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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Penulis: 수박빙수
아림의 표정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린 엄준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 탕비실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시기 좋은 온도의 케모마일 차 한 잔이 아림의 책상 위에 놓였다.

“안색이 안 좋은데, 오늘은 일찍 들어가서 쉬는 게 어때? 남은 케이스 진료는 내가 할게.”

“괜찮아요.”

아림은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 책상 위에 있던 파일을 펼쳤다.

“2시 30분에 한 분 더 있어요. 이분까지만 보고 오늘은 마무리할게요.”

엄준은 더 밀어붙이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최근 학술지에 실린 새로운 치료법 이야기를 꺼냈고, 이어 옥상에 올라갔던 내담자의 후속 치료 계획으로 화제를 돌렸다.

엄준과의 드문드문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 아림의 마음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 변화를 알아챈 엄준이 그제야 목소리를 낮춰 일렀다.

“제니, 뭐든 혼자 짊어지려고 하지 마.”

찻잔의 김은 이미 거의 흩어져 있었다.

아림은 눈을 내리깔고 잔 언저리만 바라볼 뿐, 대답하지 않았다.

조용한 시간이 몇 초 더 이어졌다.

엄준이 무언가 더 말하려는데, 핸드폰이 짧게 떨렸다.

그는 화면을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화 좀 받고 올게. 곧 올 두 시 반 내담자와의 상담 준비도 해야 할 테니, 방해하지 않을게.”

말을 마친 엄준은 돌아서 나가며, 문을 닫아 주었다.

아림은 텅 빈 진료실에 잠시 혼자 앉아, 남은 식은 차를 말없이 비우고 파일을 펼쳐 기록을 읽기 시작했다.

그때 비서 하세영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내담자분 오셨어요.”

“응, 들어오시게 해요.”

아림은 마음을 다잡았다. 표정은 어느새 평소의 분명하고 사무적인 태도로 돌아와 있었다.

...

오후 4시, 오전 내내 바빴던 아림은 정확히 권씨 집안 본가 앞에 도착했다.

오래 집을 관리해온 집사 김대철이 반갑게 아림을 맞았다. 목소리에는 웃음이 묻어 있었다.

“원장님, 드디어 오셨군요. 회장님이 한참 기다리셨습니다. 계속 원장님 얘기만 하셨어요.”

HG그룹 회장 권하균은 아림의 VIP 내담자 중 한 명이었다. 상태가 복잡하진 않았지만, 정해진 때마다 방문해 경과를 살피고 마음을 풀어줘야 했다.

아림은 웃었다.

“요즘 회장님 기분이 괜찮으신가 봅니다.”

“그럼요. 원장님께서 다녀가신 뒤로 회장님 불안 증세가 많이 가라앉으셨어요. 주무시는 것도 편히 주무시고, 식사도 훨씬 좋아지셨답니다.”

김대철은 싱글벙글 웃으며 아림을 안내해 정원을 지나 실내로 향했다. 곧장 응접실로 들어갔다.

권씨 집안의 본가는 고풍스러운 분위기에 현대적인 감각을 더한 저택이었다.

실내에는 짙은 목재 가구들이 놓여 있었고, 전체적으로 오래된 멋이 깊었다.

권하균은 휠체어에 앉아 돋보기를 든 채, 세월에 누렇게 바랜 책장을 천천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림이 들어오자 권하균은 책장을 내려놓았다. 눈가의 주름이 부드럽게 펴졌다.

“최 원장 왔나? 앉게. 김 집사, 차 내오게.”

아림은 웃으며 인사하고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일상 대화를 시작하듯 녹음기를 켰다.

“회장님, 차는 급하지 않습니다. 요즘 주무시는 건 어떤지부터 좀 여쭤볼까요?”

“최 원장도 참, 올 때마다 뭐가 그리 급한가. 누가 뒤에서 쫓아오기라도 하는 사람처럼 서두르기는...”

권하균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지만, 아림이 이끄는 주제에 맞춰 천천히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상담이 절반쯤 지났을 때, 아림의 눈에는 부드러운 웃음이 더 짙어졌다.

“회장님, 이제 바둑 친구분들이랑 먼저 약속도 잡으시고, 승패에 따라 기분도 오르내리시잖아요.”

“흥미랑 활력이 차근차근 돌아오고 있다는 뜻이에요. 불안 증세가 아주 눈에 띄게 줄고 좋아지신 거예요.”

아림은 핵심 내용을 기록하며 따뜻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다만 말씀하신 것처럼 밤에 이따금 잠들기 어려운 건, 주무시기 전 준비 과정을 조금 바꿔 보시면 좋겠어요.”

“이를테면 주무시기 전에 자꾸 생각이 많아지시니까, 한 시간 전엔 핸드폰을 무음으로 돌려 두시고요. 자리에 누워서 심호흡을 몇 번 하면서, 몸을 천천히 풀어주시는 거예요.”

“잔잔한 음악을 틀어 두시는 것도 좋아요. 소리는 낮게, 배경음악처럼요. 주의를 다른 데로 돌려주거든요. 이런 방법들이 잠드는 데 한결 도움이 될 거예요.”

권하균은 귀 기울여 듣다 눈에 웃음을 담았다.

“그러니 내가 최 원장만 믿지. 올 때마다 이 늙은이한테 쓸모 있는 방도를 꼭 일러주니 말이야. 속이나 뒤집는 우리 집 못난 손자 놈이랑은 다르지!”

말이 끝나자마자 김대철이 공손히 다가왔다.

“회장님, 박 대표가 오셨습니다. 도련님과 사업 이야기를 하신답니다.”

“응? 박씨네 그 녀석이?”

권하균이 미간을 찌푸리며 목소리를 낮췄다.

“그래서 우리집 그 녀석은? 사람을 집으로 불러 놓고, 저는 왜 아직 코빼기도 안 보여?”

“방금 도련님께 연락드렸더니, 지금 오는 길이라 곧 도착하신답니다.”

권하균은 콧방귀를 뀌더니, 결국 물러섰다.

“됐다, 들어오시라고 해라.”

권하균은 고개를 들어 아림을 보았다. 눈에는 웃음기가 스쳤다.

‘오늘 그 녀석이 들어오는 타이밍 하나는 기가 막히는군.’

‘마침 최 원장도 있으니, 둘을 인사시키기 딱 좋지.’

아림의 상담도 거의 얼추 마무리된 참이라, 손님이 온다는 말에 아림은 곧장 녹음기를 챙겼다. 마지막 안내만 하고 자리에서 물러날 생각이었다.

그때 김대철이 돌아왔다. 뒤따라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이헌이었다.

이헌은 키가 크고 자세가 곧았다.

단정한 얼굴에는 차분하고 부드러운 기품이 어려 있었다.

정장 차림에 손엔 검은 서류 가방.

아림으로선 좀처럼 본 적 없는, 이헌의 일하는 모습이었다.

이헌의 시선이 아림을 스치듯 지나간 것 같았다.

‘내가 둔했네. 박 대표라기에... 왜 박이헌 생각을 못 했지?’

“회장님, 권 대표님이 안 계시면 저도 오늘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이헌이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 못난 그 손자 놈도 곧 온다니, 얘기는 마저 하고 가시게.”

권하균이 들고 있던 지팡이로 바닥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아림은 이헌을 흘끗 보았다.

짙은 검은 정장 안에 흰 셔츠, 손목에는 검은 염주 팔찌 하나.

단정하면서도 어딘가 엄숙한 분위기였다.

아림의 시선이 이헌에게 오래 머무는 걸 알아챈 권하균의 미간이 슬쩍 좁혀졌다.

“최 원장, 두 사람 아는 사이인가?”

‘박씨네 녀석은 예로부터 여자 복 하나는 우리 손주 놈보다 좋단 말이지.’

두 사람의 대답이 한꺼번에 겹쳤다.

“예전에 알던 사이입니다.”

“잘 모릅니다.”

권하균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아림은 속으로 화가 났다. 이헌과 얽힌 과거를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회장님, 저랑 박 대표님은 잘 모르는 사이입니다.”

옆으로 늘어뜨린 이헌의 손이 저도 모르게 움켜쥐어졌다. 눈에서 이름 모를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부부로 지낸 그 1년 동안, 아림은 늘 애정 어린 눈으로 이헌을 바라보았다.

이헌이 일에 치여 위 통증을 호소할 때면 직접 죽을 끓여 먹이고 밤새 보살폈다.

아림은 시댁 식구들까지 정성껏 챙겼고, 남편의 옷가지 하나까지 다 제 손으로 매만졌다.

그 모든 시간이 이제는 고작 ‘모르는 사이’라는 말로 결론 내려졌다.

이헌은 결국 반박했다.

“원장님과는 구면입니다. 워낙 귀하신 분이라 기억해야 할 사람도 많으신 모양인데, 저 같은 옛 지인은 기억에도 없으신가 봅니다.”

“최아림 씨?”

뒤이어 문가에서 다른 남자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권 대표님?”

아림은 멈칫했다.

이제 그녀도 모를 수 없었다. 자신이 공들여 관리해 온 VIP 내담자가 권창현의 할아버지일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이놈아, 이제야 들어오냐!”

휠체어를 몰아 다가온 권하균이 이 광경을 눈에 담으며, 입가에 웃음을 띠었다.

‘창현이 최 원장과 아는 사이였다니.’

‘이게 무슨 뜻이겠어? 둘이 연분이 있다는 뜻 아닌가!’

“할아버지, 손님도 계시는데 제 체면 좀 세워주시면 안 됩니까?”

창현이 난처하게 웃었다.

“허허, 손님은 무슨. 최 원장이 어디 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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