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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임정호, 방미령과 임유라 세 사람은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어안이 벙벙해서 서로를 살폈다.

그리고 그때 미령은 그제야 반응했는지 몇 마디 욕설을 퍼부으려고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정호가 한발 빠르게 방미령을 제지했다.

“됐어, 저 남자도 감옥에서 알게 된 사람이면 어쩌려고! 감옥이라는 곳이 얼마나 위험한데, 저 남자가 어떤 죄로 옥살이했을지 누가 알아.”

그 말에 미령은 목구멍까지 올라온 욕설을 애써 삼키며 분을 삭이다가 한참 뒤에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면 당신 이 일 이대로 넘어갈 생각이에요?”

“상황을 지켜보자는 거야. 만약 하 감독이 유라한테 책임을 물으면 그때 다시 방법을 생각해 보자고.”

이건 한참을 고민해서 얻은 정호의 결론이었다. 솔직히 지금 안에 들어가 남자와 다툴 배짱도 없었다.

하지만 옆에 있던 유라는 미간을 구기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방금 유라는 안에 있는 남자를 보는 순간 그 사람이 정말로 옥살이하고 나온 남자가 맞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남자는 분명 두꺼운 앞머리로 눈을 가리고 있었지만, 지혁의 잘생긴 얼굴은 유라의 눈을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왠지 모르게 익숙하게 느껴지는 남자의 얼굴과 분위기는 분명 어딘가에서 본 것처럼 낯익은 느낌이었다.

이윽고 저 사람도 연예계 사람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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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각, 방 안.

“고마워.”

유진은 지혁을 보며 감사 인사를 했다. 만약 그가 제때 나서지 않았다면 유진은 아마 아버지에게 손찌검당했을 것이다.

“에이 동생이 누나를 돕는데 고마워할 필요가 뭐가 있어? 당연한 거 아닌가?”

지혁은 유진의 진지한 태도에 장난기 섞인 말투로 아무렇지 않다는 듯 넘겼다. 그러더니 이내 시선이 유진의 발목에 닿았다.

“발목은 괜찮아? 내가 또 약 발라줄까?”

지혁은 말하면서 벌써 약을 꺼내 들고 손에 덜어내더니 유진의 발목을 살살 문지르며 약을 발라주기 시작했다.

다시 조용해진 분위기에 유진은 쭈뼛거리다가 자기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저 세 사람이 나 왜 찾아왔는지 안 물어봐?”

“누나가 말 안 하면 나도 안 물어봐.”

“사실 말 못 할 것도 없어. 저 세 사람은 내 아버지, 계모 그리고 이복동생이거든. 그런데 나한테는 남보다도 못한 사람들이야.”

잠시 머뭇거리던 유진은 다시 말을 이었다.

“혹시 다른 건 묻고 싶은 거 없어?”

솔직히 유진은 아버지가 유진을 감옥에서 나왔다고 모욕할 때 혁이가 분명 들었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속으로는 무척 긴장했다.

하지만 그때, 지혁은 속눈썹을 잘게 떨더니 눈을 들어 유진을 바라봤다.

“내가 뭘 물어봤으면 좋겠어?"

검은 눈동자는 어둑어둑한 불빛 아래에서 유독 고요했다.

그 순간 유진의 조마조마하던 가슴은 이상하리만치 진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이에 그녀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입을 열었다.

“사실 나 3년 전에 감옥에 들어갔다가 얼마 전에 나왔어. 그때 죄명은 음주 운전과 과실치사였고.”

많은 사람은 유진이 감옥에 다녀왔다는 소리만 들으면 낯빛이 곧장 변하곤 했다. 심지어 유진이 알고 지내던 주위 사람들마저 그런 고백을 듣고 모두 이상한 눈으로 유진을 바라보며 일부러 유진과 거리를 뒀었다.

그리고 이 순간, 눈앞의 남자는 그들처럼 행동할지 확인하고 싶다는 오기가 생겼다. 상대의 반응을 기다리는 몇 분은 재판을 기다릴 때보다 더 떨렸다.

하지만 그때.

“그래?”

지혁은 개의치 않는 듯 담담하게 물으며 여전히 유진의 발목 상처를 문지르는 데 열중했다.

그런 그의 반응에 유진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게…… 끝이라고?’

“너 괜찮아?”

“내가 안 괜찮을 게 뭐 있어? 누나가 말했잖아, 앞으로 우리 서로를 아끼고 힘이 되어주자고. 나한텐 그것 외엔 다른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지혁의 대답에 유진의 불안하던 마음은 이내 평온을 되찾았다. 그리고 그제야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환하게 웃었다.

“혁아, 널 만날 수 있어서 정말 기뻐.”

하지만 그 순간, 유진은 남자의 눈을 스치고 지나가는 빛을 눈치채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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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한지영은 일부러 지혁을 만나러 유진의 월세방으로 찾아왔지만 지혁을 보는 순간 그 남자는 유진이 말한 노숙자가 연상될 수 없었다.

남자는 분명 낮은 가격에 처리할 법한 싼 패딩과 운동화를 신고 있고 온몸을 동대문 시장의 옷으로 감고 있었지만 옷걸이가 좋아서 그런지 명품처럼 소화해 버렸다.

게다가 180이 넘는 큰 키와 입체적인 이목구비가 더해져서인지 두꺼운 앞머리로 눈을 가렸지만 언뜻언뜻 보일 때면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뇌리에 콱 박혔다.

적어도 지영은 지금까지 눈이 이렇게 예쁜 남자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심지어 지금 잘나가는 배우들보다도 더 예쁜 것 같았다. 정교한 이목구비와 표준적인 서울말, 심지어 뜬금없는 던진 물음에도 상대방은 막힘없이 대답했다.

‘이게 노숙자라고?’

떨쳐낼 수 없는 의심에 지영은 유진을 구석으로 끌고 가 나지막하게 물었다.

“저 사람 정말 노숙자인 거 확실해? 갈 곳 없는 사람 맞아? 저 외모에 저 몸매면 배우나 모델을 하고도 남았을 텐데.”

“잘생겼다고 다 배우하고 모델하는 것도 아니잖아.”

유진의 말을 들어보니 또 그런 것 같기도 한지라 지영은 바로 수긍했다. 어찌 됐든 연예계도 그렇게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니까.

“너 매일 저런 사람이랑 같이 있다가 마음이라도 흔들리는 거 아니야?”

하지만 곧바로 던진 말에 유진은 지영을 째려봤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대가 유진에게 무슨 짓이라도 할까 봐 걱정하더니 얼굴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오히려 유진이 상대에게 무슨 짓을 할까 봐 걱정하는 꼴이라니.

“혁이는 나보다 몇 달이나 어려. 나한텐 그저 동생이야.”

유진의 말을 들은 지영은 이내 지혁의 앞으로 다가가 경고했다.

“제 말 고깝게 듣지 마요. 그쪽이 여기 있는 거 잠시 허락은 하겠는데 이상한 짓 하지 않고, 우리 유진이 속이지 않는다고 약속해야 해요. 얘는 누가 자기를 속이는 걸 제일 싫어하니까. 사기 칠 목적으로 얘한테 접근한 거라면 내가 바로 경찰에 신고할 거니까 그렇게 알고요!”

“지영아, 너 무슨 말을 그렇게 해? 혁이는 나 속일 리 없어.”

“두 사람 안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면서 할 말은 해야 할 거 아니야. 이봐요, 혁이 씨, 알아들었죠?”

유진이 이내 부정했지만 지영은 그녀의 말을 무시한 채 지혁을 향해 또다시 경고를 날렸다.

이에 강지혁은 지영을 향해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네, 알겠어요.”

분명 상대방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고 오히려 동의했지만 지영은 왠지 모르게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심지어 상대의 몸에서 은은하게 뿜어져 나오는 기세 때문에 자기가 오히려 경고받는 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에이, 그저 노숙자일 뿐인데 내가 너무 예민한 거겠지.’

지영은 속으로 이렇게 위로했지만 떠나기 전 유진에게 조심하고, 일이 생기면 꼭 전화하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렇게 폭풍우처럼 닥쳤던 지영이 사라지자 방에는 다시 유진과 지혁만 남게 되었다.

“아까 지영이가 한 말 마음에 두지 마. 걔는 항상 나 걱정한다고 저러니까.”

“누나 친구가 한 말인데 내가 왜 마음에 두겠어? 그런 걱정은 하지 마.”

솔직히 지혁에게 있어 그런 경고는 우스운 정도다.

“혹시 아까 그 친구랑 사이 좋아?”

“너도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말 알지? 절망적인 상황에서 도움 안 될 거 알면서 기대고 싶은 마음에 그런 행동을 한대. 지영이가 나한텐 그런 지푸라기이자 생명줄 같은 존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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