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렇게 뜻밖에도 아이에게 상처를 입힐 줄을 꿈에도 못했다.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나 빨리 다가올 줄은 몰랐다.고은지는 손에 든 젓가락을 내려놓고는 조희주를 품에 안아 모든 일을 설명하려고 했다.그러나 그녀는 차마 다 한 글자도 내뱉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생각할수록 죄책감만 더 들었다.아무것도 모르는 딸에게 어떻게 이 사실을 인식시킬지 걱정이 되었다."엄마.""희주야, 미안해. 다 엄마 잘못이야."조영수가 친자확인서를 그녀 앞에 내팽개쳤던 순간부터 그녀는 자신의 인생에 회의감으로만 가득차기 시작했다.그렇게 힘든 시간동안 그녀를 버티게 해준 유일한 사람은 딸인 조희주였다.아이에게 있어서, 조영수는 더이상 친아버지도 아니기에 그렇다면 남은 유일한 가족은 엄마인 자신밖에 없었다."희주한테 너무 미안해. 근데 엄마가 이걸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그녀는 차마 희주가 친 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전할 용기가 없었다.하지만 워낙 눈치가 빠르고 똑똑했던 조희주는 그 사이에 알아채 버렸다. "그럼 저의 아빠는 대체 누구에요?""엄, 엄마도 몰라."어차피 아이도 다 눈치를 챈 이상 고은지는 사실대로 털어놓기로 결심했다.말을 내뱉으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정말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두번 다시는 이런 일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엄마가 너무 미안해. 엄마가 너무 멍청했던거야."“......”"하지만 엄마 정말 나쁜 사람은 아니야. 엄마는 아빠한테 잘못한게 하나도 없어."고은지도 울면서 말했다.굳이 떳떳한 일을 했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애초에 이 소문을 퍼뜨리고 다니면서 아이한테 상처를 입힌 진여옥, 그리고 그 조씨 가문의 책임이 가장 많다고 생각했다. "흑흑."그 말에 아이는 더욱 슬퍼 크게 울기 시작했다.어른들도 받아들이긴 힘든 상황을 어린 아이가 겪기에 얼마나 괴로울까? 그렇게 모녀는 서로 부둥켜안고 오랫동안 울었다.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조희주의 기분도 겨우 좀 풀렸다.아이
고은지는 조영수한테 자비가 남아있을거라고 믿은 자신이 너무 바보 같았다.어차피 서로 남이 된 이상, 그는 더이상 아이에 대한 사랑이 없어지 상태였다."희주 친구들이 우리 이웃들이란걸 알고 있었나보네. 이젠 좀 창피하긴 하나봐?""..."언짢은 말투로 시비를 걸어오는 조영수의 태도에 고은지는 더욱 화가 나기 시작했다. "조만간 법원으로부터 소환장이 하나 올거야. 딱 기다려."말을 마치고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그 말을 들은 고은지는 머리가 멍해졌다.법원 소환장? 설마 조씨 가문이 날 고소하려는건가?이 상황이 너무나도 기가 찼다.이혼을 하고 나서도 이 악연이 계속 이어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한편 그 시각, 저녁 식사를 마친 배준우는 서재에 들어가 남은 일을 마저 처리하기로 했고, 고은영은 방에 들어오자마자 고은지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고은지의 목소리는 울먹이고 있었다."은영아, 나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우리 희주, 이제 더이상 학교에 보내지 못할 것 같아."만약 조씨 가문이 정말로 그녀를 고소라도 한다면 이 일은 이웃 사람들도 알게 될 것이기에 그때가 되면 딸 아이를 학교에 보낼 용기가 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 말을 들은 고은영은 놀랐다."전에는 그럴 기미도 안 보이더니 왜 갑자기 고소하려는거야?""나도 몰라!"고은지는 멘탈이 단단히 붕괴되였다.조영수가 조희주의 아버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그녀는 줄곧 혼자서 전전긍긍하며 살아왔다.그녀는 주변 사람들이 혹시나 이 사실을 알게 될까 봐 두려웠고, 특히나 딸의 친구들이 듣게 될까 봐 두려웠다.자신도 아직 유언비어를 받아들일 용기가 나지 않았는데, 어린 아이에게만큼은 그 상처를 입히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그 비밀은 일찍이도 까발려져 버렸다. "일단 진정해. 내가 곧 갈게."엉엉 우는 고은지의 목소리에 고은영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고은지는 지금 그야말로 절벽 끝에 몰려있었다.
"괜찮아." 고은영은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평소에 고은지는 다른 사람한테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오늘은 유독 괴로워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동생을 부른 것이다. 잠시 후 고은영이 조심스레 물었다."희주 말이야, 학교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그녀는 고은지가 무너진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조희주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결국 한 엄마에게 있어 가장 큰 약점은 자식이니까.. "오늘 학교 선생님한테서 전화왔는데..."그녀는 선생님으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와 오늘 아이가 했던 말들을 그대로 고은영에게 말해주었다.친구들로부터 유언비어를 들은 조희주가 이 상황을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하여 평소 하기 싫어했던 친자 합동 무대까지 지원하면서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다만, 아이는 이 현실을 다시 뒤엎을 수 없다는 것을 잘 모른다. "그럼 전학 보내자." 잠깐 생각에 잠긴 고은영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현재 조희주에게 가장 좋은 해결책은 바로 아이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전혀 없는 그런 학교로 전학을 보내는 것이다. 고은지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해."“......”"내가 받는 고통은 상관 없지만, 희주를 그렇게 놔둘 수는 없어."아직도 성장기에 놓인 아이한테 어두운 그림자를 덮히게 하고 싶지 않았다. "방법은 내가 알아서 생각해 볼게."전학이란건 꽤나 까다로운 일이었다. 적어도 고은지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다. 고은영의 적극적인 도움에 고은지는 고맙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근데 조영수는 대체 왜 갑자기 고소하겠다고 한거야? 전에는 아무 말도 없었잖아.""그랬었지. 이혼할 때까지만 해도 무덤덤했고, 나를 고소하겠다고 하지도 않았어."조영수를 떠올리면 고은지는 다시 열불이 났다.안 그래도 뒤틀린 인생에 이런 일까지 겪게 되다니. "그들이 고소까지 한 이상 우리도 당연히 참으면 안되지.”고은영은 그 누구보다
뜻밖에도 배준우는 고은영을 데리고 집이 아닌 웬 골목 거리로 향했다. 맛집이 가득했던 거리에는 각종 음식의 향기가 풍겼고, 당장이라도 침을 질질 흘릴 뻔 했다.고은영은 어리둥절했다. "여기는 왜 온거예요?""밥 먹으러 가야지.""혹시 배고프세요?""응."사실 고은영은 요즘따라 별로 입맛이 없어 잘 먹지 못했다. 그걸 알아챈 배준우는 전에 인터넷에서 임산부들이 흔히들 입맛이 없어지게 된다는 증상을 본걸 떠올렸다. 임신 중에는 평소 먹지 않던 것도 갑자기 먹고 싶어지고, 잘 먹던 음식들은 도리여 거부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하여 배준우는 일부러 이 곳으로 와 그녀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먹이려 한 것이다."뭐 먹고 싶어?" 곧바로 고은영에게 물었다."바베큐 어때요?"고은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그녀가 임신한 후로부터 배준우는 줄곧 간식을 금지해왔다. 그 이유는 바로 건강하지 않은 음식을 못 먹게 하기 위해서였다.고은영도 그런 간식들이 건강하지 않은건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너무 먹고 싶었다.여태 못 먹어왔으니 무척 서러워 했다.배준우는 간절한 그녀의 표정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히 좋지.""와, 정말이요? 정말 먹어도 돼요?" 배준우의 대답에 고은영은 믿기지가 않았다.전에는 밀크티도 못 마시게 했었는데, 이젠 바베큐는 먹을 수 있는거야? 갑자기 왜 이렇게 친절해진거지?"가끔 한 번쯤 먹는 거는 괜찮아."고은영은 배준우한테 진심으로 고마워했다.골목 거리의 야시장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음식들이 있었고 대부분 고은영이 좋아하는것들이었다.그녀는 순식간에 바베큐도 먹고, 닭꼬치도 먹고, 심지어는 냉면까지 먹었다.간만에 주어진 어려운 기회에 그녀는 제대로 즐겼다.배준우는 식욕이 넘치는 그녀의 모습에 놀랐다."그렇게나 맛있어?""정말 맛있어요!"그동안 고은영은 란완에서 만든 담백한 음식만 먹어왔다.비록 요리사의 솜씨가 괜찮긴 했지만, 천성적으로 매운 것을 좋아하던 고은영에게는 그닥 끌리는 맛이 아니었다. 그
"안심하세요. 파혼은 저희 대표님께서 알아서 잘 처리할겁니다.""네?"나태웅이 왜 내 약혼에까지 간섭을 한다는거지?안지영은 어안이 벙벙해졌다.그녀의 망연자실한 모습을 본 왕여는 조금 답답해졌다. 나태웅이 왜 여태 그렇게 화를 냈는지 이해가 가기도 했다.둘의 관계가 이어질 수 없었던건 나태웅의 표현이 서툰게 아니라, 안지영의 반응이 아주 둔한 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어떻게 여태 판매원으로 일해왔는지 의문이 생길 정도였다."왜 그때 대표님께 찾아가서 도움을 청하지 않으셨죠?""당연히 찾아갔죠. 대표님께서 저한테 직접 말씀하신 아이디어였어요."안지영은 불만스러운 말투로 말했다.그녀가 장선명을 찾아간 이유가 확실히 나태웅이 처음에 제안한 것 때문이긴 했다.당시 그는 안지영이 배준우만큼 배짱이 있는 사람을 찾아 결혼하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조언을 해주었다.그의 조언대로 안지영은 밤낮을 달리면서 약혼 상대를 찾아나섰고, 그 중의 한 명이바로 장선명이다. 그런데 왕여가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를 하자 그녀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여전히 눈치 채지 못한 안지영의 모습에 왕여는 직접적으로 밝혔다. "애초에 대표님이 그런 말을 한게 자신한테 다가오라고 던진 말인걸 진짜 몰라서 그래요?"이제는 확실하게 말해야만 했다.만약 이제 와서도 알아채지 못한다면, 더이상 도와줄 방법도 없었다. "네?"그러자 안지영은 문득 크게 깨달았다. 나태웅 또한 배준우만큼 배짱 있는 사람이었단걸. 진작에 직접 나태웅을 찾아갔으면 쉽게 해결되는 일이었다.안지영은 그제서야 모든것을 깨닫고 알굴이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왜 진작에 나한테 말해주지 않았어요?""..."진작에?왕여는 안지영와 나태웅의 사이가 여태 이렇게까지 서먹한 줄은 전혀 몰랐다."대표님도 참 답답하시네요. 그러면 차라리 그때 저를 도와줄 수 있다고 직접 말해주면 됬었잖아요."안지영은 내심 나태웅이 원망스러웠다.“그래서 하는 말인데...”"됐어요. 이제 와서 바꾸려 해도 소용 없어
왕여는 차갑게 말했다."장선명 씨와의 약혼을 취소하지 않으면 더 큰 문제가 생길겁니다."안지영은 순간 두려움에 휩싸였다.더 큰 문제라니?지금 겪고 있는 상황만으로도 충분히 버거운데. "설마 대표님께서?" 그러자 순간 머리가 크게 한 방 맞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아니, 그럼 왜 애초에 진심을 밝히지 않은거지? 이제 와서 파혼시키려는게 말이 돼?설령 파혼한다고 해도 안지영은 감히 장선명에게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잠시 후 할 말을 마친 왕여는 자리를 떠났고, 안지영은 멍해진 채로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이게 대체 뭔 일이지?"언제는 나더러 얼른 남자를 찾아서 결혼이나 하라더니. 그 말이 사실은 본인이랑 결혼해달라는 뜻이었어?근데 그걸 이제 와서 나한테 말하면 어떡해?그 날 밤, 안지영은 내내 잠을 이루지 못했다.파혼하지 않으면 더 큰 문제가 생길거라는 왕여의 말이 악몽처럼 되풀이 되기만 했다.… 이튿날, 안지영은 결국 피곤한 컨디션으로 몸을 일으켰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그녀는 파혼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더불어 상대는 무려 장선명이기에 그녀는 그를 감히 마음대로 건드릴 수가 없었다.이때 윙윙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잠 덜 깬거야?" 전화기 너머로는 장선명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아니요. 일찍 일어났어요.""그럼 준비하고 있어. 집 앞에서 기다릴게.""네."곧이어 안지영은 화장실로 달려가 세수를 하기 시작했다. 밤새 밤을 새운 탓에 얼굴색이 좋지 않아 열심히 화장을 했다.그리고 준비를 마치고 막 문을 나서려던 순간 전화가 또 울리기 시작했다."저 곧 내려가요.""지영 씨, 저예요." 뜻밖에도 왕여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목소리를 알아챈 안지영은 순간 온몸이 굳었다."대표님께는 감사하지만, 그 호의 받아들이지 않을겁니다.""고작 그게 하룻밤 동안 고민해서 내린 결정이에요? 그 결정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무섭지 않나요?"왕여의 말투는 여전히 차가웠다.
안지영은 곧바로 가방을 챙기고 문을 나섰다.......밖에서는 깔끔한 정장에 안경까진 장착한 훤칠한 모습의 장선명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그는 안지영을 보자마자 웃음을 지었다."아직 잠에 다 못 깼나본데?"“네? 설마 화장이 잘 안 됐나요?”안지영은 뻘쭘한 듯 자신의 얼굴을 만지작 거렸다.이때 장선명의 시선이 그녀의 발로 향하더니 더 크게 웃기 시작했다.불길한 마음에 머리 숙여 확인한 안지영이 짝짝이로 되어있는 신발을 보자 머리가 멍해졌다.부끄러운 마음에 그녀의 작은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아, 죄송해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곧바로 몸을 돌려 집 안으로 다시 달려갔다.젠장!어쩐지 방금 엘리베이터 안에 있던 사람들도 보는 눈빛이 이상하더라니.그때는 정신이 다른 곳에 팔려 있어 고개를 숙여 확인할 틈도 없었다.장선명은 질주하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귀엽다고 생각했다. 곁에서 기다리던 운전 기사마저도 자기도 모르게 웃었다. "정말 털털하신 분이네요."평소에 안지영이 출근할 때를 보면 꽤나 진지한 사람 같아 보였는데 말이다. 그 말에 장선명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러게. 되게 귀엽네."그리고 순간 무미건조한 자신의 삶에 그녀가 나타난게 너무나도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안지영이 재빨리 신발을 갈아신고는 다시 내려왔다.장선명은 바람에 약간 헝클어진 그녀의 머리카락을 보고는 손을 뻗어 천천히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었다."아, 그건 제가 할게요." 안지영이 무의식 중에 뒤로 물러서려는 순간, 장선명이 그녀의 허리를 당기며 그녀를 품에 안았다."회사로 출근할 때도 이렇게 덤벙되나?"그러자 안지영이 고개를 저었다."그건 절대 아니에요."그녀가 오늘따라 이렇게 실수가 잦은건 어젯밤에 제대로 잠을 잘 자지 못하여 정신을 못 차렸기 때문이다.평소의 그녀라면 매우 꼼꼼한 성격이라 이런 사소한 실수는 거의 하지 않는다.장선명은 시간을 확인하고는 곧바로 그녀에게 차문을 열어주었다."먼저 아침 먹으러 가자.""
"바로 연락해볼게요."물론 안지영과도 말이 통하지 않았고 나태웅도 막무가내긴 하지만, 이런 식으로 장씨 가문과 정면충돌을 하는건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그렇기에 왕여는 장선명에게 바로 연락을 하지 않고 우선 나태현의 사무실로 향했다.나태현과 나태웅, 두 형제 모두 천락 그룹의 주인이긴 하지만 두 사람의 역할은 철저히 나누어져 있었다.그러나 만약 장씨 가문과 갈등이 생기게 된다면,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은 나태웅 혼자만이 아니었다.그리하여 더욱더 신중하게 움직이기 위해서 왕여는 먼저 나태현을 만나기로 결심했다.나태웅이 장씨 가문의 홍수원 프로젝트를 건드리려 한다는 소식을 들은 나태현은 눈썹을 찌푸렸다. "대체 왜 그런 결정을 한건데?"나씨 가문과 장씨 가문은 여태 줄곧 사이가 좋았었기에 두 집안은 결코 서로 원한을 살 이유가 없다. 게다가 강성에서의 장씨 가문의 지위는 꽤나 높아 굳이 대립하는 것은 좋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나태웅의 뜻밖의 결정에 나태현은 어리둥절했다.“안지영 씨 때문입니다.”"안지영이라면, 그 판매부 직원?""네."나태현은 곧바로 안지영을 떠올렸는데 전에 자신을 찾아와 연차를 신청하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근데 그 여자가 나태웅이랑 무슨 사이인거지?바로 그때, 전에 나태웅이 배씨 가문에 있던 안지영을 천락 그룹으로 이직시킨 일이 떠올랐다. 뭔가를 깨달은 나태현의 얼굴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그리고 곧바로 벌떡 일어서서 나태웅의 사무실로 향했다.마침 담배를 피우며 생각에 잠겨 있던 나태웅은 잔뜩 화가 난 채 자신을 찾아온 나태현을 보고는 당황했다. “그 여자를 천락으로 데려온 이유가 뭐야?"나태현이 바로 물었지만 나태웅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얼굴색은 무척이나 어두워져 있었다."지금 네 마음이 어떤데? 그리고 그 여자는 네가 이러는거 알아?"그제서야 나태웅은 제대로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 여자가 알았으면 내가 이렇게까지 했겠어?""그럼 모르고 있다고?""..."그
그 미남계에 안지영은 결국 어느샌가 넘어가고 말았다.장선명은 안열한테 안지영이 좋아하는 디저트를 가져오라고 했다. 안열은 그제야 두 사람이 사무실에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장선명은 다른 일로 바빠서 먼저 자리를 떠났다.안열은 디저트를 들고 오면서 안지영의 눈치를 보았다.“왜요?”“선명 도련님이 무슨 짓을 한 건 아니죠?”“잘못을 저질러놓고 나한테 무슨 짓을 한다면 그건 짐승이죠!”안지영이 씩씩대면서 얘기했다.그 말을 들은 안열은 입가를 씰룩이면서 얘기했다.“하지만 선명 도련님은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이 아닌데요.”장선명과 오랜 시간 함께 일하면서 장선명이 잘못을 사과하는 건 본 적이 없다.장선명이 잘못을 했다고 해도 그건 없었던 일로 될 테니까 말이다.“...”안지영은 안열의 말을 듣고 눈썹을 꿈틀거렸다.‘그럼 아까 한 말도 거짓말이었나?’안열이 안지영 앞으로 와서 안지영 목에 난 키스 마크를 발견했다.안지영이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나며 물었다.“왜 갑자기...”“도련님이 이런 방식으로 사과한 겁니까?”“네?”“격렬하네요. 이렇게 안 대표님을 입막음하다니...”“...”안지영은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무거워졌다.아무리 둔감하다고 해도 안열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있었다.안지영은 얼른 핸드폰 카메라를 켜서 본인의 모습을 확인했다.목에 난 키스 마크들을 본 안지영은 그대로 숨을 들이켰다.“이...”하마터면 욕설을 뱉을 뻔할 정도였다.이 상태로 밖으로 나간다면 창피해서 얼굴을 못 들고 다닐 정도다.‘왜 하필 이런 집착남을 만나게 된 거지...’“좀... 과하긴 하죠?”안열은 안지영이 장선명 때문에 화가 나서 안열에게 화풀이할까 봐 약간 걱정이 되었다.오후 세 시가 되었는데 이제야 나오다니.두 사람이 얼마나 오랜 시간 붙어있었는지, 얼마나 격렬한 사랑을 나누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안지영은 단단히 화가 나서 케이크를 크게 한입 떠먹었다.안열은 장선명이 제대로 해명하지 않아 안지영의 화가 덜 풀린 것인
“나태웅이 두려워하는 게 뭐 있어요!”안지영이 화를 내면서 얘기했다.나태웅은 장선명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안지영에게 있어서 나태웅도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게다가 나태웅이 좋아하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이게 사람 맞나 싶을 정도였다.“나태웅은 극단적인 거지 멍청한 건 아니야.”나태웅은 본인에게 유리하고 불리한 것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늘 안지영 앞에 나타난 걸 떠올리면... 장선명은 그런 나태웅을 가만히 둘 수 없었다.“그래도 이 사진들은 다 사실이죠.”“네가 이 사진 때문에 화를 내는 건 기쁜 일이지만 너한테 제대로 얘기해야 할 게 있어.”거기까지 얘기한 장선명이 말을 끊었다.안지영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뭐요?”장선명과 결혼 준비를 하면서 안지영은 이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소문 속의 장선명은 냉철하고 칼같은 사람이라고 했지만 안지영 앞의 장선명은 항상 웃는 얼굴로 자상하게 안지영을 대해주었다.그래서 안지영은 장선명이 도대체 왜 본인과 결혼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분명 비즈니스 때문에 시작한 부부 연기인데 말이다!사실 처음부터 안지영은 장선명이 왜 본인을 도와주는 건지 알 수 없었다.나태웅이 가져온 사진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장선명은 안지영의 목을 부드럽게 감싸고 코끝으로 안지영의 코끝을 가볍게 눌렀다.“그 사람이 살아있다고 해도 내가 사랑하는 건 너야.”“...”그 말을 들은 안지영은 심장이 순간 멎는 것 같았다.“정, 정말이에요?”‘잘못 들은 건가? 그 사람이 선명 씨한테 엄청 중요한 사람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과거는 과거일 뿐이야. 현재의 나는 네가 없으면 안 돼. 그 사람을 이미 다 잊었으니까 너랑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거야.”장선명은 진지한 말투로 얘기했다. 안지영은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장선명을 쳐다보더니 심호흡을 한 후 얘기했다.“그렇게 많은 여자들이랑...”“나랑 그 사람들은 아무 사이도 아니야. 안열이 전에 얘기해줬을 텐데.”“그래도 남자들
“얘기해 봐. 어떻게 해야 화를 풀 거야.”“하, 다른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걸 정도였다면서요! 내가 화를 안 내고 배겨요?”안지영이 차갑게 얘기했다.“...”장선명은 약간 어리둥절해하면서 물었다.“내가 누구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거야? 나는 왜 모르겠지.”“이...”안지영은 인정하지 않는 장선명의 모습을 보면서 더욱 화가 났다.“정말 화가 난 거야?”“당연하죠. 난 대용품이 되고 싶지 않다고요!”장선명은 화가 난 안지영을 보면서 본인이 왜 안지영에게 빠진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안지영은 느낀 것을 그대로 얘기하는 솔직한 사람이었다. 가식적으로 돌려 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그래서 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이 좋았다.“누가 그래, 네가 대용품이라고. 나태웅이 그래?”장선명이 안지영의 두 볼을 가볍게 꼬집으면서 얘기했다.그 말투는 마치 딸을 대하는 아버지처럼 부드러웠다.안지영은 장선명을 힐긋 보더니 얘기했다.“수많은 사진이 증명하고 있잖아요.”그 사진만으로도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었다.“그 사진들은 아무것도 아니야. 절대 나태웅을 믿지 마. 응?”“흥.”“아직도 화가 난 거야? 제발 내 말 좀 들어줘.”“안 들을래요!”안지영은 아예 고개를 홱 돌렸다.안지영은 너무나도 솔직하고 가감 없는, 상대방에게 본인이 왜 화가 났는지 잘 알려주는 사람이었다.장선명은 화가 나 등을 돌린 안지영을 보면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원래는 좀 더 놀려주고 싶었지만 반응을 보니 그만해야 할 것 같았다.“알았어. 설명할게.”한숨 자고 일어났지만 여전히 이 일로 화를 내는 걸 보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았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말을 듣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니요. 됐어요. 설명하지 마요. 듣고 싶지 않으니까요.”진실이 두려워서 듣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장선명은 웃으면서 얘기했다.“왜? 내가 널 잡아먹을까 봐 무서워?”그 말에 안지영은 또 참지 못하고 장선명을 가볍게 때렸다.오전에 있었던 일을 생각
안지영은 오후 두 시에 중요한 회의가 있었다. 하지만 안열은 사무실에서 안지영을 발견하지 못했다.‘설마 내가 한눈판 사이에 두 분이 나간 건가?’1시 30분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안열은 급한 마음에 얼른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전화를 받은 건 장선명이었다.“무슨 일이야.”그 말에서 안열은 이미 장선명의 짜증을 읽어냈다.안열은 약간 놀랐다.“선, 선명 도련님? 30분 뒤 안 대표님이 참석하셔야 하는 중요한 회의가 있습니다. 지금 안 대표님은 어디에...”휴게실에 있는 장선명은 고개를 숙이고 품에서 자고 있는 안지영을 쳐다보았다.오전에 너무 과했던 탓일까, 안지영은 계속 쭉 자고 있었다.“그냥 회의를 취소해.”“네? 그건...”“무슨 문제라도 있어?”“아, 아니요. 오늘 회의는 부승호도 참석하는 회의라... 알잖습니까.”부승호는 바로 하늘 그룹을 배신한 사람이다. 그러니 이번 회의가 얼마나 중요한지 장선명은 바로 알 수 있었다.장선명이 차가운 눈빛으로 얘기했다.“부승호한테 얘기해. 오늘 저녁 날 만나러 오라고.”“직접 나서서 안 대표님을 대신하실 생각입니까?”안열이 놀라서 물었다.예전에는 안지영이 성장할 수 있게 혼자 내버려두지 않았던가.그래서 안열과 장선명 다 안지영의 뒤에서 묵묵히 안지영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동안 안지영은 많은 일을 혼자서 해결했다.부승호와 마주하는 것도 안지영에게 있어서는 그동안의 실력을 검증할 가장 좋은 기회다.“무슨 문제라도 있어?”그 말에 안열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아닙니다!”안열은 여전히 장선명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저 장선명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로 했다.안열은 얼른 눈치껏 전화를 끊었다. 장선명은 전화가 끊긴 것을 확인하고 바로 폰을 꺼버렸다.안지영은 이미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장선명은 안지영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지금 몇 시예요?”“피곤하면 그냥 자.”장선명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얘기했다.안지영은 눈
테이블에는 다른 사진이 더욱 많았다.나태웅은 정말 이를 갈고 해외로 간 것이 틀림없었다.이것까지 다 알아내다니...이건 장선명의 가장 어두운 과거이자 다시는 들추고 싶지 않은 일들이다.하지만 그 일들이 지금은 나태웅 때문에 다시 밝혀지게 되었다.그동안 장선명이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마주할 수 없었던 과거들이었지만, 안지영이 건네준 사진을 보면서 장선명은 어느새 그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내려놓았다는 것을 발견했다.지금 와서 과거의 일을 돌이켜보니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그 여자가 누구인지 얘기하라고요!”안지영이 화가 난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러면서 장선명의 품에서 나오려고 안간힘을 썼다.하지만 장선명은 여전히 안지영을 꾹 잡고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그리고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더니 안지영의 앞에서 사진을 바로 불태워버렸다.“뭐, 뭐 하는 거예요!”안지영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장선명은 불에 탄 사진을 그대로 재떨이 속으로 던져버렸다.담배를 피우는 장선명을 위해 안열이 준비해 둔 재떨이였다.안지영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 그동안은 쓸모가 없었지만 지금은 아주 유용했다.테이블 위의 사진은 다 재떨이 안으로 들어가 활활 타올랐다.안지영은 멍해서 물었다.“그렇게 변명도 하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변명? 이건 다 지나간 일일 뿐이야.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 다 잊었고. 뭐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생각도 안 나네.”“...잊었다고요?”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안열이 그러지 않았던가.장선명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다고.사진 속의 여자들이 모두 비슷하게 생긴 걸 보면 장선명은 정말 그 여자를 아주 사랑한 것 같았다.그런데 그걸 잊다니.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그런 안지영의 모습을 본 장선명은 환하게 웃으면서 안지영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또 입술을 맞췄다.“읍... 아니, 읍...”‘미남계를 쓰겠다는 거야?’안지영은 약간 화가 났다. 원래 이런 건 그냥 두면 찝찝한 편이다. 사실을 알지 못하면 마음에 걸리니까 말이다.
사무실에 들어간 장선명은 안지영이 그를 등지고 의자에 앉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이미 뒷모습에서부터 안지영의 화난 모습이 보였다.앞으로 다가가 의자를 돌린 장선명이 두 손으로 의자의 손잡이를 잡았다.그리고 웃는 눈으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안지영이 화가 나서 씩씩 대는 모습을 보았을 때도 더욱 환하게 웃었다.하지만 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을 보면서 더욱 화가 났다.“웃겨요?”“질투하는 거야?”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말을 듣고 약간 놀랐다.“화 안 났어요. 난 화를 잘 안 내는 사람이에요.”“그래?”“...”질투냐고?안지영은 질투가 뭔지 몰랐다.하지만 눈앞의 이 남자가 다른 여자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속이 좋지 않았다.생각에 잠겨있을 때 갑자기 안지영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장선명이 안지영을 번쩍 안아 들고 의자에 앉은 것이었다.장선명은 웃음기 가득한 시선으로 안지영을 바라보고 있었다.안지영은 놀라서 허둥대면서 얘기했다.“이거 놔요!”하지만 장선명은 움직이는 안지영을 놔주지 않고 그대로 입술을 가져갔다.안지영이 버둥댈수록 장선명은 더욱 깊게 안지영의 입술을 머금었다.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결국 안지영이 숨을 쉬지 못하자 장선명이 안지영을 풀어주었다.안지영이 손을 들어 장선명의 뺨을 치려고 할 때, 장선명이 안지영의 손목을 잡고 웃으면서 물었다.“화났어?”“흥.”안지영은 화가 났다.그것도 단단히 화가 났다.안지영은 장선명이 점심 전에 도착한 것이 분명 그 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안열이 알려줬을 테니까 말이다.그런데 와서 아무 해명도 하지 않고 입술부터 들이미니, 너무 미웠다.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을 보면서 짜증스러운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오히려 속 편히 웃으면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그리고 마지막에는 한숨까지 푹 내쉬었다.“그렇게 화가 난 거야?”말을 마치고는 안지영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안지영은 이제 더는 참을 수 없었다.“오자
“네? 그게 무슨 뜻이에요?”안지영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안열을 바라봤다. 안열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어휴, 됐어요. 더 얘기해 봤자 짜증만 나요.”더 말했다간 정말 참지 못하고 화를 낼 것 같았다.나태웅에 대해 할 욕은 이틀 밤을 새워도 모자랄 정도였다.“...”사람을 화나게 만드는 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고...안지영은 뾰로통해진 채로 안열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안열은 휙 돌아서 사무실을 나갔다.지금 안열의 머릿속에는 나태웅에 대한 욕뿐이었다.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감히 또 안지영을 찾아오다니.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온 건지......사무실에 홀로 남겨진 안지영은 아까 안열이 한 말을 떠올렸다.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지?평소에는 똑 부러지고 영리한 안지영이지만, 이번만큼은 안열의 말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뻔뻔하다는 뜻이라면... 나태웅은 원래부터 그렇게 뻔뻔했다.하지만 이번은...안열은 복잡한 생각에 머리를 휙 털었다.그리고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장선명에게 전화를 걸었다.원래는 장선면은 점심쯤에 안지영을 데리러 올 예정이었지만, 안지영의 전화를 받고 바로 달려왔다.안지영의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장선명은 안열이 자리에 앉아 아이스팩을 발 위에 올려놓은 것을 발견했다.“다리는 왜 그래?”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안열은 깜짝 놀라 손에 쥔 아이스팩을 떨어뜨릴 뻔했다.장선명을 보자, 안열은 얼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읏...!”하지만 고통을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어떻게 된 거야?” 그렇게 묻는 장선명의 목소리는 차가웠다.안열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 힘들었다.안열은 고개를 숙였다. 차마 나태웅 때문이라는 말은 꺼내지 못해 그저 둘러댔다.“그냥... 실수로 넘어진 거예요.” “어떻게 넘어졌길래 거기만 그렇게 다치는 거야?” 장선명의 시선은 예리했다.보통 넘어진다면 무릎이 먼저 다치기 마련인데 안열은 무릎은 멀쩡하
나태웅은 믿을 구석 하나 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나태웅이 가져온 정보 때문에 안지영은 더욱 속이 복잡해졌다.안열은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하고 얘기했다.“약 좀 바르고 올게요.”그 말에 안지영은 생각이 끊겨버렸다.정신을 차린 안지영은 안열의 발등이 부어올랐다는 것을 발견했다. 장선명이 사랑하는 사람...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안열은 본 안지영은 결국 또 나태웅에게 화가 났다.“왜 이렇게 된 거예요. 정말 나태웅을 못 이기는 거예요?”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일방적으로 맞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밖에서 싸우는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안열은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제가 만약 나태웅과 싸워서 이길 수 있었다면 진작 죽여버렸을 겁니다.”“...”진작 죽여버린다니.그 ‘진작’은 과연 언제일까?다시 생각해도 나태웅은 정말 독설만 퍼붓는 사람이었다. 안열을 볼 때마다 개라고 욕하니까 말이다.그래도 전에 동영 그룹에서 출근할 때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안지영은 우물쭈물하면서 안열에게 물었다.“두 사람, 전에도 안 좋은 사이였어요?”안열과 나태웅이 만날 때마다 안열은 대수롭지 않아 했고 나태웅은 화를 냈었다.그러니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그렇게 물으면서 안지영이 구급상자를 가져와 상처를 처리해 주었다.안열이 거의 소리를 지르면서 얘기했다.“앗... 아파요... 아파...”“...”안열은 평소에 고통에도 끄떡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파하는 것을 보니 나태웅이 얼마나 아프게 때린 것인지 알 수 있었다.“제가 무슨 원한이 있겠어요! 한 것도 없는데...”“...”“굳이 꼽자면... 안 대표님 일로 원한이 있는 거죠.”“나요?”“네. 저는 안 대표님이 선명 도련님과 결혼하기를 바랐으니까요. 아마도 그것 때문에 저를 싫어하는 게 아닐까요?”안열을 말을 들은 안지영은 약간 마음이 복잡했지만 또 본인의 선택이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안열은 장선명의 부하로
“난 대체 누구의 대용품이었어요?”안지영이 바로 물었다.안열은 장선명과 오랜 시간 함께 했으니 사진 속의 사람이 누구인지 다 알 것이다. 그러니 장선명이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것이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그건...”“두 사람은 왜 헤어진 거예요?”안지영이 또 물었다.“...”안열을 그 어느 질문에도 대답할 수 없었다.안열은 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안지영이 얼마나 칼 같은 사람인지, 안열은 잘 알았다.물론 안지영과 장성명의 사이가 안지영 때문에 시작한 것이라고 하지만 장선명에게 설레지 않았다면 안지영은 장선명과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안열은 결국 또 속으로 나태웅을 욕했다.“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선명 도련님이 안 대표님과 결혼하려는 건 안 대표님을 사랑해서지, 다른 사람의 대용품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니까요.”“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직도 연락해요?”“절대 아닙니다. 제가 맹세할게요!”안열이 진지하게 얘기했다. 안지영이 괜히 장선명을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안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열을 쳐다보았다. 안열은 그런 눈빛을 마주하고 약간 긴장했다.“진짜예요. 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선명 도련님이 얼마나 칼 같은 분인지 잘 알잖아요.”“하긴, 안열 씨는 선명 씨 사람이니까 그편을 들겠죠.”“아니요, 전 안 대표님 편입니다. 같은 여자로서요.”“나도 그 어떤 여자의 대용품이었겠죠.”“그건 다른 거죠! 그 사람은 이미 죽었으니까요. 나태웅이 왜 갑자기 이 일을 들춘 건지는 모르겠지만... 죽은 사람까지 들먹일 줄은 몰랐어요!”안열은 정말 나태웅을 죽여버리고 싶었다.요즘 나씨 가문에 생긴 일을 보면 나씨 가문 사람들은 다 하나같이 쓰레기였다.“죽었다고요?”안지영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안열이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다들 모르는 일이잖아요!”안지영이 놀라서 얘기했다.장씨 가문 남자들은 하나같이 차갑고 냉정하다는 소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