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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3화

Author: 서린화
황제는 어쩔 수 없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금영을 달랬다.

“짐이 이미 거절하지 않았느냐. 선발도 하지 않을 것이니 이제 그만 토라지거라. 응?”

황제의 넓은 손바닥이 금영의 가느다란 등을 천천히 토닥이며 그녀의 마음을 달랬다.

그런데 그렇게 달래 주다 보니 어느새 침상 휘장 안의 분위기가 묘하게 달아올랐다.

금영은 황제의 숨결이 달라진 것을 알아차리자마자 옆으로 몸을 굴렸다.

황제와 한참 거리를 벌리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폐하, 밤이 깊었사옵니다. 연세도 있으시니 일찍 쉬셔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황제의 낯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배금영, 설마 짐이 정말 너를 어찌하지 못할 줄 아느냐?”

그 순간 금영의 숨소리가 금세 고르고 잔잔해졌다.

황제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졌다.

금영이 십중팔구 잠든 척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결국 더는 그녀를 건드리지 않았다.

그렇게 밤은 평온히 지나갔다.

*

다음 날 아침.

금영이 눈을 떴을 때 황제는 아직 떠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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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946화

    황제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가빈은 비의 자리에 있으나, 그 오라비가 소란을 일으켜 사람을 다치게 했으니 오늘부로 미인으로 강등한다.”가빈의 얼굴은 순식간에 창백해졌다.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현비가 이내 입을 열었다.“그렇다면 폐하께서는 소의 중에서 한 사람을 고르시는 것이 어떠하시겠사옵니까. 신첩은 두 소의가 성품도 제법 온화하고……”황제는 현비를 바라보다가, 이내 시선을 림 소의에게로 옮겼다.그리고 손가락으로 가볍게 가리키며 말했다.“그대다.”림 소의는 잠시 말없이 금영을 바라보았다.금영의 눈에는 웃음기가 어려 있었다.그제야 림 소의는 마음을 굳게 먹고 앞으로 나아가 은혜에 감사드렸다.서 황후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폐하, 이는……”황제는 서늘한 눈빛으로 서 황후를 바라보았다.“황후는 불편하다 여기는 것이냐?”태후는 더 이상 욕심을 부리지 않고 물러날 줄 알았다.“그 또한 좋구나. 이 일은 황제의 뜻대로 하도록 하자.”황제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짐이 사람을 보내 교지를 작성하도록 하겠다. 어마마마께서 몸이 편찮으시니, 소자는 이만 더 이상 방해하지 않겠사옵니다.”말을 마친 황제는 금영을 데리고 밖으로 향했다.현비는 미소를 지으며 림 소의를 바라보았다.“마침 우리도 같은 길이니 함께 돌아가면 되겠구나.”금영은 현비의 말을 듣고 조금 걱정스러워졌다.림 소의가 감당할 수 있을까?금영은 조용히 황제의 옷소매를 살짝 잡아당겼다.황제의 걸음이 멈췄다.그리고 다시 몇 마디를 덧붙였다.“오늘부터 가빈과 림 소의는 모두 각자의 궁으로 돌아가 태후마마를 위한 기복 경문을 필사하도록 하라. 허락 없이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겉으로 보기에는 그리 좋은 일이 아닌 듯했지만, 이는 오히려 림 소의가 비의 자리에 오르기 전까지 안전을 보장해 주는 일이었다.훗날은……설령 서 황후와 현비가 아무리 대담하다 해도,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비의 품계에 오른 이를 대놓고 괴롭히지는 못할 것이다.그렇지 않았다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945화

    옥빈과 가빈이 먼저 안으로 들어왔다.두 사람은 황제를 보자 곧바로 예를 올렸다.태후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이 두 아이도 참 효성스럽습니다. 어제는 하루 종일 황후를 도와 내 곁에서 이리저리 분주히 시중을 들었지요.”태후는 말을 이었다.“어떤 이는 좀처럼 이 수강궁에 발걸음조차 하지 않지만 말입니다.”금영은 속으로 가볍게 웃었다.태후가 지금 자신을 에둘러 비꼬는 것인가.하지만 역시 선황 때 후궁의 암투 속에서 끝내 살아남은 사람이었다.누군가를 치켜세우는 동시에 다른 이를 깎아내리는 솜씨가 실로 절묘했다.금영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신첩도 태후마마를 자주 찾아뵙고 싶사옵니다. 다만 염아가 아직 어려 신첩의 손길이 필요하고…… 폐하께도 신첩이 정성을 다해 모셔야 하옵니다. 그래야 태후마마께서도 마음 놓고 병환을 돌보실 수 있지 않겠사옵니까.”황제가 곧 말을 받았다.“어마마마, 금영의 말에도 일리가 있사옵니다. 너무 나무라지 마시옵소서.”태후가 눈썹을 찌푸렸다.“내가 무슨 말을 했다고 그러십니까. 황제가 그렇게 말하니 마치 내가 금영을 괴롭히기라도 한 것 같지 않습니까.”마침 현비가 밖에서 들어왔다.현비는 먼저 공손히 예를 올린 뒤 웃으며 말했다.“조금 전 밖에서 태후마마의 목소리를 들었사온데, 전보다 훨씬 기운이 있으신 듯하옵니다. 몸도 조금 나아지신 것이옵니까?”현비는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쉬었다.“그렇다면 신첩도 이제야 마음을 놓을 수 있겠사옵니다.”금영은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평소에는 영 마음에 들지 않는 현비였지만, 오늘만큼은 참으로 때맞춰 나타났다.그제야 태후도 자신이 조금 전 너무 멀쩡하게 말을 많이 했다는 것을 깨달은 듯 갑자기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서 황후는 얼른 약사발을 내려놓고 태후의 등을 두드렸다.“어마마마, 괜찮으시옵니까?”태후는 한참을 기침한 뒤에야 겨우 입을 열었다.“황제, 비를 세우는 일은…… 어찌 생각하고 계십니까?”서 황후도 옆에서 말했다.“폐하께서도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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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영은 황제의 말을 들으며 그의 표정을 찬찬히 살폈다.그러고는 속으로 조용히 생각했다.‘폐하께서는 사실 많은 것을 알고 계셔. 다만 지금은 굳이 서로 얼굴을 붉히고 싶지 않으신 것뿐이야.’하긴 그럴 만했다.황제는 말할 것도 없었다.금영 자신만 해도 그랬다.한 번 죽음을 겪고, 배가 사람들이 자신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똑똑히 알고 있었으면서도 다시 살아났을 때는 지난날의 정을 단칼에 끊어 내지 못했다.하물며 태후가 황제에게 베푼 정은 송정희가 금영에게 베푼 것보다 훨씬 깊었다.게다가 서가의 일만 제외하면 태후에게 딱히 다른 잘못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다만 태후가 계속 서가를 위해 황제를 몰아붙인다면……시간이 흐른 뒤에도 태후가 이 세상에서 누가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인지 깨닫지 못한다면, 언젠가는 황제와 태후 사이의 정마저 틀어지고 말 터였다.지금 황제가 태자에게 이회묵을 조사하게 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황제는 이미 뿌리 깊게 얽힌 서가라는 거목을 반드시 뽑아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금영은 서둘러 몸단장을 마쳤다.연한 노란빛의 봄옷으로 갈아입은 뒤 황제와 함께 밖으로 나섰다.지난밤까지만 해도 날씨가 몹시 차가웠다.하지만 아침 바람에는 어느새 촉촉한 온기가 배어 있었다.살갗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이 묘하게 상쾌했다.금영과 황제는 나란히 걸어 수강궁까지 갔다.하지만 안으로 들어갈 때가 되자 자연스럽게 황제가 앞에 서고 금영이 뒤를 따랐다.“폐하께서 드시옵니다!”문을 지키던 내관이 큰 소리로 알렸다.곧 손 상궁이 밖으로 나와 맞이했다.“폐하.”황제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안으로 들어갔다.금영도 서둘러 그 뒤를 따랐다.태후의 침전 안에는 짙은 약향이 가득했다.금영은 그 냄새에 코끝이 자극되어 하마터면 기침을 터뜨릴 뻔했다.태후는 침상에 기대어 반쯤 몸을 일으킨 채 앉아 있었다.머리에는 짐승 가죽으로 만든 말액까지 두르고 있어 더욱 쇠약해 보였다.서 황후는 침상 곁에 무릎을 꿇듯 앉아 약사발을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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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제는 어쩔 수 없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금영을 달랬다.“짐이 이미 거절하지 않았느냐. 선발도 하지 않을 것이니 이제 그만 토라지거라. 응?”황제의 넓은 손바닥이 금영의 가느다란 등을 천천히 토닥이며 그녀의 마음을 달랬다.그런데 그렇게 달래 주다 보니 어느새 침상 휘장 안의 분위기가 묘하게 달아올랐다.금영은 황제의 숨결이 달라진 것을 알아차리자마자 옆으로 몸을 굴렸다.황제와 한참 거리를 벌리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폐하, 밤이 깊었사옵니다. 연세도 있으시니 일찍 쉬셔야 하지 않겠사옵니까?”황제의 낯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그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배금영, 설마 짐이 정말 너를 어찌하지 못할 줄 아느냐?”그 순간 금영의 숨소리가 금세 고르고 잔잔해졌다.황제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졌다.금영이 십중팔구 잠든 척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결국 더는 그녀를 건드리지 않았다.그렇게 밤은 평온히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금영이 눈을 떴을 때 황제는 아직 떠나지 않고 있었다.기척을 들은 황제가 몸을 돌려 금영을 바라보았다.아직 젊은 금영은 본래부터 빼어난 미모를 지니고 있었다.입궁한 뒤로는 예전에는 없던 묘한 기품까지 더해져, 마치 동해에서 막 건져 올린 진주처럼 맑고 윤택한 빛을 머금고 있었다.더구나 막 잠에서 깨어난 모습은 유난히도 곱고 아름다워 황제는 한동안 시선을 떼지 못했다.금영이 몸을 일으키자 어깨를 덮고 있던 얇은 겉옷이 살짝 흘러내렸다.황제의 시선은 그곳에 잠시 더 머물렀다.황제는 본래 색욕이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더구나 금영이 자신이 그녀의 젊고 아름다운 몸 때문에 사랑한다고 오해하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하지만……금영의 자태가 눈길을 사로잡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었다.금영은 몸을 일으켜 앉으며 황제를 바라보았다.그리고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폐하, 오늘은 어찌 조회에 들지 않으시옵니까?”사실 금영도 알고 있었다.오늘은 조정이 쉬는 날이었다.황제뿐만 아니라 조정 신하들에게도 매달 이틀씩 조회에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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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제는 금영에게서 림 소의라는 이름을 들은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어둠 속에서 황제의 눈에 웃음기가 번졌다.“금영이가 누구라 하면 그 사람으로 하자꾸나.”금영은 작게 웃었다.“폐하께서는 이리도 신첩 뜻대로 다 해 주시는 것이옵니까?”황제의 웃음소리가 한층 더 커졌다.때로는 금영을 한없이 응석받이처럼 떠받들며 혼군 노릇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하지만 어디까지나 생각뿐이었다.황제는 금영을 사랑했고, 이 나라의 만백성 역시 소중히 여겼다.그러니 오늘 이 일을 허락한 것도 단순히 금영의 뜻을 받아 주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림 어사의 딸이라면 적어도 다른 이들보다는 나았다.비록 림 어사가 근래 몇 년 사이 예전의 기개를 많이 잃기는 했지만, 어사의 자리에 있는 동안 맡은 바 소임만큼은 성실하게 해 왔다.큰 물의를 일으킨 적도 없었고, 다른 이들과 파벌을 이루어 사사로운 이익을 꾀한 적도 없었다.예부터 황제라면 누구나 후궁의 비빈과 조정의 신하들이 한패가 되어 세력을 키우는 것을 꺼리는 법이었다.황제 역시 황위에 오르기 전에는 다른 이들과 손을 잡아 세력을 모은 적이 있었다.그렇기에 오히려 더 잘 알고 있었다.자신이 아직 한창때인데 벌써부터 신하들이 무리를 짓고, 심지어 후궁과 조정이 서로 손을 잡는 일만큼은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이것이 바로 황제가 권세를 다루는 방식이었다.누구든 이 자리에 앉으면 결국 같아질 수밖에 없었다.황제가 말했다.“설령 짐이 혼군이 되고 싶다 해도, 금영이는 허락하지 않을 것 같구나.”금영은 그 말을 듣고 잠시 멈칫했다.그러고는 저도 모르게 생각에 잠겼다.자신에게 계책도 있고 수단도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하지만 설령 그런 수단을 모두 써서 황제를 자신에게 푹 빠지게 만든다 한들, 나라를 어지럽히는 짓만큼은 결코 할 수 없었다.조부는 그녀에게 난세와 흉년이 닥쳤을 때 백성들이 집을 잃고 떠돌며 배를 곯고, 길마다 굶어 죽은 시신이 널리는 참상을 이야기해 주었다.또한 전장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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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영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끝내 참지 못하고 소리 내어 웃고 말았다.차라리 웃지 않았으면 모르겠는데, 금영이 웃음을 터뜨리자 황제의 낯빛은 더욱 어두워졌다.금영은 황제의 옷깃을 살짝 잡아당기며 나직이 말했다.“신첩의 체면을 보아서라도 이번만큼은 봉급을 깎지 말아 주시옵소서. 이러다가는 훗날 장가갈 돈조차 남지 않겠사옵니다.”위명은 감격한 눈으로 금영을 바라보았다.“귀비마마, 마마께서는 참으로 좋은 분이시옵니다! 앞으로 소신은 절대로 속으로 마마의 흉을 보지 않겠사옵니다!”마침 손복안도 뒤따라왔다.그 말을 들은 손복안은 참지 못하고 비웃듯 코웃음을 쳤다.금영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표정이 사라졌다.그녀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폐하, 그냥 벌하시옵소서. 신첩이 다시 생각해 보니 한 달로는 부족할 듯하옵니다. 차라리 두 달 치를 깎으시는 것이 좋겠사옵니다.”위명은 속으로 생각했다.‘역시 여인이 독해지면 무섭군!’그렇게 또 두 달 치 봉급을 잃게 되었지만, 정작 위명은 이번에는 그다지 마음 아파하지 않았다.이미 몇 번이나 당한 일이니 이제 와 한두 달 더 깎인들 크게 다를 것도 없었다.설마 다음 생에 받을 봉급까지 미리 깎을 수야 있겠는가.하지만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것은 따로 있었다.위명은 머리를 긁적이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손복안을 바라보았다.“내가 조금 궁금한 것이 있소. 방금 내가 한 말은 하나같이 진심이었고, 틀린 말도 없었는데 어째서 폐하와 귀비마마께서 모두 기분이 상하신 것이오?”손복안이 곧바로 정정했다.“폐하와 귀비마마께서는 위 총령을 벌하고 나니 이미 기분이 풀리셨소.”복안이 다시 말을 이었다.“사실 위 총령만 궁금한 것이 아니오. 나도 궁금한 것이 하나 있소.”위명이 물었다.“무엇이 궁금하시오?”손복안은 한마디만 남긴 채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사람이 어찌 저토록 구제할 길 없이 어리석을 수 있는지가 궁금하오.”황제는 자신이 늙지도 않았고 몸도 여전히 멀쩡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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