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고등학교 시절의 아픔 뒤로 조용히 살아가던 홍이수. 별안간 그녀 앞에 나타난 역대급 비주얼의 불청객, 남현준. 생전 처음 보는 미남이 알은 체 하며 다가왔다. 심지어 부모님에게도 숨긴 지난 과거의 모습을 안단다. 필사적으로 피했지만 생애 첫 알바에서 그 미남을, 남현준을 트레이너로 만났다. 사람들은 이걸 운명의 장난이라 명하던가. 뭐든 느린 이수의 속도에 맞춰 서로에게 스며든 관계는 이수의 엉뚱한 자아를 심폐소생시키고, 급기야 그를 향한 아찔한 욕망까지 피어오르게 되는데. 불같이 뜨거웠던 성탄의 밤. 축복인 줄 알았던 사랑이 잔인한 저주로 변해버렸다. 서툴고 미숙했던 스무 살, 얼룩진 첫사랑의 기억. 다시 새로고침할 수 있을까.
View More몇 분전. "언제 끝나?""곧 마감하려고…""차로 데려다줄게."수척해진 이수가 저대로 잘 걸어나 갈 수 있을까 싶어 에스코트를 자처했다. 사실은 둘만의 시간을 조금 더 갖고 싶었던 준호의 숨겨진 마음이었다."아, 그럴 필요 없어. 집 가까운 거 알잖아. 괜찮아.""거절하지 말아줘. 친구를 걱정하는 마음이라 생각해. 너 지금, 보기에 되게 안쓰럽거든."대답을 망설이는 이수를 보며 준호가 고개를 한쪽으로 살짝 기울였다."가자, 날이 춥다.""그럼, 그냥 큰 길 따라 가다 세워 줘. 거기서 계단만 오르면 바로 슈퍼거든."걸어서 십여 분 걸리는 거리를 차로 가자 순식간에 도착했다. 내부 히터가 채 데워지기도 전이었다."생각보다 많이 가깝네."차를 타자마자 내릴 곳에 도착한 준호는 이수를 그대로 보내기 아쉬웠다. 길가에 차를 세워둔 채 시동을 끄고 이수와 함께 내렸다. "태워줘서 고마웠어. 여기 계단만 오르면 금방이야. 잘 가."인사를 하는 이수를 지나쳐 준호는 계단을 딛고 올라섰다. 곤란한 눈으로 자신을 보는 이수에게 준호는 가볍게 고개를 까딱거렸다. 이수는 입술을 한 쪽으로 비죽거리다 이내 발을 뗐다.계단의 폭이 좁고 가팔랐다. 단순 에스코트라기엔 사심이 잔뜩 들어갔지만 계단은 위험해 보였다. 안 그래도 수척해진 이수가 혹여 발이라도 헛디디면 다칠 수 있으니까. 이수를 한 계단 먼저 올려 보낸 뒤 천천히 그녀의 속도에 맞춰 올랐다.계단 끝에 오르고서야 이수가 준호를 향해 입을 열었다."이제 정말 다 왔어. 그만 가, 현... 준아... "고개를 앞으로 돌리는 순간 이수의 얼굴에 그림자가 길게 드리웠다. 익숙한 실루엣을 따라가니 그 끝은 역시 현준이었다. 그의 간절한 시선과 마주쳤다."이수야.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할 말이 있어."이수는 현준을 보자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갑작스러운 대면에 시선을 피해버렸다.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아직 답을 찾지 못했는데 예기치 못하게 마주하게 되자 이수의 머릿속은 하애지며 비명을 지르고
현준은 택시를 잡아타고 모스 문으로 향했다. 반 정도 왔을까, 이수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울렸다. 「010-XXXX-XXXX」어, 이 번호는 아까 모스 문에 오겠다는 사람인 것 같은데. 받아볼까…? 받아도 되겠지. 현준은 이수의 휴대폰을 자신이 갖고 있다고, 그 바람에 그쪽 연락을 못 받았을 거라고 알려 주려 했다. "여..."{ 여보세요? 전화기 주인인데요. }...어? ...이 목소리 나 아는데... 아는 목소리인데. 구준호잖아.귀에 익숙한, 불편한 목소리에 현준은 머리가 하애졌다. { 여보세요? 전화를 받으셨으면 말을 하셔야죠. 사례해 드릴 테니 폰을 돌려주셨으면 합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준호의 목소리에 당황한 현준이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현준은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저장되어 있던 그의 번호를 찾아 숫자를 하나하나 대조해 봤다. 제길, 번호가 같다. 왜지… 구준호가 왜 나서는 거지…?이수의 휴대폰을 왜 제 것인 양 행동하는지. 둘이 개인적으로 만나는 걸 본 적이 없는데 구준호가 이수를 대신해 전화를 걸 만큼 친분이 있었나? 현준은 이해할 수 없었다.현준의 깊은 속에서 감정이 묘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복잡한 머릿속이 채 정리되기도 전에 택시는 모스 문 건너편에 멈춰 섰다. 현준은 조금 떨어진 코너에 택시를 세우고 내렸다.카페의 밝은 조명 탓에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손님이라곤 구준호뿐이었다.씨발. 구준호, 이수 앞이라고 표정이 좋네. 현준은 어제 일로 이수가 이별을 고할까 불안하던 참에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앉아 있는 걸 보자 견딜 수 없이 불쾌해졌다. 준호가 이수를 마음에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감정이 더욱 날카롭게 곤두섰다.마음이 구겨질 대로 구겨졌다. 간간이 미소 짓는 이수를 보니 가슴이 시큰거렸다. 하아... 한심한 새끼.그래도 웃고 있을 때만큼은 이수의 기분이 괜찮아 보이는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놓이기도 했다. 이수가 구준호와 시간을 보내며 기분을 덜어낸 다음 자신을 만나는 편이 낫겠다는
어제 제게 일어났던 일이 내내 묵직한 돌덩이가 되어 명치끝에 콱 박혀 있었다. 이수는 모스 문으로 출근해야 했지만 발길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소라의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할지, 어제 현준의 집 다녀온 이야기를 어떻게, 어디까지 털어놓아야 할지 정리가 되지 않았다. 이제 딱 열 걸음만 더 가면 모스 문인데 왜인지 걸음을 이어 가기가 두려웠다. 외투 주머니에 두 손을 깊숙이 찔러 넣은 채 발로 땅바닥을 툭툭 찼다. 휴대폰은 어디서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현준의 집에서는 휴대폰을 꺼낸 적이 없으니 그곳에 두고 올 리는 없었다. 의도하지 않아도 한숨이 푹푹 새어 나왔다. 출근 시간이 다 되어 별수 없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사장님, 저 왔어요."이수가 기운 없는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소라는 한눈에도 이수의 안색이 어둡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전에 현준과 통화한 내용이 마음에 걸렸던 소라는 이수가 오기만을 기다리던 참이었다."이수야, 어제 현준이네 갔었지? 혹시… 무슨 일 있었니? 어머, 너 입술... 어떻게 된 거야?"모스 문에 들어서자마자 날아온 질문에 이수는 눈동자가 가늘게 떨렸다."아... 이건 제가 어제 잘못 깨물어서... 현준이 집에선... 아무 일도 없었어요. 현준이가 내내 자고 있어서 밥만 차려놓고 바로 나왔어요."아무 일 없었던 것이 아님이 분명한데 입술을 달싹이며 초조해하는 이수의 모습에 소라는 더 이상 물어봐선 안될 것 같았다. "그래… 어제 거기까지 갔는데 얼굴도 제대로 못 보고 나와서 아쉬웠겠네. 그래도 다녀와 줘서 정말 고마워.""네…"이수는 굳은 얼굴로 어색하게 웃어 보이고는 일할 채비를 하러 스태프 룸에 들어갔다. 어제 있었던 일이 파도처럼 밀려와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심호흡을 하고 가슴을 진정시킨 뒤 앞치마를 두르고 홀로 나왔다.일할 때마다 들썩이는 이수의 소맷단 아래로 희미하게 멍이 보였다. 잘못 본 거라 생각했다. 어디에 결박되지 않고서야 저런 멍이 있을 리 없을 테니까. 이수에게서 왠지 벽이
중학교 교사였던 상희는 매일 아침 아이들보다 일찍 집을 나서야 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새벽같이 일어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침상을 차렸다. 시간에 쫓기면서도 자녀들이 좋아하는 반찬을 정성껏 준비했고 늘 오색 오간자 밥상보를 덮어두곤 했다. 상희가 매일 아침 정성껏 차려준 밥을 입에도 대지 않고 집을 나선 적이 열에 여덟은 되었다. 십 분 일찍 일어나 밥 먹고 가는 게 뭐 그리 힘든 일이라고, 엄마의 정성을 외면했던 과거의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이제는 더 이상 맛볼 수 없는 소중한 엄마의 손맛, 유통기한이 있는 줄 알았더라면 단 한 톨도 남기지 않았을 것을. 깊은 절망과 후회가 거대한 쓰나미처럼 그를 덮쳐왔다. 마치 그를 통째로 삼켜 버릴 듯 작정하고 몰아쳤다. 현준은 식탁 모서리를 부여잡고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명치끝에 내내 걸려 있던 핏덩어리 같은 후회를 토해냈다. 누가 알았겠나, 이렇게 허망하게 엄마를 떠나보내게 될 줄. 상희를 상실한 고통 속에 몸부림치는 현준의 모습은 처절하다 못해 참담했다. 한참을 쏟아낸 눈물을 닦아내며 현준은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눈앞에 놓인 밥상을 상희가 차려준 마지막 선물이라 여기며 하나도 남기지 않고 성의 있게 꼭꼭 씹어 먹었다. 목구멍으로 넘기는 밥이 온전히 소화되어 엄마의 사랑으로 몸 구석구석에 각인되기를 바랐다. 천천히, 오래도록 정성껏 씹었다. 분명 상희의 손맛은 아니었지만 현준의 그리움을 채우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눈물 섞인 한 상을 비우고 난 뒤 현준은 덤덤하게 설거지를 마쳤다. 게워내듯 울음을 토해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엄마… 안녕. 잘 가… 많이, 많이 보고 싶을 거야. 상희의 그림자 끝자락이라도 붙들고 있던 미련을 비로소 놓아준 후에야 이수의 얼굴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때 소라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 {어, 드디어 전화를 받네. 이수의 힘이 대단하긴 대단하다.} 이수…? “...무슨 소리야, 이수라니?” {어제 이수
"안녕… 모스 문에서 기다리는 줄 알았는데."순간 멈칫한 이수의 얼굴은 은은하게 달아오른 분홍빛이었다. 현준은 그 얼굴이 마음에 들었다."시간이 남아서 걸어왔어. 가자.""근데 우리 어디 가?""중앙 공원 갈 거야. 5시에 야외 공연장에서 영화 상영하거든."현준은 손에 들고 있던 따뜻한 커피를 이수에게 건넸다."그리고 이건 어제 말한 커피. 내가 좋아하는 향의 커피야. 좀 덥겠지만, 마셔 봐.""고마워."이수가 마실 때까지 현준은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긴장된 표정으로 얼굴을 살폈다. 몸을 아예 이수 쪽으로 돌
이수는 집에 돌아와 씻은 뒤, 침대에 누웠다. 머릿속에서 현준이 떠나가질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현준과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크크큭, 홍이수, 너 진짜… 하하하!'적막한 밤공기를 가르던 그의 웃음소리가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아오!! 홍이수! 제대로 미친 거냐고?!이수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걷어차기를 수십 번 반복하고서야 겨우 진정됐다.누가 따라오는 줄 상상이나 했겠냐고…너무 창피해...그래도... 아까 평상에 함께 누워있었던 건… 너무 설렌다.***"괜찮아? 계단 오를 수 있겠어?"절뚝이던 이수는 결국
“홍이수! 진짜 혼자 가도 돼? 일본에서 필요한 거 제대로 사 올 수 있는 거지?”엄마, 재희는 앞으로 혼자 지낼 이수의 일본 생활이 조금 걱정되었다. 이수 역시 작은 걱정 하나 없었던 건 아니었다. 다만, 이왕 결정한 거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고 앞만 보기로 했다.이수는 일주일 뒤 대한민국 서울이 아닌, 일본 오키나와에서 살아갈 예정이다.일 년짜리 워킹 홀리데이.국내 여행도 혼자 해본 적 없던 이수지만, 용기를 내어 1년 살기를 시도해 본다.충동적으로 시작된 계획이었다. 이수는 익숙한 울타리를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었었다
초인종을 앞에 두고 이수의 검지는 사시나무 떨 듯이 떨리고 있었다. 분명 주변은 한여름의 습도 가득한 진득한 날씨인데도 말이다.이수는 다른 손을 가슴 위에 올려 힘을 주었다. 손가락만큼이나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으려 애 쓰는 중이었다.후….우…….내뱉는 긴 숨의 끝은 입술을 파르르 떨게 만들었다.정확히 일 년하고도 반 년 전, 바로 이 곳에서 상상도 못할 일이 이수에게 일어났다. 그것은 묵직한 트라우마가 되어 그녀의 발목을 늘어지게 잡아 끌었다.시야를 가린 눈꺼풀 뒤로 그 날의 일이 선명하게 피어올랐다. 희뿌연 안개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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