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아야’라는 말 한마디에 남설아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닭살이 다 돋을 정도였다. 믿기 힘든 눈빛으로 그녀는 눈앞의 남자를 바라봤다.‘어떻게 저토록 혐오스러운 말이 저 입에서 나올 수가 있지?’남설아는 눈썹을 잔뜩 찌푸린 채 어금니를 꽉 깨물고 싸늘하게 말했다.“내 딸은 죽었어요. 그런데도 내가 지금 하는 일이 그냥 치기 어린 짓이라고 생각해요? 도대체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나오는 거죠? 배서준 씨, 그렇게 돈이 많으면 거울부터 좀 사서 보세요.”“알아. 그 아이 일은 네가 마음속에 못 놓는 매듭이란 것도. 근데 아이를 좋아한다면 우리 다시 낳으면 되잖아.”배서준은 애써 침착한 척 말했지만 지금은 이미 남설아의 가치를 알아봤기 때문에 어떻게든 곁에 붙잡아 두고 싶은 심정이었다.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당연하다는 듯 굴고 있는 배서준을 보며 남설아는 그저 우스워서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사실 그녀는 배서준을 원망하지 않았다. 원망하는 건 오히려 과거의 자신이었다.예전에는 배서준이 마치 반짝반짝 빛나는 존재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금 다시 보니 결국 그도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다. 다만 그녀의 ‘사랑’이 그에게 후광을 씌운 것뿐이었다.하지만 이제 그 사랑이 사라졌고 후광도 함께 꺼졌다. 남은 건 그저 허세만 가득한 한 명의 인간이었다.“서준 씨, 지금 당장 나랑 이혼해요. 줘야 할 거 주고 우리 깔끔하게 끝내요.”인내심이 완전히 바닥난 남설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똑바로 배서준을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부어오른 눈 때문에 그녀의 얼굴조차 흐릿하게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배서준은 그녀의 눈빛 속에 담긴 뿌리 깊은 혐오감만큼은 또렷이 느낄 수 있었다.“이혼 못 해.”배서준은 낮고 단단한 목소리로 잘라 말했다.스스로도 왜 이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예전에는 이 여자를 어떻게든 떼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고 오히려 더 가까이 있고 싶었다.요즘의 남설아는 정말로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으니까.배씨 가문의 아내로 이런 여자가 있다는 건 어디 내놔
바닥에 앉아 한참을 멍하니 있던 남설아는 다리에 감각이 점점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저릿저릿해진 다리를 간신히 움직여 일어서려던 그 순간 문이 갑자기 바깥에서 세게 걷어차이더니 쾅 소리와 함께 열려버렸다.그 충격에 남설아는 한참이나 밀려 나가며 바닥에 거칠게 내동댕이쳐졌다. 고통에 찬 표정으로 눈을 치켜뜨자 건장한 남자 넷이 방 안으로 들이닥치고 있었다.“당신들 누구예요? 뭐 하자는 거예요?!”남설아는 본능적으로 손에 들고 있던 호신용 스프레이를 꺼내려 했지만 조금 전의 충격에 스프레이는 이미 멀리 튕겨 나가 있었다. 결국 주변에 떨어져 있던 나무 조각 하나를 움켜쥐며 그녀는 저항하려 했다.하지만 그 네 명은 단 한마디 말도 없이 다가왔고 남설아가 쥔 나무 조각을 발로 차서 날려버리더니 곧바로 그녀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끌고 나가기 시작했다.머리카락이 뽑힐 듯 당겨지며 남설아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어떻게든 몸을 비틀며 저항했지만 소용없었다.분명 이곳은 5성급 호텔이었는데 지금은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누구 하나 반응하지 않았다. 하늘도 땅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다.“놔요! 도대체 뭐 하는 거예요! 이거 불법인 거 몰라요?!”남설아는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그러자 남자 중 한 명이 성가시다는 듯 남설아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고 그녀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의식을 잃기 직전 남설아는 그들 중 한 명이 내뱉은 거친 욕설을 희미하게 들었다.다시 눈을 떴을 땐, 손과 발이 모두 꽁꽁 묶인 상태였다.한참이나 지나서야 흐릿하던 시야가 조금씩 밝아졌고 주변을 둘러본 그녀는 이곳이 어디인지, 자신을 납치한 자들이 누구인지, 목적이 뭔지도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그저 온몸이 아팠고 뼛속까지 피로했다.깊게 숨을 들이쉰 남설아는 비틀거리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어떻게든 좀 편한 자세를 찾아내고 묵묵히 기다리기로 했다.이렇게 대놓고 들이닥친 걸 보니 분명히 배경이 있는 놈들일 테고 당장 죽이지 않았다는 건 뭔가 다른 목적이 있다는 뜻이었다.시간이
남설아는 어깨를 으쓱이며 한숨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목숨이 걸린 일에 비하면 그딴 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처음 보는 사이에 굳이 형식 따질 것도 없잖아요. 그냥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시죠.”“역시 똑똑하네. 내 이름은 송우민이야. 누가 내게 이 억대 돈을 주면서 네 목숨을 원했거든. 그런데 지금 보니까 널 죽이기가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이 말을 하며 송우민은 주머니에서 수표 한 다발을 꺼내더니 남설아 얼굴 쪽으로 그대로 던졌다.하얀 수표들이 눈처럼 흩날리며 바닥에 떨어졌고 몇 장은 남설아 눈앞에 닿았다.남설아는 고개를 숙여 자세히 들여다봤다. 수표 하단에 적힌 이름을 보자 순간적으로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러더니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역시 인연이라는 게 끊으려 해도 지저분하게 엮여 있네요. 감방에 들어가면서도 날 끌어들이는 거 보니 진짜 내 좋은 외삼촌 맞다니까.”남설아는 차가운 웃음을 흘리며 눈빛 속에 담긴 혐오를 숨기지 않았다.여자의 이런 반응이 이상하다고 느낀 송우민은 앞으로 다가와 그녀의 턱을 움켜쥐고 강제로 얼굴을 들게 했다.“대체 누가 네 목숨을 노리는지 궁금하지도 않아?”“혹시 알고 있어요?”남설아는 짜증스럽게 눈썹을 찌푸렸다.“진짜로 알고 있다면 그 사람 꽤 멍청한 인간이겠네요.”송우민은 예상하지 못한 반응에 잠깐 멈칫했다. 이 여자가 이런 수까지 파악하고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그는 손을 거둬들이며 무표정하게 옆에 서 있는 건장한 남자를 바라봤다.그러자 ‘기태’라 불리는 사내가 앞으로 나서더니 남설아의 몸에 묶여 있던 줄을 풀어주고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순순히 협조해. 안 그러면 진짜로 죽는다?”“믿어요. 한 방이면 제 머리통을 돌아가게 할 힘은 있으시잖아요.”남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 얼굴로 그의 힘을 인정해줬다.전기태는 그간 수많은 인질들을 봐왔지만 이렇게 말도 안 되게 유쾌한 인질은 처음이었다.그는 피식 웃으며 송우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다 나가 있어. 이 여자랑 단둘이 얘기 좀 할게
“뭐? 그 자식이 널 안 좋아한다고?”송우민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남설아를 바라보며 이 사람을 상대로 한 게 실수였던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그 사람은 날 좋아하지 않아요. 마음에 두고 있는 다른 여자가 있어요. 난 그냥 가문에서 정해준 결혼 상대였을 뿐이에요. 원래는 그냥저냥 살려고 했죠. 하지만 내 딸을 죽게 만든 그 일 때문에 더는 용서할 수 없고 절대 가만두지도 않을 거예요!”남설아는 두 주먹을 꽉 쥐며 단호히 말했다.“송씨 가문을 다시 되찾고 싶다면서요? 그럼 우리 손 잡는 게 어때요?”“손을 잡자고? 그럴 이유가 뭐가 있어?”송우민은 코웃음을 치며 얼굴에 대놓고 경멸을 드러냈다.바보도 아니고 이 여자가 지금 일부러 말을 끌고 시간을 벌고 있다는 걸 모를 리가 없었다.“나 배건 그룹 지분 51% 가지고 있어요. 원하면 다 줄게요.”남설아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지만 그녀 입장에서 이건 목숨보다 중요하지 않았다.살아나갈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다 내줄 각오가 돼 있었다.그 말을 들은 송우민은 예상치 못한 정보에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결정까지 딱 15분 남았어요.”“곧 누군가 이곳을 포위할 거예요. 그때가 되면 나랑 손잡자는 말은 없던 일로 할 거예요.”남설아는 환하게 웃으며 손목에 찬 시계를 송우민에게 흔들어 보였다.“다음에 납치할 때는 신원조사 꼭 하고 해요. 나 기술 쪽에서 일하는 사람이거든요. 온몸에 장비 장착하고 다녀요.”“이 시계 안에는 내가 만든 GPS 프로그램이 들어 있어요. 특수 기능도 하나 있죠. 자동 신고.”이제 놀 만큼 놀았다고 생각한 남설아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싱긋 웃었다.자신의 마지막 패를 스스럼없이 공개한 것이었다.그 당당한 표정에 송우민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터뜨렸다.“15분이라... 과연 내가 먼저 포위당할까, 아니면 네가 먼저 내 손에 죽을까?”그 말에도 남설아는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했다.“내 생각엔 그쪽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죽고 싶진 않을 거예요. 나같이 이
“노트북 하나 줘요.”남설아는 울다가 웃은 얼굴로 말했다.사실 처음에 이 프로그램 만들 때는 중간에 해제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하고 설정해 둔 거라 지금 와서 해제하려니 꽤나 번거로웠다.송우민은 별말 없이 부하에게 눈짓해 노트북을 가져오게 했다.남설아는 손가락을 재빠르게 움직이며 프로그램을 조작했고 결국 5분 안에 경보 시스템을 해제해냈다.그런 다음 송우민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사실 이 경보 시스템, 꽤 비싸요.”“죽고 싶어?”송우민은 더는 참지 못하고 화를 터뜨렸다.남설아는 입만 열면 꼭 사람 속을 긁는 말만 골라서 했다. 거슬리고 짜증 나고 아주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송우민이 진심으로 화난 걸 느낀 남설아는 한숨을 쉬며 작게 말했다.“그럼 우리 이제 자리 좀 옮겨서 얘기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여긴 좀... 애매해서요. 편하지도 않고.”“그래, 따라와.”송우민 역시 이 공간이 다음 대화를 나누기엔 부적절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카페에 앉는 순간까지도 남설아는 이게 현실이 맞나 싶은 기분이 들었다.자기를 납치한 범인과 이렇게 한자리에서 커피 마시며 대화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정말 웃긴 상황이었다.커피잔을 휘휘 저으며 한숨을 쉰 남설아는 송우민을 바라보며 물었다.“결국 돈이 목적이에요? 아니면 목숨이에요?”“둘 다.”송우민은 솔직하게 대답했다.송가는 배씨 가문 때문에 모든 걸 잃었다. 그러니 배씨 가문 역시 똑같이 무너지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자본의 세계가 피 냄새 나는 법이라는 걸 남설아도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 답변이 전혀 의외는 아니었고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그럼 확실히 말해두죠. 그 사람 죽이고 나서는 나 건드리면 안 돼요. 지금 우리는 부부라고는 하지만 껍데기뿐인 관계예요. 곧 남남이 될 거고 나까지 엮이면 안 돼요.”“진심이야?”송우민은 더는 돌려 말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물었다.남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말한 게 진심이라는 증거들을 하나둘
송우민은 남설아의 슬픔을 느끼고는 희미하게 웃으며 느릿느릿 말을 꺼냈다.그의 뜻밖의 너그러운 태도에 남설아는 더 말하지 않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걸어 나갔다.지금 이 세상 모두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녀에겐 상관없었다.단 하나, 자신의 계획에 방해만 되지 않으면 그뿐이었다.목숨이든, 자존심이든, 사실 남설아는 이미 오래전부터 내려놨다.이 모든 걸 끝낼 수만 있다면 그 아이를 따라가 배나은 곁에 있을 수만 있다면 그녀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송우민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얼굴빛이 살짝 달라지더니 탁자 위에 놓인 커피잔을 들어 올리고 가볍게 웃었다.“참, 묘한 여자네.”“형님, 이렇게 그냥 보내버리면... 의뢰인한텐 뭐라 말하죠?”전기태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송우민을 바라봤다.그러자 송우민은 그를 보며 마치 바보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대꾸했다.“우리가 어떤 사람들인데? 그 사람한테 무슨 설명을 해? 그리고 말이야, 저 여자가 벌인 일은 지금 가리고 숨기기에도 벅찰 판인데 뭐? 되레 우리가 책임지라고?”“형님, 그래도 이건 좀... 규칙을 어기는 거 아닌가요?”전기태는 여전히 찝찝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처음 보는 여자 하나 때문에 평소의 원칙을 어기는 송우민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그러나 돌아온 건 송우민의 싸늘한 시선과 그의 얼굴을 향해 날아든 커피잔뿐이었다.남설아는 카페에서 나온 순간까지도 이 모든 상황이 마치 꿈속 같았다.호텔에 돌아왔을 때가 되어서야 간신히 ‘살아 돌아왔다’는 실감이 났다.그녀는 욕조에 몸을 담그고 물속에 자신을 잠기게 했다.숨이 막힐 듯한 그 찰나의 순간을 지나 다시 물 위로 올라왔을 땐 감정이 완전히 가라앉아 있었다.몸을 닦지도 않은 채 그녀는 그대로 욕실 거울 앞에 섰다.그리고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았다.피멍이 든 자국들, 크고 작은 상처들이 온몸에 가득했다.“기억해. 오늘 이 모든 건... 다 서유라, 네가 만든 결과야.”남설아의 눈빛엔 차디찬 증오가 담겨 있었고 두
“아아악!!”서유라가 비명을 지르며 방 안의 모든 물건들을 마구 집어 던지고 부수기 시작했다.거칠게 날뛰던 그녀는 급기야 자기 팔을 긋기 시작했고 여러 군데서 피가 철철 흘렀다.곧장 호텔 직원들이 옆방 투숙객의 항의 전화를 받고 달려왔는데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하나같이 혼비백산했다.직원들은 급히 배서준에게 연락을 시도했다.한편 배서준은 어렵게 시간을 내 천주에 와 있었고 여러 사람들과 인맥을 쌓기 위해 술자리를 이어가고 있었다.잔이 오가며 거의 정신이 나갈 정도로 마시던 중, 핸드폰이 울렸다.서유라 이름이 뜬 화면을 본 배서준은 불쾌한 표정을 지었지만 망설이지 않고 전화를 받았다.“배 대표님, 드디어 받으셨네요. 유라 씨가 지금 미쳐 날뛰고 있어요. 빨리 와서 처리 좀 해주세요!”그 말에 배서준의 얼굴이 확 변했고 그는 결국 잔을 내려놓고 급히 자리를 떴다.조성우는 그 상황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고 마음속으로는 남설아가 너무 안됐다 싶었다.배서준이 떠나자 조성우는 바로 강연찬에게 전화를 걸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강연찬은 남설아를 데리고 그 자리에 도착했다.두 사람이 함께 들어오는 걸 본 조성우는 다소 놀란 표정으로 남설아를 바라봤다.“설아 씨는 여기 웬일이에요?”그 말에 남설아는 이 자리가 자신에게 예정된 자리가 아니었단 걸 눈치챘고 당황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어색한 침묵 끝에 작게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억지로 끌려왔다고 하면... 믿을래요?”“친구들끼리 모여서 얘기 좀 하는 게 뭐 어때서요.”강연찬은 남설아의 손을 끌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하지만 남설아는 그의 손을 조용히 뿌리치며 진지하게 말했다.“오빠 마음은 고맙지만 내가 배서준과 어떤 사이든 간에 지금 난 법적으로 그 사람의 아내야. 밖에선 모두가 날 사모님이라 부른다고. 이런 상황에서 내가 오빠랑 얽히는 건 나도 싫고 오빠에게도 민폐야.”그 말을 끝으로 고개도 돌리지 않고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남설아는 알고 있었다. 강연찬은 그녀의 앞날을 위
비록 아주 약한 슬픔이었지만 그 감정은 남설아가 가까스로 쌓아 올린 단단한 마음을 순식간에 무너뜨렸다.남설아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 더 이상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이곳을 떠나려 돌아섰다. 하지만 막 고개를 돌린 순간 두 남자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그 둘은 술 냄새를 풍기며 비틀거렸고 얼굴에는 탐욕스럽고 음흉한 웃음이 가득했다.남설아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치며 가방 안에 있던 호신용 스프레이를 꺼냈다.“당신들, 뭐 하자는 거예요?”“뭐 하긴? 하하, 남자가 여자를 봤는데 뭘 하겠어?”“아가씨, 꽤 예쁘네.”두 남자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낄낄 웃었다. 그 웃음은 듣는 이의 소름을 돋게 만들 만큼 야비하고 불쾌했다.남설아는 이들의 의도를 단번에 알아차리자 강한 혐오감이 올라왔다. 하여 주저하지 않고 스프레이를 꺼내 정면으로 뿌려버리고는 반응을 볼 틈도 없이 등을 돌려 전속력으로 달렸다.하지만 몇 발자국 채 뛰지 못해 누군가의 단단한 가슴팍에 세게 부딪쳤다. 그런데 상대는 밀쳐내는 대신 오히려 그녀를 품 안에 안아버렸다. 그리고 곧바로 몸을 돌리더니 뒤따라오던 남자 하나를 발로 거세게 걷어찼다.“꺼져.”그 목소리 남설아는 꿈에서도 잊을 수 없을 만큼 선명했다.고개를 들자 아니나 다를까 익숙한 그 음침한 눈빛이 마주했다.남설아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송우민의 품에서 벗어나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 우민 씨 덕분이에요.”“내가 너보다 한 살 어리거든? 굳이 우민 씨라고 안 불러도 돼.”송우민이 어이없다는 듯 입꼬리를 끌어올렸다.잘생긴 얼굴인데 눈빛이 지나치게 날카롭고 음울해서 원래의 부드러운 인상이 깨져버렸다. 오히려 보는 사람의 속을 서늘하게 만들었다.그런 그를 바라보며 남설아는 다소 민망하게 말했다.“근데 우민이라고 부르면 좀 이상하잖아요...”“그냥 송우민이라고 불러.”송우민은 차가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낮에는 간신히 목숨 부지하더니 밤엔 이런 데까지 나올 여유가 생겼네? 멘탈이 내 생각보다 훨
차 안으로 돌아온 서유라는 여전히 드레스를 고른 기쁨에 들떠 있었다.“서준아, 우리 이번 파티에서 가장 눈에 띄는 커플이 되지 않을까?”그녀는 기대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그럴 거야.”배서준이 대답했지만, 말투에는 영혼이 없었다.“다행이네.”서유라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서준아, 네가 이렇게 같이 와줘서 정말 좋아.”그녀는 배서준의 어깨에 기대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배서준은 말없이 그녀의 등을 가볍게 토닥였다.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계속 남설아의 모습이 떠올랐고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파티 당일,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행사장은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고 분위기 또한 고급스럽고 활기찼다.남설아와 강연찬이 모습을 드러내자 주변에서 작은 술렁임이 일었다.남설아는 연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단정하면서도 기품 있는 자태를 뽐냈고 강연찬은 깔끔한 검은색 정장을 입고 여유롭고 세련된 분위기를 풍겼다.두 사람은 함께 서 있는 것만으로도 시선을 끌었고 자연스럽게 주목받는 존재가 되었다.“남 대표님, 강 대표님, 파티에 오신 걸 진심으로 환영합니다.”서 회장 부부가 반갑게 맞이했다.“서 회장님, 사모님, 축하드립니다.”남설아가 미소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남 대표님께서 참석해 주시다니 저희가 정말 영광이에요.”서 회장의 부인인 차혜미가 남설아의 손을 잡으며 따뜻하게 말했다.“별말씀을요, 사모님.”남설아가 정중하게 답했다.“이분이 바로 강 대표님이시죠?”서기찬이 강연찬을 바라보며 물었다.“네, 서 회장님.”남설아가 소개했다.“저의 비즈니스 파트너이자 좋은 친구인 강연찬 대표님이에요.”“강 대표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서기찬이 손을 내밀었다.“반갑습니다, 서 회장님.”강연찬은 예의를 갖춰 악수했다.“두 분 안으로 들어가시죠. 자리를 미리 준비해두었어요.”서기찬이 손짓했다.“감사합니다.”남설아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세 사람은 함께 연회장 안으로 들어갔다.조금 떨어진 곳에 배서준과 서유라도 행사장
배서준은 서유라가 들뜬 모습으로 웃고 있는 걸 보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괜히 불편하고 답답했다.그는 말없이 남성복 코너로 가서 대충 눈에 들어오는 정장을 집어 들었다.“손님, 정말 안목이 좋으시네요. 이건 저희 매장에서 가장 최근에 들어온 신상이에요. 이탈리아산 원단으로 수제 재단된 제품이라 고객님 체형에 정말 잘 어울리실 거예요.”점원이 열정적으로 설명했다.배서준은 아무 말 없이 검은색 정장을 들고 탈의실로 들어갔다.정장을 갈아입고 거울을 바라본 그는 문득 거울 속 자기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저 사람이 정말 내가 맞아?’한때 야망으로 가득하고 세상을 거머쥘 듯 당당했던 배서준은 이제는 서유라의 기대와 기준에 맞춰 움직이는 꼭두각시처럼 보였다.“서준아, 다 입었어?”서유라가 탈의실 밖에서 재촉했다.“응.”배서준은 문을 열고 나왔다.“와, 서준아, 너 이 정장 입으니까 진짜 멋있다.”서유라는 마치 영화 속 배우를 보는 듯 눈에 감탄이 가득했다.“진짜 영화배우 같아.”배서준은 가볍게 웃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서유라가 이런 말들을 듣는 걸 좋아한다는 걸 알지만 지금은 그런 말을 할 기분이 아니었다.“이걸로 할게.”배서준은 피곤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때, 매장 입구 쪽에서 구두 소리가 들려왔다.남설아와 강연찬이 매장 안으로 들어왔다.눈이 마주친 순간, 공기가 얼어붙는 듯했다.배서준의 시선은 남설아에게 고정되었고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남설아는 연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단정하면서도 우아한 분위기를 풍겼다.드레스는 그녀의 몸매를 자연스럽게 살려주었고 살짝 올려 묶은 머리 사이로 드러난 목선과 쇄골은 고급스러움을 더했다.그녀는 마치 한 송이 활짝 핀 제비꽃 같았다. 요란하지 않지만, 눈에 띄는 아름다움이었다.배서준의 가슴이 순간 쿵 하고 내려앉았다.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는 예전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그녀의 당당함과 여유는 서유라가 따라올 수 없는 것이었다.“강 대표님과 설아 씨도 드레스 고르러
“그날 같이 가자.”“응.”강연찬은 고개를 끄덕였다.한편, 배서준 역시 서 회장 부부가 주최하는 파티의 초대장을 받았다.그는 원래 서유라와 함께 참석해 둘의 관계와 입지를 보여줄 생각이었다.“유라야, 서 회장 부부가 비즈니스 파티를 연대. 우리 둘 다 초대했어.”배서준은 초대장을 들고 서유라에게 말했다.“같이 갈래?”“당연히 가야지.”서유라는 웃으며 말했다.“이런 기회에 좋은 인맥도 많이 만들 수 있잖아.”“그래.”배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같이 가자.”“응.”서유라가 고개를 끄덕였다.“서준아. 넌 정말 다정해.”서유라는 배서준의 품에 기대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배서준은 남설아도 그 파티에 참석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음속에 복잡한 감정이 피어올랐다.“뭐? 남설아도 간다고?”배서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네, 대표님.”천기준이 답했다.“서 회장 부부가 남 대표님도 초대했답니다.”배서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표정이 어두워졌다.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남설아가 강연찬과 함께 파티에 나타나는 모습을 상상하자 괜히 기분이 불편해졌다.“서준아, 무슨 일 있어?”서유라는 그의 이상한 기색을 눈치채고 물었다.“아니야.”배서준은 고개를 저었다.“그냥, 남설아가 올 줄은 몰랐어.”“오면 어때.”서유라가 말했다.“우리가 남설아를 무서워할 이유는 없잖아.”“무서워서 그런 게 아니야.”배서준이 대답했다.“그냥...”그는 어떻게 얘기했으면 좋을지 몰랐다. 그저 가슴이 무척 답답했다.“됐어, 너무 신경 쓰지 마.”서유라가 달래듯 말했다.“우리 둘이 함께 가서 보여주자. 우리가 얼마나 잘 지내고 있는지.”“그래, 그게 좋겠다.”배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유라야, 네가 있어서 정말 든든해.”서유라는 배서준과 함께 파티에 참석하겠다고 먼저 제안했다.“서준아, 이런 자리에는 내가 같이 가야지.”그녀는 부드럽게 말하며 따뜻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네 연인이니까 함께 이겨내야 할 책임이 있어.
배서준이 회사로 돌아왔을 때, 그를 반긴 것은 직원들의 열렬한 환영이 아니라 책상 위에 산처럼 쌓인 서류들과 불안으로 가득 찬 얼굴들이었다.그는 자신이 자리를 비운 동안 회사의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내가 없는 동안 내가 지시한 대로 진행됐어?”배서준이 천기준에게 물었다.“네, 대표님.”천기준은 서둘러 대답했다.“지시에 따라 주가 일부는 안정시켰고 마케팅도 강화했습니다. 하지만...”“하지만 뭐?”배서준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하지만 남 대표님 쪽의 공세가 너무 강해서... 우리가 제대로 대응을 못 하고 있습니다.”천기준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배서준은 말없이 책상 앞으로가 높게 쌓인 서류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지금 뭔가를 하지 않으면 배건 그룹은 정말로 무너질 수도 있다는 불안이 그를 짓눌렀다.“각 부서의 팀장들에게 10분 후에 회의실로 모이라고 전해.”배서준이 말했다.“네, 대표님.”천기준은 얼른 대답하고는 회의 소집을 위해 나갔다.배서준은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지금은 감정이 아니라 이성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어떻게든 회사를 다시 일으켜야 했다.10분 후, 회의실은 이미 각 부서의 팀장들로 가득 차 있었다.배서준은 회의실 중앙에 앉아 익숙한 얼굴들을 바라보며 복잡한 심경을 숨겼다.그 순간, 서유라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스쳤다.“서준아, 나는 널 믿어. 넌 반드시 배건 그룹을 다시 일으킬 수 있을 거야.”“고마워, 유라야.”배서준은 서유라와의 대화를 떠올리고 있었다.“네가 곁에 있어 줘서 난 두렵지 않아.”한편, 남설아의 회사는 강연찬과 송우민의 지원을 받으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그녀의 기업은 빠르게 시장 점유율을 넓혀가고 있었고 그에 따라 많은 비즈니스 파트너들에게 인정받으며 여러 초청도 받게 되었다.이날, 남설아는 서 회장 부부가 주최하는 상류층 비즈니스 파티 초대장을 받았다.서 회장 부부는 재계의 거물로, 남설아의 회사와도 협력 관계에
“그럼 됐어.”서도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누나, 나한테 시킬 일 있으면 뭐든 말해.”“응.”서유라가 말했다.“당분간은 여기 남아서 나 잘 챙기고 배서준도 잘 감시해. 남설아랑 접촉 못 하게 해야 해.”“알겠어. 걱정하지 마.”서도현은 단호하게 말했다.한편, 배서준은 회사로 복귀하자마자 긴급회의를 소집했다.“여러분, 최근 우리 회사의 상황은 매우 심각합니다.”회의실 중간 자리에 앉은 배서준은 굳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우리는 지금 즉시 대응책을 세워서 상황을 돌려놔야 합니다.”“배 대표님, 계획이 있으신가요?”한 주주가 물었다.“이미 여러 가지 대응 방안을 준비해 두었습니다.”배서준이 말했다.“첫째, 주가를 안정시켜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해야 합니다. 둘째, 마케팅을 강화해서 잃어버린 시장 점유율을 되찾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내부 정비를 통해 운영 효율을 높이겠습니다.”“말씀은 좋은데 구체적으로는 어떻게 실행하실 건가요?”또 다른 주주가 질문했다.“제가 직접 나서서 추진하겠습니다.”배서준이 단호하게 말했다.“최대한 빨리 세부 계획을 수립해서 여러분께 공유하고 논의하겠습니다.”“저희는 배 대표님을 믿을 것입니다.”한 주주가 말했다.“하지만 이전 행동들로 인해 실망한 것도 사실입니다.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랍니다.”“맞습니다, 배 대표님.”또 다른 주주도 덧붙였다.“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회사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합니다.”“여러분, 제가 실망하게 한 점은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배서준은 진지하게 말했다.“하지만 저를 다시 한번 믿어 주십시오. 반드시 배건 그룹을 이 위기에서 구해내겠습니다.”“기대합니다.”한 주주가 말했다.“대표님, 잘 지켜보겠습니다.”회의가 끝난 후, 배서준은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왔다.그는 통유리창 앞에 서서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며 복잡한 감정에 잠겼다.잠시 후, 그는 휴대폰을 꺼내 서유라에게 전화를 걸었다.“유라야, 괜찮아? 나 회사 도착했
서유라는 분노에 차 손에 들고 있던 태블릿을 바닥에 내던졌다. 태블릿의 화면이 산산조각이 났다.정교하게 화장한 얼굴이 일그러졌고 눈빛에는 분노와 공포가 뒤섞여 있었다.그녀는 서도현에게 먼저 나가보라고 한 뒤, 혼자 남아 배서준을 상대하기로 했다.혼자 방에 남은 서유라는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했다.그녀는 창가로 다가가 흐린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남설아, 너무 자만하지 마. 내가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며칠 뒤, 서유라는 대의를 위해 배서준에게 회사를 돌아가라고 설득했다.“서준아, 이제 돌아가.”서유라는 침대에 누운 채 창백한 얼굴로 힘없이 말했다.“회사가 더 중요해. 언제까지 내 곁에만 있을 수는 없잖아.”“하지만 네 몸 상태가...”배서준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난 괜찮아.”서유라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정말이야. 나 혼자서도 잘 챙길 수 있어.”“아니야, 네 곁에 있어야 마음이 놓여.”배서준이 고집을 부렸다.“서준아, 내 말 좀 들어봐.”서유라는 그의 손을 꼭 잡았다.“네가 날 걱정해주는 마음은 잘 알고 있어. 하지만 지금 회사 상황이 너무 안 좋아. 당신이 여기에 계속 있는 건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야.”“그래도...”“돌아가.”서유라는 그의 말을 끊었다.“지금은 너만이 배건 그룹을 지킬 수 있어.”“유라야...”배서준은 감동한 듯 서유라를 바라보았다.“넌 정말 사려 깊은 사람이야.”“나는 네 여자니까 당연히 너를 위해 생각해야지.”서유라는 다정하게 말했다.“어서 돌아가. 내가 걱정하지 않게 해줘.”“그래.”배서준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회사 일은 내가 책임질게. 넌 꼭 건강 잘 챙겨야 해.”“응, 걱정하지 마.”서유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너도 무리하지 말고 몸조심해.”“그래.”배서준은 그녀의 이마에 다정하게 입을 맞췄다.“회사 일이 마무리되면 다시 올게.”“응, 기다릴게.”서유라는 잠시 오묘한 웃음을 지었다.배서준은 서유라를 데리고 함께 회사로
그는 줄곧 자신과 남설아는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 생각해왔지만 지금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강연찬이 회복되자 모두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고 특히 남설아는 그동안 불안했던 마음을 비로소 내려놓을 수 있었다.한편, 멀리 리조트에 머무르고 있던 서유라는 무척 불안하고 초조했다.서도현은 자신이 보낸 사람들이 전부 체포되어 한 명도 빠짐없이 구속되었다는 정보를 이미 입수했다. 남설아가 다치지 않은 것도 모자라 다친 사람마저 회복되었으니 그동안 벌인 모든 일이 헛수고가 되고 만 것이다.“뭐라고? 강연찬이 회복했다고?”서유라의 목소리는 고막을 찢을 듯 날카로웠다.“그 사람들이 엄청 대단하다고 하지 않았어? 어떻게 여자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남설아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여자잖아. 그런데도 그 여자 하나 못 건드려서 이 지경이 된 거야? 돈을 그렇게 많이 받고는 뭐 하겠다는 거야? 적은 돈이 아니었잖아.”서도현은 배서준의 감시를 피해 몰래 리조트 안으로 숨어들어와 서유라와 만났다.그의 얼굴엔 짜증이 가득했고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누나, 나도 최선을 다했어. 그놈들이 이런 일 하나도 제대로 못 할 만큼 이렇게 쓸모없을 줄은 누가 알았겠어. 그래도 다행인 건 그놈들이 입이 무지하게 무겁다는 거야. 지금껏 한마디도 안 했어. 나도 계속 지켜볼 거니까 우리한테 불똥이 튀게 두진 않을 거야.”“쓸모없는 놈들! 전부 다 쓸모없어!”서유라는 온몸을 떨며 분노했다. 그녀는 탁자 위에 놓인 찻잔을 집어 들어 바닥에 힘껏 내던졌다.“이제 어떡해? 강연찬이 회복됐다고? 혹시 이 일을 남설아한테 말하면 어쩌려고? 남설아가 알게 되면, 나는...”“누나, 진정해봐.”서도현은 급히 달래며 말했다.“강연찬이 회복됐다고 해도 우리가 한 짓이라는 증거는 없어. 게다가 그 킬러들은 내가 따로 구한 사람들이라서 우리랑 직접적인 연결 고리는 없어.”“그래도...”서유라는 여전히 불안했다.“남설아 그 여자는 워낙 교묘해서 무슨 단서라도 찾아내게 되면 우리는 순식간에
“알겠어.” 송우민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너희가 그렇게 말한다면 따를게.”“우민아, 고마워.” 남설아가 말했다.“네가 얼마나 복수를 원하고 있는지 알아. 하지만 우리는 냉정해야 해. 감정에 휘둘리면 안 돼.”“응, 알아.” 송우민이 고개를 끄덕였다.“너희 계획에 최선을 다해 도울게.”“좋아.”남설아가 미소 지었다.“우린 반드시 해낼 수 있을 거야.”세 사람은 구체적인 세부 사항을 더 논의한 후, 각자 맡은 일을 하기 위해 흩어졌다.연회가 끝난 후, 남설아는 사무실로 돌아와 밀린 서류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그때 강연찬이 따뜻한 우유 한 잔을 들고 들어왔다.“설아야, 우유 좀 마시고 일찍 쉬어.”강연찬이 우유를 건네며 말했다.“요즘 너무 무리하고 있어. 몸을 챙겨야지.”“응, 고마워, 오빠.”남설아가 우유를 받아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오빠도 일찍 쉬어.”“난 안 피곤해.” 강연찬이 말했다.“너 일 마칠 때까지 같이 있어 줄게.”“괜찮아, 오빠. 몸도 아직 완벽히 회복된 건 아니잖아. 푹 쉬는 게 좋아.”남설아가 말했다.“이 서류들은 나 혼자서도 처리할 수 있어.”“그래도 옆에 있어 줄게.”강연찬이 말했다.“너도 너무 늦지 않게 마무리하고 쉬어.”“응, 알겠어.”강연찬이 나간 뒤에도 남설아는 계속해서 일을 처리했다.그녀는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었다. 더 강해져야만 배서준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나은이를 위해 복수할 수 있었다.깊은 밤이 되어서야 남설아는 마침내 모든 서류를 정리했다.그녀는 기지개를 켜면서 창가로 가서 불빛이 번쩍이는 도시를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나은아, 보고 있어?”남설아는 혼잣말처럼 속삭였다.“엄마가 반드시 복수할 거야. 기다려줘.”다음 날, 남설아는 이른 아침부터 회사에 출근했다.그녀는 회사의 핵심 팀을 소집해 다음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여러분, 우리 그동안 좋은 성과를 거뒀지만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남설아가 말했다.“배건 그룹은 지금 위기에 처해 있지만
“선배...”남설아는 강연찬을 바라보며 가슴 깊이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꼈다.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송우민은 두 사람 사이의 다정한 분위기에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기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마음 한편이 허전했다.연회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던 중, 남설아가 잔을 들어 모두와 함께 축하의 건배를 하려는 찰나 강연찬이 재빨리 손을 내밀어 그녀를 막았다.“설아야, 요즘 너무 무리했잖아. 술은 좀 줄여.”강연찬의 목소리엔 진심 어린 걱정이 담겨 있었다.남설아는 그의 따뜻한 눈빛을 마주하며 마음이 포근해졌다.하여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들고 있던 술잔을 내려놓고 대신 주스를 들었다.“알겠어. 선배 말 들을게.”남설아는 웃으며 말했다.그 광경을 본 송우민은 잔을 들고 조용히 다가왔다.“남설아, 내가 한 잔 올릴게.”송우민은 잔을 들며 말했다.“이번 성공, 정말 축하해.”남설아는 주스를 들고 잔을 맞댔다.“고마워, 우민아.”남설아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네 도움이 없었으면 이렇게 빠르게 결과를 얻진 못했을 거야.”“우린 친구잖아. 서로 도와야지.”송우민은 웃으며 말했다.“근데 정말 대단하다. 네가 이렇게 멋진 사람일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우민아, 너무 띄우지 마.”남설아는 조금 쑥스러워하며 웃었다.“운이 좋았을 뿐이야.”“그건 아니지.”송우민은 단호히 말했다.“너의 실력, 결단력, 배짱, 모두 내가 본 사람들 중 최고야.”“그 얘기는 그만하고...”남설아는 말을 돌리며 미소 지었다.“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해보자.”“좋아.”송우민이 고개를 끄덕였다.“남설아, 내 생각엔 지금이 기회야. 우리가 배건 그룹을 한 방에 무너뜨리고 배서준한테 확실하게 복수해야 해!”그의 눈빛에는 분노와 집념이 가득했다.마치 지금 당장이라도 배서준을 단죄하고 싶은 듯했다.그러나 강연찬은 조용히 눈살을 찌푸렸다.“난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해.”“왜?”송우민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지금 배건 그룹은 거의 끝장난 상태잖아.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