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사랑한 시간은 7년이었다. 그동안 부태빈은 진채이에게 점점 무심해졌고, 점점 더 귀찮아했다. 그 대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여동생’ 강시은에게는 지나칠 만큼 다정했다. 보호라는 이름과 책임이라는 이유로, 태빈은 늘 시은의 곁에 있었다. 채이는 그 모든 걸 보면서도 쉽게 놓지 못했다.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쌓은 기억, 함께 그렸던 미래가 너무 아까워서 그녀는 수없이 스스로를 설득하며 또다시 용서했다. 그러다 어느 날, 채이가 병으로 쓰러졌다. 몸도 마음도 견디기 힘들 만큼 아팠다. 눈을 떴을 때, 그녀를 맞이한 건... 차갑고 텅 빈 침실뿐이었다. 태빈은 없었다. 그는 또다시 ‘연약한 여동생’을 돌보러 가 있었다. 그 순간, 진채이는 문득 깨달았다. ‘이제 정말... 아무 의미도 없구나.’ 그녀는 울지 않았고, 매달리지도 않았다. 그저 전화를 걸어 오래전부터 논의되던 정략결혼을 받아들였고, 짧은 이별 편지 한 장을 남긴 채 조용히 떠났다. 연인이 아니라, 누군가의 선택지가 아니라, 다시 진씨 집안의 아가씨로 돌아가기 위해서. ... 태빈은 처음엔 믿지 않았다. 채이가 자신을 떠날 리 없다고 생각했다. 며칠이면 돌아와서 매달릴 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한 달이 지나도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제야 그는 깨달았다. 자신이 정말로 잃어버렸다는 걸. 그리고 얼마 후, 한 연회석상. 과거 부씨 집안과 태빈의 친구들에게 무시당하던 채이가 눈부신 모습으로 등장했다. 이제 그녀는 누구도 쉽게 다가설 수 없는 진씨 집안의 아가씨이자, 최고 명문가의 후계자 배준모의 아내였다. 다른 남자의 곁에 선 채이를 본 태빈의 눈에는 시뻘겋게 핏발이 섰다. “채이야, 이리 와.” 그 순간, 준모가 자연스럽게 채이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미소 지었다. “부 대표님, 제 아내를 부르는 호칭부터 조심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오래도록 탐해 온 내 보물... 이 사람이 다시 손을 뻗는다면, 그땐 정말 끝이야!’
Lihat lebih banyak“할머니는 그저 다른 세상으로 먼저 가신 것뿐이에요. 그곳에는 할머니를 정말 많이 사랑해 주는 사람도, 진심으로 할머니를 아껴 주는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그러니까 너무 슬퍼하지 않아도 돼요. 할머니가 그곳에서는 아무 걱정 없이 편안하고 건강하게 지내실 거라고 생각하면 돼요.”하지만 어떻게 슬프지 않을 수 있을까?정부자는 준모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었다.준모가 평생 가장 가까이 의지해 온 사람 역시 정부자였다.정부자가 없었다면 지금의 준모도 없었을 것이다.준모는 어릴 때부터 정부자의 손에서 자랐고, 정부자는 준모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수많은 것들을 하나씩 가르쳐 줬다.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책임이라는 게 무엇인지,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도. 준모가 지금까지 지켜 온 많은 기준에는 정부자의 가르침이 남아 있었다.그래서 정부자는 준모에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람이었다.준모는 도저히 놓을 수가 없었다.당장 마음을 정리하고 아무렇지 않게 정부자를 보내 줄 수도 없었다.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아무리 붙잡고 싶어도 정부자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준모가 채이를 바라보며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채이 씨가 제 곁에 있다는 건 알아요. 그런데 할머니는 저한테 정말 너무 중요한 분이에요.”“제가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올 수 있었던 것도 전부 할머니 덕분이에요.” “사람답게 사는 게 뭔지도 할머니한테 배웠고,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계속 이끌어 주신 분도 할머니예요.”준모는 말을 이어 갈수록 목소리가 무거워졌다.“제가 이렇게까지 열심히 살아온 이유도 할머니한테 보여 드리고 싶어서였어요.”“저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 드리고 싶었고, 할머니 손에서 자란 사람인 만큼 절대 실망을 드리고 싶지 않았어요.”준모의 시선이 멀어졌다.“그런데 이제 할머니가 안 계시잖아요. 앞으로 제가 아무리 잘해도, 아무리 좋은 결과를 만들어도 그걸 누구한테 보여 줘야 하는지 모르겠어요.”준모는 아직도 정부자의 죽음이 현실처
준모는 말없이 정부자를 바라보고 있었다.지금 이 시간만큼은 오롯이 두 사람만의 것이었다.준모는 조금이라도 더 할머니 곁에 있고 싶었다. 할머니 얼굴도 더 오래 보고 싶었다.이 병실을 나서는 순간, 어쩌면 평생 다시는 할머니를 볼 수 없게 될지도 몰랐다.그래서 준모는 남아 있는 이 시간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붙잡고 싶었다.이제 정말 마지막이었다.지금 충분히 바라보지 못하면 앞으로는 다시 그럴 기회조차 없을 테니까.준모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할머니가 왜 지금 떠나야 하는 걸까?’강혜원을 제외하면 정부자는 준모에게 이 세상에 남아 있는 유일한 가족이나 다름없었다.그런 정부자가 왜 이렇게까지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했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왜 할머니는 두 아들 때문에 이렇게까지 마음고생을 해야 했던 걸까?’어쩌면 정부자의 인생에서 가장 큰 상처는 두 아들이었는지도 몰랐다.정부자는 혼자 힘으로 두 아들을 키워 냈다. 온갖 어려움을 견디며 뒷바라지했고, 어떻게든 두 아들이 부족함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애썼다.그런데 정작 끝에 가서는 두 사람 모두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기는커녕 자기 욕심만 앞세우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준모는 그 사실이 너무도 씁쓸했다.어머니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얼마나 상처를 받았는지, 두 아들은 끝까지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았다.준모는 그렇게 얼마나 오래 정부자 곁에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결국 담당 의사가 다시 병실로 들어왔다.이 병실은 다른 응급 환자도 사용해야 했다.정부자를 계속 이곳에 둘 수는 없었다.다른 환자의 치료가 늦어져서는 안 되기에 이제는 정부자를 옮겨야 했다.준모도 더 이상 이곳에 머물 수 없었다.정말로 정부자와 헤어져야 할 때가 온 것이다.병실을 나서는 준모의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복잡했다.의료진이 침대에 누운 정부자를 데리고 나가는 모습을 준모는 멍하니 바라봤다.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정부자의 장례와 그 이후의 일은
그래서 배호철은 준모 앞에서 더 이상 무슨 말을 꺼내지 못했다.결국 준모 혼자 병실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준모는 다른 누구도 안으로 들이지 않았다.혼자 병실 안으로 들어선 준모는 병상에 누운 정부자를 바라봤다.정부자는 가느다란 숨만 간신히 이어 가고 있었다. 몸에는 차갑고 낯선 의료 장비들이 여러 개 연결되어 있었다.그 모습을 보자 예전에 정부자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정부자는 자신의 몸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심장이 좋지 않았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그래서 예전에 준모와 이야기를 나눌 때면 종종 같은 말을 하곤 했다.언젠가 정말 의식을 되찾지 못하는 날이 오면, 자신의 몸에 달린 차가운 기계들을 준모가 직접 떼어 달라고.평생 누구에게도 쉽게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살아온 정부자였다.그래서 삶의 마지막만큼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기계에 의지한 채 버티고 싶지 않다고 했다.끝까지 자신의 품위를 지키며 떠나고 싶다는 뜻이었다.그때 준모도 정부자의 부탁을 받아들였다.정말 그런 날이 온다면 정부자가 원하는 대로 해 주겠다고 약속했다.하지만 마음속으로는 그런 날이 영영 오지 않기를 바랐다.그날만 오지 않는다면, 정부자도 영원히 자신의 곁을 떠나지 않을 것 같았다.준모는 그때의 일이 아주 오래전 일처럼 느껴지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바로 어제 있었던 일처럼 선명했다.정부자와 함께했던 일들이 하나하나 머릿속을 스쳐 갔다.할머니와 주고받았던 말도, 함께했던 시간도 여전히 눈앞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준모는 가끔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배호철과 배호창은 왜 자기 어머니에게 그렇게까지 했을까?두 아들이 조금만 정부자의 마음을 헤아려 주고 정부자가 원하는 대로 편하게 지낼 수 있게 해 줬다면, 어쩌면 이렇게 빨리 세상을 뜨는 일은 없었을지도 몰랐다.정부자가 하루하루 마음 편하게 웃으면서 지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준모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배호철이 계속해서 앞뒤도 맞지 않는 말을 쏟아 내고 있을 때였다.담당 의사가 반대편 복도에서 걸어와 가족들에게 현재 상황을 간단히 설명했다.“지금 상태를 계속 유지하시려면 중환자실로 옮겨야 합니다. 반대로 더 이상의 연명 처치를 원하지 않으신다면, 지금 어르신을 병실로 모셔야 하고요.”의사는 더 이상 돌려서 말하지 않았다. 정부자의 상태는 이미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운 단계에 이르렀고, 지금처럼 계속 치료를 이어 가는 것도 큰 의미가 없다고 분명하게 설명했다.정부자의 몸에 연결된 차가운 의료 장비들을 바라보면서, 준모는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정부자가 누구보다 아끼던 손자가 준모였다.그런 준모가 지금 할머니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조차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자기 손으로 정부자의 산소 공급을 중단하라는 말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그런 결정을 내릴 용기도 나지 않았다.‘그렇게 좋은 분이 왜 갑자기 이렇게 되신 거야.’준모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왜 일이 여기까지 온 거지.’‘할머니가 왜 이렇게 많은 고통을 견뎌야 하는데...’‘할머니처럼 좋은 분이 정말 이렇게 떠나야 하는 거야?’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받아들이기 어려웠다.하지만 준모 역시 알고 있었다.정부자는 지난 몇 년 동안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 있었다.병이 반복될 때마다 고통을 견뎌야 했고, 치료를 받을 때마다 힘든 시간을 버텨야 했다.정부자도 여러 번 모든 걸 내려놓고 싶어 했다.그럴 때마다 준모와 채이가 붙잡았다.조금만 더 살아 달라고.조금만 더 자신들 곁에 있어 달라고.그래서 정부자는 준모와 채이를 위해서 다시 치료를 받아들였고, 견디기 힘든 고통까지 감수해 왔다.그 사실을 생각하자, 준모는 더더욱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 알 수 없었다.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왜 이런 일이 자신들에게 닥친 건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담당 의사의 말을 들은 뒤 준모의 마음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정부자와 함께했던 일들이 하나씩 떠올랐다.그럴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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