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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화

작가: 소율
예상밖의 질문이었지만, 소복자는 얼른 대답했다.

"강 상궁님이라면 조금 전 귀비마마께서 부르셔서 익곤궁으로 가셨습니다."

황제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소복자는 이어서 강만여가 익곤궁으로 가게 된 이유를 설명하려 했지만, 황제가 갑자기 싸늘하게 얼굴을 굳히며 날선 눈빛으로 말했다.

"내가 언제 강만여의 이름을 댔느냐?"

그제야 소복자는 자신이 황제의 기분을 거슬렀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얼른 바닥에 엎드렸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폐하. 소인이 함부로 넘겨짚었습니다. 용서해 주시옵소서!"

손량언도 상황을 알아차리고 재빨리 황제가 나서기 전에 소복자를 걷어차며 말했다.

"멍청한 놈! 네가 감히 황제 폐하의 어심을 함부로 짐작해? 내가 너에게 그렇게 가르쳤더냐!"

"사부님,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황제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싸늘하게 쳐다보다가 침전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짜증으로 가득했다.

'이름을 말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누굴 말하는 줄 알고!'

손량언은 황제가 소복자를 벌하지 않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겉으론 엄하게 다시 꾸짖었다.

"멍하니 뭐하고 있어! 얼른 따라가서 시중들지 않고!"

그제야 소복자는 정신을 차리고 허리를 낮추어 황제의 뒤를 따랐다. 하지만 막 문턱을 넘자 그가 뒤를 돌아보았다.

놀란 소복자는 급히 뒤로 물러서려다가 문턱에 걸려 넘어졌고 쿵하고 요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뒤로 나자빠졌다.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주변에 있던 궁녀들은 웃음을 참느나 입술을 꽉 깨물었고 손량언은 머리를 짚었다.

"쓸모없는 놈."

황제가 그 한심한 모습에 작게 중얼거리며 넘어진 소복자를 무심히 넘어 밖으로 향했다.

"익곤궁으로 간다!"

손량언은 순간 멍한 얼굴이 되었지만, 곧 정신을 차리곤 궁인들을 향해 손에 쥐고 있던 부채를 휘두르며 말했다.

"가마를 대령하라! 황제 폐하께서 익곤궁으로 행차하신다!"

한편, 익곤궁 난귀비(兰贵妃)는 따뜻한 온실 안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작스레 한 하급 내시가 헐레벌떡 들어오면 외쳤다.

"마마! 폐하께서 이리로 오고 계신답니다!"

난귀비는 그 말에 자기도 모르게 손을 떨었고 그림을 망치게 되었다.

황제가 즉위한지 어느덧 5년이 지났지만, 황후 자리는 예전히 공석이었다.

그러나 황후가 없다고 해서 궁정을 돌보는 것은 누군가는 해야하는 일, 그녀는 스스로 자청해서 그 일들을 대신해 왔다. 모두가 그녀를 차기 황후로 봤고, 이제 아이만 회임하면 황후 자리는 그녀의 것이라 모두 입 모아 말했다.

하지만 황제는 후사를 보는 일엔 큰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일 년 내내 그가 찾아오는 횟수도 정말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리고 난귀비는 본능적으로 황제가 자신 때문에 익곤궁으로 오는 것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따뜻한 온실과 대조되는, 차디찬 눈바람이 부는 바닥에 무릎 꿇고 있는 한 인물, 강만여가 그녀의 시선에 들어왔다.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폐하께서는 도대체 무슨 생각이신 걸까?'

마음에 품었다기엔 지난 5년 동안 한 번도 은총을 베푼 적이 없었다. 하지만 싫어한다고 하기엔 이 굵은 눈보라를 뚫고 여기까지 올 이유가 없어 보였다.

지난 5년 동안, 황제가 황위에 오른 뒤에 꽤 많은 여인들이 후궁으로 들어왔다. 자연스레 매일 같이 암투가 일어났지만, 그는 단 한 번도 그 누구의 편도 서지 않았다.

그런데 강만여를 부른지 겨우 몇 시진도 지나지 않았는데, 바로 익곤궁으로 오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난귀비는 알 수 없는 황제의 태도에 당혹스러웠지만, 일단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그를 맞이하러 나갔다.

그리고 마침 그녀가 문을 나서자, 황제의 가마가 도착한 것이 보였다.

가마꾼들이 가마를 익곤궁 입구에 대었고, 황제가 손량언의 도움을 받아 가마에서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난귀비는 서둘러 앞으로 나가며 공손히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폐하, 지금 낮잠 주무실 시간 아니옵니까? 무슨 일로 찾아오셨는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자는 것도 좋지만, 오늘 침상을 준비하고 있어야 할 궁녀가 안 보여서 말이야."

황제는 에둘러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곧바로 시선을 눈밫에 무릎 꿇고 있는 강만여에게 보냈다.

눈은 그쳤지만, 바람은 예전히 거셌다. 강만여는 가지만 남은 해당화 나무 아래에 무릎을 꿇고 있었는데, 바람이 불자 우수수 눈이 그 위로 떨어졌다.

그녀는 아침 감나무 앞에 소원 빌던 모습 그대로 하얀 외투를 걸치고 있었는데, 눈밭에 있으니 유난히 더 희게 보였다. 강만여는 동상이 된 듯 눈밭에 미동도 없이 무릎 꿇고 있었다.

"어쩐지 안 보이더라니, 여기 와서 장식품 노릇 하고 있었구나."

황제가 손가락에 끼고 있던 옥반지를 돌리며 조롱했다.

난귀비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전하, 절 보러 오신게 아니셨습니까?"

황제는 대꾸도 하지 않고 물었다.

"강만여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느냐?"

난귀비는 그제야 교태 부리던 것을 멈추고 굳어진 얼굴로 답했다.

"그리 대단한 잘못은 아닙니다. 예법상 곧 출궁할 궁녀들은 모두 황후에게 고별 인사를 올려야 하는데, 자리가 공석이니 태후마마께서 제게 그 일을 일임하셨습니다."

황제가 말했다.

"그건 알고 있다. 물어본 거나 대답하거라."

난귀비는 순간 말문이 막히며 서운함이 몰려왔다.

5년이나 고생하며 내궁을 관리해왔는데, 이토록 무심한 태도라니, 아무리 정이 없다지만 너무 하다고 생각했다.

"예, 그런데 마침 강만여도 그 명단에 있어 불렀는데, 손이 서툰 것인지 차를 따르던 궁녀와 부딪혀 찻잔을 깨뜨렸지 뭡니까? 그 찻잔은 폐하께서 제 탄신일에 선물한 것이라 유독 아끼던 것이었는데... 출궁을 앞둔 몸이 아니었다면 바로 곤장이라도 쳤을 겁니다. 하지만 폐하께서 마침 오셨으니, 폐하께서 결정해주시겠습니까?"

이 말과 함께 난귀비는 조심스레 황제의 표정을 살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엔 어떠한 감정도 엿볼 수 없었다. 그는 이런 사소한 분쟁에 휘말릴 생각이 없었다. 그저 고개를 까딱이며 소복자에게 명령을 내렸다.

"강만여를 이리로 데려오거라."

명을 받은 소복자는 곧바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닿기도 전에 강만여가 눈밭에 휘청이며 쓰러졌다.

"강 상궁님...!"

소복자가 놀라 외치며 서둘러 그녀를 부축했다. 주변 사람들도 가슴이 덜컥하고 내려앉았다.

물론 황제도 거기에 포함되었지만, 겉으로 티 내지 않기 위해 주먹을 꽉 쥐었다.

“폐하, 강 상궁께서 실신하셨습니다!”

소복자가 외쳤다. 그러자 황제가 싸늘한 눈으로 난귀비를 바라봤다.

난귀비는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그리 오래 무릎 꿇린 것도 아닌데... 겨우 이정도도 못 견딜 줄은...."

황제의 입가에 냉소가 맺혔다.

난귀비는 자신이 말실수 했음을 알아차리고 급히 지시를 내렸다.

"뭣들 하느냐! 얼른 강만여를 온실로 옮기지 않고! 거기 너! 너는 태의를 불러오고, 너는 물을 데워 오거라!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이다, 서두르거라!"

그 명령에 그제야 궁인들도 정신을 차리고 정신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강만여도 곧 온실로 옮겨졌다.

난귀비는 얼른 황제에게 아양 섞인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폐하께서도 걱정되신다면 안에 들어가 보시겠습니까?'

황제는 안 그래도 들어가보려던 참이었는데, 막상 이 말을 듣고나니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겨우 하녀 하나 때문에 저 안으로 들어간다고?'

"내가 그리 한가한 줄 아느냐?"

황제가 얼굴을 굳히곤 소복자에게 명령했다.

"넌 여기 지키고 있거라. 깨어나면 다시 건청궁으로 데려오고, 아니면 죽은 것일 테니 시신을 강씨 집안으로 보내주거라.”

소복자가 고개를 숙이며 명을 받들었다.

난귀비는 그제야 핀 얼굴로 말했다.

"그렇다면, 폐하께선 신첩을 용서하시는 겁니까? 감사합니다, 폐하. 가는 길 제가 배웅하겠사옵니다."

황제는 사실 발길이 잘 떨어지지 않았지만, 그녀가 이렇게까지 말하니 어쩔 수 없이 가마에 올라탔다.

"그대도 이리 들어와 쉬도록 하거라."

황제가 서서히 멀어지는 것을 지켜보던 난귀비가 소복자에게 다정히 말했다.

하지만 소복자는 급히 손을 내저으며 거절의 뜻을 보냈다.

"소인은 이미 밖에서 눈을 맞아 몸이 더럽습니다. 괜히 들어가 마마의 궁을 더럽힐 수 없으니, 밖에서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거라. 깨어나는 대로 알려주도록 하마."

두터운 솜 장막이 열렸다가 닫혔고, 소복자는 찬 바람이 부는 밖에 홀로 남겨졌다.

안으로 들어선 난귀비는 곧바로 온실로 향했다.

그녀의 발걸음 소리를 들은 강만여는 힘겹게 누워 있던 침상에서 몸을 일으켜 다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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