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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Author: 유진
예전에, 감옥에 있을 때 한지영이 시간 날 때마다 면회 와주고 힘내라고 응원해 주고 또 임유진을 도와주겠다고 여기저기 뛰어다니지 않았다면 유진은 아마 살아서 나올 수 없었을 거다.

그 힘든 3년 지영이 곁에 있어 줬기에 유진이 버틸 수 있었다.

‘생명줄이라고?’

강지혁의 눈빛은 순간 번쩍였다.

‘한지영이라는 그 여자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네?’

“그런데 누군가를 생명줄이라고 여기는 거 바보 같은 생각 아닌가? 만약 언젠가 그 사람한테 버려지면 더 절망적이잖아.”

“지영은 그럴 리 없어.”

유진의 눈빛에는 확신과 절대적인 믿음이 차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유진한테 그렇게 믿을만한 사람이 있다는 게 심술이 났고, 유진이 그 사람을 위해 모든 걸 바칠 것 같다는 게 불편했다.

--

그 후 며칠 동안 상급 부서에서 환경위생과에 검사하러 온다는 소식 때문에 유진의 업무량도 늘어나 야근이 잦아졌다.

다행히 집에 도착할 때마다 지혁이 미리 음식 준비를 마치고 유진을 기다렸기에 번거로움은 덜 수 있었다. 심지어 늦게 들어올 수 있으니 먼저 먹으라고 했는데도 기어코 자신을 기다리는 지혁을 볼 때마다 유진의 마음은 따뜻한 기운이 솟곤 했다.

그 때문인지 유진은 가끔 두 사람이 이 작은 공간에서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동생이 있다는 게 이런 느낌인가 보네.’

새벽, 길거리를 청소한 뒤 유진은 환경위생과로 돌아가 모든 청소도구를 공구함에 넣고 빈자리에 섰다.

잠시 뒤 도시정비국에서 검사하러 온다는 말에 모든 사람이 업무 보고를 위해 담당자를 맞이하는 중이었다.

가녀린 몸을 가진 유진이 4, 50대 되는 아줌마들 사이에 서 있으니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유진? 너 임유진 맞지?”

검사하러 나온 도시정비국 사람들 사이에 웬 20대 후반으로 돼 보이는 여자가 유진을 보자마자 유진을 불렀다.

고개를 들어 확인해 보니 남색 수트를 차려입고 머리를 깔끔하게 올린 여자가 서 있었다. 좁은 눈매에 평범한 외모 하지만 화장은 여자의 결점을 모두 가려주었다.

잠시 멍하니 서있던 유진은 그제야 여자가 자기의 고등학교 동창인 민화영이라는 걸 알아챘다.

“정말이네?”

화영은 의외라는 듯 유진을 빤히 바라봤다.

“너 왜 여기 있어? 너 설마…… 환경미화원이야?”

“응, 나 지금 여기에서 일해.”

화영의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유진은 똑바로 응시했다. 결국, 살다보면 언제라도 아는 사람을 만날 수 있고, 비록 난감할지라도 유진로서는 감수해야 했다.

그러던 그때.

“화영 씨, 두 사람 알아요?”

화영과 함께 왔던 동료가 의아한 듯 물었다.

“네. 유진이 얘가 학창 시절 우리 반 공식 여신이었거든요, 공부도 제일 잘해 매 시험마다 상위권 차지했고요. 그때 우리 반 남자애들 중 얘 쫓아다닌 애만 해도 절반 이상이었을걸요. 물론 얘가 누구도 성에 차 하지 않았지만요.”

동료의 물음에 화영은 마치 무슨 의도가 있는 것처럼 일부러 유진을 높이 치켜세웠다.

하지만 화영이 그럴수록 지금의 처지와 너무 큰 비교가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민화영의 동료는 눈살을 찌푸리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여신에, 1등? 에이, 농담이죠?”

화영은 동료의 말에 싱긋 미소 지었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쾌감이 세게 일렁였다. 학창 시절 유진이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우아한 백조였다면 화영은 아무런 시선도 끌지 못하는 못생긴 오리였다.

그런데 제아무리 우아한 백조면 뭐하겠는가? 결국엔 길바닥에서 청소나 하고 있는데!

유진 주위에 있던 동료들도 그 말에 하나둘 유진에게 눈빛을 보냈다. 그 눈빛 속에는 놀라움도, 동정도, 비웃음도 섞여 있었다.

다음 날, 유진이 청소를 끝마치고 도구를 돌려주러 사무실에 들렀을 때, 사무직 직원 중 한 젊은 여성이 의아한 듯 유진에게 질문을 해왔다.

“유진 씨, 혹시 학교 다닐 대 정말 여신에 1등이었어요?”

여성의 물음에 유진이 대답도 하기 전에 옆에 있던 방현주라는 동료가 피식, 코웃음을 쳤다.

“여신이건 1등이건 그게 뭔 소용이겠어요? 지금은 길바닥에서 바닥이나 쓸고 있는데. 진짜 능력 있으면 벌써 다른 직장 알아봤겠죠.”

동료의 말에 처음에 질문했던 여성은 난감한 듯 유진의 눈치를 살폈지만, 유진은 그저 고개를 숙인 채 기록부에 사인을 하고 사무실을 나가버렸다.

그리고 그때, 유진 뒤를 따라온 서미옥이 툭툭 유진의 어깨를 두드렸다.

“방현주 그 계집애 말은 마음에 두지 마. 이게 다 그 곽동현한테 마음이 있는데 잘 안돼서 저러는 거니까.”

유진은 어리둥절했다. 서미옥이 말한 “곽동현”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데다, 그 사람이 자기와 무슨 사이가 있는지도 몰랐다.

“동현 씨 몰라? 환경위생과 운전기사잖아. 평소 자기한테 관심이 있어 매번 인사도 하고 그랬는데. 애가 참 좋아. 게다가 공무원이고 부모님이 벌써 신혼집도 사주셨다더라고. 자기도 한번 생각해 봐.”

이건 미옥이 유진을 진심으로 생각해서 한 말이었다.

하지만 유진은 고민도 하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저는 지금 연애하고 싶은 마음 없어요.”

“벌써 27이나 됐으면서. 여자는 나이를 먹을수록 결혼 상대 찾기 어려워.”

“그러면 혼자 살면 그만이죠.”

유진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솔직히 감옥에 들어간 순간부터 유진은 연애에 희망을 품지 않았다.

소민준처럼 평생을 기약하며 맹세한 사람도 유진이 감옥에 가게 되자 병균 취급하며 버렸었다. 심지어 유진이 감옥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손톱을 뽑히는 고문을 당할 때도 민준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꼴 좋다”는 한마디만 남겼었다.

그 순간, 지난날의 모든 좋은 감정과 기억은 산산이 조각났다.

유진은 수많은 밤 그 기억 때문에 악몽에서 깨어났고 손끝에서 전해지는 고통 때문에 아파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유진은 사랑은 그저 잔혹한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지금의 유진은 사랑을 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감옥살이를 하고 나온지라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려운데 결혼 상대를 찾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그런 과거를 개의치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하지만 그 생각을 떠올린 순간 갑자기 머릿속에 혁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며칠 뒤가 월급날인데, 혁이한테 핸드폰이나 사줘야겠네.’

“하유, 자기도 참 고집 있다니까…….”

미옥은 한숨을 내쉬며 더 이상 결혼 얘기는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월급날, 유진은 퇴근 후 지혁을 끌고 핸드폰을 사러 백화점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때.

“나 핸드폰 없어도 괜찮은데.”

지혁이 담담하게 말을 꺼냈다. 솔직히 지혁은 유진이 자기한테 핸드폰까지 사주려고 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지금 시대에 핸드폰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 너도 이젠 일도 찾았으니, 핸드폰이 있어야 회사에서도 연락하기 편할 거 아니야. 매일 전단지 돌리는 일 오래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게다가 핸드폰이 있으면 밤에 늦게 돌아올 때 미리 연락할 수 있잖아.”

핸드폰 매장에 도착한 두 사람은 눈앞에 놓인 여러 가지 모델의 핸드폰에 눈이 어지러웠다. 하지만 현재 그녀가 살 수 있는 건 30만 원 정도 하는 저렴한 핸드폰뿐이었다. 그녀는 사실 일전에 인터넷으로 가성비가 좋다는 몇몇 모델들을 확인해 봤다. 때문에 그 모델들을 골라 지혁더러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걸 고르게 했다.

“지금은 이런 구형 핸드폰밖에 사줄 수 없어서 미안해. 그런데 인터넷으로 찾아봤는데 모두 가성비도 좋고 사양도 좋대. 불편한 대로 먼저 쓰고 있어. 앞으로 내가 돈 더 많이 모으면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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