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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Penulis: 수박빙수
뒤에는 한눈에 봐도 값비싼 한정판 마이바흐 한 대가 서 있었다.

기사가 먼저 내려 차를 살폈다.

아림도 먹먹해진 가슴을 문지르며 문을 열고 내렸다. 상대는 정중했다.

상태를 확인한 뒤, 아림이 먼저 차선을 바꾸며 끼어든 부분이 있으니 사진을 찍어 두고 보험사와 경찰이 과실을 확인할 때까지 기다리자고 했다.

아림은 시간을 확인했다. 미간이 깊게 좁혀졌지만, 어쩔 수 없이 길가에서 기다렸다.

무심코 마이바흐 뒷좌석을 스치듯 보았을 때, 한 남자의 옆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묘하게 낯이 익었다.

아림은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비서에게 메신저로 상황을 간단히 설명하고 업무를 배정했다.

집중하고 있던 때, 맑고 좋은 우디 향기가 코끝에 닿았다.

이어 뼈마디가 반듯한 손이 시야 안으로 들어왔다.

손에는 금박이 박힌 명함이 들려 있었다.

“최아림 씨, 오랜만이에요.”

아림은 놀라 고개를 들었다.

곁에 서 있던 기사가 언제 바뀌었는지, 그 자리에는 다른 남자가 서 있었다.

남자는 짙은 붉은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 셔츠 깃은 느슨하게 풀려 있었고, 위로 살짝 올라간 눈꼬리에는 장난스럽고 여유로운 분위기가 있었다.

높은 콧대와 예쁜 입술 선은 지적이면서도 귀한 느낌을 줬다.

영리하고 사람을 홀리는 여우 같은 남자였다.

아림은 명함을 훑었다. 잠시 뒤에 이 사람에 관한 기억이 떠올랐다.

권창현. 금령시 재벌가 권씨 집안의 외아들이자, 현재 HG그룹 CEO.

몇 년 전 아림이 아버지 최태성을 대신하여 참석한 경매장에서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권창현은 마음에 드는 물건을 보면 값을 따지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였다. 잊고 싶어도 잊기 어려운 인물이었다.

다만 권씨 집안과 박씨 집안은 오랜 경쟁 관계였다.

권창현과 박이헌도 늘 사이가 좋지 않았다.

최씨 집안은 박씨 집안과 가까웠으니, 자연히 권씨 집안과는 거리를 두었다.

이런 방식으로 다시 만날 줄은 몰랐다.

아림은 생각을 정리하고 명함을 받아 들며 예의 바르게 웃었다.

“권 대표님, 정말 죄송하게 됐네요.”

“제가 뒤에서 받았으니 전적으로 제 과실입니다. 많이 놀라셨죠.”

창현은 신사답게 짧은 악수만 하고 아림과의 거리를 벌렸다.

“사과의 뜻으로 제가 커피 한잔 대접해도 될까요?”

아림이 고개를 저어 거절하려는데, 비서의 전화가 다급하게 걸려 왔다.

수화기 너머가 온통 아수라장이었다.

[원장님, 큰일 났어요! 내담자분이 자극받고 이성을 잃어서 옥상으로 올라가셨어요. 뛰어내리겠다고 해요. 조 선생님도 자리에 안 계시는데, 어떡하죠?]

아림의 표정이 싹 바뀌었다.

“먼저 신고부터 하고 당장 매뉴얼대로 안전 조치해요. 사람들 대피시키고. 나는 바로 갈게요!”

하지만 이곳은 관광지 근처라 차가 여전히 꼼짝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고가도로 위라 다른 교통편으로 갈아탈 방법도 전혀 없었다.

아림은 어금니를 꽉 물었다. 차라리 뛰어갈 생각을 하던 때, 누군가 아림의 품에 차가운 헬멧 하나를 불쑥 안겼다.

그리고 얼떨떨해 돌아보니, 창현의 기사가 마이바흐에서 접이식 오토바이를 꺼내고 있었다.

권창현이 옆에 서서 아림을 보았다.

“탈 줄 압니까?”

아림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창현이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괜찮으시다면, 제가 모셔다드리죠.”

“그럼 신세 좀 지겠습니다, 권 대표님.”

상황이 급했다. 예의를 따질 때가 아니었다.

창현은 헬멧을 쓰고 오토바이에 올라 손을 내밀었다.

아림은 종종걸음으로 다가가 그 손을 잡고, 힘을 빌려 뒷자리에 올랐다.

망설일 틈도 없이 오토바이는 굉음을 내지르며 쏜살같이 내달렸다.

무서운 속도였다. 바람이 귓가에서 쉴 새 없이 울부짖고, 도시의 건물들이 뒤로 밀려났다.

가슴이 죄어든 아림은 자신도 모르게 두 눈을 질끈 감고 창현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얇은 옷감 너머로 아림의 체온이 전해지자 창현의 몸이 살짝 굳었다.

스로틀을 쥔 손에도 무심코 힘이 들어갔다.

한참을 내달린 끝에 급제동과 함께 오토바이가 병원 건물 앞에 멈췄다.

건물 아래에는 이미 사람들이 잔뜩 몰려 있었다.

눈에 띄는 통제선이 둘러쳐지고, 경찰과 소방대원이 역할을 나눠 인파를 대피시키고 에어매트를 설치하고 있었다.

아림은 오토바이에서 내리자마자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다리에도 힘이 풀렸다.

곧바로 다급하게 헬멧을 벗어 던지고, 한쪽으로 가 헛구역질을 했다.

그 모습에 창현이 미간을 좁히며 헬멧을 벗고 다가왔다.

“미안합니다. 괜찮습니까?”

상황이 급해 미처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는 내내 속도를 줄이지 않았는데, 아림이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

창현은 손을 뻗어 아림의 몸을 허공에서 받쳐 주려 했다.

하지만 길고 단정한 손끝이 아림의 등에 닿기 직전, 아림은 이미 창백한 얼굴로 허리를 곧게 세웠다.

“전 괜찮습니다. 오늘 일은 감사합니다. 권 대표님,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아림은 아주 빠르게 말하고 곧장 건물 회전문을 향해 뛰어갔다.

오는 길에 비서가 내담자의 대략적인 상황을 보내 두었다.

지금 내담자는 B동 12층 옥상에 있었다.

구조 준비는 갖춰졌지만 상황이 위급해서 아림은 조금의 시간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아림이 급히 사라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창현의 눈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한 미소가 입가에 걸렸다.

...

옥상의 일이 마무리됐을 땐, 이미 해 질 녘이었다.

이람의 이마와 등이 땀으로 얇게 젖어 있었다.

그녀는 휴게실로 돌아가 여분의 흰 셔츠로 갈아입고, 내담자 차트를 확인하려던 때, 핸드폰이 짧게 울렸다.

메시지 알림이었다.

저장된 이름은 ‘최지희’였다.

[언니, 내일 커피 한잔할 시간 있어요? 시간이랑 장소는 언니가 정해요.]

아림의 엄지가 화면 위에서 잠시 멈췄다.

지희와 이헌이 해외로 떠난 뒤, 두 사람은 아주 오래 단둘이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마지막은 5년 전이었다.

[좋아. 시간이랑 장소는 네가 정해.]

전송을 누른 아림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몸을 돌려 내담자 차트를 꺼내 들었다.

...

다음 날, 병원 1층 카페.

지희는 먼저 도착해 있었다.

창가 자리에 앉은 지희는 명품 브랜드의 맞춤 의상을 입고 있었다.

정교하게 재단된 짧은 재킷, 옷깃에는 작고 섬세한 동백꽃 브로치가 달려 있었다.

화장기 없이 나온 아림과 달리, 지희는 풀 메이크업에 높은 올림머리로 우아하고 단정해 보였다.

아림이 다가오자 지희는 곧장 웃으며 일어나 다정하게 인사를 건넸다.

“언니, 살이 많이 빠졌네요. 요즘 많이 바빴어요?”

아림은 자리에 앉았다. 표정은 차갑고 거리를 두고 있었다.

지희의 눈에 싸늘함이 스쳤다.

메뉴를 물은 뒤, 지희는 아림에게 아메리카노를 주문해 주고 자신은 라테를 시켰다.

“언니, 그때 저를 놓아준 것 정말 고마워요. 지금 저랑 이헌 오빠는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요. 오빠도 저한테 잘해 줘요.”

지희는 커피를 저으며 고개를 숙였다.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목소리에는 달콤한 행복이 가득했다.

“언니는 모르죠? 저 유빈이 낳을 때 아주 위험했거든요. 나중에 간호사가 그러는데, 오빠가 분만실 밖에서 5시간을 꼬박 애태우면서 한 발짝도 안 떠났대요.”

아림은 커피를 젓던 손을 멈췄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비록 오빠가 표현엔 서툴러도, 하는 일마다 사람을 안심시켜 줘요.”

지희가 고개를 들었다. 미소는 부드러웠다.

“언니, 제가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자랑하려는 게 아니에요. 다만... 오빠가 저한테 그랬거든요.”

“언니와 함께 살았던 그 1년... 사실은 꽤 힘들었다고요.”

쓰고 텁텁한 커피 맛이 목 안에 걸렸다.

아림의 얼굴에 잠시 모멸감이 스쳤지만, 그녀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언니도 알잖아요. 오빠가 책임감이 얼마나 강한 사람인지. 뭐든 혼자 짊어지려 하고요.”

“언니랑 살 때 내내 둘이 안 맞는다고 느꼈는데, 두 집안 사업이 걸려 있으니 차마 먼저 말을 못 꺼냈던 거예요.”

지희의 목소리에는 이헌을 향한 안쓰러움이 가득했다.

“최지희.”

아림은 커피잔을 내려놓고 차분히 지희를 바라보았다.

“우리 사이에 그렇게 풀어야 할 옛이야기가 그렇게 많진 않을 텐데. 할 말 있으면 돌리지 말고 바로 해.”

“언니, 제가 이런 얘길 꺼낸 건, 언니랑 오빠는 이미 지난 일이라는 걸 언니한테 말해 두고 싶어서예요. 언니도 얼른 좋은 짝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안 그러면 우리 관계... 앞으로 지내기가 좀 불편할 것 같아서요.”

지희의 ‘가면’을 벗어 던진 모습에 아림은 다시 스틱을 집어 커피를 저었다.

겉으로는 평온했지만, 가슴 한편은 욱신거렸다.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마.”

“나와 박 대표는 진작에 아무 사이도 아니야. 내가 짝을 찾든 못 찾든, 내 눈에 지금 박 대표는 그저 제부일 뿐이니까.”

그 대답을 듣고도 지희는 완전히 안심하지 못했다.

지희는 두려웠다. 아림이 아직 이헌을 잊지 못했을까 봐, 핑계를 만들어 이헌 곁에 남을까 봐.

그래도 지희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럼 다행이고요. 저야 당연히 언니 믿죠.”

그 뒤 지희는 이헌과 지내며 있었던 달콤한 일들을 몇 가지 더 늘어놓았다.

아림에게 아무 반응이 없는 걸 확인하고서야 일이 있다며 먼저 자리를 떴다.

아림은 한동안 혼자 앉아 있다가, 끝에 가서 다 식어 버린 아메리카노를 들어 단숨에 마셨다.

...

병원.

휴식 시간이었다.

아림이 돌아왔을 때, 엄준은 진료실에 앉아 독일어로 쓰인 학술지를 보고 있었다.

문소리를 들은 엄준이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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