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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화.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17 07:27:49

서린은 유정과 저녁을 먹고 수다를 떨다가 밤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헤어졌다.

집에 들어가서야 수혁에게서 부재중 전화 2통과 문자가 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곧 퇴근한다]

[시간 되면 전화해]

서린은 그대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가자마자 곧바로 수혁의 목소리가 들렸다.

“왜 이렇게 늦어.”

“미안해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하다가…….”

“누군 좋은 시간을 보냈네.”

“무슨 일 있으세요?”

“내가 뭐, 무슨 일이 있어야 전화를 하나?”

퉁명스러운 척하지만 묘하게 다정한 목소리.

“그게 아니라…….”

“집이야? 이제 들어온 거야?”

“네.”

“그럼 쉬어. 내일― 아니, 지금 집 앞으로 갈게. 얼굴 보자.”

“네? 지금요?”

“곧 도착해. 10분 후에 내려와.”

“10……?”

수혁은 전화를 받자마자 이미 핸들을 돌려 서린의 집으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정확히 10분 후.

다시 전화가 울렸다.

서린은 핸드폰을 귀에 대고 신발을 신었다.

현관문을 열고 뛰다시피 나갔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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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날, 나는 죽지 않았다.   102화.

    “악성 민원이 아니야. 내부를 아는 사람이야. 아니면 이렇게 못 만들어.”회의실 밖에서는 전화벨이 쉴 새 없이 울렸다.항의, 취재 요청, 주주 문의까지—모든 것이 한꺼번에 밀려들고 있었다.“법무팀은?”“저 문건이 위조라는 걸 입증하려면 서버 포렌식이 필요합니다. 최소 일주일은…”일주일.그 한마디가 공기를 더 무겁게 가라앉혔다.일주일이면 주가는 바닥을 치고,딜러들은 계약을 보류하고,협력사는 눈치를 본다.서린은 주먹을 꽉 쥐었다.누군가 의도적으로 흔들고 있다.그리고 그 타겟은—너무도 정확했다.한도오토링크가 그동안 지켜왔던 것.‘신뢰.’수혁은 침수차 문제만큼은 절대 타협하지 않았다.현장에서 직접 점검하고, 속임수를 쓰는 딜러는 가차없이 정리하고,거래처를 끊어가며 뼈를 깎듯 쌓아 올린 신뢰였다.그게 지금, 정면으로 무너지고 있었다.“공 부장.”상석에 앉아 묵묵히 화면을 응시하던 수혁이 입을 열었다.“네, 대표님.”“이 문건, 우리 시스템에서 출력된 거 맞나?”“전산 기록과는 일치하지 않습니다만…내부 구조를 정확히 알고 만든 문서로 보입니다.”수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그 부분은 나하고 공 부장이 체크한다.”그는 무겁게 가라앉은 회의실을 한 바퀴 둘러봤다.“왜 다들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어.”수혁의 목소리는 높지 않았다.그런데도 회의실 공기를 단번에 팽팽하게 당겨 세웠다.그의 말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직원들이 하나둘 시선을 들었다.“우리가 침수차 팔았나?”“……아닙니다.”“우리가 정비 이력 조작했어?”“절대 아닙니다.”“그럼 고개 들어.”그의 말은 명령이라기보다, 선언에 가까웠다.수혁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지지 마. 우린 떳떳했고, 그걸 세상에 증명하는 것만 남았다. 이런 비열한 수작 하나 벌어졌다고 우리가 무너질 것 같아?”공기가 서서히 바뀌었다.패배감과 당혹감 대신,억울함에서 비롯된 단단한 분노가 자리 잡았다.직원들의 시선이 수혁에게로 모였다.그는 곧

  • 그날, 나는 죽지 않았다.   101화.

    서린은 유정과 저녁을 먹고 수다를 떨다가 밤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헤어졌다.집에 들어가서야 수혁에게서 부재중 전화 2통과 문자가 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곧 퇴근한다][시간 되면 전화해]서린은 그대로 전화를 걸었다.신호음이 가자마자 곧바로 수혁의 목소리가 들렸다.“왜 이렇게 늦어.”“미안해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하다가…….”“누군 좋은 시간을 보냈네.”“무슨 일 있으세요?”“내가 뭐, 무슨 일이 있어야 전화를 하나?”퉁명스러운 척하지만 묘하게 다정한 목소리.“그게 아니라…….”“집이야? 이제 들어온 거야?”“네.”“그럼 쉬어. 내일― 아니, 지금 집 앞으로 갈게. 얼굴 보자.”“네? 지금요?”“곧 도착해. 10분 후에 내려와.”“10……?”수혁은 전화를 받자마자 이미 핸들을 돌려 서린의 집으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정확히 10분 후.다시 전화가 울렸다.서린은 핸드폰을 귀에 대고 신발을 신었다.현관문을 열고 뛰다시피 나갔다.“대표님, 지금 도착하신 거예요?”“어. 내려와.”담담한 수혁의 목소리와는 반대로 서린은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1층으로 내려가니 수혁이 주차해 놓고 그 앞에 서 있었다.어둠 속에서도 그의 넓은 어깨와 꼿꼿한 실루엣이 한눈에 들어왔다.서린은 핸드폰을 귀에 댄 채 빠른 걸음으로 수혁에게 다가갔다.“천천히 와.”육성과 핸드폰에서 동시에 같은 말이 들렸다.“아까 통화로 해도 되는데 왜 여기까지 오셨어요.”“보고 싶어서.”그 말을 듣는 순간, 서린의 걸음이 멈췄다.‘보고 싶다’는 그 말이, 고요한 밤공기를 가르고 그녀의 심장에 깊숙이 꽂혔다.서린이 움직이지 않자, 수혁이 천천히 발을 뗐다.한 발.한 발.천천히 오던 걸음이 빨라졌다.순식간에 서린의 바로 앞까지 왔다.수혁이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손을 들어 서린의 볼을 살며시 감쌌다.그의 손이 서린의 어깨를 지나 팔을 타고 내려와그녀의 손을 잡았다.서린은 자기 손을 잡은 수혁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 그날, 나는 죽지 않았다.   100화.

    성수동의 한적한 골목.작업실 문이 열리자 물감 냄새와 커피 향이 섞인 공기가 흘러나왔다.철컥.도어록이 잠겼다.유정이 돌아섰다.“…지안아.”그 한마디에,서린의 심장이 그대로 내려앉았다.“유정아….”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듯, 유정이 와락 안았다.“나쁜 기집애. …연락 한 번을 안 해? 내가 얼마나… 얼마나 걱정했는데.”“미안해. 미안해, 유정아.”참고 있던 눈물이 쏟아졌다.5년.혼자 버텨야 했던 시간들이친구의 품 안에서 무너졌다.유정은 한 번 세게 등을 때렸다가,이내 부드럽게 쓸어내렸다.“살아 있어 줘서 고마워. 진짜… 고마워.”한참을 울고 난 뒤, 두 사람은 소파에 마주 앉았다.유정이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그때는 수술 끝난 직후라 붓기도 있고… 낯설었는데.”잠시 미소 지었다.“지금은 네 얼굴이야.”서린이 웃었다.“많이 놀랐지?”“놀라기만 했겠어?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지. 그래도 다행이야. 이렇게라도 다시 봐서.”유정은 차를 건네며 조심스럽게 물었다.“근데… 강민재 그 사람은 뭐야?”서린의 손이 굳었다.“왜 그렇게 경계해? 그리고 그 사람… 너 모를 텐데도 눈을 못 떼던데.”“그냥… 지안이랑 닮았다고 생각하나 봐.”“닮았다고?”“분위기나 말투가. 그래서 자꾸 접근해. 불편하게.”유정의 얼굴이 굳었다.“하긴, 얼굴이나 이름은 바꿔도 무의식중에 나오는 습관까지는 어렵지. 그게 분위기를 만드니까.”“응. 그래서 안 부딪히려고 하는데 자꾸만 엮여.”잠깐의 정적.유정이 팔짱을 끼며 서린을 향해 시선을 곧게 두었다.“그런데, 너... 아직 나한테 말 안 한거 있어.”“뭐...?”“그놈하고 헤어진 이유.”“... ...”“네가 얼마나 그 놈을 살뜰히 챙기면서 좋아했는지 내가 다 아는데, 그런 사고를 겪었다고 네가 경계하는 건... 이상해.”“유정아...”“이유가 있는 거지? 나한테조차 말 못 하는.”“응.”유정은 더 캐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좋아. 하나만 더 묻자. 이건..

  • 그날, 나는 죽지 않았다.   99화.

    행사가 끝난 뒤, 밤공기가 한층 차가워져 있었다.호텔 앞 도로에는 검은 세단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플래시가 몇 번 더 터진 뒤에야 사람들의 발걸음이 흩어졌다.수혁은 말없이 차 문을 열어 주었다.서린이 조용히 조수석에 앉았다.차 안의 공기는 고요했지만, 갈 때와는 달리 무겁지 않았다.도심의 불빛이 유리창을 타고 길게 흘렀다.수혁은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룸미러로 서린을 힐끗 바라보았다.창밖을 보고 있는 그녀의 옆얼굴이, 평소보다 조금 들떠 보였다.시선을 거둬야 하는데,한 번 더 확인하듯 다시 시선이 머물렀다.“성유정 작가랑 꽤 잘 통하던데.”서린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원래 아는 사이처럼 보일 정도였어.”서린은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무릎 위에 올려둔 손을 꽉 쥐었다가, 천천히 풀었다.“그냥…….”나직한 목소리였다.“느낌이 좋아서요.”“느낌?”“네. 왠지 말이 잘 통할 것 같고… 낯설지가 않더라고요.”서린은 수혁의 옆모습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대표님도 그런 사람 있잖아요.”“…….”“처음 봤는데, 아주 오래된 것 같은 사람.”말끝이 조금 흐려졌다.신호에 걸려 차가 멈췄다.브레이크가 깊게 밟히고, 깜빡이가 규칙적으로 딸깍딸깍 울렸다.수혁이 고개를 돌려 서린을 바라보았다.“알지.”그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나한테는 공서린, 네가 그랬으니까.”서린의 심장이 작게 뛰었다.“……대표님은 원래 그런 말, 아무렇지도 않게 하세요?”“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말 같아?”잠시 눈이 마주쳤다.수혁이 피식 웃으며 서린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리듯 스쳤다.그리고 망설임 없이, 그대로 손을 잡았다.닿아 있는 온기가 유난히 뜨겁게 느껴졌다.서린의 심장이,무언가 스치고 지나간 듯 저릿하게 울렸다.“오늘은… 생각보다 덜 힘들었어요.”“성 작가 덕분에?”“...대표님 덕분이기도 하고요.”이번에는 수혁이 아주 옅게 웃었다.“좋은 친구가 생길 것 같아서 다행이네. 회사 일 핑계 대고 자주

  • 그날, 나는 죽지 않았다.   98화.

    옆에는 자신을 단단히 세워주는 사람이 있고,앞에는 자신의 과거를 알고도 지켜주는 사람이 있다.처음으로—이곳이 완전히 적진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스쳤다.하지만 단 한 사람.강민재만은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는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샴페인 잔을 든 채, 세 사람을 조용히 응시하고 있었다.얼음이 잔 벽에 부딪히며 낮게 울렸다.‘이게 아닌데.’차수혁은 성유정에게 발이 묶이고,서린은 정계 인사들 틈에서 숨이 막혀야 했다.그리고 그 순간.자신이 손을 내밀어야 했다.‘차수혁은 너와 다른 세계의 사람이다.’그걸 깨닫게 해 주고,자신만이 그녀를 끌어올릴 수 있는 동아줄임을 각인시킬 생각이었다.판은 내가 짰고, 움직이는 말도 내가 고른 건데―‘이게 뭐야.’왜 저 셋이 하나로 묶여 있는 거지.수혁은 한 발 앞에서 중심을 잡고,성유정은 가볍게 웃으며 균형을 맞추고,서린은—편안했다.자신과 마주할 때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힘이 빠진 미소.그게 가장 거슬렸다.자신이 말을 걸면 곧바로 경계부터 하던 여자였다.한 걸음 다가가면 한 걸음 물러섰고, 웃고 있어도 눈빛만큼은 언제나 차가웠다.그런데 지금은 달랐다.차수혁의 옆에서, 처음 만난 성유정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는 어깨에 들어갔던 힘마저 풀려 있었다.자신이 아무리 애를 써도 얻지 못했던 얼굴을 저 두 사람은 너무도 쉽게 보고 있었다.그 사실이 이상할 만큼 자존심을 긁었다.내가 뭘 잘못 계산한 거지?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곧 그는 고개를 저었다.잘못된 건 자신의 계산이 아니라, 예상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공서린이었다.강민재의 턱선이 서서히 굳었다.초대받지 못한 사람은 수혁이 아니었다.이 판에서 밀려난 쪽은, 오히려 자신이었다.그때.반대편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던 차윤호 회장의 입꼬리가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허허, 거봐라. 내 눈이 틀림없다니까.”차 회장은 옆에 선 비서에게 으스대듯 말했다.“수혁이 저 녀석, 처음엔 튕기더니 유정 양이랑 분위기

  • 그날, 나는 죽지 않았다.   97화.

    서린의 눈동자가 지진이 난 듯 흔들렸다.그 시선을 수혁이 놓치지 않았다.옆에 서 있는 성유정을 흘끗 바라본 뒤, 다시 서린을 봤다.‘이런, 불편한가.’순간 수혁의 턱이 단단히 굳었다.누가 봐도 오해할 만한 상황이긴 하지.다음 순간, 그는 성유정과의 거리를 자연스럽게 한 발 물렸다.“공 부장님?”옆에 서 있던 강민재가 서린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려 했다.서린은 한 발 앞으로 내디디며 그의 시야를 가렸다.그리고 유정을 향해 아주 미세하게 고개를 저었다.‘지금은 아니야.’유정의 동공이 잠깐 멈췄다.그리고 이해했다는 듯, 아무 일도 없다는 표정으로 시선을 거두었다.그때, 사람들 사이를 가르며 수혁이 걸어왔다.“차 대표님.”강민재가 먼저 아는 체를 했다.수혁은 서린의 옆에 자연스럽게 섰다.손을 잡지도, 어깨를 감싸지도 않았다.대신 아주 당연하다는 듯 같은 선 위에 서 있었다.“잠시 이야기 좀 하죠.”강민재가 웃었다.“저하고요?”수혁이 짧게 답했다.“아니. 공 부장과.”그리고 시선이 차분히 맞부딪혔다.“공 부장은 제 직원이니, 업무는 저를 통해 말씀하시죠.”테이블 위 공기가 미묘하게 식었다.누군가 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또각, 울렸다.강민재의 눈빛이 얇아졌다.“대표님이 과민하신 것 아닙니까. 저는 단지 능력 있는 인재를 소개하려던 것뿐입니다.”“충분히 소개됐습니다.”수혁의 입가에 온기 없는 미소가 걸렸다.“김 의원님, 오랜만입니다.”그가 정계 원로들 사이를 자연스럽게 파고들었다.“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저희 직원을 잠시 데려가겠습니다. 급하게 확인할 업무가 있어서요.”강민재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았다.수혁의 손이 서린의 팔을 감싸 쥐었다.단단하고 따뜻한 손길.“이쪽으로.”강민재의 표정이 일순간 굳었지만, 수혁은 돌아보지 않았다.그는 서린을 감싸듯 이끌어, 사람들로부터 조금 떨어진 테이블 앞으로 이동했다.유정도 조용히 그 자리에 합류했다.어설픈 삼각 구도가 만들어졌다.잠시 어색한 정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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