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아빠! 술 넘쳤어요. 쏟아져요!”한지영이 다급하게 외쳤다.그제야 한종훈이 정신을 차리고 허겁지겁 손을 멈췄다.그리고 부부가 동시에 백연신을 바라보며 거의 같은 말이 튀어나왔다.“지금 뭐라고 했어? 결혼한다고?”“네.”백연신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지영이가 지금 임신 초반이라 결혼식 준비로 힘들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먼저 혼인 신고를 하고 아이가 태어난 다음에 정식으로 결혼식을 하려 합니다. 괜찮으실까요?”“괜찮지. 그럼! 너무 잘됐지!”한지영의 부모님은 동시에 미소를 터뜨렸다.딸의 결혼은 늘 그들의 가장 큰 걱정이자 바람이었으니까.원래는 기회를 봐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꺼내볼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백연신이 먼저 정식으로 말해주니 더할 나위 없었다.“그럼... 혹시 혼례 관련해서 지영이 쪽에서 바라는 게 있을까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모두 맞출 생각입니다.”한지영의 아버지는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우린 그런 거 없어. 지영이한테 잘해주면 그걸로 충분하지.”“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백연신은 고개를 숙이며 진지하게 답했다.저녁 식사는 내내 따뜻한 분위기였다.식사가 끝나자 백연신은 자진해서 식탁의 그릇을 치우더니 빈 그릇들을 주워서 주방으로 가져가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이해영은 놀라움과 감탄이 섞인 눈빛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재벌 가문의 남자가 직접 설거지를 다 하다니...’그녀는 속으로 감동했다.“지영아, 너 정말 좋은 사람 만났어.”이해영은 감탄스럽게 딸을 바라봤다.“이제야 마음이 놓인다.”한지영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엄마, 아빠. 우리 정말 잘 살 거예요. 이제 걱정 그만하시고 나중에는 여행도 다니세요. 세계 일주라도 다녀오시죠!”“세계 일주는 무슨~.”한종훈이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너 먼저 애 낳으면 우리가 손주 봐줘야지. 그게 더 큰 일이야.”물론 백연신은 훗날 보모를 둘 수도 있었지만 두 사람은 손수 손주를 돌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그리고 그는 환하게 웃으며 말을 보
또 산다라니... 아직도 더 사야 한다고?한지영은 진땀을 뻘뻘 흘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연신 씨는 대체 얼마나 많이 준비하려는 거지?’차가 한지영의 집 앞에 멈추고 한지용은 안전벨트를 풀고 내릴 준비를 했다.그런데 백연신은 여전히 자리에 앉아 멍하니 있었다.“왜 그래요? 안 내릴 거예요?”그제야 백연신은 정신을 차린 듯 그녀를 바라보며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내리자.”한지영은 백연신이 큰 선물 꾸러미들을 들고 자신과 함께 계단을 올라가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왜 그래요? 더워서 그래요? 이마에 땀까지 났네요.”그녀는 발끝을 살짝 들어 종이 타월로 그의 이마를 닦아주었다.“긴장돼서 그래.”백연신이 미묘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긴장돼요?”한지영 눈에 의아함이 스쳤다.“뭐가 긴장돼요? 제 부모님은 요즘 자주 뵀잖아요. 게다가 혼인 신고 얘기하면 분명히 반대도 안 하실 텐데요.”하지만 백연신 자신도 놀랄 정도였다.늘 침착하고 어떤 상황도 여유롭게 대처하는 그가 이제 막 한지영의 부모님 앞에 서서 유일한 딸을 자신에게 맡기게 해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말 한마디라도 잘못 나올까 봐 긴장이 멈추질 않았다.그건 사랑해서 그런 거였다. 사랑이 깊을수록 긴장도 커지고 잃을 수도 있다는 불안이 더 강하게 다가오는 법이니까.“부모님께서 내가 마음에 들지 않을까봐... 내가 그들이 생각하는 최고의 사위가 아닐까 봐 걱정돼서 그래.”백연신은 솔직히 털어놓았고 한지영은 미소 지으며 그를 바라봤다.“연신 씨는 이미 우리 부모님 마음속 최고의 사위예요. 게다가 제가 이미 당신 아이를 갖고 있는데 연신 씨와 결혼 안 하면 누구랑 결혼해요? 설령 부모님께서 반대하신다고 해도 전 이미 결혼하기로 마음먹었어요.”그녀의 눈빛은 단호했고 맑은 눈동자 속엔 흔들림이 없었다.“나 한지영은 평생 백연신만 사랑하고 오직 백연신과 결혼할 거예요.”그녀의 목소리와 눈빛은 백연신의 긴장을 녹일 만큼 따뜻했다.“나 백연신이 결혼할 여자도 오직
“갑자기라니?”그러다가 백연신은 한지영의 불룩해진 배로 시선을 옮겼다.이제는 눈에 띄게 불러온 생명을 품은 곡선.정말로 단계를 뛰어넘는 거라면 결혼이 아니라 한지영의 임신이야말로 진짜로 뛰어넘은 거지... 결혼은 오히려 늦은 편이었다!한지영도 그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왜 갑자기 결혼 생각을 한 거예요...”그러다 문득 무언가 떠올린 듯 말을 덧붙였다.“혹시 유진이가 얘기했어요? 나 아까 화장실 갔다 올 때 그 두 여자가 수군거렸다고요. 내가 그냥 애 낳는 도구일 뿐이라느니 당신이 나한테 진심은 없다고 떠들긴 했는데 난 전혀 신경 안 썼거든요. 그러니까 이 일 때문에 갑자기 결혼하려는 생각은 하지 말아요.”순간 백연신의 얼굴에 금세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누가... 그런 뒷담화를 했다고?”“어? 몰라요?”한지영은 잠시 멈칫했다.백연신은 눈빛을 날카롭게 하며 한숨을 삼켰다.임유진이 말했던 ‘누군가의 험담’이 단순한 가십쯤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들으니 그 말의 잔인함이 뼛속까지 파고드는 듯했다.그런데 정작 그 말을 들은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그걸 위로하고 있었다.백연신은 갑자기 몸을 숙여 한지영을 품에 안았다.“너와 결혼을 하는 건... 지금까지 내가 가장 바라온 일이었어. 다만 우리가 다시 화해한 후에 너무 많은 일들이 있어서 결혼이 미뤄졌을 뿐이야. 내가 너무 소홀했어. 단순히 잠깐 늦춰지는 줄만 알고 네가 어떤 상황을 맞이하게 될지는 생각하지 못했어.”“난 그딴 소문 무섭지 않아요!”한지영은 손을 들어 그의 목을 감싸안았다.그동안 겪은 수많은 일들을 떠올리면 뒷담화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백연신과 함께 있고 그가 자신을 사랑한다면 다른 건 중요하지 않았다.“하지만 난 무서워!”백연신이 단호한 목소리로 한지영의 말을 잘랐다.“그 말들이 널 다치게 할까 봐. 네 부모님 마음에 상처를 낼까 봐. 우리 아이한테까지 번질까 봐. 원래라면 모든 걸 다 정리하고 세상에 당당히 내놓을 만큼 완벽한
백연신은 한지영의 이마를 톡 하고 튕기며 웃었다.“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내가 어떻게 강지혁 씨한테 마음이 생기겠어. 내가 마음 주는 사람은 오직 너 하나야.”하지만 방금 강지혁이 보여준 그 장난 같은 행동 때문인지 괜히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백연신은 그를 원망해야 할지 아니면 덕분에 아내의 귀여운 반응을 볼 수 있었으니 고마워해야 할지... 웃픈 생각에 잠겼다.그제야 한지영은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고 눈을 감자마자 금세 잠이 들었다.백연신은 잠든 그녀의 얼굴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다시 조용히 운전에 집중했다.결혼... 이제는 정말 꺼내야 할 이야기였다.그는 한지영을 자신의 아내로, 백씨 가의 안주인으로 만들고 싶었다....“아까 그거 말이야.”차 안에서 임유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지영이가 안 말렸다면... 너 정말 백연신 씨랑 키스했을 거야?”강지혁이 눈썹을 들어 올리며 되물었다.“그럼 너는? 내가 진짜 키스했으면 좋았을까 아니면 안 했으면 좋았을까?”“그야 당연히... 너는 내 남편이잖아! 내가 어떻게 그런 걸 바라겠어!”“그래?”강지혁은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난 그냥 네가 그 장면을 꽤 즐기는 것 같아서 말이지. 나한테 말은 못 하고 속으로만 좋아하는 줄 알았어. 그래서 요즘 네가 무슨 드라마 보는지도 몰랐잖아.”“콜록콜록!”임유진은 자기 침에 놀라 기침을 토했다.“아니. 아니야! 너 완전히 착각했어! 앞으로 내가 무슨 드라마 보는지 다 말해줄게. 됐지?”“그 드라마 오늘 밤에도 방영하나?”“응.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한 편씩 해.”“좋아. 그럼 오늘 밤에는 같이 보자.”“같이... 본다고?”임유진이 어이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정말 같이 보겠다고?”“당연하지.”강지혁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좋아하는 드라마라면 나도 분명 좋아하게 될 것 같아.”그의 미소는 말보다 더 짙은 농도로 임유진의 마음을 흔들었다....한편, 한지영이 눈을 떴을 때는
“그래?”강지혁이 다시 임유진을 바라보며 장난스럽게 물었다.“이 정도면 충분해? 아직 부족하다면 내가 더 볼만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어.”“충분해, 충분해!”임유진은 얼굴을 붉히며 서둘러 대답했다.‘강지혁... 지금까지도 질투하고 있네?!’그리고 그녀는 속으로 집에 돌아가면 강지혁을 제대로 달래 줘야겠다고 생각했다.강지혁은 그제야 백연신의 어깨를 툭 치고 의자에 앉았다.백연신은 강지혁을 잠시 바라보다가 옆에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한지영을 보고 말했다.“왜 그래? 난 네가 이런 걸 보는 거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한지영은 그들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눈을 굴리며 답했다.“그게... 그렇다고 해서 연신 씨가 다른 남자랑... 보고싶다는 건 아니잖아요.”그리고 잠시 멈춘 뒤 말을 이었다.“그리고... 아까 내가 안 말렸으면 당신들 정말 키스할 뻔했다고요.”“키스할 뻔했다고? 그거 별거 아니야.”하지만 백연신은 오히려 담담하게 답했다.만약 키스하는 상대가 한지영이 아니었다면 그의 입장에서는 단지 피부가 닿는 것뿐 아무 의미도 없었으니까.그 말에 한지영은 턱이 거의 바닥에 떨어질 뻔하며 외쳤다.“안 돼... 절대 안 돼요! 연신 씨는 오직 나만 키스할 수 있다고요!”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는 바로 백연신에게 입을 맞췄다.그리고 키스가 끝나고서야 문득 깨달았다.‘아차... 여긴 유진이랑 강지혁 씨도 있는데!’크게 개의치 않아 하는 성격의 한지영도 이 순간만큼은 얼굴이 새빨개졌다....드디어 식사가 끝나고 두 남자는 각자의 여자와 함께 집으로 향했다.그런데 한지영이 차에 오르려는 순간 임유진이 갑자기 백연신 앞에 서서 몇 마디를 건넸고 말을 마친 뒤 강지혁의 차에 올랐다.백연신이 차에 오르자 한지영이 물었다.“유진이가 뭐라고 했어요?”“별거 아니야. 그냥 네가 임신했으니까 내가 잘 챙기라는 말뿐이었어.”백연신은 차에 시동을 걸며 차분하게 답했다.하지만 차가 천천히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동안 그의 머릿속에는
한지영은 순간 얼굴이 빨개지며 당황했다.“나... 나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이에요.”“아무 생각 없이?”백연신이 넥타이를 살짝 잡아당기며 말했다.“그럼 아무렇게나 말한 김에 그 두 배우... 얼마나 네 취향에 맞는지도 말해보는 게 어때?”한지영은 갑자기 말문이 막혀 버렸고 지금은 뭐라고 해도 다 틀린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그때 임유진이 급히 분위기를 살렸다.“됐어요, 됐어요. 우리 우선 주문부터 해요. 다 배고프잖아요. 특히 지영이는 지금 더 참기 힘들 거고요!”“그... 그래. 주문하자, 주문!”한지영도 급히 맞장구쳤다.그렇게 두 여자는 메뉴판을 들고 얼굴을 맞대며 주문을 시작했고 두 남자는 각자의 여자를 바라보며 표정을 달리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한지영과 임유진이 휴대폰으로 주문한 음식이 하나둘씩 나왔고 네 사람은 드디어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그러다 강지혁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여자들은 왜 이런 두 남자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를 좋아하는 거예요?”“헉?!”순간 한지영과 임유진은 젓가락질을 멈추고 서로를 바라보더니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러다 결국 임유진이 먼저 대답했다.“좋아서 본다기보다는 그냥 보는 드라마 중에 우연히 이런 이야기가 있는 거지. 이런 장르의 드라마는 아마도 오직 한 사람만 사랑하고 주변 시선이 어떻든 관계없이 그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니까 그런 것 같아.”“그래? 그럼 두 남자 얼굴 때문은 아니지?”강지혁이 장난스럽게 물었다.푸웁!!순간 한지영은 입에 넣은 밥을 거의 뿜을 뻔했고 임유진도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당연히 배우 얼굴도 무시 못 하지!’“그게 그러니까... 얼굴이 좀 잘생기면 보는 맛이 더 있긴 하지...”“그럼...”강지혁이 갑자기 일어나 의자를 뒤로 밀고 백연신 앞으로 다가더니 시선을 자연스럽게 두 여자에게 고정했다.“우리 둘이라면 어때? 보는 맛이 더 크지 않을까?”강지혁은 말을 하며 한 손을 백연신의 어깨에 살짝 올리고 몸을 천천히 숙이더니 두 남자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