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너희들….”사람들이 아부하기 시작하자, 이장공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이렇게까지 자신을 낮추며 염구준에게 절절매는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았다.‘염구준의 명성이 이렇게 높았단 말인가?청해 무관의 제왕… 과연 헛소문은 아니었군!’“모두들 진정하세요. 오늘은 신위무관에서 공개적으로 제자를 받는 날이니, 순서 상관없이 모두 참여하실 수 있어요.”염구준이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런 다음 이장공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조용히 속삭였다.“이제 상황 판단 좀 돼? 내 쪽에서는 더 이상 널 받아줄 수 없어. 넌 저기 가서 무관 화장실 청소나 맡도록 해.”‘뭐, 뭐라고? 화장실 청소?’“염구준, 사람을 업신여겨도 정도가 있지!”결국 분노를 참지 못한 이장공이 남은 힘을 담아 염구준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네놈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날 무시할 자격은 없어!”아직도 개길 용기가 있다니, 염구준은 헛웃음이 나왔다. 그는 담담히 웃으며 가볍게 주먹을 휘둘렀다.펑하고 공력이 어딘가에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동시에 이장공의 몸이 회전하며 몇 십 미터 밖에 있는 벽을 부수고 대강당 옆에 있는 화장실 안쪽으로 떨어졌다. “앞으로 이곳이 곧 너의 일터가 될 것이다.”염구준은 그 말과 함께 뻗었던 주먹을 내리며 익살스러운 미소를 지었다.“맡은 바를 잘 수행한다면, 3년 뒤쯤 너의 처우를 다시 고려해보마.”그렇다는 건 이장공이 합격했다는 말인가?“이 사형, 축하해요!”“그러니까요, 정말 축해해요. 제일 먼저 신위무관에 합격한 제자가 되었네요!”“비록 화장실 청소하는 임무를 맡게 되긴 했지만, 그래도 개산대제자가 되다니! 모두 다 같이 사형에게 인사하러 가자!”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했다. 몇몇 이들은 말한대로 이장에게 다가가 깍듯이 인사를 건네기까지 했다.“화장실 청소를 맡은 첫 제자라니….”이장공은 바닥에 누운 채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다.이게 다 무슨 일이란 말인가?그는 은둔세가 중 최고로 인정
굴욕도 굴욕이지만, 이장공은 염구준의 실력에 놀랐다. 은둔세가를 나오면서 그는 이미 염구준이 옥패를 3개나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언질 받았었다. 그래서 상당한 실력을 가지고 있을 거란 예상은 했지만, 이정도일 줄은 정말 몰랐다. 처음 염구준의 공격을 받아냈을 때, 이장공은 그가 당연히 옥패의 무공을 썼을 거라 생각했었다. 옥패만 아니었어도 저 나이에 이 정도 실력은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좀 전에 염구준이 한 말을 들은 이장공은 자신의 추측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염구준이 사용한 것은 옥패의 힘이 아닌 원씨 가문의 권법 신원통배권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전혀 대응할 수 없었다. 어쩌면 염구준의 경지는 단순 옥패만으로 얻은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싸한 예감이 들었다.“무책이 상책인가….”이장공은 같은 연력대에서 천재로 인정받고 있는 만큼 상황파악이 빨랐다. 그는 주변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다.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가 그를 건드렸다.“대사형.”이제 막 무관에 입문한 정식 제자 중 한 명이 이장공을 부하며 말했다.“축하해요, 대사형. 관주님께서 좀 전에 대사형을 공식적으로 신위무관의 개산대제자로 임명하셨어요. 하지만 화장실 청소는 대사형 업무이니, 반드시 직접 하셔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이장공은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개산대제자가 되는 건 전혀 그의 계획에 있지 않았다. 이장공은 이 말을 듣자마자 버럭 화를 내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신위무관, 염구준… 두고 봐!“내력이 심상치 않네요.”이장공이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원종이 조용히 중얼거렸다.“확실히 흑풍 존주와 뭔가 연관성이 있어 보이네요.”그의 말대로 염구준한테 옥패가 세 개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주 극소수였다. 특히 적대세력 중에는 흑풍 존주를 제외하면 그의 최측근인 도천연 정도밖에 없었다.이장공이 흑풍 존주와 어떤 관계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깊게 얽혀 있는 것은 분명해보였다.그를 제자로 받아들인 데는
청해시, 손씨 그룹 본사.모든 직원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염구준이 봉황국으로 향하던 그 시기, 오샤나지 그룹에서 손씨 그룹의 해외 진출을 전적으로 지원할 거란 공식적인 발표가 있었다. 동시에 그룹 해외지사 총책임자로서 그룹 원로인 임명성이 임명되었다.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고, 이제 행동으로 옮길 시기였다!손씨 그룹의 첫 시작은 의료 미용이었지만, 지금은 매우 빠르게 발전하여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게 되었다. 그 중에 하나, 광물도 포함되어 있었다.서북 광구에서 대량의 그라펜이 발굴되었다. 손가을은 이 사업이 더 발전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투자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 덕에 각종 첨단 기술들이 투입되었고, 그라펜 사업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었다.“염 부장님, 손 대표님.”회사 최고층에 있는 그룹 대표실, 임명성은 두툼한 보고서를 든 채 공손히 염구준과 손가을에게 인사를 건넸다.“해외 지사 쪽과 얘기해보니, 오샤나지 그룹에서 무상으로 지원을 해주고 있다네요. 하지만….”그는 걱정이 많았다.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익을 추구해야 마땅한데, 오샤나지 그룹에선 대가 없는 지원을 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런 호의를 베푸는 것일까?“오샤나지 그룹에서 딴 마음먹을까 봐, 걱정되시나요? 안심하세요. 그들은 감히 그러지 못할 거예요.”염구준이 확신에 찬 미소를 지어 보이며 임명성을 향해 말했다.“앞으로 해외 사업은 전적으로 이사님께서 맡게 되실 텐데, 혹시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 얘기 좀 해볼까요?”임명성은 자세를 발로한 다음,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화련상조회!”이 조직이라면 염구준도 들어본 바가 있었다.처음 화련상조회가 만들어졌을 때는 지금의 규모가 아니었다. 화련상조회가 처음 설립된 목적은 해외에 나가 있는 자국민들을 지키고 지원하는 역할을 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시간에 따라 규모가 커지고, 점차 첫 목적을 뛰어넘는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했다. 이제 용하국에서 해외를 진출하려면 화련상조회의 역할
그날 오후, 블랙호크국, 엘 가문 정원.엘 가문의 장녀 앨리스는 직접 작은 연회를 열어 블랙호크국의 기업 대표들을 초청했다. 연회에 초청받은 인원이 총 백명을 넘지 않았기 때문에 공간은 아주 넉넉했다.그들 중 앨리스가 가장 주목하는 인물은 화련상조회의 원로 회원중 하나인 진씨 가문이었다!“앨리스 씨가 용하국으로 넘어간 뒤로, 참 오랜만에 만나네요.”이때, 베르사체 맞춤 정장을 입은 한 젊은 남자가 칵테일을 들고 앨리스에게 다가왔다.“이번엔 언제 또 떠나실 계획이신가요? 듣기로는 오샤나지 그룹이 용하국에서 전면 철수했다고 하던데, 앞으로 용하국에 갈 일은 없으신 건가요?”앨리스는 레드 와인을 한 모금 마시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그때 김씨 가문과 합작하여 기업을 운영하다가 건드리지 말아야 할 존재를 건드린 탓에, 엘 가문은 블랙호크국 국주의 명령으로 어쩔 수 없이 용하국에서 철수해야만 했다.비록 지금은 그 상대와 화해했지만, 국주의 명령은 여전히 해제되지 않은 상태였다. 앨리스는 자세한 내막을 알지 못했지만, 분명 그것 또한 염구준과 모종의 관계가 있을 거라 추측했다.염구준은 정말 수수께끼 같은 남자였다!“먼저 물어보셨으니, 저도 솔직하게 말할게요.”하지만 앨리스는 이러한 사정을 외부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술잔을 든 채, 사람들을 둘러보며 눈부신 미소를 지었다.“오늘 여러분들을 초청한 것은 부탁드릴 것이 있기 때문이에요.”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하나 둘 앨리스의 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천하의 엘 가문의 장녀 앨리스가 부탁할 일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심지어 그녀는 화련상조회의 원로 회원 중 한 명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도무지 아쉬울 것이 없어 보이는 앨리스가 부탁이라니, 모두들 의아했다.“앨리스 씨, 말씀만 하세요.”“맞아요. 저희는 무엇이든 들어드릴 준비가 되어 있어요.”“그런 거라면 편하게 연락 주시지, 이렇게 거창하게 연회 열 필요까지 없었는데….”너도나도 열정적으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모두들 이 상황이 매우
진서호가 들고 있던 와인잔을 가볍게 흔들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앨리스 씨, 아무리 당신이라도 이건 좀 선을 넘는 부탁이 아닌가요? 뛰어난 기업이 어디 한둘이에요? 자질만 본다면, 너도나도 다 화련상조회에 들어왔겠죠. 하지만 우리가 봐야 하는 건 그것뿐만이 아니잖아요.”진서호가 반대하다니, 앨리스는 눈살을 찌푸린 채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는 그를 바라보았다.“너무 성급한 결정인 것 같네요. 제 말 아직 안 끝났어요. 제 친구는 기업인으로서 자질이 충분할 뿐만 아니라, 머리면 머리, 인품이면 인품, 외모까지 어느 하나 빠진 곳이 없는 용하국 최고 미녀예요. 진서호 씨, 다시 고려하실 생각 없으세요?”‘용하국 최고의 미녀?’ 그 말을 들은 진서호의 눈빛이 갑자기 밝아졌다. 하지만 이내 앨리스를 바라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의 눈엔 앨리스야말로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최고의 미녀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엘 가문의 장녀였다. 앨리스와 결혼하는 순간 엘 가문이라는 든든한 아군까지 생기는데, 진서호의 눈에 다른 여자가 들어올 리 없었다. 두 가문이 합친다면 세계 재벌 10위도 꿈이 아니었다!“진서호 씨께서는 모르고 계시군요.”그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는 것을 지켜보던 앨리스가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제 친구의 장점은 그 뿐만 아니에요. 많은 남자들이 그녀에게 구애를 했지만, 이어질 수 없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아세요? 바로 그녀의 배경 때문이에요. 제 친구는 엘 가문보다 더 뛰어난 출신을 가지고 있어요. 정말 흥미 없으신가요?”그 말에 비로서 진서호의 안색이 바뀌었다. 그토록 대단한 배경을 가진 여자라니, 심지어 엘 가문보다도 더 뛰어나다고? 진서호는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미 수년간 앨리스를 향해 마음을 표현해 왔었지만, 매번 돌아온 것은 거절이었다. 어쩌면 그녀보다는 그 친구를 공략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지도 몰랐다. 만약 성공한다면… 진서호는 달콤한 상상에 빠졌다.“그래요, 그럼!”잠시 저울질하던 진서호가 높이 잔을 들
세 사람이 점점 다가오는 모습을 본 안내데스크 직원이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여긴 아무나 함부로 발을 들일 수 있는 곳이 아니에요.”누가 봐도 그들을 무시하는 태도였다. 순간 울컥한 임명성이 따지려던 순간, 옆에 있던 염구준이 말리며 나섰다. 겨우 안내데스크 직원과 감정 소모할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이다.“임 이사님.”염구준이 임명성을 부르며 눈짓했다. 그의 의도를 알아차린 임명성은 감정을 다스리며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안내데스크 직원에게 내밀었다.“용하국 손씨 그룹 소속, 해외사업 대표 이사 임명성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건….”“필요 없어요. 돌아가세요.”옆에 있던 다른 안내데스크 직원이 귀찮은 듯 손을 휘저으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여긴 아무나 받아주지 않아요. 뭘 제대로 알고서 덤비세요. 이런 서류 가져와봤자 추천서 없이는 아무 쓸모 없어요. 괜한 시간 낭비하지 마시고 가세요.”추천서라니, 임명성은 당황해 말문이 막혔다. 앨리스가 손가을에게 전화할 때 그도 옆에 있었지만, 추천서 얘기가 나온 것 같지 않았다.“죄송하지만, 저희가 좀 특수한 경우라서요.”임명성이 자료를 다시 품에 넣으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여기 오기 전에 이미 앨리스 씨와….”하지만 직원은 전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꺼지라면 꺼져!”이때, 어디선가 냉담한 남자의 목소리가 임명성의 말을 끊었다.“여긴 화련상조회야. 잡상인이 설칠 데가 아니라고! 경호원 어디 있어? 당장 안 쫓아내고 뭐해!”그러자 로비 입구에 서있던 우람한 경호원 열댓 명이 몰려와 임명성과 염구준 그리고 손가을을 에워쌌다.“오해예요. 오해!”예상치 못한 상황에 임명성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러나 곧 중년 남자 가슴에 걸려 있는 사원명을 보고 환한 표정을 지었다.“오 주임이시죠? 반갑습니다! 저는 용하국 손씨 그룹 해외 사업을 맡고 있는 임명성이라고 합니다. 화련상조회에 가입하기 위해 일부러 용하국에서 여기까지 날아왔습니다. 그리고 여기 이분들은….”잠시 말을 멈춘 임명
“솔직히 말해, 이미 용하국에서 우리 화련상조회에 가입할만한 기업은 이미 다 가입했어. 아직 가입하지 못한 새 기업이라고 해봤자 신주 그룹 정도밖에 없는데, 어디서 들어보지도 못한 손씨 그룹이야? 신주 그룹 아니면 썩 꺼져! 경호원, 안 내보내고 뭐해?”그 말에 경호원들이 허리춤에서 곤봉까지 뽑아 들며 그들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여기서 반항한다면 무력이라도 쓸 기세였다.“신주 그룹이라고 했나?”이때, 돌아가는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염구준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신주 그룹이라면 우리랑 꽤 인연이 있지. 세 달 전에 우리 그룹에서 임수합병을 진행한 기업이니까. 이 정도면 우리도 화련상조회에 가입할 자격이 되려나?”그 말을 들은 오정형은 충격에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쳤다. 신주 그룹은 신흥 기업들 중에 꽤 유명한 쪽에 속했다. 실제로 자산도 10조를 넘어, 추천인만 있다면 충분히 화련상조회에 가입할 여건이 됐다. 그래서 오정형도 나름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들어보지도 못한 손씨 그룹에 인수가 되었다니? 정말 황당무계했다.“오 주임, 꽤 소식이 늦나 보네?”염구준이 오정형을 바라보며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신주 그룹은 이제 존재하지 않아. 현재 용하국 의료 미용 업계의 탑은 손씨 그룹이야. 이렇게 정보가 느려서야, 화련상조회의 명성이 아깝군.”염구준이 바닥에 흩뿌려진 자료들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못 믿겠으면 이 자료들을 다시 주워서 살펴보던가, 아니면 인터넷에 검색해 봐.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니까!”그 말에 오정형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키며 바닥을 바라봤다. 하지만 이미 서류들은 산산조각나 다시 줍는다고 해도 읽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는 서둘려 핸드폰을 꺼내 손씨 그룹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그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모든 것이 염구준이 했던 말대로였다. 신주 그룹은 진작에 손씨 그룹에 인수되어 사라졌으며, 눈앞에 있는 여자가 바로 그 손씨 그룹 대표였다.“손씨 그룹 총 자산은 400조로 추산되며…
말을 마친 염구준은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오정형을 뒤로한 채, 손가을을 데리고 성큼성큼 출구 쪽으로 향했다. “염 부장님, 잠시만요. 잠시만요!”오정형이 땀을 뻘뻘 흘리며 다급하게 염구준과 손가을의 뒤를 쫓아갔다. 그리고는 얼굴에 비굴한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제가 눈이 멀어 태산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일단 다시 얘기 나눠 보시죠. 제가 안된다고 확정한 건 아니었잖아요. 오해가 있었던 거니, 일단 안에 들어가서 다시 대화 나누시죠.”오정형은 어떻게든 자신의 실수를 만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손씨 그룹과 관계를 잘 이어온다면 분명 이루 말할 수 없는 이익과 사람들의 부러움을 살게 뻔했다. 오정형은 황금알을 낳아줄 거위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다시 이들의 마음을 돌리고 화련상조회에 가입하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자존심을 버리고 얼굴에 철판을 깔 때였다. “이제 와서 아쉽나? 하지만 이미 버스는 지나갔어.”염구준은 뻔히 보이는 수작에 넘어갈 위인이 아니었다. 그에겐 더 이상 갖춰야 할 예의따위 없었다.“비켜!”말이 떨어지는 동시에 염구준은 내공을 운용해 오정형을 옆으로 밀쳤다. 그리고는 망설임없이 손가을과 임명성을 데리고 화련장조회 본부를 떠났다. “손 대표님, 염 부장님!”오정형은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떠나가는 벤츠를 붙잡으려 몇 번이고 외쳤지만, 소용없었다. 상황이 끝났다는 것을 깨닫자, 그는 분노에 이를 뿌득뿌득 갈았다.이 빌어먹을 놈!오정형은 화련상조회의 책임자로 임명된 뒤로 남에게 아첨을 받으면 받았지, 이런 무시는 처음이었다. ‘감히 나를 거절해?’오정형은 반드시 이 굴욕을 갚아 주리라 마음먹었다!“아무리 대단한 기업이라도 화련상조회 전체가 힘을 합친다면, 상대나 될 것 같아? 손씨 그룹, 두고 봐!”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랐다. 오정형은 염구준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음에도 지치지 않고 고래고래 욕설을 퍼 부었다.“무례한 놈들, 어디 한번 날 무시한 대가를 톡톡히 치러 봐!”
오늘 만약 염구준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그들은 전부 물고기들의 먹이가 되었을 것이다.“빨리 항행하라고 하세요. 뭔가 이상합니다.”염구준의 갑작스러운 말에 사람들은 이해가 되지 않아 어리둥절해졌다. “네, 말하고 오겠습니다!”그러나 눈치가 생긴 사람들은 염구준의 뜻을 알지 못해도 그대로만 하면 된다는 걸 알고 있어 곧바로 달려갔다.그들은 염구준을 한치도 의심하지 않았다.염구준은 흡족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면을 바라보며 물었다.“스텔라성의 성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으십니까?”이번에 스텔라성의 성주는 두 개의 판을 짰는데, 하나는 겉면으로 보이는 부성주 베르였고, 다른 하나는 오랫동안 숨어있던 노대영이었다. 다른 걸 다 따지고 나서 판을 짠 것만 본다면 정말 훌륭한 계획이었다.그랬기에 염구준은 그를 중시했다.노신기와 아타는 미간을 찌푸리고 서로를 바라본 뒤, 늙은 아타가 입을 열었다. “성주의 이름은 노세입니다. 압도적인 실력의 소유자로, 진 적이 없습니다.”“하지만 지난 20년간, 외부에서는 그의 모습을 본 이가 없습니다. 폐관 중이라는 소문도 있고, 이미 사망했다는 이야기도 돌고 있지요.”“그의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라, 저희도 아는 게 많지 않습니다.”이야기를 들은 염구준은, 오히려 흥분한 듯한 웃음을 지었다.“흐음, 전부 사실이라면 꽤 괜찮은 상대가 되겠군요.”방금, 막 육체의 극한을 돌파한 염구준은 적당한 시험 상대가 필요했다.‘대단해.’주변 고위 간부들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염구준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다만 약간 이해가 되지 않을 뿐이었다.스텔라성 성주 같은 괴물은, 대부분 기겁하며 피하려 하는데, 정면 승부를 기대한다니까 말이다.“그나저나 염 선생님, 전에 올라오실 때, 인원이 적던데, 혹시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노신기는 다른 걸 얘기하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아, 이거 아십니까?”그의 손에는 투명한 비닐에 담긴 작은 물방울이 들려 있었는데, 외부에는 진기가 감돌았다.‘어라?’조금 더
이 독에 중독된 무인은 일시적으로 기운이 흩어지고, 단전이 봉쇄되어, 꼼짝없이 폐인 신세가 될 수밖에 없었다.만약 과다 복용할 경우, 목숨까지 위험해질 수 있었다.“이런 희귀한 독약은 스텔라성 성주가 준 거겠지?”염구준이 흥미롭게 물었다.그는 이번에 처음으로 진짜 산기봉단을 보았고, 게다가 그 양이 상당했기 때문에 꽤나 관심이 갔다.“맞아. 얼른 저 녀석을 잡아!”노대영은 승리자처럼 손을 휘저으며 부하들에게 명령했다.그는 희귀한 독약인 산기봉단에 절대적인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에휴.”아타 등 사람들은 이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염구준마저 당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이제 구세주가 사라졌으니, 최악의 경우 전부 몰살당할 수도 있었다.“가서 두들겨 패! 나 아까 진짜 쫄아서 오줌 쌀 뻔했단 말이야!”몇몇이 소리치며 달려들었고, 염구준을 한껏 때려서 화풀이를 하려 했다.반보천인급 고수를 때릴 기회는 흔하지 않으니까 말이다.우웅. 그러나 그 순간, 검광이 번쩍이더니 달려들던 사람들 전부가 쓰러졌다. 그들의 목에는 옅은 혈흔이 있었는데, 상처는 아주 작았지만 모두 목숨을 잃었다.“이 독이 아무리 강해도, 나를 상대하려면 아직 한참 멀었어.”염구준은 조용히 진기를 운용하며, 체내에 남아 있던 독기를 모두 없애버렸다.육신이 이미 반보천인의 극한의 경지에 다다른 탓에 약물 저항성도 엄청나게 강해져 그는 산기봉단 같은 독약 따위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너... 이건 말도 안 돼!”노대영은 절규하듯 외쳤다.희망이 눈앞에서 산산조각 나자, 정신이 붕괴되기 직전이었다.곧 있으면 승리할 수 있었는데, 이젠 그게 다 물거품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그는 차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스텔라성 성주랑 뭘 꾸민 거지?”염구준은 서두르지 않고 물었다.해독제 같은 건 이제 관심 없었다. 상대가 정직하지 않으니까 말이다.“난 진작 그분의 문하로 들어갔어. 언젠가는 그분이 내 복수를 도와줄 거다!”“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는데, 내가 무슨 잘못이 있어
염구준은 주머니를 집어 들어 곁에 있던 그레이에게 휙 던져주며 분부했다.“먼저 기운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해독제를 나눠줘.”“네.”그레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분노에 찬 눈빛으로 노대영을 흉악하게 노려보았다.반보천인으로서 이런 함정에 걸려들었다는 게 조금 창피해서였다.노대영은 사태가 자신에게 불리하게 흘러가는 걸 감지하고,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할 말이 있습니다.”“해.”염구준은 싸늘한 표정으로, 단 한 마디만 툭 내뱉었다.그레이와 다른 이들이 힘을 회복하고 나면, 그는 절대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기에 곧 죽을 이의 유언쯤은 들어줄 수 있었다.노대영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얼른 말을 이었다.“자식으로서 아버지의 원수에게 복수하는 건 당연한 일이죠?”“그래.”염구준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딱히 다른 변수가 없다면, 이 말을 부정할 이유가 없어서였다.‘어라?’이에 주변 사람들은 놀라 눈을 크게 떴다.말투로만 보면, 염구준이 노대영의 편을 들어주려는 것 같아서였다.그러나 방금 전에는 또 그들을 구해주었기 때문에 그들은 염구준이 무슨 생각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노대영은 염구준의 마음을 돌린 줄 알고 속으로 기뻐하며 바로 말을 이었다.“이 도리를 알고 계시니, 그럼 행동에 옮겨도 되겠죠.”노대영은 혹여나 다른 변수가 있을까 두려워 단검을 꽉 쥐고 중상을 입고 바닥에 쓰러져 있던 노신기에게 달려들었다.그레이 등이 조금 있다가 어떻게 나올지는 크게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복수를 하는 게 우선이었으니까 말이다.쾅!하지만 달려가자마자 염구준의 발에 얼굴을 맞아서 옆으로 나가떨어졌다.그의 코와 입에서는 순식간에 피가 줄줄 흘렀다.“날 가지고 노는 거냐, 염구준!”“허, 내가 나설지 안 나설지 짐작이 안 됐나봐?”염구준은 비웃으며 말했다.그는 노대영의 말을 부정하진 않았지만 상대방의 행위를 몹시 혐오했다.아버지를 죽인 원수에게 대놓고 복수하는 건 괜찮지만, 그 아비가 악행을 일삼던 사람이고, 은혜를 원수로 갚는 방식에,
그러나 몸속에 독이 퍼진 탓에 기운을 끌어올릴 수가 없어 모두 답답하게 속만 태울 수밖에 없었다. 노대영이 혓바닥을 자르려고 할 때, 멀리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대영 문주님, 염구준인 것 같습니다!”이름을 듣자마자, 노대영의 얼굴에서 희열이 싹 사라지고, 이내 짙은 어둠이 드리웠다.기습에 성공한 후 바로 도망쳤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고래를 타고 쫓아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염구준 한 사람만으로 충분히 그들을 몰살할 수 있었다.“어서 고래잡이 작살이랑 그물 그리고 멀리에서 공격할 수 있는 무기들을 준비해.”노대영의 가슴 깊은 곳에서 두려움이 급속히 퍼져갔다.허겁지겁 지시를 내리긴 했지만 겨우 쇳조각 몇 개로 염구준을 막겠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휙휙!염구준은 하늘을 가르며 날아오는 작살, 그물, 조명탄 따위를 보며 입꼬리를 비웃듯이 끌어올렸다.아직 사격거리에도 들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공격을 했기 때문이었다.‘적지 않게 겁을 먹었나 보네.’그는 생각했다. 역시나 첫 번째 공격은 전부 허탕이었다.염구준은 거대한 향유고래를 타고 빠르게 이동했고, 이윽고 두 번째 공격이 시작됐다.커다란 작살 하나가 고래의 머리를 향해 곧장 날아들었는데, 맞으면 죽지 않더라고 심각한 부상을 입을 게 뻔했다.우웅!염구준은 검기 한 줄기를 내보내 날아오던 작살을 두 동강 낸 뒤, 작살에 묶인 쇠사슬 위로 몸을 던져, 빠르게 어선으로 돌진했다.풍덩!향유고래는 거대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물속으로 잠수했다.노대영은 염구준이 미친 듯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걸 보자마자 다급히 소리쳤다.“어서, 어서 배에 못 올라오게 사슬을 끊어!”그도 자신이 염구준과 맞서봤자, 단 한 줌의 승산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구자검법, 검일참공!”염구준은 배 위 인원들의 움직임을 보자마자 망설임 없이 강한 검술을 발동해 검기를 날렸다.제대로 검기를 축적하진 못했기에, 완벽하게 완성된 검일참공은 아니었고, 약간의 반동
파악!곧이어 물기둥이 하늘로 솟구치며 거대한 향유고래가 염구준과 멀지 않는 곳에 떨어진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마치 떠나기 아쉬워하는 듯했다.촤악!염구준은 몸을 날려 향유고래의 머리 위로 뛰어오른 뒤, 세 척의 어선 쪽으로 진기를 날려 물보라 일게 했다.이에 향유고래는 곧장 방향을 틀고, 어선을 향해 빠르게 헤엄치기 시작했다.말이 통하지 않아 이런 방식으로 밖에 교류할 수 없었지만 별로 큰 문제는 없었다.그 시각, 1호 어선은 다른 어선보다 조금 더 시끌벅적했다.노대영은 배의 지휘권을 장악한 뒤, 끝까지 저항한 소수만을 제거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 포로로 붙잡아두었다.물론 그가 자비로워서가 아니었다.그저 이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어떻게 복수하는지 지켜보게 하기 위해서였다.“대영 문주님, 준비 완료됐습니다. 언제든 시작 가능합니다.”노대영에게 붙은 아첨꾼 하나가 다가와 공손하게 말했다. 이번에 출정한 천기문 문도 중 절반 이상이 이미 노대영 편이었다.쿵!노대영은 부도 갑옷을 입은 채로 웃으면서 팔을 휘둘러 노신기를 바닥에 내던졌다.“악독한 놈. 네가 내 아버지를 죽였으니 난 오늘 아버지의 복수를 할 거다.”며칠 전에 대의를 위해서라면 혈연관계는 얼마든지 끊을 수 있다는 그의 말은 그저 노신기를 안심시키기 위함에 불과했다. 그의 가슴 속에 맺힌 복수심은 한순간도 식지 않았었다.“하아...”노신기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그의 창백한 얼굴엔 깊은 후회가 서려 있었다.‘그때 불쌍해 보인다고 해서 검은 머리 짐승을 거두는 게 아니었는데.’그는 생각했다. “모든 일은 내가 벌인 거니까 찢어죽이든, 뭘하든 나한테만 해. 상관없는 다른 사람들 건드리지 말고.”지금 이런 상황에 이른 이상, 그는 더 도리를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전에 이미 노대영에게 그의 출신을 말해주며 그의 아버지가 눈 깜빡하지 않고 살인을 저지르는 변태 악마라고 말해주었으나 그는 전혀 듣지 않았기 때문에 말해봤자 쓸모가 없다는 걸 알아서였다.스승과 제자의
염구준을 향해 날아오는 것은 엄청난 기운을 내뿜고 있는 금강 방망이 한 개 뿐이었다. 기운의 량으로 보아 세 명의 힘이 전부 들어있는 게 분명했다.이건 베르 일행이 전력을 건 최후의 일격이었다.쾅!한 자루의 검과 한 개의 방망이가 충돌하며 눈부신 불꽃을 일으켰다.폭발적인 에너지가 주변에 퍼져나가며 양측은 잠시 균형을 이루었다.세 사람의 실력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막았다! 얼른 보트 준비해, 후퇴한다!”베르의 창백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비틀거리며 일어나 부하들에게 소리쳤다.루카와 슈카 역시 서로 부축하며 일어섰다.이미 힘이 고갈된 지라 그들의 얼굴엔 혈색도 없었고, 기운조차 미약했다.더 이상의 싸움은 무리였다.“하압!”염구준은 팔에 힘을 주어 금강 방망이를 밀어내려 했지만, 방망이가 꼼짝도 하지 않는 걸 발견했다. 이 전법은 오묘했다. 상대방이 시전하고 조종하지 않아도 타겟을 쫓아 움직이는 것처럼 홀로 움직였으니까 말이다.이대로라면, 몸이 먼저 나가떨어질 판이었다.베르는 떠나기 전에 염구준을 보며 독한 말을 남겼다.“염구준, 자만하지 마라. 스텔라성은 아직 남아 있으니까. 돌아가서 강자들을 전부 불러와 널 죽여주지.”“돌아갈 수 없을 겁니다.”얼음처럼 차가운 염구준의 목소리에 모두가 몸을 살짝 떨었다.이미 흑풍의 사태로 배운 바가 있었기 때문에 염구준은 적을 쉽게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흥, 말은 누구나 하지. 하지만 나중에 지키지 못하면, 네 얼굴에 침 뱉는 꼴이 될 걸?”베르는 비웃으며 염구준의 말을 맘 속에 담아두지 않았다. 자신의 필살기에 대한 자신감이 넘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염구준은 검을 쥔 양손을 살짝 옆으로 움직이며, 손을 놓았다.우웅!그러자 구자검은 더 이상 금강 방망이와 대치하지 않고, 잔상을 남기며 쏜살같이 전방을 향해 날아갔다.같은 시각에 금강 방망이 역시 미친 듯한 속도로 염구준의 왼쪽 가슴을 향해 돌진했다.이건 자신의 목숨으로 적의 목숨을 바꾸는 방식이었다.꽈악!염구준
“염 선생님, 저희가 가서 막을까요?”노신기는 갈등하며 조심스레 물었다.비록 상대가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염구준 덕분에 얻은 것이 많았기에 돕고 싶어서였다.“아니요. 그냥 가만히 계시면 됩니다.”염구준은 단호하게 거절하며 대형 방패를 계속 내리쳤다.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노신기 일행의 실력으로는 개입해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염구준은 잘 알고 있었다. 가봤자 죽을 게 분명하다는 것도 말이다.한편, 전장의 중심에 선 세 사람은 자신들이 고립무원의 상황에 처해있으며, 살려면 스스로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죽을 각오로 덤벼!”쾅!베르의 눈엔 살기가 가득했다. 손에 쥔 대형 방패는 마침내 한계에 도달하며 산산이 부서졌다.그의 피로 물든 두 손에는 어느새 짧은 단검이 들려 있었고, 그는 그것으로 염구준의 가슴을 향해 휘둘렀다.하지만 날카로운 칼날이 스쳐 지나간 자리에 남은 건 얕은 두 줄의 상처뿐, 역시 깊이 파고들지는 못했다.일반적인 공격은 염구준에게 통하지 않았다. 과거, 염구준이 육체의 한계를 돌파한 리아성전의 전주를 쓰러뜨린 것도 필살기와 정제된 진기 덕분이었었다. 심지어 한 번에 쓰러뜨린 것도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싸웠었다.육체가 극한으로 강해진 상대를 쉽게 이긴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염구준은 베르를 걷어차 밀어낸 뒤, 곧바로 루카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세 명을 상대할 때 가장 확실한 방식은, 하나씩 쓰러뜨리는 것이었다.“젠장!”염구준이 갑자기 타겟을 바꿀 줄 몰랐던 루카는 급히 막아섰지만 한 칼에 밀려났고 이어진 두 번째 공격에 부상을 입고 말았다.강자들의 승부는 한 수, 한 수가 치명상이라 조금의 방심도 용납되지 않았다. 자칫하다간 목숨을 잃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베르는 상황이 좋지 않음을 직감하고 이를 악물며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삼절진을 쓰자!”두 형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베르 뒤로 이동한 뒤, 손을 그의 등에 얹었다.이 필살기에 승패가
베르 세 사람을 포함해 이 싸움을 지켜보던 반보천인들조차 염구준이 쓰는 게 무슨 전술인줄 몰라 어리둥절해졌다.방어를 완전히 포기하고 정면으로 달려드는 행위는 자살이나 다름없으니까 말이다.“건방지긴!”“내가 막을 테니 너희는 죽을 힘을 다해 공격해!”이에 베르의 일그러진 얼굴에는 약간의 기쁨이 섞였다. 그는 달려오는 염구준을 보며 포효하듯이 명령을 내렸다. 해저에서의 전투 경험에 의하면, 그는 자신이 특별히 제작한 대형 방패로 염구준의 공격을 최소 서른 번은 막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쾅!그러나 시작에 불과한 염구준의 첫 공격에 베르는 몇 걸음이나 밀려났고, 방패엔 반 치 정도 깊이의 칼자국이 선명히 새겨졌다.이 방패는 염구준의 공격을 막기 위해 베르가 특별히 주문 제작한 거라 다른 것보다 더욱 단단하고 두꺼웠다.텅텅!루카와 슈카도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동시에 염구준의 옆구리를 향해 칼을 박아넣었다.손목에 힘을 잔뜩 실은 터라 염구준의 호체진기를 가뿐히 뚫었지만 몸에는 옅은 상처밖에 내지 못했다.아무리 힘을 더 실어도, 더 깊숙이 찌를 수가 없었다.“육체의 극한까지 도달했다고?”싸움을 지켜보던 반보천인들은 일제히 감탄을 내뱉었다.두 명의 최강 반보천인의 공격을 오직 맨몸으로 버텼다는 것부터 염구준의 육체가 이미 극한까지 도달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쾅! 쾅!염구준은 루카 형제의 공격을 거의 무시한 채, 계속해서 베르에게 맹공을 퍼부었다.공격이 계속 되면서 방패에는 칼자국이 점점 더 많아졌고, 베르도 연달아 밀려났다. 이 엄청난 충격력에 그의 손바닥은 결국 찢어져 버렸고, 상처에서는 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공격 안 해? 밥 안 먹었어?”베르는 체내의 기혈이 요동치는 것을 느끼며 방패를 들고 소리쳤다.그제야 그는 그가 자신의 실력을 과대평가 했음을 깨달았다.‘방패가 30번의 공격을 버틴다고 해도 내가 버티지 못해.’염구준의 몸이 반보천인의 극한에 다다른 이후, 방어력 뿐만 아니라 힘도 강해져서 전보다 공격이
모두가 향유고래의 위를 보고 눈이 커졌다.기뻐하는 사람도,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었다.사람과 고래가 마음을 합쳐 수많은 고난을 뚫고 마침내 위험천만한 해저 심연에서 빠져나온 거다.그 과정의 험난함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노신기는 드디어 마음이 놓였다는 듯, 기뻐하며 입을 열었다. “염 선생님, 돌아가시지 않으셨군요?”말을 내뱉은 후, 그도 이상함을 느꼈지만, 이미 말을 마친 후라 뭐라고 바꿀 수도 없었다. “어... 네, 살아있긴 합니다.”염구준은 대수롭지 않게 답하며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냈다.솔직히, 좀 웃긴 질문이었다.조금 떨어진 곳에서, 완전히 멀쩡한 염구준을 본 베르는 숨이 턱 막혔다.“염구준, 너...”깊고 깊은 바다 밑에서 화산 폭발과 함께 대지진이 일어난 상황에, 잠수 장비도 없다는 건 그냥 죽음을 의미했다.하지만 염구준은 그 위기 속에서 향유고래를 몰아 드라마처럼 살아 돌아왔다.베르로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었다.“진정해, 나이도 있는데 괜히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와서 그 자리에서 죽으면 곤란하잖아.”염구준은 베르를 바라보며 말했다. 진짜로 열받아서 죽어버리길 바라는 눈치였다.서로 죽이려 드는 사이끼리 예의는 사치일 뿐이었다.“흥! 바다 밑에선 겨우 살아남았을지 몰라도, 여기선 끝이다.”“루카, 슈카! 저 녀석을 죽여라!”베르는 참지 못하고 이를 악물고 염구준을 가리켰다.휙휙.하지만 그 두 형제는 어깨를 으쓱이더니 빠르게 몸을 뒤로 빼며 보트를 밟고 전함 위로 훌쩍 올라가 버렸다.“부성주님, 저 녀석은 강하니 부성주님께서 직접 나서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입에 발린 소리로 한껏 띄워주니 베르도 그들에게 화를 낼 수 없었다.셋이 하나를 상대하는 상황임에도 정작 그의 마음속엔 불안감만이 가득했다.염구준의 강함이, 그에게 공포로 다가왔기 때문이다.염구준은 검을 들고 베르를 향해 겨누었다.“이제 끝을 보자.”이제 거의 모든 상황이 정리되었으니, 갚을 원한은 갚고, 끝낼 일은 끝낼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