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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0화

Author: 이소문
강하율은 멀어져 가는 차를 바라보며, 평생 쌓아온 교양을 총동원해 간신히 턱끝까지 치민 욕설을 삼켰다.

마음이 조금 가라앉자 그녀는 오히려 등골이 서늘해졌다.

조금 전 그녀의 말을 듣고 배윤제는 정말로 그녀를 죽여버릴 듯한 살기를 내뿜으며 음산하게 그녀를 노려봤다.

설령 배윤제가 진짜로 그녀를 죽인다 해도 배씨 가문이라면 손쉽게 그 사실을 덮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적어도 아버지의 재심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일을 더 키울 수가 없었다.

지금은 권력도, 여론도 모두 배씨 가문의 편에 설 테니 말이다.

강하율은 지금 너무나도 보잘것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정장 한 벌 잃은 게 대수인가 싶은 마음이 들어 강하율은 곧장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그녀가 떠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정다인이 옆 동에서 걸어 나왔다.

정다인은 멀리서도 배윤제가 강하율에게 보인 집착 어린 감정을 똑똑히 보았다. 그것은 정다인이 단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부류의 감정이었다.

정다인이 배윤제를 구해주지 않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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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억을 잃은 척할 때는 언제고   제410화

    강하율이 고개를 홱 들어 올려 배윤호를 바라봤다.“알고 있다고요?”“응. 아버지가 알려주셨거든.”배윤호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우리 아버지가 사랑하면 안 되는 사람을 사랑하게 됐거든.”강하율은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배윤호는 강하율을 데리고 인적이 드문 곳으로 걸어갔고 그들과 몇 걸음 떨어진 곳에는 양승아가 지키고 서 있었다.“우리 아버지는 평생 할머니한테 통제받으며 살았어. 뭘 배워야 하는지, 뭘 해야 하는지, 심지어 뭘 입어야 하는지까지 다 정해져 있었지. 그랬던 아버지의 유일한 반항이 바로 우리 어머니랑 결혼하는 거였어. 두 사람은 비슷한 처지였고, 비록 서로를 사랑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서로 아끼고 의지했어. 그런데 우리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지. 우리 아버지는 아내를 잃은 이후에는 통제당하는 삶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대. 그런데 할머니가 또다시 아버지를 결혼시키려고 했어.”“그해 아버지는 거의 백 명 가까이 되는 여자들을 만났고 완전히 질려서 매번 잘 안 맞는다고 거절했대. 그래서 할머니뿐만이 아니라 집안의 다른 어른들까지 가세해서 우리 아버지에게 압박을 넣었어. 아버지는 책임감 때문에 도저히 도망칠 수 없었고 결국은 타협했지. 그때 아버지가 알게 된 게 바로 배윤제 어머니야.”“그 사람이 우리 아버지의 눈에 띌 수 있었던 건 다른 여자들처럼 처음부터 좋은 아내감인 척 굴지 않고 자기도 억지로 나온 거라고 했기 때문이었어. 우리 아버지가 우리 어머니를 떠올리기 바랐던 걸지도 모르지. 우리 아버지는 자기도 모르게 그 사람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어. 그리고 그래야 그 사람도 집에 돌아가서 할 얘기가 생기니까.”“그런데 그 사람이 할머니의 눈에 들어버린 건지. 그 뒤로 결혼 얘기가 오갔고 두 사람은 일종의 거래 결혼을 하게 되었어.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그 사람이 몰래 호텔을 할머니에게 넘겼다는 사실은 미처 몰랐어. 애초에 우리 아버지는 너희 어머니의 존재를 아예 몰랐지. 그저 그 사람에게 동업자가 있다는 것만

  • 기억을 잃은 척할 때는 언제고   제409화

    “무연산이요?”강하율은 배윤호를 바라봤다. 지금 배윤호가 맡고 있는 프로젝트가 바로 무연산 프로젝트였다.‘문제가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양지원은 차갑게 웃었다.“무연산 프로젝트는 원래는 주변 마을 경제를 살리기 위한 프로젝트였어. 취지도 좋았고 강 대표님도 그 프로젝트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셨지. 그런데 탐욕을 부리는 사람들이 생긴 거야.”“원래는 케이크 하나를 다 같이 나누는 구조였는데 욕심 많은 사람들이 케이크를 먼저 뜯어 먹기 시작한 거야. 혼자서는 못 먹을 것 같으니까 다른 사람들까지 끌어들였지. 그 사람들 때문에 케이크는 비록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지만 사실상 안은 텅 비게 되었어. 그 탓에 케이크를 만들려고 하던 사람은 모든 걸 책임지게 되었고 정작 케이크를 훔쳐먹은 사람들은 뻔뻔하게 억울한 척을 했지.”강하율은 눈살을 찌푸렸다.“그러니까 당시 같이 협력했던 사람들 전부 우리 부모님을 함정에 빠뜨린 건가요?”“그 프로젝트는 강 대표님이 주도하셨고 나는 하율 씨 엄마의 비서였을 뿐이었기에 나도 아는 게 많지는 않아. 나는 그 진실을 강 대표님의 비서는 알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그런데 그 사람은 죽어버렸지. 게다가 강 대표님의 죄를 입증한 뒤에 죽었으니... 증거도 증인도 다 사라진 셈이야. 하율 씨 엄마는 필사적으로 그 비서한테서 단서를 얻어냈는데 안타깝게도...”양지원은 눈물을 글썽이며 천천히 얘기를 이어갔다.“증거를 손에 넣자마자 노려졌지. 사고가 일어난 그날, 사실 하율 씨 엄마는 나한테 연락을 했었어. 자기한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꼭 몸을 사리라고, 그리고 가능하다면 하율 씨를 돌봐줬으면 좋겠다고. 그런데 하율 씨 엄마가 사고를 당하자마자 호텔 내부는 살얼음판이 되었어. 만약 그때 내가 바로 나서서 하율 씨를 돌보겠다고 했다면 분명히 의심을 받았을 거야. 그래서 나는 결국 배씨 가문에서 하율 씨를 데려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어. 그래도 다행히 배씨 가문은 평판 때문에 하율 씨를 해치지 못했지.”강하율은 도저히 믿기

  • 기억을 잃은 척할 때는 언제고   제408화

    양지원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어두운 눈빛을 해 보였다.“그래. 조윤서 씨가 배윤제 할머니가 배윤제 아버지를 위해 고른 결혼 상대인 건 알고 있지? 그런데 조윤서 씨가 결혼하면서 배씨 가문에 뭘 가져갔을 것 같아?”양지원은 강하율을 바라보다가 배윤호를 바라봤다.배윤호는 뭔가 떠올리고는 천천히 말했다.“호텔이요.”“맞아요. 호텔이에요.”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나 강하율은 의아했다.“이상한데요? 호텔에는 우리 부모님 지분도 있는데 어떻게 호텔을 배씨 가문에 줄 수 있어요?”양지원은 강하율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하율 씨, 내가 하는 말을 믿기 힘든 건 알아. 나는 하율 씨 엄마 곁에서 오랫동안 일해왔어. 조윤서 씨가 이렇게 큰 호텔을 혼자 키울 능력이 된다고 생각해? 사실 그 호텔은 기획부터 완공까지 전부 하율 씨 엄마의 노력으로 만들어졌어. 조윤서 씨는 그저 투자만 했을 뿐이지. 하지만 조윤서 씨는 신분이 조금 특별했어.”강하율은 여전히 아리송했다.그녀는 이 사건이 조윤서와 대체 무슨 관련이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배윤호가 말을 보탰다.“그 사람은 조씨 가문의 둘째 딸이라서 주목받지 못했고 심지어 집안 사람들에게 소외당했다고 할 수도 있어. 졸업한 뒤 조씨 가문에서 재산을 나눠주긴 했는데, 사실 그런 집안에서는 돈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니야. 가장 중요한 건 그 집안이 갖고 있는 자원이지. 자원을 누구한테 쏟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후계자가 되거든. 조씨 가문은 당시 모든 자원을 장남에게 쏟았어. 그러니 그 사람에게 남은 건...”“정략결혼뿐이었겠네요.”강하율도 재벌가 딸들과 지낸 적이 있었기에 그들의 세계를 잘 알고 있었다.아무리 돈이 많아도 신분과 지위를 유지하려면 결국 정략결혼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타고난 재능이 아주 뛰어나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그러나 어떤 것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정해지는 법이다.재벌가에서는 대부분 남자를 더 중요시했고 자원이 한쪽으로 쏠리기 시작하면 상황을 뒤집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 된다

  • 기억을 잃은 척할 때는 언제고   제407화

    그 말을 듣고 배윤제는 당황했다.“어머니, 그때 그 피해자들이 강하율 집에 가서 물건을 털어간 것도 어머니 뜻이었어요?”“윤제야, 나를 뭐로 보는 거니? 나는 그런 적이 없어. 그저 주변 사람들한테 강하율 혼자 집에 있다고 했을 뿐이야. 게다가 그 사람들이 물건을 털러 갔을 때 나는 하율이를 우리 집으로 데려왔어. 그거면 충분하지 않니?”조윤서는 싱긋 웃었다.당황한 배윤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정작 조윤서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지금 내가 손에 넣은 강하율 엄마의 유일한 유품이 바로 그 원피스야. 비록 더러워지긴 했어도 사람을 시켜 복구하면 분명히 뭔가 단서를 얻을 수 있을 거야.”배윤제는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그건 사실 제가 더럽힌 거예요. 강하율한테 물어봤는데 예전에 사람들이 집에 쳐들어왔을 때 몰래 숨겨둔 거래요. 걔 아빠가 엄마한테 선물한 거라면서요.”“그래. 바로 그거야. 분명히 이유가 있겠지.”“어머니...”“왜? 내가 매정한 것 같니? 그래도 그들보다는 덜 비정하지.”조윤서는 차갑게 웃었다....강하율은 배진 그룹에서 차근차근 일을 배우고 있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말처럼, 강하율에게는 양지원도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었는데 배진 그룹에는 인재들이 더 많았다. 그들과 말 몇 마디 하는 것만으로도 강하율은 많은 걸 배웠다.게다가 배진 그룹에서 일해서 그런지 아무런 위험도 느껴지지 않았다.저녁 무렵, 강하율은 양지원이 의식을 되찾았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강하율은 곧바로 그 사실을 배윤호에게 알렸다. 회사 대표가 일을 도와주면 참 편했다. 두 사람은 업무를 핑계로 시간차를 두고 회사를 떠났다.비록 교통수단은 달랐지만 두 번째 교차로에서 배윤호는 강하율을 기다렸다.차에 오른 뒤 강하율은 조금 들뜬 얼굴로 말했다.“총괄님이 얘기하실까요?”“일이 이렇게 된 이상 너한테 더 숨겨봤자 아무 의미 없어. 게다가...”배윤호는 생각에 잠긴 얼굴로 창밖을 바라봤다.강하율이 물었다.“게다가

  • 기억을 잃은 척할 때는 언제고   제406화

    조윤서는 흐뭇한 얼굴로 배윤제를 바라봤다.“윤제야, 네 아버지 건 다 네 거야. 우리는 그저 배씨 가문의 모든 것을 돌려받는 것뿐이야.”“어머니, 저한테 더 숨기는 건 없어요?”배윤제는 술기운이 완전히 가신 상태로 조윤서를 빤히 바라봤고, 조윤서는 덤덤히 웃었다.“응, 없어. 나는 평생 너랑 배씨 가문을 위해서 움직였을 뿐이야.”“그렇다면 강하율 부모님이 잘못된 게 어머니랑 관련이 있나요?”배윤제는 넋이 나간 얼굴로 조윤서를 바라봤다. 그의 눈동자에서 약간의 두려움이 보였다.정작 조윤서는 태연하게 웃으며 대꾸했다.“아니. 나는 아무것도 안 했어. 탐욕스러운 사람들이 그런 거지.”배윤제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조윤서는 배윤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말을 덧붙였다.“윤제야, 나는 오랫동안 하율이를 키웠어. 나도 당연히 하율이가 다치는 걸 원치 않아. 하율이를 곁에 남겨두는 건 괜찮지만 걔랑 결혼하는 건 안 돼. 무슨 뜻인지 알겠지?”“설마 제가 정다인이랑 결혼하기를 바라시는 건 아니죠? 정다인의 뱃속에 있는 아이는 제 아이가 아니에요.”배윤제가 반박했다.“알아. 하지만 공식 발표까지 한 이상 걔를 버릴 수는 없어. 걔를 버린다면 네 형이 틀림없이 그걸 문제 삼을 거야. 우리는 절대 약점을 잡혀서는 안 돼. 그러니까 모든 게 다 정리된 뒤에 정다인의 문란한 사생활을 공개하고 이혼하면 돼.”배윤제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여 고개를 끄덕였다.곧이어 그는 또 다른 문제가 떠올랐다.“하지만 지금 강하율은 형이랑 가까워졌어요. 만약 형한테 그 돈이 어디 있는지 얘기해 버리면 어떡해요?”“배윤호는 걔 아버지처럼 겉으로는 안 그래 보여도 사람을 잘 구슬리는 타입이야. 하지만 걱정하지 마. 내가 사람을 시켜 강하율을 지켜보고 있으니까. 걔가 어디서 뭘 하는지 다 알 수 있어.”조윤서가 시선을 들며 미소를 지었다.배윤제는 문득 조윤서가 낯설게 느껴졌지만 어머니인 그녀가 자신을 해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게다가 할머니도 항상 그의 편을

  • 기억을 잃은 척할 때는 언제고   제405화

    “어머니...”배윤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는 자신이 취해서 환청을 들은 줄 알았다.조윤서가 웃었다.“왜? 놀랐니? 하율이가 너를 사랑하게 된 게 내가 너를 도와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 바보 같긴. 나는 네가 어렸을 때부터 하율이를 좋아했다는 걸 알아. 그런데 네 형도 하율이를 좋아했지. 그래서 나는 하율이가 너한테 더 신경 쓸 수 있도록 했어. 배씨 가문 사람들이 너는 좋아하면서 윤호는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야. 그런데... 아무도 그걸 몰랐지.”그게 조윤서의 무서운 점이었다. 그녀는 사람들의 생각을 서서히 바꿔놓았고, 아무도 그녀를 의심하지 않았다.배윤제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멍하니 조윤서를 바라봤다.조윤서는 컵에 물을 따른 뒤 물을 한 모금 마셨다.“참 아쉬워. 내가 열심히 가르쳤는데 결국에는 자기 엄마 성격을 닮았으니 말이야. 나는 걔가 사랑에 눈이 멀어서 네가 다른 여자랑 만난다고 해도 몇 번 충격을 주면 체념하고 평생 세컨드로 살아갈 줄 알았는데... 너랑 헤어질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 게다가 윤호랑 그렇게 가까워질 줄도 몰랐지.”배윤제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어머니, 어머니는...”“왜? 무슨 문제라도 있어? 설마 강씨 가문이 가진 게 하정 그룹과 호텔뿐이라고 생각하니? 그렇다면 너는 강하율의 부모를 너무 얕본 거야. 우리가 그렇게 공을 들여서 판을 깔았는데 결국 낌새를 눈치챘더라고. 좀 늦긴 했지만 거액의 자금을 빼돌리기엔 시간이 충분했지. 그게 아니었으면 내가 하율이를 남겨둘 이유도 없어.”조윤서는 차갑게 웃었다.배윤제가 물었다.“거액의 자금이요? 강씨 가문은 파산한 거 아니었어요?”“순진하긴. 물론 강씨 가문에서 피해자들한테 돈을 배상한 건 사실이야. 하지만 그건 빙산의 일각일 뿐이야. 그렇지 않았다면 세원시에 그 부부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많았겠어? 돈을 너무 잘 버니까, 하는 것마다 잘 되니까 다들 배가 아픈 거지. 그런데 둘은 너무 원칙주의자였어.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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