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아니지.”“그럼?”“공주님, 우리 잠깐 올라가서 쉬자. 편하게 좀. 그동안 우리 둘만 있는 시간이 너무 적었던 것 같아.”민호는 다니의 손을 꼭 잡고 말없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다니는 눈을 깜빡이며 민호의 팔에 기대어 걸었다.‘어디 가는 거지?’엘리베이터가 호텔 최상층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다니는 민호에게 이끌려 스위트룸 앞에 섰다.그의 손이 긴장한 듯 땀에 젖어 있어 다니는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갑자기 왜 긴장을 해?’다니의 눈앞에서 객실 문이 천천히 열렸다. 문틈으로 꽃향기가 퍼져 나왔다.…다니는 안으로 들어서다가 걸음을 멈췄다.“어머…”넓은 거실에는 은은한 조명이 켜져 있었다.통유리 너머로 서울의 야경이 펼쳐졌고, 창가의 테이블에는 꽃과 샴페인이 준비되어 있었다.바닥에는 작은 장미 바구니들이 길을 이루듯 놓여 있었다. 침실 입구까지 장미꽃이 이어져 있었다.“민호야, 이게 뭐야?”“괜찮아?”“응. 너무 예쁘다.”다니는 장미 바구니들이 만든 길을 따라 창가로 걸어갔다. 높은 빌딩들 사이로 반짝이는 불빛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구석구석 놓인 하얀 바구니에는 장미꽃이 가득했고, 룸 안은 향기로 가득했다.다니의 맑고 커다란 눈이 흔들렸다.“다니야.”“응?”“이리 와 봐.”현민호는 다니를 의자에 앉혔다. 그러고는 그녀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그의 눈이 다니를 응시했다. 검고 깊은 그의 눈동자가 심연처럼 다니를 가두었다.‘민호의 눈은 피할 수 없어.’그녀는 정지된 시간 속에 속절없이 그의 눈에 빠져들었다.다니가 정신을 차린 것은 그의 시선이 손으로 내려간 순간이었다. 현민호는 그녀의 손을 잡고 손등에 키스했다.“아름다운 나의 다니엘, 사랑해.”민호는 재킷 안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붉은 벨벳 상자를 보자 다니는 숨을 죽인 채 그의 길고 아름다운 손가락만 바라보았다.현민호는 상자를 열어 다니 앞으로 내밀었다.반지함 안에서 커다란 다이아몬드가 눈부시게 반짝였다.다니가 한 번도 본 적 없고
다니는 초록색 이브닝드레스를 입었다. 상체는 타이트하게 몸매를 드러내고 치마는 풍성하게 부풀어 고전적인 느낌도 있는 옷이었다.그리고 민호가 백화점에서 직접 고르고 신겨 주었던 구두를 신었다.거울을 보니 화장도 예쁘게 되었고, 피로연을 위한 준비도 모두 끝났다.다니의 구두는 평생 신어 본 구두 중에 가장 비싸고 아름다운 구두였다. 발목 위까지 내려오는 귀여운 스타일의 드레스는 바로 청색 벨벳 구두를 위한 것이었다.현민호는 대영의 까사우모에서 만든 정장을 입었다. 회장님이 투자도 해 주셨고, 동양에서 오는 손님들을 위한 자리이기도 했다.신다니와 현민호는 커플링을 낀 손을 마주 잡았다.‘이 왕자 같은 남자가 내 남자 맞아.’다니의 눈이 반짝이자 현민호가 윙크를 하며 속삭였다.“옷이 너무 귀여운 거 아냐? 신다니, 한눈팔면 혼난다.”“누가 할 소리.”“우리 뭐 좀 먹자.”두 사람은 손깍지를 끼고 음식들을 구경하며 서로의 몸을 바짝 붙인 채 걸었다. 누가 보아도 사랑스러운 연인의 모습이었다.……보라는 서태민 대표와 나란히 피로연에 입장했다.서태민은 아크브랜딩 대표였지만, 오늘은 태호식품의 자제로서 참석했다.보라는 서태민이 상사로서 자신을 참아 주고 있고, 재계약도 불투명하다는 것을 은연중에 내비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외할머니와 엄마를 통해 이어진 집안의 인연 때문에, 서태민이 할머니를 몇 번 뵙고 예쁨받았던 기억으로 자신을 참아 준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자존심이 상했다.보라는 중고등학교 시절을 부촌 아파트에서 보냈기에 연락이 끊긴 친구들이 있나 둘러보았다. 동창 중에는 재력이 있는 집안의 친구들도 여러 명 있었다.‘아, 저기 제니 아냐?’명품 드레스에 아끼던 구두와 장신구까지 갖춘 보라는 오늘 제법 괜찮아 보인다고 생각했다. 자신 있게 동창을 불렀다.“제니.”“어머, 너 보라구나. 잘 지냈어?”제니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소집되었을 때, 괜히 보라의 말을 믿었다가 함께 처분받을 뻔했던 기억이 있었다.‘반가운 것은
신랑 측 하객들이 모인 곳에서 인사를 하던 다니는 옷을 맞추러 왔던 제일건설 직원들을 만났다.말끔하게 차려입은 모습이 자연스러워 전혀 조직에 있었던 사람들처럼 보이지 않았다. 다니는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거금을 투자한 넥타이 역시 다들 잘 매고 있어서 기뻤다.다니가 직원들의 옷매무새를 만져 주자 현민호의 눈이 커다래졌다.“안녕하십니까. 사모님께서 잘 골라 주셔서 칭찬을 많이 들었습니다.”“아, 네. 제일건설 직원이시군요. 감사합니다.”현민호는 힘주어 악수하는 직원들과 만만치 않은 악력을 겨루며 입꼬리를 올렸다.“언제 한번 불러 주시죠. 저희 건설 외에 인테리어, 철거, 재정비 사업 등도 적절한 가격에 해 드립니다.”“넵, 기억하겠습니다.”현민호는 제일건설 직원들의 이름도 확인하며 대화했다.“다니야, 아마 내가 형이었다면 운동선수 아니면 조직원 했을 것 같아. 하하. 나 저 직원 스카우트하고 싶어.”다니는 저 직원들을 우리 결혼식에 그대로 고용하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민호야, 우리 결혼식에서는 하루 아르바이트로 도와 달라고 하면 안 될까?”“바쁘지 않으면 해 줄 수도 있지 않을까?”신부 대기실 앞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화려한 꽃 장식과 수많은 하객, 취재진까지 예식장 입구가 북적였다. 세나 친구들이 나가는 것을 확인한 후, 다니가 조심스럽게 신부 대기실에 들어섰다.반짝이는 순백색의 드레스를 입은 세나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다니 씨!”세나답지 않게 목소리도 작고 부드럽게 들렸다.“형님, 축하드려요. 너무 예뻐요.”세나는 어깨가 드러나는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목에는 화려한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걸려 있었고, 머리에는 긴 베일이 흘러내렸다.“정말? 나 안 이상해?”“이상하긴요. 오늘 세상에서 제일 예뻐요.”“동서도 참. 이리 와 봐. 베리 윙 드레스야.”다니는 드레스의 장식을 살피다가 세나의 귀를 바라보았다.“어, 형님. 귀걸이가 하나 없어요.”세나는 주변을 살피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보라는 동양백화점에서 내렸다.답답한 마음에, 시즌 세일도 끝나 가기에 무작정 집에서 나왔다. 혼자 나오는데 백화점에 간다니 엄마가 따라나왔다. “결혼식에 입을 옷하고 구두. 요즘 쓰는 양산도 망가졌어. 엄마는 엄마 돈으로 사. 난 딱 필요한 것만 사고 6개월 할부할 거야.”“애는, 정없게… 너 돈 있잖아. 얼마 있어?”“엄마, 나 혼자 쓸 것도 없어. 나 회사 관둘 거야.”보라는 생각만 하고 있던 사직서를 내겠다는 말을 뱉어 버리고 나니, 갑자기 될 대로 되라는 생각이 들었다.‘다니를 질투하고 폭주할 때 엄마가 잡아 주었다면, 소송을 하지 않았다면 민호의 집안에서 도움을 받았을 텐데….’그런데 지금도 같이 쇼핑하면서 자기 것까지 사 달라는 엄마였다.보라는 구두와 가방을 그나마 명품이 아닌 브랜드로 고르려고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가 명품 가방을 집어 들었을 때는 어이가 없었다.“엄마, 지금 내 집에서 돈도 안 내고 지내는 거 알지?”보라는 할머니와 엄마가 모두 원망스러웠다. 할머니는 왜 회사 일을 제대로 가르쳐 주시지 않았을까?“엄마, 언제까지 내 집에 있을 거야? 있을 곳 없으면 미국으로 돌아가.”“애는, 엄마한테 무슨 소리니?”“그럼 아빠한테라도 말하든가.”“엄마가 상견례에서 말을 잘못해서 더 받을 것도 없어진 거 아니야?”“넌 그러게 선 본 남자들 하나도 못 잡고 뭐 했니?”“엄마가 소개나 해 주든가. 지금 엄마 때문에 현일두도 놓치고, 나는 정말 죽고 싶다고.”“그게 왜 엄마 탓이야?”“이게 다 엄마가 재혼한 탓이야… 그 가방도 아빠한테 사 달라고 해.”보라는 엄마가 들고 있는 명품 가방을 노려보았다.안 그래도 신충건이 다니 결혼식 끝나면 바로 돌아가겠다고 해서 심란한 마음인데, 보라까지 이러니 엄마는 기가 막혔다.“아빠가 근처 고시원으로 가겠다더라. 고시텔이라고 깨끗한 곳이기는 해. 그러니까 좀 싫은 티 좀 내지 마.”“아빠가 왜 고시텔에 가?”“네가 집이 좁다고 싫어하니까 그렇지.”보라는 입술을 깨물었
신수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강현은 현관문을 열고 닫히자마자 신수아에게 키스했다. 부드럽고 따뜻한 입술의 온기가 힘들었던 하루를 쉬게 해 주었다.사랑하지 않더라도, 그냥 이 순간에는 그녀가 필요했다.강현은 사랑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저 이 여자는 다른 여자들보다는 편했다. 멍청하다고 생각했고, 백치미가 마음에 들었던 것 같은데 정작 자신을 쥐고 흔든다.저절로 깊어지는 입맞춤을 겨우 멈추고 나니 머릿속이 어지러웠다.‘정신 차리지 않으면 이 여자에게 다 내어줄 것 같다. 이 여자가 자신은 전혀 모르는 감정이라는 영역의 전문가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울지 마. 오빠가 믿을게. 나도 너 보고 싶었어.”“오빠, 미워.”신수아는 강현의 허리를 껴안았다.…보라는 상견례에서 자신답지 않게 위축되었던 것을 떠올렸다.현민호… 긴 시간 짝사랑을 했고, 다니가 전학 오기 전까지는 친구로 잘 지냈었다.‘결국 엄마 탓이다. 왜 재혼을 했냐고.’고등학교 시절, 다니가 집에서 나가고 성우가 태어난다며 외할머니 댁으로 자신을 보낸 엄마였다.‘내가 민호 축구 선수 시절에 응원 다녔는데 신다니가 망쳤어. 아니 엄마 탓이 더 커.’김보라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며칠이 지났는데도 현민호가 생각나 하루 종일 우울했다.“민호야, 너는 왜 여전히 설레게 멋있니.”보라는 어두운 작은 방에 누웠다. 이 작은 집에 아직 나가지도 않고 있는 엄마 아빠가 답답했다.‘일두 보낸 것도 엄마 탓 맞아. 누가 탓하지 말래도 이건 사실이야.’보라가 주방 식탁 뒤에 앉아 잘 보이지 않는 성우를 불렀다.“성우야, 매형 어때? 잘해 줘?”“어, 난 동하도 좋지만 매형이 좋아. 키도 크고 친절해. 내일은 누나랑 동하랑 사진 찍기로 했어. 아빠가 가도 된다고 했어.”별로 말이 없는 녀석이 민호의 이야기에 꽤 길게 대답을 했다.다음 날, 다니는 아파트 앞 편의점에서 성우를 데리러 동하와 나왔다.성우의 옆에 보라를 보자 다니는 불편해졌다. 다니는 시선을 피해 성우
현민호는 현성코즈메틱으로 이동하고 있었다.‘그 나이에 굳이 이혼을 해야 할까.’가족관계등록부도 제대로 정정하겠다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현민호는 생각이 많아졌다.외삼촌이 자기를 무시하는 것도 있겠지만, 그 집안은 다 참을성이 없다.최강현이 경영 능력만큼은 그 집안에서는 독보적이라고 할 만큼 인재가 없었다. 그래서 최민주의 집안에서 밀어주는 것 같지만, 최강현이 바보도 아니고 나설 수 없을 것이다.현 본부장은 현단우 코즈메틱 대표와 신제품 발표 준비를 위해 이동하고 있었다.운전하는 내내 최민주가 쓰러질까 걱정이 되었다.“그래도 엄마 아픈데…”‘드르륵.’ -현민호, 너 어떻게 아버지 편만…스피커를 통해 최민주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걱정 하지 않아도 되겠네.'"상황이 불리하니까 최강현이 안 오는 거예요. 이건 우리끼리 싸울 일이 아니에요. 이제 그만 이용당하시고 치료에 전념하세요.”-그래도 네가 어떻게…“제가 대신 감옥이라도 가라고 하시겠네요. 어쩌죠? 전 회사에 없었는데?”-말도 안 되는 소리다.“엄마, 그렇죠? 제가 삼촌 대신, 아란이 누나 대신 가라는 거 아니죠?”-대신 가려면 그 남편이 가야지.“하아, 그 남편은 대신 안 가요. 최아란 잡으러 간답니다.”-알았다.“제발 그만 신경 쓰세요. 회사 일은 그만 생각하시고 건강이나 챙기세요."현민호는 최민주 여사가 쉽게 이혼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통화를 해보니 그랬다. '혼주 자리 두고 기 싸움 하는 건가. 아버지가 주식을 주었고, 가족관계를 바로 잡는 다는 것이 그 이야기인가.''책임들 지시라고.'…고모의 전화를 무시한 최강현은 더 이상 전화를 받고 싶지 않았다.신수아의 일로 집에 들어가지 않고 경기도 사옥에서 지내고 있어 한남동까지 가기도 멀었고, 무엇보다 대답할 말이 없었다.무조건 삼촌을 살려내라는데 무슨 벽하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씨엘그룹 차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금융권에서 오래 일한 그녀는 최강현에게 CK홀딩스만 지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