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유희도에게는 그의 전부를 바칠 만큼 특별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거금을 아끼지 않았고, 감정을 숨김없이 쏟아냈으며, 심지어 목숨까지도 기꺼이 내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유희도의 또 다른 비밀을 알고 있었다. 바로 말하지 못하는 벙어리 아내가 그의 곁에 있었다는 사실. 그녀는 유희도의 그늘 속에서 존재감을 잃은 채 살아가고 있었다. 유희도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아내는 그저 그의 삶 속 조용한 그림자일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말없이 이혼 서류를 내밀었을 때, 유희도의 세계는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View More인아는 손을 내리며 창문에 몸을 기대어 밖의 정원을 쳐다보았다. 참 우스운 일이었다. 희도는 연서와의 데이트에 자신을 데려와 차에 가둬두었다. 마치 인아를 차를 지키는 개처럼 취급하는 듯했다. ‘비슷하긴 해.’인아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20년간 자신이 사랑해온 사람이 자신을 한낱 개 취급을 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비참하고도 웃겼다. 연서는 희도의 팔짱을 끼며 그의 주머니 속으로 손을 넣었다. “추워 죽을 뻔했네. 왜 이렇게 늦게 온 거야?” “추우면 옷을 더 입지 그랬어.” 희도는 연서의 차림새를 힐끗 보며 말했다. 한겨울인데도 그녀는 짧은 드레스를 입고, 두 팔을 추위에 그대로 노출하고 있었다. “이게 드레스 코드라 어쩔 수 없어. 외투는 가지고 왔는데 지금은 입을 수 없거든.” 연서가 말하자, 희도는 자신의 외투를 벗어 그녀에게 건넸다. “이거 걸쳐.” 연서는 그의 외투를 받으며 기뻐하는 표정을 지었다. “고마워, 자기야.” 연서는 그를 안고 입을 맞추려 했지만, 희도는 살짝 연서의 얼굴을 밀어냈다. “들어가자.”연서는 입술을 삐쭉거렸지만, 여전히 그의 팔짱을 끼고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 영화 시사회는 감독과 투자자들이 모이는 자리였다. 물론 몇몇 배우들도 참석했지만, 참석 조건이 상당히 까다로운 자리였다. 연서처럼 데뷔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신인은 뒤에서 그녀를 지지해주는 세력이 있다는 소문이 돌기만 했지, 사람들이 실제로 본 적은 없기 때문에 대부분 믿지 않았다.오늘 이 자리에 연서를 초대한 이유도 그녀를 지지하는 세력이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만약 정말 희도라면, 연서의 연기력이 아무리 부족해도 그녀에게는 끊임없이 기회가 주어질 것이었다. 연서가 희도의 팔짱을 끼고 등장했을 때, 순식간에 모든 시선이 그들에게 집중되었다. 희도는 엄청난 투자자였기에, 일반인이 그를 만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대
희도는 여전히 차가운 표정으로 인아를 무시하며, 그녀의 간절한 눈빛을 외면했다. 인아는 그를 애타게 바라봤지만, 희도는 한 번도 인아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기에 인아는 그와 대화할 기회마저 없었다. 결국, 인아는 그의 소매를 놓고 고개를 떨궜다. 희도가 한 번 내린 결정은 절대 바꾸지 않는다는 걸 인아는 잘 알았다. 아무리 그녀가 잘 보이려고 노력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희도는 인아를 집으로 데려갔다. 차에서 내린 후, 인아는 그를 쳐다보며 무언가 말하고 싶어 했지만 희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갔다. 인아는 어쩔 수 없이 그의 뒤를 조용히 따라갔다. 희도는 거실에 들어가자마자 외투를 벗어 소파 위에 던지더니, 잠시 뒤 인아를 돌아보며 말했다. “가서 식사 준비해.” 인아는 입을 열려고 했으나, 그에게서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뒷모습뿐이었다. 결국 인아는 주방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희도의 핸드폰이 울렸다. 연서가 걸어온 전화였다. 희도는 무심하게 핸드폰을 소파 위에 던졌다. 하지만 연서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전화를 걸어왔고, 여덟 번째 전화가 울릴 때쯤 희도는 마침내 전화를 받았다. 인아는 주방에서 고개를 내밀어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희도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섞여 있었다. “무슨 일이야?”연서가 핸드폰 너머에서 말했다. [오늘 밤 영화 시사회에 같이 가기로 했잖아. 지금 어디야? 또 집에 간 거야?] 희도는 한 손으로 핸드폰을 들고, 다른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꼭 가야 해?” [당연하지! 내가 너 온다고 이미 말했는데 갑자기 안 오면 나더러 어떡하라고? 또 그 집에 간 거지?] 연서는 이를 악물고 마지막 말을 꺼냈다. 요즘 들어 희도가 집에 가는 횟수가 점점 잦아지면서, 연서는 매번 불안감에 휩싸였다. 희도가 집에 가서 인아와 함께 있는 동안, 두 사람의 관계가 더 가까워지는 것은 아닐지, 혹시 둘이 침대에서 함께 있는 것은 아닐지 하는 상상들이 연서의 마음을 괴롭혔다. 연
희연은 잠시 망설였다. “내, 내가 뭘 어떻게 하면 되는데?” 희도가 차분하게 말했다. “네가 가지고 있는 지분을 팔아서 매제가 만든 구멍을 메우면 돼.”희연은 잠시 놀란 듯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지분을 팔아야 한다니... 그 지분은 그녀가 유씨 가문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힘이었다. 만약 그걸 팔아버리면, 그녀에게는 더 이상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 희도는 커피잔을 들고 장난스럽게 커피 스푼을 굴리며 무심하게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까워? 그럼 어쩔 수 없지. 매제가 그렇게 중요하진 않나 보네.”희연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내가 가진 지분으로는 그 많은 돈을 다 메울 수 없잖아.” 희도는 무심하게 말했다. “우선은 메울 수 있는 만큼 메우고 천천히 해결책을 찾아보면 돼. 안 그래?” 희연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한쪽은 HS그룹의 지분, 다른 한쪽은 그녀가 사랑하는 남편이 있었다. 희연은 그 사이에서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생각할 시간이 좀 필요해.” 희연은 당장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말했다. “그래, 하지만 시간이 많지는 않아. 만약 네가 늦어지면 매제가 어느 날 도망칠 수도 있어. 그러면 다시 찾기 어려울 거야.” 희연은 잠시 망설였고, 결국 지분을 팔아야겠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그럼 누구에게 팔아야 할까? 누가 한 번에 그 많은 현금을 마련할 수 있을까?” 희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가 결정하기만 하면, 내가 도와줄 게.” 희연은 그의 눈을 쳐다보았지만, 그 눈빛을 통해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하지만 희도는 그녀의 오빠였고, 그녀는 오빠를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 잠시 후, 희연은 이를 악물고 깊은숨을 내쉬며 말했다. “내일 대답해 줄게.” 희도는 미소를 지으며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희연은 자리를 떠나려 하며 서류를 챙겼다. 희도는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덧붙였다. “이 일은 절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인아는 희도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있었다. 그때 희도는 그녀를 가만히 들어 올렸다. 인아는 무의식적으로 희도의 목을 감싸 안으며 그의 턱 선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희도는 인아를 침대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그녀의 손목을 살폈다. 손목의 상처는 아물기 시작했고, 일부는 딱지가 떨어져 붉은 살갗이 드러나 있었다. 희도는 인아의 손을 잡고 잠시 쳐다보다가 인아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아직 아파?” 인아는 고개를 저었다. 희도는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미소를 지었다.더 이상 같은 수법에 속기 싫었기에 인아는 눈을 감았다. 희도는 언제나 그랬다. 몇 마디 말로 인아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인아를 다시 그의 거짓말 속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희도는 인아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다. 방 안의 공기는 점점 무거워졌다.그때 갑자기 핸드폰 벨 소리가 울리며 이 어색한 분위기를 깼다. 희도는 인아의 손을 놓고 전화를 받으러 갔다. 인아는 눈을 뜨고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몇 마디를 나누고는 아무 말 없이 방을 나갔다. 인아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이불을 집어 들어 가슴에 꼭 안았다. 그녀가 눈을 감으려 했지만 갑작스러운 두통이 그녀의 머리를 강하게 쥐어짰다. 머리 속은 마치 바늘에 찔린 듯한 고통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인아는 몸을 웅크리고 고통에 떨기 시작했다. 한참이 지난 뒤 고통이 서서히 가라앉았고, 인아는 천장을 바라보며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더 심해졌네...’ 인아는 힘없이 두 팔을 늘어뜨리고 방 안의 정적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그녀의 머릿속에는 또다시 희도가 연서를 만나러 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인아는 밤새 잠을 뒤척였고, 겨우 두 시간 남짓 잠이 들었다가 깨어났다. 집 안은 여전히 텅 비어 있었고 인아는 아침을 준비하기 위해 일어났다. 그녀는 아침 식사를 두 그릇 준비한 후 서재 문을 두드렸다. 몇 번을 두드려도 아무런 반응
모든 일이 너무 갑작스럽게 벌어졌다. 총알이 인아의 얼굴에 맞았지만, 그녀가 소리를 내지 않자 사람들은 하준이 혼자 노는 줄만 알았다. “인아야!” 희도는 누구보다 먼저 눈치채고 인아를 재빨리 부축했다. 인아는 눈앞이 아찔해져서 하마터면 쓰러질 뻔했다. 희도의 외침에 사람들은 뒤돌아봤고, 그제야 하준이 인아를 쏘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희윤은 하준을 품에 끌어안고 화난 척하며 나무랐다. “이 녀석! 장난이 심하잖아.” 하지만 하준은 불만스럽게 몸을 비틀며 또 한 번 인아를 향해 총을 겨누려 했다. 아이의 아빠, 정서원이
인아는 희도를 기다리지 않고 홀로 택시를 타고 유씨 저택으로 향했다. 저녁 무렵의 A시는 안개비에 휩싸여, 모든 건물이 흐릿하게 보였다. 인아는 도착하자마자, 길에서 산 과일을 들고 저택으로 들어갔다. 어차피 그녀가 무엇을 사든 장희정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것이었다. 오늘 유씨 가문은 유독 분주했다. 정원과 대문 앞에 주차된 차들이 많았다. 유성문은 전처와 딸이 하나 있었는데, 그녀의 이름은 유희윤이었다. 희윤은 일찍이 정략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렸고, 오늘은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저택에 왔다. 희도와 희연은 장희정의
인아는 이를 악물었다. 통증이 점점 그녀의 얼굴을 창백하게 만들었고, 희도의 깊은 눈동자를 쳐다보며 결국 저항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나 희도는 더 이상 행동하지 않고, 인아가 완전히 가라앉을 때까지 그녀를 주시하다가 그제야 손목을 풀어주었다. 인아는 책상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와 바닥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그녀는 복부를 감싸 안은 채,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다. 조금만 움직여도 극심한 통증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잘 고민해봐.” 희도의 목소리가 인아의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그는 걸어 나가려 했지만, 바지 끝이 느닷없이 꽉 조여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희도와 원호가 인아의 시야에 들어왔다. 희도는 완벽하게 차려입은 슈트에, 무릎까지 오는 갈색 코트를 입어 다리가 더욱 길고 곧아 보였다. 희도는 고개를 숙여 인아를 내려다보다가, 옆에 있는 서영에게 시선을 잠시 돌렸다. 인아는 그 시선에 머리를 숙였다. 이미 느슨해진 그녀의 머리카락은 얼굴 주변으로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고, 마치 맑은 옥에 흠집이 난 듯 엉망이었다. 서영은 아무 말 없이 눈살을 찌푸렸고, 굳이 희도에게 대들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말다툼을 피했다. 그 미묘한 분위기 속에서 서준도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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