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설아는 꿈에도 몰랐다.배서준이 자신을 공격하기 위해 이렇게까지 비열해질 줄은.무고한 강연찬을 덫에 빠뜨리다니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었다.“이걸 어쩌면 좋지...”남설아는 마치 불에 달궈진 솥 위의 개미처럼 초조하게 사무실 안을 서성였다.그녀는 누구보다도 강연찬의 성격을 잘 알았다.그런 사람이 기업 기밀을 유출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였고 분명 배서준이 꾸민 계략이다.“대표님, 우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천기준이 그녀를 달래며 말했다.“분명 방법이 있을 겁니다. 강연찬 씨를 반드시 구해낼 수 있어요.”“대표님, 지금은 침착하셔야 해요.”천기준이 진정시키려 애썼다.“우선은 증거를 찾아야 합니다. 그분의 결백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요.”남설아가 마음을 졸이고 있을 때, 송우민이 급히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남설아! 강연찬 잡혀갔다고 들었어. 무슨 일이야?!”들어서자마자 다급하게 물었다.“다 배서준 그 비열한 놈이 한 짓이야!”남설아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날 무너뜨리겠다고 선배까지 끌어들였어. 기업 기밀 유출 혐의로 덮어씌운 거야. 진짜 너무 뻔뻔하지 않아?!”“그 자식, 도대체 어디까지 가려는 거야?!”송우민도 참지 못하고 분노했다.“가자. 당장 경찰서로 가서 따져보자. 배서준 그 자식, 자기가 진짜 법 위에라도 있는 줄 아나 본데?”송우민은 말하자마자 남설아의 손을 잡고 나가려 했다.하지만 남설아는 걸음을 멈췄다.“잠깐만.”그녀가 조용히 말했다.“지금 당장 달려가는 건 좋지 않아. 그럼 배서준만 신나게 해주는 꼴이야.”“그럼 어쩌자는 거야?”송우민이 물었다.“강연찬이 억울하게 잡혀 있는데 그냥 보고만 있어?”“그럴 순 없지.”남설아는 단호하게 말했다.“하지만 우리 쪽에서 먼저 증거를 찾아야 해. 선배가 억울하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를.”“증거라니... 어디서 그런 걸 찾는다는 건데?”송우민은 고개를 저었다.“배서준 그 여우가 얼마나 치밀한데. 흔적 하나 남기지 않았을 거야.
“말했잖아요, 전 그런 일 한 적 없다고요!”강연찬의 목소리가 높아졌다.“지금 이건 명백한 조작이에요!”“강연찬 씨, 진정하세요.”형사가 말했다.“저희는 절차에 따라 조사 중입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전 제 변호사를 부르겠습니다.”강연찬은 단호하게 말했다.“변호사 도착 전까진 어떤 질문에도 답하지 않겠습니다.”강연찬의 강경한 태도에 경찰은 더 이상 묻지 못하고 그를 임시 유치장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그 시각, 남설아는 경찰서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어 불안감은 점점 커져갔다.혹시나 강연찬이 억울한 대우를 받고 있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대표님, 너무 걱정 마세요.”곁에 있던 천기준이 위로하듯 말했다.“강연찬 씨는 운도 따르는 분이잖아요. 분명 괜찮으실 겁니다.”“그랬으면 좋겠어요.”남설아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제발 큰 고통은 안 받았으면 좋겠어요.”그때, 송우민이 급히 걸어왔다.“남설아!”그가 말했다.“강연찬 결백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 찾았어.”“정말?! 너무 잘됐네!”남설아는 눈을 반짝이며 외쳤다.“어디 있어? 얼른 보여줘!”송우민은 준비해온 서류를 그녀에게 건넸다.문서를 받은 남설아는 꼼꼼히 읽기 시작했다.“이건...!”남설아의 눈빛이 확 달라졌다.“이게 바로 선배의 결백을 입증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야!”“맞아.”송우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 서류만 있으면 경찰에 정식으로 석방 요청할 수 있어.”“잘됐다!”남설아는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지금 바로 가자.”그렇게 두 사람은 그 증거를 들고 사건을 담당한 형사를 찾아갔다.“형사님, 이게 강연찬 씨의 결백을 증명하는 증거입니다.”남설아가 단호하게 말했다.“지금 당장 풀어주세요.”형사는 서류를 받아 꼼꼼히 읽어보았다.하지만 그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이게... 이게 어떻게...”형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이 자료 어디서 나신 겁니까?”
남설아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국수를 강연찬 앞에 놓아주고 그가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었다.“천천히 먹어. 데일라.”부드럽게 건네는 말투는 꼭 다정한 아내 같았다.“응.”강연찬은 국수를 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설아야, 네가 끓인 국수 진짜 맛있다.”“맛있으면 더 먹어. 앞으로 매일 끓여줄게.”남설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좋지.”강연찬은 고개를 들어 남설아를 바라봤다. 눈빛엔 깊은 애정이 담겨 있었다.“그럼 약속한 거다.”강연찬의 시선을 받자 남설아는 조금 부끄러워진 듯 고개를 숙이고 작게 말했다.“누가 선배랑 약속한대?”“하하하.”강연찬은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렸다.“넌 여전히 말과 마음이 다르다니까.”볼이 살짝 붉어지며 남설아는 강연찬을 째려보며 말했다.“국수나 어서 먹어. 이러다 식겠어.”“알겠어, 알겠어. 명령대로 하겠습니다.”강연찬은 웃으며 다시 고개를 숙이고 국수를 먹기 시작했다.“큼큼.”그때, 송우민이 일부러 두어 번 헛기침을 하며 둘 사이의 달달한 분위기를 깼다.“남설아,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남설아는 정신을 가다듬고 고개를 끄덕였다.“알아. 이미 천 비서님한테 비밀리에 연락해서 배서준이랑 서유라의 움직임을 감시하게 했어.”“천 비서?”강연찬이 고개를 들어 물었다.“그 사람 믿을 수 있는 거야?”“걱정 마, 선배.”남설아는 단호하게 말했다.“천 비서님은 예전엔 배서준 쪽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우리 편이에요. 본인이 뭘 해야 할지 잘 알고 있어..”“그렇다면 다행이네.”강연찬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도 조심해야 해. 배서준은 무슨 짓을 해도 이상하지 않은 사람이니까.”“응.”남설아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그 점은 잘 알고 있어.”“참, 남설아.”송우민이 갑자기 말을 꺼냈다.“방금 소식이 들어왔는데 배서준이 서유라를 데리고 회사를 빠져나가서 어떤 프라이빗 리조트로 갔다고 해. 서유라 상태가 안 좋아져서 요양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그래서?”남설아가 물었다.“내가 생각한 건 그 양아치들이 숨어 있는 곳을 몰래 장악한 다음, 경찰에 익명으로 제보해서 전부 한꺼번에 잡히게 만드는 거야.”강연찬은 행동이 빨랐다.증거를 확보하자마자 곧장 경찰에 넘겼고 경찰은 즉시 출동해 그 일당을 전원 검거했다.조사 과정에서 경찰은 그들 계좌에 최근 거액의 입금 내역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경로를 추적한 끝에 그 돈이 서유라의 동생 서도현의 계좌에서 송금된 것임이 밝혀졌다.이 소식을 들은 모두가 충격을 받았고 송우민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서도현 그 멍청한 놈, 지난번 당한 걸로는 부족했나 보지. 이번엔 확실하게 값을 치르게 해주지.”그의 눈엔 분노가 타올랐다.지금이라도 당장 모든 걸 불태워버릴 듯한 기세였다.“우민아, 진정해.”남설아가 그의 손을 잡고 진정시키려 했다.“너 화난 거 나도 알아. 나도 마찬가지니까. 하지만 지금은 서유라와 정면으로 부딪힐 때가 아니야.”“하지만...”송우민이 뭔가 말하려는데 남설아가 먼저 말을 이었다.“네가 날 위해 복수하고 싶어 하는 거 알아요. 하지만 지금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건 배서준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배건 그룹을 장악하는 거야.”남설아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호하고 흔들림 없는 힘이 실려 있었다.“그렇게 해야만 우리가 수수의 복수를 할 수 있고 서유라와 서도현에게도 제대로 된 대가를 치르게 만들 수 있어.”“그럼 그 서도현이라는 놈은 그냥 이렇게 놔두자는 거야?”송우민은 여전히 쉽게 수긍하지 못한 표정이었다.“그럴 리 없지.”남설아는 고개를 저었다.“그건 경찰에 맡길 거야. 법적으로 죗값을 받게 만들 거고 난 그 과정을 끝까지 지켜볼 거야.”남설아의 눈빛에 다시금 날이 섰다.“절대로 서도현이 빠져나가게 두지 않을 거야. 끝까지 추적할 거야. 반드시 법정에 세우고야 말 거라고.”“이게 지금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이야. 순간의 감정에 휘둘려 계획 전체를 망칠 순 없잖아.”“알겠어.”송우민은 마지못해 한숨을 쉬고 고
“과거 일은 이제 그만 잊자.”배서준이 말했다.“우린 앞으로 나아가야 해.”“하지만 자꾸만 생각나.”서유라의 목소리엔 억울함과 미련이 가득 담겨 있었다.“그때 내가 떠나지 않았다면 지금 네 곁에 있는 사람은 분명 나였을 거야. 설아 씨가 아니라.”“유라야...”배서준은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말을 잇지 못했다.“예전엔 이런 생각도 했었어. 우리가 그때 헤어지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세상엔 만약 같은 건 없잖아. 놓쳐버린 건 그냥 놓쳐버린 거지.”“아니야, 우린 아직 끝난 게 아니야.”배서준이 갑자기 단호하게 말했다.“지금 이렇게 다시 함께하고 있잖아.”“그렇지만 우리 사이엔 너무 많은 게 가로막고 있어.”서유라가 조용히 말했다.“너무 많은 사람과 일들이 있었잖아. 우리가 과연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까?”“왜 안 된다는 거야?”배서준은 반문했다.“우리가 서로를 여전히 사랑한다면 그 어떤 것도 우릴 막을 수 없어.”“하지만 설아 씨는...”서유라는 말을 흐렸다.“그 여자는 우리 사이를 막는 존재가 될 수 없어.”배서준의 눈빛이 순식간에 날카롭게 변했다.“모든 건 내가 처리할 테니까.”강연찬의 부상은 모두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고 남설아는 한시도 곁을 떠나지 않고 병실을 지켰다.혹시 작은 이상이라도 생길까 눈을 떼지 못했다.다행히도 강연찬은 체력이 좋아 며칠간의 휴식 끝에 일상적인 활동이 가능해졌다.그날, 강연찬은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 앉아 문서를 들여다보며 잔뜩 인상을 쓰고 있었다.그때 수프를 들고 방으로 들어온 남설아가 그의 얼굴을 보고 다가가 물었다.“선배, 무슨 일 있어? 회사에 문제 생겼어?”“배건 그룹의 재무제표에 좀 이상한 점이 보여.”강연찬은 문서를 남설아에게 건넸다.“여기, 그리고 여기. 명백한 허점이 있어.”남설아는 문서를 받아 들고 꼼꼼히 살펴봤다.볼수록 놀라움이 커졌다.이 허점들은 누가 의도적으로 만든 게 분명했고 금액 또한 심각할 정도로 컸다.배건 그룹이 휘청일 정도였
“네, 송 대표님!”모두가 힘찬 목소리로 외쳤고 회의실 안은 결의에 찬 열기로 가득 찼다.송우민의 지휘 아래 남설아의 회사는 굶주린 늑대처럼 배건 그룹의 시장을 거침없이 잠식해 들어갔다.배건 그룹의 주가는 연일 하락했고 시가총액은 크게 줄어들며 내부 분위기는 극도로 혼란스러워졌다.흩어진 조직력에 동요하는 임직원들 사이로 불만이 번졌고 결국 주주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배서준에게 줄줄이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배 대표님, 도대체 언제 돌아오실 겁니까?”한 주주는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지금 회사 상황이 완전히 개판이에요! 더 늦으면 정말 끝장납니다!”“맞아요, 대표님! 이대로 가다간 정말 회복 불가능합니다!”또 다른 주주도 강하게 덧붙였다.“지금 당장 돌아와서 진두지휘하셔야 합니다!”끊임없이 쏟아지는 전화에 배서준은 머리를 싸매고 이마를 짚었다.그 역시 당장 회사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문제는 서유라였다.그녀는 절대 그를 보내려 하지 않았다.“서준아, 가지 마...”서유라는 창백한 얼굴로 침대에 누운 채 배서준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나 너무 힘들어. 옆에 있어 줘야 버틸 수 있어.”“유라야, 네가 힘든 거 알아. 하지만 회사도 지금...”배서준은 난처한 얼굴로 말을 흐렸다.“몰라! 나한테 중요한 건 네가 곁에 있어 주는 거야! 너 없이 나는 단 하루도 못 버텨!”서유라는 울먹이며 소리를 질렀다.“그런 말 하지 마.”배서준은 가슴 아프다는 듯 그녀를 껴안았다.“널 내버려 두고 갈 수 없지. 하지만 회사 쪽 상황도 정말 더는 미룰 수가 없어.”“결국 날 버릴 거지? 날 두고 가겠다는 거잖아!”서유라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떼를 쓰며 말했다.“내 몸은 누가 챙겨? 나 혼자선 아무것도 못 해... 넌 가면 안 돼!”“유라야, 그러지 마.”결국 배서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좋아, 당분간은 여기 있을게. 회사 일은 전화랑 화상회의로 처리할 테니까 괜찮지?”“진짜지?”서유라는 눈물로 젖은 눈을 들
“서준아, 제발 이번만은 내 말 들어줘, 응? 그냥 나를 위해서 우리 미래를 위해서라고 생각하고... 잠깐이라도 푹 쉬면 안 돼?”서유라는 눈물을 글썽이며 배서준을 올려다봤다.그 애처로운 눈빛에 배서준의 마음도 조금씩 흔들렸다.“알겠어, 네 말대로 할게.”결국 배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서유라는 곧장 환하게 웃으며 배서준을 꼭 껴안았다.“역시 나를 제일 아껴주는 사람은 서준이 너야.”배서준은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안아주었지만 눈빛은 복잡하기만 했다.회사의 상황은 이미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남설아와 송우민의 공격은 날이 갈수록 거세졌고 배건 그룹의 주가는 연일 하락 중이었다.시장은 빠르게 무너지고 있었고 내부는 불안과 불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이대로라면 배건 그룹은 정말 그의 손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서유라의 모습을 보면 차마 그녀 곁을 떠날 수가 없었다.배서준의 가슴속은 끝없는 갈등과 번민으로 뒤엉켰고 도대체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 알 수 없었다.그때, 그의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이번엔 천기준이었다.배서준은 잠시 고민하다가 전화를 받았다.“배 대표님, 도대체 언제 돌아오실 겁니까?”천기준의 목소리엔 조급함과 절박함이 가득 묻어났다.“지금 회사는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에요. 주주들도 다 대표님만 기다리고 있습니다!”“나, 나도 지금...”배서준이 무언가 말하려는 순간, 옆에 있던 서유라가 손을 뻗어 전화기를 낚아챘다.한편, 천기준은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통화 종료’ 소리에 분노를 억누르지 못했다.그는 핸드폰을 책상 위에 내리찍을 듯 내려놓으며 이를 악물었다.“이 서유라란 여자는 정말 재앙이라니까!”천기준은 이를 갈듯 말했다.“배 대표님도 왜 저 여자 말만 듣는 건지... 지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도 모르나?”곁에 있던 다른 비서도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천 비서님, 우리 이대로 괜찮을까요? 주주들한테 뭐라고 설명해야 하죠?”“설명할 방법이 어딨어요...”천기준은 허탈하게 웃으며 고
“네.”남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명심해요. 이 일은 최대한 시끄럽게 만들어요. 배서준이 모두의 표적이 되도록 말이에요.”“알겠습니다, 대표님. 바로 처리하겠습니다.”천기준은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떠났다.남설아는 사무실에 홀로 남아 싸늘한 눈빛으로 창밖을 바라봤다.‘배서준, 당신이 의리를 저버렸으니 나도 더는 자비를 베풀지 않을 거야.’곧이어 배서준이 리조트에서 서유라와 밀회를 즐기고 있다는 소문이 각종 언론을 통해 퍼지기 시작했다.여론은 순식간에 들끓었고 배서준의 이미지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무능하다’, ‘책임감 없다’는 비난이 쏟아졌다.“배서준, 진짜 너무하네!”“회사는 지금 무너지고 있는데 밖에서 여자나 만나고 앉았어?”“이런 사람을 어떻게 대표 자리에 앉혔는지 이해가 안 가.”“저 사람한테 회사를 맡긴 게 큰 실수였지.”“이참에 그냥 물러나게 해야 돼!”결국 회사는 긴급 주주총회를 소집했다.얼마 전, 배서준이 자신의 자금을 담보로 위기를 넘기겠다고 한 뒤 감쪽같이 사라졌고,오히려 남설아가 한발 물러나 시간을 벌어준 덕분에 간신히 버텨온 상황이었다.하지만 정작 의사결정을 할 실권자는 자리에 없고 남은 이사들은 완전한 권한도 없는 상태라 회사 운영은 갈수록 마비되어가고 있었다.거기에 이번 스캔들까지 터지자 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됐다.“이게 지금 어느 땐데 여자를 챙겨?! 본인 위치도 잊었나?!”“천 비서님, 배 대표님 떠나기 전에 천 비서님한텐 아무 말도 안 하고 갔어요?”천기준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사실 함께 일한 지 오래됐지만 배서준이 모든 걸 공유하진 않았다.“지금 당장 리조트로 가서 배 대표님 데려와요!”한 이사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어떻게든 끌고 와야 해요. 회사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요!”“네, 이사님. 바로 다녀오겠습니다.”천기준은 피곤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답했다.‘정신적으로 남 대표님한테 매일 시달리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그 두 사람을 만나러 내가 가야 한다고? 이게 대체 무
서유라는 싸움에서 진 사람처럼 기가 죽고 초라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배서준의 이미지도 사람들 눈에 한순간에 추락했고 그는 무척이나 난처하고 부끄러웠다.그는 점점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기 시작했다.만약 그때 남설아와 이혼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이렇게 초라해지진 않았을 텐데 말이다.연회가 끝난 뒤 배서준과 서유라는 함께 차에 올랐다.“서준아, 미안해.”서유라는 고개를 숙인 채 애처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오늘 내가 괜히 설아 씨한테 차를 우리라고 제안했어. 설아 씨가 그렇게까지 잘할 줄은 몰랐어...”“너 잘못 아니야.”배서준은 그녀의 말을 끊으며 피곤한 어조로 말했다.“남설아가 괜히 잘난 척을 한 거지.”그는 서유라가 마음 아파하는 게 안쓰러워 모든 잘못을 남설아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그래도 난 아직도 미안해.”서유라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다.“내가 너를 많은 사람 앞에서 망신당하게 했잖아.”“바보야, 네 탓이라고 한 적 없어.”배서준은 그녀의 등을 다정하게 토닥였다.“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응.”서유라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배서준의 품에 안겼다.하지만 배서준의 마음은 딴 데로 향하고 있었다.그는 과거의 남설아를 떠올리고 있었다.한때 그녀는 단지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매일 자신과 아이만 바라보며 살아가던 그녀가 도대체 언제 다도를 배운 건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그 다도 실력이 이 정도라니, 서 회장 부부가 칭찬을 아끼지 않을 정도였다.‘지금 저 여자가 내가 알던 남설아가 맞는 건가?’그는 마음속 깊이 혼란스러웠다.남설아는 분명 변해 있었다. 더 이상 자신이 쉽게 이해하거나 조종할 수 있는 여자가 아니었다.서유라는 배서준의 시선이 자꾸만 허공으로 향하는 걸 느끼고는 그가 또다시 남설아를 생각하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그녀의 마음속에 위험 신호가 울렸다. 그녀는 반드시 이 둘의 접촉을 막아야만 했다.‘남설아, 가만 안 둬. 네가 어떻게 되나 두고 보자.’서유라는 속으로 이를 악물며 다짐했다.그녀의
“서 회장님, 사모님, 과찬이세요.”남설아가 겸손하게 말했다.“그냥 가볍게 내린 것뿐이에요.”“남 대표 너무 겸손하시네.”서기찬이 말했다.“이건 아무렇게나 내려서 나올 맛이 아니야. 확실히 기본기와 실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지.”“그러게요, 설아 씨.”차혜미도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차 내리는 솜씨가 정말 대단해요. 제가 제자로 들어가고 싶어질 지경이에요.”“사모님, 또 농담하시네요.”남설아가 고개를 숙이며 미소 지었다.“이런 사소한 재주가 어찌 사모님의 눈에 찰 수 있겠어요?”“설아 씨가 너무 겸손하신 거예요.”차혜미는 찻잔을 바라보며 더욱 남설아에게 호감을 드러냈다.“차를 이렇게 잘 내리시는 걸 보니 정말 감탄밖에 안 나와요.”“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모님.”남설아는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서유라는 마음속에 질투심이 더욱 불타올랐다.남설아가 이렇게까지 다도에 능할 줄은 몰랐다.게다가 자신이 의도한 모욕은커녕 오히려 남설아는 그 자리에서 주목을 한 몸에 받으며 칭찬을 독차지하고 있었다.서유라는 쉽게 물러설 수 없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설아 씨의 다도 실력 정말 대단하네. 그런데 듣기로 다도도 여러 유파가 있다고 하던데 설아 씨는 어느 쪽이야?”그녀는 남설아의 다도를 비하하려는 의도로 체계 없는 아마추어 수준이라고 암시하고자 했다.“특정 유파를 따로 배우진 않았어.”남설아는 침착하게 말했다.“그저 내가 좋아하는 방식대로, 내 느낌에 따라 우려내는 것뿐이야.”“그래?”서유라는 다시 비웃듯 말했다.“그럼 설아 씨만의 파가 생긴 거네? 대단해.”그녀는 남설아만의 파라는 말을 의도적으로 강조하며 남설아의 다도가 비전문적이라는 뉘앙스를 풍겼다.“유라 씨, 또 농담하네.”남설아는 작게 웃으며 조롱이 섞인 말투로 답했다.“나는 그냥 취미로 하는 아마추어일 뿐이야. 감히 한 유파라니.”“남 대표님 너무 겸손하세요.”차혜미가 곧장 나섰다. 그녀는 서유라의 말에 담긴 악의를 알아차리고
“고마워.”남설아가 말했다.“설아 씨, 예전에 서준이 곁에 있을 때도 이렇게 늘 꾸미고 다녔어?”서유라가 불쑥 물었다. 말투에는 살짝 떠보는 뉘앙스가 묻어 있었다.그녀는 일부러 남설아가 한때 배서준의 곁에 있었던 시절을 언급하며 남설아의 과거를 상기하려 했다.남설아는 서유라의 의도를 바로 알아차렸다. 그녀는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유라 씨, 농담이 지나치네. 그때의 나는 그저 서준 씨의 아내로서 마땅히 해야 할 역할을 했을 뿐이야.”“그래?”서유라는 다소 우쭐한 말투로 말했다.“나는 설아 씨가 차를 따라주고 시중드는 데 능한 줄 알았어. 내조를 하는 데는 정성이 필요하잖아?”그녀는 차를 따라주고 시중든다는 것을 일부러 강조해서 말하며 남설아를 모욕하려 했다.“유라 씨 말이 맞아. 내조를 하는 데는 정말 정성이 필요해.”남설아는 차분하게 말했다.“하지만 나는 그런 것보다는 사업을 하는 데 더 능한 편이야.”“그래?”서유라는 비꼬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그럼 오늘 설아 씨가 잘해야겠네. 여기 모인 분들 다 업계 내로라하는 분들이니까 실수라도 하면 큰일이겠어.”“걱정해줘서 고마워, 유라 씨.”남설아는 작게 미소 지으며 빈정거림이 담긴 말투로 답했다.“하지만 나는 유라 씨를 실망하게 할 일은 없을 거야.”“그래야지.”서유라는 속으로 비웃으며 남설아가 뭘 할 수 있을지 지켜보겠다는 듯 말했다.“설아 씨, 차 따르는 데 능하다니까 오늘 여기서 차 한 번 내려보지?”서유라가 제안했다. 말투에는 노골적인 도발이 묻어 있었다.“여기 좋은 차도 있고 멋진 다기 세트도 있어. 설아 씨의 손재주로는 딱 어울릴 것 같네.”그녀는 손재주라는 말을 다시금 강조하여 말하며 남설아를 하찮은 시중 드는 사람으로 몰아가려 했다.하지만 남설아는 그런 의도를 바로 눈치챘음에도 전혀 화내지 않았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도전을 받아들였다.“좋아, 유라 씨가 이렇게 운치 있는 제안을 하니 한 번 해볼게.”남설아는 여유 있는 말투로 대답했다.“다만 한 가
연회장에는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손님들은 잔을 부딪치며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수정 샹들리에는 부드러운 빛을 뿜어내며 연회장을 황금빛으로 물들였다.남설아와 강연찬이 연회장 중앙에 모습을 드러냈고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은 뒤 춤을 추기 시작했다.강연찬은 부드럽게 남설아의 허리를 감싸 안고 그녀를 이끌며 연회장에서 빙그르르 돌았다.남설아의 스텝은 가볍고 우아했으며 마치 나비가 춤을 추고 있는 듯했다.그녀는 연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드레스 자락은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 살랑거리며 활짝 핀 제비꽃처럼 보였다.두 사람의 호흡은 놀라울 만큼 잘 맞았고 모든 동작에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었다.그들의 춤은 모든 이들의 시선을 끌었고 단숨에 연회장의 중심이 되었다.조금 떨어진 곳에서 배서준은 남설아의 모습을 눈을 떼지 못한 채 바라보고 있었다.그는 강연찬의 품에서 행복한 미소를 띠며 춤을 추는 남설아를 바라보며 설명하기 힘든 질투와 상실감에 사로잡혔다.“서준아, 뭘 그렇게 보고 있어?”서유라의 목소리가 그의 귀에 들려오며 배서준은 생각에서 깨어났다.그녀는 배서준의 달라진 표정을 눈치채고 불쾌함을 느꼈다.“아무것도 아니야.”배서준은 정신을 차리고 감정을 감추려 애썼다.“서준아, 혹시 아직도 남설아 생각하고 있는 거야?”서유라는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말투에는 질투심이 스며 있었다.“아니야.”배서준은 날카롭게 부인했다.“서준아, 나한테 거짓말하지 마.”서유라는 약간 서운한 듯한 말투로 말했다.“네 마음속에 아직 그 여자가 있는 거 알아.”“유라야, 터무니없는 소리 하지 마.”배서준의 말투에는 짜증이 섞여 있었다.“터무니없는 소리 아니야.”서유라는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하며 말했다.“서준아, 혹시 후회하는 거야? 나랑 있는 거 후회해?”“유라야, 그런 거 아니야.”배서준의 말투가 조금 누그러들며 말했다.“후회하는 건 아니야. 그냥... 머릿속이 좀 복잡해.”그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고 무척 심란했다.“서준
“나는 그냥 여자는 가정에 더 집중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유라는 약간 우쭐한 듯한 말투로 말했다.“결국 남편 뒷바라지하고 아이 잘 키우는 게 여자의 본분이잖아.”“유라 씨 생각은 꽤 보수적이네.”남설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그래? 그럼 설아 씨는 여자가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보는 거야?”서유라는 다소 공격적인 어조로 물었다.“여자는 자립심을 가지고 자기 일과 꿈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해.”남설아는 단호하게 말했다.“남자에게 의지하거나 남자의 부속품이 되어서는 안 되지.”“설아 씨 생각 참 특이하네.”서유라는 차가운 비웃음을 지었다.“근데 나는 여자가 너무 강한 것도 별로라고 생각하거든.”“강한 게 나쁘고 약한 건 좋은 건가?”남설아가 되물었다.“유라 씨는 자신이 어떤 쪽이라고 생각해?”“나는...”서유라는 순간 말문이 막혀버렸다.“그만해, 유라야. 그만 말해.”배서준이 더는 보고 있을 수 없다는 듯 끼어들었다.“사람마다 각자의 선택이 있는 거고 우리는 그걸 존중해야 해.”“서준아, 나는 그냥...”서유라는 뭔가 더 말하려 했지만, 배서준이 말을 잘랐다.“됐어, 그만하자.”배서준은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우리 저쪽 가보자.”서유라는 배서준이 화가 난 걸 눈치채고 입을 닫았다.그녀는 남설아를 노려보듯 쏘아보더니 배서준을 따라 자리를 떴다.남설아는 그런 서유라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비웃음이 섞인 미소를 지었다.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 서 회장 부부와의 대화에 집중했다.“서 회장님, 사모님, 제가 하나 제안해 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혹시 들어보실 의향 있으신가요?”남설아가 말했다.“오? 무슨 제안인가요?”서기찬이 흥미롭게 물었다.“저는 두 분과 함께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습니다.”남설아는 차분하고 자신감 있게 말했다.“그 프로젝트는...”그녀는 자세하게 자신의 구상을 설명했고 서 회장 부부는 그 이야기에 큰 관심을 보였다.“남 대표님의 아이디
남설아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녀의 시선이 배서준과 서유라를 한번 훑고 지나갔다.“정말 우연이네.”“배 대표님, 요즘 회사는 잘 돌아가시죠?”강연찬이 배서준을 바라보며 물었다.“그럭저럭요.”배서준은 차가운 말투로 대답했다.“다행이네요.”강연찬은 짧게 웃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주변 공기가 어색해졌다.“자, 다 같이 한잔하시죠.”서기찬이 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앞으로의 좋은 협력을 위해!”“건배!”사람들은 일제히 잔을 들어 마셨다.파티는 계속 이어졌고 남설아와 강연찬은 단연 눈에 띄는 존재였다.많은 이들이 다가와 인사를 나누고 함께 협력할 기회를 엿보려 했다.배서준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혔다.“서준아, 무슨 생각해?”서유라의 목소리가 그의 생각을 깨뜨렸다.“아무것도 아니야.”배서준은 정신을 차리고 어색하게 웃었다.“우리 저쪽도 좀 둘러보자.”“응.”서유라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배서준이 도망가기라도 하는 듯 배서준의 팔을 꼭 끼고 있었다.두 사람은 사람들 사이를 지나다녔지만 끝내 이 열기 속에 어울리지는 못했다.배서준은 이미 마음이 떠 있었고 시선은 자꾸만 남설아 쪽으로 향했다.반면 서유라는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주변의 시선과 부러움을 즐기며 자부심에 젖어 있었다.남설아는 능숙하게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뛰어난 사교 능력과 비즈니스 감각을 드러냈고 강연찬은 항상 그녀 곁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서유라는 그런 광경을 보며 더욱 만족스러워했다.배서준의 팔을 끼고 있는 자신이 마치 이 파티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하지만 차혜미가 자신에게는 형식적인 인사만 건네고 남설아에게는 유난히 친근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고 그녀는 불쾌한 기분이 들고 질투심이 일었다.“사모님, 남설아 씨랑 오래 알고 지내셨어요?”서유라는 조심스레 떠보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네, 설아 씨와는 좀 됐죠.”차혜미는 예의를 갖춰 대답했지만 더 이상 깊이 말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설
차 안으로 돌아온 서유라는 여전히 드레스를 고른 기쁨에 들떠 있었다.“서준아, 우리 이번 파티에서 가장 눈에 띄는 커플이 되지 않을까?”그녀는 기대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그럴 거야.”배서준이 대답했지만, 말투에는 영혼이 없었다.“다행이네.”서유라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서준아, 네가 이렇게 같이 와줘서 정말 좋아.”그녀는 배서준의 어깨에 기대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배서준은 말없이 그녀의 등을 가볍게 토닥였다.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계속 남설아의 모습이 떠올랐고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파티 당일,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행사장은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고 분위기 또한 고급스럽고 활기찼다.남설아와 강연찬이 모습을 드러내자 주변에서 작은 술렁임이 일었다.남설아는 연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단정하면서도 기품 있는 자태를 뽐냈고 강연찬은 깔끔한 검은색 정장을 입고 여유롭고 세련된 분위기를 풍겼다.두 사람은 함께 서 있는 것만으로도 시선을 끌었고 자연스럽게 주목받는 존재가 되었다.“남 대표님, 강 대표님, 파티에 오신 걸 진심으로 환영합니다.”서 회장 부부가 반갑게 맞이했다.“서 회장님, 사모님, 축하드립니다.”남설아가 미소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남 대표님께서 참석해 주시다니 저희가 정말 영광이에요.”서 회장의 부인인 차혜미가 남설아의 손을 잡으며 따뜻하게 말했다.“별말씀을요, 사모님.”남설아가 정중하게 답했다.“이분이 바로 강 대표님이시죠?”서기찬이 강연찬을 바라보며 물었다.“네, 서 회장님.”남설아가 소개했다.“저의 비즈니스 파트너이자 좋은 친구인 강연찬 대표님이에요.”“강 대표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서기찬이 손을 내밀었다.“반갑습니다, 서 회장님.”강연찬은 예의를 갖춰 악수했다.“두 분 안으로 들어가시죠. 자리를 미리 준비해두었어요.”서기찬이 손짓했다.“감사합니다.”남설아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세 사람은 함께 연회장 안으로 들어갔다.조금 떨어진 곳에 배서준과 서유라도 행사장
배서준은 서유라가 들뜬 모습으로 웃고 있는 걸 보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괜히 불편하고 답답했다.그는 말없이 남성복 코너로 가서 대충 눈에 들어오는 정장을 집어 들었다.“손님, 정말 안목이 좋으시네요. 이건 저희 매장에서 가장 최근에 들어온 신상이에요. 이탈리아산 원단으로 수제 재단된 제품이라 고객님 체형에 정말 잘 어울리실 거예요.”점원이 열정적으로 설명했다.배서준은 아무 말 없이 검은색 정장을 들고 탈의실로 들어갔다.정장을 갈아입고 거울을 바라본 그는 문득 거울 속 자기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저 사람이 정말 내가 맞아?’한때 야망으로 가득하고 세상을 거머쥘 듯 당당했던 배서준은 이제는 서유라의 기대와 기준에 맞춰 움직이는 꼭두각시처럼 보였다.“서준아, 다 입었어?”서유라가 탈의실 밖에서 재촉했다.“응.”배서준은 문을 열고 나왔다.“와, 서준아, 너 이 정장 입으니까 진짜 멋있다.”서유라는 마치 영화 속 배우를 보는 듯 눈에 감탄이 가득했다.“진짜 영화배우 같아.”배서준은 가볍게 웃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서유라가 이런 말들을 듣는 걸 좋아한다는 걸 알지만 지금은 그런 말을 할 기분이 아니었다.“이걸로 할게.”배서준은 피곤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때, 매장 입구 쪽에서 구두 소리가 들려왔다.남설아와 강연찬이 매장 안으로 들어왔다.눈이 마주친 순간, 공기가 얼어붙는 듯했다.배서준의 시선은 남설아에게 고정되었고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남설아는 연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단정하면서도 우아한 분위기를 풍겼다.드레스는 그녀의 몸매를 자연스럽게 살려주었고 살짝 올려 묶은 머리 사이로 드러난 목선과 쇄골은 고급스러움을 더했다.그녀는 마치 한 송이 활짝 핀 제비꽃 같았다. 요란하지 않지만, 눈에 띄는 아름다움이었다.배서준의 가슴이 순간 쿵 하고 내려앉았다.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는 예전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그녀의 당당함과 여유는 서유라가 따라올 수 없는 것이었다.“강 대표님과 설아 씨도 드레스 고르러
“그날 같이 가자.”“응.”강연찬은 고개를 끄덕였다.한편, 배서준 역시 서 회장 부부가 주최하는 파티의 초대장을 받았다.그는 원래 서유라와 함께 참석해 둘의 관계와 입지를 보여줄 생각이었다.“유라야, 서 회장 부부가 비즈니스 파티를 연대. 우리 둘 다 초대했어.”배서준은 초대장을 들고 서유라에게 말했다.“같이 갈래?”“당연히 가야지.”서유라는 웃으며 말했다.“이런 기회에 좋은 인맥도 많이 만들 수 있잖아.”“그래.”배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같이 가자.”“응.”서유라가 고개를 끄덕였다.“서준아. 넌 정말 다정해.”서유라는 배서준의 품에 기대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배서준은 남설아도 그 파티에 참석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음속에 복잡한 감정이 피어올랐다.“뭐? 남설아도 간다고?”배서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네, 대표님.”천기준이 답했다.“서 회장 부부가 남 대표님도 초대했답니다.”배서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표정이 어두워졌다.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남설아가 강연찬과 함께 파티에 나타나는 모습을 상상하자 괜히 기분이 불편해졌다.“서준아, 무슨 일 있어?”서유라는 그의 이상한 기색을 눈치채고 물었다.“아니야.”배서준은 고개를 저었다.“그냥, 남설아가 올 줄은 몰랐어.”“오면 어때.”서유라가 말했다.“우리가 남설아를 무서워할 이유는 없잖아.”“무서워서 그런 게 아니야.”배서준이 대답했다.“그냥...”그는 어떻게 얘기했으면 좋을지 몰랐다. 그저 가슴이 무척 답답했다.“됐어, 너무 신경 쓰지 마.”서유라가 달래듯 말했다.“우리 둘이 함께 가서 보여주자. 우리가 얼마나 잘 지내고 있는지.”“그래, 그게 좋겠다.”배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유라야, 네가 있어서 정말 든든해.”서유라는 배서준과 함께 파티에 참석하겠다고 먼저 제안했다.“서준아, 이런 자리에는 내가 같이 가야지.”그녀는 부드럽게 말하며 따뜻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네 연인이니까 함께 이겨내야 할 책임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