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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作者: 달콤열매
유희가 돌아온 이유는 짐을 가져가기 위해서였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귀에 거슬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평소 농담 한마디도 하지 않던 동찬이 혜미 옆에 앉아서, 썰렁한 농담까지 해 가며 기분을 풀어주고 있었다.

“에취.”

강혜미가 가늘고 애교 섞인 목소리로 재채기를 했다.

“추워요?”

동찬은 바로 긴장한 표정이 됐다. 값비싼 재킷을 벗어 혜미의 어깨에 조심스럽게 걸쳐 줬다.

혜미가 고개를 들자 두 사람의 시선이 맞닿았다. 코끝이 닿을 듯 가까운 거리였다.

주변 공기가 잠깐 굳어 버린 듯 고요해졌다.

둘만 아는 듯한 끈적한 분위기가 말없이 번져 갔다.

유희는 현관에 서서 소리 없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내가 정말 눈이 멀었었네.’

동찬이 혜미를 지나치게 살피고 챙기는 모습을 그저 형이 세상을 떠난 뒤 느낀 책임감이라고만 생각했다.

사실 두 사람은 훨씬 전부터 선을 넘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동서?”

혜미는 유희를 보자 놀란 토끼처럼 어깨를 움츠렸다. 죄책감과 당황한 기색을 얼굴에 가득 담은 채 말을 더듬었다.

“오, 오해하지 마. 동찬이 그냥 내가 추울까 봐 걱정해 준 것뿐이야...”

‘걱정?’

유희는 속으로 비웃었다.

‘난방이 이렇게 잘되는 집에서 재채기 한 번 했다고 저 난리야?’

‘어젯밤 내가 얇은 옷만 걸친 채, 눈밭에서 얼어 의식까지 흐려졌을 때는 코빼기도 안 보이더니.’

‘됐어. 이제 아무 상관 없어.’

더는 두 사람을 보고 싶지 않았다. 유희는 말없이 거실을 가로질러 곧장 위층으로 올라갔다.

3년 동안 쌓인 물건은 많았지만 유희가 챙긴 짐은 캐리어 하나뿐이었다.

동찬이 준 결혼기념일 다이아몬드 목걸이, 생일마다 받은 한정판 가방, 기념일의 보존화, 연애할 때 쓴 편지와 둘만의 기념품까지 전부 쓰레기통에 넣었다.

‘사람부터 더러워졌는데 이런 걸 남겨 둬서 뭐 해. 보기만 해도 속이 뒤집힐 텐데.’

유희는 혼인관계증명서를 캐리어 안쪽에 넣고 지퍼를 닫았다. 막 몸을 일으키려던 때, 강한 어지럼증이 덮쳐 왔다.

비틀거리던 유희는 캐리어 손잡이를 꽉 붙잡고서야 겨우 몸을 세웠다.

‘역시 몸살이 났네.’

어젯밤 폭설 속에서 버틴 대가를 결국 단단히 치르는 모양이었다.

‘그 집으로 가기 전에 병원부터 들러야겠어.’

유희는 어지럼증과 몸살 기운을 억누르면서 캐리어를 끌고 나가려고 했다.

동찬의 큰 체구가 문 앞을 막고 있었다.

동찬은 캐리어를 확인하자 표정이 어두워졌다. 못마땅함과 나무라는 기색이 말투에 묻었다.

“밖에서 하룻밤 생각했으면 정신 좀 차렸을 줄 알았어.”

‘듣고 있자니 정말 우습네.’

유희가 겪은 모욕과 억울함 따위는 하룻밤 ‘생각할 시간’을 가지면 말끔히 사라져야 하는 일인 듯했다.

그 뒤에는 잘 길든 강아지처럼 꼬리를 흔들며 돌아와, 다시 다정하고 얌전한 최씨 집안의 며느리 역할을 해야 한다는 듯이.

“그래. 생각 정리했어.”

유희가 차갑게 웃었다.

“한번 더러워진 남자는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린 김밥이랑 다를 게 없더라고. 아깝다고 다시 주워 먹을 수도 없잖아.”

“버릴 건 미련 없이 버려야지. 네 형수랑 오래오래 잘 살아. 애도 축구팀 하나 꾸릴 만큼 낳고.”

“송유희!”

동찬이 날카롭게 제지하면서 표정이 굳어졌다.

“말했잖아. 형수님이 임신한 건 책임 때문이야. 집안을 위해서였어. 나랑 형수님 사이엔 네가 생각하는 그런 관계는 없어.”

“시험관 시술로 가진 아이야.”

동찬은 무거운 표정으로 설명했다. 그 말을 하면 모든 일이 합리적으로 들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래?”

유희가 비꼬았다.

“그럼 애가 태어나면 너를 ‘작은아버지’라고 불러? 아니면... ‘아빠’라고 불러?”

“꼭 그렇게 독하게 말해야 해? 내가 다 설명했잖아. 대체 뭘 더 바라는 건데?”

“설명? 네 설명으로 그 아이가 사라져? 없던 일이 돼? 네가 설명했다고 내가 왜 용서해야 하는데?”

유희는 동찬을 밀어내고 캐리어를 끌었다.

“네가 네 형수하고 아이를 갖기로 결정한 날, 우린 끝났어.”

“끝났다고?”

동찬이 유희를 거칠게 끌어당겼다. 큰 손으로 허리를 감싸 억지로 품 안에 가둔 채 말했다.

“화를 내도 돼. 나랑 싸워도 되고 소리를 질러도 돼. 하지만 끝내겠다는 말만은 하지 마.”

“송유희, 똑똑히 기억해. 넌 평생 내 아내야.”

‘아내?’

유희는 터무니없는 농담이라도 들은 듯 차갑게 웃었다.

“우리 혼인신고는 했고?”

동찬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제야 두 사람이 아직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이내 뭔가 알아차린 듯 나지막하게 웃었다.

“혼인신고를 해 주면 이번 일을 보상받았다고 생각하겠다는 거야?”

“좋아. 그건 해 줄게.”

“형수도 임신했으니 어머니도 더는 반대하지 않을 거야. 지금 바로 같이 신고하러 가자.”

동찬은 유희의 손을 잡았다. 목소리는 다정했지만 내용은 훈계에 가까웠다.

“대신... 신고까지 했으면 이제 철 좀 들고 조용히 살아. 집안도 잘 챙기고 형수님도 잘 돌보고.”

유희는 살면서 이렇게까지 역겨운 적이 없었다.

‘일이 이 지경이 됐는데도 혼인신고 한 번이면 다 덮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이 쓰레기와 강혜미가 만든 아이까지 계속 나보고 돌보라고 할 생각이고?’

‘미쳐도 제대로 미쳤네.’

유희의 목소리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잠깐! 대낮인데 아직도 꿈꾸고 있어? 나 이미 다른 사람이랑 혼인신고 했어.”

“서방님!”

바로 그때 혜미가 문을 짚으면서 배를 움켜쥐었다. 괴로운 표정이었다.

“배가 아파요... 병원에 데려가 줄 수 있어요?”

동찬의 신경은 곧바로 혜미에게 쏠렸다. 유희를 놓고 빠르게 다가가서 혜미의 몸을 부축했다.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부드럽게 달랬다.

“겁먹지 마세요. 바로 병원으로 가요.”

“유희야, 혼인신고 얘기는 다녀와서 하자.”

혜미는 힘없이 동찬에게 기대었다.

“다리에 힘이 없는 것 같아요... 서방님...”

동찬은 망설이지 않고 혜미를 안아 들었다. 빠르지만 흔들림 없는 걸음으로 아래층으로 향했다.

혜미는 동찬의 품에 얌전히 안긴 채, 넓은 어깨 너머로 그 자리에 서 있는 유희를 똑바로 바라봤다.

우쭐함이 가득한 눈에는 악의적인 도발을 숨기지도 않았다.

유희는 헛웃음만 나왔다. 혜미는 이제 연기할 생각조차 없는 모양이었다.

두 사람이 엘리베이터 안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유희는 가슴 한쪽의 쓰라림을 눌렀다. 그리고 캐리어 손잡이를 단단히 잡고 최씨 집안 저택을 떠났다.

...

병원.

검사를 모두 마쳤을 때 유희의 체온은 위험할 정도로 높았다. 온몸은 점점 무거워졌고 의식도 흐릿해지려고 했다.

“송유희 님, 지금 맞으실 수액에 진정 성분이 들어가 있어서 깊이 주무실 수 있어요. 보호자가 옆에 있어야 합니다. 같이 오신 보호자분은 어디 계세요?”

‘보호자?’

유희는 갈라진 입술 끝을 힘없이 당겼다. 손가락은 무의식적으로 핸드폰 잠금을 풀었다.

화면을 켜자 몇 분 전 혜미가 올린 SNS 게시물이 보였다.

사진 속 병원 침대에 앉은 혜미는 한 남자의 어깨에 기대어 있었다. 편안하고 행복한 표정이었다.

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진짜 조금, 아주 조금 불편한 것뿐인데 누군가는 괜히 호들갑을 떨어서 입원까지 시키네.]

[심지어 회사에서 백 명 넘게 모인 회의도 취소하고 하루 종일 옆에서 꼼짝도 안 하고. 나를 너무 소중하게 생각해 줘도 고민이라니까...]

남자의 옆모습만 흐릿하게 보였지만 유희는 곧바로 알아봤다.

동찬이었다.

유희의 손끝이 얼음처럼 싸늘하게 식었다. 핸드폰을 제대로 쥐기도 어려웠고 온몸이 가늘게 떨렸다.

유희는 그 사진을 오래 바라봤다. 손끝의 떨림이 멎고 눈에 남아 있던 마지막 온기까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간호사님... 죄송하지만 간병인 한 분 부탁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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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끝난 사랑의 다음 페이지   제30화

    동찬이 예식장 밖으로 밀려났을 때, 마침 유정란과 혜미가 달려왔다.유정란은 넋이 빠진 사람처럼 창백한 동찬을 보자 속이 상하면서도 화가 치밀었다. 닫힌 예식장 문을 향해 거침없이 욕을 퍼부었다.“송유희 저 못된 것! 어떻게 감히 이럴 수가 있어?” “네가 최세호하고 원수처럼 지내는 걸 뻔히 알면서 그 사람과 결혼해? 일부러 네 가슴에 칼을 꽂으려는 거잖아.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독해!”혜미는 속으로는 샴페인이라도 터뜨리고 싶을 만큼 기뻤다.겉으로는 걱정과 불안을 가득 담은 표정을 만들고 동찬의 멀쩡한 쪽 팔을 부드럽게 붙잡았다.“진정해요. 이미 벌어진 일이잖아요... 우리 쪽도 시작 시간이 다 돼 가요. 하객들도 전부 기다리고 있는데, 이대로 늦으면 아이를 두고도 뒷말이 나올 거예요.”“그러니까 일단 돌아가서 급한 일부터 마무리해요. 나머지는 나중에 생각해도 되잖아요.”혜미는 동찬을 데리고 돌아가려 했다.동찬은 팔을 거칠게 빼냈다.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던 혜미가, 상처받고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동찬을 바라봤다.동찬은 혜미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텅 빈 눈이 혜미 품의 아이에게 내려갔다.예전의 다정함과 기대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잘못의 시작이 된 성가신 존재를 보는 듯 차갑고 낯선 눈이었다.“형수님, 제가 잘못했어요.”잔뜩 갈라진 동찬의 목소리는 후회로 거칠었다. “제가... 형수님하고 아이를 만들면 안 됐어요.”그는 이제야 유희가 아이의 존재를 얼마나 견디기 힘들어했는지 뼈저리게 느꼈다.혜미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이를 급히 품에 더 세게 안고 울먹였다.“어떻게 그런 말을 해요? 당신 친아들이에요!”“지금 마음이 무너진 건 알아요. 그래도 정신 차려야 해요. 우리 아이 앞날부터 생각해야 하잖아요!”유정란도 상황을 알아차리고 급히 거들었다. “맞아. 아이가 최씨 집안의 대를 이을 사람이고 제일 중요해. 다른 일은 다 뒤로 미뤄야지.”“송유희 때문에 정해 둔 발표 시간까지 놓쳐서, 아이한테 평생 말이 나오게

  • 끝난 사랑의 다음 페이지   제29화

    세호의 눈이 가늘어졌다. 차갑게 가라앉은 분위기가 주변 공기를 단숨에 바꿨다.유희 앞으로 다가간 동찬이 팔을 잡으려고 했다. 흥분한 탓에 목소리까지 달라져 있었다.“장난이 너무 지나쳤어! 유희야, 이건 선을 넘었어. 당장 나랑 돌아가!”유희는 한 걸음 물러나면서 동찬의 손을 피했다. 눈에는 아무 감정도 없었다.“장난? 여기까지 와서도 내가 너 상대로 장난치는 것 같아?”“이게 장난이 아니면 뭔데? 결혼은 장난감이 아니야. 형도 네가 나를 자극하려고 이용할 사람이 아니고. 정신 차려.”동찬은 견디기 힘들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넌 내 아내야. 우리 이미 결혼식도 했잖아!”“법적으로는 아무 관계도 아니야.”유희는 차분하지만 잔인할 만큼 분명하게 짚었다. “그 눈 오던 밤, 네 어머니가 나를 집 밖으로 내쫓는 걸 네가 가만히 보고 있던 때부터 우리 사이는 끝났어.”“그건... 그때는 어쩔 수 없었어. 나는 널 사랑해. 내 입장도 이해해 줘야 하잖아.”동찬은 다급하게 설명하려 했지만 입에서 나오는 말은 스스로 듣기에도 힘이 없었다.“미안하지만.”유희는 더 이상 동찬을 보지 않았다. 세호 쪽으로 몸을 돌려 팔짱을 살며시 끼었다. “나는 이미 세호 씨의 아내야.”“유희야, 여보... 그러지 마.”동찬이 또 손을 뻗었지만 최세호가 앞으로 나서며 가볍게 쳐냈다.세호의 시선이 서늘한 칼날처럼 동찬의 얼굴을 훑었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는 감히 거스를 수 없는 위압감이 서려 있었다.“동찬아. 내 결혼식에 들어와서 내 아내를 데려가겠다고? 예의가 너무 없네.”세호는 짧게 말을 멈췄다가 한 글자씩 또렷하게 덧붙였다. “호칭도 고쳐. 이제 유희한테는 형수님이라고 불러.”“최세호!”동찬의 눈이 붉게 충혈됐다. “유희가 내 아내였다는 걸 알면서 왜 결혼해? 사촌동생의 여자였던 사람을 형이 데려가 놓고 울남시 사람들이 비웃는 게 두렵지도 않아?”“사촌동생의 여자를 빼앗았다고?” 세호가 짧게 비웃었다. “그 말은 네가 할 처지가 아닌 것

  • 끝난 사랑의 다음 페이지   제28화

    동찬은 바로 고개를 세게 흔들어 터무니없는 생각을 밀어냈다.‘아니야. 그럴 리 없어. 저 사람은 지예라야.’‘오늘은 최세호와 지예라의 결혼식이잖아.’자신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저 신부를 유희로 착각할 수 있을까?’“동찬아! 시작 시간 다 됐는데 문 앞에서 뭐 하고 있어?”유정란이 연회장 안에서 나와 못마땅하게 재촉했다. “애도 못 낳는 게 자존심 세우고 안 오겠다는데 잘됐지. 누가 그런 애한테 내 귀한 손자의 엄마 노릇 시키고 싶대? 재수 없어.”동찬은 미간을 찌푸린 채 고집스럽게 말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요. 올 거예요.”유희는 마음이 약했다. 자신이 알던 유희이라면 정말 끝까지 외면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믿었다.아이를 안고 넋이 나간 동찬을 바라보면서 혜미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아무도 보지 않는 틈을 타 아이의 여린 허벅지를 손가락으로 세게 꼬집었다.“으앙!”아기는 갑자기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놀란 유정란이 아이를 얼른 받아 안았다. “아이고, 우리 귀한 손자가 왜 이렇게 울어? 괜찮아, 괜찮아. 할머니가 여기 있잖아.”유정란이 동찬을 원망스럽게 쳐다봤다. “봐, 아이도 울잖아. 정해 둔 시간에 아버지와 후계자 발표를 해야 좋은 뜻으로 시작할 수 있다는데, 시간을 놓치면 애한테 좋을 게 뭐가 있어.”“동찬아, 유희 하나 때문에 네 아들 앞날까지 망칠 거야?”동찬은 유정란 품에서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우는 아이와 여전히 아무 답도 없는 핸드폰을 번갈아 봤다. 마음속에서 심한 갈등이 일었다.결국 힘없이 한숨을 내쉬고 마지막 메시지를 적어 보냈다. ‘유희야, 이번에는 네가 정말 너무했어.’동찬은 유정란에게 말했다. “가요. 들어가죠.”두 사람이 연회장 안으로 들어서려던 순간, 말끔한 정장 차림의 여성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시원시원한 분위기의 여자는 고급스러운 선물 상자를 들고 있었다.여자가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아직 시작 안 했지? 늦은 거 아니지? 동찬아, 미란 이모, 축하해요. 조카 선

  • 끝난 사랑의 다음 페이지   제27화

    유희는 눈썹을 살짝 올리면서 전화를 받았다.혜미가 일부러 높인 목소리로 자랑하듯 말했다.[기사 봤어? 오늘 울남시 최고급 호텔인 리안호텔에서 우리 아들 장손 공식 발표 연회가 열려.][최동찬이 울남시에서 제일 크고 화려하게 하겠대. 이름 좀 있다는 사람은 전부 올 거야.][오늘부터 모두가 알게 되겠지. 내 아들이 최동찬의 정식 장남이고 앞으로 후계자가 될 아이라는 걸.] [나하고 최동찬 사이도 누구도 못 끊어. 우리는 앞으로도 가장 가까운 가족으로 살 거야.]혜미의 도발을 들으며 유희는 거울 속 웨딩드레스 차림의 자신을 바라봤다. 어이없을 만큼 우스웠다.“오늘 같은 날 굳이 나를 건드리고 싶은 거야?”유희의 붉은 입술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최동찬은 내가 그 연회에 오기를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텐데... 내가 지금 바로 가면 행사가 더 재미있어지지 않을까?”혜미가 발끈했다. [네가 감히!]유희는 조용히 웃었다.“네가 불편해지는 거라면 나는 기꺼이 갈 수 있는데...”“내가 안 가길 원하면 핸드폰에 대고 세 번 크게 말해. ‘나랑 최동찬은 형수와 시동생 사이를 넘었다.’ 충분히 크게 말하면 생각해 볼게.”[송유희, 너!]혜미의 숨이 거칠어졌다. 이를 가는 소리까지 들릴 듯했다.유희는 느긋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셋 셀 동안 안 하면 바로 갈 거야. 하나, 둘, 셋...”[나랑 최동찬은 형수와 시동생 사이를 넘었다! 나랑 최동찬은 형수와 시동생 사이를 넘었다! 나랑 최동찬은 형수와 시동생 사이를 넘었다!]전화기 너머 혜미의 목소리가 거의 무너졌다. [됐지?]유희가 웃었다. “녹음했어.”[송유희!!!]유희는 미련 없이 전화를 끊고 녹음 파일을 저장했다. 통쾌하고 차가운 미소가 입가에 번졌다.옆에 있던 오성재가 웃으며 조용히 알렸다. “사모님, 결혼식 시작 시간이 가까워졌습니다. 이제 이동하셔야 합니다.”문이 열리고 같은 제복을 입은 직원 네 명이 공손하게 들어왔다. 무겁고 화려한 드레스 자락을 조심스럽게

  • 끝난 사랑의 다음 페이지   제26화

    말을 마치자 동찬의 핸드폰이 연달아 진동했다.친한 지인들이 모인 단톡방이었다.[동찬아, 큰 소식! 최세호가 그렇게 못 잊던 첫사랑 지예라가 돌아왔대!][내가 뭐랬어. 예전에 최세호가 지예라 때문에 목숨까지 내놓을 뻔했잖아.] [지예라가 떠난 뒤에는 여자라면 근처에 오는 것도 싫어하더니, 갑자기 결혼한다고 하면 신부는 뻔하지. 내가 장담하는데 지예라가 맞아.][오히려 잘됐네. 최세호는 몇 년 동안 약점 하나 없이 너를 누르고 최씨 집안에서 영향력도 계속 키웠잖아.] [이제 유일한 약점이 돌아왔으니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 정신 바짝 차리고 기회 잡아.]동찬은 화면의 글자를 하나하나 뚫어지게 읽었다. 잔뜩 당겨 놓은 고무줄 같던 긴장감이 툭 끊어지듯 풀렸다.‘지예라였구나.’‘그래. 그 일을 왜 잊고 있었지.’‘최세호처럼 냉정한 사람이 결혼까지 받아들일 상대라면 지예라 말고 누가 있겠어?’‘유희는 역시 지예라 대신 드레스를 입어 본 것뿐이야.’동찬은 자신이 너무 흥분해 엉뚱한 생각까지 했다고 여겼다.길게 숨을 내쉬자 안도한 미소가 얼굴에 떠올랐다.비서가 옆에서 조심스럽게 확인했다. “대표님, 그럼 조사 건은...”“됐어.” 동찬이 손을 내저었다. 목소리도 한결 가벼워졌다. “내가 오해한 거야. 더 알아볼 필요 없어.”혜미는 갑자기 편안해진 동찬을 보자, 속에서 질투가 더 짙어지는 것을 느꼈다.아이까지 낳았는데도 동찬은 여전히 유희에게 이렇게 흔들렸다. 이대로 두면 아들까지 동찬을 붙잡아 두지 못할 것 같았다.혜미는 화장실에 간다는 핑계를 대고 다시 김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제 자기 문제를 치워 줄 사람은 김민뿐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이번에도 들려온 것은 전원이 꺼져 있다는 기계적인 안내음이었다.“젠장.”혜미는 낮게 욕하며 손바닥에 손톱이 박히도록 주먹을 쥐었다. 좋지 않은 예감이 독사처럼 마음을 휘감았다....결혼식 당일.리안호텔 신부 대기실.커다란 통유리를 지난 햇빛이 방 안을 따뜻하고 환하게 채웠다.유희

  • 끝난 사랑의 다음 페이지   제25화

    “너... 어떻게 내 다친 팔을...” 동찬의 목소리가 떨렸다.유희는 몇 걸음 뒤로 물러나 거리를 만들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싸늘했다. “내가 최세호와 결혼한다는 걸 못 믿겠어? 그럼 직접 물어봐.”동찬의 팔은 여전히 뼛속까지 쑤셨고 피가 손등을 타고 흘렀다.눈앞의 유희는 동찬이 알던 사람과 너무 달라져 있었다. 혼란과 상처가 뒤엉킨 채 동찬이 답답하다는 듯 물었다.“네가 대체 왜 이렇게 변했어? 형수가 내 아이 하나 낳아 준 게 전부잖아. 왜 끝도 없이 일을 키우는 거야? 언제까지 이럴 생각이야?”자기 말만 옳다고 믿는 동찬을 보고 있으니 유희는 지긋지긋했다.세호 쪽을 바라보니 통화가 끝난 듯 핸드폰을 내리고 있었다.‘잘됐네.’세호가 직접 말해 준다면 동찬도 더는 자기 멋대로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여기서 확실히 끝낼 수 있었다.따르릉-그때 동찬의 전화가 다급하게 울렸다.화면도 보지 않고 끊었지만 벨소리가 다시 이어졌다.동찬은 짜증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뭔데?”혜미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기가 이상해요. 설사하고 토하고 열이 41도까지 올랐어요! 왜 병원에 없는 거예요? 빨리 와요!]혜미의 목소리는 다급하게 떨리고 있었다.“지금 바로 갈게요!”전화를 끊은 동찬은 습관처럼 유희에게 손을 뻗었다. “너도 일단 나랑 병원 가.”유희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한 번만 더 나한테 손을 대면, 이번에는 그 팔 진짜 다시 부러뜨려 줄 테니까.”동찬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깁스 안쪽의 통증이 유희가 빈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려 줬다.동찬은 상처받았다는 표정으로 유희를 바라보다 결국 이를 악물었다.“유희야, 너 정말 너무 제멋대로야.”그 말을 남기고 동찬은 망설이지 않고 돌아섰다. 병원으로 가기 위해 빠르게 매장을 떠났다.유희는 다급하게 멀어지는 동찬의 뒷모습을 보며 싸늘하게 웃었다.바로 전까지 세호가 자신에게 화풀이할까 걱정된다고 떠들더니, 아이에게 일이 생겼다는 말 한마디에 유희는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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