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는 설호였다! 돌아온지 며칠이나 됐다고 반 병신을 만들어 버리다니!도대체 이 도시에 그런 실력을 가진 자가 누가 있지?혼자의 힘으로 표범과 설호 형제를 지옥으로 보낸 자라면 섬뜩할 정도로 무서웠다.설마….“용준영?”각 조직의 수장들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조금 전까지 설호를 종이호랑이라고 비웃었던 용준영이었다.설호가 당한 건 무조건 용준영이랑 연관이 있다고 봐야 한다.“용준영의 부하 중에 저런 고수가 있다니! 정말 잘도 숨겼군요!”한 조직 수장이 갑자기 인상을 쓰며 말했다.“아니, 용준영이 이런 실력을 가졌으면 왜 돈 버는 업체들을 다 우리한테 넘긴 거지?”그 말에 아무도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용준영은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조직 폭력배들과의 전쟁을 불사했다. 최근에는 경찰 쪽에서도 별도의 움직임이 없는데 그가 갑자기 검은 사업을 그만뒀다는 건 이 바닥에서 손 털고 성실한 기업인으로 살아가겠다는 의미란 말인가? 그들은 믿기 어려웠다.이때, 차로 이동 중인 용준영에게 문자가 왔다.사실 이미 예측하고 있던 결과이긴 하지만 심장이 벌렁거렸다.너무도 충격적이었다.염 전주는 역시 설호와 동일 선상에서 놓고 얘기할 레벨이 아니었다. 이렇게 빨리 문제를 해결하다니!경외심, 감탄… 이라는 단어밖에는 형용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이사회를 소집할 거야! 바로 준비시켜!”잠시 고민을 끝낸 용준영은 결연한 표정으로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중대 발표가 있으니 전원 참석하라고 해!”그는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용운그룹을 손가을에게 넘기기로 했다.인생은 도박이라고 했다.이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불과 1분도 걸리지 않았지만 그는 전혀 밑지는 장사가 아니라고 확신했다.염구준은 그에게 다른 일을 맡길 것이다. 염구준에게만 충성한다면 나중에 용운그룹이 아니라 더 큰 업적도 세울 수 있을 것 같았다.한편, 손태진은 사무실에서 이를 갈고 있었다.시공현장의 작업 진행 속도는 굉장히 빨랐다. 초기 준비 단계는 곧 마무리 될 것이고 그전에 손가을을 손
“내 일은 내가 해결해야지!”손태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싸늘한 음성으로 말했다.“회사 임원급 인사들 소집하고 이사회 준비해. 이번에는 손가을 그년을 그룹에서 완전히 쫓아버려야겠어!”시공현장의 어느 창고.손가을은 작업팀 담당자와 함께 현장을 참관하고 있었다. 시설 점검을 마친 뒤, 그녀는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시공 일정은 그녀가 생각했던 것보다 2주나 빨랐고 시간을 단축하면서 예산도 절약할 수 있었다. 공장은 현재 마지막 점검을 진행 중이었고 외부에서 생산기계를 대량 구입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이거 진행하는 내내 긴장했는데 이제 좀 마음이 놓이네.”손가을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감탄하듯 말했다. 최근 몇 달 사이, 그녀는 이 프로젝트를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동분서주했다.“그렇게 힘들었어? 혹시 일할 때 누가 괴롭혔어? 그게 누군데? 내가 가서 야근비까지 다 받아낼 거야.”염구준이 정색하며 손가을에게 말했다.손가을은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이때, 눈치 없이 전화기가 울렸다.회사 비서실의 연락이었다.“손가을 씨, 긴급 이사회를 소집할 예정이니 아홉 시에 늦지 않게 도착하시길 바랍니다.”상재는 용건만 말하고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손가을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꺼진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았다. 손태석의 말대로라면 그녀는 아직 이사회에 참석할 레벨이 아니었다. 예전에 이사회를 소집하면서도 한 번도 그녀를 부른 적 없었다.옆에서 통화내용을 다 들은 염구준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었다.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조바심이 난 손태진이 무언가 움직이려 하고 있었다. 전체 임원들이 보는 앞에서 손가을에게 망신을 주려는 속셈이 보였다.“가자.”염구준은 두말하지 않고 손가을을 이끌고 차에 올랐다. 그들은 그 길로 곧장 손영그룹으로 향했다.손영그룹 본사 맨 위층의 회의실.손태진이 상석에 앉아 있었고 임원들도 하나둘씩 들어와서 자리에 앉았다.“허, 참. 이사회에 지각을 하다니!”“여덟 시 30분에 회의 시작이라고 똑
회의실 문이 열리고 손가을이 안으로 들어왔다.“그룹 관계자가 아닌 놈은 나가!”손태진은 손가을 뒤를 따라오는 염구준을 보자 차갑게 호통쳤다.저놈이 아들 손호민에게 두 번이나 폭력을 행사한 것만 생각하면 이가 갈리고 눈에서 분노가 치솟았다. “그렇다면 우리 그냥 가자.”염구준은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손가을을 이끌고 뒤돌아섰다.손태진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이사회를 소집한 목적이 손가을을 모두의 앞에서 망신 주고 회사에서 쫓아내려는 것인데 주인공이 퇴장하다니!손태진은 염구준을 힘껏 노려보고는 싸늘하게 말했다.“성질하고는! 됐다, 그냥 앉아!”염구준은 손가을의 손을 잡고 빈 자리를 찾아 자리에 앉힌 뒤, 자신은 뒤로 가서 섰다.한 임원이 입을 삐죽이며 비아냥거렸다.“하루종일 마누라 뒤꽁무니 쫓아다니는 거 말고 할 일이 그렇게 없나 봐?”말을 마친 그는 염구준을 향해 도발적인 미소를 보냈다.염구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성큼성큼 그에게 다가갔다.짝!그리고 상대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손바닥으로 상대의 귀뺨을 후려쳤다.“당신이 뭔데 입을 함부로 놀려?”말을 마친 그는 다짜고짜 상대의 멱살을 잡고 바닥에 패대기쳤다. 그리고는 그 사람이 앉았던 자리에 당당하게 앉았다.그 임원은 부은 얼굴을 부여잡고 바닥에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조금 전 자신을 노려보던 염구준의 섬뜩한 눈빛이 잊혀지지 않았다.“너… 이 무례한….”손태진은 염구준을 뚫어지게 노려보다가 억지로 분노를 추슬렀다. 오늘의 주요 목적은 손가을을 그룹에서 내치는 것이었다. 어차피 염구준 같은 무능하고 무식하게 힘만 센 데릴사위는 나중에 제거하면 그만이었다.“손가을, 우리가 널 왜 불렀는지 무척 궁금할 거야.”손태진은 여유롭게 차를 마시며 불쾌한 미소를 지었다.“최근 네가 회사에서 꽤 괜찮은 업적을 냈어. 우리도 그걸 지켜봤고. 회사와 가문을 위해 헌신한 네 공로는 우리 모두가 공감해. 그래서 회사도 시름 놓고 너한테 대형 프로젝트를 맡겼지.”염구준은 손
손태진은 그녀에게 변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몰아쳤다.“증거가 빼박인데 넌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 오늘 부로 손가을을 회사에서 제명한다! 넌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게 될 거야!”그 말이 끝나자 사람들은 너도나도 손태진을 지지했다.“전 사장님 의견에 전적으로 찬성입니다!”“손가을은 그룹에 암 같은 존재가 틀림없어요!”“암덩어리는 당연히 제거하는 게 맞죠.”너도나도 한마디씩 하며 손가을을 비웃듯 쳐다보았다. 손가을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 고개를 숙였다.이런 쓰레기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그는 손영그룹의 불공정한 처사에 깊이 실망했다.“하! 웃기지도 않는군!”차가운 웃음소리가 현장의 정적을 깨뜨렸다.염구준이었다.“연기 잘 봤습니다!”그는 손태진을 향해 박수를 치며 핸드폰을 꺼냈다.“손 사장님, 오늘 하신 그 발언, 핸드폰으로 전부 녹취해 두었습니다. 그 연기실력이면 오스카 주연상을 노려봐도 괜찮겠군요!”손태진은 음침한 얼굴로 으르렁거렸다.“염구준, 방해할 생각하지 마. 난 팩트만 말했어. 연기 따위가 아니었다고!”“맞아요!”다른 임원들도 염구준을 비웃으며 한마디씩 거들었다.“손가을 씨 월급은 한 달에 200도 안 돼요. 월급 정산 기록만 봐도 알 수 있지요.”“월 이백으로 네 명이나 먹고 살아야 하는데 무슨 돈으로 외제차를 사겠습니까? 게다가 진숙영 여사가 이번에 밍크코트까지 구매했더군요. 이게 뇌물을 받았다는 증거입니다!”염구준은 가증스럽다는 듯이 임원들을 쏘아보며 냉소를 지었다. 그는 천천히 손을 들어 겉옷 호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그 모습을 본 손태진이 긴장한 얼굴로 다급히 소리쳤다.“염구준, 여긴 회사야. 밖에 경비원들이 상시 대기하고 있어! 허튼수작 부릴 생각하지 마! 경비! 경비 뭐해?”손태진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가진 게 많은 자일수록 죽음을 두려워하기 마련이다. 염구준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지어졌다.탁!그는 호주머니에서 구매 명세서를 꺼내 책상에 던졌다.“잘 봐둬요.”그
“당연하죠.”손가을이 단호하게 대답했다.이게 다 저들이 염구준을 무시해서 초래한 결과였다. 염구준은 한 번도 돈이 없었던 적이 없었다.그녀는 손태진을 빤히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했다.“제가 뇌물을 받은 게 아니라 많이 실망하셨겠네요.”손태진의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졌다.“그 돈이 어디서 났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누구 돈이든 상관없어! 네가 용운그룹이랑 짜고 회사를 장악하려고 한 행동이 잘못이란 거야! 우린 너한테 크게 실망했고 오늘 부로 널 해고할 거야!”손가을은 화가 나서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없는 죄명까지 만들어 내서 조카를 끌어내리려는 큰아버지라니!“다른 건 얘기하고 싶지 않아.”손태진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머리를 굴렸다. 오늘 이 프로젝트의 권한을 빼앗아 오지 못하면 앞으로 손가을은 날개를 펴고 하늘로 날아오를 것이 분명했다.“손 사장님은 농담하는 센스도 영 없네요.”염구준은 아내의 손을 부드럽게 다독이고는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어쩔 수 없네요. 솔직히 말씀드리죠. 가을이는 오늘 이사회에 오기 전부터 퇴사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회의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손가을 본인마저 놀란 눈빛으로 염구준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절대 해본 적 없는 말이었다.저 사람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이 상황에 직장을 잃으면 무슨 수로 생활비를 충당하지? 물론 염구준은 돈이 많지만 그게 자신의 돈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걱정하지 마.”염구준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싸늘한 눈빛으로 좌중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당신들 어떻게든 가을이 회사에서 내보내려고 했잖아요? 알았어요. 당신들 뜻대로 해드리죠!”“능력은 없는 주제에 다른 사람 모함하고 짓밟는 당신들 같은 인간들이랑 가을이가 같이 일할 이유가 없어!”분이 치밀대로 치민 손태진은 염구준을 손가락질하며 욕설을 퍼부었다.“염구준, 닥쳐!”“닥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당신이야!”염구준은 냉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가을이가 추진하던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끝까지 가
그룹은 이번 기회에 기업 확장을 꿈꾸며 모든 재원을 쏟아부었다. 그런데 모든 노력이 손가을의 손으로 들어가다니!법무부는 계약서를 제대로 검토도 하지 않고 통과시킨 거지?손태진은 물론이고 법무팀장의 안색도 하얗게 질렸다.“사장님, 믿어주세요. 제가 검토할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단 말입니다!”고위 임원도 떨리는 목소리로 변명했다.“분명히 누가 계약서를 바꿔치기했어요! 틀림없어요!”손태진은 말없이 상대를 노려보았다.염구준이 이 계약서를 공개했다는 건 이미 만반의 준비를 끝마쳤다는 것을 의미했다.계약을 무를 수도 없으니 분해도 받아들여야 했다.그는 긴 한숨을 토해내고는 손가을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가을아, 내가 널 너무 과소평가했어! 네가 이렇게 악랄한 아이였을 줄은 몰랐다!”손가을도 싸늘한 표정으로 당당하게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어떻게 된 건지는 몰라도 분명히 염구준과 연관이 있었다. 손태진이 분해서 부들부들 떠는 모습을 보는 것도 즐거웠다.“우리 그룹에서 조용히 수그리고 일만 하더니 다 오늘을 위해서였어?”손태진은 광기 어린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프로젝트 하나 가로챈다고 우리 손영이 무너질 것 같아? 꿈깨!”“네가 빼앗은 모든 걸 훗날 넌 두 배로 쳐서 돌려놓게 될 거야!”말을 마친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손가을의 멱살을 잡으려 다가갔다.탁!염구준이 그의 손을 쳐내며 싸늘하게 말했다.“당신들이 가을이랑 가을이 가족들 괴롭힌 건 생각 안 해? 우린 똑같은 방식으로 돌려준 것뿐이야. 그리고 빚을 갚는 쪽도 당신들 손영이 되겠지!”말을 마친 그는 손가을의 손을 잡고 밖으로 향했다.손태진은 아픈 손목을 잡고 고통스럽게 신음했다. 임원들은 서로 눈치만 보며 아무도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염구준은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 고개를 돌리고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참, 가을이는 여기서 사직하고 내일 새로운 손씨 그룹을 창립할 겁니다. 시간 나시면 참관하러 오세요.”말을 마친 그는 한시도 더 있기 싫다는
손태진 일가는 갖은 방법을 써서 그들을 무너뜨리려고 했다. 그가 먼저 시작했으니 봐줄 이유도 없었다.이 프로젝트는 절대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손가에서 그녀에게 진 빚을 돌려받을 순간이다!“왜 또 감사하다고 그래?”염구준이 웃으며 말했다.“우린 부부야. 난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고.”손가을은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구준 씨, 새 그룹을 창설한다는 거 그냥 해본 소리였지?”염구준은 당혹스러운 아내의 표정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유명한 점쟁이 찾아가서 날짜도 받아놨어. 내일이 최근 몇 달 사이에서 가장 길한 날이래.”“당신을 놀라게 해주고 싶었어.”그는 사랑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손가을을 바라보았다.손가을은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어쩔 바를 몰라했다.‘농담이 아니었어? 이건 나만을 위한 이벤트?’염구준이 돈이 많은 줄은 진작에 알았지만 그룹 하나를 통째로 자신에게 선물할 줄은 몰랐다. 아무리 사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이건 너무 과했다.이 선물을 받는다면 그녀는 염구준에게 돌려줄 수 없는 빚을 지게 된다.염구준은 충격에 빠진 손가을을 바라보고 말없이 차를 몰아 아파트로 돌아왔다.진숙영은 지난번에 청해 은행장에게 받은 카드로는 채소를 사는 용도로만 아껴서 사용했다.집에 들어서자마자 향긋한 반찬 냄새가 풍겨왔다. 전부 염구준의 입맛에 맞춘 밥상이었다.“둘 다 어서 씻고 밥 먹으러 와!”진숙영은 손에 묻은 물기를 앞치마에 닦으며 안방을 향해 소리쳤다.“당신도 빨리 밥 먹으러 와. 하루종일 책 보고 있었어?”지난번에 본가에서 돌아온 뒤로 손태석은 투자공부에 몰두했다.손가을은 갑갑해하는 진숙영을 보고 안방에 다가가서 웃으며 아빠를 불렀다.“아빠, 엄마가 부르잖아요. 빨리 나와서 식사해요!”손태석은 그제야 안경을 벗고 일어서다가 살짝 수심이 드리운 손가을의 표정을 보고 걱정스럽게 물었다.“가을아, 뭔 고민 있어?”“아빠, 저….”손가을은 머뭇거리다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저 퇴사했어요. 앞으로
그녀도 상황을 잘 모르니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다.“장인어른, 가을이 능력으로 6개월 안에 우리 회사를 청해시 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킬 겁니다.”염구준이 웃으며 말했다.손가을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새침하게 콧방귀를 뀌었다. 무슨 회사 운영이 동네 구멍가게처럼 쉬운 줄 아나?손태석은 떨리는 손으로 수저를 내려놓고 한참을 멍하니 사위를 바라보았다.가슴에서 뜨거운 용암이 솟구치고 있었다.한번 실패한 뒤로 손영에서는 더 이상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기를 쓰고 손 회장 앞에서 자신을 증명하려고 했지만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오히려 아부에 능한 손태진이 더 큰 관심을 받았으니 실망은 차곡차곡 쌓여만 갔다.그런데 한때는 가장 무시했던 데릴사위가 회사 하나를 통째로 그에게 안겨줄 줄이야!손태석은 눈시울이 뜨거워져서 감격한 표정으로 염구준을 바라봤다.“장인어른, 저한테 고마워하실 필요는 없어요.”염구준은 감격을 금치 못하는 손태석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저는 가을이 남편이고 장인어른의 사위잖아요. 장인어른 능력으로 회사를 최강으로 이끌어 주실 거라 믿습니다!”그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진숙영이 반찬을 들고 주방에서 나왔다.염구준을 위해 준비한 밥상이었다.“아까 무슨 회사 얘기가 나오는 것 같던데?”진숙영이 호기심 어린 얼굴로 물었다.“네.”손가을은 상황을 진숙영에게 설명했다.진숙영도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식사가 끝난 뒤, 진숙영은 설거지하러 가는 김에 손가을을 따로 불러 작은 소리로 말했다.“가을아, 예전에는 몰랐는데 구준이 걔 정말 괜찮은 사람 같아.”“네?”손가을은 당황한 표정으로 얼굴을 붉혔다.“엄마,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거예요….”“이상한 소리하려는 거 아니야.”진숙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염구준이 이 집으로 처음 왔을 때, 쌀쌀맞게 대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손가을이 그에 비하면 부족해 보였다.지금까지 보인 염구준의 행보를 봤을 때, 그는 엄청난 신분을 가진 게 틀림없었다. 왜 굳이 데릴
오늘 만약 염구준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그들은 전부 물고기들의 먹이가 되었을 것이다.“빨리 항행하라고 하세요. 뭔가 이상합니다.”염구준의 갑작스러운 말에 사람들은 이해가 되지 않아 어리둥절해졌다. “네, 말하고 오겠습니다!”그러나 눈치가 생긴 사람들은 염구준의 뜻을 알지 못해도 그대로만 하면 된다는 걸 알고 있어 곧바로 달려갔다.그들은 염구준을 한치도 의심하지 않았다.염구준은 흡족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면을 바라보며 물었다.“스텔라성의 성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으십니까?”이번에 스텔라성의 성주는 두 개의 판을 짰는데, 하나는 겉면으로 보이는 부성주 베르였고, 다른 하나는 오랫동안 숨어있던 노대영이었다. 다른 걸 다 따지고 나서 판을 짠 것만 본다면 정말 훌륭한 계획이었다.그랬기에 염구준은 그를 중시했다.노신기와 아타는 미간을 찌푸리고 서로를 바라본 뒤, 늙은 아타가 입을 열었다. “성주의 이름은 노세입니다. 압도적인 실력의 소유자로, 진 적이 없습니다.”“하지만 지난 20년간, 외부에서는 그의 모습을 본 이가 없습니다. 폐관 중이라는 소문도 있고, 이미 사망했다는 이야기도 돌고 있지요.”“그의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라, 저희도 아는 게 많지 않습니다.”이야기를 들은 염구준은, 오히려 흥분한 듯한 웃음을 지었다.“흐음, 전부 사실이라면 꽤 괜찮은 상대가 되겠군요.”방금, 막 육체의 극한을 돌파한 염구준은 적당한 시험 상대가 필요했다.‘대단해.’주변 고위 간부들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염구준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다만 약간 이해가 되지 않을 뿐이었다.스텔라성 성주 같은 괴물은, 대부분 기겁하며 피하려 하는데, 정면 승부를 기대한다니까 말이다.“그나저나 염 선생님, 전에 올라오실 때, 인원이 적던데, 혹시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노신기는 다른 걸 얘기하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아, 이거 아십니까?”그의 손에는 투명한 비닐에 담긴 작은 물방울이 들려 있었는데, 외부에는 진기가 감돌았다.‘어라?’조금 더
이 독에 중독된 무인은 일시적으로 기운이 흩어지고, 단전이 봉쇄되어, 꼼짝없이 폐인 신세가 될 수밖에 없었다.만약 과다 복용할 경우, 목숨까지 위험해질 수 있었다.“이런 희귀한 독약은 스텔라성 성주가 준 거겠지?”염구준이 흥미롭게 물었다.그는 이번에 처음으로 진짜 산기봉단을 보았고, 게다가 그 양이 상당했기 때문에 꽤나 관심이 갔다.“맞아. 얼른 저 녀석을 잡아!”노대영은 승리자처럼 손을 휘저으며 부하들에게 명령했다.그는 희귀한 독약인 산기봉단에 절대적인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에휴.”아타 등 사람들은 이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염구준마저 당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이제 구세주가 사라졌으니, 최악의 경우 전부 몰살당할 수도 있었다.“가서 두들겨 패! 나 아까 진짜 쫄아서 오줌 쌀 뻔했단 말이야!”몇몇이 소리치며 달려들었고, 염구준을 한껏 때려서 화풀이를 하려 했다.반보천인급 고수를 때릴 기회는 흔하지 않으니까 말이다.우웅. 그러나 그 순간, 검광이 번쩍이더니 달려들던 사람들 전부가 쓰러졌다. 그들의 목에는 옅은 혈흔이 있었는데, 상처는 아주 작았지만 모두 목숨을 잃었다.“이 독이 아무리 강해도, 나를 상대하려면 아직 한참 멀었어.”염구준은 조용히 진기를 운용하며, 체내에 남아 있던 독기를 모두 없애버렸다.육신이 이미 반보천인의 극한의 경지에 다다른 탓에 약물 저항성도 엄청나게 강해져 그는 산기봉단 같은 독약 따위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너... 이건 말도 안 돼!”노대영은 절규하듯 외쳤다.희망이 눈앞에서 산산조각 나자, 정신이 붕괴되기 직전이었다.곧 있으면 승리할 수 있었는데, 이젠 그게 다 물거품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그는 차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스텔라성 성주랑 뭘 꾸민 거지?”염구준은 서두르지 않고 물었다.해독제 같은 건 이제 관심 없었다. 상대가 정직하지 않으니까 말이다.“난 진작 그분의 문하로 들어갔어. 언젠가는 그분이 내 복수를 도와줄 거다!”“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는데, 내가 무슨 잘못이 있어
염구준은 주머니를 집어 들어 곁에 있던 그레이에게 휙 던져주며 분부했다.“먼저 기운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해독제를 나눠줘.”“네.”그레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분노에 찬 눈빛으로 노대영을 흉악하게 노려보았다.반보천인으로서 이런 함정에 걸려들었다는 게 조금 창피해서였다.노대영은 사태가 자신에게 불리하게 흘러가는 걸 감지하고,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할 말이 있습니다.”“해.”염구준은 싸늘한 표정으로, 단 한 마디만 툭 내뱉었다.그레이와 다른 이들이 힘을 회복하고 나면, 그는 절대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기에 곧 죽을 이의 유언쯤은 들어줄 수 있었다.노대영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얼른 말을 이었다.“자식으로서 아버지의 원수에게 복수하는 건 당연한 일이죠?”“그래.”염구준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딱히 다른 변수가 없다면, 이 말을 부정할 이유가 없어서였다.‘어라?’이에 주변 사람들은 놀라 눈을 크게 떴다.말투로만 보면, 염구준이 노대영의 편을 들어주려는 것 같아서였다.그러나 방금 전에는 또 그들을 구해주었기 때문에 그들은 염구준이 무슨 생각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노대영은 염구준의 마음을 돌린 줄 알고 속으로 기뻐하며 바로 말을 이었다.“이 도리를 알고 계시니, 그럼 행동에 옮겨도 되겠죠.”노대영은 혹여나 다른 변수가 있을까 두려워 단검을 꽉 쥐고 중상을 입고 바닥에 쓰러져 있던 노신기에게 달려들었다.그레이 등이 조금 있다가 어떻게 나올지는 크게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복수를 하는 게 우선이었으니까 말이다.쾅!하지만 달려가자마자 염구준의 발에 얼굴을 맞아서 옆으로 나가떨어졌다.그의 코와 입에서는 순식간에 피가 줄줄 흘렀다.“날 가지고 노는 거냐, 염구준!”“허, 내가 나설지 안 나설지 짐작이 안 됐나봐?”염구준은 비웃으며 말했다.그는 노대영의 말을 부정하진 않았지만 상대방의 행위를 몹시 혐오했다.아버지를 죽인 원수에게 대놓고 복수하는 건 괜찮지만, 그 아비가 악행을 일삼던 사람이고, 은혜를 원수로 갚는 방식에,
그러나 몸속에 독이 퍼진 탓에 기운을 끌어올릴 수가 없어 모두 답답하게 속만 태울 수밖에 없었다. 노대영이 혓바닥을 자르려고 할 때, 멀리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대영 문주님, 염구준인 것 같습니다!”이름을 듣자마자, 노대영의 얼굴에서 희열이 싹 사라지고, 이내 짙은 어둠이 드리웠다.기습에 성공한 후 바로 도망쳤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고래를 타고 쫓아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염구준 한 사람만으로 충분히 그들을 몰살할 수 있었다.“어서 고래잡이 작살이랑 그물 그리고 멀리에서 공격할 수 있는 무기들을 준비해.”노대영의 가슴 깊은 곳에서 두려움이 급속히 퍼져갔다.허겁지겁 지시를 내리긴 했지만 겨우 쇳조각 몇 개로 염구준을 막겠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휙휙!염구준은 하늘을 가르며 날아오는 작살, 그물, 조명탄 따위를 보며 입꼬리를 비웃듯이 끌어올렸다.아직 사격거리에도 들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공격을 했기 때문이었다.‘적지 않게 겁을 먹었나 보네.’그는 생각했다. 역시나 첫 번째 공격은 전부 허탕이었다.염구준은 거대한 향유고래를 타고 빠르게 이동했고, 이윽고 두 번째 공격이 시작됐다.커다란 작살 하나가 고래의 머리를 향해 곧장 날아들었는데, 맞으면 죽지 않더라고 심각한 부상을 입을 게 뻔했다.우웅!염구준은 검기 한 줄기를 내보내 날아오던 작살을 두 동강 낸 뒤, 작살에 묶인 쇠사슬 위로 몸을 던져, 빠르게 어선으로 돌진했다.풍덩!향유고래는 거대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물속으로 잠수했다.노대영은 염구준이 미친 듯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걸 보자마자 다급히 소리쳤다.“어서, 어서 배에 못 올라오게 사슬을 끊어!”그도 자신이 염구준과 맞서봤자, 단 한 줌의 승산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구자검법, 검일참공!”염구준은 배 위 인원들의 움직임을 보자마자 망설임 없이 강한 검술을 발동해 검기를 날렸다.제대로 검기를 축적하진 못했기에, 완벽하게 완성된 검일참공은 아니었고, 약간의 반동
파악!곧이어 물기둥이 하늘로 솟구치며 거대한 향유고래가 염구준과 멀지 않는 곳에 떨어진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마치 떠나기 아쉬워하는 듯했다.촤악!염구준은 몸을 날려 향유고래의 머리 위로 뛰어오른 뒤, 세 척의 어선 쪽으로 진기를 날려 물보라 일게 했다.이에 향유고래는 곧장 방향을 틀고, 어선을 향해 빠르게 헤엄치기 시작했다.말이 통하지 않아 이런 방식으로 밖에 교류할 수 없었지만 별로 큰 문제는 없었다.그 시각, 1호 어선은 다른 어선보다 조금 더 시끌벅적했다.노대영은 배의 지휘권을 장악한 뒤, 끝까지 저항한 소수만을 제거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 포로로 붙잡아두었다.물론 그가 자비로워서가 아니었다.그저 이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어떻게 복수하는지 지켜보게 하기 위해서였다.“대영 문주님, 준비 완료됐습니다. 언제든 시작 가능합니다.”노대영에게 붙은 아첨꾼 하나가 다가와 공손하게 말했다. 이번에 출정한 천기문 문도 중 절반 이상이 이미 노대영 편이었다.쿵!노대영은 부도 갑옷을 입은 채로 웃으면서 팔을 휘둘러 노신기를 바닥에 내던졌다.“악독한 놈. 네가 내 아버지를 죽였으니 난 오늘 아버지의 복수를 할 거다.”며칠 전에 대의를 위해서라면 혈연관계는 얼마든지 끊을 수 있다는 그의 말은 그저 노신기를 안심시키기 위함에 불과했다. 그의 가슴 속에 맺힌 복수심은 한순간도 식지 않았었다.“하아...”노신기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그의 창백한 얼굴엔 깊은 후회가 서려 있었다.‘그때 불쌍해 보인다고 해서 검은 머리 짐승을 거두는 게 아니었는데.’그는 생각했다. “모든 일은 내가 벌인 거니까 찢어죽이든, 뭘하든 나한테만 해. 상관없는 다른 사람들 건드리지 말고.”지금 이런 상황에 이른 이상, 그는 더 도리를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전에 이미 노대영에게 그의 출신을 말해주며 그의 아버지가 눈 깜빡하지 않고 살인을 저지르는 변태 악마라고 말해주었으나 그는 전혀 듣지 않았기 때문에 말해봤자 쓸모가 없다는 걸 알아서였다.스승과 제자의
염구준을 향해 날아오는 것은 엄청난 기운을 내뿜고 있는 금강 방망이 한 개 뿐이었다. 기운의 량으로 보아 세 명의 힘이 전부 들어있는 게 분명했다.이건 베르 일행이 전력을 건 최후의 일격이었다.쾅!한 자루의 검과 한 개의 방망이가 충돌하며 눈부신 불꽃을 일으켰다.폭발적인 에너지가 주변에 퍼져나가며 양측은 잠시 균형을 이루었다.세 사람의 실력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막았다! 얼른 보트 준비해, 후퇴한다!”베르의 창백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비틀거리며 일어나 부하들에게 소리쳤다.루카와 슈카 역시 서로 부축하며 일어섰다.이미 힘이 고갈된 지라 그들의 얼굴엔 혈색도 없었고, 기운조차 미약했다.더 이상의 싸움은 무리였다.“하압!”염구준은 팔에 힘을 주어 금강 방망이를 밀어내려 했지만, 방망이가 꼼짝도 하지 않는 걸 발견했다. 이 전법은 오묘했다. 상대방이 시전하고 조종하지 않아도 타겟을 쫓아 움직이는 것처럼 홀로 움직였으니까 말이다.이대로라면, 몸이 먼저 나가떨어질 판이었다.베르는 떠나기 전에 염구준을 보며 독한 말을 남겼다.“염구준, 자만하지 마라. 스텔라성은 아직 남아 있으니까. 돌아가서 강자들을 전부 불러와 널 죽여주지.”“돌아갈 수 없을 겁니다.”얼음처럼 차가운 염구준의 목소리에 모두가 몸을 살짝 떨었다.이미 흑풍의 사태로 배운 바가 있었기 때문에 염구준은 적을 쉽게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흥, 말은 누구나 하지. 하지만 나중에 지키지 못하면, 네 얼굴에 침 뱉는 꼴이 될 걸?”베르는 비웃으며 염구준의 말을 맘 속에 담아두지 않았다. 자신의 필살기에 대한 자신감이 넘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염구준은 검을 쥔 양손을 살짝 옆으로 움직이며, 손을 놓았다.우웅!그러자 구자검은 더 이상 금강 방망이와 대치하지 않고, 잔상을 남기며 쏜살같이 전방을 향해 날아갔다.같은 시각에 금강 방망이 역시 미친 듯한 속도로 염구준의 왼쪽 가슴을 향해 돌진했다.이건 자신의 목숨으로 적의 목숨을 바꾸는 방식이었다.꽈악!염구준
“염 선생님, 저희가 가서 막을까요?”노신기는 갈등하며 조심스레 물었다.비록 상대가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염구준 덕분에 얻은 것이 많았기에 돕고 싶어서였다.“아니요. 그냥 가만히 계시면 됩니다.”염구준은 단호하게 거절하며 대형 방패를 계속 내리쳤다.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노신기 일행의 실력으로는 개입해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염구준은 잘 알고 있었다. 가봤자 죽을 게 분명하다는 것도 말이다.한편, 전장의 중심에 선 세 사람은 자신들이 고립무원의 상황에 처해있으며, 살려면 스스로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죽을 각오로 덤벼!”쾅!베르의 눈엔 살기가 가득했다. 손에 쥔 대형 방패는 마침내 한계에 도달하며 산산이 부서졌다.그의 피로 물든 두 손에는 어느새 짧은 단검이 들려 있었고, 그는 그것으로 염구준의 가슴을 향해 휘둘렀다.하지만 날카로운 칼날이 스쳐 지나간 자리에 남은 건 얕은 두 줄의 상처뿐, 역시 깊이 파고들지는 못했다.일반적인 공격은 염구준에게 통하지 않았다. 과거, 염구준이 육체의 한계를 돌파한 리아성전의 전주를 쓰러뜨린 것도 필살기와 정제된 진기 덕분이었었다. 심지어 한 번에 쓰러뜨린 것도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싸웠었다.육체가 극한으로 강해진 상대를 쉽게 이긴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염구준은 베르를 걷어차 밀어낸 뒤, 곧바로 루카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세 명을 상대할 때 가장 확실한 방식은, 하나씩 쓰러뜨리는 것이었다.“젠장!”염구준이 갑자기 타겟을 바꿀 줄 몰랐던 루카는 급히 막아섰지만 한 칼에 밀려났고 이어진 두 번째 공격에 부상을 입고 말았다.강자들의 승부는 한 수, 한 수가 치명상이라 조금의 방심도 용납되지 않았다. 자칫하다간 목숨을 잃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베르는 상황이 좋지 않음을 직감하고 이를 악물며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삼절진을 쓰자!”두 형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베르 뒤로 이동한 뒤, 손을 그의 등에 얹었다.이 필살기에 승패가
베르 세 사람을 포함해 이 싸움을 지켜보던 반보천인들조차 염구준이 쓰는 게 무슨 전술인줄 몰라 어리둥절해졌다.방어를 완전히 포기하고 정면으로 달려드는 행위는 자살이나 다름없으니까 말이다.“건방지긴!”“내가 막을 테니 너희는 죽을 힘을 다해 공격해!”이에 베르의 일그러진 얼굴에는 약간의 기쁨이 섞였다. 그는 달려오는 염구준을 보며 포효하듯이 명령을 내렸다. 해저에서의 전투 경험에 의하면, 그는 자신이 특별히 제작한 대형 방패로 염구준의 공격을 최소 서른 번은 막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쾅!그러나 시작에 불과한 염구준의 첫 공격에 베르는 몇 걸음이나 밀려났고, 방패엔 반 치 정도 깊이의 칼자국이 선명히 새겨졌다.이 방패는 염구준의 공격을 막기 위해 베르가 특별히 주문 제작한 거라 다른 것보다 더욱 단단하고 두꺼웠다.텅텅!루카와 슈카도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동시에 염구준의 옆구리를 향해 칼을 박아넣었다.손목에 힘을 잔뜩 실은 터라 염구준의 호체진기를 가뿐히 뚫었지만 몸에는 옅은 상처밖에 내지 못했다.아무리 힘을 더 실어도, 더 깊숙이 찌를 수가 없었다.“육체의 극한까지 도달했다고?”싸움을 지켜보던 반보천인들은 일제히 감탄을 내뱉었다.두 명의 최강 반보천인의 공격을 오직 맨몸으로 버텼다는 것부터 염구준의 육체가 이미 극한까지 도달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쾅! 쾅!염구준은 루카 형제의 공격을 거의 무시한 채, 계속해서 베르에게 맹공을 퍼부었다.공격이 계속 되면서 방패에는 칼자국이 점점 더 많아졌고, 베르도 연달아 밀려났다. 이 엄청난 충격력에 그의 손바닥은 결국 찢어져 버렸고, 상처에서는 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공격 안 해? 밥 안 먹었어?”베르는 체내의 기혈이 요동치는 것을 느끼며 방패를 들고 소리쳤다.그제야 그는 그가 자신의 실력을 과대평가 했음을 깨달았다.‘방패가 30번의 공격을 버틴다고 해도 내가 버티지 못해.’염구준의 몸이 반보천인의 극한에 다다른 이후, 방어력 뿐만 아니라 힘도 강해져서 전보다 공격이
모두가 향유고래의 위를 보고 눈이 커졌다.기뻐하는 사람도,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었다.사람과 고래가 마음을 합쳐 수많은 고난을 뚫고 마침내 위험천만한 해저 심연에서 빠져나온 거다.그 과정의 험난함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노신기는 드디어 마음이 놓였다는 듯, 기뻐하며 입을 열었다. “염 선생님, 돌아가시지 않으셨군요?”말을 내뱉은 후, 그도 이상함을 느꼈지만, 이미 말을 마친 후라 뭐라고 바꿀 수도 없었다. “어... 네, 살아있긴 합니다.”염구준은 대수롭지 않게 답하며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냈다.솔직히, 좀 웃긴 질문이었다.조금 떨어진 곳에서, 완전히 멀쩡한 염구준을 본 베르는 숨이 턱 막혔다.“염구준, 너...”깊고 깊은 바다 밑에서 화산 폭발과 함께 대지진이 일어난 상황에, 잠수 장비도 없다는 건 그냥 죽음을 의미했다.하지만 염구준은 그 위기 속에서 향유고래를 몰아 드라마처럼 살아 돌아왔다.베르로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었다.“진정해, 나이도 있는데 괜히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와서 그 자리에서 죽으면 곤란하잖아.”염구준은 베르를 바라보며 말했다. 진짜로 열받아서 죽어버리길 바라는 눈치였다.서로 죽이려 드는 사이끼리 예의는 사치일 뿐이었다.“흥! 바다 밑에선 겨우 살아남았을지 몰라도, 여기선 끝이다.”“루카, 슈카! 저 녀석을 죽여라!”베르는 참지 못하고 이를 악물고 염구준을 가리켰다.휙휙.하지만 그 두 형제는 어깨를 으쓱이더니 빠르게 몸을 뒤로 빼며 보트를 밟고 전함 위로 훌쩍 올라가 버렸다.“부성주님, 저 녀석은 강하니 부성주님께서 직접 나서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입에 발린 소리로 한껏 띄워주니 베르도 그들에게 화를 낼 수 없었다.셋이 하나를 상대하는 상황임에도 정작 그의 마음속엔 불안감만이 가득했다.염구준의 강함이, 그에게 공포로 다가왔기 때문이다.염구준은 검을 들고 베르를 향해 겨누었다.“이제 끝을 보자.”이제 거의 모든 상황이 정리되었으니, 갚을 원한은 갚고, 끝낼 일은 끝낼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