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통화가 끊긴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는 제나의 눈빛이 한층 가라앉았다.류서윤 일행의 곁으로 다시 돌아오자, 류서윤은 차갑게 제나를 흘겨보았다.“전화 통화는 다 끝났어? 끝났으면 가자.”“사모님, 저 먼저 화장실 좀 다녀와도 될까요?”류서윤이 미간을 찌푸리며 못마땅하게 말했다.“왜 이렇게 일이 많아?”“죄송합니다. 오늘 물을 좀 많이 마셔서요.”류서윤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빨리 안 가?”제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연주에게 눈짓을 보냈다.연주는 여러 해 동안 제나 곁에 있었기에, 두 사람 사이
김미령은 차갑게 연주를 흘겨봤다.“버릇없는 것. 여기서 끼어들 자리가 어디 있다고 나서?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괜히 있겠니? 수준이 비슷한 것들끼리 붙어다니는 법이야.”연주는 이렇게까지 막무가내인 사람은 처음 봤다. 화가 치밀어 올라 얼굴이 붉어졌다.연주가 앞으로 나서서 따지려는 걸, 제나가 붙잡았다.제나는 김미령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입만 열면 ‘교양 없다’라는 말을 하시는 분치고, 정작 본인 품위가 대단한 경우는 별로 없더라고요. 사모님 말씀도 아주 틀린 건 아니네요.”“어떤 사람들은 정말 낳아 놓고도 제대로 가
발등을 짓누르는 듯한 날카로운 통증이 다시 밀려왔다. 참기 어려울 만큼 아팠다.제나는 본능적으로 눈앞의 여자를 밀어냈다.제나는 적지 않은 힘을 썼고, 그 바람에 눈앞의 여자는 그대로 바닥에 나동그라졌다.마침 그때, 두 명의 우아한 중년 여성이 멀리서 이쪽으로 걸어오다가 그 장면을 보고 급히 달려왔다.“어머, 하음아! 괜찮아?”“어디 다친 데는 없니?”두 사람은 양쪽에서 하음을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하음의 매끈한 피부에는 바닥에 쓸린 상처가 몇 군데 생겨 있었다.하음의 어머니 김미령은 그 모습을 보자마자 마음이 덜컥 내
제나는 미간을 살짝 모았다.“내가 보기엔 유해준이 민정이를 조금도 안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아. 게다가 예희지한테 정신을 놓을 만큼 휘둘리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고. 그런데 왜 민정이랑 예희지 사이를 그렇게 정리 못 하는 걸까?”“그건 유해준 정신이 좀 정상이 아니라서 그래요.”연주는 자기 머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진지하게 말했다.“제가 욕하는 게 아니고요. 진짜로 사고방식이 좀 달라요. 민정한테 들었는데, 유해준이 어릴 때 유해준 엄마가 유해준을 구하려다가 다쳐서 몇 년이나 의식을 못 찾았대요.”“유해준 아버지는 유해준
눈을 떴을 때, 제나는 문득 자신이 아주 오래전으로 돌아온 듯한 착각에 빠졌다.침대 머리맡 협탁 위에 올려둔 핸드폰이 연신 ‘부우웅, 부우웅’ 하고 울려 대고서야, 제나는 그제야 조금씩 정신을 차렸다.제나는 전화받았다.[언니.]전화기 너머로 연주의 생기 넘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저 벌써 행사장에 도착했어요. 언니는 언제 와요?]‘행사장?’그제야 제나는 오늘 S시에서 대규모 국제 패션위크 전시가 열린다는 사실을 떠올렸다.패션디자이너인 제나에게 이런 전시는 절대 놓칠 수 없는 자리였다.제나는 곧바로 말했다.“바로
경후는 거칠게 제나를 자기 앞으로 끌어당겼다. 서늘한 눈빛이 제나의 눈과 정면으로 맞부딪쳤다.“여자들은 원래 다 이렇게까지 냉정한 거야?”경후의 아귀힘이 너무 강해, 제나의 손목이 욱신거렸다.제나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아파... 놔...”“좋아. 그럼 말해. 당신 도와준 사람이 누구야?”“말했잖아. 전하성이...”제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귀를 긁는 듯 날카로운 천 찢어지는 소리가 터졌다.찍-제나의 셔츠가 경후의 손에 찢겨 나갔다.제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굳어 있었다. 곧바로 가슴팍을 감
제나는 애초에 몸까지 혹사하며 기싸움할 생각은 없었다.아까 들어가지 않은 이유는 단순한 심술도, 유미에게 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어서도 아니었다.제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비밀 유지 계약을 체결하는 자리에는, 정말 ‘무관한 사람’이 있으면 안 된다는 걸.만약 은주의 계약 내용이 유출이라도 된다면, 제나는 ‘외부인’이자, 은주와 사이가 안 좋은 사람으로서 가장 먼저 의심받을 게 뻔했다. 제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괜히 구설에 휘말릴 필요 없지.’‘이런 일에는 아예 안 끼는 게 나아.’그래서 일부러 들어가지 않았
“실망이요?”제나의 눈빛은 거울처럼 맑았고, 입가에는 가느다란 미소가 번졌다.“하은주 선생님, 오히려 기뻐하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결국 ‘남의 걸 뺏은 건 영원히 내 것이 될 수 없는 법’이잖아요. 저는요, 빼앗았던 걸 그냥 제자리로 돌려준 것뿐인데요...”은주의 표정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원망스러운 마음이 없다면, 네가 왜 경후를 찔러봤겠어? 경후는 너한테 잘못한 게 없어. 오히려... 잘못한 쪽은 너였으니까. 네가 기억을 잃었다고 해도, 기억을 잃었다는 사실이 과거를 없애주진 않아.” “하은주 선생님이 차경후 씨
유미의 말이 끝나자 은주의 표정이 굳어졌다.처음엔 경후의 반응을 의아하게만 여겼지만, 지금 이 말을 듣고 나니 은주의 얼굴빛도 서서히 차갑게 가라앉았다.은주는 사실 늘 제나의 행동을 좋게 보지 않았다.너무 극단적이고, 너무 직접적이고, 때로는 너무 잔인했다.그리고 무엇보다 제나는 그 행동에 대해 단 한 번도 미안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그렇지... 제나는 항상 갖고 싶은 건 어떻게든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애였어.’‘그러니 이렇게까지 뻔뻔하게 굴 수 있는 거겠지.’‘그래, 이번엔 좀 알아야 해. 세상 모든 게 제 멋
제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어쨌든 나는 차경후의 아내야... 날 함부로 대하진 않을 거야.”“안 돼.”승무는 생각할 틈도 없이 단호히 잘라 말했다.“죽더라도, 여자한테 내 죄를 뒤집어씌우진 않을 거야!”승무는 자신이 경후만큼 머리가 비상하지 않다는 걸 알았다.심지어 그만큼 수단이 뛰어나지 않다는 것까지도.하지만 그렇다고 멍청한 건 아니었다.제나가 기억을 잃어 자신을 모르는 것도 사실이었고, 부하들이 실수로 그녀를 데려오지만 않았어도 제나는 애초에 그와 함께할 이유가 없었다.그리고 지금 벌어진 일은 애초에 제나와 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