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타 신부

대타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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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oUpdated just now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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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당일 사촌 언니가 도망갔다. 그 예식장 매니저였던 내가, 드레스 뒤를 안전핀 일곱 개로 여미고 재벌 후계자 옆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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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1화. 신부 입장 사십 분 전

[채이]

열두 시 이십 분. 나는 신부대기실 문고리를 잡고 숫자를 셌다.

삼, 이, 일.

입장 신호를 줄 때의 버릇이다. 오늘은 다른 이유로 셌다. 안이 너무 조용했다. 신부대기실은 원래 시끄럽다. 드라이어, 헤어핀 통, 누군가의 엄마. 조용한 대기실은 둘 중 하나다. 신부가 자거나, 없거나.

"언니, 들어갈게요."

대답이 없었다.

문을 열었다. 거울 앞 의자가 비어 있었다. 화장대 위에 면사포가 곱게 개켜져 있었다. 그 옆에 쪽지 한 장.

[채이야, 미안해. 나 못 하겠어.]

두 번 읽었다. 세 번째는 참았다. 예식장 오 년 차가 배운 것 하나. 쪽지는 세 번 읽어도 글자가 안 바뀐다.

왼손목 시곗줄에 꽂아 둔 안전핀을 딸깍 열었다 닫았다.

"……부케는?"

없었다. 흰 작약 부케가 통째로 사라졌다. 도망가면서 부케는 챙겼다. 우리 언니는 그런 사람이다. 마지막까지 사진발은 포기하지 않는다.

나는 무전기를 입에 댔다.

"준수야, 3층 신부대기실. CCTV. 신부님 나가신 시간."

"네? 나가셨어요?"

"조용히."

"……네."

복도 끝에서 구두 소리가 났다. 큰어머니였다. 연분홍 한복 치맛자락이 바닥을 쓸었다.

"채이야, 세라 화장 다 됐니? 도원 쪽 회장님 벌써 오셨대."

나는 문을 등으로 막고 섰다. 웃었다. 오 년 동안 갈고닦은 웃음이다. 하객 백 명이 신부 드레스 밑단을 밟아도 유지되는 웃음.

"속눈썹 붙이는 중이에요. 손 떨린다고 아무도 들이지 말래요."

"걔가 또 예민하게."

"그러니까요. 로비 가 계시면 제가 모시고 갈게요."

치맛자락이 계단 아래로 사라졌다. 거짓말은 하나 늘었고, 시간은 삼십 초 벌었다. 수지가 맞는 장사는 아니었다.

무전기가 지직거렸다.

"누나, 12시 14분이요. 비상계단으로 혼자요. 부케 들고, 트렁크 끌고."

"트렁크?"

"미리 계단에 갖다 놨나 봐요."

준비한 도망이었다. 계획성 있는 사람이라 다행이다. 적어도 납치는 아니니까.

식은 오후 한 시. 남은 시간은 사십 분.

그리고 오늘 신랑은 도원그룹 회장의 손자였다.

봄빛웨딩홀은 예순한 해 된 동네 예식장이다. 재벌가 결혼식을 치를 급이 아니다. 간판 불은 봄 자 받침이 반쯤 나가 있다. 그런데 언니가 고집했다. 사촌 동생이 일하는 데서 하고 싶다고. 원장님은 그 말에 사흘을 울었고, 나는 사흘 밤을 새웠다.

기자석 열두 자리. 도원 쪽 하객 이백 명. 로비엔 카메라가 줄지어 있었다.

"채이야."

원장님이 계단을 올라왔다. 변정숙 원장님은 내 얼굴을 한 번 보면 안다. 오 년을 봤으니까.

"없니?"

"……없어요."

원장님이 벽을 짚었다. 나는 그 팔을 잡았다.

"숨 쉬세요. 제가 할게요."

"뭘 해. 신부가 없는데."

"시간이요. 그다음은 그다음에."

나는 채널을 돌렸다.

"사회자님, 식순 바꿀게요. 축가 두 곡 앞으로. 신랑 측 축사도 앞으로. 시작은 한 시 그대로, 입장만 뒤로."

"탁 실장님, 다과 한 바퀴 더요. 떡 쪽으로. 네, 떡 많이요."

"준수야, 로비 스크린에 신랑 신부 영상 한 번 더. 아니, 두 번."

원장님이 나를 멍하니 봤다.

"그게 무슨 소용이야."

"사람은 배부르고 볼 게 있으면 덜 궁금해해요."

예식장에서 배운 인간학이다. 대학에선 안 가르친다.

동기 고은비가 뛰어 올라왔다. 한 손에 하객 명단, 한 손에 휴대폰.

"기자 하나가 계속 3층 올라오려고 해."

"엘리베이터 3층 막아. 점검 중이라고 붙이고."

은비가 눈을 좁혔다.

"……무슨 일 있지."

"나중에."

은비는 묻지 않고 내려갔다. 오 년 같이 뛴 사람은 질문을 아낀다.

난간 너머로 로비가 보였다. 하객들 사이로 바늘꽂이 단 앞치마가 옷 가방을 안고 폐백실 쪽으로 가고 있었다. 우리 아빠다. 하가네 한복집. 봄빛 폐백실에 폐백 한복을 대고 고치는 집이자 우리 집. 오늘은 조카 결혼식이라고 새벽 네 시부터 불을 켜고 폐백 한복을 다렸다. 식에는 안 앉는다고 했다. 큰집이랑 한자리에 있으면 서로 체한다고.

아빠가 고개를 들었다. 3층 난간의 딸을 보고 옷 가방을 번쩍 들어 보였다. 고름 잘 달렸지? 하는 얼굴이었다.

나도 흔들었다. 웃었다. 그리고 돌아서서 언니한테 여섯 번째 전화를 걸었다.

열 번째쯤에 인정했다. 언니는 안 돌아온다.

[재헌]

열두 시 삼십 분부터 이상했다.

축가가 앞으로 왔다. 식순표에는 없던 순서다. 로비 스크린에 우리 사진이 세 번째로 돌았다. 세 번 만나서 찍은 사진은 한 장뿐이다. 그 한 장이 세 번 돌았다. 둘 다 카메라가 아니라 옆을 보고 있었다.

"떡이 계속 나옵니다."

비서실장 백승호가 수첩을 덮으며 말했다.

"로비에 떡이 세 번째 돌았습니다. 하객들이 배가 부릅니다."

"그래서."

"식장 쪽에서 시간을 끄는 것 같습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백 실장은 늘 옳다. 그래서 대답할 필요가 없다.

"나가 보고 올까요."

"아니. 누가 올 거야."

누군가 시간을 끌고 있다면, 이유를 말하러 오는 것도 그 사람이다. 호텔에서 배운 규칙이다. 사고를 낸 쪽이 아니라 사고를 막는 쪽이 먼저 문을 두드린다.

열두 시 사십 분.

노크.

"들어오세요."

여자가 들어왔다. 검은 정장. 허리에 남색 파우치. 손에 무전기. 가슴에 명찰. 봄빛웨딩홀 매니저 하채이.

나는 창가에 서 있었다. 왼쪽 커프스 단추를 돌리고 있었다. 버릇이다. 고칠 생각은 없다.

"신부님 사촌이기도 합니다."

"압니다."

시계를 봤다.

"이 분 드리죠. 곧 사진 찍자고 부를 겁니다."

여자가 손목에서 안전핀을 한 번 열었다 닫았다. 딸깍.

"신부님이 떠나셨습니다. 12시 14분, 비상계단으로요."

단추를 돌리던 손이 멈췄다.

일 초. 이 초.

놀랍지 않았다. 그게 좀 놀라웠다. 세 번 만났다. 세 번 다 이십 분을 안 넘겼다. 세 번 다 둘이서 창밖만 봤다. 떠날 사람이면 그때 떠났어야 했다. 식 사십 분 전이 아니라.

"……그래서요."

여자의 눈썹이 올라갔다. 잘못 들었나 하는 얼굴.

"그래서, 정하셔야죠. 지금 알리면 기자들이 바로 씁니다. 시간은 제가 이십 분 더 벌 수 있어요."

"이미 벌고 있군요. 축가가 앞으로 왔던데."

"네."

창밖. 로비 앞에 검은 차들.

"취소하죠."

쉬웠다. 쉬운 말이 제일 비싸다는 건 나중에 안다.

[채이]

너무 쉽게 나온 말이라 숨이 막혔다. 이 사람한테 오늘은 오후 일정 하나가 취소되는 날이구나.

"그러면 이 홀은 끝나요."

"무슨 뜻입니까."

"내일 기사 제목이요. 도원 후계자 결혼식, 봄빛에서 깨지다. 사람들은 신부가 도망갔는지 예식장이 망쳤는지 안 따져요. 그냥 여기가 재수 없는 데가 돼요."

"……"

"여기서 결혼하고, 돌잔치 하고, 칠순까지 한 분들이 있어요. 매주 와요. 그분들이 이제 여기 오기 싫어지는 거예요. 동네 예식장은 그 한 줄이면 문 닫아요."

"그건 당신네 사정입니다."

"알아요. 그래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제 사정이니까."

사정을 말하는 데 이 분은 짧았다. 신부 부모님 감사 인사도 이 분은 넘기는데. 그래도 끝까지 말했다. 내 사정은 내가 말해야 한다. 아무도 대신 안 해 준다.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 «회장님». 그는 받지 않았다. 곧 문자가 왔다. 그는 소리 내어 읽었다. 나한테 들으라는 건지, 자기한테 확인하는 건지 모를 목소리로.

"식이 깨지면 대표 자리는 민혁이에게 간다. 나는 한 번 말한 건 안 바꾼다."

휴대폰이 탁자 위에 엎어졌다.

"할머님이세요?"

"여든둘이십니다. 말을 바꾼 적이 없죠."

그가 웃었다. 눈만. 가늘어졌다가 금방 돌아왔다. 웃음이라기보다 한숨의 다른 모양이었다.

"보다시피 나도 사정이 생겼네요."

노크도 없이 문이 열렸다.

"재헌아, 신부는?"

회색 양복의 남자가 웃으며 들어왔다. 입은 웃는데 눈은 출근 전이었다. 하객 명단에서 본 얼굴. 강민혁. 도원호텔 전무. 신랑의 사촌형.

"아직 준비 중이라던데. 좀 늦네?"

"축가 두 곡 들으시면 됩니다."

신랑은 한 음도 안 흔들렸다. 나는 속으로 감탄했다. 저 목소리는 예식장에서도 쓸 데가 많다. 예를 들면 신부 아버지가 우실 때.

"그래? 오늘 기자가 좀 많아서 걱정했지."

강민혁이 나를 흘끗 봤다. 명찰에서 눈이 잠깐 멈췄다.

"수고해요, 매니저님."

문이 닫혔다. 공기가 조금 가벼워졌다. 조금만. 방금 나간 사람은 향수를 너무 많이 뿌렸다. 식장 동선에서는 그런 하객을 신부 옆에 안 세운다.

[재헌]

형은 알고 있다.

확실하진 않다. 그런데 형은 신부가 늦는다는 말을 걱정하는 얼굴로 하지 않았다. 기다리는 얼굴로 했다.

나는 단추를 돌렸다. 빨리.

"하채이 씨."

"네."

"신부 드레스. 대기실에 있습니까."

"있어요. 언니는 원피스로 갈아입고 나갔더라고요. 근데 그게 왜요."

나는 그녀를 봤다. 위에서 아래로. 정장, 파우치, 무전기, 반쯤 풀린 머리.

무대 치수를 재는 기분이었다. 틀린 비유는 아니다. 무대가 필요했다.

"키가 비슷하네요. 사촌이라 그런가."

[채이]

"잠깐만요. 잠깐만."

한 걸음 물러났다. 등이 문에 닿았다. 예식장 문은 생각보다 딱딱하다.

"지금 무슨 말씀 하시려는지 알 것 같은데, 그거 말이 안 돼요."

"압니다."

"하객이 이백 명이에요. 기자가 열두 명이고."

"그래서 해야 합니다. 취소하면 둘 다 끝납니다. 이 홀도, 나도."

그가 시계를 봤다.

"열두 시 사십육 분. 입장까지 몇 분입니까."

"원래대로면 십사 분. 제가 늘리면 삼십 분."

"삼십 분이면 충분합니까. 드레스, 화장, 머리."

"그걸 왜 저한테 물어요."

"여기서 그걸 제일 잘 아는 사람이 당신이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손목의 안전핀을 찾았다. 열려다 말았다. 손이 떨려서 찔릴 것 같았다.

문밖에서 축가 첫 소절이 흘렀다. 내가 앞당긴 곡이다. 내가 돌린 시계가 이제 나를 재촉했다.

그가 한 걸음 다가왔다. 턱 아래 작은 면도 자국이 보였다. 오늘 아침 이 사람도 손이 떨렸던 걸까. 이 와중에 그런 게 궁금한 나도 참 직업병이다.

"하채이 씨."

"……네."

"당신이 서요. 신부 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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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신부 입장 사십 분 전
[채이]열두 시 이십 분. 나는 신부대기실 문고리를 잡고 숫자를 셌다.삼, 이, 일.입장 신호를 줄 때의 버릇이다. 오늘은 다른 이유로 셌다. 안이 너무 조용했다. 신부대기실은 원래 시끄럽다. 드라이어, 헤어핀 통, 누군가의 엄마. 조용한 대기실은 둘 중 하나다. 신부가 자거나, 없거나."언니, 들어갈게요."대답이 없었다.문을 열었다. 거울 앞 의자가 비어 있었다. 화장대 위에 면사포가 곱게 개켜져 있었다. 그 옆에 쪽지 한 장.[채이야, 미안해. 나 못 하겠어.]두 번 읽었다. 세 번째는 참았다. 예식장 오 년 차가 배운 것 하나. 쪽지는 세 번 읽어도 글자가 안 바뀐다.왼손목 시곗줄에 꽂아 둔 안전핀을 딸깍 열었다 닫았다."……부케는?"없었다. 흰 작약 부케가 통째로 사라졌다. 도망가면서 부케는 챙겼다. 우리 언니는 그런 사람이다. 마지막까지 사진발은 포기하지 않는다.나는 무전기를 입에 댔다."준수야, 3층 신부대기실. CCTV. 신부님 나가신 시간.""네? 나가셨어요?""조용히.""……네."복도 끝에서 구두 소리가 났다. 큰어머니였다. 연분홍 한복 치맛자락이 바닥을 쓸었다."채이야, 세라 화장 다 됐니? 도원 쪽 회장님 벌써 오셨대."나는 문을 등으로 막고 섰다. 웃었다. 오 년 동안 갈고닦은 웃음이다. 하객 백 명이 신부 드레스 밑단을 밟아도 유지되는 웃음."속눈썹 붙이는 중이에요. 손 떨린다고 아무도 들이지 말래요.""걔가 또 예민하게.""그러니까요. 로비 가 계시면 제가 모시고 갈게요."치맛자락이 계단 아래로 사라졌다. 거짓말은 하나 늘었고, 시간은 삼십 초 벌었다. 수지가 맞는 장사는 아니었다.무전기가 지직거렸다."누나, 12시 14분이요. 비상계단으로 혼자요. 부케 들고, 트렁크 끌고.""트렁크?""미리 계단에 갖다 놨나 봐요."준비한 도망이었다. 계획성 있는 사람이라 다행이다. 적어도 납치는 아니니까.식은 오후 한 시. 남은 시간은 사십 분.그리고 오늘 신랑은 도원그룹 회장의 손자였다.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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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가봉 없음
[채이]"안 돼요."목소리가 생각보다 컸다. 예식장 사람은 목소리를 줄이는 법부터 배운다. 오늘 그 교육이 무너졌다."저는 직원이에요. 신부가 아니라.""오늘 이 층에서 누가 신부인지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대기실 문은 당신이 막고 있었으니까.""그건 제 일이라서.""그럼 이것도 일로 하세요."그가 말했다. 면사포로 얼굴을 가리면 된다고. 입장, 서약, 퇴장. 삼십 분이면 끝난다고. 식순을 읊는 목소리가 너무 평평해서 나는 잠깐 우리 홀 사회자를 떠올렸다. 그분은 적어도 신랑 이름에서 한 번 억양을 올린다."그다음은요? 사진, 폐백, 기자들이 이름 물어보면요?""그건 식 끝나고 같이 정합니다.""같이요?""지금 정할 수 있는 건 하나예요. 서느냐, 안 서느냐."무전기에서 은비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채이야, 원장님이 3층 계단에 앉아 계셔. 일어나질 못하셔."눈을 감았다.그 계단은 예순한 해 동안 수만 명이 밟은 계단이다. 원장님은 거기서 신부들 치맛자락을 들어 주며 늙었다. 나는 그 옆에서 치맛자락 드는 법을 배웠다. 오른손으로 들고, 왼손으로 신부 팔꿈치를 받치고, 절대 앞질러 걷지 않는다.눈을 떴다."하나만 약속해 주세요.""말하세요.""오늘 일로 봄빛이 욕먹는 일은 없게. 무슨 일이 있어도."그가 단추에서 손을 뗐다."약속합니다. 오늘 일은 전부 내가 책임집니다."짧았다. 이상하게 그래서 믿을 만했다. 길게 약속하는 사람은 대개 식 끝나고 잔금을 미룬다."……알겠어요."무전기를 들었다."은비야, 원장님 모시고 신부대기실. 탁 실장님께 따뜻한 물. 그리고 드레스 이모님, 지금 3층.""뭐 하려고.""신부 준비."이 초의 침묵."……누구를?""나."신부대기실은 오 분 만에 야전병원이 됐다.드레스는 언니 치수였다. 나보다 한 치수 컸다. 입자마자 등이 헐렁하게 떴다. 이모님이 손가락 세 개를 허리에 넣어 보였다."이만큼 남는다.""줄일 시간은요.""꿰매면 이십 분."가봉 없는 드레스. 예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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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폐백 생략
[채이]식이 끝나고 십 분 만에 내 휴대폰은 난로가 됐다.신부대기실 거울 앞. 은비가 등 뒤에서 안전핀을 하나씩 빼는 동안 알림이 쉬지 않고 올라왔다.[도원그룹 후계자 결혼식, 신부가 바뀌었다][예식장 직원이 신부로… 도원가 결혼식 대혼란]"보지 마."은비가 휴대폰을 뒤집었다."하나. 둘. 셋."들어갈 때처럼 셌다. 나갈 때도 세는 게 예의다."여섯. 어, 일곱 번째 안 빠져. 안감에 걸렸어. 가만있어."가만있었다. 거울 속 나는 아직 신부였다. 속눈썹이 무거웠다. 입술은 은비가 고른 산호색. 내 취향은 아니다. 오늘은 취향 말할 처지가 아니다."됐다. 일곱."은비가 핀 일곱 개를 내 손바닥에 모아 줬다."이거 버리지 마. 오늘 너 살린 애들이야."파우치 안쪽 주머니에 따로 넣었다. 다른 핀들과 섞이지 않게. 전우는 따로 모신다.문이 벌컥 열렸다."하채이!"큰어머니였다. 분홍 한복 고름이 반쯤 풀려 있었다. 뒤에서 큰아버지가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네가 감히. 우리 세라 자리를."손이 내 팔을 움켜쥐었다. 손톱이 박혔다."큰어머니, 언니가 먼저 나갔어요.""그러니까 기다렸어야지! 냉큼 드레스를 입어? 처음부터 이러려고 이 식장 하자고 꼬셨지?""꼬신 적 없어요. 언니가.""그 팔, 놓으시죠."낮은 목소리. 문턱에 그가 있었다. 턱시도 재킷을 벗어 팔에 걸고.큰어머니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저 속도는 우리 홀 조명 전환보다 빠르다."아이고, 강 서방. 아니 부사장님. 이게 다 오해라서요.""제 아내 팔입니다. 놓으세요."제 아내.그게 나라는 걸 한 박자 늦게 알았다. 반 박자면 좋았을 텐데. 입장 신호를 한 박자 늦게 주면 신부가 문 앞에서 서 있게 된다. 지금 내가 딱 그 신부였다.손이 풀렸다. 팔에 반달 모양 자국이 네 개 남았다."세라 씨 일은 제가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은 돌아가 쉬시죠. 백 실장이 모시겠습니다."큰아버지가 큰어머니 어깨를 끌었다. 나가면서 나를 한 번 돌아봤다.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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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체크인 밤 아홉 시
[채이]도원레지던스 앞에는 정말로 기자들이 있었다. 할머니는 틀린 말을 안 한다. 벌써 두 번째 확인이다.차 문이 열리자 플래시가 터졌다."사모님, 한 말씀만!""원래 신부와는 어떤 사이세요?""언제부터 계획하신 겁니까?"계획. 발이 멈칫했다. 오늘 내가 계획한 건 점심 메뉴뿐이었다. 그것도 못 먹었다.그의 손이 내 손을 잡았다. 깍지를 끼듯. 그는 기자들 쪽으로 고개도 안 돌렸다."걸어요. 멈추면 더 찍습니다."걸었다. 로비 유리문이 닫히자 소음이 칼로 자른 듯 끊겼다. 그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손을 놓았다."허락 없이 잡아서 미안합니다.""아뇨. 덕분에 안 넘어졌어요."넘어질 뻔한 건 다리가 아니었지만, 그건 말하지 않았다.집은 넓었다. 그리고 비어 있었다.통유리 너머로 도시가 발밑에 깔렸다. 회색 소파 하나, 유리 탁자 하나, 아무것도 없는 선반. 텔레비전도 없었다. 모델하우스도 이것보단 사람 냄새가 난다."여기 사신 지 얼마나 됐어요?""삼 년.""……삼 일 된 집 같아요.""잠만 잡니다. 대부분 호텔에 있으니까."통유리 앞에 큰 화분이 하나 있었다. 올리브나무. 내 어깨쯤 오는 키. 잎이 절반쯤 떨어져 흙 위에 말라붙어 있었다. 남은 잎도 끝이 누렜다."얘는요?""누가 이사 선물로 준 겁니다.""물은 언제 줬어요?"침묵이 조금 길었다."……관리하는 분이 한 달에 한 번."흙에 손가락을 찔렀다. 돌처럼 말라 있었다. 그런데 가지 끝 하나에 손톱만 한 초록 잎이 두 장 붙어 있었다."아직 살아 있네요. 버티고 있어요. 이름 있어요?""나무한테 무슨 이름을.""버팀이."화분을 한 번 쓰다듬었다."오늘부터 버팀이예요. 저랑 같이 1년 버티는 거예요."그는 대답 없이 부엌으로 갔다. 물 한 컵을 떠 와 내게 내밀었다. 흙이 물을 빨아들이는 소리가 작게 났다. 쪽, 하는 소리. 목이 많이 말랐던 모양이다. 버팀이도, 나도.방은 두 개였다. 안쪽 방이 내 방이 됐다. 그는 서재에서 잔다고 했다. 원래 거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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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원본 영상 보관
[채이]기사 밑 댓글이 천 개를 넘었다.[예식장 직원이 재벌 노린 거네. 드라마 찍냐][언니 도망가게 해 놓고 자기가 들어감. 무섭다][저 예식장 어디임? 거르자]마지막 댓글 밑에 누군가 봄빛 주소를 달았다. 좋아요 이백 개. 친절한 사람들이다. 길 찾기까지 해 준다."그만 봐."은비가 휴대폰을 뺏었다. 뺏기는 대로 뒀다. 손이 차가웠다."그 사진, 누가 찍었을까.""기자겠지.""3층은 막았잖아. 엘리베이터 막고, 계단엔 준수 있었고."은비가 입을 다물었다. 우리는 동시에 음향실 쪽을 봤다.그때 은비 손에서 내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 «강재헌». 어젯밤 그가 직접 저장해 준 이름이다. 성까지 붙어 있다. 거래처 같다. 은비가 두 손으로 공손히 돌려줬다. 무슨 상장 받는 줄."기사 봤습니다."인사는 생략됐다. 폐백처럼."지금 거기 갑니다.""오지 마세요. 앞에 카메라 세 대예요. 오시면 다섯 대 돼요.""뒷문 있죠.""……주방 쪽이요. 쓰레기 내놓는 데.""이십 분."끊겼다. 은비를 봤다."온대.""누가.""……남편이."은비가 입을 틀어막고 소리 없이 발을 굴렀다. 그 등을 한 대 치고 음향실로 갔다.음향실은 창고를 개조한 방이다. 모니터 네 대, 오래된 믹서, 벽에 붙은 식순표. 준수가 헤드폰을 목에 건 채 벌떡 일어났다."누나, 저 아니에요. 진짜로요. 3층 계단 제가 계속 지켰어요.""알아. 의심해서 온 거 아니야. 토요일 거, 다 남아 있지?"준수 눈이 반짝였다. 봄빛은 작은 홀이라 영상도 자체 촬영한다. 식 스케치 카메라 두 대, 층마다 CCTV. 전부 준수 담당."원본 다 있죠. 식 스케치는 어제 편집도 시작했어요. 누나 입장하는 거 진짜 잘 나왔어요. 아버님 입 모양도 보여요."그 말은 못 들은 척했다. 아빠가 뭐라고 했는지는 나만 알면 된다. 가게 옷 다 뜯는다고 했다."CCTV 3층. 열두 시부터 한 시."화면이 네 칸으로 갈라졌다. 오른쪽 위가 3층 복도.12시 14분 07초. 원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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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상견례 이백열세 번째
[채이]"명단 주세요."목요일 밤. 식탁에 볼펜과 수첩을 펴 놓고 말했다.서재 문 앞에서 그가 멈췄다."무슨 명단.""토요일 식사요. 누가 오시고 어디 앉으시고, 뭘 좋아하시고 뭘 싫어하시는지.""……시험 봅니까.""상견례 전엔 원래 이렇게 해요. 양가 어른 자리 잘못 앉히면 그날 다 망해요. 누가 누구랑 사이 안 좋은지, 누가 매운 거 못 드시는지. 모르고 들어가면 지뢰밭 산책이에요."그가 맞은편 의자를 끌어 앉았다. 회의 들어가는 사람의 자세였다."받아 적으세요."[재헌]천천히 불렀다."할머니. 상석. 말이 느리니까 끝까지 들을 것. 잣 드시면 목이 붓습니다. 집에선 잣을 안 올립니다."그녀가 받아 적고 밑줄을 두 번 그었다. 볼펜 누르는 소리가 경쾌했다."아버지는 안 오십니다. 해외 12년째. 어머니, 한서경 관장. 갤러리. 말이 짧고 정확합니다. 틀린 말 하면 바로 고치십니다. 옷 얘기를 제일 먼저 하실 겁니다.""옷.""사람을 옷으로 한 번 보시고, 말로 한 번 보십니다."그녀가 동그라미를 쳤다."작은아버지. 강태준 부회장. 호텔을 팔자는 쪽. 식사 내내 숫자 얘기. 작은어머니, 서영주 여사. 말끝에."단어를 골랐다."가시가 있습니다. 웃으면서 찌릅니다. 대꾸하면 더 찌르고, 가만있으면 계속 찌릅니다.""그럼 어떻게 해요.""모릅니다. 32년째 방법을 못 찾았어요."그녀가 볼펜을 멈추고 나를 봤다. 나는 진지했다. 그녀가 웃음을 참으며 적었다. 거꾸로 읽혔다. 작은어머니 — 방법 없음."민혁 형. 웃습니다. 늘."목소리가 낮아졌다. 내가 낮춘 게 아니다. 알아서 낮아졌다."웃는 얼굴로 뭘 묻든, 대답은 짧게 하세요.""……네.""소율이는 당신 편입니다. 그건 걱정 마세요."그녀가 수첩을 덮었다. 표지에 봄빛 로고."그 수첩에 다른 집 상견례도 다 적혀 있습니까.""네. 이백 집 넘게요.""우리 집은 몇 번째입니까."그녀가 수첩을 다시 펴서 셌다. 손가락이 빨랐다."이백열세 번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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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드레스 코드
[채이]"궁금해요."짧게. 명단에 그렇게 적혀 있었다. 그리고 한 박자 쉬었다."그런데 전무님한테 듣고 싶진 않아요."그의 웃음이 잠깐 멈췄다. 곧 돌아왔다. 아까보다 넓게. 고무줄 같은 웃음이다. 늘어났다 줄었다 하지만 끊어지진 않는다."재밌네요, 제수씨. 식장에서도 그 생각 했는데.""……""걱정 마요. 언니는 잘 있어요. 아주 잘."그가 내 어깨를 가볍게 두 번 두드리고 자기 차 쪽으로 걸어갔다. 구두 소리가 기둥 사이로 멀어졌다.엘리베이터가 열렸다. 재헌 씨, 아니 강재헌 씨가 나왔다. 민혁의 뒷모습을 봤다. 걸음이 빨라졌다."무슨 얘기 했습니까.""언니 어디 있는지 궁금하지 않냐고요. 궁금한데 전무님한테 듣고 싶진 않다고 했어요. 짧게."그의 굳었던 턱이 천천히 풀렸다."……잘했습니다.""근데 그 사람, 언니가 아주 잘 있대요. 그걸 어떻게 알아요?"그는 대답 대신 차 문을 열었다. 차에서도 말하지 않았다. 창밖을 보며 단추만 돌렸다.나는 묻지 않았다. 서로한테 거짓말 안 하기로 했으니까, 말 안 하는 건 아직 말할 수 없다는 뜻이다. 우리 둘만 아는 해석이다. 법원에서는 안 통할 것이다.[재헌]월요일 밤. 식탁."금요일에 자선 갈라가 있습니다. 결혼 뒤 첫 공식 자리.""네.""그날은 서로 이름 부르면 안 됩니다. 부부가 풀네임으로 부르면 기자들이 씁니다. 남 같다고.""그럼 뭐라고 불러요."물컵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할 말을 미루는 사람의 동작이다. 알면서 했다."……여보."그녀가 누룽지를 씹다 멈췄다."여, 보요.""보통 그렇게 부르지 않습니까.""보통은요.""연습합시다."그녀가 누룽지를 삼키고 목을 가다듬었다."여보.""……식당에서 직원 부르는 것 같습니다.""그럼 그쪽이 해 봐요."숨을 들이쉬었다."여보.""……결재 서류 읽는 것 같아요."서로 보다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어깨가 떨렸다. 웃음이다. 내 귀가 뜨거워졌다. 이유는 조사하지 않기로 했다.그녀 휴대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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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직원 출입구
[채이]그 번호로 바로 걸었다. 신호 한 번, 끊김. 다시. 꺼져 있다는 안내."언니."꺼진 화면에 대고 불렀다. 휴대폰은 대답하지 않는다. 알면서 부른다. 사람은 원래 그렇다."무슨 일입니까."휴대폰을 내밀었다. 그가 두 줄을 읽었다. 웃는 사람, 에서 눈이 멈췄다."강재헌 씨."둘만 있을 땐 아직 성까지 붙인다. 거래처 호칭."우리 서로한테 거짓말 안 하기로 했죠. 말 안 하는 것도 오래 하면 거짓말 비슷한 거예요."그가 단추를 한 바퀴 돌렸다. 두 바퀴.[재헌]"신부대기실 앞에서 사진 찍은 사람. 방준기 과장. 형 수행비서입니다."그녀가 숨을 들이켰다."그 기사도.""모릅니다. 찍었다는 것까지만. 누구한테 줬는지, 형이 시켰는지는 아직.""그래서 말 안 했어요?""틀리면 억울한 사람이 생기니까요. 그리고."창밖을 봤다. 한강 다리 불빛이 줄지어 지나갔다."형이 그런 사람이라고 당신한테 말하는 게, 싫었습니다."변명처럼 들렸을 것이다. 변명이 맞다. 다만 사실이기도 했다. 둘은 가끔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그녀가 휴대폰을 무릎에 올려놓았다."다음부턴 틀려도 말해 줘요. 같이 틀리면 되잖아요."신호가 바뀌고 차가 움직였을 때에야 대답했다."……그러죠."같이 틀린다. 들어 본 적 없는 제안이었다. 우리 집에서는 틀리면 혼자 틀린다.[채이]화요일은 봄빛 휴무일이다. 예식장은 주말에 불타고 평일에 숨을 쉰다.아침부터 엄마 전화."너 시댁 호텔 직원들한테 인사 돌렸니?""그걸 왜 돌려.""새로 들어온 사람은 뭘 돌리는 거야. 인사로. 너희 아빠가 밤새 지었어. 자투리 비단으로 복주머니 삼백 개. 사탕 한 알씩은 내가 넣었고. 채훈이 가져간다.""엄마, 삼백 개를 어떻게.""호텔 직원이 삼백 명은 넘지?"끊겼다. 우리 엄마는 질문을 하고 답을 안 듣는다. 질문 형식의 통보다.한 시간 뒤 채훈이 레지던스 앞에 상자 여섯 개를 내려놓았다. 뚜껑 틈으로 알록달록한 비단 끈이 삐져나와 있었다. 창문을 내리고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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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룸서비스 없음
[채이]"봄빛은 안 그만둬요."제일 먼저 한 말이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했다는 얼굴."그래서 자문입니다. 일주일에 하루. 봄빛 쉬는 날.""화요일이요. 그리고 보수는 연회팀 다른 분들이랑 똑같이. 경력 오 년 기준으로. 더 주시면 안 돼요.""왜입니까.""더 받으면 부사장 부인이라 받는다고 해요. 그럼 제가 오늘 한 것도 다 그걸로 보여요."그가 단추를 돌렸다."……윤 팀장이 좋아하겠네요. 자기보다 적게 받는 자문은 처음일 테니까.""그리고 하나 더. 직원식당에서 밥 먹게 해 주세요. 화요일마다."그의 눈이 웃었다."그건 조건이 아니라 부탁 같은데요.""조건이에요. 반장님 제육이 걸려 있어요."옆 테이블의 반장님이 고개를 돌리고 웃음을 참았다. 지호는 식판에 얼굴을 묻었다.토요일은 두 곳에서 잔치가 열렸다.나는 봄빛 그랜드홀. 취소했다가 돌아온 김 씨 댁 예식. 신부가 입장 직전 내 손을 꽉 잡았다."매니저님. 저 그 무전 녹음 듣고 다시 하자고 했어요. 우리 엄마가 그랬어요. 저런 사람 있는 데면 무슨 일이 나도 식은 끝까지 간다고.""네. 끝까지 가요. 무슨 일이 나도요."드레스 뒤를 점검했다. 터질 데는 없었다. 그래도 파우치 지퍼를 반쯤 열어 뒀다. 반쯤 고장 난 지퍼라 반쯤이 기본값이다.삼, 이, 일.같은 시각 도원호텔 12층에서는 이 씨 댁 돌잔치. 식이 끝나고 휴게실에서 휴대폰을 켜자 윤 팀장 문자. 사진 세 장.창가 햇빛 속 색동저고리 입은 아기. 다섯 색 소매가 빛을 받아 반짝였다. 아기는 돌띠 끝을 한 움큼 쥐고 웃고 있었다.[사모님 말씀대로 한 시 햇빛이 좋았습니다. 아기 어머니가 세 번 울었습니다. 좋아서요. 아기가 돌복을 안 벗겠다고 울어서 그대로 입혀 보냈습니다. — 연회팀 윤경식]아빠한테 그대로 전달했다. 답장은 한 시간 뒤. 아빠 답장은 늘 짧다.[이쁘다]옷 얘기인지 아기 얘기인지 묻지 않았다. 둘 다일 것이다.저녁 여섯 시. 로비 의자를 정리하는데 은비가 옆구리를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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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양가 대기실
[재헌]"애월 쪽 목공방입니다."휴대폰 메모를 읽었다. 백 실장이 새벽에 보낸 것."세라 씨 카드가 지난주 그 근처 약국에서 한 번 쓰였습니다. 공방 주인 서진우. 서른하나."그녀가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쌌다."……서진우.""아는 이름입니까.""작년 겨울에 언니가 한복집 왔을 때. 저고리 품 줄이러요. 휴대폰 보면서 혼자 웃길래 누구냐고 물었더니, 나무 깎는 사람, 하고 말았어요.""그럼 그 사람한테 간 거군요.""근데 왜 그날이에요? 좋아하는 사람 있으면 한 달 전에도 말할 수 있잖아요. 왜 입장 사십육 분 전에."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은 있었다. 하기 싫었다. 형의 웃음이 대답이었으니까."당장 가요.""오늘은 안 됩니다. 오후에 상담 두 건 있잖습니까.""그걸 어떻게 알아요.""냉장고에 붙어 있더군요. 주간 일정표."그녀가 냉장고를 돌아봤다. 봄빛 로고 자석 밑에 그녀 글씨의 일정표. 이사 온 첫 주에 붙인 것. 매일 아침 물 꺼낼 때 읽었다. 월요일 상담 둘. 화요일 휴무. 목요일 공란. 이 집 냉장고에서 제일 읽을 만한 문서다."목요일이 비어 있죠. 목요일 비행기, 금요일 저녁 귀경. 토요일 예식엔 지장 없게.""그쪽 회사는요.""이틀은 백 실장이 막습니다."그녀는 반박할 말을 찾다가 그만뒀다. 휴대폰을 꺼내 문자를 썼다.[언니. 나 목요일에 갈게. 도망가지 마.]읽음 표시는 뜨지 않았다.[채이]화요일. 자문 첫날.연회팀 사무실은 그랜드볼룸 뒤편 좁은 복도 끝이었다. 윤 팀장이 창가 책상 하나를 비워 줬다. 책상 위에 이름표. 흰 플라스틱, 검은 글씨. 연회 자문 하채이.명찰이 하나 생겼다. 봄빛 명찰은 결혼식 날 이후로 못 봤다. 어디 뒀는지 모르겠다. 누구 주머니에 들어간 것 같기도 하다."자문님. 올해 연회 예약 전부입니다. 취소된 것까지. 궁금하다고 하셔서."두꺼운 파일 세 권."감사해요. 오늘 다 볼게요.""다요?""봄빛에서도 새 시즌 전엔 작년 장부부터 다 봐요. 어디서 사고 났는지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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