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전문가! 신나리

이별전문가! 신나리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4-23
Por:  데이지Actualizado ahora
Idioma: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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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누구나 시작하지만, 끝내는 법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결혼 직전, 이유도 모른 채 사라진 연인. 뒤늦게 알게 된 병의 진실, 그리고 남겨진 상처. 그 상처를 직업으로 바꾼 여자가 있다. 신나리. 그녀는 타인의 굿바이를 대신 설계하며, 아름답고 단호한 이별을 만들어준다. 하지만 누군가의 안녕을 돕는 순간마다 끝내 놓지 못한 자신의 사랑과 다시 마주한다. 열 번의 의뢰, 열 가지의 굿바이. 그리고 마지막에 찾아올, 나리 자신의 가장 아픈 이별. 사랑의 끝에서 비로소 시작되는 이야기. 〈이별전문가! 신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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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pítulo 1

1. 끝내야 시작된다

유리창을 타고 내려온 빗줄기가 막 그친 뒤라 거리는 씻긴 듯 말갛고, 

카페 문을 여는 순간 퍼지는 따뜻한 우유 냄새가 목울대를 가볍게 적셨다. 

종소리가 한 번 흔들리고 고요가 제자리로 돌아오자, 

창가에 앉은 여자가 나를 향해 몸을 반쯤 일으켰다. 

얇은 손가락이 머그컵을 꼭 쥔 채 미세하게 떨렸다. 

나는 우산을 접어 문 옆에 세우고, 앞치마를 매는 바리스타를 스치듯 지나 

그녀 맞은편에 조용히 앉았다.

“그냥… 나리라고 부르면 돼요.”

이름을 짧게 건네자 여자의 어깨가 아주 조금 내려앉았다. 

민하. 스물아홉. 누구에게도 쉽게 털어놓기 힘든 이야기를 하기 위해, 

표정을 평소보다 한 겹 더 단단하게 닫아둔 얼굴이었다. 

그녀는 입술을 한 번 눌러 다잡더니 문장을 한 톨씩 꺼냈다. 

아버지 회사가 지난주에 무너졌고, 집안의 통장들이 동시에 

숨을 멈춘 듯 조용해졌으며, 예비신랑은 그 사실을 아직 모른다고.

“알면 분명히 말릴 거예요. 같이 갚자고 하겠죠. 

그 사람은 늘 그런 식이에요. 먼저 손 내밀어 주는 사람.”

말끝에 미안함이 묻어 있었지만, 

그게 사랑인지 죄책감인지 본인도 분간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메모장을 펼쳤다가 곧 덮었다. 

적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있다. 

오래 묵으면 스스로 모양을 갖추는 것들.

“그래서, 그만두고 싶다… 그 얘기죠?”

민하의 눈동자가 잠깐 흔들렸다.

“나쁜 사람으로 남고 싶진 않아요. 

그렇다고 착한 척하다 같이 가라앉고 싶지도 않고요. 

어떻게 해야 덜 망가질 수 있을까요? 저도, 그 사람도.”

“두 사람 모두 살아남는 길을 찾는 게 제 일이에요.” 

나는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그가 먼저 손을 놓도록 유도하되, 당신 손에는 흠집이 나지 않게. 

그리고 그 말은 진실을 모두 숨기자는 뜻이 아니라, 

필요한 만큼만 보이자는 뜻이기도 해요. 괜찮겠어요?”

민하는 과감하지 않은 고개짓으로 천천히 동의했다.

그녀의 동의는 누군가의 허락을 기다리던 아이가 아닌, 

스스로를 설득한 어른의 움직임이었다.

그 순간, 문이 다시 열리며 빗물이 묻은 신발이 

나무 마루에 작게 소리를 남겼다. 검은 비니를 눈썹 위까지 눌러쓴 

남자가 익숙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정제하. 

내가 믿는 일의 반을 책임지는 사람. 

그는 장갑을 벗으며 민하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정제하입니다. 듣기로는 결혼식이 한 달 남짓이네요.”

민하는 짧게 허리를 숙였다.

“루틴이 단단한 사람이라면 일주일이면 충분합니다.” 

제하는 시계를 한 번 스치듯 보고 덧붙였다. 

“관찰, 사실 확인, 그리고 마지막 장면 설계. 

세 단계로 가죠.”

민하는 커피잔을 한 번 돌렸다. 

그 작은 원을 여러 번 그리다 말고, 내 쪽으로 시선을 가져왔다.

“이 과정에… 거짓말이 많이 필요할까요?”

“거짓은 상처를 늦게 곪게 만들 뿐이에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만드는 건 장면이에요. 

사람은 말보다 장면을 오래 기억하거든요. 

그 오래가는 기억이 흉터가 아니라 표정이 되게 하는 것, 

그게 목표죠.”

합의서에 사인을 하는 동안 카페의 종소리가 한 번, 

바깥에서 쏟아지는 자동차 물보라 소리가 한 번, 

시간을 단정히 구획 지어 주었다. 

계약서를 접어 봉투에 넣으며 민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사람… 상처받지 않게 해달라는 말은 욕심일까요?”

“상처는 생겨요.” 

나는 단정했다. 

“다만 흉터로 남지 않게 하는 게 

우리의 기술이고, 당신의 용기예요.”

민하가 떠난 뒤, 우리는 짧게 눈빛을 주고받았다. 

제하는 내 양손을 힐끗 보더니 장난스럽지 않은 농담을 던졌다.

“손이 차네. 오늘도 뜨거운 거 하나 마셔.”

“바리스타한테 주문해보든가.”

“사장님이 오늘은 주방도 보시는데?”

시답잖은 대화로 숨을 고르며 우리는 바로 일정을 짰다. 

아침엔 강변 러닝 코스, 점심은 회사 근처 카페 잠입, 

저녁엔 의뢰인 집에서 ‘미래 설계’ 상담. 

익숙한 패턴이면서도 매번 달라지는 사람 때문에 늘 낯선 일.

퇴근길 지하철 창에는 축축한 도시의 피부가 흐르고 있었다. 

의자 등받이에 어깨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뜨는 사이, 

손바닥이 작은 진동을 전해 왔다. 미확인 번호. 

화면에는 단 네 글자. 나리야.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따라붙었다. 

다음 줄에 짧은 문장이 덧붙었다. 

잘 지내지? 미안해. 진짜 미안해. 거기서 끝. 

발신자 정보는 곧장 사라졌다. 

공중으로 내던져진 돌멩이처럼, 

설명 없이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다.

이름 석 자가 내 안에서 오래 울렸다. 온유. 

결혼식 이주 전, 우리의 시간표를 한 번에 지워버리고 사라졌던 사람. 

그가 놓고 간 말들은 칼이 아니었지만 칼보다 깊게 스며들어 오래 아팠다. 

결혼은 버겁다. 설레지 않는다. 사랑하지 않는다. 

나를 보호하려고 던진 거짓이라는 사실을 나중에야 

짐작하게 했던, 좋은 사람의 잔인함.

휴대폰을 뒤집어 놓고도 화면이 내 눈꺼풀 안쪽에서 계속 반짝였다.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다시 내 일의 목록으로 돌아왔다. 

누군가의 이별을 안전하게 데려다주기 위해 만든 삶. 

아직 끝내지 못한 나의 이별은 그 안에서 조용히 식어가거나, 

반대로 아주 천천히 식지 않는 중이었다.

다음 날 아침, 강변을 따라 바람이 길을 냈다. 

러닝 코스 위에서 땀방울이 햇빛을 만나 반짝였다 

사라지는 사이, 제하는 카메라 셔터를 거의 누르지 않았다. 

보는 일이 기록보다 중요할 때가 있다. 

멀리서 달려오는 남자 하나. 등선이 반듯하고 보폭이 일정했다. 

민하의 예비신랑, 도윤. 

첫 번째 랩, 물 한 모금, 두 번째 랩, 스트레칭. 

시작과 끝이 딱 맞는 사람의 리듬.

“성실형.” 

제하가 낮게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결심의 순간도 정직하겠지.” 

나는 모자를 고쳐 쓰며 속으로 계획표를 덧칠했다. 

첫째, 변화가 안전하다는 인상을 심는다. 

둘째, 의뢰인의 선택이 희생이 아니라 결정임을 보여준다. 

셋째, 마지막 문장은 그의 입에서 나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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