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차에 간다고요?”팀장은 깜짝 놀랐다. 2천만 원이 넘는 반지를 잃어버렸는데 그녀는 같이 찾을 생각조차 안 했다.“세령이는 잘나가는 연예인인데 당신들이 반지를 찾는 걸 서서 기다리겠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팬들에게 둘러싸일 거예요.”박인애가 말하자 팀장도 그제야 이해가 갔다.세령의 차는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차에 앉아 있다해도 쉬이 쓰레기통을 뒤지는 유진이의 초라한 모습을 볼 수 있다.“쟤는 쓰레기를 뒤지는 거랑 어울려.”인애는 악독하게 웃었다.“방금 그렇게 잘난 척해도 지금 쓰레기 더미에 있잖아.”세령이 담담하게 말했다.“조금만 더 있다가 돌아가자.”지금 유진의 모습은 아무런 위협도 없는 것 같았다.비록 민준이 그녀를 사랑했지만 결국 민준한테서 버리게 되었다.유진은 감옥에 있을 때 열 손가락이 끊임없이 피가 흘렀고, 손가락의 뼈가 부러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억울한 누명을 썼고 자신은 무죄라고 주장했다!하여 세령은 그녀가 너무 미웠다.왜 그녀는 이런 고통을 겪고도 이와 같이 버티는 것일까!정말 무죄라고 견지한다면 무죄로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법에는 증거 뿐이다!“맞다! 기념이라도 남겨야지.”인애는 말을 하더니 핸드폰을 꺼내 유진이가 쓰레기통을 뒤지는 모습을 찍었다.이 일이 언제 끝날지는 모르지만 정상 퇴근은 불가능이었다. 게다가 미옥조차도 그 있지는도 모르는 반지를 찾아야 했다.유진은 고무장갑을 벗고 핸드폰을 꺼내서 전화를 걸었다.“혁아, 나야. 오늘 일이 좀 있어 늦게 끝날 거 같아. 저녁은 자기절로 먹고. 날 기다릴 필요는 없어.”전화 저쪽에서 청아한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야?”“그냥……음, 회사 일 때문에. 아무튼 날 안 기다려도 돼.”유진은 말하면서 팀장이 그녀를 노려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자 재빨리 전화를 끝고 장갑을 껴서 쓰레기 더미를 뒤적였다.GH그룹 대표 사무실.지혁이 이준에게 분부했다.“임유진 회사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아봐.”이준은 대답하고서 곧바로 대표실을
세령과 인애는 차안에서 유진이가 쓰레기를 뒤지는 모습을 실컷 보았으니 이만 운전을 하고 떠나려 했다.그때 박인애가 말했다.“언제까지 찾게 할 생각이야?”진세령은 무심코 말했다.“내가 자기 전까지 찾게 하지. 때가 되면 소장에게 연락해 반지를 못 찾았으면 그만두라고 하면 돼. 그냥 내가 재수 없었다고 말하면 돼.”“하하, 정말 봐준 셈이야.”인애가 말했다.“소민준이 지금의 임유진을 보았다면 역겨워 토할 거야. 임유진이 어떻게 소민준과 어울리겠어. 너 같은 영애야말로 어울리지.”빨간색 마세라티가 막 시동을 걸자 갑자기 경찰차 몇 대가 오더니 마세라티는 순간 경찰차에 의해 둘러싸게 되었다.바로 그때 경찰이 차에서 내려 마세라티의 창문을 두드렸다.세령이 창문을 내리자 경찰이 말했다.“이곳에 2천만 원짜리 반지를 잃어버렸다는 신고를 받았어요. 입건하여 수사를 해야 해요. 반지를 잃어버린 거예요, 도둑맞은 거예요?”“입건이라고요?”세령과 인애는 어리둥절했다.“우리는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어요!”인애가 소리쳤다.하지만 상대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2천만 원 이상의 가치는 이미 중대한 사건에 속해요. 두 분은 적극적으로 협조하세요. 저희도 두 분이 한시라도 빨리 반지를 되찾는 것을 돕는 거예요.”하지만……애초에 반지를 잃어버리지 않았다.그때 두 사람이 눈을 마주치더니 세령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더 이상 반지를 찾을 생각 없어요. 못 찾아도 괜찮아요.”“만약 절도 사건이라면 입건 수사에 충족한 금액이니 입건하여 수사해야 합니다. 두 분은 차에서 내려 반지를 잃어버린 구체적인 장소가 어디인지 확인해 주세요.”사건 담당자가 진지하게 말했다.하여 세령과 인애는 따뜻한 차에서 내려 찬바람을 맞으며 이전에 그들과 유진이 대화하던 곳에 왔다. 다만 지금 이곳은 이미 쓰레기로 가득 차 있다.원래 쓰레기통에 있던 쓰레기들이 반지를 찾기 편하게 모두 바닥에 널브러졌다. 쓰레기의 비린 내가 끊임없이 풍겨왔다. 화려한 모습의 세령과 인애가 쓰레기
세령은 비록 마음속으로 그녀가 확실히 남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지만 주위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니 이 말을 내뱉을 수 없었다.특히 주변 사람들이 휴대폰을 꺼내 촬영하는 것을 보자 세령은 더욱 화가 났지만 겉으로는 매너를 유지해야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환경위생과에서 파견한 사람들이 오자 경찰이 파견한 사람들과 함께 반지를 찾고 있었다.그리하여 추운 날, 세령과 인애는 이렇게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구경당하면서 경찰의 검문을 받고 그 쓰레기 무더기의 옆에 서서 이따금 악취를 맡았다.반지는 당연히 찾지 못했다. 경찰이 드디어 세령과 인애를 풀어주었을 때 두 사람은 하마터면 이 쓰레기 냄새 때문에 토할 뻔했다.“세령아, 어떻게 해. 이 일이 커져서 형사사건으로 됐어.”차 안으로 돌아오자 인애가 불안해하며 말했다.“도대체 누가 신고한 거야, 경찰까지 왔어.”“나중에 지인에게 말해서 사건을 흐지부지하게 만들면 돼.”진세령은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사건보다 자신의 이미지에 더 신경을 썼다. 자신은 인기 스타라 평소 셀카조차 고급 장소에서 찍는데 지금은 쓰레기 더미 옆에 있다.그리고 옆에 많은 사람들이 현장 사진을 찍고 있었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핫이슈가 될 것 같았다. 세령은 얼른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어 관련 뉴스를 내려달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한편 유진의 몸에는 온통 쓰레기 냄새일 뿐이다. 손을 몇 번이나 씻어도 쓰레기 냄새가 지워지지 않았고 작업복을 벗고 자신의 외투를 입었지만 그 고약한 냄새가 났다.“부자들은 정말 너무해. 자기 실수로 반지가 잃어버렸는대 왜 우리를 시켜. 그렇게 비싼 반지르는 잘 간수하지도 않고.”미옥이가 불평해 했다.유진이 그녀를 몇 마디 위로하고서 자신의 가방을 들고 회사를 떠났다.진세령 때문에 평소보다 집에 더 늦게 돌아갔다. 길가의 가로등은 이미 켜져있고 찬바람이 그녀의 얼굴에 불어와 한기와 따끔한 아픔이 느껴졌다.오늘 유진은 다시 한 번 그전과의 차이를 느꼈다. 세령이 반지를 찾으라고 요구했을 때 그녀
지혁은 품속에 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그녀의 목에 기대었다.그는 자연히 그녀가 말하는 냄새를 알게 되었다.오늘 세령 때문에 오랫동안 쓰레기를 뒤졌다. 하지만…….“누나의 몸에서 냄새가 나도 나를 피할 필요 없어.”“하지만…….”유진은 자신의 냄새 때문인지 아니면 지혁의 포옹 때문인지 어색했다.“우리가 서로 의지하는 이상 피할 게 뭐가 있어? 언젠간 내 몸에서 냄새가 나면 누나도 일부러 날 피할 거야?”지혁이 반문했다.그러자 유진은 잠시 침묵한 뒤 한숨을 쉬었다.“알았어. 다음부터 그러지 않을게.”지혁의 얼굴에 웃음기가 돌더니 그제야 유진의 손을 잡고 좁은 임대주택으로 돌아갔다.지혁은 미리 음식을 차렸다. 비록 음식은 이미 식었지만 유진은 아주 맛있게 먹었다.“오늘 무슨 일 있었어?”지혁이 물었다.유진은 망설이다가 그에게 사실대로 말했다. 오늘 일이 사건으로 되었으니 그녀가 말하지 않더라도 지혁은 인터넷에서 알게 될 것이다.그때 지혁은 조용히 유진의 얘기를 듣더니 말했다.“화나지 않아?”유진는 어쩔 수 없는 듯 웃었다.“화날 것도 없어.”“정말 반지를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단지 트집을 잡으려고 한 것이잖아. 아니야? 왜 누나는 화나지 않아?”“화가 나도 소용없어.”유진이 말했다.“너 강지혁이라는 사람을 알아?”그는 흠칫 놀라며 그녀의 반짝거리는 눈동자를 바라보았다.“그는 S시의 신이라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잘 보이려고 해.”그녀가 말을 이었다.“감옥살이를 할 때 내가 교통사고를 내서 그의 약혼녀를 죽게 했다고 판결났어.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감옥에서 날 괴롭혔어. 만약 모든 일에 화를 낸다면 난 화병 때문에 죽은지 오래전일 거야. 그러니까 그냥 무시하면 돼.”유진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지혁의 마음은 너무 아팠다.유진의 짧은 한 마디에 지혁는 그녀가 감옥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유진이 말했 듯이 지혁의 비위를 맞추려는 사람이 너무 많다.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정말
어떤 아픔을 겪어야 이런 이야기를 할 때 이토록 덤덤할까?“앞으로 누가 누나를 다치게 하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지혁은 마치 맹세하는 것처럼 말했다.그러자 유진은 그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해했다.“자꾸 그런 말을 하지 말고 밥이나 먹어.”유진는 말을 하며 집중하여 음식을 계속 먹었다.한편 지혁의 눈동자가 반짝이는 것이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이와 동시에 일이 커졌지만 세령은 회사 쪽에서 이 실검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을 생각지도 못했다. 지금 인터넷에는 그녀가 반지를 잃어버려 환경미화원이 그녀를 도와 쓰레기통을 뒤졌다는 기사가 퍼져 있다.특히 세령이 화려한 옷을 입고 쓰레기 더미 옆에 서 있고 옆에는 허리를 굽혀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환경미화원이 있는 사진을 넣었다.이런 대비는 즉시 적지 않은 사람들의 불만을 이끌었고 모두들 그녀의 품성에 문제가 있고 갑질을 한다고 질책했다.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이런 댓글을 달았다.“본인이 반지를 잃어버렸는데 왜 환경미화원이 찾아야 하나요? 환경미화원들은 하루 종일 힘들게 도로 청소를 하는 것도 모자라 반지까지 찾아줘야 해요? 왜 혼자 쓰레기통을 뒤지지 않고?”“스타가 되면 남보다 더 대단해요?”“왜 도시의 자원을 사용하는 거죠? 진세령이 환경미화원의 임금을 주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반지를 찾아주는 거예요?”비록 세령의 팬들이 열심히 그녀의 편을 들지만 이런 부정적인 댓글을 막을 수 없었다. 특히 당시 현장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들이 수많은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렸다.“왜 실검도 막지 못해?”악플이 많아질수록 세령은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었다.“방법이 없어. 어쩐 일인지 대형 잡지사에서 관련된 내용을 내려주지 않아.”그때 매니저가 멈칫하더니 머뭇거리는 듯 말문을 열었다.“세령아, 혹시 너 누구의 미움을 산거야?”“내가 누구의 미움을 사겠어.”S시에서 진 씨 가문의 신분에 게다가 소 씨 가문의 예비 며느리인 진세령이다. 다른 사람이 그녀의 미움을 살까
심지어 적지 않은 팬들은 탈덕하겠다고 하면서 세령을 미워하겠다고 한다.또 일부 세령의 충실한 팬들은 어느 부분에서 잘못된 게 아니냐면서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믿기 힘든 것은 세령도 마찬가지이다. 생각지도 못하게 경찰이 수사보고서를 제출했고 그녀는 다른 네티즌들과 동시에 알았다.세령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설마 몇 년 동안의 그녀의 노력과 커리어가 하루아침에 무너진 것인가?그러나 더 참혹한 것은 뒤에 있다. GH그룹 강지혁의 개인 비서 이준이 소 씨 가문, 진 씨 가문에게 연락하여 약혼식에 참석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세령은 현재의 부정적인 뉴스를 연상할 수밖에 없었다.유진은 경찰의 수사 보고서를 본 후 오히려 좀 놀랐다. 수사 보고서가 이렇게 빨리 나올 줄은 몰랐다. 게다가 소 씨 가문과 진 씨 가문이 이 기사를 내리지 않았으며 오히려 점점 더 심해지는 추세이다.“진세령, 정말 너무 나쁜 사람이네. 그날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반지를 찾아달라고 했으면서 결국 잃어버리지도 않은 거잖아.”환경위생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이 일에 대해 의론이 분분했다.“인터넷에 진세령을 욕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게 당연해.”“하지만 이상해. 톱스타가 왜 반지를 잃어버렸다고 우리한테 찾으라고 해?”한 직원이 의문을 제기했다.“심심해서 그런 거겠지.”그때 미옥이 유진에게 물었다.“유진 씨, 그날 진세령이 유진 씨와 아주 오랫동안 얘기를 나눴잖아. 혹시 아는 사이야?”그때 지나가던 방현주가 조롱하는 어투로 말했다.“서미옥, 무슨 농담을 하는 거야. 임유진이 어떻게 진세령과 아는 사이겠어. 진세령은 부잣집 영애잖아.”“하지만 그날 진세령과 유진 씨가 얘기 나누는 걸 봤어.”“설마 임유진이 진세령의 미움을 사 톱스타가 일부러 반지를 잃어버렸다고 한 거 아니야?”방현주는 주범을 찾은 것처럼 말했다.“임유진, 너 때문에 우리가 쓰레기통을 뒤진 거네.”동현이 임유진을 좋아하기에 현주는 유진을 겨냥했다. 미옥은 현주가 이
“아빠도 언니 많이 보고싶죠.”세령이 말했다.“그날 임유진을 만났는데 가소롭게도 임유진은 그 어떤 죄책감도 없었어요.”“이제 그만. 그 여자 말을 꺼내지 마.”진기태가 말했다.말하는 사이에 계단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이 고개를 들자 강지혁이 계단에서 내려오고 있었다.“저 만나러 왔나요? 무슨 일인가요?”지혁이 담담하게 물으면서 두 사람을 힐끗 보았다.지혁의 차가운 눈빛에 세령은 순간 오싹한 기운이 들었다.그 당시 언니는 이 남자를 사랑했다.세령은 아직도 언니 애령이 사랑에 빠진 눈빛으로 말한 것이 기억난다.“세령아, 난 한평생 강지혁 같은 남자를 얻을 수 없다고 생각했어. 그는 아주 차갑고 이성적이야. 그를 안아도 그의 온도를 느낄 수 없어. 그는 아주 정교한 도자기 같고 그의 껍데기를 가진다해도 그의 속내는 알 수 없을 거야.”그렇다. 세령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매번 지혁을 만날 때마다 그의 속내를 알 수 없었다.지혁은 준수한 얼굴에 뒤에 GH그룹까지 있기에 이 도시에서 종횡무진할 수 있지만 세령은 단 한 번도 그와 엮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이 남자는 너무 무섭고 차갑다.비록 언니가 그 당시 지혁을 죽도록 사랑해 지혁이 결혼을 승낙했지만 세령은 지혁이 언니를 사랑한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언니의 장례식에서 지혁은 처음부터 끝까지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고 심지어 조금의 슬픔도 없었다.“지혁아, 세령이 철이 없어서 이런 영향이 안 좋은 사고를 쳤어. 내가 이미 잘 타일렀으니 세령이와 소민준의 약혼식에 참석했으면 좋겠어. 세령이는 애령의 유일한 동생이야. 애령이도 네가 약혼식에 참석하길 바랄 거야.”진기태는 간절한 표정으로 말했다.지혁은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진기태를 바라보았다. 진기태는 여러 해 동안 백화점을 운영하며 위세를 떨쳤지만 지금은 사위에게 기세가 눌린 채 자신의 생각이 이미 상대에게 들킨 것 같았다.“네. 철이 없긴 했어요. 반지를 잃어버렸다고 거짓말한 거는 말할 것도 없고 그깟 반지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멍을 때리는 두 사람을 힐끗 보았다.“두 번 다시 내 집에 발 들이지 못하게 할 거야.”진 씨 부녀는 갑자기 소름이 끼쳤다.지혁의 이 한마디는 두 사람이 반지를 찾지 못하고 떠난다면 강 씨 가문과 연을 끊어야 한다는 뜻이다.지혁이 곧바로 떠나려 하자 두 부녀는 눈을 마주쳤다.눈앞의 연못은 비록 물이 깊지 않고 그리 크지 않지만 30평의 크기에 심지어 연못바닥이 진흙투성이라 작은 반지를 찾기 쉬울 리가 없다.세령은 곧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아빠, 어떡해요, 설마 정말 내려가서 찾으라고요? 이렇게 추운 날에 나 혼자 어떻게 반지를 찾을 수 있겠어요!”“네가 저지른 일은 너 스스로 해결해. 만약 강 씨 가문이 정말 진 씨 가문과 연을 끊으면 진 씨 가문이 어떻게 될지 네가 잘 알 거야!”진기태는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진 씨 가문의 미래와 관련되니 딸이라 하더라도 그는 용서할 수 없다.세령은 침묵하고 있었다. 그녀는 진 씨네 가문의 여러 사업이 GH그룹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만약 지혁이 정말 등을 돌리면 진 씨 가문에 절대적인 타격이 있을 것이다.세령은 어쩔 수 없이 한 걸음 한 걸음 연못으로 들어가서 그 작은 반지를 찾기 시작했다.세령는 지혁이 유진의 복수를 해준다는 것을 생각지도 못했고 애초에 유진이 얼마나 처참했으면 지금의 그녀는 더더욱 더 처참하다!지혁이 임대주택으로 돌아오자 유진이 빨래를 하고 있었다.유진의 두 손은 차가운 물에 잠겨 이미 빨갛게 얼었다.“왜 뜨거운 물로 씻지 않는 거야?”지혁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뜨거운 물은 끓여야 하고 전기가 많이 들잖아. 게다가 찬물로 좀 씻으면 손도 뜨거워져.”유진은 말을 하며 옷을 헹구더니 물기를 짰다.그녀의 손을 잡아보니 아주 차가웠다.“다음부터 빨래는 뜨거운 물로 해. 전기세는 내가 벌게.”지혁이 말했다.유진는 웃음을 터뜨리더니 손가락으로 그의 이마를 살짝 튕겼다.“아낄 수 있으면 아껴야지. 앞으로 돈 쓸 곳이 많아. 참,
“응, 말해.”강지혁은 손에 든 서류 자료를 탁자 위에 내려놓으며 임유진과 눈을 맞췄다.“그... 김승수 말이야. 전에 나랑 스승님이 짜고 치고 자기를 감옥살이시켰다고 주장하던 그 사람. 오늘 전화를 한 통 받았는데 김승수가 그 일로 나랑 스승님을 고소했더라고. 사건은 이미 검찰로 송치된 상태야. 아마 조만간 검찰 측에서는 그때 사건이랑 스승님 관련해서 나한테 조사받으러 오라고 연락이 오게 될 거야. 근데... 조사가 시작되면 기자들이 냄새를 맡을 거고 그러면 높은 확률로 헛소문이 돌게 돼. 어쩌면 그 영향으로 GH 그룹에 영향이 갈 수도...”“내가 오해라도 할까 봐?”강지혁이 임유진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물었다.“네가 권건우 변호사를 단지 스승으로서 좋아하고 또 존경하고 있다는 거 알아. 오해 안 해. 라온시에 있을 때 너한테 많은 도움이 되어주신 분이잖아. 회사 걱정은 하지 마. 고작 언론에 흔들릴 정도로 나약한 회사가 아니니까.”강지혁의 말에 임유진은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자신의 일로 강지혁에게 피해가 가는 건 정말 너무 싫었으니까. 또한 그가 뭘 오해하는 것도 싫었고 말이다.“네 곁에는 항상 내가 있어. 그러니까 힘들면 언제든지 나한테 기대.”임유진은 마음 한편이 따뜻해지는 것이 느껴졌다.“그리고...”임유진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시금 입을 열었다.“화분 떨어질 때 나 구해줬던 사람, 소민준이야.”아마 강지혁이라면 진작 운전기사나 경호원을 통해 보고를 받았을 테지만 임유진은 자기 입으로 이 말을 해주고 싶었다.강지혁이 행여 이상한 생각을 할까 봐.임유진은 강지혁이 의심이 많고 다른 사람보다 많이 예민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최대한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고 그를 안심시키려고 하고 있다.“알아.”강지혁은 탁자 위에 내려놓은 서류 자료를 다시 집어 임유진에게 건넸다.“볼래? 소민준에 관한 자료야. 꽤 힘들게 살아온 것 같더라고.”임유진은 그 말에 별다른 고민 없이 바로 자료를 건네받았다.자료 안에는 소민준의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역시 부끄러워 임유진은 얼른 다른 핑계를 댔다.“밥, 밥마저 먹어야지. 너 아직 다 안 먹었잖아.”“알았어.”강지혁은 그 말에 그제야 손을 풀어주며 다시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손은 계속 아팠어?”“전이랑 같지 뭐. 날씨가 추워지면 통증이 좀 느껴져.”“소영훈 선생한테 다시 찾아가서 봐달라고 할까?”강지혁의 입에서 소영훈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임유진은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소 선생님을... 기억해?”강지혁은 그 말에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응, 며칠 전에 과거 기억이 조금 돌아왔어.”“기억이 났어?”임유진이 흥분한 얼굴로 물었다.“많이는 아니고 아주 조금만.”흥분한 임유진과 달리 강지혁은 꽤 담담한 얼굴이었다.“내가 기억을 다 회복했으면 좋겠어?”“그야 당연히...”임유진은 말을 하다 말고 갑자기 멈칫했다.강지혁이 예전 기억을 되찾는 게 과연 좋은 건가?만약 그녀가 절벽에서 떨어졌던 일까지 모두 떠올리게 되면, 강문철이 그의 등에 칼을 꽂았다는 걸 알게 되면 강지혁은 어떻게 되는 거지?혹 정신 상태가 불안해지는 건 아닐까?임유진은 이와 같은 생각에 말하는 것을 주저하며 입술을 깨물었다.그러자 강지혁이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응?”“혁아, 나는 네가 행복하기만 하면 돼. 기억 같은 건 전혀 중요하지 않아.”임유진은 그 언젠가 강지혁이 모든 기억을 되찾은 그 날, 강문철 때문에 평생 속에 남을 응어리는 만들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그들이 이렇게 된 건 모두 강문철 때문이니까.만약 5년 전 그날 강문철이 그 모든 걸 계획하지 않았으면 강지혁과 그녀는 그 오랜 시간 동안 서로를 잃지도 않았을 것이고 행방불명된 나머지 한 아이를 지금껏 찾지 못하지도 않았을 것이다.임유진은 아이 생각에 갑자기 마음이 가라앉으며 우울해졌다.“나 지금 행복해.”강지혁이 말했다.“너는 어떤데? 너는 내 곁을 떠났을 때의 기억을 되찾고 싶어?”“글쎄. 솔직히 말하면 기억을 되찾는
강지혁은 수저를 들고 그녀가 해준 음식을 하나둘 입에 넣었다.분명히 흔히 볼 수 있는 가정 요리고 손에 들고 있는 것도 포크나 나이프가 아닌 그저 숟가락과 젓가락일 뿐인데 상대가 강지혁이라 그런지 꼭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고 있는 것 같았다.임유진은 원래 강지혁이 밥을 다 먹은 뒤에 오늘 있었던 일을 얘기하려고 했다. 하지만 강지혁이 밥을 먹으며 먼저 선수를 쳐버렸다.“오늘 하마터면 떨어지는 화분에 다칠 뻔했다는 얘기 들었어. 무사해서 다행이야. 내일부터는 경호원을 두 명 더 붙여줄게.”임유진은 그 말에 눈을 두어 번 깜빡이며 어리둥절해 하다 이내 남편이 강지혁이라는 것을 깨닫고 납득했다는 표정을 지었다.아마 일이 터지고 5분도 안 돼 바로 강지혁에게 보고가 들어갔을 테니까.“응, 알겠어.”임유진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누가 화분을 떨어트린 건지 알아봐 달라고 했어. 아직 따로 연락이 오지는 않았지만.”“청소부가 한 짓이야.”“청소부?”임유진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벌써 조사를 마쳤어?”“당연한 거 아니야? 네 일인데.”만약 임유진의 몸에 생채기라도 났으면 강지혁은 아마 이성을 잃고 건물 전체를 폭파하고 관계자들까지 다 처리해버렸을 것이다.강지혁은 갑자기 젓가락을 내려놓더니 임유진의 양손을 덥석 잡았다.그녀의 손가락은 여전히 삐뚤빼뚤했다.임유진의 손을 이렇게 만든 사람은 진세령이고 소민준은 당시 진세령의 곁에서 가만히 구경만 했다.강지혁은 임유진의 손을 매만지다 문득 1시간 전에 봤던 청소부의 피범벅이 된 두 손을 떠올렸다.그는 다른 사람의 손은 피가 나든 잔인하게 잘리든 아주 조금의 연민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임유진의 손은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고 또 울컥했다.“왜? 왜 그렇게 봐?”임유진은 강지혁이 손가락을 뚫어지게 보는 게 불편한지 손을 뒤로 빼며 거두어들이려고 했다.그녀 역시 다를 것 없는 여자라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자신의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었다.“내 손 안 예뻐... 보지 마.”임유진의 손
“그래...”강지혁이 낮게 읊조렸다.“그래야 할 거야.”고이준은 저도 모르게 소민준이 매우 가엽게 느껴졌다. 만약 임유진이 정말 소민준을 동정하면 그때는 지금 하고 있는 택배 기사 일도 못 하게 될지도 모르니까.“고 비서, 누가 저 여자한테 돈을 쥐여주고 유진이를 해할 계획을 세운 건지 알아내.”강지혁이 차가운 목소리로 지시했다.“네, 회장님.”고이준이 얼른 답했다.“그리고 S 시에서 제일 실력 좋은 변호사를 고용해서 유진이와 권건우 변호사 고소 건에 붙여. 김승수한테 지시를 내리는 다른 누군가가 있는 건 아닌지도 한번 알아보고.”고이준에게 김승수의 뒷조사를 맡긴 건 이유가 있었다.임유진이 강지혁의 와이프고 현 강씨 가문의 유일한 안주인인 걸 알고도 고소를 한 건 누가 봐도 이상했으니까. 상식적인 인간이라면 강씨 가문을 상대로 덤빌 리가 없다.게다가 김승수가 억울하다는 당시의 사건을 강지혁도 한번 훑어봤지만 임유진의 말대로 증거가 확실했고 결과 역시 납득 가능한 결과였다.즉 그렇다는 건 김승수에게 다른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또 혹은 김승수를 뒤에서 조종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다른 목적이 있을 수도 있고 말이다.하지만 이유가 뭐가 됐든 임유진을 건드린 이상 강지혁이 손을 놓고 있을 리가 없다. 그에게는 임유진이 목숨줄과도 같은 존재니까.“네, 알겠습니다.”임유진이 강지혁에게 있어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고이준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다만 요즘 따라 부쩍 이상한 위화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임유진을 대하는 강지혁의 태도가 꼭 기억을 잃기 전의 강지혁 같았기 때문이다. 꼭 기억을 다 되찾은 것처럼 말이다.강씨 저택.강지혁은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가 마침 임유진과 두 아이들이 거실에서 동요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현이는 흥분한 건지 얼굴이 빨개진 채로 깔깔거리며 춤을 추고 있었고 무뚝뚝하던 율이도 볼을 살짝 붉히며 어색하게 몸을 좌우로 흔들고 있었다.몸만 보면 썩 내키지 않아 하는 것 같지만 미소를 띠고
강지혁은 여자를 무섭게 노려보더니 이내 곁에 있는 경호원에게 지시를 내렸다.“두 번 다시 손에 뭘 들 수 없게 만들어놓고 경찰에 넘겨.”“네, 알겠습니다.”청소부는 그들의 대화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버렸다.‘지, 지금 내 손을 부러트리려는 건가?’그녀는 이런 무서운 인간을 만날 줄 알았으면 차라리 경찰에게 잡히는 것이 더 나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안 그럴게요! 제가... 제가 알아서 경찰서로 가서 자수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제발...!”하지만 간절한 그녀의 부탁에도 강지혁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얼굴이 차가워지기만 할 뿐이었다.사실 청소부는 양손만 부러지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 만약 그녀가 던진 화분으로 임유진이 큰 상처를 입었으면 그때는 양손은 물론이고 몸 전체가 너덜너덜해진 채 죽으니만 못한 삶은 살았을 테니까.“으아아악!!”그녀의 절규와 함께 강지혁은 유유히 현장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고이준도 곧바로 그의 뒤를 따라나섰다.바로 앞에 세워진 차량에 올라탄 후 고이준은 곧바로 강지혁에게 자료 하나를 건넸다.“소민준 씨의 지난 5년간 행적입니다. 몇 년 전부터 배달 기사 일을 하는 것으로 확인이 됐고 오늘은 우연히 건물 앞을 지나가다 사모님을 구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모님께서는 감사의 뜻으로 소민준 씨를 병원에 보냈고 손목 골절로 인한 치료 비용을 전액 다 부담해주셨습니다.”강지혁은 어둡게 가라앉은 얼굴로 수중의 자료를 훑어보았다. 차 안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얼음장 같았다.“참 기막힌 우연이야. 안 그래?”그때 줄곧 입을 다물고 있던 강지혁의 입에서 뜬금없는 한마디가 흘러나왔다.“네... 네.”고이준은 식은땀을 흘리며 룸미러로 강지혁의 눈치를 봤다. ‘혹시 소민준이 사모님을 구해준 것에 질투라도 하는 건가...?’“CCTV는?”“네, 여기 있습니다.”고이준은 얼른 휴대폰을 꺼내 경호원이 보내준 CCTV 영상의 일부를 틀어 강지혁에게 건넸다.영상 속 소민준은 화분이 떨어짐과 동시에
경비원은 그 말에 시선을 내려 바닥에 떨어진 산산조각이 난 화분을 보고는 그제야 얼른 손을 놓아주었다.임유진은 경호원에게 소민준의 손목을 봐달라고 했고 경호원은 알겠다며 그의 손목을 자세히 살폈다.“사모님, 아무래도 골절인 것 같습니다.”“그럼 지금 당장 병원으로 데려가 치료를 받게 하세요.”“네, 알겠습니다.”그때 휴대폰이 울렸고 임유진은 경호원에게 가보라는 손짓을 한 후 이내 전화를 받았다.무슨 얘기를 들은 건지 그녀는 전화를 받은 지 얼마 안 돼 곧바로 심각한 얼굴을 했다.“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통화를 마친 후 임유진은 건물이 아닌 법원으로 향했다.잠시 후, 임유진이 법원에서 나왔을 때 마침 소민준을 병원으로 데려간 경호원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검사를 받아본 결과 다행히 심각한 상처는 아니고 한 달 정도면 완전히 회복될 거라는 내용이었다.“알겠어요. 치료비는 다 제가 책임진다고 하고 혹시 다른 무언가의 보상을 원하면 저한테 따로 연락 주세요.”“네, 사모님.”임유진은 전화를 끊은 후 휴대폰을 집어넣는 것이 아닌 권건우에게 전화를 걸었다.“스승님, 죄송해요. 아무래도 당분간은 좀 시끄러워질 것 같아요.”“들었다. 김승수가 우리 둘을 고소했다지? 걱정할 것 없어. 우리는 그 사건에 한 점 부끄럼 없이 임했으니까. 그보다 요즘 인터넷에 떠드는 루머 말인데 나야 다 늙어서 그런 건 전혀 신경이 안 쓰인다고 하지만 너는 남편과 재회한 지도 얼마 안 됐는데...”“걱정하지 마세요. 혁이는 스승님과 제 사이 오해 안 해요.”임유진의 말에 권건우는 안심한 듯 미소를 지었다.“그럼 다행이고.”그날 저녁, 임유진이 집에 돌아오자마자 집사가 다가와 말했다.“회장님은 오늘 일 때문에 조금 늦으신다고 먼저 아이들과 식사를 하시라고 하셨습니다.”“네, 알겠어요.”임유진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들과 밥 먹을 준비를 했다. 일 때문에 늦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그 시각, 강지혁은 냉기를 풍기며 차가운 시선으로 눈앞
“위험해!”등 뒤로 누군가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임유진은 미처 상황을 파악하지도 못한 채 누군가의 품에 안겨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녀를 구해준 누군가는 쓰러지는 그 순간에도 양손으로 그녀를 지켜주고 있었다.“사모님!”“사모님!”다급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경호원과 기사들이 큰소리로 외치며 다가왔다.임유진은 그들의 소리에 그제야 정신을 차렸고 경호원의 부축으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난 괜찮아요.”그녀는 말을 마치고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고개를 숙인 채 자리에서 일어나며 몸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내는 남자를 바라보았다.“괜찮으세요?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임유진은 말을 하다가 남자가 고개를 드는 것을 보고 저도 모르게 흠칫하며 말을 멈추고 말았다.그녀를 구해준 건 다름 아닌 소민준이었다.소씨 가문의 장남이자 한때는 그녀의 남자친구였으며 진세령의 약혼자이기도 했던 그 소민준 말이다.하지만 지금의 그는 5년 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색이 다 바랜 낡아빠진 옷에 더러운 운동화, 세월을 정통으로 맞은 것 같은 얼굴에 새치 가득한 머리까지, 지금의 그는 도무지 30대 중반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그래도 한때는 상류층에 있었던 사람인데 지금은 일반 시민도 아닌 제일 아래 계층에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고개를 든 소민준은 눈앞에 있는 사람이 임유진이라는 것을 보고는 마찬가지로 조금 놀란 듯 움찔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쓴웃음을 지었다.“너였구나.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는 기사를 봤어.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너...”임유진은 뭐라 말을 하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소민준은 당시 그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고 그녀가 절망의 끝에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궁지까지 몰아붙였으며 두 번 다시 사랑 같은 건 하고 싶지 않게끔 만들어놓기도 했다.아마 강지혁이 아니었다면 임유진은 지금도 여전히 과거의 상처에 매달려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살았을 것이다.하지만...하지만
직장 동료들은 한지영에게 위로를 건네며 은근히 그녀에게 잘 보이려는 듯한 말투로 얘기했다.심지어 어떤 사람은 아예 대놓고 그녀에게 백연신과의 사이를 묻기도 했다.“그럼 지영 씨는 백연신 씨랑 다시 만나는 거예요?”“그날 기자들 무리에서 지영 씨 손을 덥석 잡고 차로 끌고 가는데 내가 다 설렜지 뭐예요? 완전 현실판 왕자님 아니에요?”“그럼 앞으로 지영 씨를 뭐라 불러야 하나?”“백연신 씨가 회장님이니 당연히 회장 사모님 아니겠어요?”한지영은 직원들의 태도가 바뀐 게 전부 백연신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다. 이런 상황을 처음 겪는 것도 아니었으니까.“아니요. 백연신 씨와는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그러니까 괜한 추측은 하지 말아주세요. 그리고 저, 사귀는 사람 따로 있어요.”한지영은 차가운 목소리로 대꾸했고 이에 사람들은 어색하게 웃으며 서로 눈빛을 주고받더니 금방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옆에서 떠드는 사람들이 없으니 이제야 살 것 같았다.어제 집으로 돌아갔을 때 백연신은 끝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그저 경호원을 통해 그녀에게 전언만 남겼다.“회장님께서 더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앞으로도 쭉 전과 같이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하셨습니다.”전과 같다는 건 백연신 역시 더는 그녀 앞에 나타나지 않을 거라는 건가?한지영은 그 생각에 갑자기 울컥하며 눈물이 차오르려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녀는 곧바로 다시 마음을 다잡으며 스스로에게 되뇌었다.이건 자신이 바란 거라고, 그러니 아무것도 슬퍼할 것 없다고 말이다.‘그래, 잘 된 거야. 이게 제일 좋은 결말이야. 증오도 없고 더 이상의 미움도 없는... 그냥 좋은 추억만 간직한 지금이 제일 좋은 끝이야.’다시 그와 연인이 되었다가 또다시 고난에 부딪혀 헤어지게 되면 그때는 완전히 원수지간이 될지도 모르니 차라리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는 게 백배는 더 나았다.한지영은 더 이상 백연신과 함께 할 용기가 없었다. 아무리 그가 사랑을 외쳐도 아무리 줄곧 그녀만 사랑해왔다고 해도 이제는 그 마음을
연우진은 그 어느 날 자신이 백연신의 질투 대상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지영 씨한테 마음이 남은 거라면 내가 아닌 지영 씨와 얘기를 하세요.”연우진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그리고 내가 지영 씨와 만나고 싶다고 해도 지영 씨가 받아주지 않으면 함께 하지 못해요. 이건 백연신 씨도 마찬가지고요. 백연신 씨가 여전히 지영 씨를 좋아한다고 해도 지영 씨가 받아주지 않으면 두 사람 역시 함께 못해요. 선택권은 지영 씨한테 있으니까.”백연신은 주먹을 말아쥐며 다시 물었다.“지영이와 만날 건지에 대한 대답만 해.”연우진은 한숨을 한번 내쉬었다. 아무래도 대답을 해주지 않으면 순순히 보내주지 않을 듯하다.“지영 씨는 좋은 사람입니다. 이대로 감정이 싹트면 나로서는 당연히 지영 씨와 함께하고 싶겠죠.”“한지영의 곁에 있을 수 있는 남자는 모든 걸 다 내어줄 수 있을 정도로 한지영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면 안 돼.”백연신이 경고하듯 낮게 읊조렸다.“어째 내가 모든 걸 다 내어줄 정도로 한지영 씨를 사랑하지 않으면 우리 둘이 함께하는 걸 방해하겠다는 얘기로 들립니다만?”연우진의 질문에 백연신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냉랭하고 차가운 눈빛을 보면 그 대답이 뭔지 알 수 있을 것도 같았다.“백연신 씨는 지영 씨를 위해 모든 걸 다 내어줄 수 있습니까? 그 정도로 사랑한다면 여기서 나한테 이러지 말고 다시 한번 지영 씨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을 해보는 게 어떨까요?”백연신은 그의 말이 끝난 순간 갑자기 손을 뻗어 연우진의 멱살을 잡았다. 그러고는 이대로 갈기갈기 찢어버릴 듯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너는 아무것도 몰라. 나라고...”하지만 그는 말을 다 잇지 못했다. 또한 멱살을 잡았던 손도 힘없이 풀었다.질투와 분노로 가득했던 눈동자가 한순간에 어둠에 잠겨버린 듯 시들어졌다.“한지영한테 잘해. 만약 지영이한테 상처를 주면 그때는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다는 게 뭔지 똑똑히 알려주지. 내 말 허투루 듣지 마.”말을 마친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