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금단의 사랑, 조선시대 청나라의 볼모로 보내졌던 부모를 따라 갔던 남매가 8년후 조선으로 돌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김호정은 8살에 부모님을 따라 청나라로 건너가 살다가 돌아온 뒤로 자신보다 5살위의 삼촌과 극도로 사이가 나빠지지만 결국은 그들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면서 되돌릴수 없는 비극의 씨앗이 됩니다. 이들은 어떻게 이 난관을 극복해 나갈 수 있을까요?
View More1화. 눈밭에서 돌아온 난초
압록강을 건넌 지 벌써 보름이었다. 심양에서 출발한 행렬이 의주를 지나 한양으로 향하는 동안, 김호정은 가마 안에서 창밖으로 스쳐 가는 조선의 산야를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여덟 살에 떠난 나라였다. 그때는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낯선 땅으로 끌려가는 것이 마냥 서럽기만 했는데, 이제 열여섯이 되어 돌아오는 길은 낯설었다.
그녀는 아직 심양의 말투가 아직 혀끝에 남아 있고, 청나라식으로 땋았던 머리 매무새가 손에 익어 조선의 복색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졌다.
"아씨, 곧 도성에 다다른다 하옵니다."
청아가 가마 옆에서 나란히 걸으며 나직이 고했다. 심양으로 떠나기 전부터 호정을 그림자처럼 따르던 몸종이었다. 호정보다 다섯 살이 위였지만, 늘 아씨보다 한 걸음 뒤에서 걸으며 낮은 소리로 말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그래. 알았다."
호정은 짧게 답하고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오라버니 김호직이 말 위에서 앞서 가고 있었다. 청나라에서 익힌 활달한 기상을 감추지 못하는 오라버니의 뒷모습을 보며, 호정은 문득 자신이 이 땅에서 얼마나 이방인처럼 보일지를 생각했다.
조선의 예법은 어머니에게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배웠다. 절하는 법, 웃음소리를 낮추는 법, 남정네들과는 눈을 마주치지 말아야 하는 등. 그러나 몸에 새겨진 것과 마음에 새겨진 것은 다른 법이었다. 심양의 저잣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던 습관과, 말을 타고 벌판을 달리던 기억이, 여전히 그녀의 몸에 하나하나에 배어 있었다.
"낭자, 이제 곧 할아버님 댁이옵니다."
청아의 말에 호정은 옷깃을 여몄다. 할아버지 김정 대감. 형조판서를 지내며 자신의 손으로 아들 가족을 청나라로 보내면서까지 조정에서의 입지를 다졌다던 그 어른을 이제야 다시 뵙는 것이었다. 여덟 살 이후로 얼굴조차 가물가물했다.
행렬이 솟을대문 앞에 멈추자, 집안 사람들이 마당에 늘어서 있었다. 호정은 가마에서 내려 어머니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섰다. 낯선 얼굴들이 그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몇 걸음을 걸었을까, 대청마루 위에 앉아 있던 허연 수염의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할아버지였다.
"먼 길 오느라 고생하였다."
김정 대감의 목소리는 낮고 위엄이 있었다. 호정은 예를 갖추어 절을 올렸다. 절을 마치고 고개를 들었을 때, 대청 한쪽 기둥에 기대어 선 한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큰 키에 흰 피부, 오똑한 콧날. 나른한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언가 못마땅한 것을 보는 듯한, 그러면서도 흥미로운 것을 발견한 듯한 그 눈빛이 낯설었다.
"저분은…"
호정이 나직이 묻자, 옆에 서 있던 오라버니가 속삭였다.
"아마 막내 숙부님이실 거야. 시경 숙부님, 두 번째 할머님께서 낳으신 막내 아드님이시니 우리에게는 삼촌이 되시는 거야, 나도 심양으로 가기 전 기억밖에는 없어. 나보다 세 살 위이시니 너보다는 다섯 살 많으시겠구나."
시경. 호정은 그 이름을 마음에 담아 두었다. 사내는 여전히 기둥에 기대어 선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인사를 하기에도, 외면하기에도 애매한 그 시선에 호정은 저도 모르게 눈을 피했다.
"청나라에서 온 조카딸이라… 소문대로 인형처럼 생겼구나."
시경이 나직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칭찬인지 비아냥인지 알 수 없는 말투였다. 호정은 입술을 꾹 다물고 다시 할아버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청나라에서 살며 숱하게 낯선 시선을 받아 왔지만, 이런 종류의 눈빛은 처음이었다. 사람을 뜯어보는 듯한, 그러면서도 어딘가 지친 듯한 눈빛.
그날 저녁, 호정의 가족은 심양으로 가기전 기거하던 별채에서 짐을 풀었다.
"아까 그 기둥에 서 있던 숙부님인지 하는 사람말이다, 원래 저러시냐?"
"어느 분을 말씀하시는 것이온지…"
"시경 숙부님 말이다. 사람을 마치 처음 보는 물건 보듯 쳐다보시더구나."
청아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소인도 여기를 떠나기 전 본 것이 다이기는 한데,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청아는 숨쉴 틈도 주지 않고 밖으로 뛰어 나갔다.
얼마를 지났을까 숨을 헐떡이며 방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아씨! 아씨! 알아봤습니다요!"
"그 분이 원래 촉망받던 도련님이셨다 하옵니다. 어려서부터 학문도 무예도 출중하셔서 대감마님의 총애를 한 몸에 받으셨다고요. 한데 동문수학하던 벗의 집안이 모함으로 몰락한 뒤로는 벼슬길도 마다하시고 방탕하게 지내신다는 소문이 자자하답니다."
"제 기억에도 그분이 똑똑하시고 영특하시다 하며 대감마님이 무릎위에 끼고 사셨던거 같아요."
"그런 일이 있었구나! 난 기억이 전혀 없구나."
호정은 말끝을 흐렸다. 낮에 본 그 나른한 눈빛의 이면에 그런 사정이 있으리라고는 짐작하지 못했다. 그러나 사연이야 어떻든, 사람을 그런 식으로 뜯어보는 무례함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었다.
며칠이 지나도록 호정은 되도록 시경과 마주치지 않으려 애썼다. 그러나 한 집안에서 지내는 이상 완전히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사랑채 앞 마당을 지나던 어느 오후, 호정은 툇마루에 앉아 술병을 기울이고 있는 시경과 딱 마주치고 말았다.
"오호, 청나라 낭자께서 산책이라도 나오셨나."
"...숙부님을 뵈옵니다."
호정은 최대한 예를 갖추어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시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오더니, 그녀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조선말이 어색하구나. 조카가 조선 사람인지 되놈인지 헷갈릴 지경이야."
"...청나라에서 자랐다 하여 조선 사람이 아닌 것은 아니옵니다."
호정은 눈을 내리깔지 않고 똑바로 그를 마주 보며 답했다. 그 대꾸에 시경의 눈썹이 살짝 움직였다.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본 듯한 표정이었다.
"말대꾸까지 하는구나. 조선의 규수답지 않게."
"숙부님이야말로 조카를 처음 보는 자리에서 무례하게 구시는 것이, 조선의 어른답지 않으십니다."
그 말에 시경은 잠시 말을 잃은 듯했다. 그러다 이내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것은 조롱의 웃음이라기보다는, 무언가 재미있는 것을 발견한 사람의 웃음이었다.
"이거 재미있는 조카가 왔군."
그가 몸을 돌려 다시 툇마루로 돌아가며 남긴 말이었다. 호정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불쾌감과, 그보다 더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가슴 한구석에서 일렁이는 것을 느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그녀도 알지 못했다.
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청운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도련님이 저리 누군가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을 본 지가 실로 오랜만이었다. 그러나 그 관심의 끝이 어디로 향할지, 청운은 어쩐지 불길한 예감을 지울 수 없었다.
축문이 낭독되고, 절이 이어졌다. 향 연기가 사당 안에 자욱하게 퍼지는 가운데, 호정은 어머니 곁에 서서 조상님께 절을 올리는 오라버니와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사이, 시경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평소의 나른하고 심드렁한 표정은 어디로 갔는지, 이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진중한 얼굴로 절을 올리고 있었다. 호정은 그 낯선 모습에 잠시 시선을 빼앗겼다. 제사가 끝나고 음복이 이어졌다. 온 집안이 마당에 상을 펴고 둘러앉아 함께 음식을 나누는 자리였다. 아이들이 뛰어놀고, 어른들은 오랜만에 모인 친척들과 담소를 나누었다. 이번 한가위에는 지방에서 올라온 먼 친척들도 여럿 자리를 함께하였다. 평안도, 충청도 등지에서 온 일가붙이들 중에는 호정을 처음 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고, 어려서 보았으나 오랜 세월이 흘러 그녀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도 꽤 있었다. 그런 만큼 그녀를 향한 시선과 궁금증이 유독 뜨거웠다. "저 아이가 그 청나라에서 돌아왔다는 이 댁 손녀딸인가?“ "그렇다네. 여덟 살에 갔다가 이제야 돌아왔다지.“ "어쩐지, 낯빛이며 몸가짐이 여느 규수들과는 사뭇 다르구먼.“ 호정이 인사를 올리러 다가가는 자리마다 어른들은 그녀를 붙잡고 이것저것을 물었다. "심양에서는 어찌 지냈느냐. 그곳 음식은 입에 맞더냐.“ "조선말은 잊지 않고 다 기억하고 있었느냐.“ "듣던 대로 참으로 곱게 생겼구나. 어느 댁에서 며느리로 데려가려 눈독을 들이겠어." 질문이 끝없이 이어지자 호정은 웃는 낯으로 하나하나 답하면서도 속으로는 조금 지친 기색이었다. 사촌 언니들이 그런 그녀를 보다 못해 슬쩍 끼어들었다. "할머님들, 그만 놓아주셔요. 호정이도 좀 쉬어야지요.“ "허허,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라 그런다. 어여 가서 쉬거라." 간신히 자리를 벗어난 호정은 사촌들 무리에 섞여서야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호정아, 이리 와서 이것 좀 먹어 보아라." 사촌 언니가 부르는 소리에 자리를 옮기며 호정도 오랜만에 여유로운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추석이 다가오자 김정 대감댁은 아침부터 분주했다. 이번 한가위는 예년과 달랐다. 청나라에서 돌아온 둘째 아들 시헌의 가족들이 처음으로 함께 지내는 명절이었던 까닭에, 대감은 조상님께 그 소식을 알리는 뜻에서 예년보다 더 성대하게 제청을 차리라 일렀다. "이번 제사에는 집안 가솔들이 모두 모여야 한다. 아무도 빠짐없이 참례하도록 하여라.“ "그리고 먼 곳에서 오시는 친지들도 계시니 그 분들 또한 최선을 다해 맞이해야 할 것이야." 대감의 엄명에 사랑채도 안채도 며칠 전부터 집안일을 하는 노비들의 손이 바빴다. 엄청난 양의 음식들이며 집안 대청소까지 빈틈없이 모든 일이 차근차근 이루어 졌다. 호정은 어머니의 처소에서 일가친척들에 관해 하나하나 교육을 받아야 했다. 행여 멀리 청나라에서 지내다 왔다 하며 작은 흠이라도 잡힐까 걱정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또한 호정에게 제사의 전반적인 것들에 관해 알려주었다. 앞으로 호정이 역시도 어느 댁 며느리가 되어야 할 터, 양반집인 만큼 실제 손이 가는 일은 모두 노비들의 몫이었으나, 그렇다 해도 안주인 될 이로서 제청이 어떻게 차려지고 절차가 어떻게 이어지는지는 알아 두어야 했다. "제상은 이리 놓이고, 지방은 저리 모시는 것이다. 이리 크게 제사를 모시는 것이 낯설겠지만, 명색이 이 집안의 손녀인데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서야 되겠느냐.“ "예, 어머니. 잘 새겨듣겠습니다." 호정은 어머니가 짚어 주는 제상의 위치, 축문을 읽는 순서, 절하는 예법 하나하나를 열심히 익혔다. 조선의 예법은 누누이 어머니의 교육으로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큰 규모의 제사를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짚어 가며 배우는 것은 또 달랐다. "명절 음식 또한 집안의 어멈들이 담당하겠지만 앞으로 네가 시집을 가게 되면 알아야 부릴수도 있는 것이니 잘 익혀두어야 한다..“ "예. 어머님!" 호정은 짧게 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어머니는 이번 명절에 외지에 사는 친척들도 여럿 다녀갈 것이라며, 그들 앞에서 흠 잡힐 일이 없도록 각별히
한양의 남촌 뒷골목, 홍등이 화려하게 걸려있는 '연화루'의 별채에서는 밤이 깊어 갈수록 풍악 소리가 더 높아지고 있었다.가야금 줄이 튕겨지는 소리, 장구 장단, 그 사이사이로 사내들과 술따르는 기생들의 웃음소리가 묘하게 섞여 담장 너머까지 흘러나왔다."자, 한 잔 더 받으시지요, 도련님.“기생 월향이 나긋한 손길로 술병을 기울였다.상석에 비스듬히 기대앉은 시경은 잔을 내밀어 술을 받으며 흐드러지듯 풀어진 눈으로 실내를 둘러보았다. 이미 상 위에는 빈 술병이 여럿 나뒹굴고 있었다."시경이 자네, 오늘따라 유독 말이 없구먼."맞은편에 앉은 한도윤이 술잔을 든 채 킬킬 웃었다. 병조참판 댁 아들로, 시경과는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벗이었다. 그 옆에서 서진이 거들었다."말이 없는 게 아니라 원래 술자리에서는 말을 아끼는 놈이지.""시끄럽다, 이것들아."시경은 잔을 단숨에 비우고 탁 내려놓았다. 월향이 재빨리 다시 잔을 채웠다.한양의 둘째 가라면 서러울 이름난 한량 김시경의 술버릇쯤은 이 집 기생들 중 모르는 이가 없었다. 아무리 마셔도 취하는 법이 없고, 아무리 절세가인을 앉혀도 술을 따르게 하는 그 이상은 결코 곁을 주지 않았다."도련님, 오늘은 소녀가 밤새 곁을 지켜도 되겠사옵니까."월향이 은근한 눈웃음을 지으며 시경의 귀에 가까이 속삭였다. 그러고는 시경의 옷섭이 살짝 벌어진 틈으로 자신의 손을 살며시 밀어넣었다.시경은 그 손을 무심히 내려다보다가 조용히 그녀의 소매 끝을 손가락으로 살짝 집어 옮겨 놓았다."술이나 따르거라. 거기까지다.""어머, 도련님~ 제가 어여쁘지 않으신가 봅니다~ 만리장성을 쌓아도 수백 번은 쌓았겠구만."월향은 입술을 삐죽이면서도 물러서서 다시 술병을 들었다. 이런 거절이 처음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시경이 무례하게 구는 것도 아니었기에 화를 낼 수도 없었다. 도윤이 그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참 이해가 안 가는 사람이야. 이 바닥에서 소문이 자자한 한량이라면서 기생 하나 건드리지 않으니. 자네가 정말 방
연회가 있던 날로부터 며칠이 지나도록, 김정 대감댁 안팎은 호직과 보암의 혼담 이야기로 시끌시끌했다. 그러나 정작 시경은 그런 화제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평소보다 더 심드렁한 얼굴로 사랑채에 틀어박혀 지내는 날이 많아졌다.호정은 여전히 그를 피해 다니는 방법들을 연구해 시경과는 최대한 마주치지 않고 있었다. 아침 문안도, 저녁 밥상머리도, 되도록 시경과 마주치지 않을 시각을 골라 움직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오히려 시경 쪽에서 먼저 트집을 잡으러 찾아오는 일이 잦아졌다."조카는 요즘 어찌 그리 코빼기도 안 비치느냐."별당 앞을 지나던 호정의 앞을 시경이 가로막아 섰다. 호정은 한숨을 삼키며 예를 갖추었다."딱히 숙부님을 뵐 일이 없어서요.""뵐 일이 없다니. 한 집안에 살면서 어찌 그런 말을 하느냐.""숙부님께서 저를 보실 때마다 좋은 말씀을 하시는 것도 아니온데, 굳이 마주칠 이유가 있사옵니까."호정의 대꾸에 시경은 잠시 미간을 좁혔다. 그러다 팔짱을 끼며 심드렁하게 답했다."흥, 어른을 그리 피해 다니는 것부터가 예법에 어긋나는 것이다.""숙부님께서 예법을 논하실 처지는 아니신 듯한데요.""뭐라?""낮부터 술 냄새를 풍기고 다니시는 분이 조카에게 예법을 가르치려 드시니 하는 말씀이옵니다."호정의 말에 시경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딱히 반박할 말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헛기침을 하며 다른 화제로 말을 돌렸다."그건 그렇고, 네 오라비 혼담이 그리 잘 풀리는 것을 보니 배가 아프지도 않느냐.""어찌 오라버니의 경사에 배가 아프겠사옵니까.""내 말은, 너도 슬슬 혼처를 알아보아야 할 나이가 아니냐는 것이다."뜻밖의 화제에 호정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시경이 그런 이야기를 꺼낼 줄은 몰랐던 까닭이었다."...아직 그런 생각은 해 본 적 없사옵니다.""생각이야 안 해 봤어도, 나이가 차면 어른들이 알아서 정해 줄 것이다."시경의 말투는 여전히 심드렁했지만, 어딘가 그답지 않게 그 화제를 오래 붙들고 있는 듯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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