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나는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엄마... 제발 시후 씨한테 더 이상 부담 주지 마요...”이 말이 끝나자, 막 사당을 나서던 릴리의 걸음이 순간 멈췄다.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또 은시후? 한국에 온 지 이틀밖에 안 됐는데, 하루도 빠짐없이 시후라는 이름을 듣는구나. 설마... 이게 인연이라는 걸까? 아까 그 무례한 아줌마의 사위라는 시후가… 혹시 내가 찾고 있는 LCS 그룹의 은시후?’그녀는 본능적으로 유나를 돌아보며 생각했다. ‘저 젊은 여자는 나이가 은시후 씨와 비슷해 보이고, 외모나 분위기도 꽤 괜찮아 보여... 사실 시후라는 이름 자체가 흔한 것도 아닌데, 이 나이대의 사람이라면 더더욱 드물겠지. 설마... 그 은시후라는 사람이, 이미 결혼한 건가? 그리고 부인이 바로 이 여자? 뭐, 이 여성의 외모나 분위기는 확실히 평범하지 않지만... 저 여성의 엄마는 정말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군... 그동안 세상에서 별의별 사람을 다 봤지만, 저렇게 막무가내인 아줌마는 진짜 처음이야... 대부분의 무식한 아줌마라도 불당에선 입을 다물고 조심하려고 하는데, 저 사람은 두려움이 없네, 정말... 은시후 씨는 신분도 높고 실력은 말할 것도 없이 탁월한 인물인데, 왜 이렇게 무식하고 천박한 장모가 있는 거지? 정말 이해할 수 없군...’한편, 유나는 엄마 윤우선이 시후에게 풍수를 보겠다는 걸 말리느라 바빴다.윤우선은 억울하다는 듯 당당히 말했다. “시후는 우리 집 사위잖아! 다른 사람들은 다 풍수를 봐주면서, 나한텐 안 해줄 이유가 어딨어?”유나는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엄마, 아까는 은 서방에게 이 일 말하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그리고 풍수라는 게 좀 더 거시적인 문제를 다루는 거지, 라이브 방송 인기도나 자동차 연비 같은 세세한 걸 해결해 주는 건 아니에요. 풍수를 본다고 해서 차가 기름을 덜 먹는 거 아니잖아요...”윤우선은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도 맞네... 에휴 됐다. 어쨌든 부처님께 할 얘긴 다 했으
절을 하던 윤우선은 딸의 말에 갑자기 끊겨 약간 불쾌한 듯 말한다. “아유, 나 지금 부처님께 기도하고 있는데, 왜 자꾸 끼어들어, 아휴 정말...”유나는 목소리를 낮추며 조심스럽게 말린다. “엄마, 부처님 앞에서 그런 말 하시면 안 돼요... 그냥 돈을 벌고 싶으면 그 얘기만 하시면 되죠. 정말 부처님이 계시다면 알아서 소원을 들어주실 텐데, 왜 거기서 큰 어머니 얘기까지 하세요... 설마 엄마 지금, 부처님께 다른 사람에게 벌을 주라고 기도하는 거예요?”윤우선은 매우 진지한 얼굴로 대답한다. “맞아! 나는 부처님이 꼭 그 인간을 혼 좀 내주셨으면 좋겠어! 전 세계에 80억 넘게 살아도 돈 벌 사람은 다 벌어도, 홍라연 그건 안 돼! 절대!” 그러더니 또 단호하게 덧붙인다. “원래 옥황상제가 이 동네 담당인데, 홍라연이 갑자기 그렇게 부자가 된 건, 다 옥황상제가 일을 제대로 안 한 탓이야. 그러니까 정신을 못 차리면 부처님이 좀 지적을 해주셔야지!”유나는 이 황당한 논리에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말했다. “사람은 선하게 살아야 복을 받아요. 엄마처럼 남 잘되는 걸 싫어하고 미워하는 마음은 올바르지 않은 마음이라 부처님이 도와주실 리가 없어요...”그러자 윤우선이 발끈하며 반박했다. “나 남 잘 되는 거 싫어하는 사람 아냐! 홍라연 그 인간만 싫을 뿐이지! 그 여자는 진짜 못됐다고!”유나는 조용히 말렸다. “못됐건 말건 그건 엄마 사정이잖아요... 부처님 앞에 와서 그 얘기를 왜 해요...”윤우선은 입을 삐죽이며 말한다. “세상에서 나쁜 사람을 만나면 112에 신고하잖아? 나는 그냥 부처님께 하소연한 건데 그게 뭐 어때서? 부처님이 경찰보다 못 하단 말이야? 이런 것도 구분 못하면 부처님 자격이 없는 거지!”유나는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그 옆에서 기도하던 릴리는 이 말을 듣고 어안이 벙벙했다. 세상에서 많은 일들을 겪어 본 그녀지만, 윤우선처럼 무지하고 몰상식한 사람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절 안에서, 부처님
릴리는 점술에도 능할 뿐만 아니라, 불교와 도가에 대해서도 존중하는 편이었다. 그런 만큼 유서 깊은 고찰인 관음사에 오자 마음속 깊이 경외심이 생겼다.그 무렵, 릴리가 관악산 중봉에 도착했을 때, 윤우선과 유나도 막 관음사에 도착한 참이었다. 사실 두 사람은 이미 차를 주차해 두었지만, 윤우선의 다리가 불편하여 유나의 부축과 지팡이에 의지해 힘겹게 올라온 끝에야 관음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평일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관음사를 찾는 참배객과 관광객은 많지 않았다.릴리는 천천히 대웅전 앞에 다다르자 가볍게 합장하고, 마음을 가다듬은 뒤 법당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가방에서 미리 준비해온 침향 향을 꺼내 불을 붙이고 자리에 섰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 앉아 이마를 두 손에 살짝 기댄 채 속으로 조용히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조상님 제가 이렇게 절을 찾아 인사드립니다… 지금 임씨 가문의 정통 후손은 저 하나뿐이며, 수백 년간 임씨 가문은 무수한 고난을 겪어왔습니다... 이렇게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것만 해도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고 하더군요. 아버지와 선조들이 임씨 가문을 번창시키지 못한 것을 부디 나무라지 말아 주세요......”그렇게 말하다가 그녀는 문득 멈추더니, 조용히 말을 이었다. “어쩌면, 그분들도 이미 하늘에서 두 분을 만나 설명 드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이 말을 마친 릴리의 눈가엔 금세 눈물이 고였다.600년의 세월 동안 릴리의 조상인 임씨 가문의 조상들은 정말 험난한 길을 걸어왔다. 나라가 기울고, 정세가 요동칠 때마다, 수많은 명문 귀족들이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가문이 단절되었지만, 임씨 가문은 기적처럼 맥을 이어왔다. 릴리는 그래서 자신의 집안이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것이 매우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잠시 묵념한 후, 그녀는 애써 눈물을 삼킨 뒤 자리에서 일어나 삼성각으로 간 뒤 내부를 살펴보았다. 삼성각 안쪽의 불상 앞에는 참배객들이 무릎을 꿇을 수 있는 방석 세 개가 놓여
이튿날 아침.서초화원이 희뿌연 안개에 싸여 있을 무렵, 화장기 하나 없는 릴리는 긴 머리를 말아 올려 포니테일로 묶고, 눈에 띄지 않는 여름 원피스를 입고 혼자 관악산으로 향했다.구영산과 손주도는 그녀의 안전을 염려해 보디가드를 동행시키겠다고 했지만, 릴리는 단호히 거절했다. 그녀에게 있어 진정한 은둔자는 도심에서도 세속과 거리를 두고 살 수 있다는 말처럼, 한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기로 결심한 이상, 지금부터는 당당하게 이곳에 녹아 들어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젊고 아름다운 여성은 혼자 다녀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 뿐, 의심을 사지는 않는다. 하지만 보디가드가 함께 붙거나, 뒤따라가는 사람이 있다는 걸 누군가 눈치채기라도 하면, 이는 곧 정체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두 사람은 릴리의 의지가 확고함을 보고 더는 말리지 않았다.릴리는 도로로 나간 후 택시를 타지 않았다. 전날 밤 그녀는 이미 노선을 미리 조사해 두었는데, 관악산까지 직행 버스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약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로, 쫓겨 다니던 시절엔 일상을 체험할 기회가 거의 없었기에, 이번에는 제대로 이곳에 스며들어 살아보자고 릴리는 마음먹었다.30분 후.릴리는 관악산 정류장에서 내려, 천천히 걸어서 관음사의 입구에 도착했다.오늘은 릴리가 처음으로 관악산에 온 날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게 관악산에 대해 여러 차례 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자신의 집안 조상들이 관악산에 모셔져 있다는 것이었다.600여 년 전, 조선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한양을 수도로 삼았을 때, 릴리 집안의 조상들은 한양에서 관직을 맡고 있었다. 하지만 훗날 태종 이방원이 즉위하고 중앙집권 체제를 강화하며 여러 대신들과 공신들을 정리하던 혼란의 시기, 릴리 집안의 조상들은 조정의 명을 받아 일가족이 함경도로 이주할 준비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당시 릴리 집안의 조상은 고령이었고, 수도가 옮겨지기 전 병으로 세상을 떠났으
유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엄마, 뭘 부탁하시려고요? 말씀만 하세요.”윤우선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엄마가 내일 아침에 관음사에 가서 절을 좀 하고, 공양도 하고 오려고 해. 부처님과 보살님께 기도 좀 하려고.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미국 다녀온 이후로 하는 일마다 안 풀리는 느낌이라서 말이야... 운이 안 따라주면 돈도 안 따르는 법이잖니? 그러니까 이왕 라이브 방송이 72시간 정지된 김에, 시간 날 때 절이나 다녀오려는 거지.”유나는 잠깐 망설였다. 사실 엄마가 라이브 방송을 성공하려고 절에 간다는 건 좀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자신도 회사를 너무 오래 비워뒀기에 빨리 돌아가 봐야겠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엄마, 그럼 내일은 시후 씨랑 같이 가시면 어때요?”하지만 윤우선은 당장 난색을 보이며 말했다. “그건 좀... 유나야, 엄마는 너랑 가고 싶어. 내가 무슨 큰일을 부탁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은 서방한테 그런 부탁을 하면 괜히 미안하고 어색하지 않겠어. 게다가 지금은 다리에 무리가 와서 목발을 짚고 다녀야 하잖니? 사위한테 부축을 받으면서 절에 간다고? 아무리 내가 뻔뻔해도 그건 좀 아니잖아...” 그러고는 다시 덧붙였다. “그리고 이 일은 너희 아빠나 은 서방한텐 말하지 말자. 우리 모녀끼리만 조용히 다녀오는 거야. 일찍 출발하면 회사에 지각 안 해. 7시에 나가면 7시 반에 도착하고, 내가 부처님께 절 좀 드리고 나면, 9시 반이면 넉넉히 회사 도착할 거야. 어때?”지금의 윤우선에게 시후는 이미 가정 내 절대 권력자처럼 느껴지는 존재였다. 그래서 라이브 방송 같은 아직 결과도 없는 일로 시후의 인내심을 소모하고 싶지 않았다. 이번 첫 방송은 완전히 철저하게 실패했고, 그 사실이 시후에게 알려지면 기회도 없이 자신이 무시당할까 봐 더더욱 감추고 싶었던 것이다.윤우선은 또한 미국에서 저지른 실수들로 인해 시후에게 큰 폐를 끼쳤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이런 자잘한 일로 시후의 신뢰를
유나는 자신이 분명히 엄마를 위로하려고 왔음에도, 오히려 엄마에게 오해를 받게 되자 당황스러웠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엄마,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니잖아요...”그러자 윤우선은 풀이 죽은 채 손을 저으며 말했다. “됐어. 굳이 설명 안 해도 나도 알아. 다 변명이야. 너도 속으로는 엄마가 라이브 방송 같은 건 절대 못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유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럼 엄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요? 만약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전 당연히 응원할 거예요. 하지만 꼭 한 가지는 약속하세요. 이 일이 잘되든 안 되든, 감정부터 조절하는 거요. 그게 제일 중요하잖아요. 뭐든지 일은 잘 안 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자신의 감정까지 폭발해서 건강이라도 상하면, 그땐 정말 얻는 것 보다 잃는 게 더 크지 않겠어요?”윤우선은 억척스럽고 막무가내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지만, 딸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윤우선은 유나의 말엔 반박할 구석이 없었다. 일도 망치고 돈도 잃고, 체면도 잃고 감정까지 상할 수는 없는 것이다.그래서 윤우선은 유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유나야. 걱정하지 마. 조금 전에는 내가 좀 욱했을 뿐이야. 곧 괜찮아질 거야... 72시간 정지? 웃기지 마. 내가 30년 가까이 WS 그룹을 모시고 살아온 여자야! 고작 3일 가지고 무너지겠어? 아니, 나는 72일이 와도 절대 포기 안 해. 끝까지 버텨줄 테다.”유나는 엄마의 이 지독한 근성에, 칭찬을 해야 할지, 걱정해야 할지 판단이 안 섰다. 하지만 그녀는 곧 생각을 바꿨다. 어차피 3일은 방송을 못하기에, 그동안은 엄마가 이런 일을 하는 것에 대해 걱정하며 정신 소모를 안 해도 된다는 뜻임을 깨달은 것이다. 그렇게 마음이 살짝 가벼워진 유나는 물었다. “엄마, 저녁 차려 놨는데 내려와서 좀 드실래요?”윤우선은 기운 없이 말했다. “밥은 무슨 밥이야... 그 플랫폼 놈들 덕분에 화가 나서 배는 이미 불렀어.”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