모든 일은 내가 벌인 거니까 찢어죽이든, 뭘하든 나한테만 해. 상관없는 다른 사람들 건드리지 말고.”지금 이런 상황에 이른 이상, 그는 더 도리를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전에 이미 노대영에게 그의 출신을 말해주며 그의 아버지가 눈 깜빡하지 않고 살인을 저지르는 변태 악마라고 말해주었으나 그는 전혀 듣지 않았기 때문에 말해봤자 쓸모가 없다는 걸 알아서였다.스승과 제자의
염구준을 향해 날아오는 것은 엄청난 기운을 내뿜고 있는 금강 방망이 한 개 뿐이었다. 기운의 량으로 보아 세 명의 힘이 전부 들어있는 게 분명했다.이건 베르 일행이 전력을 건 최후의 일격이었다.쾅!한 자루의 검과 한 개의 방망이가 충돌하며 눈부신 불꽃을 일으켰다.폭발적인 에너지가 주변에 퍼져나가며 양측은 잠시 균형을 이루었다.세 사람의 실력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막았다! 얼른 보트 준비해, 후퇴한다!”베르의 창백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비틀거리며 일어나 부하들에게 소리쳤다.루카와 슈카 역시 서로 부축하며 일어섰다.이미 힘이 고갈된 지라 그들의 얼굴엔 혈색도 없었고, 기운조차 미약했다.더 이상의 싸움은 무리였다.“하압!”염구준은 팔에 힘을 주어 금강 방망이를 밀어내려 했지만, 방망이가 꼼짝도 하지 않는 걸 발견했다. 이 전법은 오묘했다. 상대방이 시전하고 조종하지 않아도 타겟을 쫓아 움직이는 것처럼 홀로 움직였으니까 말이다.이대로라면, 몸이 먼저 나가떨어질 판이었다.베르는 떠나기 전에 염구준을 보며 독한 말을 남겼다.“염구준, 자만하지 마라. 스텔라성은 아직 남아 있으니까. 돌아가서 강자들을 전부 불러와 널 죽여주지.”“돌아갈 수 없을 겁니다.”얼음처럼 차가운 염구준의 목소리에 모두가 몸을 살짝 떨었다.이미 흑풍의 사태로 배운 바가 있었기 때문에 염구준은 적을 쉽게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흥, 말은 누구나 하지. 하지만 나중에 지키지 못하면, 네 얼굴에 침 뱉는 꼴이 될 걸?”베르는 비웃으며 염구준의 말을 맘 속에 담아두지 않았다. 자신의 필살기에 대한 자신감이 넘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염구준은 검을 쥔 양손을 살짝 옆으로 움직이며, 손을 놓았다.우웅!그러자 구자검은 더 이상 금강 방망이와 대치하지 않고, 잔상을 남기며 쏜살같이 전방을 향해 날아갔다.같은 시각에 금강 방망이 역시 미친 듯한 속도로 염구준의 왼쪽 가슴을 향해 돌진했다.이건 자신의 목숨으로 적의 목숨을 바꾸는 방식이었다.꽈악!염구준
“염 선생님, 저희가 가서 막을까요?”노신기는 갈등하며 조심스레 물었다.비록 상대가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염구준 덕분에 얻은 것이 많았기에 돕고 싶어서였다.“아니요. 그냥 가만히 계시면 됩니다.”염구준은 단호하게 거절하며 대형 방패를 계속 내리쳤다.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노신기 일행의 실력으로는 개입해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염구준은 잘 알고 있었다. 가봤자 죽을 게 분명하다는 것도 말이다.한편, 전장의 중심에 선 세 사람은 자신들이 고립무원의 상황에 처해있으며, 살려면 스스로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죽을 각오로 덤벼!”쾅!베르의 눈엔 살기가 가득했다. 손에 쥔 대형 방패는 마침내 한계에 도달하며 산산이 부서졌다.그의 피로 물든 두 손에는 어느새 짧은 단검이 들려 있었고, 그는 그것으로 염구준의 가슴을 향해 휘둘렀다.하지만 날카로운 칼날이 스쳐 지나간 자리에 남은 건 얕은 두 줄의 상처뿐, 역시 깊이 파고들지는 못했다.일반적인 공격은 염구준에게 통하지 않았다. 과거, 염구준이 육체의 한계를 돌파한 리아성전의 전주를 쓰러뜨린 것도 필살기와 정제된 진기 덕분이었었다. 심지어 한 번에 쓰러뜨린 것도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싸웠었다.육체가 극한으로 강해진 상대를 쉽게 이긴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염구준은 베르를 걷어차 밀어낸 뒤, 곧바로 루카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세 명을 상대할 때 가장 확실한 방식은, 하나씩 쓰러뜨리는 것이었다.“젠장!”염구준이 갑자기 타겟을 바꿀 줄 몰랐던 루카는 급히 막아섰지만 한 칼에 밀려났고 이어진 두 번째 공격에 부상을 입고 말았다.강자들의 승부는 한 수, 한 수가 치명상이라 조금의 방심도 용납되지 않았다. 자칫하다간 목숨을 잃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베르는 상황이 좋지 않음을 직감하고 이를 악물며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삼절진을 쓰자!”두 형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베르 뒤로 이동한 뒤, 손을 그의 등에 얹었다.이 필살기에 승패가
베르 세 사람을 포함해 이 싸움을 지켜보던 반보천인들조차 염구준이 쓰는 게 무슨 전술인줄 몰라 어리둥절해졌다.방어를 완전히 포기하고 정면으로 달려드는 행위는 자살이나 다름없으니까 말이다.“건방지긴!”“내가 막을 테니 너희는 죽을 힘을 다해 공격해!”이에 베르의 일그러진 얼굴에는 약간의 기쁨이 섞였다. 그는 달려오는 염구준을 보며 포효하듯이 명령을 내렸다. 해저에서의 전투 경험에 의하면, 그는 자신이 특별히 제작한 대형 방패로 염구준의 공격을 최소 서른 번은 막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쾅!그러나 시작에 불과한 염구준의 첫 공격에 베르는 몇 걸음이나 밀려났고, 방패엔 반 치 정도 깊이의 칼자국이 선명히 새겨졌다.이 방패는 염구준의 공격을 막기 위해 베르가 특별히 주문 제작한 거라 다른 것보다 더욱 단단하고 두꺼웠다.텅텅!루카와 슈카도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동시에 염구준의 옆구리를 향해 칼을 박아넣었다.손목에 힘을 잔뜩 실은 터라 염구준의 호체진기를 가뿐히 뚫었지만 몸에는 옅은 상처밖에 내지 못했다.아무리 힘을 더 실어도, 더 깊숙이 찌를 수가 없었다.“육체의 극한까지 도달했다고?”싸움을 지켜보던 반보천인들은 일제히 감탄을 내뱉었다.두 명의 최강 반보천인의 공격을 오직 맨몸으로 버텼다는 것부터 염구준의 육체가 이미 극한까지 도달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쾅! 쾅!염구준은 루카 형제의 공격을 거의 무시한 채, 계속해서 베르에게 맹공을 퍼부었다.공격이 계속 되면서 방패에는 칼자국이 점점 더 많아졌고, 베르도 연달아 밀려났다. 이 엄청난 충격력에 그의 손바닥은 결국 찢어져 버렸고, 상처에서는 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공격 안 해? 밥 안 먹었어?”베르는 체내의 기혈이 요동치는 것을 느끼며 방패를 들고 소리쳤다.그제야 그는 그가 자신의 실력을 과대평가 했음을 깨달았다.‘방패가 30번의 공격을 버틴다고 해도 내가 버티지 못해.’염구준의 몸이 반보천인의 극한에 다다른 이후, 방어력 뿐만 아니라 힘도 강해져서 전보다 공격이
모두가 향유고래의 위를 보고 눈이 커졌다.기뻐하는 사람도,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었다.사람과 고래가 마음을 합쳐 수많은 고난을 뚫고 마침내 위험천만한 해저 심연에서 빠져나온 거다.그 과정의 험난함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노신기는 드디어 마음이 놓였다는 듯, 기뻐하며 입을 열었다. “염 선생님, 돌아가시지 않으셨군요?”말을 내뱉은 후, 그도 이상함을 느꼈지만, 이미 말을 마친 후라 뭐라고 바꿀 수도 없었다. “어... 네, 살아있긴 합니다.”염구준은 대수롭지 않게 답하며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냈다.솔직히, 좀 웃긴 질문이었다.조금 떨어진 곳에서, 완전히 멀쩡한 염구준을 본 베르는 숨이 턱 막혔다.“염구준, 너...”깊고 깊은 바다 밑에서 화산 폭발과 함께 대지진이 일어난 상황에, 잠수 장비도 없다는 건 그냥 죽음을 의미했다.하지만 염구준은 그 위기 속에서 향유고래를 몰아 드라마처럼 살아 돌아왔다.베르로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었다.“진정해, 나이도 있는데 괜히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와서 그 자리에서 죽으면 곤란하잖아.”염구준은 베르를 바라보며 말했다. 진짜로 열받아서 죽어버리길 바라는 눈치였다.서로 죽이려 드는 사이끼리 예의는 사치일 뿐이었다.“흥! 바다 밑에선 겨우 살아남았을지 몰라도, 여기선 끝이다.”“루카, 슈카! 저 녀석을 죽여라!”베르는 참지 못하고 이를 악물고 염구준을 가리켰다.휙휙.하지만 그 두 형제는 어깨를 으쓱이더니 빠르게 몸을 뒤로 빼며 보트를 밟고 전함 위로 훌쩍 올라가 버렸다.“부성주님, 저 녀석은 강하니 부성주님께서 직접 나서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입에 발린 소리로 한껏 띄워주니 베르도 그들에게 화를 낼 수 없었다.셋이 하나를 상대하는 상황임에도 정작 그의 마음속엔 불안감만이 가득했다.염구준의 강함이, 그에게 공포로 다가왔기 때문이다.염구준은 검을 들고 베르를 향해 겨누었다.“이제 끝을 보자.”이제 거의 모든 상황이 정리되었으니, 갚을 원한은 갚고, 끝낼 일은 끝낼 때였다.“
비록 인수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베르 일행이 드디어 수면 위로 올라왔다.여러 가문을 합쳐서 겨우 20명이 살아서 돌아오고 나머지는 심해에서 전사했다.신비한 생물체가 공격하는 바람에 또 한 번 참담한 손해를 보았다.“빨리 출발해!”베르는 선박에 올라오자마자 부하들에게 철수 명령을 내렸다.지금 그의 안색은 보기 흉할 정도로 일그러졌다.정예병들을 잃고 강력한 조력자 세라까지 잃었는데, 고작 가짜 옥패를 찾다가 죽을 뻔했다.“출발해. 바다 화산이 곧 폭발할 거야!”“우리도 스텔라성이 복수하기 전에 이곳을 떠나야 한다!”다른 가문에서도 각자 선박과 잠수함을 타고 먼 곳으로 향했다.바다 밑의 움직임이 너무 커서 그들도 휘말릴까 봐 너무 무서웠다.지금 해수면에 남은 사람은 노신기와 아타의 선박뿐이었다.그들은 염구준이 살아서 돌아오길 기다렸다.저런 인간들도 살아서 돌아오는데 대단한 실력을 가진 염구준은 무조건 살아서 돌아올 거라 굳게 믿었다.“문주님, 소용돌이가 나타났어요.”선박에서 누군가 소리를 쳤다.“소용돌이?”모두의 시선이 그곳을 향했다.소용돌이가 점점 거세게 번지는데 이러다 선박 세 척까지 삼켜버릴 것 같았다.또 위기가 닥치자 그들은 안절부절하지 못했다.“아타 장로님, 저기…!”노신기가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뒷말을 흘렸다.솔직히 그도 염구준이 살아서 돌아오길 기다리고 싶지만 이러다가 백 명의 부하들이 전부 죽을까 봐 걱정되었다.“일단 철수하고 소용돌이가 사라지면 보트로 찾으러 오죠.”아타도 급속하게 퍼지는 소용돌이를 보고 일단 명령을 내렸다.해수면이 올라오면서 작은 섬들을 완전히 삼키고, 멀지 않은 곳에서 소용돌이가 미친듯이 주변을 삼켜 버리기에 이러다 정말 전멸할 것 같았다.노신기가 베르에게 다가가 나지막하게 물었다.“염 선생님은 어떻게 되었습니까?”“하하하, 당연히 내가 죽였지!”베르는 바다에 쩌렁쩌렁 울리도록 웃으면서 빌어먹을 허영심 때문에 또 허풍을 떨었다.당시 현장은 난장판이라 제대로 본 사람은 얼마되지 않
밖에서 보면, 절벽이 곧 무너질 것처럼 거세게 흔들렸다.게다가 바닥에서 진흙과 모래가 일면서 시야까지 가려, 앞에 무엇이 있는지 어느 방향인지 알아보기조차 힘들었다.“하하하, 염구준이 동굴에 묻혔으면 틀림없이 죽었을 거야.”이미 추동 장치로 수십 미터 올라간 베르가 유난히 신나게 웃고 있었다.염구준이 이곳에서 뼈가 부서지고 연기처럼 사라지길 바랬다.촤아아!그런데 기뻐한 지 10초도 되지 않아, 한 그림자가 혼탁한 바닷물을 뚫고 나타난 것이었다.염구준이 아니면 누구일까?“흥, 추동 장치도 없는데 수천 미터나 되는 심해에서 어떻게 올라오나 보자.”베르는 화가 나서 씩씩거리더니 더는 염구준을 상관하지 않고 위로 올라갔다.동굴 밖으로 나온 염구준은 마치 지옥에 온 것 같았다.검붉은 암장이 소용돌이치고 모래벌레들이 꿈틀거리며 사방을 헤엄치고 대왕 오징어도 균열을 뚫고 심연으로 빠져나왔다.이곳의 기괴한 생물체들도 도망치느라 인간을 봐도 공격하지 않았다.염구준은 동굴 밖에 나와서도 바다의 화산이 폭발하는 위기에 처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지금 잠수 장비와 추동 장치는 없고 산소통만 남는데 몇 숨만 쉬면 바닥날 것 같았다.갑작스러운 변고로 아래로 흡수하는 암류가 사라져서 올라가기 쉬웠지만 그래도 시간이 한참이나 필요했다.어쩌면 해수면으로 올라가기 전에 암장에 삼키거나 익사해 죽을 것 같았다.‘방법이 있어.’문뜩 좋은 방법이 생각난 그는 빠른 속도로 심해 모래벌레의 둥지로 향했다.그곳에 죽은 무술인들의 잠수 장비를 찾아볼 생각이었다.슈우웅!얼마 가지 못하고 지면이 점점 격렬하게 움직이며 대량의 암장이 사방으로 흘러나왔다.바다의 화산이 제대로 폭발한 것이다.분화점에서 가장 가까운 모래벌레 둥지는 순식간에 암장이 덮쳐버렸다.“뭐야. 나랑 해보자는 거야?”왠지 모든 불리한 요소들이 전부 염구준을 향하는 것 같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심해에서 알 수 없는 에너지에 의해 놀아나다가 죽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방금 전에 심해 눈물의 덕
신비한 생물체는 춤을 추듯 물속을 떠다니더니 공의 명령을 받았는지 우르르 몰려서 베르 일행을 공격했다.“공격을 멈추지 마세요!”두통이 밀려온 베르는 명령을 내리고 곧장 동굴로 도망쳤다.일부 무술인들도 그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각자 도망치기에 바빴다.생물의 정체와 아직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기에 일단 도망치는 것이었다.“살려줘요!”간신히 숨이 붙어 있는 세라는 베르가 도망치는 것을 보고 자신도 데려가길 바랐다.그런데 본인만 챙기느라 누구도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일단 한 걸음만 뒤처져도 바로 죽기 때문에 누구를 도울 여력이 없었다.“아악!”운이 나쁜 무술인들은 대량의 생물체에 공격당해 비명을 지르다 백골이 되어버렸다.그리고 몸에 한두 마리씩 들어간 무술인들은 경련을 일으키다 바로 기절했다.기괴한 생물체는 공격력은 약하지만 일단 몸에 닿으면 방어할 틈도 없이 살해했다.곧 도망친 사람들은 살아남고 늦게 움직이는 사람들은 전부 죽어버렸다.지금 심해에 염구준이 혼자 남았으니, 반투명한 생물체들이 모두 그에게 쏠렸다.“조금만 더!”염구준은 천천히 흐르는 심해의 눈물을 초조하게 바라보면서 여러 번이나 검기를 휘둘러 생물체를 제거했다.아무리 극한 반보천인이라고 해도 이름도 모르는 생물과 억지로 맞서고 싶지 않았다.그러다가 감당하지 못하면 백골이 되는 것은 한순간이니까.슈슈슝!신비한 생물체가 죽는 족족 살아 있는 생물체들이 계속 헤엄치며 다가왔다.염구준이 검을 휘둘러 죽일 때마다 더 많은 생물들이 나타나는 것 같았다.마치 그의 피와 살을 모조리 먹어 치울 기세였다.그래도 염구준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검을 휘둘러 자신을 보호했다.그때 일부 생물체는 그가 방심한 틈을 타서 몸으로 스며들었다.“이것들이 정말 끈질기네.”염구준은 체내의 불 원소의 힘으로 몸 겉면에 황금색 화염을 형성했다.심해에서 불 원소의 힘은 압박을 받아 제대로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생물체를 제거하는 데는 효과가 있었다.치지직!그에게 접근한 생물체는 엄청
베르는 동시에 방어한다면 염구준의 공격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하나씩 파괴되는 것을 보고 괴성을 질렀다.“아아아악!”염구준의 검은 여전히 날카롭게 베르의 방어벽까지 쉽게 깨 부셨다.갑자기 대량의 에너지를 사용했더니 구자검이 전처럼 날카롭게 움직이지 않았다.“반격!”이때다 싶어 베르는 다섯 명과 함께 기운을 끌어올려 반격에 나섰다.쿵!맹렬한 공격으로 쌍방은 각자 뒤로 물러서고 그 충격으로 수중에 회오리바람을 만들어 동굴이 심하게 흔들렸다.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미처 방어벽으로 막지 못해 회오리바람에 휘말려 잠수 장비가 깨지고 심해의 수압에 경련을 일으키다 익사했다.그 장면을 본 일부 무술인들은 괜히 끼어들다 죽을까 봐 한참 뒤로 물러섰다.돌기둥에 돌아온 염구준은 아직도 심해의 눈물이 흐르는 것을 발견했다.이렇게 귀한 물건을 낭비할 수 없어, 다른 사람의 산소통을 빼앗아 검으로 자르고는 거기에 담기 시작했다.심해의 눈물이 워낙 밀도가 강해서 산소통의 물이 알아서 흘러나왔다.그때 전체 동굴이 심하게 흔들리더니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아아악!”또 갑작스럽게 닥친 변고에 다들 주변을 경계했다.베르의 표정은 가관이었다.눈앞의 강적도 죽이지 못했는데 또 알 수 없는 위험이 닥쳐서 미치고 팔짝 뛸 것만 같았다.“불꽃으로 비춰!”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몇몇 불꽃이 위를 비추었다.대부분 부하들은 가방에 보물을 하나라도 더 쑤셔 넣으려고 전등이나 불꽃을 만드는 장비를 전부 던졌다.불꽃이 이동할 때마다 주변을 비추었는데 위험한 생물체는 보이지 않았다.대신 아무런 상처도 없는 죽은 시체가 모두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그것을 본 순간 불길한 느낌이 몸을 감싸는 것 같았다.적의 정체를 모르니 아무리 힘이 있어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응?”염구준도 수상한 기운을 느끼다 갑자기 누군가 숨통이 끊어지는 것을 감지했다.죽은 모습은 전에 보물을 찾으러 왔던 무술인들의 시체와 증상이 똑같았다.‘엄청난 생명이 움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