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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47화

Author: 송언희
나태현이 잘못한 건 사실이었다. 그것도 아주 심각하게 말이다. 하지만 그가 수년간 잘못된 판단을 해왔다고 해도 지금은 달랐다.

“우리 아버지가 고은지를 데려갔다면 왜 데려갔겠어?”

배준우가 조용히 대답했다.

“그건 형이 직접 물어보는 수밖에 없겠죠.”

나태현은 할 말을 잃었다.

공기마저 무겁게 가라앉는 듯했고 모든 게 또다시 엉망이 되었다. 겨우 실마리를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한순간에 다시 혼란 속으로 빠져버렸다. 마치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배준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지 씨, 밖에 너무 오래 있으면 안 돼요. 형도 알잖아요.”

이 말만 남긴 채 그는 사무실을 나갔다.

나태현은 그대로 의자에 주저앉았고 온몸의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처럼 차가워졌다.

‘왜 이렇게 된 걸까?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왜 또 이런 일이...’

밖에선 이미 고은지 실종에 대한 충격적인 뉴스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정말로 아버지가 그녀를 데려간 걸까?’

복잡하기만 했던 상황은 고은지의 실종으로 인해 완전히 걷잡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신혜가 웨딩드레스를 들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태현 씨, 당신이 바쁜 거 저도 알아요. 그래서 드레스를 여기로 가져왔어요. 그러니까 태현 씨가 직접 봐줬으면...”

“꺼져.”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태현의 분노가 폭발해 버렸다. 그러자 지신혜는 순간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너야 뭐든 입든 말든 나랑 상관없어. 다 꺼지라고, 다!”

그 말을 들은 그녀는 입술을 꽉 다물었다. 분노에 찬 나태현을 바라보며 지신혜는 속으로 고은지를 원망하고 또 원망했다.

하지만 괜찮았다. 어차피 고은지는 이제 완전히 사라졌으니까, 다시는 그녀 앞에 나타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알겠어요. 그럼 전 먼저 가볼게요.”

지신혜는 고개를 돌려 드레스 들고 있던 직원들에게 손짓해 내보냈다. 사실 그녀도 이렇게까지 모욕을 당할 줄은 몰랐다.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태현은 지신혜에게 체면조차 주지 않았다. 이건 그녀 인생에서 처음 겪는 수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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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날밤, 상사의 아이를 임신했다   제1651화

    고은지는 더 이상 이름 없는 산골 여인이 아니었다. 그뿐만 아니라 배준우의 처형이라는 수식어 뒤에 숨는 존재도 아니었다. 그녀는 량천옥의 딸이었으니 말이다.‘그런 그녀를 감히 건드리려 하다니. 그 무모함은 과연 어디서 비롯된 거지?’장선명이 짧게 입을 열었다.“기다릴 필요 없어. 은지 씨는 이미 천락 그룹을 뒤엎고 떠났거든.”“뭐라고요?”안지영은 당혹스러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알지 못하는 일이 더 있는 모양이었다.“육명호 씨가 천락 그룹의 대규모 투자 프로젝트를 무려 다섯 건이나 빼앗아 갔어. 투자 자금이 수백억대인 프로젝트를 말이지.”“네?”“고은지 씨가 한 거야.”“그게 정말이에요?”안지영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는 처음부터 은지가 단순한 직장인처럼 생활하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했지만 이 정도로 판을 흔들 줄은 몰랐던 것이다.“천락 그룹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어떻게 그런 중요한 사업들을 그렇게 허무하게 뺏길 수가 있어?”그녀 눈에 비친 고은지는 그저 상처 많고 조용한 여자였다.‘그런 여자가 어떻게 이런 일을 해냈단 말인가.’그녀의 생각을 꿰뚫어 본 듯 장선명이 부드럽게 웃으며 안지영의 콧잔등을 가볍게 집었다.“아이를 잃은 여자를 얕보면 안 돼. 엄마는 강하다는 말이 그냥 생겨난 말이 아니거든.”세상 물정 모르는 것 같아보이던 여자라도 그런 일을 당하면 그 누구보다 냉철해지는 것이었다.“은지 씨가 초반에 일부러 육명호 씨한테 빼앗긴 프로젝트들은 천락 그룹 측에서 알아채고 막았어. 하지만 그건 다 눈속임이었지. 이번에 뺏긴 프로젝트들을 눈치챘을 땐 이미 손 쓸 수 없는 상태였고... 그렇게 결국 손해를 보게 된 거지.”안지영은 그 말을 들으며 고은지를 다시금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그녀를 깊은 절망 속에 내던졌던 나태현은 정녕 몰랐던 것이다. 그 어둠의 바닥에서 피어오르는 진짜 분노가 무엇인지 말이다. 고은지는 자신의 고통쯤은 얼마든지 참아낼 수 있었지만 고희주를

  • 그날밤, 상사의 아이를 임신했다   제165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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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태범이 모른다고 말하자 량천옥은 더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했다.“너 아니면 누군데? 네가 아니라면 누가 그런 짓을 해?”나태범은 말문이 막혔다.‘내가 아니면 누굴까?’정말 묘한 질문이었다. 일이 이렇게 터져버린 지금, 이건 정말이지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이었다.“누군지 모르겠으면 네가 생각해 봐. 그동안 네가 저지른 짓이 한두 개야? 이 강성에서 너 같은 인간이 몇이나 되겠냐고?”“일 터질 때마다 다 내 탓으로 돌리지 마.”나태범은 점점 숨이 막혀왔다. 진짜 이렇게 가다가 병원에서 그냥 죽는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가슴이 답답했다.량천옥이 이런 식으로 매번 들이받아 대니 자신이 무사히 퇴원이나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네 탓이 아니면 누구 탓인데? 나 건드리지 마. 나도 끝까지 몰아붙이면 무슨 짓을 할지 몰라.”“됐어. 지금 이러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망신이야. 예전에 그 일도 네가 다 까발렸잖아. 대체 어디까지 하려고?”그 말에 량천옥의 숨이 확 가라앉았다.‘예전 그 일이 모두에게 알려졌다고? 말도 안 돼...’나태범은 화를 참지 못하고 말했다.“우리 나씨 가문이 너 같은 여자 하나 때문에 끝장났어. 이러다 회사 주가까지 폭락할 판이라고!”그는 갑자기 심한 피로감을 느꼈다. 너무 지쳤던 것이다.하지만 그제야 량천옥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녀는 나태범을 바라보며 말했다.“내가 한 게 아니야. 난 그런 짓 안 했어.”“뭐?”‘그게 무슨 말이야?“그럼 너 말고 누가 했다는 거야?”나태범이 되물었다. 아까 그녀가 자신에게 퍼부었던 말을 그대로 되돌려준 것이었다.순간 량천옥의 머릿속이 멍해졌다.‘정말 모두가 알게 되었구나.‘나태현에게 그 모든 걸 털어놨을 때, 이미 각오했던 일이었는데도 막상 현실로 다가오니 너무도 고통스러웠다.“내가 아니면 누가 했지? 누가 했을까?”그녀의 세계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수년간 가슴속에만 품고 살았던 고통이 이렇게 세상에 드러났고 딸까지 사라져 버렸다. 지금 그녀가 마음을 놓

  • 그날밤, 상사의 아이를 임신했다   제1648화

    지신혜가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양지호가 급히 들어왔다.“대표님, 큰일 났습니다.”“또 무슨 일이야?”나태현은 이미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고은지가 사라졌다. 나태현도 배준우 앞에서 아버지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단언했지만 사실은 그도 누군지 확신이 없어 전화를 걸어 확인해 보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전화를 걸기도 전에 양지호가 사무실로 들어왔다.“유가그룹 쪽입니다.”유가그룹이라는 이름이 들리는 순간, 나태현의 눈빛은 더 차가워졌다. 고은지가 천락 그룹에 있었던 동안 육명호와 함께 무슨 짓을 벌였는지 이미 어느 정도 감은 잡고 있었다.‘고은지는 정말 나를 증오했던 게 틀림없어. 하지만 이미 정리된 문제 아닌가?’“저희가 하기로 했던 프로젝트 5개가 모두 유가그룹 쪽으로 넘어갔습니다.”“뭐라고?”“심지어 우리 측 위약금까지 그쪽에서 모두 부담했다고 합니다.”나태현은 말을 잃었다.‘위약금까지? 위약금이 얼마나 한다고?’이 다섯 개 프로젝트는 이미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건들이었다. 회사 내년 주요 계획의 핵심이기도 했고 말이다.‘내가 그렇게까지 미웠던 건가? 이 프로젝트 자료들은 대체 어디서 손에 넣은 거지?’사무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나태현의 가쁜 숨소리만 들릴 뿐이었다.이 사실을 알게되자마자 양지호도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듯했다.고은지와 육명호가 손을 잡았다는 얘기가 처음 들렸을 때부터 이미 경계하고 있었고 가능한 정보 유출도 막아왔다. 하지만 지금 보니 그 모든 건 눈속임이었고 육명호의 진짜 목표는 이쪽이었던 것이다.고은지는 애초부터 소소한 반격 따윈 바라지 않았다.이 다섯 프로젝트가 무너지면, 천락 그룹 이사회는 아수라장이 될 것이 뻔했다. 나태현은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육명호, 진짜 통 크네...”양지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금은 배준우를 감탄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들의 목표를 위해서라면 누구와도 손을 잡고 누구든 이용할 수 있는 인간이었다. 여자를 앞세운 거래도 서슴지 않았기에 양지호 눈에

  • 그날밤, 상사의 아이를 임신했다   제1647화

    나태현이 잘못한 건 사실이었다. 그것도 아주 심각하게 말이다. 하지만 그가 수년간 잘못된 판단을 해왔다고 해도 지금은 달랐다.“우리 아버지가 고은지를 데려갔다면 왜 데려갔겠어?”배준우가 조용히 대답했다.“그건 형이 직접 물어보는 수밖에 없겠죠.”나태현은 할 말을 잃었다.공기마저 무겁게 가라앉는 듯했고 모든 게 또다시 엉망이 되었다. 겨우 실마리를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한순간에 다시 혼란 속으로 빠져버렸다. 마치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었다.배준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은지 씨, 밖에 너무 오래 있으면 안 돼요. 형도 알잖아요.”이 말만 남긴 채 그는 사무실을 나갔다.나태현은 그대로 의자에 주저앉았고 온몸의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처럼 차가워졌다.‘왜 이렇게 된 걸까?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왜 또 이런 일이...’밖에선 이미 고은지 실종에 대한 충격적인 뉴스들이 쏟아지고 있었다.‘정말로 아버지가 그녀를 데려간 걸까?’복잡하기만 했던 상황은 고은지의 실종으로 인해 완전히 걷잡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지신혜가 웨딩드레스를 들고 사무실로 들어왔다.“태현 씨, 당신이 바쁜 거 저도 알아요. 그래서 드레스를 여기로 가져왔어요. 그러니까 태현 씨가 직접 봐줬으면...”“꺼져.”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태현의 분노가 폭발해 버렸다. 그러자 지신혜는 순간 제자리에 얼어붙었다.“너야 뭐든 입든 말든 나랑 상관없어. 다 꺼지라고, 다!”그 말을 들은 그녀는 입술을 꽉 다물었다. 분노에 찬 나태현을 바라보며 지신혜는 속으로 고은지를 원망하고 또 원망했다.하지만 괜찮았다. 어차피 고은지는 이제 완전히 사라졌으니까, 다시는 그녀 앞에 나타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알겠어요. 그럼 전 먼저 가볼게요.”지신혜는 고개를 돌려 드레스 들고 있던 직원들에게 손짓해 내보냈다. 사실 그녀도 이렇게까지 모욕을 당할 줄은 몰랐다.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태현은 지신혜에게 체면조차 주지 않았다. 이건 그녀 인생에서 처음 겪는 수치였다.

  • 그날밤, 상사의 아이를 임신했다   제1646화

    고은영이 눈썹을 찌푸리며 시선을 들자 마주한 것은 혐오가 가득 담긴 지신혜의 노골적인 눈빛이었다.둘의 시선이 정확히 마주쳤다. 지신혜인 걸 확인한 고은영 역시 얼굴빛이 굳어졌다. 지신혜는 고은영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곧장 시선을 돌려 양지호에게 물었다.“배 대표님 말인데요. 안에서 얼마나 더 계실 거죠?”그녀는 분명 고은영을 보기 싫어했지만 동시에 배준우를 불쾌하게 만들 자신은 없었다.양지호는 얼굴을 찡그리며 대답했다.“배 대표님도 방금 들어가신 거라서요. 급하시면 오늘은 이만 돌아가셔도 됩니다.”그 말에 지신혜는 속으로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고은영 앞이었기에 결국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전에 고은지 앞에서는 그렇게 당당하고 거침없던 그녀가 지금은 얌전했다.“양 비서님.”고은영이 양지호를 조용히 불렀다.“네, 필요하신 거라도 있으신가요?”“여기 공기가 좀 안 좋아서요. 회의실로 가도 될까요?”“물론입니다.”양지호는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지신혜의 표정이 더 어두워졌다.‘공기가 안 좋다고? 방금 전까진 얌전히 있었으면서 지금 내가 옆에 서니까 갑자기 공기가 안 좋다는 거야? 그래서 회의실로 가겠다고?’‘뭐 얼마나 잘났다고 그래? 결국 남편인 배준우 덕분이면서... 배준우가 없었더라면 뭐 하나 제대로 할 수 있긴 해?’고은영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양지호와 함께 회의실로 향했고 지신혜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발을 구르며 화를 삭였다....그 시각, 사무실 안.배준우가 모든 상황을 설명하자 나태현의 얼굴은 완전히 굳어 있었다.“뭐라고 했지? 고은지가 사라졌다고?”“프랑스로 간 거 아니었나?”나태현이 놀라서 되묻자 배준우가 고개를 저었다.“되게 이상해요. 공항에서 티켓을 변경한 사람도, 비행기에 탄 사람도 은지 씨가 아니었습니다.”“고은지가 아닌데 고은지 여권으로 비행기를 탄 거라고? 뭘 노린 거지?”말하는 내내 나태현의 말투는 점점 격앙되어 갔고 이마엔 핏줄까지 도드라졌다.배준우는 차분히 말했다.“형네 아버지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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