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우리 부모님이 자산을 숨겨놓지 않았다는 건 이미 증명됐어요. 그러면 이제 우리 아빠가 누명을 썼다는 건 어떻게 증명해야 할까요?”“사람들은 다들 너희 아버지의 비서가 너희 아버지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증거를 발견해서 너희 아버지가 비서를 죽였다고 생각해. 그러나 애초에 너희 아버지는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어. 그러니까 비서를 살해할 이유도 없지. 그러니까 접근 방식을 바꿔야 해.”배윤호가 분석했다.“사실 비서 아저씨는 좋은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한동안 아저씨랑 저희 아버지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고민해 본 적도 있어요.”“너희 아버지는 아직 아프시니까 단서를 제공할 수가 없어. 그러니까 비서의 가족부터 찾아야 해.”배윤호가 말했다.“그 탐정에게 아무런 증거가 없을 리가 없어요. 하지만 그동안 탐정이 저한테 알려준 정보들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신이 안 서요.”강하율은 자리에서 일어난 뒤 방으로 가서 자신이 정리해 둔 증거들을 가져왔다.배윤호는 그것들을 보면서 말했다.“접근 방식을 바꿔야 하니 증거를 보는 관점도 바꿔야지. 탐정이 너한테 이 증거들을 준 이유가 뭘까?”“저를 잘못된 방향으로 유도하는 동시에 저한테서 돈을 벌 생각이었겠죠.”강하율이 말했다.“그렇다면 네가 그 가족을 만나지 못하게 하려고 하지는 않았을까?”“그러니까 비서 아저씨 가족은 해외에 있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큰돈을 받은 것도 아닌 거네요? 저는 탐정이 말한 것과 반대로 추적하면 그들을 찾을 수 있겠네요.”강하율은 의욕이 생겼다.배윤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이미 민성운을 통해 탐정에게서 그가 강하율에게 제공한 정보 모두 조윤서가 제공하라고 한 정보라는 점을 알아냈다.비서 가족의 행방에 대해서는 사실 배윤호도 아는 게 없었다.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강진철의 누명을 벗기는 일이었다.강하율은 의욕이 생기자 풀이 죽어 있을 틈도 없이 얼른 식사를 마치고 조사를 해볼 생각이었다....호텔.배윤제는 예전에 쓰던 스위트룸에 있었다. 배씨
가볍게 스치듯 끝난 키스는 배윤호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그러나 그는 몹시 절제했고 또 조심스러웠다. 마치 강하율이 겁을 먹을까 봐 걱정되는 것처럼 말이다.예전과 똑같았다. 예전에도 배윤호는 처음에 칼로 강하율을 놀라게 하긴 했지만 그 뒤에는 완전히 다른 사람인 것처럼 굴었다.강하율은 온몸이 나른해져서 어느샌가 자기도 모르게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연인 사이에서나 나눌 법한 키스라 여전히 부끄럽긴 했지만 예전과는 달리 가슴이 두근거렸다.키스는 점점 더 깊어졌다. 배윤호도 처음에는 절제할 수 있었지만 갈수록 숨이 가빠졌다. 그럼에도 그는 끝까지 무리하게 밀어붙이지는 않았다.강하율은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듯한 배윤호의 모습을 보고 먼저 그에게 다가갔다.배윤호는 주먹을 움켜쥐며 몸을 지탱했다.“하율아, 이러지 않아도 돼.”강하율은 숨을 고르며 말했다.“억지로 하는 거 아니에요.”배윤호가 말했다.“그래도 안 돼. 너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그 말을 듣고 강하율은 웃음을 터뜨렸다.“오빠, 오빠는 안 먹어도 괜찮다는 걸 말하고 싶은 거예요?”“강하율, 너 요즘 장난기가 많아졌네. 가서 밥부터 먹자.”“네.”강하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침대에서 일어나려니 순간 눈앞이 어지러웠다.배윤호가 강하율을 부축하며 그녀와 함께 식탁까지 걸어갔다.식탁 위 차려진 음식들을 본 강하율은 감동을 받았고 자리에 앉은 뒤 식사를 시작했다.이때 휴대폰이 울렸다.안혜슬의 번호인 걸 확인한 강하율은 황급히 전화를 받았다.“하율아, 어떻게 됐어? 나쁜 사람들은 다 잡혀간 거야?”강하율은 배윤호를 힐끗 보고는 상황을 간단히 설명했다.안혜슬이 소리쳤다.“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너무 열받는다. 그런데 너 그거 알아? 나 아까 배윤제를 봤어. 너를 찾으러 호텔에 왔더라.”안혜슬은 며칠 전부터 다시 호텔에서 일하고 있었다.배윤제의 이름을 듣고도 강하율은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나는 배윤제 안 보고 싶어.”“배윤호 대표님이 계신 이상 배윤제는 너
살아 있어야만 희망이 있었다.그래서 경선희는 그 편지를 석가산 안에 숨겨 두었던 것이다.편지를 다 읽고 나서 강하율은 눈물을 흘렸다.당시 경선희는 자신이 증거를 지킬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만약 나쁜 사람들이 그 증거를 다시 손에 넣는다면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강하율은 가슴을 부여잡고 조용히 울기 시작했다.배윤호가 뒤에서 그녀를 끌어안았다.“걱정하지 마. 내가 있잖아.”강하율은 다시 증거들을 꺼냈다. 조윤서가 어떻게 호텔을 빼앗았는지, 임씨 가문과 기씨 가문이 어떻게 강씨 가문을 함정에 빠뜨렸는지 모두 그 안에 담겨 있었다.강하율은 두 손을 떨며 몸을 돌려 배윤호를 바라봤다.“오빠... 우리 아빠는 그동안 누명을 쓴 거예요. 우리 아빠는 죄가 없어요.”배윤호는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응. 나도 알아.”강하율은 그의 품에 안겨 목 놓아 울었다.그녀는 증거를 제출하면 아버지가 곧 풀려날 줄 알았다.그런데 장경문이 모든 죄를 혼자 뒤집어썼다.그리고 강씨 가문을 함정에 빠뜨린 것도 자신이 조윤서를 협박해서 시킨 일이라고 주장했다.그는 심지어 자신이 조윤서를 강제로 범해 아이까지 낳게 했다고 말했다.아이 둘을 강제로 낳게 했다니, 말이 될 리 없었다.조윤서는 똑똑한 사람이었기에 처음부터 빠져나갈 준비를 해두었다.장경문이 그녀를 협박한 사진, 영상, 메시지까지... 그녀는 모든 증거를 갖고 있었다.조윤서는 그날 바로 풀려났다.그리고 강진철은 풀려나지 못했다. 비서의 죽음을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그 누구도 그 일에 있어서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았다.강하율은 그 소식을 전해 듣고 넋이 나갔다.그러나 배윤호는 예상했다는 듯이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그날 강하율은 아무것도 먹지 않고 방에 틀어박혀 있었는데, 배윤호가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와 이불을 걷어냈다.“그동안 쭉 버텨왔으면서 이제 와서 포기할 거야? 너답지 않게.”강하율은 배윤호가 자신을 다독이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이 상황을 도저히
강하율의 기억 속 배윤호는 어릴 때나 지금이나 늘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이었다.그래서 지난 10년 동안 자신을 묵묵히 지켜온 사람이 바로 그였다는 건 생각지도 못했다.배윤호는 강하율의 손을 잡고 사람들 앞에 나섰다.“이제 할 말은 다 했어요. 할머니, 그래도 배윤제를 계속 감싸겠다면 저도 더 할 말은 없어요.”말이 끝나자마자 경찰이 들어왔다.“여기 신고하신 분이 누군가요?”“저입니다. 당시 배씨 가문 사건에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점이 있습니다. 증거는 이미 다 준비해 두었고 사람도 바로 데려가시면 됩니다.”“안 돼요! 안 돼요!”장유민은 다급하게 외치며 조윤서와 장경문을 껴안았다.“아빠, 엄마! 뭐라고 말 좀 해요!”장유민의 말 한마디로 모든 변명은 무의미해졌다.특히 배윤제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을 보니 자신이 그의 여동생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그러나 배윤제는 뒷걸음질 쳤다.강하율은 놀라지 않았다.배윤제는 귀하게 자란 전형적인 재벌가 자제였고 능력도 있었지만, 만약 배씨 가문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 같은 자리까지 오르기 위해 적어도 10년은 굴러야 했다.지금 이곳을 떠나면 그는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었다.그래서 배윤제는 뒤로 물러나며 본능적으로 명혜숙을 바라봤다.하지만 오랫동안 속아온 명혜숙이 더 이상 이용당할 리 없었다. 그녀는 집사를 향해 손짓했고 이내 그녀는 거실을 떠났다.“할머니, 할머니!”배윤제가 애타게 불러도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결국 배윤제는 제압당해 조윤서 곁으로 끌려갔다.사실 배윤제의 처지는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는 조윤서이고 조윤서라면 그동안 몰래 재산을 많이 모아두었을 테니 말이다.그러나 그 돈을 얼마나 지킬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경찰이 그들을 데려가면서 모든 일은 막을 내렸다.강하율은 가슴이 답답해졌고, 그때 배윤호가 그녀의 손을 가볍게 끌어당겼다.“밖에 나가자.”“네.”강하율은 배윤호를 따라 차에 올랐다.그녀는 배윤호가 자신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갈 줄 알
배윤호는 조윤서를 똑바로 바라봤다.“아버지는 당신이 강하율 어머니를 향한 자신의 감정을 눈치챘다는 걸 알고서 친자 확인을 진행했어요. 그리고 결과를 확인한 뒤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죠. 그러다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저한테 이걸 전해줬어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면 절대 공개하지 말라면서 말이에요. 자기가 먼저 잘못했으니까 배윤제 하나쯤은 키워줄 수 있다고요.”그 말을 듣자 조윤서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왜 그런 짓을 한 거야? 이러면 내가 고마워할 줄 알고?”“저희 아버지 병세가 갑자기 악화한 것도 당신 때문이죠?”배윤호가 말했다.“당신은 일부러 국내에 남아서 언론에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흘렸고 배윤제 납치 사건까지 계획했죠.”“말도 안 돼! 우리 어머니가 납치를 계획했다고? 그 납치범들은 나를 때리기까지 했어. 그런데 그게 가짜라고?”배윤제가 반박했다.배윤호는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그래서 크게 다쳤었어? 아니잖아. 네가 상처를 입어야지 다들 네가 납치되었다는 걸 믿지. 또 그래야 나한테 누명을 뒤집어씌울 수 있고 말이야.”“...”“그런데 너희 엄마는 강하율이 너를 구해줄 줄은 몰랐던 거야. 너희 엄마는 납치 사건이 우리 아버지 귀에 들어갈까 봐 걱정했어. 우리 아버지라면 틀림없이 너희 엄마가 그 사건을 꾸몄다는 걸 알 테니까. 그래서 강하율 부모님한테 네 납치 사건을 비밀로 해달라고 사정한 거야. 그리고 우리 아버지를 돌봐주겠다는 핑계로 너를 데리고 해외로 나갔지.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모든 걸 알고 계셨어. 그래서 나한테 친자 확인서를 건네며 유언을 남긴 거야. 네가 나를 다치게 하는 걸 막으려고.”그 이후의 일들은 언론에 알려진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배윤호의 아버지는 병세 악화로 세상을 떠났고, 배씨 가문은 겉으로는 평온해 보였지만 사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배윤호 어머니 쪽 세력이 아주 강하다는 걸 깨달은 조윤서는 한동안 힘을 기르며 때를 기다리는 쪽을 택했다.“
줄곧 앉아 있던 조윤서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차갑게 웃으며 명혜숙을 바라봤다.“어머님도 많이 늙으셨네요. 배윤호가 몇 마디 하니까 말도 못 하시고. 처음부터 어머님이 저를 몰아붙이셨잖아요. 어머님은 제게 배윤호 아빠랑 결혼하고 싶으면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그러니까 호텔 소유권을 넘기라고 하셨죠. 저는 경선희가 자기 성과를 다른 사람에게 넘길 리가 없다고 했어요. 그런데 어머님은 뭐라고 하셨죠? 강씨 가문만 사라지면 된다고, 어머님은 기다릴 수 있다고 하셨죠. 어머니는 기다릴 수 있다고 하셨으니 저는 이 모든 걸 제 걸로 만들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어머님의 신분을 이용해 천천히 제 인맥을 키웠고 여기까지 올라온 거예요. 저는 곧 그 목표를 이룰 수 있었는데...”조윤서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강하율을 바라봤다.“그래. 나는 너를 아껴주고 싶어서 데려온 게 아니야. 어머님이 왜 너를 데려오는 걸 허락했는지 알아? 강씨 가문 재산을 확인해 봤는데 예상보다 훨씬 적었거든. 그래서 어머님은 네 부모가 너를 위해 어딘가에 돈을 숨겨뒀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동안 내가 잘해줘서 더 괴롭지? 사실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네가 그 돈을 토해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어. 배윤호도 마찬가지야. 설마 배윤호가 정말 너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강하율은 조윤서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이모, 다른 사람들도 다 이모 같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입 닥쳐!”명혜숙이 화를 내며 말허리를 끊었다.그러나 조윤서는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나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배씨 가문에 시집왔어. 그런데 배윤호 아빠는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어. 대신 인터넷에서 경선희의 사진을 찾아서 봤지. 심지어 내가 윤제를 낳은 뒤에도 그저 사람들 앞에서 사이좋은 척 연기만 했어. 그런데 내가 왜 윤호 아빠를 위해서 순결을 지켜야 해? 맞아. 장유민은 내 딸이야. 그게 뭐 어때서? 너희가 이겼다고 생각하니? 아니야.”조윤서는 크게 웃었다. 그 웃음은 아직 드러나지 않은 음모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