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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9화

Author: 이소문
강하율은 오랫동안 세일즈팀에서 일하며 자신이 꽤 뻔뻔한 편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당장 어딘가에 몸을 숨기고 싶을 만큼 민망했다.

감히 배윤호를 바라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강하율이 더 이상 반항하지 않자 배윤제는 그녀의 얼굴에 드러난 난처함은 눈치채지 못한 채 오히려 더 짙은 미소를 지었다.

“형은 오랫동안 해외에 있었잖아. 그래서 그동안 내가 늘 하율이 곁에 있었어. 하율이는 전에 나한테 삐진 게 있어서 일부러 그런 거야. 형은 여자 마음 잘 모르잖아.”

배윤제는 강하율과 무슨 비밀스러운 관계라도 되는 듯이 굴었다.

물론 한때는 그런 관계였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배윤호는 눈빛이 어두워졌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침 장천우가 차를 세우고 그들의 앞에 왔다.

“가자, 하율아.”

배윤제는 그렇게 말한 뒤 강하율의 의견은 묻지 않고 다짜고짜 그녀를 끌고 차로 걸어갔다.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강하율은 배윤제가 몸을 돌린 순간 입을 열었다.

“대표님, 제가 알아서 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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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억을 잃은 척할 때는 언제고   제145화

    그때 마침 배윤제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동의 안 했어.]정다인은 손이 떨리며 표정이 일그러졌다.“강하율, 이렇게 나오면 내가 아무것도 못 할 줄 알고?”몇 분 뒤 배윤제의 휴대폰으로 손목을 그은 사진과 함께 정다인의 유언이 도착했다.“윤제 씨, 살아서 윤제 씨를 망신시킬 바에야 차라리 죽음을 선택할게요. 부디 다음 생에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라요.”배윤제는 음성 메시지를 듣자마자 레스토랑을 뛰쳐나와 빠른 속도로 병원으로 향했다.병실 안, 정다인은 이제 막 손목에 붕대를 감은 상태였는데 배윤제가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그의 품으로 달려들었다.“그냥 죽게 내버려두지 그랬어요? 죽으면 이런 일을 겪지 않아도 되잖아요... 다 제 잘못이에요. 윤제 씨까지 끌어들인 거 정말 미안해요.”배윤제는 눈물로 범벅이 된 정다인의 얼굴을 보자 마음이 조금 아렸다.한때 그는 반드시 그녀를 지켜주겠다고 약속했었다.그런데 불현듯 단호하게 돌아서던 강하율의 뒷모습이 떠올랐다.강하율의 집안이 망했을 때 배윤제는 강하율을 안쓰럽게 여겨서 그녀를 꼭 지켜주겠다고 했었다.그러나 강하율은 그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강한 사람이라 그가 지켜주지 않아도 되었다.그래서 아주 심한 일을 당했을 때도 강하율은 자살하겠다며 겁을 주지 않고 오히려 그를 달래주었다.“걱정하지 마.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강하율은 너무 착해서 절대 그에게 걱정을 끼치려고 하지 않았다.그런 생각이 들자 배윤제는 정다인의 우는 소리에 조금 짜증이 나서 쌀쌀맞게 말했다.“다인아, 아저씨를 농락한 뒤 일부러 그런 사진을 찍어서 남긴 거야?”정다인은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강하율이 배윤제에게 뭔가 말했을 거라고 믿었다.그녀는 배윤제의 품에서 나온 뒤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다.“저를 의심하는 거예요? 역시 윤제 씨는 아직도 하율 씨를 신경 쓰고 있네요. 전 그냥 유학을 갔다 왔을 뿐인데... 윤제 씨는... 윤제 씨가 한 약속을 믿은 제 잘못이에요. 이만 가봐요. 더는 윤제 씨 발목을 붙

  • 기억을 잃은 척할 때는 언제고   제144화

    식사를 마친 뒤, 강하율에게 한 고객이 전화를 걸어 오후에 현장을 보고 싶다고 했다.강하율은 자리에서 일어나 배윤호에게 인사를 건넸다. 배윤호가 강하율이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와중에 그의 휴대폰 화면이 테이블 위에서 밝게 켜졌다.배윤호는 냅킨으로 손을 닦은 뒤 느긋하게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배윤호, 내 레스토랑 셰프에게 고작 집밥 메뉴나 시키냐? 네 동생은 그래도 꽤 비싼 요리를 시키던데 말이야.][어.][이거 완전히 사랑에 빠졌네. 저녁에 한잔할래?][볼일이 있으니까 다음에 마시자.]배윤호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양승아를 바라보았다.양승아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대표님, 분부 있으십니까?”“강하율이 어렸을 때 크게 앓은 적이 있다고 했어. 그런데 내가 기억하기로는 그런 일이 없었거든. 정말 그렇게 심각했다면 우리 아버지가 모를 리가 없지. 걔 병원 기록을 확인해 봐.”“알겠습니다. 그리고... 보고가 올라왔는데 어르신께서 정다인 씨를 찾으셨답니다.”양승아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그 순간 배윤호의 눈빛이 급격히 차가워졌다.“여전하시네.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는 걸 보면 말이야.”“그럼...”양승아가 말을 꺼내려 하자 배윤호가 손을 들어서 막았다.“아직은 때가 아니야. 병원장에게 경비를 강화하라고 전해.”“알겠습니다.”...병원.두 시간 전, 정다인은 기절한 척해서 병원으로 실려 왔다.그것은 네티즌들의 동정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배윤제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배윤제는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보더니 곧바로 강하율을 찾아갔다.강하율은 분명히 우쭐했을 것이다.배윤제가 먼저 찾아온 데다가 비싼 레스토랑까지 데려가 주기까지 했으니 말이다.그러나 여론을 잠재우려면 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정다인은 싫어도 참아야 했다.그러나 속이 뒤틀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그래서 일부러 배윤제와 강하율이 식사하고 있을 때 배윤제에게 전화를 걸어 그를 붙잡고 길게 이야기를 늘어놓았다.그녀는 강하율에게 배윤제가 진

  • 기억을 잃은 척할 때는 언제고   제143화

    그러나 아무리 떠올리려고 해도 기억나지 않았다.배윤호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잠시 침묵하다가 덤덤히 말했다.“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니야. 나랑 아버지가 너희 어머니 생일 파티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그때 너희 어머니가 직접 요리를 하셨어. 그때 음식들을 소개하며 전부 네가 좋아하는 것들이라고 하셨지. 기억 못 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야.”“어... 저희가 그렇게 어릴 때부터 알던 사이였어요?”강하율은 자기도 모르게 열한 살, 열두 살 이전의 자신을 떠올리려 애썼다.부모님이 그녀를 무척 아꼈기에 강하율은 다른 재벌가 딸들처럼 매일 엘리트 교육을 받으며 바쁘게 지내지 않아도 됐다.대신 그녀는 엄마를 따라 호텔에 가는 걸 좋아했고 많이 타서 피부가 조금 까무잡잡했다.그래서 파티에 참석하면 다른 친구들 사이에서 혼자만 유난히 튀었다.그러나 배윤호는 달랐다. 강하율은 배씨 가문에 있을 때 그의 어릴 적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한창 노는 걸 좋아할 나이였는데도 배윤호는 아버지 옆에서 회사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배우고 있었다.그만큼 그는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사람이었다.배윤호는 고개를 기울인 채로 기억을 더듬는 그녀를 보며 옅게 웃었다.“그보다 더 전이야. 너희 어머니가 너를 낳았을 때 널 보러 간 적이 있거든.”“...”강하율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의 머릿속에 드라마 같은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어린 남자아이가 잔뜩 질린 표정으로 갓 태어난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이라니...“이상한 상상하지 마. 너희 아버지가 너는 여자애라면서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게 하셨거든.”“풉.”강하율은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고, 그 순간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졌다.그러고 보니 배윤제와 배윤호는 비록 이복형제지만 두 집안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나쁘지 않았다.배윤호의 아버지가 배윤호를 데리고 그녀를 보러 간 것도 정상이었다.그러나 이미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 배윤호가 당시 그녀의 어머니가 소개했던 음식들을 기억하고 있는 건 조금 놀라웠다.배윤호는 더

  • 기억을 잃은 척할 때는 언제고   제142화

    레스토랑에서 나온 강하율은 지하철역 쪽으로 걸어갔다.조금 걷자 휴대폰이 울렸다.배윤호에게서 온 메시지였다.[밥 먹으러 와.][오빠, 잘못 보낸 거 아니에요?]강하율이 답장을 보냈다.[너는 어떻게 생각해?]강하율은 메시지를 읽고 난 뒤 뒤돌아 레스토랑을 바라봤다.혹시라도 배윤제를 마주친다면 또 한바탕 실랑이가 벌어질 게 뻔했다.강하율은 이미 너무 지쳤다.그녀가 어떻게 정중하게 거절할지 고민하고 있는 사이 또 메시지가 왔다.[걔 갔어.]마침 그때 배윤제의 차가 그녀 앞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고 하마터면 코너를 돌던 차와 부딪칠 뻔했다.그럼에도 배윤제는 멈추지 않고 오히려 더 빨리 달렸다.강하율은 차가 사라진 방향을 잠시 바라보다가 그가 정다인이 겁을 먹고 입원했다고 말했던 걸 떠올렸다.저렇게 급한 걸 보니 사랑하는 사람을 보러 갔을 것이다.강하율은 덤덤히 시선을 거두었는데 그때 양승아가 헐레벌떡 뛰어나왔다.“강하율 씨, 대표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그... 저 출근해야 하는데 이미 지각이라서요.”강하율은 배윤호가 자신과 배윤제의 대화 내용을 확인하려는 거라고 짐작했다.배씨 가문의 명예가 걸린 일이다 보니 뭐라도 좀 알아내야 할 것이다.그러나 강하율은 어떻게 입을 떼야 할지 몰랐다.이때 양승아가 앞으로 나서며 조금 퉁명스레 대꾸했다.“대표님께서 강하율 씨 대신 양지원 씨에게 상황을 전달해서 괜찮습니다.”양지원은 강하율의 직속상사였다.“...”이렇게 된 이상 더는 핑계를 댈 수 없어 강하율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레스토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양승아는 강하율을 계속 힐끗힐끗 살폈다.강하율은 그의 시선 때문에 왠지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설마 정신병원에서 배윤제와 함께 떠나서 배윤호가 화가 난 걸까?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양승아의 휴대폰이 울렸다.그가 전화를 받자마자 수화기 너머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잘못했습니다. 제발 한 번만 살려주세요!”“절대 함부로 입을 놀리지 않겠습니다. 저... 아..

  • 기억을 잃은 척할 때는 언제고   제141화

    강하율은 빠르게 답장을 보냈다.[농어로 해요. 맛있잖아요.][응.][오빠, 여기 대관이 된 거 아니었어요?]강하율이 궁금해서 물었다.[친구 레스토랑이라 밥 좀 얻어먹으러 왔어.]배윤호와 일상적인 얘기를 나누게 되자 강하율은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배윤호가 태연하게 농담을 하는 모습이 그녀는 상상이 잘 가지 않았다.강하율이 뭐라고 답할지 고민하던 순간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뭐가 그렇게 웃겨? 왜 안 먹었어? 나 기다린 거야?”...강하율은 웃음을 거두고 휴대폰을 내려놓았다.배윤제는 그걸 눈치채지 못한 채 강하율의 앞접시에 대구를 한 점 올려주며 말했다.“어제 기억이 좀 났어. 너 대구 좋아했었지?”강하율은 대구에는 손도 대지 않고 심호흡을 한 뒤 곧장 본론을 꺼냈다.“대표님, 이렇게 밑밥 깔 필요 없어요. 하고 싶은 말이 대체 뭐예요?”배윤제는 여전히 강하율을 그만 사랑하는 여자, 조금만 달래면 금세 화가 풀릴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전화를 끊자마자 기억이 났다고 한 건 정다인이 또 무슨 짓을 저질러서 미리 그녀를 달래두려는 수작이었다.배윤제는 와인잔을 만지작거리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이 일은 다인이에게 아주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어. 다인이 지금 네티즌들이 보낸 디엠 때문에 단단히 겁에 질려서 입원까지 했어.”“그런데요?”강하율이 차가운 목소리로 대꾸했다.“저는 신상 털릴 때 기절을 안 했으니 덜 불쌍하다는 건가요?”“강하율! 그렇게 말하지 마. 내가 보상해 줄게. 그러니까 너는 다인이 일 좀 해명해.”배윤제는 눈썹을 찌푸리며 경고하듯 강하율을 바라봤다. 마치 그가 보상해 주면 강하율이 감지덕지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시선을 내려뜨린 강하율은 그가 말한 해명이 뭔지 조금 궁금해졌다.“뭘 어떻게 해명하라는 거죠?”강하율이 한발 물러선 듯 보이자 배윤제는 자기도 모르게 넥타이를 느슨하게 당겼다. 조금 전 턱끝까지 차올랐던 답답함이 풀리며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 것 같았다.강하율이 타협하려고 한다는 건 여

  • 기억을 잃은 척할 때는 언제고   제140화

    ‘화 풀라고?’배윤제가 말이 끝맺자 직원이 꽃다발을 들고 다가왔다.연애하는 동안 단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던 꽃다발을 말이다.사실 예전에 강하율은 배윤제에게 기념일에 꽃 한 송이라도 받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배윤제는 번번이 잊었고, 끝내 강하율도 꽃을 선물해달라는 말을 더는 꺼내지 않았다.그러던 어느 날, 정다인의 SNS를 통해 강하율은 배윤제가 정다인을 만나러 갈 때마다 흰 장미를 한 송이씩 사 가는 걸 보았다.그리고 그제야 깨달았다.배윤제는 그녀의 말을 잊은 게 아니라 그저 사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는 걸 말이다.그들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연인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평생 남몰래 만나야 하고, 그러면 배윤제는 언제든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발을 뺄 수 있었다.이때 레스토랑 안은 화려한 조명 아래 감미로운 음악 소리가 흐르고 있었고 강하율의 눈앞에는 예쁜 흰 장미가 놓여 있었다.마치 드라마 속 한 장면 같았다.예전의 강하율이라면 아마 들뜬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꽃을 받아 들며 기뻐했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코와 입을 가리며 말했다.“저 흰 장미 알레르기가 있어요.”사실 그런 알레르기는 없었다.배윤제도 아마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그러나 배윤제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이내 직원을 바라보며 말했다.“치워요.”“...”강하율은 물을 한 모금 마시며 자조했다.배윤제는 정말 단 한 번도 그녀에게 관심을 기울인 적이 없었다.배윤제에게 더는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던 강하율은 고개를 들며 말했다.“대표님, 이번에 대표님께서 조금 과격했다고 하셨잖아요. 그러면 언제쯤 정다인 씨더러 저와 제 아버지에게 사과하게 하실 생각이죠?”배윤제는 멈칫하더니 애써 인내심을 유지하며 말했다.“다인이는 네 아버지 같은 환자가 궁금했을 뿐이야. 조금 선을 넘은 건 맞지만, 악의는 없었어.”“살인범이 왜 살인을 저질렀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있어도 직접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은 없어요. 실수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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