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곳에 설치된 감시카메라는 이 모든 장면을 빠짐없이 찍어냈고 곧 서유라는 해당 영상을 전달받았다. 영상은 매우 선명했고 편집이 가해진 티가 분명했다.서유라는 그 영상을 바로 배서준에게 가져갔다.“서준아, 봐. 설아 씨가 배건 그룹 지분을 팔아넘기려고 하고 있어!”영상은 교묘하게 앞뒤 내용이 잘려 있었다.서유라는 알고 있었다. 앞부분 내용 따윈 배서준이 신경 쓰지 않을 거란 걸.하지만 ‘배건 그룹’이라는 단어만큼은 그의 심장을 건드릴 것이 분명했다.배서준은 영상을 본 순간 눈빛이 확 바뀌었고 두 손을 꼭 쥔 채 핏대가 설 정도로 분노를 억누르다 못해 결국 들고 있던 핸드폰을 바닥에 힘껏 던져버렸다. 깨진 조각이 바닥으로 튀었다.그는 이를 악물고 돌아서며 그 자리를 떠났다.서유라는 그런 배서준의 뒷모습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다가 산산조각 난 핸드폰을 흘끗 보고는 냉소를 흘렸다.애정 같은 건 그저 흐릿한 감정에 불과하다. 이 남자에게 진짜 치명적인 건 ‘이익’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이번엔 남설아가 제대로 아킬레스건을 건드린 셈이었다.남설아는 호텔로 돌아오자마자 아침에 자기 방을 청소했던 객실 청소 아주머니를 신고했고 바로 증거 영상까지 함께 제출했다. 그녀가 호텔에서 해고되자마자 남설아는 그 여자가 훔쳐 갔던 USB를 되찾았다.우는 아주머니를 마주하고서도 남설아의 눈빛엔 단 1도 흔들림이 없었다.그녀는 감정에 휘둘리는 성인군자 따위가 아니었다. 누구든 어떤 행동을 했다면 그에 대한 대가는 반드시 치러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었다.USB를 손에 든 채 방으로 들어서자 문을 열자마자 무거운 기류가 밀려왔다. 소파에 앉아 있는 배서준을 보자 남설아는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어떻게 들어왔어요?”“남설아, 이 나쁜년!”배서준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미친 듯이 다가와 남설아의 목을 움켜쥐고는 그대로 현관문에 내리찍듯 밀쳤다.그의 눈은 핏발이 서 있었고 말 그대로 이를 갈고 있었다.숨이 턱 막히는 듯한 고통이 몰려왔다
‘설아야’라는 말 한마디에 남설아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닭살이 다 돋을 정도였다. 믿기 힘든 눈빛으로 그녀는 눈앞의 남자를 바라봤다.‘어떻게 저토록 혐오스러운 말이 저 입에서 나올 수가 있지?’남설아는 눈썹을 잔뜩 찌푸린 채 어금니를 꽉 깨물고 싸늘하게 말했다.“내 딸은 죽었어요. 그런데도 내가 지금 하는 일이 그냥 치기 어린 짓이라고 생각해요? 도대체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나오는 거죠? 배서준 씨, 그렇게 돈이 많으면 거울부터 좀 사서 보세요.”“알아. 그 아이 일은 네가 마음속에 못 놓는 매듭이란 것도. 근데 아이를 좋아한다면 우리 다시 낳으면 되잖아.”배서준은 애써 침착한 척 말했지만 지금은 이미 남설아의 가치를 알아봤기 때문에 어떻게든 곁에 붙잡아 두고 싶은 심정이었다.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당연하다는 듯 굴고 있는 배서준을 보며 남설아는 그저 우스워서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사실 그녀는 배서준을 원망하지 않았다. 원망하는 건 오히려 과거의 자신이었다.예전에는 배서준이 마치 반짝반짝 빛나는 존재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금 다시 보니 결국 그도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다. 다만 그녀의 ‘사랑’이 그에게 후광을 씌운 것뿐이었다.하지만 이제 그 사랑이 사라졌고 후광도 함께 꺼졌다. 남은 건 그저 허세만 가득한 한 명의 인간이었다.“서준 씨, 지금 당장 나랑 이혼해요. 줘야 할 거 주고 우리 깔끔하게 끝내요.”인내심이 완전히 바닥난 남설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똑바로 배서준을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부어오른 눈 때문에 그녀의 얼굴조차 흐릿하게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배서준은 그녀의 눈빛 속에 담긴 뿌리 깊은 혐오감만큼은 또렷이 느낄 수 있었다.“이혼 못 해.”배서준은 낮고 단단한 목소리로 잘라 말했다.스스로도 왜 이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예전에는 이 여자를 어떻게든 떼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고 오히려 더 가까이 있고 싶었다.요즘의 남설아는 정말로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으니까.배씨 가문의 아내로 이런 여자가 있다는 건 어디 내놔
바닥에 앉아 한참을 멍하니 있던 남설아는 다리에 감각이 점점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저릿저릿해진 다리를 간신히 움직여 일어서려던 그 순간 문이 갑자기 바깥에서 세게 걷어차이더니 쾅 소리와 함께 열려버렸다.그 충격에 남설아는 한참이나 밀려 나가며 바닥에 거칠게 내동댕이쳐졌다. 고통에 찬 표정으로 눈을 치켜뜨자 건장한 남자 넷이 방 안으로 들이닥치고 있었다.“당신들 누구예요? 뭐 하자는 거예요?!”남설아는 본능적으로 손에 들고 있던 호신용 스프레이를 꺼내려 했지만 조금 전의 충격에 스프레이는 이미 멀리 튕겨 나가 있었다. 결국 주변에 떨어져 있던 나무 조각 하나를 움켜쥐며 그녀는 저항하려 했다.하지만 그 네 명은 단 한마디 말도 없이 다가왔고 남설아가 쥔 나무 조각을 발로 차서 날려버리더니 곧바로 그녀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끌고 나가기 시작했다.머리카락이 뽑힐 듯 당겨지며 남설아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어떻게든 몸을 비틀며 저항했지만 소용없었다.분명 이곳은 5성급 호텔이었는데 지금은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누구 하나 반응하지 않았다. 하늘도 땅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다.“놔요! 도대체 뭐 하는 거예요! 이거 불법인 거 몰라요?!”남설아는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그러자 남자 중 한 명이 성가시다는 듯 남설아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고 그녀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의식을 잃기 직전 남설아는 그들 중 한 명이 내뱉은 거친 욕설을 희미하게 들었다.다시 눈을 떴을 땐, 손과 발이 모두 꽁꽁 묶인 상태였다.한참이나 지나서야 흐릿하던 시야가 조금씩 밝아졌고 주변을 둘러본 그녀는 이곳이 어디인지, 자신을 납치한 자들이 누구인지, 목적이 뭔지도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그저 온몸이 아팠고 뼛속까지 피로했다.깊게 숨을 들이쉰 남설아는 비틀거리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어떻게든 좀 편한 자세를 찾아내고 묵묵히 기다리기로 했다.이렇게 대놓고 들이닥친 걸 보니 분명히 배경이 있는 놈들일 테고 당장 죽이지 않았다는 건 뭔가 다른 목적이 있다는 뜻이었다.시간이
남설아는 어깨를 으쓱이며 한숨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목숨이 걸린 일에 비하면 그딴 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처음 보는 사이에 굳이 형식 따질 것도 없잖아요. 그냥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시죠.”“역시 똑똑하네. 내 이름은 송우민이야. 누가 내게 이 억대 돈을 주면서 네 목숨을 원했거든. 그런데 지금 보니까 널 죽이기가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이 말을 하며 송우민은 주머니에서 수표 한 다발을 꺼내더니 남설아 얼굴 쪽으로 그대로 던졌다.하얀 수표들이 눈처럼 흩날리며 바닥에 떨어졌고 몇 장은 남설아 눈앞에 닿았다.남설아는 고개를 숙여 자세히 들여다봤다. 수표 하단에 적힌 이름을 보자 순간적으로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러더니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역시 인연이라는 게 끊으려 해도 지저분하게 엮여 있네요. 감방에 들어가면서도 날 끌어들이는 거 보니 진짜 내 좋은 외삼촌 맞다니까.”남설아는 차가운 웃음을 흘리며 눈빛 속에 담긴 혐오를 숨기지 않았다.여자의 이런 반응이 이상하다고 느낀 송우민은 앞으로 다가와 그녀의 턱을 움켜쥐고 강제로 얼굴을 들게 했다.“대체 누가 네 목숨을 노리는지 궁금하지도 않아?”“혹시 알고 있어요?”남설아는 짜증스럽게 눈썹을 찌푸렸다.“진짜로 알고 있다면 그 사람 꽤 멍청한 인간이겠네요.”송우민은 예상하지 못한 반응에 잠깐 멈칫했다. 이 여자가 이런 수까지 파악하고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그는 손을 거둬들이며 무표정하게 옆에 서 있는 건장한 남자를 바라봤다.그러자 ‘기태’라 불리는 사내가 앞으로 나서더니 남설아의 몸에 묶여 있던 줄을 풀어주고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순순히 협조해. 안 그러면 진짜로 죽는다?”“믿어요. 한 방이면 제 머리통을 돌아가게 할 힘은 있으시잖아요.”남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 얼굴로 그의 힘을 인정해줬다.전기태는 그간 수많은 인질들을 봐왔지만 이렇게 말도 안 되게 유쾌한 인질은 처음이었다.그는 피식 웃으며 송우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다 나가 있어. 이 여자랑 단둘이 얘기 좀 할게
“뭐? 그 자식이 널 안 좋아한다고?”송우민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남설아를 바라보며 이 사람을 상대로 한 게 실수였던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그 사람은 날 좋아하지 않아요. 마음에 두고 있는 다른 여자가 있어요. 난 그냥 가문에서 정해준 결혼 상대였을 뿐이에요. 원래는 그냥저냥 살려고 했죠. 하지만 내 딸을 죽게 만든 그 일 때문에 더는 용서할 수 없고 절대 가만두지도 않을 거예요!”남설아는 두 주먹을 꽉 쥐며 단호히 말했다.“송씨 가문을 다시 되찾고 싶다면서요? 그럼 우리 손 잡는 게 어때요?”“손을 잡자고? 그럴 이유가 뭐가 있어?”송우민은 코웃음을 치며 얼굴에 대놓고 경멸을 드러냈다.바보도 아니고 이 여자가 지금 일부러 말을 끌고 시간을 벌고 있다는 걸 모를 리가 없었다.“나 배건 그룹 지분 51% 가지고 있어요. 원하면 다 줄게요.”남설아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지만 그녀 입장에서 이건 목숨보다 중요하지 않았다.살아나갈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다 내줄 각오가 돼 있었다.그 말을 들은 송우민은 예상치 못한 정보에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결정까지 딱 15분 남았어요.”“곧 누군가 이곳을 포위할 거예요. 그때가 되면 나랑 손잡자는 말은 없던 일로 할 거예요.”남설아는 환하게 웃으며 손목에 찬 시계를 송우민에게 흔들어 보였다.“다음에 납치할 때는 신원조사 꼭 하고 해요. 나 기술 쪽에서 일하는 사람이거든요. 온몸에 장비 장착하고 다녀요.”“이 시계 안에는 내가 만든 GPS 프로그램이 들어 있어요. 특수 기능도 하나 있죠. 자동 신고.”이제 놀 만큼 놀았다고 생각한 남설아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싱긋 웃었다.자신의 마지막 패를 스스럼없이 공개한 것이었다.그 당당한 표정에 송우민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터뜨렸다.“15분이라... 과연 내가 먼저 포위당할까, 아니면 네가 먼저 내 손에 죽을까?”그 말에도 남설아는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했다.“내 생각엔 그쪽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죽고 싶진 않을 거예요. 나같이 이
“노트북 하나 줘요.”남설아는 울다가 웃은 얼굴로 말했다.사실 처음에 이 프로그램 만들 때는 중간에 해제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하고 설정해 둔 거라 지금 와서 해제하려니 꽤나 번거로웠다.송우민은 별말 없이 부하에게 눈짓해 노트북을 가져오게 했다.남설아는 손가락을 재빠르게 움직이며 프로그램을 조작했고 결국 5분 안에 경보 시스템을 해제해냈다.그런 다음 송우민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사실 이 경보 시스템, 꽤 비싸요.”“죽고 싶어?”송우민은 더는 참지 못하고 화를 터뜨렸다.남설아는 입만 열면 꼭 사람 속을 긁는 말만 골라서 했다. 거슬리고 짜증 나고 아주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송우민이 진심으로 화난 걸 느낀 남설아는 한숨을 쉬며 작게 말했다.“그럼 우리 이제 자리 좀 옮겨서 얘기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여긴 좀... 애매해서요. 편하지도 않고.”“그래, 따라와.”송우민 역시 이 공간이 다음 대화를 나누기엔 부적절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카페에 앉는 순간까지도 남설아는 이게 현실이 맞나 싶은 기분이 들었다.자기를 납치한 범인과 이렇게 한자리에서 커피 마시며 대화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정말 웃긴 상황이었다.커피잔을 휘휘 저으며 한숨을 쉰 남설아는 송우민을 바라보며 물었다.“결국 돈이 목적이에요? 아니면 목숨이에요?”“둘 다.”송우민은 솔직하게 대답했다.송가는 배씨 가문 때문에 모든 걸 잃었다. 그러니 배씨 가문 역시 똑같이 무너지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자본의 세계가 피 냄새 나는 법이라는 걸 남설아도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 답변이 전혀 의외는 아니었고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그럼 확실히 말해두죠. 그 사람 죽이고 나서는 나 건드리면 안 돼요. 지금 우리는 부부라고는 하지만 껍데기뿐인 관계예요. 곧 남남이 될 거고 나까지 엮이면 안 돼요.”“진심이야?”송우민은 더는 돌려 말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물었다.남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말한 게 진심이라는 증거들을 하나둘
송우민은 남설아의 슬픔을 느끼고는 희미하게 웃으며 느릿느릿 말을 꺼냈다.그의 뜻밖의 너그러운 태도에 남설아는 더 말하지 않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걸어 나갔다.지금 이 세상 모두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녀에겐 상관없었다.단 하나, 자신의 계획에 방해만 되지 않으면 그뿐이었다.목숨이든, 자존심이든, 사실 남설아는 이미 오래전부터 내려놨다.이 모든 걸 끝낼 수만 있다면 그 아이를 따라가 배나은 곁에 있을 수만 있다면 그녀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송우민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얼굴빛이 살짝 달라지더니 탁자 위에 놓인 커피잔을 들어 올리고 가볍게 웃었다.“참, 묘한 여자네.”“형님, 이렇게 그냥 보내버리면... 의뢰인한텐 뭐라 말하죠?”전기태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송우민을 바라봤다.그러자 송우민은 그를 보며 마치 바보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대꾸했다.“우리가 어떤 사람들인데? 그 사람한테 무슨 설명을 해? 그리고 말이야, 저 여자가 벌인 일은 지금 가리고 숨기기에도 벅찰 판인데 뭐? 되레 우리가 책임지라고?”“형님, 그래도 이건 좀... 규칙을 어기는 거 아닌가요?”전기태는 여전히 찝찝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처음 보는 여자 하나 때문에 평소의 원칙을 어기는 송우민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그러나 돌아온 건 송우민의 싸늘한 시선과 그의 얼굴을 향해 날아든 커피잔뿐이었다.남설아는 카페에서 나온 순간까지도 이 모든 상황이 마치 꿈속 같았다.호텔에 돌아왔을 때가 되어서야 간신히 ‘살아 돌아왔다’는 실감이 났다.그녀는 욕조에 몸을 담그고 물속에 자신을 잠기게 했다.숨이 막힐 듯한 그 찰나의 순간을 지나 다시 물 위로 올라왔을 땐 감정이 완전히 가라앉아 있었다.몸을 닦지도 않은 채 그녀는 그대로 욕실 거울 앞에 섰다.그리고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았다.피멍이 든 자국들, 크고 작은 상처들이 온몸에 가득했다.“기억해. 오늘 이 모든 건... 다 서유라, 네가 만든 결과야.”남설아의 눈빛엔 차디찬 증오가 담겨 있었고 두
“아아악!!”서유라가 비명을 지르며 방 안의 모든 물건들을 마구 집어 던지고 부수기 시작했다.거칠게 날뛰던 그녀는 급기야 자기 팔을 긋기 시작했고 여러 군데서 피가 철철 흘렀다.곧장 호텔 직원들이 옆방 투숙객의 항의 전화를 받고 달려왔는데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하나같이 혼비백산했다.직원들은 급히 배서준에게 연락을 시도했다.한편 배서준은 어렵게 시간을 내 천주에 와 있었고 여러 사람들과 인맥을 쌓기 위해 술자리를 이어가고 있었다.잔이 오가며 거의 정신이 나갈 정도로 마시던 중, 핸드폰이 울렸다.서유라 이름이 뜬 화면을 본 배서준은 불쾌한 표정을 지었지만 망설이지 않고 전화를 받았다.“배 대표님, 드디어 받으셨네요. 유라 씨가 지금 미쳐 날뛰고 있어요. 빨리 와서 처리 좀 해주세요!”그 말에 배서준의 얼굴이 확 변했고 그는 결국 잔을 내려놓고 급히 자리를 떴다.조성우는 그 상황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고 마음속으로는 남설아가 너무 안됐다 싶었다.배서준이 떠나자 조성우는 바로 강연찬에게 전화를 걸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강연찬은 남설아를 데리고 그 자리에 도착했다.두 사람이 함께 들어오는 걸 본 조성우는 다소 놀란 표정으로 남설아를 바라봤다.“설아 씨는 여기 웬일이에요?”그 말에 남설아는 이 자리가 자신에게 예정된 자리가 아니었단 걸 눈치챘고 당황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어색한 침묵 끝에 작게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억지로 끌려왔다고 하면... 믿을래요?”“친구들끼리 모여서 얘기 좀 하는 게 뭐 어때서요.”강연찬은 남설아의 손을 끌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하지만 남설아는 그의 손을 조용히 뿌리치며 진지하게 말했다.“오빠 마음은 고맙지만 내가 배서준과 어떤 사이든 간에 지금 난 법적으로 그 사람의 아내야. 밖에선 모두가 날 사모님이라 부른다고. 이런 상황에서 내가 오빠랑 얽히는 건 나도 싫고 오빠에게도 민폐야.”그 말을 끝으로 고개도 돌리지 않고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남설아는 알고 있었다. 강연찬은 그녀의 앞날을 위
그는 줄곧 자신과 남설아는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 생각해왔지만 지금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강연찬이 회복되자 모두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고 특히 남설아는 그동안 불안했던 마음을 비로소 내려놓을 수 있었다.한편, 멀리 리조트에 머무르고 있던 서유라는 무척 불안하고 초조했다.서도현은 자신이 보낸 사람들이 전부 체포되어 한 명도 빠짐없이 구속되었다는 정보를 이미 입수했다. 남설아가 다치지 않은 것도 모자라 다친 사람마저 회복되었으니 그동안 벌인 모든 일이 헛수고가 되고 만 것이다.“뭐라고? 강연찬이 회복했다고?”서유라의 목소리는 고막을 찢을 듯 날카로웠다.“그 사람들이 엄청 대단하다고 하지 않았어? 어떻게 여자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남설아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여자잖아. 그런데도 그 여자 하나 못 건드려서 이 지경이 된 거야? 돈을 그렇게 많이 받고는 뭐 하겠다는 거야? 적은 돈이 아니었잖아.”서도현은 배서준의 감시를 피해 몰래 리조트 안으로 숨어들어와 서유라와 만났다.그의 얼굴엔 짜증이 가득했고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누나, 나도 최선을 다했어. 그놈들이 이런 일 하나도 제대로 못 할 만큼 이렇게 쓸모없을 줄은 누가 알았겠어. 그래도 다행인 건 그놈들이 입이 무지하게 무겁다는 거야. 지금껏 한마디도 안 했어. 나도 계속 지켜볼 거니까 우리한테 불똥이 튀게 두진 않을 거야.”“쓸모없는 놈들! 전부 다 쓸모없어!”서유라는 온몸을 떨며 분노했다. 그녀는 탁자 위에 놓인 찻잔을 집어 들어 바닥에 힘껏 내던졌다.“이제 어떡해? 강연찬이 회복됐다고? 혹시 이 일을 남설아한테 말하면 어쩌려고? 남설아가 알게 되면, 나는...”“누나, 진정해봐.”서도현은 급히 달래며 말했다.“강연찬이 회복됐다고 해도 우리가 한 짓이라는 증거는 없어. 게다가 그 킬러들은 내가 따로 구한 사람들이라서 우리랑 직접적인 연결 고리는 없어.”“그래도...”서유라는 여전히 불안했다.“남설아 그 여자는 워낙 교묘해서 무슨 단서라도 찾아내게 되면 우리는 순식간에
“알겠어.” 송우민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너희가 그렇게 말한다면 따를게.”“우민아, 고마워.” 남설아가 말했다.“네가 얼마나 복수를 원하고 있는지 알아. 하지만 우리는 냉정해야 해. 감정에 휘둘리면 안 돼.”“응, 알아.” 송우민이 고개를 끄덕였다.“너희 계획에 최선을 다해 도울게.”“좋아.”남설아가 미소 지었다.“우린 반드시 해낼 수 있을 거야.”세 사람은 구체적인 세부 사항을 더 논의한 후, 각자 맡은 일을 하기 위해 흩어졌다.연회가 끝난 후, 남설아는 사무실로 돌아와 밀린 서류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그때 강연찬이 따뜻한 우유 한 잔을 들고 들어왔다.“설아야, 우유 좀 마시고 일찍 쉬어.”강연찬이 우유를 건네며 말했다.“요즘 너무 무리하고 있어. 몸을 챙겨야지.”“응, 고마워, 오빠.”남설아가 우유를 받아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오빠도 일찍 쉬어.”“난 안 피곤해.” 강연찬이 말했다.“너 일 마칠 때까지 같이 있어 줄게.”“괜찮아, 오빠. 몸도 아직 완벽히 회복된 건 아니잖아. 푹 쉬는 게 좋아.”남설아가 말했다.“이 서류들은 나 혼자서도 처리할 수 있어.”“그래도 옆에 있어 줄게.”강연찬이 말했다.“너도 너무 늦지 않게 마무리하고 쉬어.”“응, 알겠어.”강연찬이 나간 뒤에도 남설아는 계속해서 일을 처리했다.그녀는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었다. 더 강해져야만 배서준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나은이를 위해 복수할 수 있었다.깊은 밤이 되어서야 남설아는 마침내 모든 서류를 정리했다.그녀는 기지개를 켜면서 창가로 가서 불빛이 번쩍이는 도시를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나은아, 보고 있어?”남설아는 혼잣말처럼 속삭였다.“엄마가 반드시 복수할 거야. 기다려줘.”다음 날, 남설아는 이른 아침부터 회사에 출근했다.그녀는 회사의 핵심 팀을 소집해 다음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여러분, 우리 그동안 좋은 성과를 거뒀지만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남설아가 말했다.“배건 그룹은 지금 위기에 처해 있지만
“선배...”남설아는 강연찬을 바라보며 가슴 깊이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꼈다.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송우민은 두 사람 사이의 다정한 분위기에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기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마음 한편이 허전했다.연회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던 중, 남설아가 잔을 들어 모두와 함께 축하의 건배를 하려는 찰나 강연찬이 재빨리 손을 내밀어 그녀를 막았다.“설아야, 요즘 너무 무리했잖아. 술은 좀 줄여.”강연찬의 목소리엔 진심 어린 걱정이 담겨 있었다.남설아는 그의 따뜻한 눈빛을 마주하며 마음이 포근해졌다.하여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들고 있던 술잔을 내려놓고 대신 주스를 들었다.“알겠어. 선배 말 들을게.”남설아는 웃으며 말했다.그 광경을 본 송우민은 잔을 들고 조용히 다가왔다.“남설아, 내가 한 잔 올릴게.”송우민은 잔을 들며 말했다.“이번 성공, 정말 축하해.”남설아는 주스를 들고 잔을 맞댔다.“고마워, 우민아.”남설아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네 도움이 없었으면 이렇게 빠르게 결과를 얻진 못했을 거야.”“우린 친구잖아. 서로 도와야지.”송우민은 웃으며 말했다.“근데 정말 대단하다. 네가 이렇게 멋진 사람일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우민아, 너무 띄우지 마.”남설아는 조금 쑥스러워하며 웃었다.“운이 좋았을 뿐이야.”“그건 아니지.”송우민은 단호히 말했다.“너의 실력, 결단력, 배짱, 모두 내가 본 사람들 중 최고야.”“그 얘기는 그만하고...”남설아는 말을 돌리며 미소 지었다.“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해보자.”“좋아.”송우민이 고개를 끄덕였다.“남설아, 내 생각엔 지금이 기회야. 우리가 배건 그룹을 한 방에 무너뜨리고 배서준한테 확실하게 복수해야 해!”그의 눈빛에는 분노와 집념이 가득했다.마치 지금 당장이라도 배서준을 단죄하고 싶은 듯했다.그러나 강연찬은 조용히 눈살을 찌푸렸다.“난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해.”“왜?”송우민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지금 배건 그룹은 거의 끝장난 상태잖아. 이
“서준아, 나 너무 힘들어...”서유라는 침대에 누운 채 핏기없는 얼굴로 힘없이 중얼거렸다.“유라야, 어디 아파?”깜짝 놀란 배서준은 침대로 다가가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나도 잘 모르겠어. 그냥 온몸이 다 불편하고 아파...”서유라는 고통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얼른 의사 부를게!”배서준은 급히 몸을 일으키며 나가려 했다.“안 돼...”하지만 서유라가 급히 그의 손을 붙잡았다.“의사 부르지 마. 나 병원 가기 싫어...”“근데 지금 상태가... 그냥 둘 수 없잖아.”배서준은 여전히 불안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정말 괜찮아. 그냥... 네가 곁에 있어 주면 돼...”서유라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알겠어, 옆에 있을게.”그렇게 배서준은 서유라의 손을 살며시 잡고 말했다.“아무 데도 안 갈게. 여기서 널 지킬 거야.”“응...”서유라는 그의 품에 기대며 살짝 웃었고 그 입가엔 희미하지만 분명한 만족감이 스쳐 지나갔다.배서준은 서유라의 달콤한 말과 애정 어린 행동에 완전히 빠져 있었고 그녀의 진짜 속내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여전히 지극정성으로 돌보고 있었다.한편, 남설아의 세심한 간호 아래 강연찬의 몸은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그는 점차 회사 일에도 다시 참여하기 시작했고 남설아와 함께 나란히 전선에 서며 경영에 힘을 보탰다.그 사이 남설아는 잇따라 중요한 프로젝트들을 따내며 사업적으로 완전한 전성기를 맞이했다.그녀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성과가 이어졌고 배건 그룹은 연일 밀려 고전을 면치 못했다.이러한 성과를 기념하고 고생한 직원들을 격려하기 위해 남설아는 대규모의 축하 연회를 열기로 했다.연회는 고급 호텔에서 성대하게 개최되었고 현장은 화려하게 꾸며졌으며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직원들은 모두 정장을 차려입고 참석했고 모두의 얼굴엔 성취와 기쁨이 가득했다.그들은 서로 잔을 부딪치며 축하했고 성공의 기쁨을 나누었다.남설아는 우아한 드레스를 입고 한가운데에 서서 환한 미소를 머금은 채
천기준은 조용히 배서준의 현재 상황과 결정을 남설아에게 전했다.“대표님, 이제 배 대표님은 완전히 사방에서 외면당하고 있습니다.”천기준의 말투에는 깊은 체념과 실망이 묻어났다.“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그 여자 곁에 붙어 있으려 하네요.”“후, 그야말로 자업자득이죠.”남설아는 비웃듯 차가운 웃음을 흘렸다.“자기가 아직도 예전처럼 뭐든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다고 착각하나 본데 지금의 배서준은 그냥 여자한테 정신 팔린 멍청이일 뿐이에요.”“대표님,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천기준이 물었다.“지금처럼 그 사람이 회사에 없는 틈이야말로 우리가 움직일 절호의 기회입니다.”“당연히 병들었을 때는 끝장내는 게 기본이죠.”남설아의 눈빛엔 싸늘한 결의가 번뜩였다.“이젠 그 인간도 잃는 게 뭔지 뼈저리게 느껴봐야 해요.”“역시 대표님답습니다.”천기준이 말했다.“지시하신 대로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좋아요.”남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한 듯 말했다.“기억해요. 이번엔 반드시 속전속결로, 숨 돌릴 틈도 주지 마요.”“네, 대표님!”남설아와 송우민이 손을 잡고 본격적으로 움직이자 배건 그룹의 위기는 한층 더 깊어졌다.남설아의 회사는 굶주린 늑대처럼 배건 그룹의 시장을 빠르게 잠식했고 원래 배건 그룹 쪽에서 따냈던 주요 프로젝트들마저 차지해버렸다.그 결과, 배건 그룹의 주가는 폭락했고 시가총액은 대폭 줄어들었으며 고객사들은 잇따라 이탈했고 사내 분위기는 혼란과 불안으로 가득 찼다.주주들의 손실은 상상을 초월했고 배서준에 대한 불만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배서준, 진짜 쓸모없네!”“회사를 이 지경으로 만들고도 어떻게 대표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지?”“당장 끌어내려야 해!”“그래! 더는 회사 말아먹게 놔두면 안 돼!”분노한 주주들의 외침은 마치 화산처럼 폭발해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천기준은 그 상황을 남설아에게 보고했고 남설아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명령을 내렸다.“계속 감시해요. 그 둘이 무슨 짓을
천기준은 눈앞의 광경을 보며 깊은 무력감에 휩싸였다.소파에 앉은 배서준은 잔뜩 찡그린 얼굴로 고민에 잠겨 있었고 서유라는 그의 곁에 꼭 붙어 앉아 힘없이 기대어 있었다.“대표님, 이대로는 안 됩니다!”천기준의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묻어 있었다.“지금 회사 상황 대표님도 아시잖아요. 더 늦기 전에 돌아가셔서 직접 수습하셔야 합니다. 이러다 진짜 배건 그룹이 무너집니다!”“근데 유라가 지금 몸이 안 좋아. 어떻게 이럴 때 내가 유라를 혼자 두고 가겠어.”배서준의 말투에는 깊은 피로와 한숨이 묻어 있었다.“하지만 대표님...”천기준이 설득을 이어가려던 순간, 서유라가 조용히 말을 가로막았다.“서준아, 천 비서님 탓하지 마.”서유라의 목소리는 마치 곧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나약했다.“회사 일이 중요한 건 나도 알아. 그냥 돌아가. 난 괜찮아.”“유라야, 무슨 소리야.”배서준은 그녀를 안쓰럽게 바라보며 말했다.“지금 제일 중요한 건 네 건강이야. 내가 어떻게 널 놔두고 가.”“그래도...”서유라의 눈가엔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듯한 눈물이 맺혀 있었다.“내가 네 일에 방해가 되는 것 같아서 미안해.”“바보야, 너 하나보다 더 중요한 게 어디 있어.”배서준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속삭였다.“회사 일은 내가 방법을 찾을게.”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천기준은 속으로 실소를 터뜨렸다.‘정말 기가 막히네. 내가 본 배 대표님 중에 제일 한심한 버전이야. 예전엔 그렇게 단호하고 냉정했던 사람이 이젠 여자가 곁에만 있으면 정신줄을 놓고 있잖아.’“대표님, 진짜 더는 미룰 수 없습니다.”천기준은 다시 입을 열었다.“주주들은 이미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했어요. 계속 이렇게 계시면 정말로 해임당합니다!”“알아, 나도 알아.”배서준은 초조한 듯 머리를 감싸 쥐었다.“그렇지만 유라가...”“서준아, 돌아가.”서유라가 조용히 말했다.“나 혼자서도 괜찮아.”“유라야, 너 지금...”배서준은 놀란 눈으로 서유라를 바라봤다.“정말
“네.”남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명심해요. 이 일은 최대한 시끄럽게 만들어요. 배서준이 모두의 표적이 되도록 말이에요.”“알겠습니다, 대표님. 바로 처리하겠습니다.”천기준은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떠났다.남설아는 사무실에 홀로 남아 싸늘한 눈빛으로 창밖을 바라봤다.‘배서준, 당신이 의리를 저버렸으니 나도 더는 자비를 베풀지 않을 거야.’곧이어 배서준이 리조트에서 서유라와 밀회를 즐기고 있다는 소문이 각종 언론을 통해 퍼지기 시작했다.여론은 순식간에 들끓었고 배서준의 이미지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무능하다’, ‘책임감 없다’는 비난이 쏟아졌다.“배서준, 진짜 너무하네!”“회사는 지금 무너지고 있는데 밖에서 여자나 만나고 앉았어?”“이런 사람을 어떻게 대표 자리에 앉혔는지 이해가 안 가.”“저 사람한테 회사를 맡긴 게 큰 실수였지.”“이참에 그냥 물러나게 해야 돼!”결국 회사는 긴급 주주총회를 소집했다.얼마 전, 배서준이 자신의 자금을 담보로 위기를 넘기겠다고 한 뒤 감쪽같이 사라졌고,오히려 남설아가 한발 물러나 시간을 벌어준 덕분에 간신히 버텨온 상황이었다.하지만 정작 의사결정을 할 실권자는 자리에 없고 남은 이사들은 완전한 권한도 없는 상태라 회사 운영은 갈수록 마비되어가고 있었다.거기에 이번 스캔들까지 터지자 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됐다.“이게 지금 어느 땐데 여자를 챙겨?! 본인 위치도 잊었나?!”“천 비서님, 배 대표님 떠나기 전에 천 비서님한텐 아무 말도 안 하고 갔어요?”천기준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사실 함께 일한 지 오래됐지만 배서준이 모든 걸 공유하진 않았다.“지금 당장 리조트로 가서 배 대표님 데려와요!”한 이사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어떻게든 끌고 와야 해요. 회사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요!”“네, 이사님. 바로 다녀오겠습니다.”천기준은 피곤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답했다.‘정신적으로 남 대표님한테 매일 시달리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그 두 사람을 만나러 내가 가야 한다고? 이게 대체 무
“서준아, 제발 이번만은 내 말 들어줘, 응? 그냥 나를 위해서 우리 미래를 위해서라고 생각하고... 잠깐이라도 푹 쉬면 안 돼?”서유라는 눈물을 글썽이며 배서준을 올려다봤다.그 애처로운 눈빛에 배서준의 마음도 조금씩 흔들렸다.“알겠어, 네 말대로 할게.”결국 배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서유라는 곧장 환하게 웃으며 배서준을 꼭 껴안았다.“역시 나를 제일 아껴주는 사람은 서준이 너야.”배서준은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안아주었지만 눈빛은 복잡하기만 했다.회사의 상황은 이미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남설아와 송우민의 공격은 날이 갈수록 거세졌고 배건 그룹의 주가는 연일 하락 중이었다.시장은 빠르게 무너지고 있었고 내부는 불안과 불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이대로라면 배건 그룹은 정말 그의 손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서유라의 모습을 보면 차마 그녀 곁을 떠날 수가 없었다.배서준의 가슴속은 끝없는 갈등과 번민으로 뒤엉켰고 도대체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 알 수 없었다.그때, 그의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이번엔 천기준이었다.배서준은 잠시 고민하다가 전화를 받았다.“배 대표님, 도대체 언제 돌아오실 겁니까?”천기준의 목소리엔 조급함과 절박함이 가득 묻어났다.“지금 회사는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에요. 주주들도 다 대표님만 기다리고 있습니다!”“나, 나도 지금...”배서준이 무언가 말하려는 순간, 옆에 있던 서유라가 손을 뻗어 전화기를 낚아챘다.한편, 천기준은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통화 종료’ 소리에 분노를 억누르지 못했다.그는 핸드폰을 책상 위에 내리찍을 듯 내려놓으며 이를 악물었다.“이 서유라란 여자는 정말 재앙이라니까!”천기준은 이를 갈듯 말했다.“배 대표님도 왜 저 여자 말만 듣는 건지... 지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도 모르나?”곁에 있던 다른 비서도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천 비서님, 우리 이대로 괜찮을까요? 주주들한테 뭐라고 설명해야 하죠?”“설명할 방법이 어딨어요...”천기준은 허탈하게 웃으며 고
“네, 송 대표님!”모두가 힘찬 목소리로 외쳤고 회의실 안은 결의에 찬 열기로 가득 찼다.송우민의 지휘 아래 남설아의 회사는 굶주린 늑대처럼 배건 그룹의 시장을 거침없이 잠식해 들어갔다.배건 그룹의 주가는 연일 하락했고 시가총액은 크게 줄어들며 내부 분위기는 극도로 혼란스러워졌다.흩어진 조직력에 동요하는 임직원들 사이로 불만이 번졌고 결국 주주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배서준에게 줄줄이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배 대표님, 도대체 언제 돌아오실 겁니까?”한 주주는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지금 회사 상황이 완전히 개판이에요! 더 늦으면 정말 끝장납니다!”“맞아요, 대표님! 이대로 가다간 정말 회복 불가능합니다!”또 다른 주주도 강하게 덧붙였다.“지금 당장 돌아와서 진두지휘하셔야 합니다!”끊임없이 쏟아지는 전화에 배서준은 머리를 싸매고 이마를 짚었다.그 역시 당장 회사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문제는 서유라였다.그녀는 절대 그를 보내려 하지 않았다.“서준아, 가지 마...”서유라는 창백한 얼굴로 침대에 누운 채 배서준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나 너무 힘들어. 옆에 있어 줘야 버틸 수 있어.”“유라야, 네가 힘든 거 알아. 하지만 회사도 지금...”배서준은 난처한 얼굴로 말을 흐렸다.“몰라! 나한테 중요한 건 네가 곁에 있어 주는 거야! 너 없이 나는 단 하루도 못 버텨!”서유라는 울먹이며 소리를 질렀다.“그런 말 하지 마.”배서준은 가슴 아프다는 듯 그녀를 껴안았다.“널 내버려 두고 갈 수 없지. 하지만 회사 쪽 상황도 정말 더는 미룰 수가 없어.”“결국 날 버릴 거지? 날 두고 가겠다는 거잖아!”서유라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떼를 쓰며 말했다.“내 몸은 누가 챙겨? 나 혼자선 아무것도 못 해... 넌 가면 안 돼!”“유라야, 그러지 마.”결국 배서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좋아, 당분간은 여기 있을게. 회사 일은 전화랑 화상회의로 처리할 테니까 괜찮지?”“진짜지?”서유라는 눈물로 젖은 눈을 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