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자, 비로소 내가 사랑을 알았다

놓자, 비로소 내가 사랑을 알았다

By:  강맹아Updated just now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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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이담은 이혼하기 석 달 전, 전근 신청서를 제출했고. 이혼하기 한 달 전, 하진혁에게 이혼 합의서를 보냈으며. 이혼하기 사흘 전, 자신의 모든 물건을 정리하고 신혼집을 나가 버렸다. ... 진혁이 첫사랑과 그 아들을 데리고 나타나 아이더러 “아빠”라고 부르게 한 순간, 이담은 6년 간의 감정에서 깨어났다. 남편이 첫사랑과 그 아들을 위해 자신을 홀대하고 ‘내연녀’로 취급 하니, 차라리 혼인을 끝내고 남편과 그 첫사랑을 축복해 주기로 했다. 그러나 이담이 진혁의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진 순간, 그는 미쳐버렸다. 남편은 곧 첫사랑과 결혼할 거라 모두가 생각했다. 하지만 누구보다 큰 권력을 쥔 그 남자가 언론 앞에서 이렇게까지 비굴하게 사랑을 구걸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제가 바람 피운 적도 없고, 사생아는 더더욱 없습니다. 믿어줘요… 이담아. 제발 떠나지 마요. 너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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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제1화

“심 선생, 잘 생각하고 결정한 거야? 정말 강성병원으로 가려고?”

병원장 주원식은 심이담의 전근 신청서를 보고는 의아한 듯 물었다.

그 순간 이담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면서, 씁쓸한 미소가 입가에 번졌다.

“이미 결정했어요.”

이미 마음을 굳게 먹은 듯한 이담을 보자, 주원식은 한숨을 푹 내쉬며 결국 전근 신청서에 사인했다.

병원장 사무실에서 나오기 무섭게, 이담은 하진혁과 의사 가운을 입은 문초연 모자를 발견하고 걸음을 우뚝 멈췄다.

세 사람은 마치 화기애애한 가족 같았다.

초연은 어린 남자애의 손을 잡고 진혁과 나란히 걷고 있었고, 아이는 다른 손으로 진혁의 손을 꼭 잡은 채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은 가시처럼 이담의 가슴에 박혔다.

진혁이 초연 모자를 대할 때 내비치는 인내심과 다정함은 그녀가 한 번도 체험해 보지 못한 것이다.

이담도 알고 있다. 진혁이 자기를 얼마나 미워하는지를.

초연은 진혁의 첫사랑이다. 이담은 하성그룹 회장이자 그 당시 실권을 장악한 마동순과 거래를 진행하여 진혁과 결혼하게 되었다. 그러고 난 뒤에야 초연과 진혁이 헤어진 걸 알게 되었다.

진혁한테 그녀는 첫사랑과의 사이를 갈라놓은 악독한 여자였다.

하지만 진혁이 모르고 있는 것은, 이담이 초연보다 그를 먼저 알았다.

이담은 결혼하기만 하면 진혁이 자신을 기억하고, 그의 얼음장 같은 마음도 덥힐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완전히 틀렸다.

진혁이 이담을 미워하는데 사랑할 리 있을까?

그게 아니라면 결혼한 지 6년 동안, 그는 절대 자신이 솔로인 것처럼 행세하지 않았을 거고, 이담을 모른 척하지 않았을 거다.

“심 선생님?”

초연이 이담을 발견했다.

하지만 진혁은 미간을 찌푸린 채 이담을 바라봤다. 마치 그녀가 두 사람의 관계를 까발릴까 봐 두려운 것처럼.

남자의 소원함에 마음이 한순간 아팠지만, 이담은 곧 안정을 되찾았다.

“문 과장님, 하 대표님.”

진혁은 얼마 전에 병원에 투자해서 현재는 병원의 대주주 중 한 명이다.

하지만 이담은 알고 있다. 진혁이 이 병원에 투자한 건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문초연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초연이 귀국하자마자 진혁은 그녀를 이 병원에 꽂았다. 심지어 들어오자마자 외과 과장 자리에 앉혔다.

병원의 모든 사람은 초연의 뒷배가 진혁이라는 걸 알고 있다. 최근 병원 내부에서 진혁이 초연의 남자 친구라는 소문이 돌고 있어도, 진혁은 한번도 해명한 적이 없다.

초연은 당당하게 진혁의 팔짱을 꼈다.

“심 선생님, 너무 예의 차릴 필요 없어요. 심 선생님이 저보다 더 선배잖아요. 제가 병원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오히려 심 선생님한테 잘 부탁드려야 하는 걸요.”

이담이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옆에 있던 남자아이가 진혁을 와락 껴안았다.

“아빠, 저 힘들어요. 안아주면 안 돼요?”

이담의 얼굴이 단번에 어두워졌다.

‘아이가 진혁을 아빠라고 불러?’

초연은 일부러 화내는 척 아이를 꾸짖었다.

“준희야. 함부로 부르면 어떡해?”

그러고는 미안한 듯 진혁을 바라봤다.

“미안해, 진혁 씨. 아이가 철이 없어서 그래.”

진혁은 이담을 슬쩍 흘겨봤지만, 조금도 화나지 않은 듯 가볍게 준희를 품에 안았다.

“괜찮아.”

“역시 진혁 아빠가 짱이에요!”

준희는 진혁의 목을 끌어안으며 애교 부렸다.

“진혁 아빠가 제 아빠였으면 좋겠어요!”

“으이그.”

초연은 준희의 자그마한 머리를 콕콕 찔렀다.

그 모습을 보며 이담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녀는 이토록 다정한 진혁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다 그만두고 싶었다.

이담이 뭘 하든 진혁의 마음을 녹일 수 없기에.

‘차라리 잘 됐어.’

이담은 애써 씁쓸함을 억누르며 세 사람을 지나 엘리베이터에 들어갔다.

...

이담은 전근 신청을 했다는 사실을 발표하지 않았다. 진혁한테도 알리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진혁도 아마 알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이담은 차를 몰고 하씨 가문 본가로 향했다.

집앞에 도착해 벨을 누르자 얼마 뒤 도우미 아주머니 임순자가 나와 문을 열었다.

“작은 사모님, 오셨어요?”

“할머니는요?”

“회장님은 안에 계십니다. 들어오세요.”

임순자는 이담을 공손하게 대했다.

마동순은 하씨 가문의 덕망 높은 어르신이다. 진혁의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하씨 가문의 크고 작은 일은 모두 마동순이 관리했다.

마동순은 남부 출신이다. 친정 역시 남부 지역에서 대기업을 경영하고 있다.

젊었을 때는 시어머니는 여장부인 마동순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일부러 괴롭히는 일은 없었다.

임순자는 이담을 선실로 안내했다. 그 마동순은 방석 위에 앉아서 손에 쥔 염주 팔찌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회장님, 작은 사모님 오셨습니다.”

마동순은 천천히 눈을 뜨면서 고개를 돌렸다.

“이리 와서 앉거라.”

임순자가 떠난 뒤, 이담은 마동순 옆에 무릎 꿇고 앉아 불상을 향해 경건하게 절을 올렸다.

불교를 믿는 마동순은 종종 절에 가서 향을 피우는데, 한 번 가면 보름 동안 돌아오지 않는다.

“할머니, 저 진혁 씨하고 이혼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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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심 선생, 잘 생각하고 결정한 거야? 정말 강성병원으로 가려고?”병원장 주원식은 심이담의 전근 신청서를 보고는 의아한 듯 물었다.그 순간 이담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면서, 씁쓸한 미소가 입가에 번졌다.“이미 결정했어요.”이미 마음을 굳게 먹은 듯한 이담을 보자, 주원식은 한숨을 푹 내쉬며 결국 전근 신청서에 사인했다.병원장 사무실에서 나오기 무섭게, 이담은 하진혁과 의사 가운을 입은 문초연 모자를 발견하고 걸음을 우뚝 멈췄다.세 사람은 마치 화기애애한 가족 같았다.초연은 어린 남자애의 손을 잡고 진혁과 나란히 걷고 있었고, 아이는 다른 손으로 진혁의 손을 꼭 잡은 채 환하게 웃고 있었다.그 모습은 가시처럼 이담의 가슴에 박혔다.진혁이 초연 모자를 대할 때 내비치는 인내심과 다정함은 그녀가 한 번도 체험해 보지 못한 것이다.이담도 알고 있다. 진혁이 자기를 얼마나 미워하는지를.초연은 진혁의 첫사랑이다. 이담은 하성그룹 회장이자 그 당시 실권을 장악한 마동순과 거래를 진행하여 진혁과 결혼하게 되었다. 그러고 난 뒤에야 초연과 진혁이 헤어진 걸 알게 되었다.진혁한테 그녀는 첫사랑과의 사이를 갈라놓은 악독한 여자였다.하지만 진혁이 모르고 있는 것은, 이담이 초연보다 그를 먼저 알았다.이담은 결혼하기만 하면 진혁이 자신을 기억하고, 그의 얼음장 같은 마음도 덥힐 수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완전히 틀렸다.진혁이 이담을 미워하는데 사랑할 리 있을까?그게 아니라면 결혼한 지 6년 동안, 그는 절대 자신이 솔로인 것처럼 행세하지 않았을 거고, 이담을 모른 척하지 않았을 거다.“심 선생님?”초연이 이담을 발견했다.하지만 진혁은 미간을 찌푸린 채 이담을 바라봤다. 마치 그녀가 두 사람의 관계를 까발릴까 봐 두려운 것처럼.남자의 소원함에 마음이 한순간 아팠지만, 이담은 곧 안정을 되찾았다.“문 과장님, 하 대표님.”진혁은 얼마 전에 병원에 투자해서 현재는 병원의 대주주 중 한 명이다.하지만 이담은 알고 있다. 진혁이 이 병원에 투자한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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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너무 놀라서 잠시 멍하니 있던 마동순이 이담과 눈을 마주쳤다.“애초에 나와 거래할 때 이런 말은 없었잖니. 왜? 후회하는 거니?”맞다. 이담은 후회하는 중이다.이담은 시큰거리는 눈을 내리깔면서 애써 눈물을 참았다.“제가 실망을 안겨드렸어요.”마동순은 깊은 눈동자로 이담을 바라보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됐어. 이혼하고 싶으면 이혼해. 난 기회를 줬어. 네가 진혁의 마음을 얻지 못한 것이니, 이제 하씨 가문은 너한테 빚진 거 없다.”순간 처연한 미소를 지은 이담이 갈라질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감사합니다.”...그린힐 고급 아파트 단지.이담은 아래층에서 마침 초연 모자와 진혁을 발견했다.초연 모자는 진혁의 차를 타고 온 모양이었다.이담은 세 사람을 본 순간 잠시 멍해졌다.초연 역시 놀란 듯 그녀를 바라봤다.“어? 심 선생님도 그린힐에 살아요?”이담은 진혁을 바라봤다. 하지만 진혁은 어떤 태도도 내비치지 않았다.진혁이 평온할수록 이담은 마음이 찔리는 듯 아팠다.그린힐은 경성시 중심가에 있는 고급 아파트 단지이자, 하성그룹에서 건설한 아파트 중 하나다. 이담이 사는 집 역시 진혁이 애초에 보상이라고 하면서 준 것이다.집이 병원과 가까운 곳에 있어 이담은 별다른 생각없이 받아들였다.하지만 진혁이 초연 모자를 이곳에 거주하게 할 줄은 몰랐다.‘참 잠시도 못 참네...’“참 기막힌 우연이네요.”이담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막 떠나려는데 초연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심 선생님, 결혼하셨다던데, 남편분은 안 보이네요?”이담은 걸음을 우뚝 멈췄다.‘남편?’이담은 진혁을 바라봤다.진혁의 눈에 음울함이 감돌았다.그 모습을 본 이담은 속으로 냉소했다.‘이렇게 문초연한테 우리 관계를 들키는 게 두려운가?’“저 남편 없어요.”이담은 덤덤하게 대답했다.그 말을 듣자, 진혁의 평온하던 눈빛이 갑자기 어두워졌다.“남편이 없다고요? 기혼 아니었어요?”초연은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기혼...’이담은 병원 이력서 기혼란에 체크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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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진혁은 이담이 이혼을 언급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지,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이혼은 안 돼.”이담은 잠시 멍해졌다.‘이혼하기 싫어하는 게 설마...’미처 희망을 품기도 전에 남자의 말이 이어졌다.“할머니도 동의 안 하실 거야.”곧이어 쾅 하는 문소리가 이담을 현실로 끌어당겼다.이담은 그 자리에 한참 동안 서 있었다. 그 순간 솜뭉치가 가슴을 꽉 막고 있는 듯이 답답했고, 자기 생각이 얼마나 우스웠는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하진혁이 나 때문에 이혼을 거절할 리 없지...’진혁은 단지 마동순이 동의하지 않을까 봐 걱정할 뿐이다.하지만 아쉽게도 마동순은 이미 동의했다. 물론 그 사실을 진혁은 아직 모르지만.안 좋게 대화를 마친 두 사람은 그날 밤 따로 잤다. 다음 날, 도우미 아주머니 심계화가 출근했을 때 진혁은 이미 집을 나선 뒤였다.이담이 아무 일도 없는 듯 혼자 아침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심계화가 방을 치우고 나와서 물었다.“사모님, 방에 있던 물건이 왜 이렇게 많이 없어졌어요?”이담은 흠칫했다.도우미마저 물건이 줄어든 걸 발견했는데, 진혁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신경을 쓰는지 안 쓰는지 단번에 보였다.이담은 싱긋 미소 지었다.“물건이 다 낡아서 버렸어요. 다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에요.”심계화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날 점심, 이담은 중요한 수술이 잡혔다는 병원장의 연락을 받았다. 두개골 절개 수술에 능한 전문의가 출장을 가는 바람에 이담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병원에 도착한 이담은 수술복을 갈아입고 수술실로 들어갔다. 모든 주치의는 이미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그 중에는 초연도 포함되어 있었다.수술실 안은 짙은 피비린내로 가득했다.환자의 상태를 확인하는 다른 의사와 달리, 초연은 환자 가까이도 가지 못하고, 계속 헛구역질하며 메스꺼움을 참고 있었다.“심 선생님, 드디어 오셨네요.” 마취 전문의가 이담에게 다가왔다.“환자가 공사장에서 떨어져 이제 막 병원으로 이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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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이담의 몸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남자를 바라봤다.“내가 무안을 줬다고?”‘그러니까 지금 문초연 때문에 나를 찾아온 거야?’“문초연은 네 상사야. 아무리 그래도 사람들 앞에서 무안을 주면 안 되지.”진혁은 업무를 처리하는 듯 공적인 말투로 말했다. 그 목소리에서 부부의 정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이담은 쓰라린 마음을 애써 참으며 피식 웃었다.“집도의가 나라는 거 잊지 마. 나한테 그럴 권리도 없어?”“그러는 너야말로 잊었나 본데.”진혁은 조롱 섞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난 집도의를 교체할 권리가 있어.”순간 이담의 마음은 둔기에 세게 맞은 것처럼 철렁했다.하지만 아쉽게도 이담은 이미 전근 신청서를 제출했다.이제 진혁이 집도의를 교체하든 말든 크게 상관없었다.“앞으로 다시는...”“하 대표님이 바꾸고 싶으면 바꾸세요.”이담은 진혁의 말을 끊었다.그 순간 진혁의 미소가 그대로 굳어지더니, 눈빛이 점점 어두워졌다. 그는 믿기지 않는 듯 이담을 빤히 응시했다.이담은 예전에 사람들 앞에서만 자신을 하 대표님 혹은 하진혁 씨라고 불렀고, 사적으로는 이렇게 부른 적이 한 번도 없었다.이토록 거리감 느껴지는 말투로 대화한 적은 더더욱 없었고.“지금 날 뭐라고 불렀어?”“하 대표님요.”이담은 평온하게 되물었다.“제가 이렇게 부르기를 바란 거 아닌가요?”진혁의 미간은 선명하게 일그러졌다.그가 뭐라고 하려던 찰나, 간호사 한 명이 갑자기 달려왔다.“심 선생님, 환자 가족들이 무슨 일인지 갑자기 문 과장님과 말다툼을 하기 시작했어요!”이담이 반응하기도 전에, 옆에 있던 남자는 곧바로 그녀에게 등을 보였다.초연에게 일이 생겼다는 말에 바로 긴장하는 진혁을 보자, 이담은 자기도 모르게 실소했다.‘나한테는 언제 한번 이렇게 긴장한 적이 있었나?’환자 가족은 무슨 이유인지 병실 밖에서 초연과 다투고 있었다.이담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멀리서부터 초연의 비명이 들려왔다.구경하는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갔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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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진혁의 안색이 일순 어두워졌다. 초연의 손을 놓으려는 순간, 초연이 그를 꽉 붙잡았다.“진혁 씨, 나 아직도 몸이 안 좋은 것 같은데. 나랑 같이 약 가지러 가줄 수 있어?”여린 이담의 모습이 사라지자, 미간을 찌푸린 진혁은 시선을 거두면서 담담한 목소리로 동의했다.진혁은 초연과 함께 약국에 가서 약을 받았다. 진혁에게 고개를 돌린 초연은, 그의 정신이 딴 데 팔려 있는 걸 발견하고는 싱긋 웃으며 다가갔다.“진혁 씨, 준희가 사립 유치원에 가고 싶어 해. 아직 가족관계기록부가 없어서 그런데, 잠시만 진혁 씨 아들로 올릴 수 있을까?”진혁이 거절할까 봐 초연은 곧바로 보충 설명을 했다.“걱정하지 마. 그냥 잠시만 올리는 것뿐이야. 다른 사람은 절대 모를 거야.”진혁은 초연을 꿰뚫어 볼 것처럼 응시했다.초연은 그 시선을 피하지 못하고 몰래 주먹만 꽉 쥐었다.“진혁 씨, 혹시... 화났어?”“내 아들로 올리는 건 말이 안 돼.”진혁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우리 어머니의 의붓아들로 올리게 해줄 수는 있어.”“...”초연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진혁씨 어머니 의붓아들이라니?’‘그러면 진혁 씨의 형제가 되는 거잖아?’‘내 아들이 진혁 씨의 ‘동생’이 되어 버리면, 어머니인 난 뭐가 되는 건데?’진혁은 어두운 눈으로 초연을 빤히 바라봤다.“싫어?”초연은 자기 속내를 그대로 드러낼 수 없어서 애써 표정을 숨겼다.“아니야... 진혁 씨가 알아서 해.”“응.”진혁은 덤덤하게 대답하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초연은 주먹을 꽉 쥐어야 했다.비록 이런 결과가 달갑지는 않았지만, 생각해 보니 너무 서두를 일이 아니었다.아들이 하씨 가문 본가에 들어가서 가족들의 예쁨을 받게 된다면, 신분 상승할 기회는 얼마든지 많을 테니까....진혁은 밤새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예전이었다면 이담은 남편을 위해 불을 켜두었을 테지만,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진혁이 돌아오든 말든 이제는 중요하지 않으니까.이른 아침, 출근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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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다 큰 어른이 뭐 하러 어린애와 사사건건 따져?”이담은 잠시 넋을 잃었다. 진혁이 자신을 믿지 않을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지만, 노골적인 편애에 마음은 미어질 듯 아팠다.이담은 눈이 시큰거렸지만 눈물을 애써 참았다.“전 밀친 적 없어요!”진혁은 피식 웃었다.“그럼 고작 몇 살짜리 애가 스스로 넘어지고 너를 모함한다는 거야?”이담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상대가 자신을 믿어주지 않을 줄 알면서도 왜 설명했을까...이담은 눈을 내리깔고 안정을 되찾으려고 애썼다.“오늘은 내가 재수 없었네요. 됐죠?”말을 마친 이담은 돌아서서 떠났다.“거기 서.”이담은 걸음을 우뚝 멈췄지만, 고개는 돌리지 않았다.“준희는 아무리 그래도 어린애인데, 뭐 하러 그렇게까지 물고 늘어져?”진혁의 말투는 조금 누그러졌다.“준희한테 사과해.”“진혁 씨, 됐어...”초연은 이담 대신 사정했다.하지만 진혁의 표정은 차갑기만 했다.“잘못한 건 잘못한 거야. 사과는 해야지.”이담은 주먹을 꽉 쥐었다. 어찌나 힘을 줬는지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지만, 이미 아픔을 잊어버렸다.이담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진혁을 바라보더니 길 건너편 가로등 아래에 달린 CCTV를 가리켰다.“여기 그린힐 아파트 단지라 널리고 널린 게 CCTV거든요. 아무리 여자 앞에서 잘난 척하고 싶다 해도 CCTV부터 확인하고 그러시죠?”“만약 CCTV에도 제가 잘못한 거로 찍혔으면, 사과할게요. 하지만 제가 잘못한 게 아니면, 사과 강요할 생각 하지 마세요!”이담은 더 이상 진혁을 보는 체도 하지 않고 떠나갔다.진혁은 순간 마음이 철렁 내려앉으면서 안색이 어두워졌다.초연은 CCTV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하마터면 당황함을 감추지 못할 뻔했다. 진혁이 정말 CCTV를 확인하기라도 할까 봐, 그녀는 얼른 진혁을 잡았다. “진혁 씨, 그만해. 준희도 다치지 않았잖아. 그리고 심 선생님이 일부러 그런 건 아닐 거라고 믿어.”초연은 진혁이 CCTV를 확인하는 것만큼은 무조건 막으려고 얼른 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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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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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너무나도 갑작스러워 이담은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이윤정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이제 심민철은 이담에게 삿대질을 하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하 서방이랑 이혼하겠다고? 꿈 깨! 어림도 없는 소리!”“하씨 가문 문턱을 아무나 넘을 수 있을 것 같아? 네가 운 좋게 하씨 가문 며느리가 된 건, 하늘이 준 운이야! 주제를 알아야지!”운?‘하긴, 나한테 운이 있기는 할까?’그저 어릴 때 진혁과 함께 어두운 시기를 이겨냈고, 모든 걸 내 걸고 그를 구해줘서 하씨 가문에서 은혜를 갚은 것뿐이다.이담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더니 눈시울을 붉혔다.“아버지, 정말 이해가 안 돼서 그러는데, 저도 아버지 자식이에요. 설마 아버지 눈에 동생만 자식이에요?”“갑자기 저를 불러온 목적도 사실 진혁 씨였죠? 그렇게 빙빙 돌려서 밥 같이 먹자는 이유를 댈 필요 없어요. 차라리 저더러 진혁 씨한테 돈 좀 달라고 사정해 보라고 얘기하지 그러셨어요!”“두 분 눈에 동생 일은 언제나 가장 중요했고, 제 일은 보잘 것 없는 것이었죠?”심민철은 말문이 막히고 찔리는 구석이 있어 이담의 시선을 피했다.“넌 누나잖아. 하빈이는 네 동생이고. 누나가 동생을 도와주는 게 뭐가 잘못됐어?”이담은 애써 눈물을 참았다.“하빈이를 키우는 건 두 분의 의무지, 제 의무는 아니에요.”“너...”심민철은 화나 나서 또 손찌검하려고 했다.하지만 이담이 오히려 얼굴을 갖다 대며 말했다.“때려요. 할 수 있으면 때려 봐요!”심민철은 화가 나서 부들부들 떨었지만 진짜 때리지는 못했다.“여보. 말로 해요!”이윤정은 정신을 차리고 남편을 붙잡더니 이내 이담의 앞에 다가갔다.“이담아, 아버지랑 그만 싸워. 하빈이한테 정말 큰일이 났어. 지금 구치소에 갇혀 있어. 나랑 네 아버지도 하씨 가문과 사돈 사이니까 도움을 청하려는 거야. 하 서방이 나서면 하빈이가 나올지도 모르잖아.”이담의 마음은 순간 서늘해졌다.아직도 부모님은 심하빈만 생각하고, 그녀의 처지는 생각하지 않는다.“도와줄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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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사과...’실소를 터뜨린 이담은 이미 작성한 이혼 합의서를 꽉 움켜쥐면서, 애써 목소리를 진정시켰다.“진혁 씨, 누구 전화야?”이담은 초연의 애교 섞인 목소리를 똑똑히 들었다.“회사 전화야.”진혁은 아직 통화 중이라는 걸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대충 변명했다.“몇 시에 퇴근해? 준희 데리러 같이 가줄게.”초연의 미소는 그 순간 더 환해졌다.“난 안 바빠서 6시면 퇴근할 수 있어.”이담이 정신을 차렸을 때. 진혁은 이미 전화를 끊은 뒤였다.이담의 안색이 순간 어두워지더니, 이미 사인한 이혼 합의서를 빤히 바라봤다.이혼 합의서에 서명하도록 상의하려고 했는데, 진혁은 이걸 끝까지 들을 인내심조차 없는 모양이었다.참 우스웠다.‘애초에 그 약속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말았어야 했어...’...진혁은 초연과 함께 준희를 데리러 유치원에 갔다.준희는 원장 선생님과 함께 나오다가 진혁을 본 순간 선생님의 손을 놓고 쏜살같이 달려갔다.“아빠!”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준희는 진혁의 앞에 달려가 그의 다리를 꼭 끌어안으며 기쁜 표정을 지었다.“아빠, 엄마랑 같이 저 데리러 왔어요?”원장은 싱긋 웃으며 진혁 앞에 다가가 다정하게 말했다.“대표님, 사모님, 준희가 오늘 반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서 칭찬도 받았어요!”진혁의 눈에 불쾌한 빛이 스쳐 지나더니 원장을 흘겨봤다.“사모님이라니요?’원장은 흠칫 놀랐다.‘설마 아닌가?’초연은 다급히 진혁의 팔을 잡아당겼다.“진혁 씨, 화 내지 마. 원장 선생님도 일부러 그렇게 부른 건 아니잖아.”말을 마친 초연은 얼른 원장에게 말했다.“앞으로는 함부로 부르지 마세요.”원장은 들을수록 어리둥절했다.‘무슨 뜻이지?’‘분명 본인이 자기 아들이 하 대표님 아들이라고 은근히 눈치를 줬으면서.’‘사모님이 아니면, 이 아이는...’‘역시 재벌은 복잡하네!’준희도 진혁의 표정에 흠칫 놀라 뒤로 물러났다.“아빠... 제가 뭐 잘못했어요?”진혁은 준희를 흘긋 바라봤다. 그래도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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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이담은 입을 꾹 다물었다. 진혁이 자신의 가족과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기에.어느 해, 마동순의 생신 때 이담의 부모님도 왔는데, 술에 취한 심민철이 듣기 거북한 말을 한 적이 있었다.그때 하씨 집안 사람들의 표정을 이담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이담이 그때 앞으로 다가가서 심민철에게 주의를 줬지만, 심민철은 오히려 그녀를 밀쳐버렸다.그 순간 이담은 뒤로 넘어지면서, 깨진 유리잔이 그녀의 손바닥에 깊이 박혔다.그때 이담은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술에 취해 실수한 것일지도 모르니까.하지만 옆에서 자기 일이 아니라는 듯 구경하는 진혁이 더 원망스러웠다.그때 진혁은 걱정하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그런데 지금...이런 질문을 하다니?이담은 시큰둥한 듯 말했다.“그걸 물어볼 필요가 있어?”진혁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멍청하긴.”이담은 창백한 얼굴로 주먹을 꽉 그러쥐었다.“하씨 가문 사모님 신분으로 맞고 다니는 게, 멍청한 거 아니면 뭔데?”진혁은 잔에 남아 있던 술을 한꺼번에 마셔버렸다.그 말은 꼭 아내에게 당부하는 남편이 해야 할 말 같았다.마치 자기 아내가 이런 부당한 일을 당하고 다니면 안 된다는 듯이.하지만 진혁은 이 부당함이 모두 자기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걸 알 리가 없었다.진혁은 천천히 일어나 이담의 앞에 멈춰 섰다.“다녀왔어. 오늘 나한테 하려던 말이 뭔데?”이담은 멍해졌다.‘하진혁이 이렇게 일찍 돌아온 게, 그 전화 때문이라고?’이담은 이상한 마음을 억누르며 몇 초간 침묵했다.“하빈이가 경찰서에 구금됐어. 하빈이 빼낼 수 있도록 변호인단을 찾아 줘.”이담은 명예를 중시하는 진혁이 이런 일에 쉽게 나서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때문에 직접 사람을 꺼내 달라고 부탁하는 대신, 변호인단을 찾아달라고 부탁해서 합의할 방법을 찾아볼 생각이다.이건 지나친 요구가 아니었다.진혁은 이담을 꿰뚫어 볼 듯 빤히 응시했다.“나더러 도와달라고?”“응.”이담은 진혁이 쉽게 동의하지 않을까 봐 말을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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