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그제야 단아는 정말 이곳에 갇혔음을 실감했다. 핸드폰은 빼앗겼고 사방에는 경호원이 있었다. 빠져나가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같은 시각, 태휘 쪽.도현에게서 나온 태휘는 바로 중현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중현이 기억을 잃은 뒤 도현이 번호를 바꿔 버린 탓에 예전 번호로는 연결될 리 없었다.결국 고민 끝에 강솔에게 연락했다....태휘의 전화받았을 때 강솔은 JX그룹에서 사업계획서를 보고 있었다. 수화기 너머로 평소보다 가라앉은 태휘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중현 대표 번호 알아?]강솔이 잠깐 멈췄다가 답했다. “알아요.”[하나 보내 줘. 전에 쓰던 번호는 연결이 안 돼.]태휘가 또렷하게 말했다.“네.” 강솔은 번호를 복사해 보냈다. 일을 마친 뒤에야물었다. “무슨 일 생겼어요?”태휘의 말투가 평소와 달랐다. 늘 침착하고 차가운 대표의 목소리가 아니었다.[하도현이 단아를 숨겼어.]태휘는 숨기지 않았다. 어차피 강솔은 자신과 단아 사이를 알고 있었다. [J시는 내가 잘 몰라서 도움이 필요해.]강솔이 더 물으려 했지만 태휘는 이미 전화를 끊었다.더 서둘러야 했다.최대한 빨리 단아를 찾아야 했다.강솔이 보내 준 번호 덕분에 태휘는 곧 중현과 연락이 닿았다. 두 사람은 호텔 스위트룸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태휘가 도착했을 때 중현은 거실에서 강 비서가 준비해 준 자료를 읽고 있었다.태휘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단아를 찾는 일을 도와 달라고 바로 이야기했고, 조건은 원하는 대로 맞추겠다고 했다.“임단아 씨요?” 중현이 이름을 되뇌었다.강 비서는 몸을 숙여 목소리를 낮추고 도현과 단아의 관계를 설명했다.다 듣고 난 뒤, 중현의 눈에 이해하기 어렵다는 기색이 스쳤다.‘형이...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나?’“단아를 찾아서 하도현의 손에서 빼내 주시면, 원하시는 조건대로 하겠습니다.” 태휘는 워낙 결단이 빠른 사람이었지만 다른 일이었다면 이렇게까지 서두르지 않았을 것이다.중현이 되물었다. “제가
“원하는 대로 해 줄게.” 도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의 경호원들에게 명령했다. “잘 지켜. 오늘부터 방 밖으로 한 발짝도 못 나가게 해.”경호원들은 바로 답했다.“네!”도현은 단아를 내려다봤다. 안경 너머 눈에는 평소의 부드러움이 사라지고 없었다. “네가 고른 죽는 길이 어떤 건지 기대할게.”말을 마친 도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거실을 나갔다.방금 전의 일이 아무 영향도 주지 않은 사람처럼 보였다.잠시 뒤.경호원들은 단아를 위층 안방에 가둔 뒤 쟁반에 몇 가지 물건을 올려 가져왔다. “임단아 씨, 대표님이 주신 겁니다.”단아가 쟁반을 내려다봤다.칼, 약, 밧줄...“이걸로 부족하면 필요한 걸 말씀하셔도 된답니다.” 경호원은 전달받은 말을 그대로 전했다. “최대한 빨리 가져다드리겠습니다.”단아의 온몸에 한기가 들었다.도현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한 사람이라는 걸 실감했다.원래부터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었다. 단정하고 점잖은 외모와 강한 자제력이 정상인처럼 보이게 했을 뿐이었다.지금도 마찬가지였다.속에서는 이미 한계까지 감정이 치솟았을 텐데 겉으로는 전혀 흔들림 없이 짧게 말했다. “출발해.”옆에 있던 비서가 드물게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임단아 씨에게 그런 물건까지 보내셔도 괜찮겠습니까? 정말 무슨 일이라도 벌이면...”도현의 안경 너머 눈은 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깊었다. “안 그래.”죽겠다고 말하는 건 쉽다.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지금처럼 도현의 압박이 눈앞에서 사라지면 단아는 칼 하나도 쉽게 들지 못할 거라고 확신했다.비서는 입술을 달싹였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며칠 동안 중현이 쪽 잘 봐.” 도현은 이성을 놓지 않은 채 차분하게 지시했다. “이상한 낌새가 있으면 바로 보고하고.”비서가 바로 응했다.“네, 알겠습니다.”도현은 차 시트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쉬려 했지만 머릿속에서는 방금 단아가 했던 말들이 계속 떠올랐다.중현과 강솔
도현의 표정에는 아무런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도현에게는 간단한 문제였다.단아가 원해서 낳는 아이가 아니라면 존재할 이유가 없었다.태어나자마자 도현과 단아의 지옥 같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게 할 바엔 아예 세상에 나오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아이에게 불행한 어린 시절을 굳이 만들어 줄 필요는 없었다.“왜 계속 연기 안 해?” 도현은 평소와 달리 순종적인 기색이 사라진 단아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단아는 될 대로 되라는 듯 말했다. “이제 지쳤어.”도현이 되물었다. “지친 거야, 아니면 진태휘가 나타나서 기댈 데가 생겼다고 생각한 거야?”단아의 손이 서서히 움켜쥐어졌다.태휘가 나타난 건 분명 예상 밖의 변수였다.하지만 단아가 더는 연기하고 싶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몇 년 동안 마음에도 없는 연기를 이어 온 탓에 정말 지쳐 있었다.“내가 너한테 괜히 마음 약해졌어.” 도현의 안경 너머 눈빛은 깊게 가라앉았지만 손길만큼은 부드러웠다. “넌 그냥 평생 햇빛도 못 보는 애인으로 남아야 했는데.”“지하실, 방.” 도현이 말했다. “하나 골라.”단아는 도현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뭐?”도현이 다시 한번 말했다.“남은 평생 어디서 살지 하나 고르라고.”그제야 단아는 도현이 진심이라는 걸 깨달았다.도현은 정말 단아를 가둬 둘 작정이었다.“내가 경고했지.”도현은 핸드폰을 천천히 만지작거리며 압박감 어린 시선을 보냈다. “나 속이지 말라고. 내 말 안 들었으니 이제 내 탓 하지 마.”“이건 불법이야.” 단아의 머릿속은 빠르게 빠져나갈 방법을 찾고 있었다.“너한테 고르라고 했잖아.” 도현은 태연했다. “뭐가 불법이야?”단아의 숨이 막혔다.도현은 핸드폰 화면을 몇 번 두드린 뒤 한 페이지를 단아에게 내밀었다. “안 고르면 지금 당장 이 사진이랑 영상 전부 인터넷에 올리라고 할 거야. 네 동생, 가족, 친구들까지 다 보게.”단아는 화면을 보자마자 수위 높은 사진들을 알아봤다.사진에는 단아의 얼굴만 남아 있었고
말을 마친 중현은 하준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서재를 나갔다.하준호는 속에서 화가 치밀었다.중현이 강 비서 일행을 데리고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휴대폰을 꺼내 도현에게 전화했다. “저 사람들을 데리고 나갔다. 못 막았어.”[네.]도현의 반응은 무덤덤했다.“이제 어떻게 하지?” 하준호는 불안했다. 오늘의 중현은 지난번보다 자신에게 훨씬 더 거리를 두고 있었다.도현이 여유롭게 말했다. [그냥 두세요.]하준호가 다급해졌다. “저 사람들이 중현이 앞에서 쓸데없는 소리라도 하면 어떡해!”세 사람은 중현의 측근이었다. 알고 있는 일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없는 말을 꾸미는 것보다 실제 있었던 일을 늘어놓는 편이 훨씬 쉬웠다.[지금 중현이는 아무도 믿지 않습니다.]도현은 전에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중현이 강솔에게 다시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다면 도현의 말대로 누구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하필 중현은 또다시 강솔에게 끌렸다.강솔만은 믿었다.아무 조건도 없이, 그리고 온전히 남김없이.도현이 끝내 계산하지 못한 변수였다.“그럼 아까는 왜 나더러 오라고 한 거야?” 하준호는 괜히 휘둘린 기분이었다.[자애로운 아버지라는 인상을 완성하려고요.]도현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아들을 아끼는 아버지라면, 아들이 사기꾼들과 어울린다는 말을 들었을 때 걱정하는 게 자연스럽잖습니까.]하준호는 미간을 눌렀다. 곱씹어 보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가끔 중현이에게 걱정과 경고만 해 주세요. 나머지는 제가 다 처리했습니다.]도현도 손을 놓고 있던 건 아니었다.다만 강솔을 믿는 중현에게 도현의 준비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강 비서 일행이 배신했다는 정황을 아무리 그럴듯하게 꾸며도, 강솔이 그 사람들은 믿어도 된다는 한마디 하면 끝이었다.하지만 도현은 그 사실을 몰랐다.그런 가능성을 떠올려 본 적조차 없었다.그때 도현은 단아가 있는 곳으로 차를 타고 이동 중이었다. 아직 단아와 정리하지 못한 일이
중현이 바로 물었다.“그게 지금 내 생활에 영향 줘?”강 비서는 담담하게 답했다.“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앞으로는 더 나아질 겁니다.”중현도 계속 추궁했다.“아버지와 관련이 있어?”강 비서는 할 말을 잃었다.‘어떻게 저걸 바로 맞히지?’속으로만 생각한 강 비서는 곧바로 대답했다. “네.”“알았어.” 중현의 기분이 가라앉았다. 시간이 이렇게 더디게 흐른다고 느낀 건 처음이었다.거실에는 정적이 내려앉았다.강 비서 일행도 눈치껏 말을 아꼈다.시간이 조금씩 흘렀다.약 5분쯤 지나자 밖에서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곧이어 하준호의 낮고 굵은 목소리가 현관 쪽에서 울렸다. “중현이는?”경호원이 답했다. “거실에 계십니다.”그 말을 들은 하준호는 곧장 거실로 향했다. 중현과 강 비서 일행이 함께 앉아 있는 모습을 보자 표정이 굳었다. “네 형이 저 사람들이 누군지 말 안 해 줬어?”“말했습니다.” 중현이 담담히 답했다.“그런데도 네가...” 하준호가 반사적으로 말을 쏟으려 했다.“저한테 볼일 있으신 거 아니었습니까?” 중현이 말을 끊었다. 이미 감정은 평정을 되찾은 뒤였다. “무슨 일입니까?”하준호는 또 화를 내려다가 겨우 회복된 부자 관계를 떠올리고 참았다. “따라와. 둘이서 얘기하자.”중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두 사람은 앞뒤로 계단을 올라갔다.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임풍이 물었다. “보스 아버님이 저희 험담하는 건 아니겠죠?”임훈이 잘라 말했다. “이미 했어.”강 비서도 짧게 덧붙였다. “맞습니다.”임풍이 맑은 눈으로 물었다. “언제요?”임훈과 강 비서가 서로 눈을 마주쳤다.가끔은 눈치가 조금 느린 편이 마음 편할 때도 있었다....위층.서재에 들어선 하준호는 곧바로 엄한 아버지의 얼굴을 했다. “저 사람들이 얼마 전 네 뒤통수를 쳤는데, 왜 이렇게 경계심이 없어?”말이 이상하게 흘러간다는 걸 깨달은 듯 하준호는 급히 멈췄다.중현은 말없이 아버지를 바라봤다.‘아버지는...
“말해.” 중현이 짧게 말했다.“하나는 좋다고 하기 애매하고, 하나는 안 좋습니다.” 임풍이 순박한 얼굴로 대답했다.중현은 느긋하게 말했다. “질문 바꿀게.”임풍 일행은 바로 자세를 고쳤다. “말씀하십시오.”“내가 왜 소아연 때문에 강솔과 이혼했지?” 아직도 답을 얻지 못한 의문이었다. 전에 물었을 때 시후는 얼버무렸고, 레미는 대답할 생각이 없었다.임풍은 강 비서 등과 눈빛을 주고받았다.임풍과 임훈 형제의 시선이 동시에 강 비서에게 꽂혔다. ‘네가 말해.’강 비서는 말문이 막혔다.“대답하기 그렇게 어려워?” 중현이 물었다.“약속 때문입니다.” 강 비서가 설명했다. “소아연 씨가 목숨을 구해 준 은혜를 앞세워 찾아와 평생 돌봐 달라고 했고, 대표님은 예전에 한 약속 때문에 그 요구를 받아들이셨습니다. 그 사실을 사모님께도 말씀하시면서 받아들여 달라고 하셨고요.”중현의 눈매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돌보기만 한 거야?”강 비서는 이어 말했다.“불륜까지 꾸며내셨습니다.”중현은 할 말을 잃었다.“사모님이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게 하겠다며 대표님과 소아연 씨가 함께 밤을 보냈다는 거짓 소문을 먼저 퍼뜨리게 하셨습니다.” 강 비서는 당시 일을 빠짐없이 털어놓았다. “사모님은 그걸 받아들이지 못했고, 대표님께 이혼을 요구하셨습니다.”중현은 관자놀이를 눌렀다.‘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왜 불륜 얘기까지 나와?’“자세히 말해.”“소아연 씨가 대표님을 찾아왔을 때 몸이 안 좋다는 이유로 자신을 더 돌봐 달라고 요구했고, 대표님께서 받아들이신 걸로 압니다.” 강 비서가 차분히 설명했다.중현은 헛웃음을 흘렸다.임훈 일행이 그를 바라봤다. 바로 다음 말이 떨어졌다.중현은 과거의 자신을 향해 욕을 내뱉었다. “진짜 멍청했네.”아무리 목숨을 빚졌다 해도 강솔과 제대로 상의해서 보답의 범위를 정하면 될 일이었다. 왜 일을 이렇게까지 꼬아 놓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더 멍청한 것도 있습니다.” 임풍의 입이