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네.”강솔이 답했다.“너희 먼저 가. 난 할 일이 좀 있어.” 강정숙은 아주 자연스럽게 말했다.“네.”강솔은 대답한 뒤 진환식을 모시고 집으로 돌아갔다.엄마가 말한 ‘할 일’이 무엇인지 강솔은 대강 짐작했다.조금 전 진무천의 반응과 의사실에서 들은 이야기 때문에 강정숙도 의심을 품은 듯했다. 진환식이 예전에 크게 앓았던 일에 다른 사정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차에 오른 뒤, 강솔과 진환식은 뒷좌석에 나란히 앉았다.노인이 눈을 감고 쉬는 걸 본 강솔은 고민 끝에 핸드폰을 꺼내 강정숙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엄마, 혹시 외할아버지 일 알아보시려는 거예요?]강정숙은 꽤 뜻밖이었다.딸이 자기 생각을 알아챌 줄은 몰랐다. [왜 그렇게 생각해?][레미한테 가 보세요. 조금 아는 게 있어요.]전에 강솔도 레미에게 부탁해 그 일을 알아본 적이 있었다. 조금씩 실마리가 보일 무렵 중현에게 일이 생겼고, 뒤이어 진환식이 조사 사실을 눈치채 더 알아보지 말라고 하면서 그대로 흐지부지됐다.강정숙은 더 놀랐다.강솔은 자신에게 숨기지 않고 전에 있었던 일을 모두 알려 줬다.[외할아버지도 두 외삼촌이 한 일이라고 짐작하셨어요.]문장을 읽은 강정숙은 미간을 좁혔다.잠시 뒤, 강정숙은 짧게 답했다. [알았어.]강솔은 메시지를 확인한 뒤 핸드폰 화면을 껐다.그 뒤로 차 안은 조용했다. 진환식이 함께 있으니 평소 말 많던 홍일과 신동도 말을 아꼈다. 반면 뒤차에 탄 진무천은 속이 완전히 뒤집혀 있었다.강정숙이 자신을 몰아붙이며 질문하던 모습을 떠올릴수록 불안감이 커졌다.한참 고민한 끝에 진무천은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강정숙이 진 회장 예전 일 의심하는 것 같아. 조사 들어가면 밑에 애들 입 단단히 막아.”상대는 바로 답했다. [네, 알겠습니다.]진무천은 전화를 끊었다.앞유리 너머 강솔이 탄 차를 바라보는 눈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한때는 기사에게 속도를 올려 앞차를 들이받으라고 하고 싶은 충동까지 들었다.정말 충돌한다면 강
다음 날.강솔과 강정숙은 진환식을 모시고 검사를 받으러 갔다. 태휘가 미리 연락해 두긴 했지만 여러 검사를 모두 마치는 데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모든 검사가 끝난 뒤.세 사람은 의사실에서 결과를 설명받고 있었다.“진 회장님께서 요즘 마음고생이 많으셨습니까? 감정 기복도 크셨고요?” 의사는 검사 결과를 모두 확인한 뒤 강솔 일행에게 물었다.강솔은 무의식적으로 진환식을 바라봤다.강솔은 대부분 회사에서 일하느라 외할아버지의 평소 상태를 자세히 알지 못했다. 진환식은 강정숙이 걱정할까 봐 앞에서는 티도 거의 내지 않았다.강정숙도 아버지를 바라봤다.진환식은 헛기침했다. “큼큼, 좀 그랬지.”“평소에는 마음을 편하게 유지하시고 큰 자극은 피하셔야 합니다.” 의사가 하나씩 당부했다. “혈압과 심박이 갑자기 튀어 오르면 실신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진환식은 바로 맞장구쳤다. “그래, 그래.”강정숙이 물었다. “사소한 자극에도 실신할 수 있나요?”“보통은 그렇지 않습니다. 다만 회장님은 여러 해 전 크게 앓아 입원하신 뒤 심장이...” 의사는 숨기지 않고 진환식의 상태를 다 설명하려 했다.“그 정도로 심한 거 아니야.” 진환식이 재빨리 말을 끊었다. 강정숙이 끝까지 캐묻는 건 피하고 싶었다. “넌 걱정하지 마.”“심한 거 아니라면서 왜 그렇게 눈치를 보세요?” 강정숙은 바로 핵심을 찔렀다.진환식은 입을 열었다가 반박도 못 하고 다시 다물었다.옆에서 듣던 강솔의 표정이 잠깐 굳었다.요즘 너무 바빠 외할아버지가 전에 했던 말을 잊고 있었다.외할아버지의 몸.그 상태가 이렇게 된 데에는 두 외삼촌이 원인이었다.“솔아?” 강정숙의 목소리가 생각을 끊었다.강솔이 정신을 차려 보니 의사의 주의사항 설명은 이미 끝나 있었다. 딸이 넋을 놓고 있는 걸 본 강정숙이 한마디 더 물었다. “왜 그래?”강솔은 진환식을 바라봤다.진환식은 아주 작게 고개를 저었다.세세한 변화를 잘 보는 강정숙은 두 사람의 움직임을 모두 봤다. 무
방 안에서는 창가에 앉은 진환식이 전화 통화중이었다. “언제 돌아오냐?”“곧이 언제인데?”“단아도 같이 오냐?”그 말을 들은 강정숙은 태휘와 통화 중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진환식의 말이 끊긴 틈에 문을 두드렸다. 똑똑-진환식이 소리를 따라 돌아봤다.세 사람이 모두 서 있는 걸 본 진환식은 수화기 너머 태휘에게 말했다. “이따 다시 얘기하자. 일 끝나면 빨리 와. 나도 좀 바쁘다.”통화가 끝났다.진환식은 미소를 띠고 강정숙을 바라봤다. “정숙아, 무슨 일이야?”“여 회장이 어제 아버지가 거의 쓰러질 뻔했다고 하던데요.” 강정숙은 이런 일에 돌려 말하지 않았다. “지금은 어떠세요? 다른 데 불편한 곳은 없고요?”진환식의 시선이 곧바로 여윤재에게 꽂혔다.‘이 녀석이.’‘그걸 그대로 일러바쳐?’여윤재는 태연하게 진환식의 시선을 받았다. “정숙이 물어보잖습니까.”“나 괜찮아.” 진환식은 여윤재를 한 번 노려본 뒤 강정숙에게 말했다. “쟤 말 믿지 마.”“허튼말인지 아닌지는 회장님이 더 잘 아실 겁니다.” 강정숙이 이렇게 나온 이상 여윤재도 더 숨길 이유가 없었다. “어제 거의 쓰러질 뻔한 것 말고도 며칠 전엔 숨도 좀 차셨습니다.”진환식은 눈빛으로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었다면 여윤재는 이미 온몸이 성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냥 잠깐 급해서 숨이 찬 거야.” 진환식은 딸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 서둘러 해명했다. “저 녀석이 말하는 만큼 심한 건 아니야.”강정숙이 바로 결정했다.“내일 병원 가서 검사받으세요.”진환식은 말끝을 흐렸다. “안 가면 안 될까...”병원에 가면 강정숙이 몸 상태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아챌 게 분명했다. 자칫 병원에 입원할 수도 있었다.강정숙이 바로 답했다.“돼요.”진환식의 눈이 반짝였다. “진짜?”강정숙의 답이 전과 똑같았다.“네.”진환식이 안도의 숨을 쉬며 입을 열려던 때 강정숙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대신 내일부터 댁으로 돌아가세요.”“정숙아.”진환식의 웃음이 사
“네 엄마 성격 너도 알잖아.” 여윤재는 한숨을 내쉬었다. 강정숙이 누구보다 고집이 세다는 걸 알고 있었다. “물어보면 무조건 용서 안 한다고 할 거야.”강솔은 대답하지 않았다.엄마의 성격이라면 당연히 그럴 수 있었다.“나도 숨기진 않으마.” 여윤재는 진환식의 상태를 떠올리며 고민 끝에 사실대로 말했다. “이런 걸 묻는 건 네 외할아버지 건강 상태가 좀 안 좋아서야. 어제 같이 걷다가 거의 쓰러질 뻔하셨다.”강솔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눈에 걱정이 바로 드러났다. “의사한테 진료받으셨어요?”“주치의가 봤어. 오래된 지병이래.” 여윤재는 숨기지 않았다. “좋아지려면 마음 편한 게 중요한데, 회장님은 죄책감이...”여윤재는 끝까지 말하지 않았지만 강솔은 무슨 뜻인지 알았다. 마음에서 생긴 병은 결국 마음에서 풀어야 했다. 외할아버지는 줄곧 엄마의 용서를 바라고 있었다.“엄마한테 말씀드렸어요?” 강솔이 물었다.“아니.”“...”강솔의 눈에 이해할 수 없다는 기색이 떠올랐다.“말하면 네 엄마를 곤란하게 만들잖아.”여윤재가 이유를 설명했다. “회장님을 용서하면 자기 자신한테 미안할 거고, 용서하지 않았다가 네 외할아버지가 속앓이 끝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평생 죄책감 가질 수도 있어.”그 말을 듣고, 강솔은 여윤재를 한동안 바라봤다.여윤재가 시선을 알아차리고 물었다. “왜?”“회장님은 정말 엄마를 사랑하세요?” 강솔이 여윤재의 감정을 의심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당연하지.” 여윤재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대답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확고했다. “왜 그런 걸 물어?”“외할아버지는 엄마의 아버지예요. 엄마가 집에 머물게 했다는 건 아직 마음이 남아 있다는 뜻이에요.” 강솔은 오히려 여윤재보다 상황을 더 정확히 봤다. “과거에 있었던 일들 때문에 용서하지 못하는 것뿐이고요.”여윤재는 말이 없었다.그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지금 외할아버지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면 제일 먼저 엄마한테 알려야 해요.”
처음부터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면 이런 장면도 자주 있었을 것이다.집안끼리의 원한도 없었다면 진환식은 여윤재를 못마땅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붙잡아 장기를 두고 이야기를 나눴을지 모른다.“정숙아?” 여윤재의 목소리가 들렸다.강정숙은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어느새 장기는 끝나 있었고, 이긴 사람은 진환식이었다.여윤재는 강정숙의 미묘한 변화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대강 짐작했다. 먼저 말을 꺼냈다. “회장님이 너의 용서를 받고 싶어 하시는 건 보여. 너랑 한마디라도 더 하려고 뒤에서 얼마나 연습하시는지 몰라.”“나랑 무슨 상관이야?” 강정숙은 태연하게 답했다.여윤재는 좀 어색했다.“그냥 얘기하는 거야.”강정숙은 여윤재를 한번 보고 바로 속을 꿰뚫었다. “그냥인지 아닌지는 네가 알겠지. 네가 여기 있는 건 아직 쓸모가 있어서야. 과거가 다 끝났다는 뜻 아니야.”“알아.” 여윤재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태연하게 말했다. “이용할 거 있으면 마음껏 해. 나는 통째로 네 거야.”강정숙은 한심하다는 듯 눈을 흘기고 다시 앉아 딸이 퇴근하기를 기다렸다.여윤재는 계속 말을 걸었다. “나 진짜 쓸 데 많아. 쓸모 좀 연구해 볼래?”강정숙이 바로 거절했다.“내 집에서 나가.”여윤재는 바로 이어 말했다.“내가 나가면 넌 어떡해?”강정숙은 여윤재를 비스듬히 봤다. “자꾸 그러면 걷어찬다.”여윤재는 바로 얌전해졌다.강정숙은 한다고 하면 정말 하는 사람이었다.마침 그때 강솔이 퇴근해 돌아왔다. 두 사람이 비교적 평화롭게 있는 모습을 보고 평소처럼 인사했다. “엄마, 회장님.”“우리 솔이 왔구나.” 여윤재는 바로 점잖은 어른의 표정으로 돌아갔다.강솔은 대답하며 강정숙의 팔을 끼고 안으로 들어갔다.10분 뒤.저녁 식사가 시작됐다.식사 중 강솔은 자꾸 누군가 자신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들 때마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았다.그 의문은 식사 후 한 시간쯤 지나 풀렸다. 강솔이 일을 더 하려고 준비하던 때 여윤재가 서
끊어진 통화 화면을 보며 진무천은 생각에 잠겼다.‘아버지가 왜 여윤재와 장기를 두지? 여씨 집안 사람이라면 질색하셨잖아.’‘정숙이와 관계를 회복하려고 여윤재까지 받아들인 건가?’방금 들은 말투도 마음에 걸렸다.지난 수십 년 동안 진환식은 늘 무서울 만큼 침착했다. 이렇게 인내심 없이 전화를 끊는 건 처음이었다.강정숙 집에 머문 뒤 아버지가 너무 많이 달라진 건 아닌가 싶었다.하지만 진환식은 아들이 무슨 생각을 하든 관심 없었다. 전화 때문에 흐름이 끊겨 머리가 아까만큼 빠르게 돌아가지 않았고, 이길 확률도 떨어진 것 같다는 게 더 중요했다.“큰 아드님입니까?” 여윤재가 물었다.진환식은 좀 짜증났다.“나 생각하는 것 방해하지 마.”여윤재는 진환식의 기운이 눈에 띄게 떨어진 걸 보며 한마디 더 했다. “어제 일은 언제 정숙이한테 말씀하실 겁니까?”“어제 무슨...” 말을 잇던 진환식이 기억해 내고 일부러 화난 척했다. “내 일이다. 네가 신경 쓰지 마.”“제가 말 안 해도 언젠가는 정숙이가 알아차릴 겁니다.”여윤재는 전날 진환식이 거의 쓰러질 뻔했던 일을 떠올렸다. 눈 깊은 곳에 걱정이 묻어났다. “정숙이의 관찰력이 얼마나 좋은지 회장님도 아시잖습니까.”진환식은 잠시 말이 없었다. 조금 뒤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 “알아채기 전에 본가로 돌아갈 거야.”이곳에 온 이유는 강정숙과 함께 지내며 과거의 잘못과 아쉬움을 조금이라도 갚고 싶어서였다. 아직 용서받지 못했지만 같은 공간에서 지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몸이 더 버티지 못하게 되는 때가 오면.스스로 떠날 생각이었다. 강정숙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걱정까지 끼치고 싶지 않았다.“그렇게 하시는 건...” 여윤재는 그 방법에 동의하지 않았다.“장기 둘 거야 말 거야.” 진환식은 얼굴을 굳혔다. “네가 말 많아지는 거 보니 내가 이길까 봐 내 집중을 흐트러뜨리려는 거지.”여윤재가 뭐라도 말하려던 때, 일을 마친 강정숙이 아래층으로 내려왔다.강정숙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