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더 나댔다간 죽을 게 분명해.’“더 말할 필요도 없이, 그쪽이 방금 전에 건 조건이 좋은 것 같으니 수량을 열 배로 올리죠. 다만 그쪽이 그쪽 경호원들한테 절을 해야 합니다.”염구준은 당연히 이 일을 좋게 끝낼 생각이 없었다.“그건...”우성재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경호원들을 바라보며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염구준에게 절을 한다면 강자에게 한 것에 속하니 크게 부끄럽지는 않지만 자신이 기르는 개에게 절을 한다는 건 달랐다.“음?”염구준은 우성재가 질질 끄는 것을 보고 눈을 부릅떴다.이 눈빛에 우성재는 등골이 오싹해져서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쿵쿵.그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얼른 절을 하기 시작했다. “다 했어. 이제 됐지?”절을 끝마친 우성재의 이마는 크게 부어올라있었는데, 조금씩 피가 흘러내리기도 했다.한편, 경호대장은 자신의 고용주의 큰절을 받고 놀라서 감히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좋을대로 하세요.”염구준은 손을 저으며 아랑곳하지 않았다.상대방이 말을 먼저 심하게 했기에 조금 혼을 낸 것일 뿐, 정말로 말 한마디 했다고 죽일 생각은 없었다. “회장님!”경호대장은 정신을 차리고 쏜살같이 앞으로 뛰어가 우성재를 부축했다.짝!“저리 꺼져. 어떻게 강적들만 끌어올 수가 있어?”우성재는 화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상태라서 바로 경호대장의 뺨을 때렸다.방금 전까지만 해도 부하의 억울함을 풀어주려는 태도를 보이다가 자신이 당하고 나서는 바로 바꾸는 걸 보면 그는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괜히 화만 내는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안 됩니다. 제게는 부모님도, 아이도 있어요. 온 가족이 제 돈으로 먹고 산다는 말입니다.”경호대장은 무릎을 꿇고 우성재의 허벅지를 안고는 울부짖었다.반평생을 고생하며 수단을 다 써서야 얻은 경호대장의 자리를 이대로 놓기 싫어서였다.“꺼져!”우성재는 상대방을 한쪽켠으로 걷어차고 백학 건물 안으로 걸어갔다.권력을 믿고 오만하게 굴던 경호대장이 이런 결말을 맞이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번에 여러분들을 초대한 이유는 저희 제약업계가 더 경쟁력이 있도록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서입니다.”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직원이 일어나 자료를 나눠주었지만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늙은 여우라서 자료를 보지 않아도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전부 알고 있었다. 그는 통합을 하려는 속셈이었다. 또는 전체 제약업계의 사업들을 병합하려 한다고 할 수도 있었다.“이 일은 나중에 다시 얘기하고 우선 다른 이야기를 해보죠.”이때, 누군가가 바로 거절했다.자신의 이익이 침범 당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 또한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하하, 먼저 자료를 보고 다시 이야기 하시죠.”우성재가 웃으면서 말했다.그의 모습을 보니 자신의 계획에 관심이 아주 많은 것 같았다.‘신의 물?’몇 페이지를 넘겨본 사람들은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우성재를 바라보았다. 자료 안에는 ‘신의 물’ 을 합작해서 만들자는 것과 만드는 방법이 적혀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생산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이름을 바꾸고 다시 계속 팔자고 적혀있기도 했다.“그 물건은 해로운 겁니다. 절대 안 돼요.”이에 윤대약이 자리에서 일어나 버럭 소리 질렀다.“그건 모두 헛소문입니다. 이 물건이 나오면 천 배의 이윤을 얻을 수 있어요. 돈을 벌 수 있는데, 굳이 외면할 필요는 없죠.”우성재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이끄는 쪽으로 말을 돌렸다.천 배의 이윤이라면 양심을 버리고 돈을 벌기엔 충분했다.다른 사람들은 누군가 나서서 의의를 제출하는 걸 보고 전부 묵묵히 상황을 지켜보았다.“진짜 멋대로 구는구나. 널 지금 당장 없애야겠어.”윤대약은 화를 내며 공포스러운 기운을 내뿜었다. 그를 모욕해도 괜찮고, 평소에 방해를 해도 괜찮지만, 이 일은 상의할 필요도 없었다.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제약업계에 종사했지만 대부분 상인들이지, 윤대약처럼 약품에 대한 열정이 너무 많지는 않았다.그들의 생각 속 약은 그저 사람을 구하는 도구에 불과했다. 그러나 윤대약이 무력을 행사하면 현
이건 미끼를 던지는 수작이다.하지만 제약 업계에서 알아주는 거물들은 모두 자신의 연구팀이 있기에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서 처방을 살 리가 없었다.그들도 소리를 지르다 짜증이 확 밀려왔다.“우리가 어떤 사람들인지 압니까? 관문 앞에서 칼춤을 추는 격이라니 내 낯이 다 뜨겁네요.”“맞습니다. 선조의 처방을 팔아 사기치는 놈들은 많이 봤어요.”그 말들 듣던 이제마는 너무도 화가 나 몸을 벌벌 떨고 귀와 콧구멍에서 연기가 나오는 것 같았다.이 처방은 그가 직접 연구한 것으로 아주 귀하게 여기고 있었다.만약 염구준이 끝까지 조르지 않았다면 내놓지 않았을 것인데, 지금 쓰레기 취급을 받으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저 사람들 무시하세요.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뭐가 최고 처방인지 몰라요.”염구준이 싸늘하게 비평하며 위로했다.“다 당신 때문이에요!”이제마는 결국 그에게 화풀이를 하고 말았다.그러자 앙숙인 윤대약은 웃는 걸 참느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세상 물정을 모른다는 염구준의 말에 다들 열받아 그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쓰레기 처방 갖고 어디서 잘난 척이야? 내가 버린 처방도 이것보다 나아!”“진짜 최고로 좋은 처방이라면 내가 강물에 뛰어들어 헤엄 치면서 흥을 돋아줄게!”“난 뒤집기 100개 하겠다!”그들은 하나같이 생색만 낼 뿐, 길거리에서 파는 처방은 쓰레기라고 단정했다.제약 업계의 지배자들 전부 이 자리에 있으니 모두가 염구준을 제압하면 웃음거리가 될 게 뻔하다 생각했다.“어디가 특별한지 내가 한 번 볼게요.”그때 윤대약이 앞으로 나섰다.그는 살면서 그것도 자신의 앙숙을 위해 나설 줄은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이번에 이제마가 기뻐할 차례였다.처방을 보던 윤대약은 깜짝 놀라며 큰소리쳤다.“이거 엄청난 처방입니다. 약에 대해 깊은 연구를 한 대가로 만든 겁니다.”연기가 과장한 것 빼곤 전혀 흠잡을 데가 없는 말이었다.그는 평소 고지식해서 이런 연기가 어울리지 않지만 약을 제조하고 처방하는 연구에 누구도 과소평가하지 못
“게다가 출처 없는 처방은 부작용이 심합니다.”우성재는 방금 손해를 봐서 감히 정면으로 염구준과 대응하지 못하고 부드럽게 말했다.“개소리 지껄이지 마!”그때 참다 못한 이제마가 버럭 화를 내며 욕을 퍼부었다.“내 처방에 부작용이 심하다고? 그럼 네가 생산한 약은 독약이야!”이제마의 처방은 반복적인 실험을 거쳐 연구한 것으로 절대 부작용 같은 건 나타나지 않았다.본인을 욕해도 좋지만 처방을 욕하니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이 신의 아닙니까?”그제야 얼굴을 알아본 대표들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비록 이제마와 윤대약 모두 유명하지만 이제마의 약은 시장에 거의 유통되지 않아서 돈이 있어도 살 수 없으니 처방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그의 처방은 정말 귀하고 귀했다.“역시 동업자들끼리 말이 통하네요.”염구준이 가볍게 감탄했다.제약 업계에서 어떤 말을 늘어놓아도 이제마의 한마디와 비교할 수 없었다.오기 전에 중요한 순간이 아니면 이제마는 나서지 않겠다고 약속했었다.왜냐면 자신이 힘들게 연구한 처방이 다른 사람들에게 재물을 모으는 도구가 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그런데 뜻밖의 상황에 자극을 받아 폭주한 것이다.이제마가 본인이 직접 연구한 처방이라도 하자 대표들은 더는 고려하지 않고 열광했다.“젊은이, 조건이 있으면 얼마든지 말하세요. 다 들어줄게요.”미끼를 던지자마자 거물들이 속속히 낚이기 시작했다.염구준은 눈치 빠르게 다른 사람이 방해하지 않도록 다른 곳으로 가서 얘기를 나누었다.이것으로 주도권이 그에게 있다는 것을 밝혔다.그는 뜸을 들이지 않고 조건을 제시했다.“저희를 도와 약을 생산해 주세요. 제가 그만 생산하라고 할 때까지요. 그러면 방금 보여준 처방을 두 손으로 바칠게요.”바로 거래였다.“어떤 약인지 모르겠지만 우선 봐도 되겠습니까?”경각심이 강한 대표가 떠보았다.처방을 내놓을 정도라면 작은 일은 아닌 것 같았다.“바로 신의 물 해독약입니다. 총수량은 많지 않고 지속되는 시간도 길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
염구준은 우성재의 멱살을 잡고 높이 쳐들었다.살기가 주변에 퍼지면서 분위기가 썰렁해졌다.그 장면을 보던 대표들은 깜짝 놀랐지만 감히 발걸음을 움직이지 못했다.“아… 아직 생산하지 않았어요. 그냥 생각만 했을 뿐이에요.”우성재가 버벅거리며 말했다.염구준이 삼선 클럽도 두려워하지 않고 갑자기 돌변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오로지 이제마와 윤대약만 염구준이 돌변한 이유를 알고 다른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타닥타닥!그때 멀리서 제복을 입을 무리가 들어왔다.어느 부대에서 왔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이 일을 통제하러 온 것 같았다.“여기 흉악범이 있어요. 빨리 구해주세요!”하지만 일행은 그를 거들떠보지 않고 염구준의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주… 염 선생님도 여기 계셨군요.”우두머리는 백호였다.염구준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삼선 클럽을 쫓지 않고 여기는 왜 왔어?”“전에 제거한 신의 물 소굴은 원래 우씨 그룹의 원재료 공장이어서 몇 가지 질문하러 왔습니다.”이 사실은 기밀이 아니어서 모두의 앞에서 보고했다.염구준은 앞뒤 상황을 종합해서 대략 추측했다.우성재와 삼선 클럽은 진작부터 친분이 있는 사이였지만 이번 일로 손실이 커서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수작을 부린 것이라고 말이다.하지만 우성재는 너무 대놓고 일을 벌였다.“데리고 가. 그리고 우씨 제약 공장을 폐쇄하고 낱낱이 조사해. 용하에 어떤 좀벌레도 용납할 수 없다!”염구준은 팔을 흔들어 우성재를 백호에게 던져주었다.“네. 명심하겠습니다.”백호는 처리할 일이 많아 우성재를 끌고 가려고 했다.하지만 우성재가 가만히 있지 않고 소리를 질러 댔다.“너희들 뭐야? 날 체포할 권리가 없어. 내가 누군지 알아?”탁!고함소리에 짜증난 백호가 손에 든 검으로 그의 뒷목을 쳐서 기절시켰다.그제야 현장이 조용해졌다.우성재는 삼선 클럽과 결탁해 국민들을 해치는 신의 물을 생산하였으니 십중팔구 사형에 처할 것이다.꿀꺽!그 장면을 보던 대표들은 마른 침을 꼴깍 삼키며 혹시나 연루
전체 골목에 인기척도 없고 대문은 꾹 닫혀 있었다.‘살기다.’점집 입구에 다가간 염구준은 예민한 통찰력으로 수상함을 눈치챘다.시체 산을 걸어온 사람만이 이런 위험을 감지할 수 있다.“들어가서 제 곁을 떠나지 마세요.”염구준은 옆을 보며 이제마에게 신신당부했다.“알았어요.”이제마도 사태 심각성을 알고 괜한 시비를 걸지 않았다.끼익!대문을 천천히 열고 염구준이 앞장서고 이제마가 바짝 뒤를 따랐다.순간 피 비린 내가 코를 찔렀다.바닥에 흥건하게 흐른 피 외에도 다툰 흔적이 곳곳에 보였지만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숨어 있지 말고 당장 나와!”염구준은 아무도 없는 어둠을 향해 소리쳤다.그의 실력으로 이 정도 위장술은 바로 알 수 있었다.30분이 지났지만 방 안에는 아무런 기척도 들리지 않았다.분위기가 갑자기 어색해졌다.끼익!하지만 염구준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그가 어둠속으로 기운을 발사하자 누가 밖으로 도망치는 기척이 들렸다.스스슥!공격이 멈추자 한 무리의 검은 그림자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방금 그들을 속일 수 있을 줄 알았다.“일개 전신 경지가 부하들을 이끌고 오다니, 실력이 있나 봐.”염구준은 일행의 기운을 감지하고 실력을 판단했다.“넌 누구냐? 왜 여기 왔어? 황지혁과 무슨 사이야?”전신 경지인 우두머리가 경계하며 물었다.방금 공격으로 염구준의 실력을 판단하지 못한 것이다.“질문이 많네. 난 아직 묻지도 않았어.”염구준이 대답하지 않았다.“체포해!”말이 끝나자마자 일행이 무기를 들고 염구준에게 돌진했다.그들은 여기서 한동안 매복하고 있었지만 목표물은 나타나지 않고 낯선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쿵쿵!염구준은 공격 자세를 취하더니 일격으로 돌진하는 일행을 물리쳤다.겨우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은 전신 지경에 이른 한 사람밖에 없었다.그가 실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염구준이 시탐하려고 그런 것이다.“죽여라!”우두머리는 비틀거리며 고함을 질렀다.상대방을 이길 수 없지만 그렇다고 물러날 수도 없었다.그는
“나오세요! 밖에 매복했던 사람들은 전부 죽었어요.”방안에는 일행과 한 편이 아닌 다른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빠르게 뛰는 심장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네가 왜 여기 있어?”잠시 후, 그 사람이 방에서 나왔다.바로 점쟁이 노인 옆에 있었던 소녀였다.“대체 무슨 일이야?”염구준이 물었다.“아무 일도 없었는데요.”소녀는 눈동자를 굴리며 거짓말을 했다.하지만 방금 발생한 장면을 보았는지 말소리에 힘이 없었다.“선생님, 우리 가시죠.”염구준은 소녀와 실랑이할 시간이 없어 바로 돌아섰다.“잠깐만요. 할아버지를 찾아줄 수 있어요? 지금 나쁜 놈들이 할아버지를 죽이려고 해요.”소녀가 다급하게 말했다.할아버지의 안위가 걱정되었지만 그럴 실력이 없어서 염구준에게 부탁한 것이다.“마지막 기회야. 너와 할아버지 정체를 말해.”염구준은 돌아서지 않고 나지막하게 말했다.“휴.”어쩔 수 없는 소녀는 한숨을 내쉬고 입을 열었다.“저는 황지영이고 할아버지는 황지웅이에요. 우린 삼선도에서 왔어요.”“제가 어릴 때 삼선도가 급변하여 할아버지는 저를 데리고 필사적으로 포위망을 뚫고 여기로 도망쳤어요. 하지만 삼선도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우리를 찾아다녔어요. 방금 죽은 일행이 우리를 찾아낸 거예요. 할아버지는 저를 이곳에 숨기고 적을 유인하러 나가셨어요.”그 말을 듣던 염구준은 안색을 굳혔다.실력이 강한 반천인 고수를 뒤쫓을 정도라면 상대방의 실력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하지만 삼선도에서 왜 두 사람을 끈질기게 찾아다녔을까?“저를 도와줄 수 있어요? 그동안 저축한 돈을 전부 드릴게요.”염구준이 한참이나 말하지 않자 황지영은 유일하게 내놓을 수 있는 조건을 제시했다.하지만 소녀는 염구준이 돈에 관심이 없다는 걸 몰랐다.“난 돈에 관심이 없어. 삼선도에 대해 얘기해 봐. 그러면 도와줄게.”염구준은 희망을 찾았다.삼선도의 정보는 너무 중요했다.필경 삼선 클럽은 표면적인 세력에 불과했기 때문이다.신의 물을 확실히 제거하려면 근원부터 착수해
염구준은 소녀를 안심시키려고 일단 대답했다.“좋아요. 거짓말하면 안 돼요.”황지영은 별수 없이 믿었다.할아버지를 찾기 위해 나쁜 놈과 같은 배를 탄대도 기꺼이 할 것이다.그 뒤로, 염구준은 저녁까지 기다렸지만 누구도 오지 않아 청해로 돌아갔다.가족들이 모여서 식사하는 자리에 낯선 사람이 더 있었다.“자, 밥만 먹지 말고 반찬도 먹어.”손가을은 전복을 짚어 황지영의 그릇에 담아주며 다정하게 말했다.13, 14살 정도의 어린아이라 식구들은 편하게 대했다.“감사합니다. 언니도 어서 드세요. 너무 많아서 다 먹지 못해요.”황지영은 반찬으로 꽉 찬 그릇을 보며 연신 감사를 표했다.한 가족이 열정적으로 대하니 저도 모르게 어색해졌다.“하하하. 식사합시다.”염구준은 가족들과 눈빛을 마주치며 다정하게 말했다.식사를 마치고 손가을은 황지영을 데리고 밖에 나가 옷 몇 벌을 사주었다.염희주도 언니라고 친절하게 부르며 뒤를 따랐다.사건 경위에 대해 염구준이 미리 얘기했기에 손가을도 안심할 수 있었다.갑자기 외부인을 데려오면 가족들이 난처해할 것이다.하지만 상황을 모르는 두 노인은 또 질문하기 시작했다.“구준아, 저 여자애는 어디서 데려왔어?”“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요.”염구준은 사건 경과를 다시 한번 말했다.“어려서 부모를 잃고 할아버지와 떠돌이 하면서 살았는데 지금 할아버지가 실종됐대요. 너무 안쓰럽네요.”“여기 있고 싶다면 우리 집에 있으라고 해. 희주도 친구 되고 좋잖아.”노인들은 워낙 눈물샘이 많아서 조금만 안타까운 사연을 들어도 바로 눈물을 흘렸다.세상에 비참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많아 전부 도와줄 수 없지만 한 명이라도 최선을 다해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두 노인은 염구준의 결정에 동의했다.“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집사람들이 동의하자 염구준도 안심했다.세 사람은 한참을 얘기하다가 염구준은 방에 돌아갔다.그리고 최근 발생한 사건을 연결하며 생각을 정리했다.삼선 클럽은 삼선도 소속이고, 삼선 클럽에서 신의 물을 판매하는
그의 재력이라면 대형 수영장을 만들어 향유고래를 키울 수도 있지만 바다가 고래의 고향이라 그러지 않았다.“선장, 고래가 엄청난데 잡지 않아요?”갑판에서 몸이 건장한 흑인 선원이 불만을 토로했다.눈앞에서 헤엄치며 돌아다니는 것이 전부 돈이니 그럴만했다.“독수리, 주둥이 닥쳐!”선장은 아직도 누군가 향유고래에 미련을 두자 버럭 화를 냈다.염구준이 어디 출신인지 모르겠지만 그가 발산하는 기운은 보는 사람이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독수리가 염구준을 힐끗 보고는 어쩔 수 없이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나머지 선원들도 감히 반박하지 못하고 선장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저기, 아직 볼일이 남았어요?”선장은 염구준이 조용히 앉아 있자 조심스럽게 물었다.“여기서 가까운 부두로 데려다줘요.”염구준은 끝없는 바다를 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이곳은 바닷가와 멀리 떨어져 있어 일단 상륙한 후에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울 생각이었다.“그게…”선장은 난처한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어려우면 말씀하세요. 그렇다고 폭행을 휘두르면서 강요하지 않으니까.”염구준은 선장의 태도가 이상한 걸 눈치채고 분명하게 말했다.선박은 어부들 것이니 강제로 빼앗지 않을 것이다.그의 말에 선장은 솔직하게 말했다.“우리는 고래를 잡아서 생계를 유지해요. 이제 나와서 한 마리도 잡지 못했는데, 이대로 돌아가면 손해가 엄청납니다.”그들은 염구준이 무섭지만 돈을 벌지 못해 가족들이 굶는 것이 더 무서웠다.“그런 거라면 어렵지 않아요. 얼마를 원하세요? 육지에 도착하면 내가 줄게요.”염구준에게 있어 돈으로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었다.“100만 달러.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선장은 믿지 않는지 거액의 가격을 부르면서 떠보았다.듣기에 높은 가격이지만 따져보면 수리비용, 연료, 인건비 등등 모두 제외하면 얼마 남지 않으니 합리적인 가격이었다.“이걸로 담보할게요. 어차피 당신네 선박에 있으니까 도망치지 않아요.”염구준은 상대방이 걱정하는 걸 알아차리고 딸에게 선물하려고 주은 주먹
이튿날, 미지의 바다에서 향유고래 한 마리가 헤엄치고, 등에 한 사람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그 사람은 바로 염구준이었다.사방에 온통 푸른 바다라 지금 어느 곳에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지금은 고래가 바닷가로 데려가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다.“고래야, 잘 부탁한다.”“우웅!”둘은 서로의 말을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수시로 교류했다.염구준이 눈을 감고 운기조식하다가 배고프면 심해의 눈물로 에너지를 보충했다.신기한 것은 한 방울만 먹어도 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뿌우우우웅!그때 멀리서 선박 소리가 들렸다. 염구준은 눈을 번쩍 뜨고 소리를 질렀다.“저기요! 여기 사람 있어요!”목소리에 기운을 담았더니 쩌렁쩌렁한 소리를 지를 때마다 수면이 음파에 진동하는 것 같았다.어디선가 나타난 선박에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슥!그런데 선박에 다가간 순간, 상대방이 고래를 잡는 쇠고랑을 발사하는 것이었다.염구준은 재빨리 검기로 밧줄을 잘라버렸다.선박은 그를 구하러 온 것이 아니라 향유고래를 잡으러 온 것이었다.생각하지 않아도 고래의 용연향을 얻기 위함일 것이다.스스슥!선박에 있는 사람들은 고장난 줄 알고 이번에 작살을 던졌지만 역시 염구준에게 잘려서 바다 밑으로 들어갔다.상대방과 가까워지자, 염구준은 그들의 선박에 번쩍 뛰어올라 엄숙하게 경고했다.“멈춰. 아니면 무력으로 대응할 거야.”선원들은 대부분 기운이 없는 평범한 어부였다.그들은 염구준이 먼 곳에서부터 뛰어올라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는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여기서는 고래를 잡는 걸 허락해요.”한참 뒤, 선장은 국제 감독기관에서 온 줄 알고 시큰둥하게 대답했다.“이 고래는 내 친구예요. 어떻게 할지 잘 알겠죠?”염구준은 선장을 노려보며 차갑게 되물었다.“알았어요. 이 사람 말을 못 들었어? 당장 작살을 내려놔!”선장은 상대방이 보통이 아니란 걸 눈치챘는지 바로 선원들에게 지시했다.그러자 당황한 선원들은 정신을 차리고 지시대로 작살을 내려놓았다.염구
감히 그의 전우나 다름없는 고래를 잡아먹으려고 하다니,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만약 향유고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지금쯤 심해 밑에서 죽었을 것이다.“염 선생님, 안 돼요!”당황한 노신기 일행이 다급히 나서서 말렸지만 염구준은 듣지 않았다.그는 요트를 타고 서해충에게 다가가 검을 휘둘러 공격했다.“당장 토해!”염구준은 두 손으로 검을 들고 번쩍 뛰더니 위에서 서해충을 자르려고 했다.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고래를 살려낼 것이다.“하악!”뿔난 서해충이 나지막하게 울부짖더니 커다란 입을 벌이고 염구준을 통째로 삼키고는 물속으로 들어갔다.그 장면을 본 사람들은 모두 경악하고 말았다.심지어 천기문의 고위층들도 진정할 수 없었다.“염 선생님!”“안 되겠어. 모든 음성탐지기를 던져!”노신기는 당황한 마음에 맞서 싸우려고 명을 내렸다.유동심연의 사방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이번에 오면서 대량의 음성탐지기를 챙겼었다.그러나 워낙 위력이 강한 무기라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염 선생님, 제발 잘 버텨줘요.’촤아악!이제 막 음성탐지기를 내려놓고 가동하려고 할 때 눈앞에서 거센 물보라가 솟구치는 것이었다.해저 지진으로 거센 파도가 밀려오면서 일으킨 쓰나미였다.“다들 선실로 들어가!”위급한 상황에서 노신기는 어쩔 수 없이 먼저 가문을 지켜야 했다.선박 세 척은 쓰나미에 밀려 먼 곳까지 흘러갔다.한편, 바다 밑은 난리도 아니었다.서해충 체내에 들어간 염구준은 선사 시대의 바다 생물과 전력을 다해 싸우고 있었다.그가 공격할 때마다 서해충은 심한 고통을 느꼈는지 커다란 몸집을 꿈틀거렸다.실은 서해충이 삼킨 것이 아니라 그것이 도망칠까 봐 염구준이 스스로 잡혀 먹힌 것이었다.한참 공격하면서 돌진했더니 드디어 향유고래가 있는 곳까지 다가갔다.“구자검법! 검일참공!”그는 기운을 폭증시켜 강력한 살술로 서해충의 몸에 길이가 10미터되는 상처를 냈다.잘린 부위에서 바닷물이 역류하여 들어올 때, 염구
동물의 감각은 때론 인간보다 훨씬 뛰어났다.특히 바다에서 자란 생물이라면, 웬만한 레이더보다도 훨씬 빨리 감지할 수 있었다.쿠쿵!혹시라도 싸울 수 있기 때문에 다들 몸에서 기운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아래쪽에서 뭔가 빠르게 올라오고 있어.”염구준은 날카로운 눈으로 바다밑을 바라보며 말했다. 작은 검은 점 하나가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었다.아직 수면까지 오지도 않았는데, 그 그림자는 이미 성체 향유고래와 맞먹는 크기였다.‘설마, 진짜 서해충이 있는 건가?’“목표가 공격 범위에 진입했습니다. 모든 작살 준비 완료했습니다.”대원들은 지시가 떨어지고 나서 3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내에 모든 준비를 마쳤다.“쏴!”노신기는 참을성 없이 바로 명령을 내렸다.‘망했다!’염구준은 말리려고 했지만 결국 말리지 못했다.물속의 거대한 생물체는 어선보다도 커서 자칫하다간 오히려 배가 끌려갈 수도 있었다.슥! 슥! 슥!고래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세 척의 어선에서 수십 발의 대형 작살이 물밑의 검은 그림자를 향해 발사되었다.타겟의 몸집이 컸기 때문에 대부분의 작살이 정확하게 꽂힐 수 있었다.“끌어 올려!”노신기는 고래 잡이를 할 때 쓰던 방식을 운용하며 숙련하게 명령을 내렸으나 기계를 최대치로 올려도 타겟을 끌어오리지 못했다.이에 조타실에서 다급하게 소식을 전했다.“큰일입니다. 어선이 저것에 의해 유동심연 쪽 소용돌이로 끌려가고 있어요!”배는 엄청난 속도로 끌려갔다. 배 자체가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속도였다.“밧줄을 끊어!”염구준은 노신기의 무전기를 낚아채고 지휘권을 넘겨받았다.“속도가 너무 빠른 탓에 꽉 감겨서 끊을 수가 없습니다.”조타실에서 절박한 답변이 돌아왔다.현대식 어선은 전부 인공지능 시스템이라 이 상황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우웅!염구준은 결국 검기를 날렸고, 날카로운 검광이 연달아 번쩍이며, 단숨에 밧줄들을 잘라냈다.이에 배가 거대한 관성에 휘청이며 흔들렸고, 균
오늘 만약 염구준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그들은 전부 물고기들의 먹이가 되었을 것이다.“빨리 항행하라고 하세요. 뭔가 이상합니다.”염구준의 갑작스러운 말에 사람들은 이해가 되지 않아 어리둥절해졌다. “네, 말하고 오겠습니다!”그러나 눈치가 생긴 사람들은 염구준의 뜻을 알지 못해도 그대로만 하면 된다는 걸 알고 있어 곧바로 달려갔다.그들은 염구준을 한치도 의심하지 않았다.염구준은 흡족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면을 바라보며 물었다.“스텔라성의 성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으십니까?”이번에 스텔라성의 성주는 두 개의 판을 짰는데, 하나는 겉면으로 보이는 부성주 베르였고, 다른 하나는 오랫동안 숨어있던 노대영이었다. 다른 걸 다 따지고 나서 판을 짠 것만 본다면 정말 훌륭한 계획이었다.그랬기에 염구준은 그를 중시했다.노신기와 아타는 미간을 찌푸리고 서로를 바라본 뒤, 늙은 아타가 입을 열었다. “성주의 이름은 노세입니다. 압도적인 실력의 소유자로, 진 적이 없습니다.”“하지만 지난 20년간, 외부에서는 그의 모습을 본 이가 없습니다. 폐관 중이라는 소문도 있고, 이미 사망했다는 이야기도 돌고 있지요.”“그의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라, 저희도 아는 게 많지 않습니다.”이야기를 들은 염구준은, 오히려 흥분한 듯한 웃음을 지었다.“흐음, 전부 사실이라면 꽤 괜찮은 상대가 되겠군요.”방금, 막 육체의 극한을 돌파한 염구준은 적당한 시험 상대가 필요했다.‘대단해.’주변 고위 간부들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염구준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다만 약간 이해가 되지 않을 뿐이었다.스텔라성 성주 같은 괴물은, 대부분 기겁하며 피하려 하는데, 정면 승부를 기대한다니까 말이다.“그나저나 염 선생님, 전에 올라오실 때, 인원이 적던데, 혹시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노신기는 다른 걸 얘기하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아, 이거 아십니까?”그의 손에는 투명한 비닐에 담긴 작은 물방울이 들려 있었는데, 외부에는 진기가 감돌았다.‘어라?’조금 더
이 독에 중독된 무인은 일시적으로 기운이 흩어지고, 단전이 봉쇄되어, 꼼짝없이 폐인 신세가 될 수밖에 없었다.만약 과다 복용할 경우, 목숨까지 위험해질 수 있었다.“이런 희귀한 독약은 스텔라성 성주가 준 거겠지?”염구준이 흥미롭게 물었다.그는 이번에 처음으로 진짜 산기봉단을 보았고, 게다가 그 양이 상당했기 때문에 꽤나 관심이 갔다.“맞아. 얼른 저 녀석을 잡아!”노대영은 승리자처럼 손을 휘저으며 부하들에게 명령했다.그는 희귀한 독약인 산기봉단에 절대적인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에휴.”아타 등 사람들은 이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염구준마저 당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이제 구세주가 사라졌으니, 최악의 경우 전부 몰살당할 수도 있었다.“가서 두들겨 패! 나 아까 진짜 쫄아서 오줌 쌀 뻔했단 말이야!”몇몇이 소리치며 달려들었고, 염구준을 한껏 때려서 화풀이를 하려 했다.반보천인급 고수를 때릴 기회는 흔하지 않으니까 말이다.우웅. 그러나 그 순간, 검광이 번쩍이더니 달려들던 사람들 전부가 쓰러졌다. 그들의 목에는 옅은 혈흔이 있었는데, 상처는 아주 작았지만 모두 목숨을 잃었다.“이 독이 아무리 강해도, 나를 상대하려면 아직 한참 멀었어.”염구준은 조용히 진기를 운용하며, 체내에 남아 있던 독기를 모두 없애버렸다.육신이 이미 반보천인의 극한의 경지에 다다른 탓에 약물 저항성도 엄청나게 강해져 그는 산기봉단 같은 독약 따위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너... 이건 말도 안 돼!”노대영은 절규하듯 외쳤다.희망이 눈앞에서 산산조각 나자, 정신이 붕괴되기 직전이었다.곧 있으면 승리할 수 있었는데, 이젠 그게 다 물거품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그는 차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스텔라성 성주랑 뭘 꾸민 거지?”염구준은 서두르지 않고 물었다.해독제 같은 건 이제 관심 없었다. 상대가 정직하지 않으니까 말이다.“난 진작 그분의 문하로 들어갔어. 언젠가는 그분이 내 복수를 도와줄 거다!”“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는데, 내가 무슨 잘못이 있어
염구준은 주머니를 집어 들어 곁에 있던 그레이에게 휙 던져주며 분부했다.“먼저 기운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해독제를 나눠줘.”“네.”그레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분노에 찬 눈빛으로 노대영을 흉악하게 노려보았다.반보천인으로서 이런 함정에 걸려들었다는 게 조금 창피해서였다.노대영은 사태가 자신에게 불리하게 흘러가는 걸 감지하고,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할 말이 있습니다.”“해.”염구준은 싸늘한 표정으로, 단 한 마디만 툭 내뱉었다.그레이와 다른 이들이 힘을 회복하고 나면, 그는 절대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기에 곧 죽을 이의 유언쯤은 들어줄 수 있었다.노대영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얼른 말을 이었다.“자식으로서 아버지의 원수에게 복수하는 건 당연한 일이죠?”“그래.”염구준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딱히 다른 변수가 없다면, 이 말을 부정할 이유가 없어서였다.‘어라?’이에 주변 사람들은 놀라 눈을 크게 떴다.말투로만 보면, 염구준이 노대영의 편을 들어주려는 것 같아서였다.그러나 방금 전에는 또 그들을 구해주었기 때문에 그들은 염구준이 무슨 생각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노대영은 염구준의 마음을 돌린 줄 알고 속으로 기뻐하며 바로 말을 이었다.“이 도리를 알고 계시니, 그럼 행동에 옮겨도 되겠죠.”노대영은 혹여나 다른 변수가 있을까 두려워 단검을 꽉 쥐고 중상을 입고 바닥에 쓰러져 있던 노신기에게 달려들었다.그레이 등이 조금 있다가 어떻게 나올지는 크게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복수를 하는 게 우선이었으니까 말이다.쾅!하지만 달려가자마자 염구준의 발에 얼굴을 맞아서 옆으로 나가떨어졌다.그의 코와 입에서는 순식간에 피가 줄줄 흘렀다.“날 가지고 노는 거냐, 염구준!”“허, 내가 나설지 안 나설지 짐작이 안 됐나봐?”염구준은 비웃으며 말했다.그는 노대영의 말을 부정하진 않았지만 상대방의 행위를 몹시 혐오했다.아버지를 죽인 원수에게 대놓고 복수하는 건 괜찮지만, 그 아비가 악행을 일삼던 사람이고, 은혜를 원수로 갚는 방식에,
그러나 몸속에 독이 퍼진 탓에 기운을 끌어올릴 수가 없어 모두 답답하게 속만 태울 수밖에 없었다. 노대영이 혓바닥을 자르려고 할 때, 멀리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대영 문주님, 염구준인 것 같습니다!”이름을 듣자마자, 노대영의 얼굴에서 희열이 싹 사라지고, 이내 짙은 어둠이 드리웠다.기습에 성공한 후 바로 도망쳤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고래를 타고 쫓아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염구준 한 사람만으로 충분히 그들을 몰살할 수 있었다.“어서 고래잡이 작살이랑 그물 그리고 멀리에서 공격할 수 있는 무기들을 준비해.”노대영의 가슴 깊은 곳에서 두려움이 급속히 퍼져갔다.허겁지겁 지시를 내리긴 했지만 겨우 쇳조각 몇 개로 염구준을 막겠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휙휙!염구준은 하늘을 가르며 날아오는 작살, 그물, 조명탄 따위를 보며 입꼬리를 비웃듯이 끌어올렸다.아직 사격거리에도 들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공격을 했기 때문이었다.‘적지 않게 겁을 먹었나 보네.’그는 생각했다. 역시나 첫 번째 공격은 전부 허탕이었다.염구준은 거대한 향유고래를 타고 빠르게 이동했고, 이윽고 두 번째 공격이 시작됐다.커다란 작살 하나가 고래의 머리를 향해 곧장 날아들었는데, 맞으면 죽지 않더라고 심각한 부상을 입을 게 뻔했다.우웅!염구준은 검기 한 줄기를 내보내 날아오던 작살을 두 동강 낸 뒤, 작살에 묶인 쇠사슬 위로 몸을 던져, 빠르게 어선으로 돌진했다.풍덩!향유고래는 거대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물속으로 잠수했다.노대영은 염구준이 미친 듯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걸 보자마자 다급히 소리쳤다.“어서, 어서 배에 못 올라오게 사슬을 끊어!”그도 자신이 염구준과 맞서봤자, 단 한 줌의 승산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구자검법, 검일참공!”염구준은 배 위 인원들의 움직임을 보자마자 망설임 없이 강한 검술을 발동해 검기를 날렸다.제대로 검기를 축적하진 못했기에, 완벽하게 완성된 검일참공은 아니었고, 약간의 반동
파악!곧이어 물기둥이 하늘로 솟구치며 거대한 향유고래가 염구준과 멀지 않는 곳에 떨어진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마치 떠나기 아쉬워하는 듯했다.촤악!염구준은 몸을 날려 향유고래의 머리 위로 뛰어오른 뒤, 세 척의 어선 쪽으로 진기를 날려 물보라 일게 했다.이에 향유고래는 곧장 방향을 틀고, 어선을 향해 빠르게 헤엄치기 시작했다.말이 통하지 않아 이런 방식으로 밖에 교류할 수 없었지만 별로 큰 문제는 없었다.그 시각, 1호 어선은 다른 어선보다 조금 더 시끌벅적했다.노대영은 배의 지휘권을 장악한 뒤, 끝까지 저항한 소수만을 제거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 포로로 붙잡아두었다.물론 그가 자비로워서가 아니었다.그저 이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어떻게 복수하는지 지켜보게 하기 위해서였다.“대영 문주님, 준비 완료됐습니다. 언제든 시작 가능합니다.”노대영에게 붙은 아첨꾼 하나가 다가와 공손하게 말했다. 이번에 출정한 천기문 문도 중 절반 이상이 이미 노대영 편이었다.쿵!노대영은 부도 갑옷을 입은 채로 웃으면서 팔을 휘둘러 노신기를 바닥에 내던졌다.“악독한 놈. 네가 내 아버지를 죽였으니 난 오늘 아버지의 복수를 할 거다.”며칠 전에 대의를 위해서라면 혈연관계는 얼마든지 끊을 수 있다는 그의 말은 그저 노신기를 안심시키기 위함에 불과했다. 그의 가슴 속에 맺힌 복수심은 한순간도 식지 않았었다.“하아...”노신기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그의 창백한 얼굴엔 깊은 후회가 서려 있었다.‘그때 불쌍해 보인다고 해서 검은 머리 짐승을 거두는 게 아니었는데.’그는 생각했다. “모든 일은 내가 벌인 거니까 찢어죽이든, 뭘하든 나한테만 해. 상관없는 다른 사람들 건드리지 말고.”지금 이런 상황에 이른 이상, 그는 더 도리를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전에 이미 노대영에게 그의 출신을 말해주며 그의 아버지가 눈 깜빡하지 않고 살인을 저지르는 변태 악마라고 말해주었으나 그는 전혀 듣지 않았기 때문에 말해봤자 쓸모가 없다는 걸 알아서였다.스승과 제자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