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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이 거대한 가스라이팅의 예산은 얼마인가.

Author: 8489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7-07 16:50:09

 

테라스 사건 이후, 나는 중대한 결단을 내렸다. 방 안에 틀어박혀 방어만 하는 것은 적들의 '엘리아나 미치광이 만들기 프로젝트'에 장단을 맞춰주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내가 얼마나 멀쩡하고 이성적인지 똑똑히 보여주겠어.'

나는 시어머니가 억지로 떠넘기고 간 영지 가계부와 다이아몬드 광산 서류를 챙겨 들었다. 이것들을 들고 대공성의 관리들이 모여 있는 집무실로 쳐들어가, 내게 장부 조작의 누명을 씌우려던 얄팍한 수작을 만천하에 까발릴 참이었다.

집무실로 향하는 복도. 평소라면 나를 벌레 보듯 무시하며 지나갔을 북부의 정예 기사들이 저 멀리서 다가오고 있었다. 살기가 뚝뚝 흐르는 북부 기사단은 시어머니보다 더 나를 괴롭히던 존재들이었다. 마력이 '0'인 대공비는 북부의 수치라며 대놓고 조롱하던 자들.

'흥, 또 무슨 시비를 걸려고.'

나는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전투 태세를 갖췄다. 그런데 내가 다가가자, 복도를 꽉 채우고 있던 거구의 기사들이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양옆으로 쫙 갈라졌다.

"대공비 마마를 뵙습니다!"

쩌렁쩌렁한 함성과 함께, 기사단장 레온을 필두로 수십 명의 기사들이 일제히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

"과거, 마마의 그 위대하고 숭고한 희생을 몰라보고 함부로 입놀림을 했던 저희의 머리를 베어주시옵소서!"

"저희 북부 기사단은 오늘부로 대공 전하가 아닌, 오직 대공비 마마의 검이 되어 마마의 앞길을 지키겠나이다!"

기사들의 눈에서 뜨거운 참회의 눈물이 뚝뚝 떨어져 복도의 대리석 바닥을 적셨다. 그 우렁찬 울음소리에 대공성이 쩌렁쩌렁 울릴 지경이었다.

나는 들고 있던 가계부를 꽉 쥐었다.

'미쳤군. 진짜 다들 미쳤어.'

시어머니와 남편, 전 약혼자에 이어 이제는 기사단까지 이 거대한 연극에 섭외된 것이다. 대체 나 하나를 가문에서 쫓아내기 위해 쏟아부은 이 가스라이팅의 예산은 얼마란 말인가? 북부 기사단 전체를 엑스트라로 동원할 정도라니, 대공가의 자금력에 새삼 감탄이 나올 지경이었다.

"머리를 베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나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차갑게 대꾸했다.

"기사단장님. 이런 유치한 장단에 놀아날 시간 없습니다. 당장 일어나서 비키세요. 저는 집무실에 서류를 반환하러 가야 하니까요."

"아아……!"

레온 기사단장이 감격에 겨운 탄성을 터뜨렸다.

"자신을 조롱했던 자들마저 끌어안으시는 저 한없는 자비로움! 과연 세상을 구원하신 성녀이십니다! 기사단 전원, 대공비 마마의 길을 호위하라!"

"호위하라-!!"

아니, 비키라고.

내 말은 철저히 무시당한 채, 수십 명의 떡대 기사들이 내 앞뒤를 물샐틈없이 에워싸며 걷기 시작했다. 마치 황제를 호위하는 듯한 이 기괴한 행렬의 한가운데서 나는 이마를 짚었다. 누명을 벗으러 가는 길이 졸지에 사이비 종교 교주의 행차처럼 변해버렸다.

그때였다. 집무실 문이 부서져라 열리며 카이엔이 뛰쳐나왔다. 그는 나를 에워싼 기사들을 보자마자 눈이 뒤집혔다.

"이 미친놈들이 지금 누구 곁에 함부로 서 있는 거냐!!"

카이엔이 허리춤의 검을 뽑아 들며 포효했다.

"전생에 엘리를 지키지도 못하고 전멸했던 무능한 새끼들이 감히 뻔뻔하게 엘리의 반경 1미터 이내로 접근해?! 당장 떨어지지 못할까!"

"대공 전하! 저희도 이번 생만큼은 마마를 목숨 바쳐 지킬 권리가 있습니다!"

"권리? 네놈들에게 그딴 게 있을 것 같으냐!"

남편과 기사단장이 내 앞을 가로막고 진검승부를 벌일 기세로 으르렁거렸다. '전생'이니 '성녀'니 하는 알 수 없는 대사들이 허공을 갈랐다.

집무실 관리들은 사색이 되어 책상 밑으로 숨었고, 나는 가계부와 다이아몬드 광산 서류가 담긴 상자를 바닥에 툭 내려놓았다.

'이젠 장부 조작 누명이 문제가 아니야.'

저들은 내가 '항복'을 외치고 대공성을 제 발로 나갈 때까지 이 미친 짓을 멈추지 않을 작정인 거다.

"다들 그만하세요."

내 조용한 한마디에 험악했던 복도에 찬물이 끼엇듯 정적이 내려앉았다. 카이엔과 기사들은 당장이라도 꼬리를 흔들 듯한 눈빛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바닥에 놓인 상자를 툭툭 차며 말했다.

"이딴 서류 쪼가리들 안 받을 테니까 억지 연극은 여기까지 하죠. 위자료 청구 안 할 테니까 이혼 서류나 가져오세요. 조용히, 빈손으로 나가드릴 테니."

내 선언이 떨어지기 무섭게, 카이엔의 검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기사단장은 헉하고 숨을 들이켰다.

"이, 이혼……?"

카이엔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다 못해 투명해졌다. 그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듯 미친 듯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완벽한 나의 승리였다. 그래, 진작 이렇게 나올 것이지.

하지만 나는 다음 순간 카이엔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에 내 귀를 의심해야만 했다.

"엘리아나…… 내가 네 목숨을 앗아갔던 전생의 그 끔찍한 성을 떠나고 싶다면, 좋다. 네 뜻에 따르마."

그가 바닥에 떨어진 검을 발로 차버리며 결연하게 외쳤다.

"오늘부로 북부 대공작을 버리겠다! 나 카이엔은 지금 이 순간부터 엘리아나의 호위 기사 1호로서 짐을 싸서 너와 함께 이 성을 나가겠다!"

"예?!"

"전하, 치사하게 혼자 독차지하실 셈입니까! 기사단 전원! 당장 짐을 싼다! 우리는 대공비 마마를 따라 하야한다!!"

……이 미친놈들이 진짜 돌았나?

나는 이제 정말로, 내 머리에 이상이 생긴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의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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