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서준은 피곤한 듯 미간을 문질렀다. 숙취에 피로까지 겹쳐서인지 그의 상태는 영 좋지 않았다.“그런 뜻이 아니야.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마.”서유라는 그런 배서준을 보자마자 바로 다가가 손가락으로 그의 관자놀이를 부드럽게 마사지해 주었다.“서준아, 너무 피곤한 거 아니야? 이렇게 하면 좀 나아? 이 상태로 출근하는 건 무리야. 어차피 회사에 큰일도 없는데 그냥 집에서 푹 쉬어. 내가 해장국 끓여줄게, 응?”서유라는 나긋나긋하게 말하며 배서준의 가슴에 기대었다. 꼭 다정하고 온순한 고양이 같아서 쉽게 거절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그녀의 다정한 말 한마디에 배서준이 느끼던 답답함이 사라지는 듯했다. 그는 자연스럽게 서유라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부드럽게 웃었다.“유라야, 나한테 이렇게 신경 써주는 건 너뿐이야. 너만 있으면 마음이 편해져.”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유라는 잘 알고 있었다. 만약 그녀에게 이런 모습이 없었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배서준 곁에 머물 수도 없었을 것이다.그녀는 그동안 많이 참아 왔다. 원래는 그 아이가 죽기만 하면 모든 게 순조롭게 풀릴 줄 알았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그 아이는 사라졌지만, 남설아가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변해버린 것이다.이제는 배서준의 환심을 사는 것뿐만 아니라 남설아를 경계해야 했다.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아이를 잃고 나서 남설아는 오히려 더 빛나 보였다. 그게 너무도 거슬렸다.배서준은 잠시 쉬고 나서야 기운을 되찾고 말했다.“준비해. 같이 출근하자.”한편, 남설아는 오늘 회사에 휴가를 냈다. 코코를 데려온 이상, 책임을 져야 했다.애지중지 품에 안고 나서서 혹시나 몸에 이상이 있을까 싶어 동물병원에 데려가기로 했다.집을 나서자마자 강연찬의 차가 문 앞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남설아는 조금 놀란 듯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코코를 안고 다가갔다.강연찬은 차에서 내리며 환하게 웃었지만, 그녀 품속의 코코를 보자마자 표정이 살짝 어색하게 굳었다.“너 출근하면서도 얘를 데리고 다니려고?”
남설아는 웃음을 거두고 코코를 가볍게 고쳐 안으며 불쾌한 기색으로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보았다.“이 시간에 회사에 있어야 하는데 여기까지 무슨 일로 온 거야?”“서준이가 어젯밤에 과음했거든. 내가 밤새 간호했더니 나 힘들다고 오늘 하루 쉬라고 했어.”서유라는 일부러 옷깃을 잡아당기며 피부에 남아 있는 애매한 흔적을 드러냈다.아이를 낳아 본 남설아가 이런 의미를 모를 리 없었다.예전 같았으면 이런 걸 보면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겠지만, 지금은 그냥 헛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어젯밤에 그렇게 소리치느라 피곤했으면 조용히 쉬지, 여기에는 왜 온 거야? 설마 이 대낮에 여기서도 소리치고 싶다는 건 아니겠지? 아쉽겠지만 난 그런 취미 없어.”남설아는 서유라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입에서 쉴 새 없이 독설을 내뱉었다.어차피 저 두 사람은 더한 짓도 서슴지 않는 인간들인데, 자신이 이 정도 말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서유라는 깜짝 놀랐다. 예전에는 자기 앞에서 찍소리도 못하던 여자가 지금 감히 이런 말을 하다니.“너... 대낮부터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서유라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더 이상 침착한 척할 수 없었다.남설아는 거의 반사적으로 코코의 귀를 손으로 가린 채 서유라를 경멸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남의 남편이 몸에 남긴 흔적을 자랑스럽게 보여주면서 나보고 부끄러움도 모른다고? 요즘은 불륜녀들이 이렇게 당당한 세상이 됐나 보네?”“사랑에서는 사랑받지 못하는 쪽이 진짜 불륜녀야.”서유라는 이를 악물며 한 걸음 다가서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남설아를 노려보았다.“당신이 우리를 손가락질할 자격이 있어? 당신도 다른 남자랑 놀고 있잖아.”남설아는 한 발짝 물러나 강연찬 옆에 섰다.그리고 일부러 그의 어깨에 머리를 살짝 기대며 장난스러운 눈짓을 보냈다.“맞아. 우리가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어. 뭐? 불만 있어? 네 남자인 배서준도 아직 나한테 뭐라 하지 않았는데 당신이 왜 난리야? 너야말로 여기서 난리 피울 시간 있으면 네 남자한테 잘
강연찬은 남설아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조금 전 그녀가 자신을 지키는 모습은 마치 당당한 여전사 같았다.강연찬의 진지한 눈빛을 보자 남설아는 미묘하게 눈썹을 찌푸리며 망설이더니 조심스레 물었다.“내가 행패 부리는 여자처럼 보이지는 않았어요?”“그게 어떻게 행패를 부리는 여자가 돼? 사람이 문 앞까지 찾아와서 모욕을 주는데 가만히 있는 건 온순한 게 아니라 무능한 거야.”강연찬은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우아함이니 품격이니 하는 건 다 헛소리였다. 서유라 같은 뻔뻔한 인간들 앞에서는 강하게 맞서는 게 정답이었다.강연찬의 말에 남설아는 왠지 코끝이 시큰해졌다.그녀는 과거에 조금만 목소리를 높여도 배서준에게 끝없이 꾸중을 들었다. 배씨 가문의 사람답지 않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지만 정작 배씨 가문의 사람이란 어떤 존재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상관없었다. 배씨 가문이 어떤지 그녀와는 더 이상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동물 병원에 도착하자 수의사는 코코의 작은 몸집을 보고 약간 놀란 기색이었다. 세심한 진찰 끝에 그는 설명했다. 코코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작았고 태어나서도 형제들 사이에서 젖을 충분히 먹지 못해서 작은 거지 건강에는 문제가 없었다. 잘 돌봐준다면 앞으로 튼튼하게 자랄 것이다.수의사의 말을 듣자 남설아는 활짝 웃으며 기뻐했다. 그녀는 바로 코코가 쓸 물건을 고르기 시작했고 심지어 분유도 최고급 제품으로 선택했다.그 와중에 강연찬은 가만히 서서 코코와 눈을 마주치고 서로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그는 동물을 무서워했지만, 이상하게도 코코와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공포감이 많이 사라졌다.“야옹!”“으악!”코코가 울자 강연찬도 반사적으로 소리를 질렀다.남설아는 깜짝 놀라 돌아와 코코를 품에 안고는 난감한 표정으로 강연찬을 바라보며 말했다.“좀 조용히 해요. 코코가 놀라요.”“남설아, 너 사람이야? 날 사람 취급은 하긴 해? 코코가 놀라면 안 되는데 나는 놀라도 되는 거야?”강연찬은 억울한 표정으로 외쳤다.그
남설아는 서유라가 오늘 배서준을 데리고 온 건, 오로지 자신에게 과시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남설아는 그저 웃음을 지었다. 왜냐하면 이제 그녀와 서유라는 더 이상 같은 경기장에 서 있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서유라의 시선은 여전히 남자에게 고정되어 있었지만, 남설아는 이제 오직 돈만을 원했다. 그리고 배서준이 차라리 죽지 못해 살기를 바랐다.“너! 남설아, 네가 이렇게 나온다고 내가 정말 아무것도 못 할 줄 알아? 이번 프로젝트를 따내지 못하면 네가 어떻게 배건 그룹에서 쫓겨나는지 두고 볼 거야.”배서준은 이를 악물었다.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어두운 면을 숨기지 못했다.평소에는 냉정하고 점잖은 모습을 유지했던 그가 지금은 분노로 이를 갈고 핏줄까지 서 있었다.그러나 그가 여기서 분노하다가 당장 숨이 끊어진다고 해도 남설아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그녀는 무심하게 어깨를 으쓱하며 덤덤하게 말했다.“서준 씨, 남을 탓하기 전에 먼저 본인부터 돌아보시죠.”그렇게 말한 뒤, 코코를 품에 안고 거침없이 밖으로 나갔다.그녀가 떠나자, 병원 안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동물 미용사조차 숨소리를 죽이며 혹시나 자신이 괜히 말려들까 봐 조심스러워했다.배서준의 감정이 격변하는 걸 느낀 서유라는 속으로 놀랐다.그녀는 배서준이 남설아 때문에 이런 감정 변화를 보일 줄은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서준아, 서준아... 괜찮아? 다 내 잘못이야. 내가 굳이 토리 사료 사러 오자고 하지 않았으면 설아 씨가 화를 내지 않았을 텐데.”서유라는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사과했다.“그 여자가 화를 내든 말든 나랑 무슨 상관이야.”배서준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짜증 어린 목소리로 소리쳤다.곧 서유라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그녀는 미세하게 몸을 떨었고 품에 안겨 있던 치와와마저 주인의 감정을 따라 조용히 흐느꼈다.그제야 배서준은 자신이 너무 심하게 말했음을 깨닫고 황급히 그녀를 다독였다.“미안해, 유
남설아를 지금까지 버티게 만든 것은 애정 같은 게 아니었다. 그녀를 지탱한 것은 증오였고 원망이었으며 끝없는 부정적인 감정들이었다.그녀는 자기 딸을 죽게 만든 사람이 멀쩡하게 잘 살아가는 걸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더군다나 그들이 서로 애정 어린 눈빛을 주고받으며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는 건 그녀에게는 지옥과도 같았다.만약 그들이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는다면 나은이는 대체 뭐가 되는 건가. 그리고 그녀 자신은 대체 뭐란 말인가.남설아는 단호한 눈빛으로 강연찬을 바라봤다.“오빠, 도와줄 거죠?”지금 그녀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강연찬뿐이었다. 남설아 또한 그에게 의지하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혼자 버티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었다.“도와줄게. 하지만 난 네가 잘 지내길 더 바랄 뿐이야.”강연찬은 그녀의 손을 잡으며 부드럽게 위로했다.그가 그녀를 돕겠다는 건 진심이었지만 그보다 더 두려운 건 그녀가 이 증오와 집착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이었다. 복수에 몰두하다가 결국 자신을 갉아먹는 걸 그는 원하지 않았다.“나 잘 지낼 거예요. 나은이에게 약속했거든요. 난 잘 살아갈 거라고요.”남설아는 살며시 웃으며 품속의 코코를 어루만졌다.그 모습을 본 강연찬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차를 몰아 그녀를 집으로 데려갔다. 그러다 문득 말을 꺼냈다.“남도일이 널 보고 싶어 해. 벌써 안에서 몇 번이나 자살 소동을 벌였어. 만날 거야?”“네.”남설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품속의 코코를 내려다보면서 확실히 그에게 해야 할 말이 있다고 느꼈다.남설아가 그렇게 쉽게 대답할 줄 몰랐던 강연찬은 잠시 멈칫했다가 덤덤하게 말했다.“그 사람 널 만나도 별로 좋은 말은 안 할 텐데. 마음 단단히 먹어.”“우리 사이는 어차피 끝을 내야 해요. 해야 할 말이 있고 밝혀야 할 일도 있어. 직접 마주 보고 확실히 끝내야죠.”남설아는 조용히 웃으며 그를 바라봤다.“오빠, 고마워요.”그녀가 지금 강연찬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고맙다는 말뿐이었다
회사로 돌아온 강연찬은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깊은 생각에 잠겼다.어떻게 하면 빠르고 강하게 배건 그룹을 차지하면서도 배서준을 무너뜨리고 자신에게 피해가 없도록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서진영은 그가 멍하니 있는 모습을 보고 짜증 난 듯 책상을 쾅 내리쳤다.“형, 내가 업무 보고하고 있는데 도대체 뭘 그렇게 멍때리고 있어요? 딴생각 중이죠?”“아니야, 듣고 있어.”강연찬은 바로 정신을 차리고 서진영을 향해 웃어 보였다.하지만 그의 태도를 보니 딱 봐도 대충 얼버무리는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서진영은 한숨을 내쉬었다.“우리 한 달 안에 이 두 가지 기술적 난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형은 요즘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만 하고 도대체 해결책은 생각해 본 거예요?”“사실 난 설아한테 한 번 보여주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걔가 더 잘할걸?”강연찬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남설아의 능력을 인정하는 서진영이었지만 지금 상황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그는 곧바로 얼굴을 찌푸리며 단호하게 말했다.“형, 우리 배건 그룹이랑 경쟁 관계라는 걸 잊은 거예요? 내가 알기로 위화 그룹이 배건 그룹이랑 아주 잘 지내고 있다고 해요. 이미 첫 번째 소프트웨어 샘플까지 넘겼다고 하더라고요. 우리랑 경쟁이 심한 상황에서 지금 우리 핵심 기술 문제를 남설아한테 넘긴다는 건 우리 손으로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하는 거나 다름없잖아요. 난 절대 반대예요.”기술 분야는 자그마한 차이가 큰 결과를 불러오는 곳이다. 이런 치열한 경쟁 속에서 리스크를 감수하는 건 위험했다.강연찬은 그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난 설아를 믿어. 걘 절대 우리 정보를 넘기지 않을 거야.”“형은 남설아를 믿는 거예요? 아니면 부부 관계를 믿는 거예요? 둘 사이에 감정이 어떻든 간에 법적으로는 부부고 여전히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사이라는 걸 잊지 말아요. 우리 회사는 이제 막 시작한 단계고 이렇게 무모한 짓을 할 여유는 없어요.”그제야 강연찬은 남설아가 왜 자기 회사로 오길 꺼렸는지 깨달았다
장숙자는 남설아가 나은이를 떠올리는 걸 보며 마음이 편치 않았다.그녀는 깊이 숨을 들이마신 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설아 씨, 나은이는 이제 없어요. 부디 너무 힘들어하지 마세요.”남설아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나은이에게 약속했어요. 잘 살아가겠다고. 난 그 약속을 지킬 거예요.”그녀는 고개를 들어 벽에 걸린 나은이의 사진을 바라보았다.“나는 절대 거짓말하지 않을 거예요. 반드시 잘 살아갈 거예요.”남설아의 태도가 이렇다 보니 장숙자는 더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너무 많은 말을 해봤자 그녀의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들 뿐이었다.결국 장숙자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다면 다행이에요. 설아 씨, 전 정말 설아 씨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그때 배서준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남설아 품에 안긴 작은 생명체를 보곤 얼굴을 찡그리며 혐오스럽다는 듯 말했다.“더러워 죽겠네.”남설아는 반사적으로 코코를 꼭 끌어안고는 눈살을 찌푸린 채 배서준을 바라보았다.이 남자는 도대체 요즘 왜 이러는 걸까, 예전에는 그렇게 집에 돌아오라는 부탁에도 코빼기도 안 보이더니 요즘은 왜 이렇게 뻔뻔하게 찾아오는 건지 알 수 없었다.자기는 이미 이 집을 나왔는데 대체 왜 이토록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건지, 정말 지긋지긋했다.“서준 씨, 왜 또 왔어요?”남설아는 코코를 안고 일어서며 불쾌하다는 듯 물었다.“나는 네 남편이야. 내가 여기 안 오고 어디 있어야 하는데?”배서준은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어 헤치며 짜증스러운 기색을 보였다. 그는 남설아가 품 안의 작은 고양이를 보호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이자 더욱 기분이 상했다.“회사에 출근한다고 한 게 다 빈말이었나 보네. 이제 보니까 역시 네 성격은 절대 안 변하는구나. 고작 고양이 한 마리에 정신이 팔려서는, 네가 말하던 꿈이니 뭐니 하는 것들도 결국 다 허울뿐이었네.”배서준은 의자에 털썩 앉아 남설아를 내려다보며 비꼬았다.사실 이런 말다툼은 지난 몇 년 동안 두 사
남설아는 비웃으며 차갑게 말했다.“마치 내가 이혼을 원하지 않는 것처럼 말하네요? 배서준 씨, 솔직히 말해줄게요. 우리 부부 관계는 이미 끝났어요. 우리가 왜 아직 이혼하지 않고 있는지는 서준 씨도 잘 알잖아요. 그러니까 조용히 있는 게 좋을 거예요. 아니면 정말 끝장을 보게 될 거예요.”그녀의 눈빛이 점점 날카로워졌다.“나한테 어떻게 하겠다고? 네가 나한테 대체 뭘 할 수 있는데? 네가 날 어떻게 할 수나 있어?”인제 와서 보니 어차피 자신에게 남은 건 목숨 하나뿐이었다. 망설일 것도 없이, 그냥 밀어붙이면 될 일이다.“너, 네가 어떻게 이렇게 변할 수가 있어? 역시 유라가 말한 대로였어. 너 연기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하는구나.”배서준은 분노에 찬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손을 내밀었다.“지금 당장 금고 열쇠 내놔. 네가 가질 자격 없는 것들이야.”남설아는 이 말을 듣고 웃음이 터질 뻔했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배서준의 손바닥을 세게 내려쳤다. 그 충격에 그녀의 손도 저렸지만 개의치 않았다.“그건 할아버지가 내게 물려주신 유산이에요. 서준 씨 것이 아니라고요. 내가 가질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는 이미 결정된 일이에요. 내가 안 주겠다면 어쩔 건데요? 그렇게 화가 나면 어디 한번 죽여봐요.”이를 악문 그녀는 머리를 성큼 배서준 앞에 들이밀었다.갑작스러운 행동에 배서준은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그러다 발이 엉켜 소파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당황한 그의 얼굴에는 경악과 이해할 수 없다는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그는 믿을 수 없었다. 늘 자기 말에 고분고분하던 그 여자가 이렇게까지 달라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이 여자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배서준의 난감한 모습에 남설아는 속이 다 시원했다.“서준 씨, 내 거는 내 거예요. 내가 죽더라도 서준 씨한테는 절대 내놓는 일 없어요. 필요하면 직접 금고나 따 보시지 그래요? 할아버지께서 내게 남긴 것들, 난 하나도 포기 안 해요. 그리고 두 번 다시 나 건드리지 말아요. 괜히 나
차 안으로 돌아온 서유라는 여전히 드레스를 고른 기쁨에 들떠 있었다.“서준아, 우리 이번 파티에서 가장 눈에 띄는 커플이 되지 않을까?”그녀는 기대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그럴 거야.”배서준이 대답했지만, 말투에는 영혼이 없었다.“다행이네.”서유라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서준아, 네가 이렇게 같이 와줘서 정말 좋아.”그녀는 배서준의 어깨에 기대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배서준은 말없이 그녀의 등을 가볍게 토닥였다.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계속 남설아의 모습이 떠올랐고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파티 당일,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행사장은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고 분위기 또한 고급스럽고 활기찼다.남설아와 강연찬이 모습을 드러내자 주변에서 작은 술렁임이 일었다.남설아는 연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단정하면서도 기품 있는 자태를 뽐냈고 강연찬은 깔끔한 검은색 정장을 입고 여유롭고 세련된 분위기를 풍겼다.두 사람은 함께 서 있는 것만으로도 시선을 끌었고 자연스럽게 주목받는 존재가 되었다.“남 대표님, 강 대표님, 파티에 오신 걸 진심으로 환영합니다.”서 회장 부부가 반갑게 맞이했다.“서 회장님, 사모님, 축하드립니다.”남설아가 미소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남 대표님께서 참석해 주시다니 저희가 정말 영광이에요.”서 회장의 부인인 차혜미가 남설아의 손을 잡으며 따뜻하게 말했다.“별말씀을요, 사모님.”남설아가 정중하게 답했다.“이분이 바로 강 대표님이시죠?”서기찬이 강연찬을 바라보며 물었다.“네, 서 회장님.”남설아가 소개했다.“저의 비즈니스 파트너이자 좋은 친구인 강연찬 대표님이에요.”“강 대표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서기찬이 손을 내밀었다.“반갑습니다, 서 회장님.”강연찬은 예의를 갖춰 악수했다.“두 분 안으로 들어가시죠. 자리를 미리 준비해두었어요.”서기찬이 손짓했다.“감사합니다.”남설아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세 사람은 함께 연회장 안으로 들어갔다.조금 떨어진 곳에 배서준과 서유라도 행사장
배서준은 서유라가 들뜬 모습으로 웃고 있는 걸 보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괜히 불편하고 답답했다.그는 말없이 남성복 코너로 가서 대충 눈에 들어오는 정장을 집어 들었다.“손님, 정말 안목이 좋으시네요. 이건 저희 매장에서 가장 최근에 들어온 신상이에요. 이탈리아산 원단으로 수제 재단된 제품이라 고객님 체형에 정말 잘 어울리실 거예요.”점원이 열정적으로 설명했다.배서준은 아무 말 없이 검은색 정장을 들고 탈의실로 들어갔다.정장을 갈아입고 거울을 바라본 그는 문득 거울 속 자기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저 사람이 정말 내가 맞아?’한때 야망으로 가득하고 세상을 거머쥘 듯 당당했던 배서준은 이제는 서유라의 기대와 기준에 맞춰 움직이는 꼭두각시처럼 보였다.“서준아, 다 입었어?”서유라가 탈의실 밖에서 재촉했다.“응.”배서준은 문을 열고 나왔다.“와, 서준아, 너 이 정장 입으니까 진짜 멋있다.”서유라는 마치 영화 속 배우를 보는 듯 눈에 감탄이 가득했다.“진짜 영화배우 같아.”배서준은 가볍게 웃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서유라가 이런 말들을 듣는 걸 좋아한다는 걸 알지만 지금은 그런 말을 할 기분이 아니었다.“이걸로 할게.”배서준은 피곤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때, 매장 입구 쪽에서 구두 소리가 들려왔다.남설아와 강연찬이 매장 안으로 들어왔다.눈이 마주친 순간, 공기가 얼어붙는 듯했다.배서준의 시선은 남설아에게 고정되었고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남설아는 연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단정하면서도 우아한 분위기를 풍겼다.드레스는 그녀의 몸매를 자연스럽게 살려주었고 살짝 올려 묶은 머리 사이로 드러난 목선과 쇄골은 고급스러움을 더했다.그녀는 마치 한 송이 활짝 핀 제비꽃 같았다. 요란하지 않지만, 눈에 띄는 아름다움이었다.배서준의 가슴이 순간 쿵 하고 내려앉았다.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는 예전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그녀의 당당함과 여유는 서유라가 따라올 수 없는 것이었다.“강 대표님과 설아 씨도 드레스 고르러
“그날 같이 가자.”“응.”강연찬은 고개를 끄덕였다.한편, 배서준 역시 서 회장 부부가 주최하는 파티의 초대장을 받았다.그는 원래 서유라와 함께 참석해 둘의 관계와 입지를 보여줄 생각이었다.“유라야, 서 회장 부부가 비즈니스 파티를 연대. 우리 둘 다 초대했어.”배서준은 초대장을 들고 서유라에게 말했다.“같이 갈래?”“당연히 가야지.”서유라는 웃으며 말했다.“이런 기회에 좋은 인맥도 많이 만들 수 있잖아.”“그래.”배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같이 가자.”“응.”서유라가 고개를 끄덕였다.“서준아. 넌 정말 다정해.”서유라는 배서준의 품에 기대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배서준은 남설아도 그 파티에 참석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음속에 복잡한 감정이 피어올랐다.“뭐? 남설아도 간다고?”배서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네, 대표님.”천기준이 답했다.“서 회장 부부가 남 대표님도 초대했답니다.”배서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표정이 어두워졌다.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남설아가 강연찬과 함께 파티에 나타나는 모습을 상상하자 괜히 기분이 불편해졌다.“서준아, 무슨 일 있어?”서유라는 그의 이상한 기색을 눈치채고 물었다.“아니야.”배서준은 고개를 저었다.“그냥, 남설아가 올 줄은 몰랐어.”“오면 어때.”서유라가 말했다.“우리가 남설아를 무서워할 이유는 없잖아.”“무서워서 그런 게 아니야.”배서준이 대답했다.“그냥...”그는 어떻게 얘기했으면 좋을지 몰랐다. 그저 가슴이 무척 답답했다.“됐어, 너무 신경 쓰지 마.”서유라가 달래듯 말했다.“우리 둘이 함께 가서 보여주자. 우리가 얼마나 잘 지내고 있는지.”“그래, 그게 좋겠다.”배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유라야, 네가 있어서 정말 든든해.”서유라는 배서준과 함께 파티에 참석하겠다고 먼저 제안했다.“서준아, 이런 자리에는 내가 같이 가야지.”그녀는 부드럽게 말하며 따뜻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네 연인이니까 함께 이겨내야 할 책임이 있어.
배서준이 회사로 돌아왔을 때, 그를 반긴 것은 직원들의 열렬한 환영이 아니라 책상 위에 산처럼 쌓인 서류들과 불안으로 가득 찬 얼굴들이었다.그는 자신이 자리를 비운 동안 회사의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내가 없는 동안 내가 지시한 대로 진행됐어?”배서준이 천기준에게 물었다.“네, 대표님.”천기준은 서둘러 대답했다.“지시에 따라 주가 일부는 안정시켰고 마케팅도 강화했습니다. 하지만...”“하지만 뭐?”배서준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하지만 남 대표님 쪽의 공세가 너무 강해서... 우리가 제대로 대응을 못 하고 있습니다.”천기준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배서준은 말없이 책상 앞으로가 높게 쌓인 서류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지금 뭔가를 하지 않으면 배건 그룹은 정말로 무너질 수도 있다는 불안이 그를 짓눌렀다.“각 부서의 팀장들에게 10분 후에 회의실로 모이라고 전해.”배서준이 말했다.“네, 대표님.”천기준은 얼른 대답하고는 회의 소집을 위해 나갔다.배서준은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지금은 감정이 아니라 이성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어떻게든 회사를 다시 일으켜야 했다.10분 후, 회의실은 이미 각 부서의 팀장들로 가득 차 있었다.배서준은 회의실 중앙에 앉아 익숙한 얼굴들을 바라보며 복잡한 심경을 숨겼다.그 순간, 서유라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스쳤다.“서준아, 나는 널 믿어. 넌 반드시 배건 그룹을 다시 일으킬 수 있을 거야.”“고마워, 유라야.”배서준은 서유라와의 대화를 떠올리고 있었다.“네가 곁에 있어 줘서 난 두렵지 않아.”한편, 남설아의 회사는 강연찬과 송우민의 지원을 받으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그녀의 기업은 빠르게 시장 점유율을 넓혀가고 있었고 그에 따라 많은 비즈니스 파트너들에게 인정받으며 여러 초청도 받게 되었다.이날, 남설아는 서 회장 부부가 주최하는 상류층 비즈니스 파티 초대장을 받았다.서 회장 부부는 재계의 거물로, 남설아의 회사와도 협력 관계에
“그럼 됐어.”서도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누나, 나한테 시킬 일 있으면 뭐든 말해.”“응.”서유라가 말했다.“당분간은 여기 남아서 나 잘 챙기고 배서준도 잘 감시해. 남설아랑 접촉 못 하게 해야 해.”“알겠어. 걱정하지 마.”서도현은 단호하게 말했다.한편, 배서준은 회사로 복귀하자마자 긴급회의를 소집했다.“여러분, 최근 우리 회사의 상황은 매우 심각합니다.”회의실 중간 자리에 앉은 배서준은 굳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우리는 지금 즉시 대응책을 세워서 상황을 돌려놔야 합니다.”“배 대표님, 계획이 있으신가요?”한 주주가 물었다.“이미 여러 가지 대응 방안을 준비해 두었습니다.”배서준이 말했다.“첫째, 주가를 안정시켜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해야 합니다. 둘째, 마케팅을 강화해서 잃어버린 시장 점유율을 되찾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내부 정비를 통해 운영 효율을 높이겠습니다.”“말씀은 좋은데 구체적으로는 어떻게 실행하실 건가요?”또 다른 주주가 질문했다.“제가 직접 나서서 추진하겠습니다.”배서준이 단호하게 말했다.“최대한 빨리 세부 계획을 수립해서 여러분께 공유하고 논의하겠습니다.”“저희는 배 대표님을 믿을 것입니다.”한 주주가 말했다.“하지만 이전 행동들로 인해 실망한 것도 사실입니다.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랍니다.”“맞습니다, 배 대표님.”또 다른 주주도 덧붙였다.“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회사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합니다.”“여러분, 제가 실망하게 한 점은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배서준은 진지하게 말했다.“하지만 저를 다시 한번 믿어 주십시오. 반드시 배건 그룹을 이 위기에서 구해내겠습니다.”“기대합니다.”한 주주가 말했다.“대표님, 잘 지켜보겠습니다.”회의가 끝난 후, 배서준은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왔다.그는 통유리창 앞에 서서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며 복잡한 감정에 잠겼다.잠시 후, 그는 휴대폰을 꺼내 서유라에게 전화를 걸었다.“유라야, 괜찮아? 나 회사 도착했
서유라는 분노에 차 손에 들고 있던 태블릿을 바닥에 내던졌다. 태블릿의 화면이 산산조각이 났다.정교하게 화장한 얼굴이 일그러졌고 눈빛에는 분노와 공포가 뒤섞여 있었다.그녀는 서도현에게 먼저 나가보라고 한 뒤, 혼자 남아 배서준을 상대하기로 했다.혼자 방에 남은 서유라는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했다.그녀는 창가로 다가가 흐린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남설아, 너무 자만하지 마. 내가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며칠 뒤, 서유라는 대의를 위해 배서준에게 회사를 돌아가라고 설득했다.“서준아, 이제 돌아가.”서유라는 침대에 누운 채 창백한 얼굴로 힘없이 말했다.“회사가 더 중요해. 언제까지 내 곁에만 있을 수는 없잖아.”“하지만 네 몸 상태가...”배서준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난 괜찮아.”서유라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정말이야. 나 혼자서도 잘 챙길 수 있어.”“아니야, 네 곁에 있어야 마음이 놓여.”배서준이 고집을 부렸다.“서준아, 내 말 좀 들어봐.”서유라는 그의 손을 꼭 잡았다.“네가 날 걱정해주는 마음은 잘 알고 있어. 하지만 지금 회사 상황이 너무 안 좋아. 당신이 여기에 계속 있는 건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야.”“그래도...”“돌아가.”서유라는 그의 말을 끊었다.“지금은 너만이 배건 그룹을 지킬 수 있어.”“유라야...”배서준은 감동한 듯 서유라를 바라보았다.“넌 정말 사려 깊은 사람이야.”“나는 네 여자니까 당연히 너를 위해 생각해야지.”서유라는 다정하게 말했다.“어서 돌아가. 내가 걱정하지 않게 해줘.”“그래.”배서준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회사 일은 내가 책임질게. 넌 꼭 건강 잘 챙겨야 해.”“응, 걱정하지 마.”서유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너도 무리하지 말고 몸조심해.”“그래.”배서준은 그녀의 이마에 다정하게 입을 맞췄다.“회사 일이 마무리되면 다시 올게.”“응, 기다릴게.”서유라는 잠시 오묘한 웃음을 지었다.배서준은 서유라를 데리고 함께 회사로
그는 줄곧 자신과 남설아는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 생각해왔지만 지금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강연찬이 회복되자 모두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고 특히 남설아는 그동안 불안했던 마음을 비로소 내려놓을 수 있었다.한편, 멀리 리조트에 머무르고 있던 서유라는 무척 불안하고 초조했다.서도현은 자신이 보낸 사람들이 전부 체포되어 한 명도 빠짐없이 구속되었다는 정보를 이미 입수했다. 남설아가 다치지 않은 것도 모자라 다친 사람마저 회복되었으니 그동안 벌인 모든 일이 헛수고가 되고 만 것이다.“뭐라고? 강연찬이 회복했다고?”서유라의 목소리는 고막을 찢을 듯 날카로웠다.“그 사람들이 엄청 대단하다고 하지 않았어? 어떻게 여자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남설아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여자잖아. 그런데도 그 여자 하나 못 건드려서 이 지경이 된 거야? 돈을 그렇게 많이 받고는 뭐 하겠다는 거야? 적은 돈이 아니었잖아.”서도현은 배서준의 감시를 피해 몰래 리조트 안으로 숨어들어와 서유라와 만났다.그의 얼굴엔 짜증이 가득했고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누나, 나도 최선을 다했어. 그놈들이 이런 일 하나도 제대로 못 할 만큼 이렇게 쓸모없을 줄은 누가 알았겠어. 그래도 다행인 건 그놈들이 입이 무지하게 무겁다는 거야. 지금껏 한마디도 안 했어. 나도 계속 지켜볼 거니까 우리한테 불똥이 튀게 두진 않을 거야.”“쓸모없는 놈들! 전부 다 쓸모없어!”서유라는 온몸을 떨며 분노했다. 그녀는 탁자 위에 놓인 찻잔을 집어 들어 바닥에 힘껏 내던졌다.“이제 어떡해? 강연찬이 회복됐다고? 혹시 이 일을 남설아한테 말하면 어쩌려고? 남설아가 알게 되면, 나는...”“누나, 진정해봐.”서도현은 급히 달래며 말했다.“강연찬이 회복됐다고 해도 우리가 한 짓이라는 증거는 없어. 게다가 그 킬러들은 내가 따로 구한 사람들이라서 우리랑 직접적인 연결 고리는 없어.”“그래도...”서유라는 여전히 불안했다.“남설아 그 여자는 워낙 교묘해서 무슨 단서라도 찾아내게 되면 우리는 순식간에
“알겠어.” 송우민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너희가 그렇게 말한다면 따를게.”“우민아, 고마워.” 남설아가 말했다.“네가 얼마나 복수를 원하고 있는지 알아. 하지만 우리는 냉정해야 해. 감정에 휘둘리면 안 돼.”“응, 알아.” 송우민이 고개를 끄덕였다.“너희 계획에 최선을 다해 도울게.”“좋아.”남설아가 미소 지었다.“우린 반드시 해낼 수 있을 거야.”세 사람은 구체적인 세부 사항을 더 논의한 후, 각자 맡은 일을 하기 위해 흩어졌다.연회가 끝난 후, 남설아는 사무실로 돌아와 밀린 서류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그때 강연찬이 따뜻한 우유 한 잔을 들고 들어왔다.“설아야, 우유 좀 마시고 일찍 쉬어.”강연찬이 우유를 건네며 말했다.“요즘 너무 무리하고 있어. 몸을 챙겨야지.”“응, 고마워, 오빠.”남설아가 우유를 받아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오빠도 일찍 쉬어.”“난 안 피곤해.” 강연찬이 말했다.“너 일 마칠 때까지 같이 있어 줄게.”“괜찮아, 오빠. 몸도 아직 완벽히 회복된 건 아니잖아. 푹 쉬는 게 좋아.”남설아가 말했다.“이 서류들은 나 혼자서도 처리할 수 있어.”“그래도 옆에 있어 줄게.”강연찬이 말했다.“너도 너무 늦지 않게 마무리하고 쉬어.”“응, 알겠어.”강연찬이 나간 뒤에도 남설아는 계속해서 일을 처리했다.그녀는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었다. 더 강해져야만 배서준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나은이를 위해 복수할 수 있었다.깊은 밤이 되어서야 남설아는 마침내 모든 서류를 정리했다.그녀는 기지개를 켜면서 창가로 가서 불빛이 번쩍이는 도시를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나은아, 보고 있어?”남설아는 혼잣말처럼 속삭였다.“엄마가 반드시 복수할 거야. 기다려줘.”다음 날, 남설아는 이른 아침부터 회사에 출근했다.그녀는 회사의 핵심 팀을 소집해 다음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여러분, 우리 그동안 좋은 성과를 거뒀지만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남설아가 말했다.“배건 그룹은 지금 위기에 처해 있지만
“선배...”남설아는 강연찬을 바라보며 가슴 깊이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꼈다.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송우민은 두 사람 사이의 다정한 분위기에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기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마음 한편이 허전했다.연회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던 중, 남설아가 잔을 들어 모두와 함께 축하의 건배를 하려는 찰나 강연찬이 재빨리 손을 내밀어 그녀를 막았다.“설아야, 요즘 너무 무리했잖아. 술은 좀 줄여.”강연찬의 목소리엔 진심 어린 걱정이 담겨 있었다.남설아는 그의 따뜻한 눈빛을 마주하며 마음이 포근해졌다.하여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들고 있던 술잔을 내려놓고 대신 주스를 들었다.“알겠어. 선배 말 들을게.”남설아는 웃으며 말했다.그 광경을 본 송우민은 잔을 들고 조용히 다가왔다.“남설아, 내가 한 잔 올릴게.”송우민은 잔을 들며 말했다.“이번 성공, 정말 축하해.”남설아는 주스를 들고 잔을 맞댔다.“고마워, 우민아.”남설아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네 도움이 없었으면 이렇게 빠르게 결과를 얻진 못했을 거야.”“우린 친구잖아. 서로 도와야지.”송우민은 웃으며 말했다.“근데 정말 대단하다. 네가 이렇게 멋진 사람일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우민아, 너무 띄우지 마.”남설아는 조금 쑥스러워하며 웃었다.“운이 좋았을 뿐이야.”“그건 아니지.”송우민은 단호히 말했다.“너의 실력, 결단력, 배짱, 모두 내가 본 사람들 중 최고야.”“그 얘기는 그만하고...”남설아는 말을 돌리며 미소 지었다.“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해보자.”“좋아.”송우민이 고개를 끄덕였다.“남설아, 내 생각엔 지금이 기회야. 우리가 배건 그룹을 한 방에 무너뜨리고 배서준한테 확실하게 복수해야 해!”그의 눈빛에는 분노와 집념이 가득했다.마치 지금 당장이라도 배서준을 단죄하고 싶은 듯했다.그러나 강연찬은 조용히 눈살을 찌푸렸다.“난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해.”“왜?”송우민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지금 배건 그룹은 거의 끝장난 상태잖아.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