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가족들이 계속 설득한 것을 생각하면 정말 마음이 착잡했다.모두 마음이 착해서 그녀가 수렁이에 빠져도 계속 곁을 지키고 설득했다.“안 돼요. 어디도 못 가요. 무조건 우리랑 같이 가야 해요.”노인은 발끈하며 진숙영의 손목을 잡고 놓지 않았다.진숙영의 지원이 없으면 청해시를 나가서 고생만 하게 될 것이다.“그 손 놓으세요!”그때 염구준이 싸늘하게 말하며 그녀의 옆에 나타났다.노인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싸대기를 날렸다.“구준아, 말로 하고 손을 대지 마.”진숙영이 설득했다.다들 알고 지낸 지 오래되어서 서로 얼굴을 붉히기 싫었다.하지만 지금 참는다면 상대방에게 호구로 보일 것이다.“안 놓으면 어쩔 건데?”노인이 급기야 생떼를 부리기 시작했다다른 사람 혹은 다른 지역에서 염구준 앞에서 이런 태도로 말했다면 바로 죽임을 당했다.하지만 노인도 삼선 클럽에 속은 불쌍한 사람이었다.“난 노인을 때리지 않아요!”염구준은 목소리를 올리며 기운을 발사했다.무서운 살의를 느낀 노인은 깜짝 놀라 얼어붙고 말았다.옆에서 기운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도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장모님, 이제 가시죠.”염구준은 두 손가락으로 노인의 손을 튕겨 버리고 진숙영에게 웃는 얼굴로 말했다.“구준아, 나…”그 모습에 진숙영은 목이 메어서 말을 잊지 못했다.그동안 본인이 한 행동을 생각하면 부끄럽지 그지없었다.“장모닌, 일단 집에 돌아가요. 할 말이 있으면 차에서 얘기해요.”염구준은 저쪽에 주차한 차를 가리켰다.”“그러자.”진숙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그녀의 사위는 너무나 훌륭하고 가족이든 회사든 더 말할 것도 없이 따뜻하게 대했다.두 사람이 차가 있는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 뒤에서 욕하는 소리가 들렸다.“배신자, 중도에서 포기하면 삼선님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실력이 부족하면 목소리가 커진다.탁!염구준은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산턱에 있는 삼선신을 쳐다보았다.“하마터면 잊을 뻔했네.”삼선 클럽 회원들은 모두 건물
“빨리 삼선상 조각을 모아서 붙여요.”이미 산산조각이 나거나 가루가 된 석상을 어떻게 모아서 붙인다는 말인지, 그저 심리적 위안을 찾기 위함일 뿐이다.염구준은 이미 최선을 다했으니 나머지는 본인의 의지에 달렸다.그가 인내심을 갖고 진숙영을 천천히 인도한 덕에 마음을 돌려서 다행이었다.만약 삼선 클럽에 찾아가 파괴하고 도명욱을 살해해도 진숙영은 빠져나올 수 없을 것이다.차에 탄 후, 염구준은 더는 소봉산에 관여하지 않고 떠났다.그때 멀리 떨어진 곳에 한 그림자가 빠른 속도로 뒤를 따르고 있었다.이상한 것을 감지한 염구준이 뒤를 힐끗 쳐다보더니 신경 쓰지 않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집에 도착했다.집에서 손가을과 손태석이 안절부절하며 기다리고 있었다.염구준이 진숙영을 꼭 데려올 테니 안심하라고 하지 않았다면 당장 나가서 찾아다녔을 것이다.끼익!부녀가 초조해할 때, 문이 열리면서 염구준과 진숙영이 들어갔다.“엄마, 다시는 거기 가지 마.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손가을은 어머니를 부둥켜안고 통곡했다.“여보, 오늘 아침에 갑자기 사라지고 휴대폰도 두고 나가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손태석은 말하면서 눈물을 글썽거렸다.오늘 아침 같은 상황에 무슨 일이 발생하지 않았나 싶어 정말 두려웠었다.“미안해. 그동안 내가 꼬임에 넘어가서 돈을 함부로 쓰고 걱정을 끼쳤어.”진숙영은 딸을 꼭 끌어안고 연신 미안하다고 사과했다.이틀 전에 삼선 클럽의 간부와 딸을 협박했던 일을 생각하면 너무 괴로웠다.손가을은 어머니가 각성한 것을 느끼고 환하게 웃었다.오늘 같은 날이 오기를 오랫동안 기다렸다.손태석도 깜짝 놀라 기쁜 마음을 어떤 말로 표현할지 몰랐다.“됐어. 장모님은 다시 클럽에 가지 않을 거야. 그리고 청해 지부도 이미 철저히 망했어.”염구준도 가족이 화목한 모습을 보자 그동안 초조했던 마음이 사라졌다.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부녀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신선대전의 영상이 세상에 퍼졌지만 이미 마음이 떠난 진숙영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방금 도명욱과 한참이나 싸우면서 새로운 초식을 시도했더니 에너지 소모가 장난이 아니었다.“하하하.”가족들이 폭소를 터트리며 그를 쳐다봤다.조금 남은 어색함도 모두 사라졌다.집안일을 해결했으니 염구준도 한동안 안심할 수 있을 것이다.“번거롭게 음식 만들지 마세요. 오랜만에 가족이 모였는데 이따가 희주 오면 외식하러 가요.”염구준이 제안했다.지금은 떠들썩한 장소에서 얘기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래, 네 말대로 하자.”세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그 순간, 염구준은 집안에서 자신의 지위가 높다는 것을 깨달았다.“알았어요. 그럼 먼저 차에서 기다리세요. 저는 잠깐 할 일이 있어서, 끝나면 나갈게요.”염구준은 말하지 않았지만 가족들은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고 있었다.삼선의 석상이 계속 집에 있고 향불이 켜져 있었다.쾅!진숙영은 단걸음에 다가가 두 손으로 신단 위의 물건을 와르륵 쓸어버렸다.석상, 공물, 향초가 전부 바닥에 떨어졌다.이런 행동으로 완전히 삼선 클럽에서 벗어났다는 결심을 보여주었다.앞으로 다시는 삼선과 엮이지 않을 것이다.“장모님, 먼저 나가세요. 제가 청소할게요.”염구준은 진숙영이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손가을에게 눈짓을 했다.이젠 삼선 클럽을 믿지 않지만 전에 어리석은 짓을 한 것을 생각할 때마다 자책할 것이다.이런 상처는 짧은 시간에 치유할 수 없으니 천천히 일깨워야 했다.염구준은 빠르게 청소를 마치고 가족들과 함께 고급 레스토랑에 갔다.오늘 그들에게 아주 중요한 날이다.“고객님, 지금 식사 시간이라 번호표를 뽑고 대기해야 합니다.”레스토랑 카운터에서 직원이 예의 바르게 말하며 번호표를 건넸다.“얼마나 기다려야 하죠?”염구준도 예의를 갖춰 물었다.오는 말이 고우면 가는 말도 고운 법.“15분 정도요. 정말 죄송해요.”직원은 고개까지 숙이며 대답했다.“감사합니다.”염구준은 가족들을 데리고 한쪽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갑작스러운 외식에 미리 예약을 하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이 기다려야 했
미행자가 그를 본 순간 외진 골목으로 도망쳤다.염구준은 어처구니가 없었다.여기까지 따라온 것을 보면 분명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는데 보자마자 도망쳐버렸다.‘대체 목적이 뭐야?’염구준은 뒤따라 가다가 마주치게 되면 물어볼 생각이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뒤쫓다가 막다른 골목에 들어섰다.그제야 미행자의 정체가 드러났다. 바로 호찬이었다.“죽으러 왔어?”염구준이 나지막하게 물었다.“염구준 씨, 저를 부하로 받아주세요.”호찬은 두 무릎을 꿇으며 간청했다.믿을만한 사람에게 의지하러 온 것이다.적이었던 사람이 갑자기 이러니 염구준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간첩이야?”염구준은 상대방의 일거수일투족을 매섭게 쳐다보며 허점을 찾았다.“아닙니다. 주인이 죽었으니 갈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의지할 곳을 찾으러 온 겁니다.”호찬은 진지하게 말했다.“하지만 삼선 클럽은 아직 존재하잖아. 굳이 날 찾아올 필요가 있을까?”염구준이 이어서 말했다.그는 한 지부만 제거했을 뿐, 용하에 수많은 지부가 존재하니 얼마든지 찾아가도 된다고 생각했다.아무리 부하라도 반천인 고수를 쉽게 버리지 않을 것이다.“조직에서 저를 도명욱의 부하로 안배했습니다. 다시는 그런 곳에 가고 싶지 않아요.”호찬의 말투에 증오가 섞여 있었다.그 말을 들은 염구준은 상대방이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았다.“삼선 클럽에 대해 아는 걸 전부 말해.”굴러서 들어온 소식이 진짜든 가짜든 일단 듣고 판단하기로 했다.호찬은 슬픈 눈을 하더니 돌이킬 수 없는 옛일을 회상하며 천천히 말했다.“삼선 클럽의 배후는 막강한 조직인 삼선도입니다. 도운홍 부자는 거기 출신이고 저는 고아였어요. 어려서부터 삼선도에 수용되어 용하에서 노예로 가혹한 환경에서 자랐어요.”“저와 함께 훈련을 받은 사람은 총 12명, 부하로서 실력은 강하지만 개와 다름없는 삶을 살았어요. 제가 아는 건 이게 다예요.”삼선도, 이것은 아주 중요한 단서다.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조직이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알 수 없지
레스토랑 안에서 가족들의 얼굴에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건배하고 잔을 기울이며 정말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저녁을 먹었다.그에 비해 소봉산에서 도망친 삼선 클럽의 회원들은 주인을 잃은 신세가 되어 초라하기 그지없었다.“도련님, 앞에 길이 없습니다.”차가 멈추더니 운전 기사가 조수석에 앉은 도운홍에게 이렇게 말했다.도명욱이 전사한 장면을 본 순간, 그는 회원들을 이끌고 지하 도로로 도망쳤다.그가 불효한 것이 아니라 목숨을 너무 아꼈던 것이다.헤드라이트를 통해 주변 환경을 살펴보았지만 여기가 어딘지 알 수 없었다.아스팔트 도로가 사라진 것이 진짜 길을 잃은 것 같았다.도운홍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다른 사람이 알게 되면 분명 웃음거리가 되고 폐물 도련님이라는 별명에서 평생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도련님, 길 잃은 거 맞죠?”운전 기사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물었다.촤아악!도운홍은 버력 화를 내며 운전 기사의 얼굴을 후려쳤다.“미쳤어? 내가 안내한 길인데 잘못 갈 리가 없어. 내려서 길을 찾아.”일부러 약점을 들추어서 난처하게 하니 참을 수가 없었다.얻어 맞은 기사는 감히 반격하지 못하고 무전기에 대고 화풀이했다.“뭐 하냐? 당장 내려서 길을 찾아!”어두컴컴한 곳에서 길을 찾으라니 다른 사람은 어처구니없었다.하지만 상사가 시킨 일을 거절할 수 없어 지시를 따라야 했다.부하들이 우르르 차에서 내리고는 황폐한 외곽에서 길을 찾기 시작했다.“아아아악!”그때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리자 부하들이 잔뜩 경계했다.소봉산에서 도망친 후, 이미 잔뜩 긴장되어서 신경이 극도로 예민했다.“쫓아왔어?”겁을 먹은 도운홍은 그만 바지에 지리고 말았다.너무 놀라서 오줌을 싼 것이다.평소 집안에서만 행패를 부리고 강적 앞에서 감히 나대지 못했다.“삼선의 구역에서 관련 없는 자들은 속히 떠나라!”우렁찬 목소리에 도운홍은 그제야 안도했다.우왕좌왕하면서 도착한 곳이 그가 찾으려는 곳이 맞았다.“아저씨, 나 도운홍이에요.”흥분한 도운홍은 바로
두 사람은 호찬이 전사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모르겠어요. 철수할 때도 보지 못했어요.”도운홍이 고개를 가로저었다.“병…”황지혁은 화를 내려다가 다시 삼켜버렸다.아무리 병신 같은 놈이라도 고인의 자식이니 자극하는 말을 할 수 없었다.도운홍은 싸늘한 두 사람의 표정을 보고 고개를 푹 숙였다.“됐다. 네가 데려온 사람들 집합시켜. 한마디 해야겠어.”황지혁은 다시 싸늘하게 말했다.“집합해. 당장 집합해.”도운홍은 감히 소홀히 대하지 못하니 바로 부하들을 독촉했다.그러자 부하들이 우르르 쓸어와 두 줄로 나란히 섰다.50명은 족히 넘었다.“충분합니까?”“충분해!”황지혁은 머릿수를 세더니 입꼬리를 올리며 사악하게 웃었다.“도운홍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한 명도 남기지 말고 깨끗하게 처리하라!”죽이라는 명령에 부하들은 순식간에 뿔뿔이 도망쳤다.강력한 배후에 빌붙어 의지하려고 했는데 이번은 잘못 선택한 것이다.스스슥!황지혁 뒤에서 수많은 그림자가 나타나더니 모두 강한 기운을 발산했다.전신지상의 고수들이었다.고수들은 일격에 치명상을 노려 스치는 곳마다 시체들이 쓰러졌다.50명이 넘는 부하들이 순식 간에 도륙을 당했다.“아저씨, 왜…”어렵게 데려온 부하들이 전부 살해되자 도운홍은 이해할 수 없었다.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혼자 도망쳤을 것이다.“여긴 비밀 기지라 삼선도의 사람 외에 누구도 들어올 수 없다. 이제 네 아빠가 없으니 내가 대신 너를 가르치겠다. 앞으로 모든 일에 조심해야 한다.”황지혁은 전혀 봐주지 않았다.살해한 부하들은 삼선 클럽 소속이지만 삼선도 출신이 아니기에 외부인이라고 한 것이다.“아… 알겠습니다.”도운홍은 잘하는 것이 없지만 잔꾀가 많아 지금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그는 다른 사람의 뒤를 따라 들어가 쉬었다.“형, 이제 어떡할 거야?”우대영이 작은 소리로 물었다.“신의 물 판매량을 풀어서 빠른 시일 내에 돈을 더 모아야 해.”황지혁은 이미 대책을 마련하고 있었다.삼선 클럽에서 대규모로
예전에 몰래 진행하더니 지금은 대놓고 횡포를 부리고 있다.이대로 가만두면 용하의 국민들만 손해볼 것이다.“장모님, 불 좀 봐주세요. 전화 한 통하고 올게요.”염구준은 주걱을 내려놓고 행주에 손을 닦았다.일이 점점 커져서 용하의 근간을 흔들고 있으니 신경이 쓰였다.“가서 일 봐. 이젠 아침은 내가 할게.”진숙영이 주걱을 받아 들었다.그녀가 사위의 뒷모습을 힐끗 봤을 때 그날 신선과 싸우던 화인을 떠올렸다.‘보면 볼수록 닮았단 말이지.’염구준은 조용한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이제마에게 연락했다.“아… 아침부터 자지 않고 무슨 일로 전화했어요?”그는 하품을 하며 잠에서 덜 깬 목소리로 말했다.하지만 염구준은 농담할 기분이 아니었다.“며칠 전에 신의 물 샘플을 보냈는데 성분이 뭔지 알아보셨어요?”중요한 일이라 이제마는 지체하지 않고 바로 엄숙하게 대답했다.“알아냈어요. 이거 참 맹독이 따로 없더라고요. 이걸 먹은 후 잃어버린 생명은 되찾을 수 없어요. 하지만 두통, 심란함, 발열 등 후유증은 완화할 수 있어요.”짧은 시간에 아무리 유명한 신의라도 다 알아낼 수 없었다.그래도 염구준은 다행이라 생각하며 다시 물었다.“언제부터 해독약을 생산할 수 있어요?”삼선 클럽이 대규모로 신의 물을 풀어놓는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복용할 것이니 그에 미리 대비해야 했다.모든 것이 늦지 않길 바랄 뿐이다.“몇 가지 테스트만 끝내면 바로 생산에 투입할 수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생산 라인이 없어요.”이제마의 목소리를 들으니 이미 잠을 깨고 일어난 것 같았다.염구준이 급히 요구하니 잠을 적게 자더라도 하루 빨리 처방을 만들어야 했다.“연구 끝나면 바로 처방을 주세요. 부탁드립니다.”염구준이 엄숙하게 말했다.삼선 클럽의 손에 얼마나 많은 피해자가 발생할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전부 찾아내는 것은 비현실적이다.이미 많이 분포되었고 은밀하게 숨어 있어서 찾기가 어려웠다.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대방은 이미 죽을 각오로 어떤 결과를 초래하든 상관
“아니거든요. 저 말도 잘 듣고 성적도 전교 2등이라서 선생님이 항상 칭찬해 주거든요.”염희주는 부모에게 창피를 주지 않았다는 투로 자랑스럽게 말했다.“하하하. 그 부분은 아빠를 닮았어.”염구준이 호탕하게 웃었다.하지만 염희주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불평했다.“엄마를 닮아서 그렇죠.”부녀는 얘기를 나누면서 학교에 도착했다.어떤 학부모들은 벌써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염구준은 주차하고 딸과 함께 그쪽으로 갔다. 그는 아주 자연스럽게 행동했지만 학교 측에서는 어색하게 대했다.“이사님 오셨어요? 빨리 교장님한테 전달하세요.”사립학교는 염구준의 개인 재산으로 딸에게 좋은 학습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서 산 것이다.학부모들도 그에게 깍듯하게 대했다.“이사님 안녕하세요.”“이사님, 희주 학부모 회의를 주최하러 오셨어요?”염구준도 똑같이 예의를 갖췄다.“안녕하세요. 편하게 말씀하세요.”그는 오늘 학부모 입장으로 참석했다.이 초등학교는 조금 특별했다.교사들의 자질은 청해에서 손꼽힐 정도지만 대부분 가난한 집 자식들과 직원들 자식들이 학교에 다녔다.왜냐면 능력 있는 집 자식들은 발전할 수 있는 공간이 많아 그의 도움이 필요 없지만 평범한 가정의 자식들은 그러지 못했다.염구준이 콧대를 쳐들지 않고 편하게 대한 덕분에 빠르게 학부모들과 어울릴 수 있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염구준이 직접 발탁한 교장이 도착했다.“염 선생님, 오셨습니까?”“교장님은 볼일 보세요. 오늘 학부모 회의를 하러 왔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그는 인사를 건네면서 시찰하러 온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학교에서 유일한 이사로서 모든 것을 감독할 권리가 있지만 지금 교장은 믿음직해서 모든 것을 맡겼다.“네, 그럼 얘기들 나누세요.”오늘 교장은 처리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아 정신이 없었다.원래 아무렇지 않은 장면인데 다른 사람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다들 적대시하는 눈빛을 보내는데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는지 누구도 알지 못했다.“어머님, 아버님들. 순서대로 들
그의 재력이라면 대형 수영장을 만들어 향유고래를 키울 수도 있지만 바다가 고래의 고향이라 그러지 않았다.“선장, 고래가 엄청난데 잡지 않아요?”갑판에서 몸이 건장한 흑인 선원이 불만을 토로했다.눈앞에서 헤엄치며 돌아다니는 것이 전부 돈이니 그럴만했다.“독수리, 주둥이 닥쳐!”선장은 아직도 누군가 향유고래에 미련을 두자 버럭 화를 냈다.염구준이 어디 출신인지 모르겠지만 그가 발산하는 기운은 보는 사람이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독수리가 염구준을 힐끗 보고는 어쩔 수 없이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나머지 선원들도 감히 반박하지 못하고 선장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저기, 아직 볼일이 남았어요?”선장은 염구준이 조용히 앉아 있자 조심스럽게 물었다.“여기서 가까운 부두로 데려다줘요.”염구준은 끝없는 바다를 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이곳은 바닷가와 멀리 떨어져 있어 일단 상륙한 후에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울 생각이었다.“그게…”선장은 난처한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어려우면 말씀하세요. 그렇다고 폭행을 휘두르면서 강요하지 않으니까.”염구준은 선장의 태도가 이상한 걸 눈치채고 분명하게 말했다.선박은 어부들 것이니 강제로 빼앗지 않을 것이다.그의 말에 선장은 솔직하게 말했다.“우리는 고래를 잡아서 생계를 유지해요. 이제 나와서 한 마리도 잡지 못했는데, 이대로 돌아가면 손해가 엄청납니다.”그들은 염구준이 무섭지만 돈을 벌지 못해 가족들이 굶는 것이 더 무서웠다.“그런 거라면 어렵지 않아요. 얼마를 원하세요? 육지에 도착하면 내가 줄게요.”염구준에게 있어 돈으로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었다.“100만 달러.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선장은 믿지 않는지 거액의 가격을 부르면서 떠보았다.듣기에 높은 가격이지만 따져보면 수리비용, 연료, 인건비 등등 모두 제외하면 얼마 남지 않으니 합리적인 가격이었다.“이걸로 담보할게요. 어차피 당신네 선박에 있으니까 도망치지 않아요.”염구준은 상대방이 걱정하는 걸 알아차리고 딸에게 선물하려고 주은 주먹
이튿날, 미지의 바다에서 향유고래 한 마리가 헤엄치고, 등에 한 사람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그 사람은 바로 염구준이었다.사방에 온통 푸른 바다라 지금 어느 곳에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지금은 고래가 바닷가로 데려가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다.“고래야, 잘 부탁한다.”“우웅!”둘은 서로의 말을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수시로 교류했다.염구준이 눈을 감고 운기조식하다가 배고프면 심해의 눈물로 에너지를 보충했다.신기한 것은 한 방울만 먹어도 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뿌우우우웅!그때 멀리서 선박 소리가 들렸다. 염구준은 눈을 번쩍 뜨고 소리를 질렀다.“저기요! 여기 사람 있어요!”목소리에 기운을 담았더니 쩌렁쩌렁한 소리를 지를 때마다 수면이 음파에 진동하는 것 같았다.어디선가 나타난 선박에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슥!그런데 선박에 다가간 순간, 상대방이 고래를 잡는 쇠고랑을 발사하는 것이었다.염구준은 재빨리 검기로 밧줄을 잘라버렸다.선박은 그를 구하러 온 것이 아니라 향유고래를 잡으러 온 것이었다.생각하지 않아도 고래의 용연향을 얻기 위함일 것이다.스스슥!선박에 있는 사람들은 고장난 줄 알고 이번에 작살을 던졌지만 역시 염구준에게 잘려서 바다 밑으로 들어갔다.상대방과 가까워지자, 염구준은 그들의 선박에 번쩍 뛰어올라 엄숙하게 경고했다.“멈춰. 아니면 무력으로 대응할 거야.”선원들은 대부분 기운이 없는 평범한 어부였다.그들은 염구준이 먼 곳에서부터 뛰어올라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는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여기서는 고래를 잡는 걸 허락해요.”한참 뒤, 선장은 국제 감독기관에서 온 줄 알고 시큰둥하게 대답했다.“이 고래는 내 친구예요. 어떻게 할지 잘 알겠죠?”염구준은 선장을 노려보며 차갑게 되물었다.“알았어요. 이 사람 말을 못 들었어? 당장 작살을 내려놔!”선장은 상대방이 보통이 아니란 걸 눈치챘는지 바로 선원들에게 지시했다.그러자 당황한 선원들은 정신을 차리고 지시대로 작살을 내려놓았다.염구
감히 그의 전우나 다름없는 고래를 잡아먹으려고 하다니,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만약 향유고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지금쯤 심해 밑에서 죽었을 것이다.“염 선생님, 안 돼요!”당황한 노신기 일행이 다급히 나서서 말렸지만 염구준은 듣지 않았다.그는 요트를 타고 서해충에게 다가가 검을 휘둘러 공격했다.“당장 토해!”염구준은 두 손으로 검을 들고 번쩍 뛰더니 위에서 서해충을 자르려고 했다.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고래를 살려낼 것이다.“하악!”뿔난 서해충이 나지막하게 울부짖더니 커다란 입을 벌이고 염구준을 통째로 삼키고는 물속으로 들어갔다.그 장면을 본 사람들은 모두 경악하고 말았다.심지어 천기문의 고위층들도 진정할 수 없었다.“염 선생님!”“안 되겠어. 모든 음성탐지기를 던져!”노신기는 당황한 마음에 맞서 싸우려고 명을 내렸다.유동심연의 사방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이번에 오면서 대량의 음성탐지기를 챙겼었다.그러나 워낙 위력이 강한 무기라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염 선생님, 제발 잘 버텨줘요.’촤아악!이제 막 음성탐지기를 내려놓고 가동하려고 할 때 눈앞에서 거센 물보라가 솟구치는 것이었다.해저 지진으로 거센 파도가 밀려오면서 일으킨 쓰나미였다.“다들 선실로 들어가!”위급한 상황에서 노신기는 어쩔 수 없이 먼저 가문을 지켜야 했다.선박 세 척은 쓰나미에 밀려 먼 곳까지 흘러갔다.한편, 바다 밑은 난리도 아니었다.서해충 체내에 들어간 염구준은 선사 시대의 바다 생물과 전력을 다해 싸우고 있었다.그가 공격할 때마다 서해충은 심한 고통을 느꼈는지 커다란 몸집을 꿈틀거렸다.실은 서해충이 삼킨 것이 아니라 그것이 도망칠까 봐 염구준이 스스로 잡혀 먹힌 것이었다.한참 공격하면서 돌진했더니 드디어 향유고래가 있는 곳까지 다가갔다.“구자검법! 검일참공!”그는 기운을 폭증시켜 강력한 살술로 서해충의 몸에 길이가 10미터되는 상처를 냈다.잘린 부위에서 바닷물이 역류하여 들어올 때, 염구
동물의 감각은 때론 인간보다 훨씬 뛰어났다.특히 바다에서 자란 생물이라면, 웬만한 레이더보다도 훨씬 빨리 감지할 수 있었다.쿠쿵!혹시라도 싸울 수 있기 때문에 다들 몸에서 기운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아래쪽에서 뭔가 빠르게 올라오고 있어.”염구준은 날카로운 눈으로 바다밑을 바라보며 말했다. 작은 검은 점 하나가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었다.아직 수면까지 오지도 않았는데, 그 그림자는 이미 성체 향유고래와 맞먹는 크기였다.‘설마, 진짜 서해충이 있는 건가?’“목표가 공격 범위에 진입했습니다. 모든 작살 준비 완료했습니다.”대원들은 지시가 떨어지고 나서 3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내에 모든 준비를 마쳤다.“쏴!”노신기는 참을성 없이 바로 명령을 내렸다.‘망했다!’염구준은 말리려고 했지만 결국 말리지 못했다.물속의 거대한 생물체는 어선보다도 커서 자칫하다간 오히려 배가 끌려갈 수도 있었다.슥! 슥! 슥!고래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세 척의 어선에서 수십 발의 대형 작살이 물밑의 검은 그림자를 향해 발사되었다.타겟의 몸집이 컸기 때문에 대부분의 작살이 정확하게 꽂힐 수 있었다.“끌어 올려!”노신기는 고래 잡이를 할 때 쓰던 방식을 운용하며 숙련하게 명령을 내렸으나 기계를 최대치로 올려도 타겟을 끌어오리지 못했다.이에 조타실에서 다급하게 소식을 전했다.“큰일입니다. 어선이 저것에 의해 유동심연 쪽 소용돌이로 끌려가고 있어요!”배는 엄청난 속도로 끌려갔다. 배 자체가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속도였다.“밧줄을 끊어!”염구준은 노신기의 무전기를 낚아채고 지휘권을 넘겨받았다.“속도가 너무 빠른 탓에 꽉 감겨서 끊을 수가 없습니다.”조타실에서 절박한 답변이 돌아왔다.현대식 어선은 전부 인공지능 시스템이라 이 상황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우웅!염구준은 결국 검기를 날렸고, 날카로운 검광이 연달아 번쩍이며, 단숨에 밧줄들을 잘라냈다.이에 배가 거대한 관성에 휘청이며 흔들렸고, 균
오늘 만약 염구준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그들은 전부 물고기들의 먹이가 되었을 것이다.“빨리 항행하라고 하세요. 뭔가 이상합니다.”염구준의 갑작스러운 말에 사람들은 이해가 되지 않아 어리둥절해졌다. “네, 말하고 오겠습니다!”그러나 눈치가 생긴 사람들은 염구준의 뜻을 알지 못해도 그대로만 하면 된다는 걸 알고 있어 곧바로 달려갔다.그들은 염구준을 한치도 의심하지 않았다.염구준은 흡족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면을 바라보며 물었다.“스텔라성의 성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으십니까?”이번에 스텔라성의 성주는 두 개의 판을 짰는데, 하나는 겉면으로 보이는 부성주 베르였고, 다른 하나는 오랫동안 숨어있던 노대영이었다. 다른 걸 다 따지고 나서 판을 짠 것만 본다면 정말 훌륭한 계획이었다.그랬기에 염구준은 그를 중시했다.노신기와 아타는 미간을 찌푸리고 서로를 바라본 뒤, 늙은 아타가 입을 열었다. “성주의 이름은 노세입니다. 압도적인 실력의 소유자로, 진 적이 없습니다.”“하지만 지난 20년간, 외부에서는 그의 모습을 본 이가 없습니다. 폐관 중이라는 소문도 있고, 이미 사망했다는 이야기도 돌고 있지요.”“그의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라, 저희도 아는 게 많지 않습니다.”이야기를 들은 염구준은, 오히려 흥분한 듯한 웃음을 지었다.“흐음, 전부 사실이라면 꽤 괜찮은 상대가 되겠군요.”방금, 막 육체의 극한을 돌파한 염구준은 적당한 시험 상대가 필요했다.‘대단해.’주변 고위 간부들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염구준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다만 약간 이해가 되지 않을 뿐이었다.스텔라성 성주 같은 괴물은, 대부분 기겁하며 피하려 하는데, 정면 승부를 기대한다니까 말이다.“그나저나 염 선생님, 전에 올라오실 때, 인원이 적던데, 혹시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노신기는 다른 걸 얘기하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아, 이거 아십니까?”그의 손에는 투명한 비닐에 담긴 작은 물방울이 들려 있었는데, 외부에는 진기가 감돌았다.‘어라?’조금 더
이 독에 중독된 무인은 일시적으로 기운이 흩어지고, 단전이 봉쇄되어, 꼼짝없이 폐인 신세가 될 수밖에 없었다.만약 과다 복용할 경우, 목숨까지 위험해질 수 있었다.“이런 희귀한 독약은 스텔라성 성주가 준 거겠지?”염구준이 흥미롭게 물었다.그는 이번에 처음으로 진짜 산기봉단을 보았고, 게다가 그 양이 상당했기 때문에 꽤나 관심이 갔다.“맞아. 얼른 저 녀석을 잡아!”노대영은 승리자처럼 손을 휘저으며 부하들에게 명령했다.그는 희귀한 독약인 산기봉단에 절대적인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에휴.”아타 등 사람들은 이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염구준마저 당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이제 구세주가 사라졌으니, 최악의 경우 전부 몰살당할 수도 있었다.“가서 두들겨 패! 나 아까 진짜 쫄아서 오줌 쌀 뻔했단 말이야!”몇몇이 소리치며 달려들었고, 염구준을 한껏 때려서 화풀이를 하려 했다.반보천인급 고수를 때릴 기회는 흔하지 않으니까 말이다.우웅. 그러나 그 순간, 검광이 번쩍이더니 달려들던 사람들 전부가 쓰러졌다. 그들의 목에는 옅은 혈흔이 있었는데, 상처는 아주 작았지만 모두 목숨을 잃었다.“이 독이 아무리 강해도, 나를 상대하려면 아직 한참 멀었어.”염구준은 조용히 진기를 운용하며, 체내에 남아 있던 독기를 모두 없애버렸다.육신이 이미 반보천인의 극한의 경지에 다다른 탓에 약물 저항성도 엄청나게 강해져 그는 산기봉단 같은 독약 따위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너... 이건 말도 안 돼!”노대영은 절규하듯 외쳤다.희망이 눈앞에서 산산조각 나자, 정신이 붕괴되기 직전이었다.곧 있으면 승리할 수 있었는데, 이젠 그게 다 물거품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그는 차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스텔라성 성주랑 뭘 꾸민 거지?”염구준은 서두르지 않고 물었다.해독제 같은 건 이제 관심 없었다. 상대가 정직하지 않으니까 말이다.“난 진작 그분의 문하로 들어갔어. 언젠가는 그분이 내 복수를 도와줄 거다!”“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는데, 내가 무슨 잘못이 있어
염구준은 주머니를 집어 들어 곁에 있던 그레이에게 휙 던져주며 분부했다.“먼저 기운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해독제를 나눠줘.”“네.”그레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분노에 찬 눈빛으로 노대영을 흉악하게 노려보았다.반보천인으로서 이런 함정에 걸려들었다는 게 조금 창피해서였다.노대영은 사태가 자신에게 불리하게 흘러가는 걸 감지하고,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할 말이 있습니다.”“해.”염구준은 싸늘한 표정으로, 단 한 마디만 툭 내뱉었다.그레이와 다른 이들이 힘을 회복하고 나면, 그는 절대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기에 곧 죽을 이의 유언쯤은 들어줄 수 있었다.노대영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얼른 말을 이었다.“자식으로서 아버지의 원수에게 복수하는 건 당연한 일이죠?”“그래.”염구준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딱히 다른 변수가 없다면, 이 말을 부정할 이유가 없어서였다.‘어라?’이에 주변 사람들은 놀라 눈을 크게 떴다.말투로만 보면, 염구준이 노대영의 편을 들어주려는 것 같아서였다.그러나 방금 전에는 또 그들을 구해주었기 때문에 그들은 염구준이 무슨 생각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노대영은 염구준의 마음을 돌린 줄 알고 속으로 기뻐하며 바로 말을 이었다.“이 도리를 알고 계시니, 그럼 행동에 옮겨도 되겠죠.”노대영은 혹여나 다른 변수가 있을까 두려워 단검을 꽉 쥐고 중상을 입고 바닥에 쓰러져 있던 노신기에게 달려들었다.그레이 등이 조금 있다가 어떻게 나올지는 크게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복수를 하는 게 우선이었으니까 말이다.쾅!하지만 달려가자마자 염구준의 발에 얼굴을 맞아서 옆으로 나가떨어졌다.그의 코와 입에서는 순식간에 피가 줄줄 흘렀다.“날 가지고 노는 거냐, 염구준!”“허, 내가 나설지 안 나설지 짐작이 안 됐나봐?”염구준은 비웃으며 말했다.그는 노대영의 말을 부정하진 않았지만 상대방의 행위를 몹시 혐오했다.아버지를 죽인 원수에게 대놓고 복수하는 건 괜찮지만, 그 아비가 악행을 일삼던 사람이고, 은혜를 원수로 갚는 방식에,
그러나 몸속에 독이 퍼진 탓에 기운을 끌어올릴 수가 없어 모두 답답하게 속만 태울 수밖에 없었다. 노대영이 혓바닥을 자르려고 할 때, 멀리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대영 문주님, 염구준인 것 같습니다!”이름을 듣자마자, 노대영의 얼굴에서 희열이 싹 사라지고, 이내 짙은 어둠이 드리웠다.기습에 성공한 후 바로 도망쳤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고래를 타고 쫓아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염구준 한 사람만으로 충분히 그들을 몰살할 수 있었다.“어서 고래잡이 작살이랑 그물 그리고 멀리에서 공격할 수 있는 무기들을 준비해.”노대영의 가슴 깊은 곳에서 두려움이 급속히 퍼져갔다.허겁지겁 지시를 내리긴 했지만 겨우 쇳조각 몇 개로 염구준을 막겠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휙휙!염구준은 하늘을 가르며 날아오는 작살, 그물, 조명탄 따위를 보며 입꼬리를 비웃듯이 끌어올렸다.아직 사격거리에도 들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공격을 했기 때문이었다.‘적지 않게 겁을 먹었나 보네.’그는 생각했다. 역시나 첫 번째 공격은 전부 허탕이었다.염구준은 거대한 향유고래를 타고 빠르게 이동했고, 이윽고 두 번째 공격이 시작됐다.커다란 작살 하나가 고래의 머리를 향해 곧장 날아들었는데, 맞으면 죽지 않더라고 심각한 부상을 입을 게 뻔했다.우웅!염구준은 검기 한 줄기를 내보내 날아오던 작살을 두 동강 낸 뒤, 작살에 묶인 쇠사슬 위로 몸을 던져, 빠르게 어선으로 돌진했다.풍덩!향유고래는 거대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물속으로 잠수했다.노대영은 염구준이 미친 듯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걸 보자마자 다급히 소리쳤다.“어서, 어서 배에 못 올라오게 사슬을 끊어!”그도 자신이 염구준과 맞서봤자, 단 한 줌의 승산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구자검법, 검일참공!”염구준은 배 위 인원들의 움직임을 보자마자 망설임 없이 강한 검술을 발동해 검기를 날렸다.제대로 검기를 축적하진 못했기에, 완벽하게 완성된 검일참공은 아니었고, 약간의 반동
파악!곧이어 물기둥이 하늘로 솟구치며 거대한 향유고래가 염구준과 멀지 않는 곳에 떨어진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마치 떠나기 아쉬워하는 듯했다.촤악!염구준은 몸을 날려 향유고래의 머리 위로 뛰어오른 뒤, 세 척의 어선 쪽으로 진기를 날려 물보라 일게 했다.이에 향유고래는 곧장 방향을 틀고, 어선을 향해 빠르게 헤엄치기 시작했다.말이 통하지 않아 이런 방식으로 밖에 교류할 수 없었지만 별로 큰 문제는 없었다.그 시각, 1호 어선은 다른 어선보다 조금 더 시끌벅적했다.노대영은 배의 지휘권을 장악한 뒤, 끝까지 저항한 소수만을 제거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 포로로 붙잡아두었다.물론 그가 자비로워서가 아니었다.그저 이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어떻게 복수하는지 지켜보게 하기 위해서였다.“대영 문주님, 준비 완료됐습니다. 언제든 시작 가능합니다.”노대영에게 붙은 아첨꾼 하나가 다가와 공손하게 말했다. 이번에 출정한 천기문 문도 중 절반 이상이 이미 노대영 편이었다.쿵!노대영은 부도 갑옷을 입은 채로 웃으면서 팔을 휘둘러 노신기를 바닥에 내던졌다.“악독한 놈. 네가 내 아버지를 죽였으니 난 오늘 아버지의 복수를 할 거다.”며칠 전에 대의를 위해서라면 혈연관계는 얼마든지 끊을 수 있다는 그의 말은 그저 노신기를 안심시키기 위함에 불과했다. 그의 가슴 속에 맺힌 복수심은 한순간도 식지 않았었다.“하아...”노신기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그의 창백한 얼굴엔 깊은 후회가 서려 있었다.‘그때 불쌍해 보인다고 해서 검은 머리 짐승을 거두는 게 아니었는데.’그는 생각했다. “모든 일은 내가 벌인 거니까 찢어죽이든, 뭘하든 나한테만 해. 상관없는 다른 사람들 건드리지 말고.”지금 이런 상황에 이른 이상, 그는 더 도리를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전에 이미 노대영에게 그의 출신을 말해주며 그의 아버지가 눈 깜빡하지 않고 살인을 저지르는 변태 악마라고 말해주었으나 그는 전혀 듣지 않았기 때문에 말해봤자 쓸모가 없다는 걸 알아서였다.스승과 제자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