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뒤, 5성급 호텔 최상층,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주인님, 찾으셨습니까?”선풍은 겉 보기에는 존경의 눈빛으로 앞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지만 사실 원망이 가득했다.“이제 돌아가셔야 합니다!”흑풍 존주는 그의 깍듯한 모습을 비웃듯 웃어 보였다. 그가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 다 아는 듯하였다.그는 지난번 염구준에게 패한 이후 약 한 달간 훈련을 하며 마침내 부상에서 회복됐다.지금 흑풍 존주는 새로운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그의 목표는 엘 가문이었다!“내가 기필코 되돌려주마, 염구준은 손도 쓰지 못할 거야!”흑풍 존주는 입가에 냉소를 띄우며 선풍의 앞으로 서류를 던졌다. “네 다음 임무는 엘 가문을 공격하는 거다!”그 위에는 최근 엘 가문의 약점과 내부 스파이까지 적혀 있었다.그는 어두운 눈빛으로 선풍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예!”선풍의 마음은 뜨겁게 불타올랐다. 오랜 시간이 흘러 마침내 복수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서류를 집어든 그는 돌아서서 발걸음을 옮겨 다음 단계에 착수했다. “주인님, 저 자를 믿으십니까?”옆에 서 있던 남자는 조금 놀라며 의심스러운 듯이 물었다. 흑풍 존주는 차갑게 웃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며칠 뒤, 엘 가문이 파산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가주님, 이제 어떡하죠? 벌써 문 앞에 돈 내놓으라는 사람들이 모였어요! 저희의 최저 입찰가도 알려졌습니다!"임원들이 앨리스의 앞으로 달려와 상기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앨리스는 의자에 앉아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두려움이 커져갔다.앨리스는 잠시 생각을 하다 무언가 결정을 내리고 전화기를 들었다. “무슨 일이시죠?”염구준은 하품을 하고 눈살을 찌푸리며 조금 피곤해했다.“염 선생,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엘 가문은 지난 이틀 동안 악의적인 공격을 받아 현재 파산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두 개의 간단한 문장으로 현재 엘 가문의 모든 상황이 설명되었다. 염구준은 믿기 힘들다는 듯 눈을 크게 떴
그는 이 일을 무사히 넘긴다 하여도 자신에게 큰 타격이 있을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다음날, 염구준이 직접 앨리스의 사무실로 찾아왔다. "무슨 일입니까?"그는 피곤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눈 밑에는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으며 며칠 동안 잠을 자지 못한 것 같았다. "일단 좀 쉬시는 게 어떠십니까?"앨리스는 맞은편에 앉아 그를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무슨 일인지 말하세요!”염구준은 그런 그의 걱정을 무시한 채 다시 눈을 질끈 감았다.“지금까지 주식시장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주식을 다른 사람에게 팔아온 것 같습니다. 구매자가 누구인지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저희 입찰가도 함께 유출됐는데, 벌써 대금을 치른 사람들도 있습니다.”앨리스가 지금까지의 일들을 하나하나 염구준에게 말해주었다.“회장이라는 사람이 참 잘하고 계셨네요, 하!”얘기를 듣던 염구준은 비꼬는 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자기 사람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데,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그는 말과 함께 청룡으로부터 서류를 건네 받아 앨리스의 앞에 던졌다. “주식을 판 이사입니다. 처음부터 주식을 하고 있던 모양인데 설마 취임하기 전에 확인하지 않으신 겁니까?”청룡이 어젯밤 밤새 조사하여 알아낸 내용이었다. 앨리스는 범인의 정체를 알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그리고 대금 관련해서도 초기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으셨습니까? 계약서를 보지도 않은 거라면 도대체 언제부터 대금이 시작된 겁니까?"염구준은 눈살을 찌푸린 채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앨리스를 바라보았다."저도 확인했습니다. 저를 저녁식사에 초대했고 술을 마시면서 계약서에 서명을 해서 제대로 보지는 못했습니다."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앨리스는 누군가가 생각난 듯 눈을 크게 떴다. 순간 누군가 그녀에게 계약서에 서명해 달라고 부탁하던 순간이 떠올랐다. “됐습니다.”그녀의 말을 들은 염구준은 조롱의 눈빛과 함께 차갑게 웃었다. "내일부터 엘 가문의 모든 활동은 물론 계
말을 마친 염구준은 주작이 엘 가문에 들어온 뒤 모든 행적들이 적힌 문서를 던졌다."이 문서에 따르면 주작을 일찍이 해외로 보내셨더군요."염구준은 어떠한 흔들림도 없이 냉정한 태도를 유지했다.“맞습니다.”앨리스는 매우 당황한 표정으로 옷깃을 붙잡은 채 고개를 숙였다.“도대체 뭘 그렇게 두려워하시는 겁니까? 제가 자리를 빼앗을까 봐 겁나십니까?”연속된 질문에 앨리스는 고개를 들기가 더욱 두려웠다. 그녀는 매우 불안했고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다. “아닙니다.”애써 내뱉은 네 글자에 염구준은 피식 웃으며 비서에게로 향했다."재무 부서 부장 불러오세요."비서는 고개를 끄덕이고 뒤돌아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제가 당신의 자리를 빼앗을 수 있을지 없을지 오늘 확인해 드리죠.”앨리스는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푹 숙였다.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며 도저히 고개를 들 수 없었다.재무부장은 회장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 약간의 비웃음을 보였다."지금 계좌에 돈이 얼마나 있는지 말해 보세요."염구준은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고 팔짱을 낀 채 여유롭게 재무부장을 바라보았다. “백만 원가량 남아있습니다만 이 역시 유동자금입니다.”염구준은 보고서를 탁자 위에 올려두며 그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미소를 지었다. "한번 보시죠. 고작 돈 몇 푼가지고 저를 속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그는 보고서를 앨리스 앞에 던졌고, 경멸적인 눈빛으로 앨리스에게 다가갔다. "직접 당신을 승진시켜줬는데 이렇게 내 앞길을 막을 거라고는 생각치도 못했습니다." 약간의 떨림이 있긴 했지만 염구준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그렇다면 왜 주작을 보내 저를 감시하게 한 겁니까? 내가 당신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지는 것이 두려워서 아닙니까!" 계속되는 질문에 앨리스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고 이내 옷깃을 붙잡고 소리를 질렀다. 얼굴이 붉어져 마치 화를 참는 어린아이 같았다."난 당신을 가르치려고 그를 보낸 겁니다. 당신이 어떤 짓을 하고 있었는지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내
자신의 실체가 공개되었음에도 재무 부장은 어떠한 부끄러움도 느끼지 않았다.오히려 그는 당당함과 도발 섞인 표정으로 앨리스를 바라보았다. “지금 당신의 꼴을 보세요. CEO로서 당신이 적합하다고 생각합니까?""당신은 그저 껍데기일 뿐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죠."그의 눈빛에는 조롱이 담겨 있었다. 그는 조금의 죄책감도 없이 앨리스를 바라보았다. 퍽!앨리스는 단 한 번의 펀치로 그를 땅에 쓰러뜨렸다. "나는 최선을 다했어! 내일부터 나올 필요 없어."그를 때린 뒤 앨리스는 조금 진정하고 바닥에 누워 있는 재무 부장을 바라보며 침착하게 말했다. "그리고 나는 당신을 업계에서 쫓아 낼 거야. 당신이 어디서 일하든 당신을 고용할 회사는 없을 거라고 약속하지.” 앨리스는 재무 부장의 멱살을 잡고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앨리스는 입꼬리를 올린 채 거의 미친 사람처럼 말했다. “좋습니다, 그 사람은 그렇게 내버려 두세요.”등을 두드리며 위로하는 염구준의 목소리에 앨리스는 손을 놓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제가 왜 주작을 보냈는지 아시겠습니까? 당신 주변에는 쓸만한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염구준은 손을 닦은 후 앨리스에게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닦으세요. 이런 사람들에게는 화를 낼 가치도 없습니다."앨리스는 염구준에게 더욱 감사함을 느끼고 이전 일에 대해 더욱 죄책감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감사합니다!”염구준을 바라보는 앨리스의 눈빛에는 진심 어린 존경심이 담겨 있었다. “아닙니다. 앞으로 저를 억울하게 탓하지만 마세요."농담을 하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지만 염구준에게는 여유가 없었다. "잠시 뒤 대금을 지불하라고 독촉하는 사람들을 만나러 갈 겁니다. 당신이 알고 있는 사람일지도 몰라요."염구준의 눈빛은 더욱 싸늘해졌다. 그는 알 수 없는 무언가를 들고 앨리스의 옆 자리에 앉았다. “염 대표님, 대금을 요구하는 사장님께서 오늘 오후 1시에 만날 수 있다고 하십니다. 지금 출발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비서가 정장을
“가주님이 이곳에 나타나실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앨리스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앨리스는 이전에 가주가 도망갔다는 소식을 들은 적 있었다."세상 일은 예측할 수 없는 거죠. 저도 이렇게 빨리 여러분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앨리스의 말에 가주는 개의치 않고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염구준을 바라봤다. “전주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화제는 그에게로 돌아갔고 염구준은 몇차례 손을 흔들었다."저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가주님 같은 재능을 가진 분이라면 분명 필요한 사람이 있을 테니까요."상대가 패를 다 보여주지 않았으니 염구준은 섣불리 말하기 어려웠다. "본론으로 들어가죠. 여러분은 대금을 지불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이신 겁니다."그 역시 더 이상 염구준을 상대할 시간이 없었다. 가주는 표정을 바꿔 진지하게 말했다. "저 역시 계약서가 어떻게 체결된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상대가 솔직하게 나오는 것을 본 염구준 역시 본심을 숨기지 않고 다리를 꼰 채 굵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 정도는 얼마든지 알아보실 수 있으실 텐데요. 오늘 제가 올 것이라는 것도 알고 계시지 않으셨습니까?”염구준에게 질문하는 가주의 눈에는 냉소와 원한이 가득했다.“이 모든 게 가주께서 놓은 덫 아닙니까. 오늘 일은 그저 제가 추측한 것뿐입니다.”두 사람은 몇 차례 대화를 나눴지만 앨리스는 옆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앨리스는 염구준을 유심히 바라보며 뭔가를 배워가려 하였다. “그럼 맞게 추측하셨군요. 다만 이것은 효력이 있는 계약입니다. 앨리스께서 직접 서명하셨으니 제가 속인 것도 아니지요.”그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서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그곳에는 앨리스의 서명이 적혀 있었다.그 모습을 본 앨리스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분노와 욕설이 섞인 말과 함께 가주를 가리켰다. "정말이지 뻔뻔하네요! 나를 속여 이 계약서에 서명하게 해놓고 지금도 이 계약서를 이용해 나를 속이려고 하는군요!"앨리스는 와인잔을 들어 그를 향해 흩뿌렸다. 가주의 옷
뒤를 따라오던 앨리스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다급하게 물었다."별거 아닙니다. 돌아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염구준는 이제서야 단서를 찾은 것 같았다. 나흐 가문 가주가 흑풍 존주를 끌어들인 것이다.회사로 돌아온 염구준은 깊은 생각에 빠져 말 없이 의자에 앉아있었다. “선생, 말씀해 주시죠. 지금 무척 불안합니다.”염구준이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자 옆에 있던 앨리스는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불안해했다. “흑풍 존주를 아십니까?”이 말에 앨리스는 고개를 저으며 눈살을 찌푸렸다.“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유명 가문의 사람입니까?"앨리스가 조금 당황한 듯 말했다. "아니요, 외국 용병단의 리더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최고의 용병이었죠."염구준은 순간 자신이 흑풍 존주에 대해 어느정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벼렸다."그야 정말 대단하지만 그 사람은 이 일과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앨리스는 그의 능력을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내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나흐 가문 가주의 배후가 그 사람입니다.”모든 것을 파악한 염구준은 냉소를 보이며 상대에 대한 경멸감을 느꼈다.“흑풍 존주는 평생동안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2년 전 제가 포위 제압에 나선 뒤 심각한 부상을 입고 다리를 잃었죠."“이에 원한을 품고 나흐 가문 가주와 손을 잡아 나를 치려고 하는 겁니다.”오늘의 대화로 염구준이 갖고 있던 모든 의문은 해소되었다. 한편으로는 세상이 참 좁게 느껴졌다.“육원에게 전화해 여기로 오라고 하세요.”앨리스의 눈빛을 보아하니 아직 사태 파악을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염구준은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푹 쉬었다.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휴대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 잠시 뒤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무슨 일이길래 이렇게 급히 나를 부른거죠?"그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있었고 심지어는 염구준이 돌아왔음에도 자신에게 말하지 않은 것에 대한 원망이 섞여 있었다.“부친께서 뒤에 거물까지 둔 채로 돌아오셨습니다. 어떻게 하고 싶으십니까?”
“부친은 상대하기 쉽지만 그 뒤에 있는 사람을 다루기가 어렵습니다."염구준은 한참 고민하다가 그에게 이 말을 일러주며 흑풍 존주에 대해 조금 얘기해줬다."그렇다면 우선 아버지를 상대하는 것이 좋겠군요."이야기를 들은 육원은 고개를 끄덕이고 문서를 꺼내서 앨리스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제가 당신을 위해 준비해 둔 보증입니다. 비상시에 사용하시면 됩니다."돈을 본 앨리스는 그의 손을 잡은 채 고마워하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저희가 같은 편에 있다는 것만 확인하면 그만입니다."두 사람의 화목한 모습을 본 염구준은 절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약간의 짜증이 나기도 했다."방법을 생각해 보긴 했지만 이것이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한참 생각에 빠져 있던 육원은 눈살을 찌푸린 채 턱을 괴고 말했다.“만약 우리가…”방법은 매우 간단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었다.한편, 흑풍 존주가 나흐 가문 가주의 회사에 도착했다.“일은 어떻게 돼가고 있습니까?”그는 무표정으로 차갑게 말했다. 눈을 감고 있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아주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제 염구준도 당신이 내 뒤에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감히 경솔하게 행동할 수는 없을 겁니다."흑풍 존주가 다가오자 나흐 가문 가주가 매우 깍듯한 태도로 걸어가 허리를 굽혔다. "좋습니다. 최근 그 자들의 행보를 주시 중인데 당신의 아들이 그들과 의논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정말 훌륭한 아들을 두셨더군요."그가 비꼬듯이 말했지만 나흐 가문 가주는 전혀 화를 내지 않고 입가에 살짝 미소를 띄었다."저에겐 그런 아들 없습니다."그가 아들을 언급하자 그의 눈빛은 혐오와 경멸로 가득찼다. 도저히 이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그럼 마음대로 하시지요. 어쨌든 당신의 아들입니다.”더 이상 이 문제로 그와 논쟁하기를 원치 않았기에 흑풍은 그 말만 남긴 채 돌아서서 떠났다.비서는 가방에서 약병을 꺼내 가주의 앞에 놓았다.“이 약을 드시면 3일간 혼수상태에 빠지실 겁니다
“별 일 아닙니다. 제가 독약 쓰는 사람을 만났는데, 나중에 필요할 것 같아 해독제를 부탁드리고 싶어서요.”염구준은 이전의 차가운 표정과는 전혀 다른, 조금 순진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의술을 가르쳐 주겠다고 했을 때는 안 배우더니, 그때 배워뒀으면 내가 필요 없지 않았겠냐?”그는 염구준의 머리를 쿡쿡 누르며 짜증난다는 어조로 말했다. 비록 그의 말투는 차가웠지만, 그는 여전히 염구준을 맘에 들어했다."시간이 없습니다. 며칠만 계시면서 문제를 해결 해주시면 다시 돌려 보내드리겠습니다."그는 말과 함께 와인 두 병을 앞에 놓고 정중하게 부탁했다.“이건 제가 드리는 와인입니다. 제가 선생님 드리려고 손도 대지 않았습니다.”와인을 보자마자 사 의사는 손을 뻗었으나 염구준이 다급하게 저지했다. "저를 도와 이 문제를 해결해 주셔야 합니다. 저는 선생님만 믿겠습니다." 그는 앞에 있는 와인을 바라보며 다시 당부했고, 사 의사는 조금 귀찮은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도 내가 걱정되냐? 잔소리는 그만해라. 내가 도와주마."그는 말을 마친 뒤 와인을 따라 원샷하였다.그가 와인을 마음에 들어 하자 염구준도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을 휴게실로 모셔라.”이 말을 들은 청룡은 들어와 그의 지시에 따랐다. 사 의사는 염구준을 바라보고는 와인 두 병을 들고 떠났다. “네놈이니까 견딜 수 있는거지, 내 상사가 저 모양이었으면 난 진작 도망갔을 거다.”이렇게 말하면서도 말투에는 잘난 채가 느껴졌다. 청룡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정말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쟤는 너한테 잘해야 해,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단 말이야.”조금 거칠긴 해도 맞는 말이었고, 청룡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이런 청룡의 모습을 본 사 의사는 안도감을 느끼고 곧장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이제 흑풍에는 독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고, 우리에게는 독을 해독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럼 이제 그들이 행동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들의 힘을 역이용 합시다."
오늘 만약 염구준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그들은 전부 물고기들의 먹이가 되었을 것이다.“빨리 항행하라고 하세요. 뭔가 이상합니다.”염구준의 갑작스러운 말에 사람들은 이해가 되지 않아 어리둥절해졌다. “네, 말하고 오겠습니다!”그러나 눈치가 생긴 사람들은 염구준의 뜻을 알지 못해도 그대로만 하면 된다는 걸 알고 있어 곧바로 달려갔다.그들은 염구준을 한치도 의심하지 않았다.염구준은 흡족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면을 바라보며 물었다.“스텔라성의 성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으십니까?”이번에 스텔라성의 성주는 두 개의 판을 짰는데, 하나는 겉면으로 보이는 부성주 베르였고, 다른 하나는 오랫동안 숨어있던 노대영이었다. 다른 걸 다 따지고 나서 판을 짠 것만 본다면 정말 훌륭한 계획이었다.그랬기에 염구준은 그를 중시했다.노신기와 아타는 미간을 찌푸리고 서로를 바라본 뒤, 늙은 아타가 입을 열었다. “성주의 이름은 노세입니다. 압도적인 실력의 소유자로, 진 적이 없습니다.”“하지만 지난 20년간, 외부에서는 그의 모습을 본 이가 없습니다. 폐관 중이라는 소문도 있고, 이미 사망했다는 이야기도 돌고 있지요.”“그의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라, 저희도 아는 게 많지 않습니다.”이야기를 들은 염구준은, 오히려 흥분한 듯한 웃음을 지었다.“흐음, 전부 사실이라면 꽤 괜찮은 상대가 되겠군요.”방금, 막 육체의 극한을 돌파한 염구준은 적당한 시험 상대가 필요했다.‘대단해.’주변 고위 간부들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염구준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다만 약간 이해가 되지 않을 뿐이었다.스텔라성 성주 같은 괴물은, 대부분 기겁하며 피하려 하는데, 정면 승부를 기대한다니까 말이다.“그나저나 염 선생님, 전에 올라오실 때, 인원이 적던데, 혹시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노신기는 다른 걸 얘기하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아, 이거 아십니까?”그의 손에는 투명한 비닐에 담긴 작은 물방울이 들려 있었는데, 외부에는 진기가 감돌았다.‘어라?’조금 더
이 독에 중독된 무인은 일시적으로 기운이 흩어지고, 단전이 봉쇄되어, 꼼짝없이 폐인 신세가 될 수밖에 없었다.만약 과다 복용할 경우, 목숨까지 위험해질 수 있었다.“이런 희귀한 독약은 스텔라성 성주가 준 거겠지?”염구준이 흥미롭게 물었다.그는 이번에 처음으로 진짜 산기봉단을 보았고, 게다가 그 양이 상당했기 때문에 꽤나 관심이 갔다.“맞아. 얼른 저 녀석을 잡아!”노대영은 승리자처럼 손을 휘저으며 부하들에게 명령했다.그는 희귀한 독약인 산기봉단에 절대적인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에휴.”아타 등 사람들은 이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염구준마저 당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이제 구세주가 사라졌으니, 최악의 경우 전부 몰살당할 수도 있었다.“가서 두들겨 패! 나 아까 진짜 쫄아서 오줌 쌀 뻔했단 말이야!”몇몇이 소리치며 달려들었고, 염구준을 한껏 때려서 화풀이를 하려 했다.반보천인급 고수를 때릴 기회는 흔하지 않으니까 말이다.우웅. 그러나 그 순간, 검광이 번쩍이더니 달려들던 사람들 전부가 쓰러졌다. 그들의 목에는 옅은 혈흔이 있었는데, 상처는 아주 작았지만 모두 목숨을 잃었다.“이 독이 아무리 강해도, 나를 상대하려면 아직 한참 멀었어.”염구준은 조용히 진기를 운용하며, 체내에 남아 있던 독기를 모두 없애버렸다.육신이 이미 반보천인의 극한의 경지에 다다른 탓에 약물 저항성도 엄청나게 강해져 그는 산기봉단 같은 독약 따위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너... 이건 말도 안 돼!”노대영은 절규하듯 외쳤다.희망이 눈앞에서 산산조각 나자, 정신이 붕괴되기 직전이었다.곧 있으면 승리할 수 있었는데, 이젠 그게 다 물거품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그는 차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스텔라성 성주랑 뭘 꾸민 거지?”염구준은 서두르지 않고 물었다.해독제 같은 건 이제 관심 없었다. 상대가 정직하지 않으니까 말이다.“난 진작 그분의 문하로 들어갔어. 언젠가는 그분이 내 복수를 도와줄 거다!”“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는데, 내가 무슨 잘못이 있어
염구준은 주머니를 집어 들어 곁에 있던 그레이에게 휙 던져주며 분부했다.“먼저 기운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해독제를 나눠줘.”“네.”그레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분노에 찬 눈빛으로 노대영을 흉악하게 노려보았다.반보천인으로서 이런 함정에 걸려들었다는 게 조금 창피해서였다.노대영은 사태가 자신에게 불리하게 흘러가는 걸 감지하고,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할 말이 있습니다.”“해.”염구준은 싸늘한 표정으로, 단 한 마디만 툭 내뱉었다.그레이와 다른 이들이 힘을 회복하고 나면, 그는 절대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기에 곧 죽을 이의 유언쯤은 들어줄 수 있었다.노대영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얼른 말을 이었다.“자식으로서 아버지의 원수에게 복수하는 건 당연한 일이죠?”“그래.”염구준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딱히 다른 변수가 없다면, 이 말을 부정할 이유가 없어서였다.‘어라?’이에 주변 사람들은 놀라 눈을 크게 떴다.말투로만 보면, 염구준이 노대영의 편을 들어주려는 것 같아서였다.그러나 방금 전에는 또 그들을 구해주었기 때문에 그들은 염구준이 무슨 생각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노대영은 염구준의 마음을 돌린 줄 알고 속으로 기뻐하며 바로 말을 이었다.“이 도리를 알고 계시니, 그럼 행동에 옮겨도 되겠죠.”노대영은 혹여나 다른 변수가 있을까 두려워 단검을 꽉 쥐고 중상을 입고 바닥에 쓰러져 있던 노신기에게 달려들었다.그레이 등이 조금 있다가 어떻게 나올지는 크게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복수를 하는 게 우선이었으니까 말이다.쾅!하지만 달려가자마자 염구준의 발에 얼굴을 맞아서 옆으로 나가떨어졌다.그의 코와 입에서는 순식간에 피가 줄줄 흘렀다.“날 가지고 노는 거냐, 염구준!”“허, 내가 나설지 안 나설지 짐작이 안 됐나봐?”염구준은 비웃으며 말했다.그는 노대영의 말을 부정하진 않았지만 상대방의 행위를 몹시 혐오했다.아버지를 죽인 원수에게 대놓고 복수하는 건 괜찮지만, 그 아비가 악행을 일삼던 사람이고, 은혜를 원수로 갚는 방식에,
그러나 몸속에 독이 퍼진 탓에 기운을 끌어올릴 수가 없어 모두 답답하게 속만 태울 수밖에 없었다. 노대영이 혓바닥을 자르려고 할 때, 멀리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대영 문주님, 염구준인 것 같습니다!”이름을 듣자마자, 노대영의 얼굴에서 희열이 싹 사라지고, 이내 짙은 어둠이 드리웠다.기습에 성공한 후 바로 도망쳤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고래를 타고 쫓아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염구준 한 사람만으로 충분히 그들을 몰살할 수 있었다.“어서 고래잡이 작살이랑 그물 그리고 멀리에서 공격할 수 있는 무기들을 준비해.”노대영의 가슴 깊은 곳에서 두려움이 급속히 퍼져갔다.허겁지겁 지시를 내리긴 했지만 겨우 쇳조각 몇 개로 염구준을 막겠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휙휙!염구준은 하늘을 가르며 날아오는 작살, 그물, 조명탄 따위를 보며 입꼬리를 비웃듯이 끌어올렸다.아직 사격거리에도 들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공격을 했기 때문이었다.‘적지 않게 겁을 먹었나 보네.’그는 생각했다. 역시나 첫 번째 공격은 전부 허탕이었다.염구준은 거대한 향유고래를 타고 빠르게 이동했고, 이윽고 두 번째 공격이 시작됐다.커다란 작살 하나가 고래의 머리를 향해 곧장 날아들었는데, 맞으면 죽지 않더라고 심각한 부상을 입을 게 뻔했다.우웅!염구준은 검기 한 줄기를 내보내 날아오던 작살을 두 동강 낸 뒤, 작살에 묶인 쇠사슬 위로 몸을 던져, 빠르게 어선으로 돌진했다.풍덩!향유고래는 거대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물속으로 잠수했다.노대영은 염구준이 미친 듯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걸 보자마자 다급히 소리쳤다.“어서, 어서 배에 못 올라오게 사슬을 끊어!”그도 자신이 염구준과 맞서봤자, 단 한 줌의 승산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구자검법, 검일참공!”염구준은 배 위 인원들의 움직임을 보자마자 망설임 없이 강한 검술을 발동해 검기를 날렸다.제대로 검기를 축적하진 못했기에, 완벽하게 완성된 검일참공은 아니었고, 약간의 반동
파악!곧이어 물기둥이 하늘로 솟구치며 거대한 향유고래가 염구준과 멀지 않는 곳에 떨어진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마치 떠나기 아쉬워하는 듯했다.촤악!염구준은 몸을 날려 향유고래의 머리 위로 뛰어오른 뒤, 세 척의 어선 쪽으로 진기를 날려 물보라 일게 했다.이에 향유고래는 곧장 방향을 틀고, 어선을 향해 빠르게 헤엄치기 시작했다.말이 통하지 않아 이런 방식으로 밖에 교류할 수 없었지만 별로 큰 문제는 없었다.그 시각, 1호 어선은 다른 어선보다 조금 더 시끌벅적했다.노대영은 배의 지휘권을 장악한 뒤, 끝까지 저항한 소수만을 제거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 포로로 붙잡아두었다.물론 그가 자비로워서가 아니었다.그저 이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어떻게 복수하는지 지켜보게 하기 위해서였다.“대영 문주님, 준비 완료됐습니다. 언제든 시작 가능합니다.”노대영에게 붙은 아첨꾼 하나가 다가와 공손하게 말했다. 이번에 출정한 천기문 문도 중 절반 이상이 이미 노대영 편이었다.쿵!노대영은 부도 갑옷을 입은 채로 웃으면서 팔을 휘둘러 노신기를 바닥에 내던졌다.“악독한 놈. 네가 내 아버지를 죽였으니 난 오늘 아버지의 복수를 할 거다.”며칠 전에 대의를 위해서라면 혈연관계는 얼마든지 끊을 수 있다는 그의 말은 그저 노신기를 안심시키기 위함에 불과했다. 그의 가슴 속에 맺힌 복수심은 한순간도 식지 않았었다.“하아...”노신기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그의 창백한 얼굴엔 깊은 후회가 서려 있었다.‘그때 불쌍해 보인다고 해서 검은 머리 짐승을 거두는 게 아니었는데.’그는 생각했다. “모든 일은 내가 벌인 거니까 찢어죽이든, 뭘하든 나한테만 해. 상관없는 다른 사람들 건드리지 말고.”지금 이런 상황에 이른 이상, 그는 더 도리를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전에 이미 노대영에게 그의 출신을 말해주며 그의 아버지가 눈 깜빡하지 않고 살인을 저지르는 변태 악마라고 말해주었으나 그는 전혀 듣지 않았기 때문에 말해봤자 쓸모가 없다는 걸 알아서였다.스승과 제자의
염구준을 향해 날아오는 것은 엄청난 기운을 내뿜고 있는 금강 방망이 한 개 뿐이었다. 기운의 량으로 보아 세 명의 힘이 전부 들어있는 게 분명했다.이건 베르 일행이 전력을 건 최후의 일격이었다.쾅!한 자루의 검과 한 개의 방망이가 충돌하며 눈부신 불꽃을 일으켰다.폭발적인 에너지가 주변에 퍼져나가며 양측은 잠시 균형을 이루었다.세 사람의 실력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막았다! 얼른 보트 준비해, 후퇴한다!”베르의 창백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비틀거리며 일어나 부하들에게 소리쳤다.루카와 슈카 역시 서로 부축하며 일어섰다.이미 힘이 고갈된 지라 그들의 얼굴엔 혈색도 없었고, 기운조차 미약했다.더 이상의 싸움은 무리였다.“하압!”염구준은 팔에 힘을 주어 금강 방망이를 밀어내려 했지만, 방망이가 꼼짝도 하지 않는 걸 발견했다. 이 전법은 오묘했다. 상대방이 시전하고 조종하지 않아도 타겟을 쫓아 움직이는 것처럼 홀로 움직였으니까 말이다.이대로라면, 몸이 먼저 나가떨어질 판이었다.베르는 떠나기 전에 염구준을 보며 독한 말을 남겼다.“염구준, 자만하지 마라. 스텔라성은 아직 남아 있으니까. 돌아가서 강자들을 전부 불러와 널 죽여주지.”“돌아갈 수 없을 겁니다.”얼음처럼 차가운 염구준의 목소리에 모두가 몸을 살짝 떨었다.이미 흑풍의 사태로 배운 바가 있었기 때문에 염구준은 적을 쉽게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흥, 말은 누구나 하지. 하지만 나중에 지키지 못하면, 네 얼굴에 침 뱉는 꼴이 될 걸?”베르는 비웃으며 염구준의 말을 맘 속에 담아두지 않았다. 자신의 필살기에 대한 자신감이 넘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염구준은 검을 쥔 양손을 살짝 옆으로 움직이며, 손을 놓았다.우웅!그러자 구자검은 더 이상 금강 방망이와 대치하지 않고, 잔상을 남기며 쏜살같이 전방을 향해 날아갔다.같은 시각에 금강 방망이 역시 미친 듯한 속도로 염구준의 왼쪽 가슴을 향해 돌진했다.이건 자신의 목숨으로 적의 목숨을 바꾸는 방식이었다.꽈악!염구준
“염 선생님, 저희가 가서 막을까요?”노신기는 갈등하며 조심스레 물었다.비록 상대가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염구준 덕분에 얻은 것이 많았기에 돕고 싶어서였다.“아니요. 그냥 가만히 계시면 됩니다.”염구준은 단호하게 거절하며 대형 방패를 계속 내리쳤다.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노신기 일행의 실력으로는 개입해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염구준은 잘 알고 있었다. 가봤자 죽을 게 분명하다는 것도 말이다.한편, 전장의 중심에 선 세 사람은 자신들이 고립무원의 상황에 처해있으며, 살려면 스스로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죽을 각오로 덤벼!”쾅!베르의 눈엔 살기가 가득했다. 손에 쥔 대형 방패는 마침내 한계에 도달하며 산산이 부서졌다.그의 피로 물든 두 손에는 어느새 짧은 단검이 들려 있었고, 그는 그것으로 염구준의 가슴을 향해 휘둘렀다.하지만 날카로운 칼날이 스쳐 지나간 자리에 남은 건 얕은 두 줄의 상처뿐, 역시 깊이 파고들지는 못했다.일반적인 공격은 염구준에게 통하지 않았다. 과거, 염구준이 육체의 한계를 돌파한 리아성전의 전주를 쓰러뜨린 것도 필살기와 정제된 진기 덕분이었었다. 심지어 한 번에 쓰러뜨린 것도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싸웠었다.육체가 극한으로 강해진 상대를 쉽게 이긴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염구준은 베르를 걷어차 밀어낸 뒤, 곧바로 루카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세 명을 상대할 때 가장 확실한 방식은, 하나씩 쓰러뜨리는 것이었다.“젠장!”염구준이 갑자기 타겟을 바꿀 줄 몰랐던 루카는 급히 막아섰지만 한 칼에 밀려났고 이어진 두 번째 공격에 부상을 입고 말았다.강자들의 승부는 한 수, 한 수가 치명상이라 조금의 방심도 용납되지 않았다. 자칫하다간 목숨을 잃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베르는 상황이 좋지 않음을 직감하고 이를 악물며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삼절진을 쓰자!”두 형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베르 뒤로 이동한 뒤, 손을 그의 등에 얹었다.이 필살기에 승패가
베르 세 사람을 포함해 이 싸움을 지켜보던 반보천인들조차 염구준이 쓰는 게 무슨 전술인줄 몰라 어리둥절해졌다.방어를 완전히 포기하고 정면으로 달려드는 행위는 자살이나 다름없으니까 말이다.“건방지긴!”“내가 막을 테니 너희는 죽을 힘을 다해 공격해!”이에 베르의 일그러진 얼굴에는 약간의 기쁨이 섞였다. 그는 달려오는 염구준을 보며 포효하듯이 명령을 내렸다. 해저에서의 전투 경험에 의하면, 그는 자신이 특별히 제작한 대형 방패로 염구준의 공격을 최소 서른 번은 막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쾅!그러나 시작에 불과한 염구준의 첫 공격에 베르는 몇 걸음이나 밀려났고, 방패엔 반 치 정도 깊이의 칼자국이 선명히 새겨졌다.이 방패는 염구준의 공격을 막기 위해 베르가 특별히 주문 제작한 거라 다른 것보다 더욱 단단하고 두꺼웠다.텅텅!루카와 슈카도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동시에 염구준의 옆구리를 향해 칼을 박아넣었다.손목에 힘을 잔뜩 실은 터라 염구준의 호체진기를 가뿐히 뚫었지만 몸에는 옅은 상처밖에 내지 못했다.아무리 힘을 더 실어도, 더 깊숙이 찌를 수가 없었다.“육체의 극한까지 도달했다고?”싸움을 지켜보던 반보천인들은 일제히 감탄을 내뱉었다.두 명의 최강 반보천인의 공격을 오직 맨몸으로 버텼다는 것부터 염구준의 육체가 이미 극한까지 도달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쾅! 쾅!염구준은 루카 형제의 공격을 거의 무시한 채, 계속해서 베르에게 맹공을 퍼부었다.공격이 계속 되면서 방패에는 칼자국이 점점 더 많아졌고, 베르도 연달아 밀려났다. 이 엄청난 충격력에 그의 손바닥은 결국 찢어져 버렸고, 상처에서는 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공격 안 해? 밥 안 먹었어?”베르는 체내의 기혈이 요동치는 것을 느끼며 방패를 들고 소리쳤다.그제야 그는 그가 자신의 실력을 과대평가 했음을 깨달았다.‘방패가 30번의 공격을 버틴다고 해도 내가 버티지 못해.’염구준의 몸이 반보천인의 극한에 다다른 이후, 방어력 뿐만 아니라 힘도 강해져서 전보다 공격이
모두가 향유고래의 위를 보고 눈이 커졌다.기뻐하는 사람도,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었다.사람과 고래가 마음을 합쳐 수많은 고난을 뚫고 마침내 위험천만한 해저 심연에서 빠져나온 거다.그 과정의 험난함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노신기는 드디어 마음이 놓였다는 듯, 기뻐하며 입을 열었다. “염 선생님, 돌아가시지 않으셨군요?”말을 내뱉은 후, 그도 이상함을 느꼈지만, 이미 말을 마친 후라 뭐라고 바꿀 수도 없었다. “어... 네, 살아있긴 합니다.”염구준은 대수롭지 않게 답하며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냈다.솔직히, 좀 웃긴 질문이었다.조금 떨어진 곳에서, 완전히 멀쩡한 염구준을 본 베르는 숨이 턱 막혔다.“염구준, 너...”깊고 깊은 바다 밑에서 화산 폭발과 함께 대지진이 일어난 상황에, 잠수 장비도 없다는 건 그냥 죽음을 의미했다.하지만 염구준은 그 위기 속에서 향유고래를 몰아 드라마처럼 살아 돌아왔다.베르로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었다.“진정해, 나이도 있는데 괜히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와서 그 자리에서 죽으면 곤란하잖아.”염구준은 베르를 바라보며 말했다. 진짜로 열받아서 죽어버리길 바라는 눈치였다.서로 죽이려 드는 사이끼리 예의는 사치일 뿐이었다.“흥! 바다 밑에선 겨우 살아남았을지 몰라도, 여기선 끝이다.”“루카, 슈카! 저 녀석을 죽여라!”베르는 참지 못하고 이를 악물고 염구준을 가리켰다.휙휙.하지만 그 두 형제는 어깨를 으쓱이더니 빠르게 몸을 뒤로 빼며 보트를 밟고 전함 위로 훌쩍 올라가 버렸다.“부성주님, 저 녀석은 강하니 부성주님께서 직접 나서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입에 발린 소리로 한껏 띄워주니 베르도 그들에게 화를 낼 수 없었다.셋이 하나를 상대하는 상황임에도 정작 그의 마음속엔 불안감만이 가득했다.염구준의 강함이, 그에게 공포로 다가왔기 때문이다.염구준은 검을 들고 베르를 향해 겨누었다.“이제 끝을 보자.”이제 거의 모든 상황이 정리되었으니, 갚을 원한은 갚고, 끝낼 일은 끝낼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