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15화

Author: 목련청
남설아는 이제 눈앞의 이 남자를 한 번만 더 바라보는 것도 역겨웠다.

더 이상 쳐다보는 것조차 배나은에 대한 모욕이었다.

그녀는 배서준이 말없이 서 있는 틈을 타 곧바로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문을 있는 힘껏 닫아버렸다.

쾅!

닫힌 문이 덜컥거렸다.

그 짧은 순간 남설아의 시선은 테이블 위로 향했다.

거기에는 흑백사진 속, 환하게 웃고 있는 배나은의 얼굴이 놓여 있었다.

그건 그녀가 5월 5일, 어린이날에 찍어준 사진이었다.

그날 배나은은 유치원에서 공연을 했고 좋은 성적을 받아서 무척이나 기뻐했다.

그래서 저렇게 활짝 웃었던 것이다.

남설아는 일부러 그 사진을 골랐다.

딸이 언제나 이렇게 환하게 웃으며 행복하길 바랐으니 말이다.

“나은아.”

남설아는 문을 등지고 주저앉았다.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지만 울음은 참아지지 않았다.

눈물은 계속해서 흘러내렸다.

“남설아, 네가 무슨 속셈을 꾸미든 상관없지만 나은이는 내 딸이야! 함부로 욕되게 하지 마!”

“그리고 양육권? 장난하지 마. 네가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지 두고 보자. 배건 그룹의 법무팀이 어떤 수준인지 너도 잘 알잖아?”

문밖에서는 배서준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명히 이를 악물고 말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예전 같았으면 남설아는 이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빌었을 것이다.

하지만 배나은도 이 세상에 없는 마당에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었다.

양육권? 법정 공방?

그 모든 게 허무할 뿐이었다.

곧이어 수제 가죽 구두가 시멘트 바닥을 밟으며 멀어져 가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 불협화음 같은 소리가 남설아의 신경을 긁었다.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배나은이 떠난 후, 그녀는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했다.

온 머릿속에는 오직 딸아이의 모습뿐이었다.

비틀거리며 소파로 다가가 사진을 조심스럽게 손에 들었다.

그러고는 부드럽고도 애틋하게 입을 맞췄다.

“나은아, 엄마... 이제 여기서 떠날 거야.”

“걱정하지 마. 너랑 한 약속 꼭 지킬게. 엄마 열심히 살 거야. 너를 위해서라도 꼭 그렇게 할 거야.”

눈물방울이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Related chapters

  • 굿바이 쓰레기   제16화

    “뭐라고?”배서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는 며칠째 배나은을 보지 못했다. 지난번 남설아를 찾아갔을 때도 배나은은 보이지 않았다.그때 장례식장에서 걸려온 전화가 떠올랐다. 괜히 불안해졌다. 분명 남설아의 수작일 텐데도 가슴이 답답했다.“서준아, 너무 조급해하지 마. 설아 씨는 그저 너랑 잠시 감정싸움을 하는 거야. 설마 나은이를 해칠 리가 있겠어?”“근데 나은이를 어디에 데려갔을까? 설아 씨한테 다른 친척이라도 있어?”서유라가 한 걸음 다가와 배서준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위로했다.‘친척?’배서준의 머릿속에 남도일과 그가 버린 비행기 표가 떠올랐다.그 사람은 도박에 미친 사람이었다. 돈만 된다면 무슨 짓이든 할 인간 말이다.만약 수수가 그의 손에 들어갔다면 그건 정말 위험했다.“지금 당장 공항으로 간다.”배서준은 서유라를 밀쳐내고는 거침없이 밖으로 향했다.어찌 됐든 배나은은 배씨 성을 가진 아이, 배서준의 딸이다. 자기 핏줄이 남에게 짓밟히게 놔둘 수는 없었다.‘그래, 그거야.’공항으로 향하는 순간, 배서준은 이미 자기 자신에게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 주고 있었다.그 여자가 낳은 아이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건 자신의 혈통, 배씨 가문의 체면이었다.“서준아, 아파... 발을 삐었어.”서유라는 책상에 몸을 기댄 채 작게 신음 소리를 흘렸다.하지만 이번에 배서준은 돌아보지 않았다. 마치 들리지 않는 것처럼 그는 발걸음을 더욱 재촉하며 걸어 나갔다.처음이었다.배서준이 처음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서유라의 감정을 무시한 순간이 말이다.이전까지는 손가락 하나만 긁혀도 가슴 아파하며 안아 주고 한참을 달래 주던 사람이었다.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그 천한 여자가 낳은 천한 아이 때문에 날 밀쳐내고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은 채 떠나간다고?’서유라의 가슴속에 전례 없는 위기감이 스며들었다.어금니를 꽉 물고 그녀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갔다.옆에서 지켜보던 비서는 싸늘한 소름이 돋았지만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굿바이 쓰레기   제17화

    “서준아, 너... 지금 뭐 하는 거야?”서유라가 황급히 달려와 배서준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고는 그의 행동을 다소 비난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아무리 그래도 설아 씨도 여자인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 있어?”그녀는 몸을 돌려 바닥에 쓰러진 남설아를 부축하려고 허리를 숙였다.배나은이 죽기 전에 바란 건 그저 아빠와 며칠만이라도 함께 지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서유라는 끝까지 배서준을 독차지했다. 심지어 배나은이 병원에 입원해 있던 밤에도 배서준을 끌고 가 기념일을 보냈다.하여 남설아는 서유라를 볼 때마다 수수가 느꼈을 슬픔과 억울함이 떠올랐다.그리고 배나은이 떠나던 그날 밤, 단 한 사람을 위해 터졌던 1억 2000만 원어치의 불꽃놀이가 떠올랐다.“건드리지 마!”“더러우니까.”남설아는 서유라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그러고는 온몸의 힘을 다해 일어서며 싸늘한 시선으로 그녀를 내려다봤다.그 눈빛은 마치 쓰레기를 바라보는 듯했다.예전엔 서유라를 원망한 적이 없었다. 모든 책임은 오로지 배서준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자신을 설득할 수 없었다.만약 서유라가 정말 아무런 의도가 없었다면 어째서 수차례 배서준을 배나은의 곁에서 데려갔던 걸까?“아야.”서유라는 그녀가 뿌리친 힘을 따라 일부러 바닥으로 넘어지며 아픈 듯 신음 소리를 냈다.눈가는 단숨에 붉어졌고 애써 참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또 그 뻔한 연극이었던 것이다.남설아는 이를 몇 년을 지켜보며 질릴 대로 질렸다. 하지만 지겹지도 않은지 서유라는 여전히 같은 연기를 하고 있었다.그리고 배서준은 그 연기에 늘 속아 넘어갔다.그는 차가운 눈으로 남설아를 노려보다가 몸을 숙여 서유라를 부축했다. 그런데 서유라를 바라보는 눈빛이 달랐다.조금 전까지 얼음처럼 차가웠던 시선이 단숨에 사르르 녹아내린 것이다.“괜찮아?”이런 온기와 인내를 남설아와 배나은은 단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그 순간 남설아는 깨달았다.자신이 몇 년을 사랑했던 것도, 배나은이 그토록 애타

  • 굿바이 쓰레기   제18화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 자신의 딸이 이런 여자와 계속 함께 살게 놔두지 않을 것이리라 배서준은 마음먹었다.“나은이 죽었어요!”“죽었다고요! 당신이 이 여자랑 알콩달콩하고 있을 때, 도시 전체에 불꽃놀이를 터뜨려줄 때, 우리의 나은이, 당신 친딸은... 수술비가 없어서 죽었다고요! 당신 딸이 죽었다고요!”남설아는 거칠게 몸부림쳤다.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한 마디 한 마디가 배서준을 향한 날카로운 비난이었다.절망이자 분노였다.그리고 한 어머니의 한없는 무력감이 담긴 소리였다.온 힘을 다해 배서준의 손을 뿌리치고 그녀는 바닥에 흩어진 사진을 줍기 위해 몸을 숙였다.그 순간 깨진 유리 조각이 손바닥을 깊숙이 파고들어 손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그러나 남설아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대충 옷에 피를 닦아내고 꾸깃꾸깃한 사진을 조심스럽게 두 손으로 감싸 안았다.사진 위의 먼지를 닦고 또 닦았다.“너...”배서준의 가슴은 한순간 철렁 내려앉았다.뭔가가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설아 씨, 설아 씨가 서준이 오래 짝사랑해온 건 알아. 그리고 서준이가 설아 씨를 좋아해 주길 바랐다는 것도 알아. 하지만 이건 아니지 않나? 설아 씨도 엄마라면서 어떻게 자기 아이를 저주할 수 있어? 나은이가 이걸 알면 얼마나 상처받겠어?”서유라가 다가와 부드럽게 설득하더니 한숨을 쉬며 조용히 남설아 앞에 무릎을 꿇었다.“서준이가 나를 좀 더 챙기는 건 맞지만 난 정말 설아 씨 가정을 망치고 싶은 생각 없어. 나도 나은이가 건강한 가정에서 자랐으면 좋겠어. 설아 씨가 날 오해하고 있는 거야.”남설아는 무릎을 꿇은 채 손에 꼭 쥔 사진을 가슴에 끌어안았다.죽은 후까지도 배나은에게서 아빠를 빼앗아 간 여자가 이렇게 뻔뻔하게 굴다니.그런데도 서유라는 계속 그녀를 자극했다.“그러니 제발 나은이 데려와. 내가 서준이 잘 설득할게. 설아 씨가 나은이랑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해줄게. 나도...”“닥쳐, 당장 닥치라고!”마침내 무너진 남설아는 두 손으로 서유라

  • 굿바이 쓰레기   제19화

    이전에 몸부림친 탓에 이미 기력이 바닥난 상태였다.아무리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라도 더 이상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결국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조태훈에게 질질 끌려 남설아는 차 안으로 던져졌다.온몸이 축 늘어졌지만 그녀의 손에는 여전히 구겨진 사진 한 장이 꼭 쥐어져 있었다.‘나은아, 우리 불쌍한 아가...’이 세상에 머물렀던 짧은 시간 동안 아이는 아빠인 배서준에게 단 한 번의 사랑도 받지 못했다.단 한 번 안겨 본 적조차 없었다.‘이제는 죽어서조차 저 사람들에게 조롱당해야 한다니... 대체 누가 부모가 될 자격이 없는 거지?’병원.“서준아, 난 정말 괜찮아. 그냥 살짝 긁힌 거야. 그러니까 얼른 집에 가. 설아 씨 상태가 좀 불안정한 것 같아서... 나은이가 걱정돼.”“어른이 잘못했다고 아이까지 벌 받아야 해? 나은이 네 아이잖아.”서유라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인 뒤 어딘가 억울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속으로는 배서준이 다른 여자와 아이까지 뒀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싫었다.‘남설아 따위가 대체 무슨 자격으로?’그러나 그런 감정을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었고 배서준 앞에서는 그저 속상한 척, 착한 척해야 했다.“아이를 되찾아 올 거야.”배서준은 무표정하게, 그러나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하지만 그 속은 결코 담담하지 않았다.뭔가가 가슴 한쪽에서 둔탁하게 내려앉는 기분이었다.특히 떠나기 직전 남설아의 충혈된 눈동자가 자꾸만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그 감정이 그를 더욱 짜증스럽게 만들었다.배서준이 가장 싫어하는 유형의 여자가 바로 그런 여자들이었다.교활하고 약한 척하며 동정심을 유발하는 여자들 말이다.남설아가 다친 것도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 생각했다.“서준아?”배서준이 생각에 잠긴 걸 알아챈 서유라는 일부러 목소리를 키웠다.‘예전엔 안 이랬는데... 대체 뭐가 달라진 거지?’“난 괜찮아. 아직도 아파?”배서준이 시선을 돌려 서유라를 바라봤다.“네 손은 늘 부드러웠잖아. 게다가 너는 원래

  • 굿바이 쓰레기   제20화

    변해버린 남설아의 모습을 보며 배서준의 가슴은 답답하게 조여왔다.“설아 씨, 그렇게 말하지 마. 나랑 서준이는 설아 씨가 생각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야.”서유라가 눈가를 붉히며 본능적으로 배서준의 등 뒤로 숨었다.“우린... 우린 더럽지 않아.”“나와 유라는 원래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어. 네가 억지로 아이를 낳아 나를 붙잡아 두려 한 거지. 그런데 지금은 뭐야? 배씨 가문 사모님으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심지어 엄마로서의 역할도 망각했어.”“나은이가 어디 있는지 당장 말해. 내 화 돋우지 말고.”배서준은 차갑게 말했다.그의 몸이 서유라 앞을 완전히 가려주고 있었다.마치 그녀가 다치기라도 할까 봐 온몸으로 보호하는 듯한 자세였는데 그건 절대 거짓으로 나올 수 없는 반응이었다.남설아는 그 사실을 깨달았다.배서준이 정말로 서유라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그리고 자신은 단 한 번도 그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것도.그렇기 때문에 배나은도 아무 죄 없이 희생당한 것이었다.“그 애는 죽었어요.”남설아는 담담하게 말했다.한 번 더, 똑같은 현실을 다시 입 밖에 냈다.배나은은 죽었고 더 이상 돌아올 수 없었다.“서준 씨, 나은이는 죽었어요. 그리고 우리도 이혼했어요. 이제부터 우리는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뒤이어 그녀는 소파에서 천천히 일어섰다.무릎의 상처가 날카롭게 쑤셨다.하지만 그 고통조차 가슴속 쓰라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배나은은 떠났다.그리고 오랫동안 사랑했던 이 남자도 이제는 필요 없었다.이제 남설아가 바라는 건 단 하나, 배나은을 데리고 이 불행한 곳을 떠나 조용히 사는 것이었다.“너 대체 언제까지 이럴 거야?”결국 폭발한 배서준은 단숨에 다가와 남설아의 턱을 거칠게 움켜쥐었다.금방이라도 으스러질 듯한 강한 힘이었고 그의 눈동자에는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남설아, 내 인내심을 시험하지 마. 나은이 내놔.”“죽었다고요.”남설아는 무표정한 얼굴로 반복했다. 심지어 눈빛엔 비웃음과 경멸이 가득했다.

  • 굿바이 쓰레기   제21화

    “나는 나은이의 엄마예요!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나은이를 사랑하는 사람이 나예요! 그런데 내가 어떻게 내 딸을 저주해서 죽게 하겠어요!”“차라리 내가 죽었으면 좋겠어요!”분노 끝에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절망에 빠진 순간이란 아마도 지금 남설아의 모습과 같을 것이다.여자의 눈 속에 서린 절망과 광기가 너무나도 생생해서였을까, 배서준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어떻게 안 되겠어요? 당신이 도대체 뭘 알고 있는데요? 당신 나은이를 사랑해 본 적이라도 있어요? 단 하루라도 나은이를 마음에 둔 적 있냐고요! 나은이는 골육종에 걸렸어요! 골육종이라고요!”“그 아이의 유일한 바람이 뭔 줄 알아요? 마지막 순간에 아빠가 곁에 있어 주는 거였어요. 그런데 당신은요? 당신은 그때 뭘 하고 있었어요? 옆에 있는 여자랑 쾌락을 즐기고 있었잖아요!”눈앞의 남녀를 바라보는 남설아의 눈빛 속에서 격렬한 증오가 뿜어져 나왔다.자신의 남자가 다른 여자에게 뺏기는 건 상관없었다.하지만 배나은의 마지막 순간에 아빠를 빼앗아 가야 했던 건 참을 수 없었다.‘왜 아이에게서 마지막 희망까지 앗아가야 했냐고!’나은이는 세상에서 가장 착하고 가장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길고 가느다란 주삿바늘이 수없이 몸을 찔러도 한 번도 울지 않았다. 심지어 엄마가 걱정할까 봐 억지로 버티면서 쓸데없는 농담을 늘어놓곤 했다. 작은 몸이 고통에 떨면서도 말이다.그런데 그는 아무것도 몰랐다.아이의 아빠라는 사람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따지는 거예요?”“한 번이라도 아이 신경 써 본 적 없잖아요. 그런데 이제 와서 아이가 없어진 걸 가지고 나한테 소리치고 있어요? 당신이 사람이에요? 배서준 씨, 당신한테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양심이란 게 있기나 해요?”남설아는 이성을 잃은 듯 필사적으로 배서준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이를 악물고 그를 노려보는 눈빛 속에는 분노와 원망이 가득했다.너무도 무정한 그가 미웠다.그리고 스스로가 미웠다. 그토

  • 굿바이 쓰레기   제22화

    고개를 젖힌 채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았다. 절대 떨어뜨리지 않겠다는 듯 마지막까지 이를 악물고 참아내다 끝내 남설아는 배서준을 바라보았다.“못 믿겠죠? 그럼 나 따라와요. 직접 보여줄 테니까. 당신 눈으로 보면 이제는 믿겠죠?”“남설아, 날 속이기라도 하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리고 남도일까지도.”남도일.이 세상에서 남설아에게 남은 마지막 혈육이자 유일한 약점이었다.배서준은 언제나 노련했다. 사람을 어떻게 몰아붙여야 하는지 어디를 건드려야 무너지게 할 수 있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정작 그는 아직도 남설아가 변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삼촌은 무슨, 그녀는 이미 오래전에 남도일 따위에는 관심을 끊었다.아니, 차라리 그 인간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까지 생각했다.한 번도 배서준을 돌아보지 않은 채 남설아는 그를 데리고 배나은의 학교로 갔다.그러고는 화실로 갔다.나은이가 가장 좋아하던 디저트 가게도 갔다.그리고 나은이가 좋아했던 놀이공원으로도 갔다.마지막으로 별장의 공원으로 돌아왔다.하지만 어디에도 배나은의 흔적은 없었다.이건 배서준이 처음으로 배나은의 삶에 가까워진 순간이었다.처음으로 아이가 살아온 세상을 직접 마주한 순간이었다.그러나 배나은이 가장 자주 머물렀던 이곳들에서 아무도 배서준을 알아보지 못했다.더욱이 그가 나은이의 아빠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조차 없었다.유치원 선생님은 몇 번이고 말했다.배나은이 학교에서 아빠가 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놀림받고 왕따를 당하기도 했다고.그리고 그 아빠라는 사람이 얼마나 무책임한지를 질책했다.이 모든 것들을 배서준은 몰랐다.아니, 애초에 알고자 한 적조차 없었다.그는 계략이 많은 여자가 싫었고 자신에게 들러붙는 남설아가 싫었다.그와 함께 그녀가 낳은 아이도 싫었다.그러나 오늘 처음으로 마음속 깊은 곳에서 죄책감이 피어올랐다.그토록 많은 것들을 놓쳐버린 자신이 처음으로 후회되었다.“남설아, 우리 얘기 좀 하자.”공원의 벤치에 앉은 배서준은 처음으

  • 굿바이 쓰레기   제23화

    “남설아, 네가 감히 이따위 태도를 보여?”배서준이 눈살을 찌푸렸다. 조금 전까지 남아 있던 죄책감이 단숨에 사라졌다.이전에는 그저 교활한 여자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 이성은 있는 사람이라고 믿었다.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미쳐버린 게 분명했다.“누가 누굴 보고 집착한다고 하는 거야? 우린 이미 이혼했어. 그런데도 아직도 이러고 있는 의도가 뭔데?”“설마 이제 와서야 날 잃고 나니 사랑했던 걸 깨달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다시 나한테 매달리겠다고요?”“그럼 당신 옆에 있는 그 귀한 서유라 씨는 어쩌고요?”남설아가 갑자기 비웃음을 터뜨렸다.그 시선 속엔 혐오와 조소가 뒤섞여 있었고 그녀의 차가운 눈빛은 서유라의 가슴을 단숨에 도려냈다.“서준아, 만약 정말 설아 씨를 사랑한다면 난 물러나도 돼.”“난 그저 널 좋아했을 뿐이야. 다른 건 바라지 않아. 만약 날 원하지 않는다면 그냥 솔직하게 말해.”서유라는 말을 하면서 눈물을 떨궜다.그러나 황급히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배서준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했다.배서준은 그런 서유라의 모습을 보자 순간 가슴이 아려왔다.하여 곧바로 서유라의 허리를 감싸 안고 차가운 눈빛으로 남설아를 내려다봤다.“네 착각이야.”“나은이가 아니었다면 난 널 단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어.”그는 코웃음을 쳤다.“이 아이가 어떻게 태어났는지는 너도 알잖아. 그건 너 스스로 꾸민 일이었고 책임도 네가 져야 해.”“설아 씨, 난 설아 씨가 줄곧 서준이가 날 좋아하는 걸 질투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 하지만 그렇다고 아이를 이용해서 협박하는 건 선을 넘은 거야.”서유라는 가식적인 한숨을 쉬며 마치 안타까운 사람을 바라보듯 남설아를 내려다보았다.그 태도는 마치 ‘승자의 여유’라도 된 듯했다.그녀가 지금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은 오로지 남설아를 도발하기 위한 것뿐이었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남설아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지금 이 순간 이 모든 게 한심하게 느껴졌다.‘이딴 여자 때문에 예전에 그렇게

Latest chapter

  • 굿바이 쓰레기   제302화

    그는 줄곧 자신과 남설아는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 생각해왔지만 지금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강연찬이 회복되자 모두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고 특히 남설아는 그동안 불안했던 마음을 비로소 내려놓을 수 있었다.한편, 멀리 리조트에 머무르고 있던 서유라는 무척 불안하고 초조했다.서도현은 자신이 보낸 사람들이 전부 체포되어 한 명도 빠짐없이 구속되었다는 정보를 이미 입수했다. 남설아가 다치지 않은 것도 모자라 다친 사람마저 회복되었으니 그동안 벌인 모든 일이 헛수고가 되고 만 것이다.“뭐라고? 강연찬이 회복했다고?”서유라의 목소리는 고막을 찢을 듯 날카로웠다.“그 사람들이 엄청 대단하다고 하지 않았어? 어떻게 여자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남설아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여자잖아. 그런데도 그 여자 하나 못 건드려서 이 지경이 된 거야? 돈을 그렇게 많이 받고는 뭐 하겠다는 거야? 적은 돈이 아니었잖아.”서도현은 배서준의 감시를 피해 몰래 리조트 안으로 숨어들어와 서유라와 만났다.그의 얼굴엔 짜증이 가득했고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누나, 나도 최선을 다했어. 그놈들이 이런 일 하나도 제대로 못 할 만큼 이렇게 쓸모없을 줄은 누가 알았겠어. 그래도 다행인 건 그놈들이 입이 무지하게 무겁다는 거야. 지금껏 한마디도 안 했어. 나도 계속 지켜볼 거니까 우리한테 불똥이 튀게 두진 않을 거야.”“쓸모없는 놈들! 전부 다 쓸모없어!”서유라는 온몸을 떨며 분노했다. 그녀는 탁자 위에 놓인 찻잔을 집어 들어 바닥에 힘껏 내던졌다.“이제 어떡해? 강연찬이 회복됐다고? 혹시 이 일을 남설아한테 말하면 어쩌려고? 남설아가 알게 되면, 나는...”“누나, 진정해봐.”서도현은 급히 달래며 말했다.“강연찬이 회복됐다고 해도 우리가 한 짓이라는 증거는 없어. 게다가 그 킬러들은 내가 따로 구한 사람들이라서 우리랑 직접적인 연결 고리는 없어.”“그래도...”서유라는 여전히 불안했다.“남설아 그 여자는 워낙 교묘해서 무슨 단서라도 찾아내게 되면 우리는 순식간에

  • 굿바이 쓰레기   제301화

    “알겠어.” 송우민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너희가 그렇게 말한다면 따를게.”“우민아, 고마워.” 남설아가 말했다.“네가 얼마나 복수를 원하고 있는지 알아. 하지만 우리는 냉정해야 해. 감정에 휘둘리면 안 돼.”“응, 알아.” 송우민이 고개를 끄덕였다.“너희 계획에 최선을 다해 도울게.”“좋아.”남설아가 미소 지었다.“우린 반드시 해낼 수 있을 거야.”세 사람은 구체적인 세부 사항을 더 논의한 후, 각자 맡은 일을 하기 위해 흩어졌다.연회가 끝난 후, 남설아는 사무실로 돌아와 밀린 서류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그때 강연찬이 따뜻한 우유 한 잔을 들고 들어왔다.“설아야, 우유 좀 마시고 일찍 쉬어.”강연찬이 우유를 건네며 말했다.“요즘 너무 무리하고 있어. 몸을 챙겨야지.”“응, 고마워, 오빠.”남설아가 우유를 받아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오빠도 일찍 쉬어.”“난 안 피곤해.” 강연찬이 말했다.“너 일 마칠 때까지 같이 있어 줄게.”“괜찮아, 오빠. 몸도 아직 완벽히 회복된 건 아니잖아. 푹 쉬는 게 좋아.”남설아가 말했다.“이 서류들은 나 혼자서도 처리할 수 있어.”“그래도 옆에 있어 줄게.”강연찬이 말했다.“너도 너무 늦지 않게 마무리하고 쉬어.”“응, 알겠어.”강연찬이 나간 뒤에도 남설아는 계속해서 일을 처리했다.그녀는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었다. 더 강해져야만 배서준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나은이를 위해 복수할 수 있었다.깊은 밤이 되어서야 남설아는 마침내 모든 서류를 정리했다.그녀는 기지개를 켜면서 창가로 가서 불빛이 번쩍이는 도시를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나은아, 보고 있어?”남설아는 혼잣말처럼 속삭였다.“엄마가 반드시 복수할 거야. 기다려줘.”다음 날, 남설아는 이른 아침부터 회사에 출근했다.그녀는 회사의 핵심 팀을 소집해 다음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여러분, 우리 그동안 좋은 성과를 거뒀지만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남설아가 말했다.“배건 그룹은 지금 위기에 처해 있지만

  • 굿바이 쓰레기   제300화

    “선배...”남설아는 강연찬을 바라보며 가슴 깊이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꼈다.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송우민은 두 사람 사이의 다정한 분위기에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기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마음 한편이 허전했다.연회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던 중, 남설아가 잔을 들어 모두와 함께 축하의 건배를 하려는 찰나 강연찬이 재빨리 손을 내밀어 그녀를 막았다.“설아야, 요즘 너무 무리했잖아. 술은 좀 줄여.”강연찬의 목소리엔 진심 어린 걱정이 담겨 있었다.남설아는 그의 따뜻한 눈빛을 마주하며 마음이 포근해졌다.하여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들고 있던 술잔을 내려놓고 대신 주스를 들었다.“알겠어. 선배 말 들을게.”남설아는 웃으며 말했다.그 광경을 본 송우민은 잔을 들고 조용히 다가왔다.“남설아, 내가 한 잔 올릴게.”송우민은 잔을 들며 말했다.“이번 성공, 정말 축하해.”남설아는 주스를 들고 잔을 맞댔다.“고마워, 우민아.”남설아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네 도움이 없었으면 이렇게 빠르게 결과를 얻진 못했을 거야.”“우린 친구잖아. 서로 도와야지.”송우민은 웃으며 말했다.“근데 정말 대단하다. 네가 이렇게 멋진 사람일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우민아, 너무 띄우지 마.”남설아는 조금 쑥스러워하며 웃었다.“운이 좋았을 뿐이야.”“그건 아니지.”송우민은 단호히 말했다.“너의 실력, 결단력, 배짱, 모두 내가 본 사람들 중 최고야.”“그 얘기는 그만하고...”남설아는 말을 돌리며 미소 지었다.“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해보자.”“좋아.”송우민이 고개를 끄덕였다.“남설아, 내 생각엔 지금이 기회야. 우리가 배건 그룹을 한 방에 무너뜨리고 배서준한테 확실하게 복수해야 해!”그의 눈빛에는 분노와 집념이 가득했다.마치 지금 당장이라도 배서준을 단죄하고 싶은 듯했다.그러나 강연찬은 조용히 눈살을 찌푸렸다.“난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해.”“왜?”송우민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지금 배건 그룹은 거의 끝장난 상태잖아. 이

  • 굿바이 쓰레기   제299화

    “서준아, 나 너무 힘들어...”서유라는 침대에 누운 채 핏기없는 얼굴로 힘없이 중얼거렸다.“유라야, 어디 아파?”깜짝 놀란 배서준은 침대로 다가가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나도 잘 모르겠어. 그냥 온몸이 다 불편하고 아파...”서유라는 고통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얼른 의사 부를게!”배서준은 급히 몸을 일으키며 나가려 했다.“안 돼...”하지만 서유라가 급히 그의 손을 붙잡았다.“의사 부르지 마. 나 병원 가기 싫어...”“근데 지금 상태가... 그냥 둘 수 없잖아.”배서준은 여전히 불안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정말 괜찮아. 그냥... 네가 곁에 있어 주면 돼...”서유라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알겠어, 옆에 있을게.”그렇게 배서준은 서유라의 손을 살며시 잡고 말했다.“아무 데도 안 갈게. 여기서 널 지킬 거야.”“응...”서유라는 그의 품에 기대며 살짝 웃었고 그 입가엔 희미하지만 분명한 만족감이 스쳐 지나갔다.배서준은 서유라의 달콤한 말과 애정 어린 행동에 완전히 빠져 있었고 그녀의 진짜 속내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여전히 지극정성으로 돌보고 있었다.한편, 남설아의 세심한 간호 아래 강연찬의 몸은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그는 점차 회사 일에도 다시 참여하기 시작했고 남설아와 함께 나란히 전선에 서며 경영에 힘을 보탰다.그 사이 남설아는 잇따라 중요한 프로젝트들을 따내며 사업적으로 완전한 전성기를 맞이했다.그녀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성과가 이어졌고 배건 그룹은 연일 밀려 고전을 면치 못했다.이러한 성과를 기념하고 고생한 직원들을 격려하기 위해 남설아는 대규모의 축하 연회를 열기로 했다.연회는 고급 호텔에서 성대하게 개최되었고 현장은 화려하게 꾸며졌으며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직원들은 모두 정장을 차려입고 참석했고 모두의 얼굴엔 성취와 기쁨이 가득했다.그들은 서로 잔을 부딪치며 축하했고 성공의 기쁨을 나누었다.남설아는 우아한 드레스를 입고 한가운데에 서서 환한 미소를 머금은 채

  • 굿바이 쓰레기   제298화

    천기준은 조용히 배서준의 현재 상황과 결정을 남설아에게 전했다.“대표님, 이제 배 대표님은 완전히 사방에서 외면당하고 있습니다.”천기준의 말투에는 깊은 체념과 실망이 묻어났다.“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그 여자 곁에 붙어 있으려 하네요.”“후, 그야말로 자업자득이죠.”남설아는 비웃듯 차가운 웃음을 흘렸다.“자기가 아직도 예전처럼 뭐든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다고 착각하나 본데 지금의 배서준은 그냥 여자한테 정신 팔린 멍청이일 뿐이에요.”“대표님,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천기준이 물었다.“지금처럼 그 사람이 회사에 없는 틈이야말로 우리가 움직일 절호의 기회입니다.”“당연히 병들었을 때는 끝장내는 게 기본이죠.”남설아의 눈빛엔 싸늘한 결의가 번뜩였다.“이젠 그 인간도 잃는 게 뭔지 뼈저리게 느껴봐야 해요.”“역시 대표님답습니다.”천기준이 말했다.“지시하신 대로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좋아요.”남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한 듯 말했다.“기억해요. 이번엔 반드시 속전속결로, 숨 돌릴 틈도 주지 마요.”“네, 대표님!”남설아와 송우민이 손을 잡고 본격적으로 움직이자 배건 그룹의 위기는 한층 더 깊어졌다.남설아의 회사는 굶주린 늑대처럼 배건 그룹의 시장을 빠르게 잠식했고 원래 배건 그룹 쪽에서 따냈던 주요 프로젝트들마저 차지해버렸다.그 결과, 배건 그룹의 주가는 폭락했고 시가총액은 대폭 줄어들었으며 고객사들은 잇따라 이탈했고 사내 분위기는 혼란과 불안으로 가득 찼다.주주들의 손실은 상상을 초월했고 배서준에 대한 불만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배서준, 진짜 쓸모없네!”“회사를 이 지경으로 만들고도 어떻게 대표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지?”“당장 끌어내려야 해!”“그래! 더는 회사 말아먹게 놔두면 안 돼!”분노한 주주들의 외침은 마치 화산처럼 폭발해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천기준은 그 상황을 남설아에게 보고했고 남설아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명령을 내렸다.“계속 감시해요. 그 둘이 무슨 짓을

  • 굿바이 쓰레기   제297화

    천기준은 눈앞의 광경을 보며 깊은 무력감에 휩싸였다.소파에 앉은 배서준은 잔뜩 찡그린 얼굴로 고민에 잠겨 있었고 서유라는 그의 곁에 꼭 붙어 앉아 힘없이 기대어 있었다.“대표님, 이대로는 안 됩니다!”천기준의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묻어 있었다.“지금 회사 상황 대표님도 아시잖아요. 더 늦기 전에 돌아가셔서 직접 수습하셔야 합니다. 이러다 진짜 배건 그룹이 무너집니다!”“근데 유라가 지금 몸이 안 좋아. 어떻게 이럴 때 내가 유라를 혼자 두고 가겠어.”배서준의 말투에는 깊은 피로와 한숨이 묻어 있었다.“하지만 대표님...”천기준이 설득을 이어가려던 순간, 서유라가 조용히 말을 가로막았다.“서준아, 천 비서님 탓하지 마.”서유라의 목소리는 마치 곧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나약했다.“회사 일이 중요한 건 나도 알아. 그냥 돌아가. 난 괜찮아.”“유라야, 무슨 소리야.”배서준은 그녀를 안쓰럽게 바라보며 말했다.“지금 제일 중요한 건 네 건강이야. 내가 어떻게 널 놔두고 가.”“그래도...”서유라의 눈가엔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듯한 눈물이 맺혀 있었다.“내가 네 일에 방해가 되는 것 같아서 미안해.”“바보야, 너 하나보다 더 중요한 게 어디 있어.”배서준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속삭였다.“회사 일은 내가 방법을 찾을게.”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천기준은 속으로 실소를 터뜨렸다.‘정말 기가 막히네. 내가 본 배 대표님 중에 제일 한심한 버전이야. 예전엔 그렇게 단호하고 냉정했던 사람이 이젠 여자가 곁에만 있으면 정신줄을 놓고 있잖아.’“대표님, 진짜 더는 미룰 수 없습니다.”천기준은 다시 입을 열었다.“주주들은 이미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했어요. 계속 이렇게 계시면 정말로 해임당합니다!”“알아, 나도 알아.”배서준은 초조한 듯 머리를 감싸 쥐었다.“그렇지만 유라가...”“서준아, 돌아가.”서유라가 조용히 말했다.“나 혼자서도 괜찮아.”“유라야, 너 지금...”배서준은 놀란 눈으로 서유라를 바라봤다.“정말

  • 굿바이 쓰레기   제296화

    “네.”남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명심해요. 이 일은 최대한 시끄럽게 만들어요. 배서준이 모두의 표적이 되도록 말이에요.”“알겠습니다, 대표님. 바로 처리하겠습니다.”천기준은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떠났다.남설아는 사무실에 홀로 남아 싸늘한 눈빛으로 창밖을 바라봤다.‘배서준, 당신이 의리를 저버렸으니 나도 더는 자비를 베풀지 않을 거야.’곧이어 배서준이 리조트에서 서유라와 밀회를 즐기고 있다는 소문이 각종 언론을 통해 퍼지기 시작했다.여론은 순식간에 들끓었고 배서준의 이미지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무능하다’, ‘책임감 없다’는 비난이 쏟아졌다.“배서준, 진짜 너무하네!”“회사는 지금 무너지고 있는데 밖에서 여자나 만나고 앉았어?”“이런 사람을 어떻게 대표 자리에 앉혔는지 이해가 안 가.”“저 사람한테 회사를 맡긴 게 큰 실수였지.”“이참에 그냥 물러나게 해야 돼!”결국 회사는 긴급 주주총회를 소집했다.얼마 전, 배서준이 자신의 자금을 담보로 위기를 넘기겠다고 한 뒤 감쪽같이 사라졌고,오히려 남설아가 한발 물러나 시간을 벌어준 덕분에 간신히 버텨온 상황이었다.하지만 정작 의사결정을 할 실권자는 자리에 없고 남은 이사들은 완전한 권한도 없는 상태라 회사 운영은 갈수록 마비되어가고 있었다.거기에 이번 스캔들까지 터지자 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됐다.“이게 지금 어느 땐데 여자를 챙겨?! 본인 위치도 잊었나?!”“천 비서님, 배 대표님 떠나기 전에 천 비서님한텐 아무 말도 안 하고 갔어요?”천기준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사실 함께 일한 지 오래됐지만 배서준이 모든 걸 공유하진 않았다.“지금 당장 리조트로 가서 배 대표님 데려와요!”한 이사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어떻게든 끌고 와야 해요. 회사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요!”“네, 이사님. 바로 다녀오겠습니다.”천기준은 피곤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답했다.‘정신적으로 남 대표님한테 매일 시달리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그 두 사람을 만나러 내가 가야 한다고? 이게 대체 무

  • 굿바이 쓰레기   제295화

    “서준아, 제발 이번만은 내 말 들어줘, 응? 그냥 나를 위해서 우리 미래를 위해서라고 생각하고... 잠깐이라도 푹 쉬면 안 돼?”서유라는 눈물을 글썽이며 배서준을 올려다봤다.그 애처로운 눈빛에 배서준의 마음도 조금씩 흔들렸다.“알겠어, 네 말대로 할게.”결국 배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서유라는 곧장 환하게 웃으며 배서준을 꼭 껴안았다.“역시 나를 제일 아껴주는 사람은 서준이 너야.”배서준은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안아주었지만 눈빛은 복잡하기만 했다.회사의 상황은 이미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남설아와 송우민의 공격은 날이 갈수록 거세졌고 배건 그룹의 주가는 연일 하락 중이었다.시장은 빠르게 무너지고 있었고 내부는 불안과 불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이대로라면 배건 그룹은 정말 그의 손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서유라의 모습을 보면 차마 그녀 곁을 떠날 수가 없었다.배서준의 가슴속은 끝없는 갈등과 번민으로 뒤엉켰고 도대체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 알 수 없었다.그때, 그의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이번엔 천기준이었다.배서준은 잠시 고민하다가 전화를 받았다.“배 대표님, 도대체 언제 돌아오실 겁니까?”천기준의 목소리엔 조급함과 절박함이 가득 묻어났다.“지금 회사는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에요. 주주들도 다 대표님만 기다리고 있습니다!”“나, 나도 지금...”배서준이 무언가 말하려는 순간, 옆에 있던 서유라가 손을 뻗어 전화기를 낚아챘다.한편, 천기준은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통화 종료’ 소리에 분노를 억누르지 못했다.그는 핸드폰을 책상 위에 내리찍을 듯 내려놓으며 이를 악물었다.“이 서유라란 여자는 정말 재앙이라니까!”천기준은 이를 갈듯 말했다.“배 대표님도 왜 저 여자 말만 듣는 건지... 지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도 모르나?”곁에 있던 다른 비서도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천 비서님, 우리 이대로 괜찮을까요? 주주들한테 뭐라고 설명해야 하죠?”“설명할 방법이 어딨어요...”천기준은 허탈하게 웃으며 고

  • 굿바이 쓰레기   제294화

    “네, 송 대표님!”모두가 힘찬 목소리로 외쳤고 회의실 안은 결의에 찬 열기로 가득 찼다.송우민의 지휘 아래 남설아의 회사는 굶주린 늑대처럼 배건 그룹의 시장을 거침없이 잠식해 들어갔다.배건 그룹의 주가는 연일 하락했고 시가총액은 크게 줄어들며 내부 분위기는 극도로 혼란스러워졌다.흩어진 조직력에 동요하는 임직원들 사이로 불만이 번졌고 결국 주주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배서준에게 줄줄이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배 대표님, 도대체 언제 돌아오실 겁니까?”한 주주는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지금 회사 상황이 완전히 개판이에요! 더 늦으면 정말 끝장납니다!”“맞아요, 대표님! 이대로 가다간 정말 회복 불가능합니다!”또 다른 주주도 강하게 덧붙였다.“지금 당장 돌아와서 진두지휘하셔야 합니다!”끊임없이 쏟아지는 전화에 배서준은 머리를 싸매고 이마를 짚었다.그 역시 당장 회사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문제는 서유라였다.그녀는 절대 그를 보내려 하지 않았다.“서준아, 가지 마...”서유라는 창백한 얼굴로 침대에 누운 채 배서준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나 너무 힘들어. 옆에 있어 줘야 버틸 수 있어.”“유라야, 네가 힘든 거 알아. 하지만 회사도 지금...”배서준은 난처한 얼굴로 말을 흐렸다.“몰라! 나한테 중요한 건 네가 곁에 있어 주는 거야! 너 없이 나는 단 하루도 못 버텨!”서유라는 울먹이며 소리를 질렀다.“그런 말 하지 마.”배서준은 가슴 아프다는 듯 그녀를 껴안았다.“널 내버려 두고 갈 수 없지. 하지만 회사 쪽 상황도 정말 더는 미룰 수가 없어.”“결국 날 버릴 거지? 날 두고 가겠다는 거잖아!”서유라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떼를 쓰며 말했다.“내 몸은 누가 챙겨? 나 혼자선 아무것도 못 해... 넌 가면 안 돼!”“유라야, 그러지 마.”결국 배서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좋아, 당분간은 여기 있을게. 회사 일은 전화랑 화상회의로 처리할 테니까 괜찮지?”“진짜지?”서유라는 눈물로 젖은 눈을 들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