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 비위가 상한듯한 말투에 고은영은 숨이 막혔다.또 뭐가 마음에 안 들어서 저러는 걸까?배준우는 신호등을 지나서 길가에 차를 세웠다.고은영은 도망치듯이 차에서 내렸다.배준우는 놀란 토끼마냥 도망가는 뒷모습을 보고 기분이 상했다.‘내가 잡아먹어? 왜 저렇게 나를 무서워하지?’회사로 돌아온 고은영은 곧장 나태웅의 사무실로 직행했다.계약서를 작성하자는 그녀의 말에 나태웅이 정색하며 그녀에게 말했다.“서면 계약서는 안 돼.”“네? 왜요?”고은영은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서면 계약서를 써야 계약이 유효한 거 아닌가?서면 계약서도 없이 나중에 논란이 생기면 어떻게 해명하려고?나태웅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자신의 검은색 안경을 치켜올리며 말했다.“계약서를 썼다가 유출이라도 되면 나중에 더 곤란해질 거야.”고은영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나태웅이 계속해서 말했다.“계약서 유출로 생길 곤란한 상황을 대비해서 서면 계약서는 써줄 수 없어.”“두 사람 이혼할 때 대표님이 보수로 200억을 챙겨주실 거야.”200억?고은영은 순간 숨이 멎었다. 평생 만져보지 못한 금액이었다.그녀의 현재 월급은 세금 떼고 400만원이 조금 넘었다. 그리고 부업으로 벌어들인 돈이 40만원 정도. 얼마나 일을 열심히 해야 저 금액을 벌 수 있을까?고은영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그냥 계약서 쓰죠? 저 절대 누구한테도 이야기하지 않을게요!”200억이라니!만약 배준우가 마음이 변해서 안 주기라도 하면?게다가 계약결혼이라면 당연히 기한이 있어야 한다. 계약기간이 끝나면 고은영도 부자가 되는 것이다.고은영의 눈에 약간 욕망이 번뜩였다.나태웅이 정색하며 말했다.“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그건 안 돼.”“정말 안 돼요?”“안 돼!”고은영은 울고 싶어졌다.서면 계약서도 없는 계약결혼이라니! 그것도 200억이 걸린 계약인데.배준우가 변심해서 그 돈을 안 준다고 해도 어디 가서 하소연할 수 없었다.나태웅이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고은영의 입가에 다시 경련이 일었다. 그런 곳은 도대체 언제 생긴 거지?하지만 200억을 위해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고은영은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배준우를 바라봤다.그 모습을 본 배준우가 물었다.“왜?”“그게… 조금전에 나 실장님은 서면 계약서를 못 만든다고 하시더라고요.”“이유는 나 실장이 설명했겠지?”“네. 그냥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일 끝나고 보수로 200억 준다는 게 사실이에요?”고은영은 거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배준우 같은 부자 앞에서 돈 얘기를 하는 게 속물처럼 보이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나태웅의 말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그는 그냥 비서실장이고 동영그룹에서 발언권을 가진 사람은 배준우였다.금액이 금액인지라 고은영은 확실히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배준우가 인상을 쓰며 물었다.“금액이 적어서 그래?”“아, 그건 아니고요! 그냥 확실히 해두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당연히 적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많아서 현실감이 떨어졌다.고은영은 쑥스러운 표정으로 그의 눈치를 살폈다.배준우는 겁 많은 고 비서가 발칙하게 그의 앞에서 돈 얘기를 먼저 꺼낸 것이 놀라웠다.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사실이야. 그리고 매달 따로 1000만 원씩 계좌에 입금할 거야.”고은영은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진짜요?”“지금 내 말 의심해?”“아니요? 그럼 회사 월급은요?”고은영의 눈에서 희열이 차올랐다.배준우는 눈까지 반짝이는 그녀를 보자 웃음이 나왔다.“월급은 정상적으로 지급하지!”매달 1000만 원 보너스에 월급도 정상 지급이면 매달 받는 돈이 1400만원이었다.더 이상 집대출 때문에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었다.고은영은 거대한 금액 앞에 잠시 배준우에 대한 두려움도 잊은듯했다.배준우는 평소에 월급을 적게 준 것도 아닌데 돈 앞에서 좋아 어쩔 줄 몰라하는 그녀를 보자 어처구니가 없었다.하지만 만약 그가 그녀의 어린 시절이 어땠는지 알았더라면 아마 이런 그녀를 이해했을 것이다.고은영은
어젯밤에도 단단히 당부했지만 사실상 안지영은 어제 밤새 잠이 오지 않았다.배준우의 행보로 보아 그들의 계약결혼은 동거를 전제로 하는 게 분명했다.순진해 빠진 고은영이 언제 자신들의 비밀을 전부 털어놓을지 안심할 수 없었다.“몰라. 하지만 그 뒤로 더 이상 그날 밤 얘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어. 아마 괜찮을 거야.”“만약에 대표님이 물어보면?”안지영이 씩씩거리며 되물었다.고은영은 멍한 표정으로 친구를 바라보았다.“내가 어제 말한 거 다 잊었어?”“뭐를?”“내가 어제 말했잖아. 그날 밤 얘기가 나오면 최대한 빨리 화제를 돌리라고!”그 얘기를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위험했다.고은영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알았어. 주의할게.”“바로 당장 화제를 돌릴 자신 있어?”“아니 없어.”고은영은 솔직하게 대답했다.배준우 같은 능구렁이 앞에서 일부러 화제를 돌리려는 낌새를 보인다면 바로 눈치챌지도 모른다.안지영의 불안감은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예전에는 낮에만 배준우를 상대하면 되었지만 지금은 밤에도 그와 같은 공간에서 보내야 한다.밤에는 사람이 감성적으로 변해서 가장 실수하기 좋은 시간이었다.안지영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우리 가문의 운명이 네 손에 달렸구나!”두 사람이 이미 결혼한 이상 운명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고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혹시 들통나더라도 절대 너한테 피해가 가지 않게 할게.”그게 네 맘대로 되겠어?배준우는 끝까지 사건의 경과를 파고드는 성격이었다. 고은영을 2년이나 옆에서 지켜봤으니 그녀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는 그가 가장 잘 알 것이다.영상 파괴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사한다면 공범이 있다는 게 밝혀지는 건 시간문제였다.고은영은 대범하게 그런 짓을 벌일만한 능력이 없었으니까.안지영은 생각만 하면 한숨이 나왔다.결국 그녀는 또 한바탕 고은영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았다.기분이 좋았던 고은영은 그녀가 뭐라고 하든 흔쾌히 받아들였다.안지영이 어처구니 없는 얼굴로 물었다.“너 오늘
고은영은 시간을 확인하고는 차분하게 말했다.“김 비서님이 직접 가셔야겠는데요?”같은 비서실이라도 각자 맡은 업무는 스스로 처리하는 게 원칙이었다.그리고 그녀와 김연화는 업무 상 접점이 없었다.“난 이따가 배 대표님이 회의 들어가실 때 같이 들어가기로 했어요. 시급한 사안이에요.”옆자리에 앉은 민초희가 인상을 쓰며 자리에서 일어섰다.“그건 제가 갈게요.”배준우가 회의 들어갈 때 항상 고은영이 같이 들어갔는데 김연화가 언제 대표와 회의를 같이 들어갔다고 저럴까?고은영은 배준우의 사무실에 시선을 돌렸지만 블라인드 커튼이 쳐져 있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김연화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왜요? 내 말 못 믿겠으면 대표님한테 가서 확인해 보면 되잖아요.”고은영은 시선을 거두고 자리에서 일어섰다.“알았어요. 제가 갈게요.”평소에는 그럭저럭 잘 지냈다고 생각했는데 비서실장 자리가 난다는 얘기가 돌아서 신경전이 벌써 시작된 것 같았다.김연화는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자리를 떴다.민초희가 다가와서 말했다.“은영 씨는 대표님 직속 비서잖아요. 김 비서는 뭘 믿고 은영 씨한테 명령하는지 모르겠어요. 그거 저 주세요.”“제가 갈게요.”고은영이 웃으며 말했다.배준우가 30분 뒤 회의에 김연화를 데리고 들어가기로 했다면 벌써 비서실장으로 그녀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게 분명했다.그리고 배준우는 예전에 그녀에게 실력을 좀 더 늘려야겠다는 식의 말을 했으니 고은영은 자신은 승진할 기회가 거의 없다고 생각했다.그러니 나태웅의 뒤를 잇는 사람은 김연화가 될 것이다.민초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럼 빨리 갔다와요.”대표실 직속 비서가 자리를 비우면 배준우가 또 성질을 부릴지도 모른다.고은영은 일단 명성에 서류를 전달한 뒤, 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식자재를 구매하기로 했다.그런데 그녀가 자리를 뜨자마자 배준우에게서 내선전화가 걸려왔고 민초희가 받았다.고은영의 목소리가 아닌 것을 눈치챈 배준우가 굳은 어투로 물었다.“고 비서는?”“김 비서가 고
하지만 지금은 입장이 달라졌다. 나태웅이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그건 대표님이 가장 잘 아시겠죠. 대표님이 남편이시잖아요!”보스의 사모님이나 되는 사람을 누가 감히 함부로 부릴 수 있을까?그런데 아침에 혼인신고까지 하고 온 사람이 어딜 사라진 거지?배준우가 담배를 꺼내며 차갑게 말했다.“명성에 서류 전달하러 갔어!”그 말을 들은 나태웅은 가슴이 철렁했다.“고 비서가 명성에 갔다고?”명성 지사에는 변태로 소문난 장 사장이 있어 김연화도 매번 거기 가기 싫어했다.고은영은 장 사장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텐데 혹시 갔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배준우가 음침한 얼굴로 말했다.“명성 지사 담당이 누구지?”나태웅은 순간 눈앞이 아찔했다.‘김연화 이 멍청한….’그는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지금 처리할게.”말을 마친 그는 부랴부랴 사무실을 나서며 고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고은영은 가는 길에 음료수 하나 구매하려고 슈퍼에 가다 나태웅의 전화를 받았다.“고 비서 지금 어디야?”“아직 버스 타기 전이예요. 30분 정도 뒤에 명성에 도착할 것 같아요.”나태웅은 그 말을 듣고 안도의 숨을 내쉬며 말했다.“안 갔으면 됐어. 당장 회사로 복귀해!”“네?”“당장 복귀해. 대표님이 찾으셔!”고은영은 순간 어이가 없었다.회의에는 김연화가 같이 들어가는 거 아니었나? 또 무슨 일로 찾으시지?불만이 많았지만 결국 그녀는 알겠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전화를 끊은 고은영은 곧장 회사로 돌아갔다.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민초희가 그녀에게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다.김연화는 배준우가 회의 들어가는 시간에 맞춰서 비서실로 복귀했다.서류를 들고 있는 고은영을 보자 그녀는 굳은 얼굴로 따지듯 물었다.“아직도 안 갔어요?”“그게….”“일 지체되면 고 비서가 책임질 거예요?”김연화는 시간을 확인하며 짜증을 부렸다.소리를 들은 나태웅이 음침한 얼굴로 사무실에서 나왔다.“김연화 씨.”나태웅의 목소리를 들은 김연화는 언제 그랬냐는 듯 해맑은 표정
나태웅은 안타까운 시선으로 김연화를 바라보며 말했다.“김 비서는 다 좋은데 성격이 너무 급한 게 문제야!”조금만 차분하게 일을 처리했더라면 오늘 같은 상황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조급해진 김연화는 계속 죄송하다고 사과했지만 나태웅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외근을 마치고 돌아온 정유비는 한창 혼나는 김연화를 보고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훈계를 마친 뒤, 나태웅이 말했다.“앞으로 고은영 씨는 대표님이 직접 지시한 업무만 진행할 거야. 다른 업무는 자네들이 알아서 분담해!”알아서 분담하라니?그 말은, 그들이 고은영이 원래 하던 몫까지 완성해야 한다는 의미였다.“정 비서, 따라와!”나태웅은 그 말을 끝으로 차갑게 등을 돌렸다.빨리 발견해서 다행이지 만약 고은영이 명성에서 나쁜 일을 당했다면 배준우는 비서실 전체를 상대로 칼춤을 출 게 분명했다.나태웅은 배준우가 시골 처녀 고은영을 왜 이렇게까지 감싸고 도는지 가끔 이해를 할 수 없었다.신원조사도 해봤지만 두 사람은 과거에 접점이 없었다. 어떻게 된 거지?정유비는 김연화의 옆을 지나치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김연화는 화가 울컥 치밀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정유비가 나태웅의 사무실로 들어가자 김연화는 민초희한테 화풀이했다.“뭘 그렇게 봐요?”민초희는 상대하기 싫었기에 조용히 시선을 거두고 할 일을 했다.김연화는 정유비한테 밀렸다는 생각에 울화가 치밀었다. 그녀는 명성 서류를 다시 민초희한테 던지며 말했다.“민 비서가 이거 전달해요.”민초희는 냉랭한 말투로 대꾸했다.“나 실장님 말씀하신 거 못 들었어요? 고 비서님 업무 대신해야 해서 시간 없거든요? 김 비서님 일은 김 비서님이 직접 하세요!”“이게….”김연화는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았다.동영그룹에서 5년이나 일했지만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다. 실력이 워낙 출중했기에 다른 부서 상사들도 그녀만 떠받들었다.민초희가 말했다.“비서실에서 비서실장 후임을 뽑겠다고 말했지 김 비서님이라고 꼭 집어 말한 적은 없잖아요!”하지만
배 대표님 맞아?억대의 프로젝트 회의를 하고 있는중에, 지금 여기서 사생활에 대해 묻고 있다고!?민초희와 재무 경리는 눈을 마주치고, 서로의 눈에 스치는 경악을 보게 됐다!두 사람은 배준우가 크게 화를 내며 고은영을 멍청하다고 욕할 줄 알았다.그런데, 순간 배준우의 말투에 부드러움이 추가됐다.“다 사면 들 수 있어?”민초희.“…….”재무 관리자.“…….”두 사람은 심장이 움츠러들고 곧이어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저 사람이 정말 고비서 맞아?별거 아닌…… 비서!?고은영은 자신이 들 수 있다고 하더니 부엌에 아무것도 없지 않냐고 다시 물었다.배준우는 그녀에게 일단 조금만 사라고 말했다. 그녀가 다 들지 못할 까 봐 걱정하는 둣했다. 회의실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멀리 떨어져 앉아 전화 내용을 제대로 듣지 못해 모두 배준우에게 전화를 건 사람이 도대체 누구인지 추측하고 있었다.배 대표의 이런 부드러운 모습을 보게 되다니!방금 전화 너머의 대상을 향한 배준우의 말투는 이전에 모두가 보지 못했던 부드러운 말투였다.민초희과 재무 매니저는 특히 더욱 큰 충격에 빠졌다. 이전에 배준우는 고은영에게 엄청 사납게 굴어 고은영도 그를 무서워했다…….그러나 이 통화에서 두 사람의 관계가 그들이 보는 것만큼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아무튼 사장님과 비서 그런 사이는 아닌 것 같았다.배준우가 전화를 끊자 표정이 다시 차가워졌다. 방금 전의 부드러움은 착각인 듯 그의 무거운 목소리만 들렸다.“계속해.”모든 사람들이 순간 정신을 차리고 다시 회의를 시작했다.슈퍼마켓에서 물건을 사는 고은영은 자신이 방금 도대체 무슨 놀라운 일을 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그녀는 통 밀가루 한 봉지, 국수, 양념 몇 개를 사고, 야채 코너에 가서 녹색 야채를 골라서 샀고, 양념은 모두 소포장된 것으로 골랐다.비록 그녀가 고른 것은 작은 포장들 이었지만, 양이 많아서 계산할 때는 한 봉지 가득이었다.생각보다 들기에 무거웠다!어려서부터 농사일을 하던 그녀는
배준우는 미간을 찌푸렸다.“이게 무슨 국수야?”“야채 국수예요.”고은영이 진지하게 말했다.배준우도 야채 국수인 걸 눈치챘다. 면과 녹색 잎 야채가 모두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그러나 그것 외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기름도 없는 것 같았다. 예상이 맞다면 물국수인 것 같은데?배준우는 앉아서 젓가락을 들고 뒤적거렸으나, 역시 다진 고기조차 없는 간단한 물국수였다.한 입 맛본 배준우는 하마터면 토할 뻔했다.고은영은 그의 표정을 보고 다시 긴장하기 시작했다.“맛, 맛이 없나요?”“소금 말고는 아무맛도 안 나네. ”배준우는 애써 차분하게 말했다.아침에 그녀는 여러 가지 면을 만들 줄 안다고 해서 한 번 맛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배준우는 앞으로 고은영의 일에 대해 너무 궁금해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은영은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저희는 예전에 모두 이렇게 만들었어요!”그녀가 밥을 짓는 것을 접하는 유일한 시간, 즉 할머니와 함께 있을 때였다. 할머니는 이렇게 먹으면 건강에 좋다고 줄곧 말하셨다. 그래서 면을 만들 때마다 소금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넣지 않았다.그녀는 요 몇 년 동안 모두 이렇게 먹어와서 이 맛에 익숙해졌지만, 배준우는 처음이었다.이 맛은 그에게 있어서 보통 맛없는 것이 아니었다.“휴…….”결국 한숨을 쉬며 일어나 국수를 들고 주방으로 갔다.고은영은 따라가야 할지 어떡해야 할지 몰랐다.그녀 역시 자신이 잘못한 것 같았지만, 어떻게 해야 맞을지 몰랐다.곧 주방에서 '타닥타닥’ 기름이 튀는 소리가 들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의 후각을 자극하는 향기가 퍼졌다.배준우가 다시 나왔을 때, 그 하얀 국수에 토마토 계란 볶음이 추가되었었고, 다진 고기도 볶았져 있었다. 고은영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배준우가 낮게 말했다.“네 건 주방에 있어.”그녀 것도 있다고?그녀는 아까 자신이 먹을 것을 만들지 않았다. 오늘 아침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배 대표와 함께 식사한 적이 없었다.게다가 언니가 싸준 음
“나태웅이 두려워하는 게 뭐 있어요!”안지영이 화를 내면서 얘기했다.나태웅은 장선명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안지영에게 있어서 나태웅도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게다가 나태웅이 좋아하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이게 사람 맞나 싶을 정도였다.“나태웅은 극단적인 거지 멍청한 건 아니야.”나태웅은 본인에게 유리하고 불리한 것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늘 안지영 앞에 나타난 걸 떠올리면... 장선명은 그런 나태웅을 가만히 둘 수 없었다.“그래도 이 사진들은 다 사실이죠.”“네가 이 사진 때문에 화를 내는 건 기쁜 일이지만 너한테 제대로 얘기해야 할 게 있어.”거기까지 얘기한 장선명이 말을 끊었다.안지영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뭐요?”장선명과 결혼 준비를 하면서 안지영은 이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소문 속의 장선명은 냉철하고 칼같은 사람이라고 했지만 안지영 앞의 장선명은 항상 웃는 얼굴로 자상하게 안지영을 대해주었다.그래서 안지영은 장선명이 도대체 왜 본인과 결혼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분명 비즈니스 때문에 시작한 부부 연기인데 말이다!사실 처음부터 안지영은 장선명이 왜 본인을 도와주는 건지 알 수 없었다.나태웅이 가져온 사진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장선명은 안지영의 목을 부드럽게 감싸고 코끝으로 안지영의 코끝을 가볍게 눌렀다.“그 사람이 살아있다고 해도 내가 사랑하는 건 너야.”“...”그 말을 들은 안지영은 심장이 순간 멎는 것 같았다.“정, 정말이에요?”‘잘못 들은 건가? 그 사람이 선명 씨한테 엄청 중요한 사람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과거는 과거일 뿐이야. 현재의 나는 네가 없으면 안 돼. 그 사람을 이미 다 잊었으니까 너랑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거야.”장선명은 진지한 말투로 얘기했다. 안지영은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장선명을 쳐다보더니 심호흡을 한 후 얘기했다.“그렇게 많은 여자들이랑...”“나랑 그 사람들은 아무 사이도 아니야. 안열이 전에 얘기해줬을 텐데.”“그래도 남자들
“얘기해 봐. 어떻게 해야 화를 풀 거야.”“하, 다른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걸 정도였다면서요! 내가 화를 안 내고 배겨요?”안지영이 차갑게 얘기했다.“...”장선명은 약간 어리둥절해하면서 물었다.“내가 누구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거야? 나는 왜 모르겠지.”“이...”안지영은 인정하지 않는 장선명의 모습을 보면서 더욱 화가 났다.“정말 화가 난 거야?”“당연하죠. 난 대용품이 되고 싶지 않다고요!”장선명은 화가 난 안지영을 보면서 본인이 왜 안지영에게 빠진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안지영은 느낀 것을 그대로 얘기하는 솔직한 사람이었다. 가식적으로 돌려 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그래서 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이 좋았다.“누가 그래, 네가 대용품이라고. 나태웅이 그래?”장선명이 안지영의 두 볼을 가볍게 꼬집으면서 얘기했다.그 말투는 마치 딸을 대하는 아버지처럼 부드러웠다.안지영은 장선명을 힐긋 보더니 얘기했다.“수많은 사진이 증명하고 있잖아요.”그 사진만으로도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었다.“그 사진들은 아무것도 아니야. 절대 나태웅을 믿지 마. 응?”“흥.”“아직도 화가 난 거야? 제발 내 말 좀 들어줘.”“안 들을래요!”안지영은 아예 고개를 홱 돌렸다.안지영은 너무나도 솔직하고 가감 없는, 상대방에게 본인이 왜 화가 났는지 잘 알려주는 사람이었다.장선명은 화가 나 등을 돌린 안지영을 보면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원래는 좀 더 놀려주고 싶었지만 반응을 보니 그만해야 할 것 같았다.“알았어. 설명할게.”한숨 자고 일어났지만 여전히 이 일로 화를 내는 걸 보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았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말을 듣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니요. 됐어요. 설명하지 마요. 듣고 싶지 않으니까요.”진실이 두려워서 듣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장선명은 웃으면서 얘기했다.“왜? 내가 널 잡아먹을까 봐 무서워?”그 말에 안지영은 또 참지 못하고 장선명을 가볍게 때렸다.오전에 있었던 일을 생각
안지영은 오후 두 시에 중요한 회의가 있었다. 하지만 안열은 사무실에서 안지영을 발견하지 못했다.‘설마 내가 한눈판 사이에 두 분이 나간 건가?’1시 30분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안열은 급한 마음에 얼른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전화를 받은 건 장선명이었다.“무슨 일이야.”그 말에서 안열은 이미 장선명의 짜증을 읽어냈다.안열은 약간 놀랐다.“선, 선명 도련님? 30분 뒤 안 대표님이 참석하셔야 하는 중요한 회의가 있습니다. 지금 안 대표님은 어디에...”휴게실에 있는 장선명은 고개를 숙이고 품에서 자고 있는 안지영을 쳐다보았다.오전에 너무 과했던 탓일까, 안지영은 계속 쭉 자고 있었다.“그냥 회의를 취소해.”“네? 그건...”“무슨 문제라도 있어?”“아, 아니요. 오늘 회의는 부승호도 참석하는 회의라... 알잖습니까.”부승호는 바로 하늘 그룹을 배신한 사람이다. 그러니 이번 회의가 얼마나 중요한지 장선명은 바로 알 수 있었다.장선명이 차가운 눈빛으로 얘기했다.“부승호한테 얘기해. 오늘 저녁 날 만나러 오라고.”“직접 나서서 안 대표님을 대신하실 생각입니까?”안열이 놀라서 물었다.예전에는 안지영이 성장할 수 있게 혼자 내버려두지 않았던가.그래서 안열과 장선명 다 안지영의 뒤에서 묵묵히 안지영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동안 안지영은 많은 일을 혼자서 해결했다.부승호와 마주하는 것도 안지영에게 있어서는 그동안의 실력을 검증할 가장 좋은 기회다.“무슨 문제라도 있어?”그 말에 안열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아닙니다!”안열은 여전히 장선명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저 장선명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로 했다.안열은 얼른 눈치껏 전화를 끊었다. 장선명은 전화가 끊긴 것을 확인하고 바로 폰을 꺼버렸다.안지영은 이미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장선명은 안지영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지금 몇 시예요?”“피곤하면 그냥 자.”장선명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얘기했다.안지영은 눈
테이블에는 다른 사진이 더욱 많았다.나태웅은 정말 이를 갈고 해외로 간 것이 틀림없었다.이것까지 다 알아내다니...이건 장선명의 가장 어두운 과거이자 다시는 들추고 싶지 않은 일들이다.하지만 그 일들이 지금은 나태웅 때문에 다시 밝혀지게 되었다.그동안 장선명이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마주할 수 없었던 과거들이었지만, 안지영이 건네준 사진을 보면서 장선명은 어느새 그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내려놓았다는 것을 발견했다.지금 와서 과거의 일을 돌이켜보니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그 여자가 누구인지 얘기하라고요!”안지영이 화가 난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러면서 장선명의 품에서 나오려고 안간힘을 썼다.하지만 장선명은 여전히 안지영을 꾹 잡고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그리고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더니 안지영의 앞에서 사진을 바로 불태워버렸다.“뭐, 뭐 하는 거예요!”안지영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장선명은 불에 탄 사진을 그대로 재떨이 속으로 던져버렸다.담배를 피우는 장선명을 위해 안열이 준비해 둔 재떨이였다.안지영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 그동안은 쓸모가 없었지만 지금은 아주 유용했다.테이블 위의 사진은 다 재떨이 안으로 들어가 활활 타올랐다.안지영은 멍해서 물었다.“그렇게 변명도 하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변명? 이건 다 지나간 일일 뿐이야.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 다 잊었고. 뭐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생각도 안 나네.”“...잊었다고요?”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안열이 그러지 않았던가.장선명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다고.사진 속의 여자들이 모두 비슷하게 생긴 걸 보면 장선명은 정말 그 여자를 아주 사랑한 것 같았다.그런데 그걸 잊다니.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그런 안지영의 모습을 본 장선명은 환하게 웃으면서 안지영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또 입술을 맞췄다.“읍... 아니, 읍...”‘미남계를 쓰겠다는 거야?’안지영은 약간 화가 났다. 원래 이런 건 그냥 두면 찝찝한 편이다. 사실을 알지 못하면 마음에 걸리니까 말이다.
사무실에 들어간 장선명은 안지영이 그를 등지고 의자에 앉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이미 뒷모습에서부터 안지영의 화난 모습이 보였다.앞으로 다가가 의자를 돌린 장선명이 두 손으로 의자의 손잡이를 잡았다.그리고 웃는 눈으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안지영이 화가 나서 씩씩 대는 모습을 보았을 때도 더욱 환하게 웃었다.하지만 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을 보면서 더욱 화가 났다.“웃겨요?”“질투하는 거야?”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말을 듣고 약간 놀랐다.“화 안 났어요. 난 화를 잘 안 내는 사람이에요.”“그래?”“...”질투냐고?안지영은 질투가 뭔지 몰랐다.하지만 눈앞의 이 남자가 다른 여자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속이 좋지 않았다.생각에 잠겨있을 때 갑자기 안지영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장선명이 안지영을 번쩍 안아 들고 의자에 앉은 것이었다.장선명은 웃음기 가득한 시선으로 안지영을 바라보고 있었다.안지영은 놀라서 허둥대면서 얘기했다.“이거 놔요!”하지만 장선명은 움직이는 안지영을 놔주지 않고 그대로 입술을 가져갔다.안지영이 버둥댈수록 장선명은 더욱 깊게 안지영의 입술을 머금었다.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결국 안지영이 숨을 쉬지 못하자 장선명이 안지영을 풀어주었다.안지영이 손을 들어 장선명의 뺨을 치려고 할 때, 장선명이 안지영의 손목을 잡고 웃으면서 물었다.“화났어?”“흥.”안지영은 화가 났다.그것도 단단히 화가 났다.안지영은 장선명이 점심 전에 도착한 것이 분명 그 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안열이 알려줬을 테니까 말이다.그런데 와서 아무 해명도 하지 않고 입술부터 들이미니, 너무 미웠다.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을 보면서 짜증스러운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오히려 속 편히 웃으면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그리고 마지막에는 한숨까지 푹 내쉬었다.“그렇게 화가 난 거야?”말을 마치고는 안지영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안지영은 이제 더는 참을 수 없었다.“오자
“네? 그게 무슨 뜻이에요?”안지영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안열을 바라봤다. 안열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어휴, 됐어요. 더 얘기해 봤자 짜증만 나요.”더 말했다간 정말 참지 못하고 화를 낼 것 같았다.나태웅에 대해 할 욕은 이틀 밤을 새워도 모자랄 정도였다.“...”사람을 화나게 만드는 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고...안지영은 뾰로통해진 채로 안열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안열은 휙 돌아서 사무실을 나갔다.지금 안열의 머릿속에는 나태웅에 대한 욕뿐이었다.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감히 또 안지영을 찾아오다니.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온 건지......사무실에 홀로 남겨진 안지영은 아까 안열이 한 말을 떠올렸다.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지?평소에는 똑 부러지고 영리한 안지영이지만, 이번만큼은 안열의 말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뻔뻔하다는 뜻이라면... 나태웅은 원래부터 그렇게 뻔뻔했다.하지만 이번은...안열은 복잡한 생각에 머리를 휙 털었다.그리고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장선명에게 전화를 걸었다.원래는 장선면은 점심쯤에 안지영을 데리러 올 예정이었지만, 안지영의 전화를 받고 바로 달려왔다.안지영의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장선명은 안열이 자리에 앉아 아이스팩을 발 위에 올려놓은 것을 발견했다.“다리는 왜 그래?”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안열은 깜짝 놀라 손에 쥔 아이스팩을 떨어뜨릴 뻔했다.장선명을 보자, 안열은 얼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읏...!”하지만 고통을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어떻게 된 거야?” 그렇게 묻는 장선명의 목소리는 차가웠다.안열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 힘들었다.안열은 고개를 숙였다. 차마 나태웅 때문이라는 말은 꺼내지 못해 그저 둘러댔다.“그냥... 실수로 넘어진 거예요.” “어떻게 넘어졌길래 거기만 그렇게 다치는 거야?” 장선명의 시선은 예리했다.보통 넘어진다면 무릎이 먼저 다치기 마련인데 안열은 무릎은 멀쩡하
나태웅은 믿을 구석 하나 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나태웅이 가져온 정보 때문에 안지영은 더욱 속이 복잡해졌다.안열은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하고 얘기했다.“약 좀 바르고 올게요.”그 말에 안지영은 생각이 끊겨버렸다.정신을 차린 안지영은 안열의 발등이 부어올랐다는 것을 발견했다. 장선명이 사랑하는 사람...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안열은 본 안지영은 결국 또 나태웅에게 화가 났다.“왜 이렇게 된 거예요. 정말 나태웅을 못 이기는 거예요?”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일방적으로 맞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밖에서 싸우는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안열은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제가 만약 나태웅과 싸워서 이길 수 있었다면 진작 죽여버렸을 겁니다.”“...”진작 죽여버린다니.그 ‘진작’은 과연 언제일까?다시 생각해도 나태웅은 정말 독설만 퍼붓는 사람이었다. 안열을 볼 때마다 개라고 욕하니까 말이다.그래도 전에 동영 그룹에서 출근할 때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안지영은 우물쭈물하면서 안열에게 물었다.“두 사람, 전에도 안 좋은 사이였어요?”안열과 나태웅이 만날 때마다 안열은 대수롭지 않아 했고 나태웅은 화를 냈었다.그러니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그렇게 물으면서 안지영이 구급상자를 가져와 상처를 처리해 주었다.안열이 거의 소리를 지르면서 얘기했다.“앗... 아파요... 아파...”“...”안열은 평소에 고통에도 끄떡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파하는 것을 보니 나태웅이 얼마나 아프게 때린 것인지 알 수 있었다.“제가 무슨 원한이 있겠어요! 한 것도 없는데...”“...”“굳이 꼽자면... 안 대표님 일로 원한이 있는 거죠.”“나요?”“네. 저는 안 대표님이 선명 도련님과 결혼하기를 바랐으니까요. 아마도 그것 때문에 저를 싫어하는 게 아닐까요?”안열을 말을 들은 안지영은 약간 마음이 복잡했지만 또 본인의 선택이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안열은 장선명의 부하로
“난 대체 누구의 대용품이었어요?”안지영이 바로 물었다.안열은 장선명과 오랜 시간 함께 했으니 사진 속의 사람이 누구인지 다 알 것이다. 그러니 장선명이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것이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그건...”“두 사람은 왜 헤어진 거예요?”안지영이 또 물었다.“...”안열을 그 어느 질문에도 대답할 수 없었다.안열은 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안지영이 얼마나 칼 같은 사람인지, 안열은 잘 알았다.물론 안지영과 장성명의 사이가 안지영 때문에 시작한 것이라고 하지만 장선명에게 설레지 않았다면 안지영은 장선명과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안열은 결국 또 속으로 나태웅을 욕했다.“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선명 도련님이 안 대표님과 결혼하려는 건 안 대표님을 사랑해서지, 다른 사람의 대용품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니까요.”“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직도 연락해요?”“절대 아닙니다. 제가 맹세할게요!”안열이 진지하게 얘기했다. 안지영이 괜히 장선명을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안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열을 쳐다보았다. 안열은 그런 눈빛을 마주하고 약간 긴장했다.“진짜예요. 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선명 도련님이 얼마나 칼 같은 분인지 잘 알잖아요.”“하긴, 안열 씨는 선명 씨 사람이니까 그편을 들겠죠.”“아니요, 전 안 대표님 편입니다. 같은 여자로서요.”“나도 그 어떤 여자의 대용품이었겠죠.”“그건 다른 거죠! 그 사람은 이미 죽었으니까요. 나태웅이 왜 갑자기 이 일을 들춘 건지는 모르겠지만... 죽은 사람까지 들먹일 줄은 몰랐어요!”안열은 정말 나태웅을 죽여버리고 싶었다.요즘 나씨 가문에 생긴 일을 보면 나씨 가문 사람들은 다 하나같이 쓰레기였다.“죽었다고요?”안지영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안열이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다들 모르는 일이잖아요!”안지영이 놀라서 얘기했다.장씨 가문 남자들은 하나같이 차갑고 냉정하다는 소문을
안지영은 약간 생각하더니 얘기했다.“그런데 그렇게 욕한 게 오늘이 처음인 건 아니지 않아요?”“...”안지영이 그렇게 얘기하자 안열은 더욱 화가 났다.“저를 볼 때마다 저한테 개라고 욕해요. 개자식... 개같은 건 본인이면서! 나씨 가문 전체가 그냥 다 개예요!”안지영은 이마를 짚으면서 그 말을 들었다.“안열 씨를 그렇게 욕하고서도 잘 살아있다니... 신기할 정도네요.”안열이 얼마나 성격이 더러운지, 이제는 안지영도 잘 알았다.하지만 나태웅은 번마다 안열을 욕하면서 멀쩡히 살아있으니, 안지영은 약간 놀라웠다.“못 이긴다니까요!”“...”도대체 나태웅의 실력이 얼마나 좋기에 안열도 상대할 수 없는 걸까.“됐어요. 나태웅 얘기하면 기분이 잡치니까 그만 해요.”나태웅은 그런 존재다.언급만으로도 눈살이 찌푸려지게 하는 사람이다.“그건 맞아요. 짜증 나는 사람이죠.”안지영은 나태웅이 정말 너무 싫었다.“그러니까 무조건 승소해요!”너무 화가 나니 아무리 나태웅 얘기를 꺼내지 말자고 해도 결국 나태웅 얘기를 꺼내게 된다.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분명 승소할 겁니다!”안지영이 두 주먹을 꼭 쥐었다.안열뿐만이 아니라 안지영도 화가 난 상태다.안지영은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너무 화가 나서 이 화를 전부 나태웅에게 쏟아버리고 싶었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꼭 이기게 해줄게요!”나태웅을 고소하려던 건 안지영이었다.하지만 지금은 든든한 아군이 생겼다.그 뜻인즉슨 나태웅은 여태껏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건드렸다는 것이다.안열은 안지영 앞에 있는 사진을 슬쩍 보았다. 안에는 장선명도 있는 것 같았다.“뭘 보는 거예요?”그렇게 물으면서 사진을 확인하려던 때, 안지영이 빠르게 사진을 가져가려고 했다.하지만 안열이 그 중 한 장을 손에 넣었다.사진을 본 안열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안지영의 표정도 그대로 굳어버렸다.안 그래도 아까 일 때문에 화가 났는데, 나태웅이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